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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사생활

고양이와 떨어져 지낸지 한달 째

유하우스 2020. 2. 8. 09:40

 

내가 키우는 고양이 이름은 구루미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날 아침,
출근하는 남편의 발 밑에 웬 고양이 한 마리가 발길을 잡고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애교를 떨더란다. 심성이 고운 남편은 추운 날씨에 고양이를 밖으로 내쫓을 수 없어 우리 집으로 그 녀석을 인도했다. 현관문이 벌컥 열리자 마치 제 집인양 성큼성큼 들어오던 내새끼 첫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시간이 늦어 남편은 출근하고 고양이와 나 둘만 남게 되었다. 나는 이럴 때에 고양이에게 무엇을 줘야 하는지, 어떤 말을 건네야 하는지 하나도 알지 못해 한동안 멍청하게 앉아만 있다가 문득 냉장고에 우유가 있다는 사실이 떠올라(고양이에게 사람 먹는 우유 주시면 안됩니다✔몰랐어요😭) 우유와 냉동실에 있던 멸치를 꺼내 그릇에 담아 주었다.
너무나 맛있게 먹는 녀석의 모습에 괜히 뿌듯했다.
아이가 밥 먹는 틈을 타 조심스레 털을 쓰다듬어 보았는데 길고양이 답지않게 털이 유난히 부드러웠다. 그래서 순간, '아, 집고양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급히 인터넷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사람들은 고양이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들어가서 찾을 수 있는 어플을 소개시켜주었고, 남편과는 그 날 저녁 동물병원에 방문해 아이의 사진과 특징을 적어 실종 고양이 공고문을 올렸다.
수의사 선생님께서 일정 기간 주인이 나타나지 않을 시 법적으로 우리들이 키워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너무 예쁜 고양이였고 고작 하루지만 정이 들어 이 아이와 평생 함께 살고 싶다는 욕심이 문득 문득 들던 차였다. 그래도 우리 눈에 이렇게 예쁘면, 우리보다 더 오랜 시간 함께 했을 주인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이 아이를 예뻐하고 그리워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감정이 조금 복잡해졌었다.

 

시간이 흘러도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고양이와 몹시 정이 들었고 많은 시간을 함께 공유했다.
처음엔 낯을 조금 가리는가 싶었던 녀석도 우리의 일관된 사랑에 조금씩 마음을 여는 듯 했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우리집에 온 지 3년 되는 날 처음으로 녀석의 생일파티를 해주었다.

고양이 케이크도 사서 생일을 멋지게 축하해 주고 싶었는데 모자를 씌운 순간부터 엄청나게 싫어하기 시작했다..😣(당연한 결과)
그래서 사진도 후다닥 찍었다...😵
하지만 우리 좋으라고 하는 게 아닌 이래봬도 녀석의 생일 파티였으니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 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나는 저 때 우리 아기를 임신 중이었다. 고양이와 아기는 초음파로 통하는게 있나?(근거없는 소리)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 한 달동안 떠날거지. 떠나지마.'였던 것 같기도 하다.

 
제왕절개후 4박 5일을 병원에 있고, 쉬지 않고 2주를 산후조리원에서 보내고는 퇴실후 또 다시 산후조리원에 입소하게 되기까지(자세한 에피소드는 따로 포스팅 할 계획✔) 구루미는 혼자 근 한 달 동안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산후조리원에 일주일을 있을지, 이주일을 있을지 아직 미정이다. 하지만 나는 일주일만 머물고 싶다. 물론 내 몸은 편하지만 아기도 남의 손보다는 안전한 엄마 손을 타는 것이 좋고, 구루미도 걱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집에 돌아가서도 문제다...☠

아기에게 애정과 시간을 쏟아야 하는데 지금도 충분히 외로워 하는 우리 구루미 우울증 걸리는 건 아닌지 심히 걱정된다. (하지만 남편이 집에 있어 정말 다행이다.)

 

외로워 보이는 뒷모습에 마음이 짠하다.

구루미를 평생 책임지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내가 집이라는 우리에 가두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 생각을 핑계로 입양 보낼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저 보고싶고 만지고 싶다.
우리 고양이.

보고싶어, 구루미야.
엄마가 집에 돌아가면 맛있는 캔도 자주 따주고 츄르도 많이 줄게.
우리 구루미도 엄마에게 소중한 존재야.

 

아기와 초음파가 통했던 거라면 나와도 텔레파시가 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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