어릴 때 봤던 영화를 아주 오랜만에 다시 보면 가끔 당황스러울 때가 있어요.
분명 예전에는 웃기고 신나는 영화였거든요?
그런데 지금 다시보니 '잠깐만... 원래 이런 이야기였어?' 싶은 장면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옵니다.
영화가 바뀐 건 아닐텐데 말이죠.
달라진건 영화를 보는 제 쪽이겠죠. 어릴 때는 주인공의 모험이 먼저 보였다면, 이제는 그 옆에 있는 부모의 표정이나 이별, 흘러가는 시간 같은 것들이 자꾸 눈에 들어와요.
그래서 골라봤어요.
어릴 때는 마냥 재밌었는데, 어른이 되어 다시 보면 묘하게 마음 한구석을 건드리는 영화들.
1. 토이 스토리

어릴 때의 '토이스토리'는 장난감들이 사람이 없을 때 살아 움직이는 영화였어요.
우디와 버즈가 싸우고, 위험한 일을 겪고, 결국 친구가 되는 과정이 재밌었었죠.
그런데 어른이 되어 이 시리즈를 다시 보니 자꾸 다른 게 보이더라고요.
그건 바로, 아이에게 가장 사랑받던 존재도 언젠가는 필요 없어질 수 있다는 것.
특히 시리즈가 이어질수록 장난감들의 가장 큰 고민은 악당을 물리치는 일이 아니라 아이가 자라고 자신을 떠나는 일이 되잖아요.
어릴 때는 앤디가 빨리 커서 다음 이야기가 시작되길 기다렸는데... 지금은 괜히 장난감들 편을 들게 되네요.
나이가 들면 사람뿐 아니라 장난감에도 이입하게 되는가 봅니다. 하이고.
2. 나 홀로 집에

어릴 때는 케빈이 부러웠어요.
집에 혼자 남아 마음껏 놀고, 먹고 싶은 거 먹고, 도둑에게 기상천외한 함정을 설치하는 게 재밌어 보였거든요.
그런데 어른이 되어 다시 보면 가장 눈에 들어오는 사람은 의외로 케빈 엄마 케이트예요.
아들이 혼자 집에 남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떻게든 집으로 돌아가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예전처럼 케빈의 자유만 부러워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리고 케빈 역시 처음에는 가족이 사라진 걸 좋아하지만, 결국 크리스마스에 원하는 건 가족이 돌아오는 것이죠.
어릴 때는 '혼자 있는 집'이 보였는데, 지금은 '그 집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이 보여요.
3. 미세스 다웃파이어

어릴 때는 그냥 웃겼어요.
아빠가 할머니로 변장해 아이들의 보모로 들어간다는 설정이 웃기잖아요.
근데 커서 다시 보니 시작부터 좀 짠하더라고요.
대니얼은 아내와 이혼한 뒤 아이들과 따로 살게 되고,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도 제한돼요. 그러던 중 전처가 보모를 구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아이들을 더 자주 보고 싶은 마음에 아빠가 할머니로 변장해 보모가 된다는 내용인데요.
어릴 때는 그 변장이 언제 들킬까 조마조마했다면, 지금은 아이들을 만나려면 다른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는 상황 자체가 먼저 보여요.
참, 그리고 저는 결말도 좋았어요. 영화는 두 사람이 다시 합치는 것으로 억지스럽게 끝내지 않거든요.
부부의 관계는 끝났지만, 그렇다고 가족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라는 메시지가 좋았어요.
어릴 때는 두 사람이 다시 잘 되면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꼭 다시 부부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이 결말이 오히려 더 마음에 들어요.
4. 트루먼 쇼

어릴 때는 설정 자체가 재밌었어요.
한 남자의 인생이 사실 거대한 TV프로그램이고, 정작 본인만 그 사실을 모른다니.
트루먼이 조금씩 이상함을 눈치채고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도 흥미진진했고요.
그런데 어른이 되어 보면 이 영화가 꽤 서늘합니다.
트루먼이 믿었던 아내와 친구는 모두 배우였고, 평범한 일상이라고 생각했던 삶은 처음부터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죠.
무엇보다 무서운 건 그가 살던 세계가 감옥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 예쁜 집도 있고, 직장도 있고, 이웃도 있는 익숙하고 평범한 일상이었으니까요.
그런 곳을 떠나는 건 진실을 알았다고 해서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문밖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으니...
그래서 어릴 때는 트루먼이 문을 열고 나가는 장면이 그저 통쾌하기만 했다면, 지금은 그 문을 열기까지 얼마나 무서웠을지가 먼저 생각나요.
평생 믿었던 세상이 한순간에 무너졌는데도 결국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 괜히 마음이 짠해집니다.
두려워도 가야 할 때가 있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서... 예전보다 트루먼의 마지막 선택에 더 공감하게 되더라고요.
5. 가위손

어릴 때 가위손을 봤을 때는 에드워드가 그저 신기하면서도 조금 무서웠어요.
손이 가위인 채 성에 혼자 사는 사람이라는 설정이니까요. 마을로 내려와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습도 기묘한 동화처럼 느껴졌고요.
그런데 어른이 되어 다시 보면 에드워드보다 그를 대하는 사람들이 더 눈에 들어옵니다.
처음에는 그의 재주를 신기해하며 좋아하던 사람들이 문제가 생기자 금세 그를 의심하고 밀어내죠.
결국 에드워드는 다시 혼자 성으로 돌아가고...
에드워드는 처음부터 달라진 게 없는데, 사람들의 마음만 달라진 거예요.
어릴 때는 손이 가위라서 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지금은 그를 외롭게 만든 게 가위손보다, 사람들의 시선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해요.
6. 마틸다

어릴 때의 '마틸다'는 초능력 영화에 가까웠어요.
못된 어른들을 골탕 먹이는 작은 아이가 얼마나 통쾌했는지.
그런데 지금 다시 보면 마틸다가 왜 그렇게 혼자 책을 읽고 자기 세계를 만들었는지가 보입니다.
똑똑한 아이의 특별한 모험 뒤에는 '자기 아이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부모와 폭력적인 학교 환경'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마틸다가 원했던 것도 거창하지 않았어요.
자신을 이해하고 아껴주는 어른 한 명...
어릴 때는 초능력이 제일 부러웠는데, 지금 보면 자기 편이 되어주는 좋은 선생님을 만난 게 훨씬 더 큰 행운처럼 느껴집니다.
7. 라이온 킹

어른이 되어 다시 보면 어린 심바가 아빠의 죽음을 자기 탓이라고 믿고 도망치는 장면이 너무 마음 아픕니다.
심바는 아빠를 잃은 것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웠을 텐데, 스카의 거짓말 때문에 '내가 아빠를 죽게 했다'는 죄책감까지 안고 혼자 고향을 떠나죠.
어릴 때는 심바가 왜 그렇게 오래 돌아오지 못했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는데요. 지금은 그곳으로 돌아간다는 것 자체가 심바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지 조금 알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스카를 물리치는 심바가 그저 멋있었다면... 지금은 두려워하던 곳으로 결국 다시 돌아온 심바가 대단하고 뭉클하게 느껴집니다.
어른이 되서 보면 슬퍼지는 이유
이 영화들을 다시 보면서 재밌었던 건,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장면들이 이제는 눈에 들어온다는 점이었어요.
어릴 때는 모험이나 초능력, 웃긴 장면을 따라갔다면 지금은 그 뒤에 있는 가족, 이별, 외로움, 그리고 지나가는 시간이 더 잘 보입니다.
아마 그동안 여러 가지를 경험하면서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 조금씩 늘어난 덕분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주인공만 보였다면 이제는 그 옆에서 기다리는 사람도 보이고, 별것 아니었던 한마디가 왜 그렇게 무거웠는지도 알 것 같고...
결국 어릴 때 재밌었던 영화가 어른이 되어 갑자기 슬퍼진 건, 영화에 없던 슬픔이 새로 생겨서가 아니라 그때는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마음들이 이제야 보이기 시작해서인 것 같아요.
오래된 영화를 다시 보는 재미도 어쩌면 여기에 있는 것 같아요.
같은 장면을 보고도 예전과는 다른 곳에서 웃고 울게 되는 것.
그러다 보면 영화뿐 아니라 그 사이 내가 살아온 시간도 슬쩍 돌아보게 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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