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애매하게 슬픈 영화 말고, 정말 작정하고 울 수 있는 영화가 보고 싶은 날이 있어요.
눈가만 살짝 촉촉해지는 정도로는 부족하고, 중간부터 휴지를 뽑기 시작해 끝날 때 쯤에는 눈가가 퉁퉁 부어 있는 그런 영화요.
그래서 이번에는 단순히 여운이 길거나 먹먹한 작품 말고, 보다 보면 어느순간 눈물을 참기 어려워지는 영화 10편을 골라봤습니다.
사랑과 이별, 부모와 자식, 오래된 부부, 그리고 전쟁... 이유도 제각각이에요.
준비물은 휴지입니다.
1. 어둠 속의 댄서

셀마는 어린 아들과 단둘이 살아가는 가난한 이민자 엄마입니다.
그녀는 유전병으로 점점 시력을 잃어가고 있고, 아들 역시 같은 병으로 앞을 보지 못하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공장에서 힘들게 일하며 아들의 수술비를 조금씩 모읍니다.
이미 시력을 잃어가고 있는 셀마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아들이 자신과 똑같은 어둠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셀마가 어렵게 모은 수술비를 이웃이 훔쳐가면서 모든 일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돈을 되찾으려던 과정에서 돌이킬 수 없는 사건까지 벌어지고, 아들의 수술비와 자신의 삶이 모두 걸린 상황에 놓여버려요.
상황이 나빠질수록 셀마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점점 줄어듭니다.
어떻게든 버텨보려는 사람을 끝까지 몰아붙이는 이야기가 너무 가혹해서 보고 나서도 한동안 여운이 남는 영화입니다.
2.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89세 강계열 할머니와 98세 조병만 할아버지는 76년을 함께 살아온 실제 부부입니다.
커플 한복을 입고 손을 잡고 다니며 눈싸움도 하고 장난도 치는 두 사람의 일상은 초반만 해도 사랑스럽기만 해요.
그러나 할아버지의 건강이 점점 나빠지면서 할머니는 평생을 함께한 사람과의 이별을 준비하게 됩니다.
76년을 함께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도 슬프지만, 그 뒤에 혼자 남은 할머니를 보는 게 정말 마음 아파요.
늘 둘이 걷던 길을 혼자 걷고, 함께 돌아오던 집에도 이제는 혼자 돌아가야 합니다.
너무 오랫동안 당연했던 사람이 사라진 자리가 얼마나 클지 쉽게 가늠조차 되지 않아요.
처음에는 두 분이 귀여워서 웃다가, 마지막에는 그 빈자리 때문에 많이 울게 되는 영화예요.
3. 반딧불이의 묘

제 2차 세계대전 말기, 14살 세이타와 4살 여동생 세츠코는 공습으로 집과 어머니를 잃습니다.
친척집에 몸을 의탁하지만 냉대를 견디지 못하고 나온 두 아이는 방공호에서 둘만의 생활을 시작해요.
처음에는 물놀이도 하고 반딧불이를 잡으며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먹을 것은 점점 떨어지고 세츠코는 눈에 띄게 야위어갑니다.
4살인 세츠코는 자신이 왜 굶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오빠가 가져오는 음식을 기다려요.
배가 고파 흙으로 만든 주먹밥을 먹으려 하고, 사탕이 다 떨어진 깡통에 물을 부어 단맛이라도 느끼려 합니다.
하지만 세이타 역시 겨우 14살이에요.
어린 오빠가 더 어린 동생을 살리려고 애쓰지만, 전쟁 속에서 두 아이를 지켜주는 어른은 끝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츠코가 점점 약해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전쟁이 아이들에게서 무엇을 빼앗는지가 너무 선명하게 보여요.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밥 한끼와 안전한 잠자리 뿐인데, 전쟁은 그것조차 허락하지 않죠.
4.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인희는 의사 남편과 자식,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돌보며 살아온 엄마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불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가족들은 늘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던 엄마와 이별을 준비하게 돼요.
죽는 게 무섭지 않을 리 없는데, 하지만 인희는 자기 죽음만 슬퍼할 여유가 없어요.
자신이 없으면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는 누가 돌볼지, 남편과 자식들은 잘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하며 마지막까지 가족을 챙깁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떠날 준비를 해야 하는 인희의 모습이 정말 마음 아파요.
그리고 가족들은 그제야 늘 곁에 있을 것 같았던 엄마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깨닫기 시작합니다.
특히 엄마 이야기에 약한 사람이라면 거의 방어가 안 되는 영화예요.
5. 미 비포 유

활동적이고 성공적인 삶을 살던 윌은 사고로 사지가 마비된 뒤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간병인으로 들어온 루이자는 냉소적으로 변한 윌을 다시 바깥 세상으로 이끌고, 함께하는 시간이 늘면서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게 돼요.
하지만 윌은 사고 이후 지금의 삶을 계속 이어가고 싶지 않을만큼 깊은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루이자는 자신과 함께라면 그의 마음도 달라질 수 있을 거라 믿고, 실제로 두 사람은 함께 웃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요.
그런데도 사랑하는 사람을 살게 하고 싶은 루이자의 마음과, 루이자를 사랑하면서도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은 스스로 하고 싶은 윌의 마음은 끝내 같은 곳을 향하지 못합니다.
서로 사랑하지 않아서 헤어지는 게 아니라, 사랑하면서도 함께 할 미래를 약속할 수 없다는 것.
그게 이 영화가 유난히 슬픈 이유입니다.
6. 안녕, 헤이즐

암을 앓고 있는 16살 헤이즐은 암 환자 모임에서 어거스터스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헤이즐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까봐 사랑을 망설이지만, 어거스터스를 만나면서 평범한 연애의 행복을 조금씩 알아가요.
그런데 함께할 미래를 기대하기 시작할 무렵, 이번에는 어거스터스의 병이 깊어집니다.
얼마 전까지 자신을 웃게 해주고 함께 여행했던 사람이 점점 약해지는 모습을 헤이즐은 곁에서 지켜봐야 해요.
자신이 먼저 떠날까봐 사랑을 두려워했던 아이가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사라질까봐 두려워하게 된 겁니다.
겨우 마음을 열고 사랑하게 됐는데 그 사람과 함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아가는 과정이 이 영화에서 가장 아픈 부분이에요.
7. 지금, 만나러 갑니다

아내 미오를 먼저 떠나보낸 타쿠미는 6살 아들 유지와 둘이 살아갑니다.
미오는 죽기 전 비의 계절에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겼는데, 1년 뒤 정말 장마가 시작되자 기억을 모두 잃은 모습으로 두 사람 앞에 나타나요.
아내를 잃은 남편과 엄마를 잃은 아이에게는 믿을 수 없는 기적입니다.
세 사람은 다시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잠들며 잃어버렸던 가족의 일상을 되찾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처음과는 분명히 달라요.
다시 만난 순간부터 이 행복이 끝날 날도 함께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타쿠미는 사랑하는 아내를 두 번 떠나보내야 하고, 6살 유지는 돌아온 엄마와 다시 헤어져야 합니다.
한 번 잃고 겨우 견뎌낸 사람을 다시 품에 안겨준 뒤 또 보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세 사람이 행복하게 지내는 평범한 하루들은 시간이 줄어드는 장면처럼 보여 마음이 아파요.
이 영화는 죽은 사람이 돌아와서 슬픈 게 아니라,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서로를 다시 사랑하게 만들어서 슬픈 영화입니다.
8. 아이 엠 샘

7살 정도의 지적 능력을 가진 샘은 자신을 떠난 아이 엄마 대신 딸 루시를 혼자 키웁니다.
그런데 루시가 7살이 되어 아빠의 지적 능력을 넘어서기 시작하자 사회복지기관은 샘의 양육 능력을 문제삼고, 결국 두 사람을 떨어뜨려 놓습니다.
샘은 딸을 되찾기 위해 변호사를 찾아가 양육권을 두고 싸우기 시작해요.
샘에게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더 슬퍼요.
딸을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것만으로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는지 샘 자신조차 흔들리기 시작하니까요.
하지만 루시가 원하는 건 더 똑똑한 아빠가 아니라 자신을 사랑해온 바로 그 아빠예요.
떨어져 지내면서도 루시는 아빠를 찾고, 샘 역시 딸과 다시 함께 살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합니다.
서로에게 부족한 게 아니라 서로가 필요한 두 사람인데, 함께 살기 위해 그 사랑이 충분하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는 사실이 참 야속하게 느껴져요.
9. 7번방의 선물

지적장애가 있는 용구는 어린 딸 예승이와 둘이 살아갑니다.
형편은 넉넉하지 않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행복하게 살아가요.
그러던 어느 날 용구는 하지도 않은 범죄의 누명을 쓰고, 제대로 자신을 변호하지 못한 채 사형을 선고받는데요.
용구는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제대로 이해하고 억울함을 밝히기가 어렵고, 아빠가 죄가 없다는 걸 아는 예승이는 너무 어려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요.
한 사람은 하지 않은 죄로 자신의 삶을 빼앗길 위기에 놓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빠를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입니다.
둘에게 필요한 건 대단한 기적이 아니라 다시 집으로 돌아가 예전처럼 함께 사는 것뿐이에요.
그런데 너무 평범한 그 바람조차 두 사람의 힘으로는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이 이 이야기를 더 비극적으로 만듭니다.
10. 인생은 아름다워

유대인 귀도는 사랑하는 도라와 결혼해 아들 조슈에를 낳고 행복하게 살아가지만, 나치의 유대인 탄압으로 어린 아들과 함께 강제수용소에 끌려갑니다. 도라 역시 가족을 따라 수용소행 기차에 올라요.
귀도는 아들이 공포에 질리지 않도록 수용소 생활 전체를 하나의 게임이라고 속입니다.
숨어 있으면 점수를 받고, 1,000점을 모으면 진짜 탱크를 받을 수 있다고요.
아들은 아빠 말을 철썩같이 믿습니다.
하지만 관객은 아이가 점수를 얻기 위해 숨는 동안 바로 곁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현실을 보게 돼요.
아빠라면 아이를 위험에서 꺼내주고 싶겠지만, 귀도에게는 그럴 힘이 없습니다.
자신조차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가 지켜줄 수 있는 건 아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뿐이에요.
그래서 귀도는 가장 두려운 순간에도 웃고, 조슈에는 그런 아빠를 보며 안심합니다.
아들이 아빠를 가장 믿는 순간, 관객만 그 아빠가 얼마나 절박하게 아이를 지키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야기가 끝날 즈음에는 이토록 비극적인 영화에 왜 '인생은 아름다워' 라는 제목이 붙었는지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됩니다.
사실 기분 좋은 날에는 '펑펑 우는 영화' 를 검색할 일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여기까지 찾아 들어왔다는 건 오늘만큼은 어설픈 감동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번 목록은 보고나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작품이 아닌, 보고 있는 동안만큼은 다른 생각을 끼워 넣을 틈이 없는 영화들로 골랐어요.
가끔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생각을 정리하는 것보다 두 시간쯤 다른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버리는 게 더 나을 때도 있으니까요.
울고 나면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동안 꾹 눌러두었던 감정까지 함께 쏟아낼 수는 있습니다.
오늘은 그런 두 시간을 만들어줄 영화들만 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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