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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사생활

갑질 사건을 보며, 2016년, 변한 게 없다

유하우스 2020. 2. 14. 22:46

 

 

 

2016년 9월 5일. 전북 익산 경찰서는 이모씨(38,남)를 폭력 및 재물 손괴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모씨는 당시 편의점 직원이 전자레인지 작동법을 가르쳐 주지 않고 불친절 하다는 이유로 펄펄 끓는 컵라면을 얼굴에 집어 던지고, 손찌검을 하고, 물건들을 던지며 난동을 부렸다.
나는 이모씨에게 '기계가 오작동을 일으켜 기계를 발로 걷어찼다.'는 식의 자연스러운 당당함을 느꼈다.
행동에 대한 이유가 '엄연한 서비스직이 불친절 했기 때문'이었다면, 공정한 판결을 내리지 못한 판사나 의료 기술을 실수한 의사에게도 끓는 라면을 끼얹을 수 있어야 한다. 편의점 알바생에게 다짜고짜 반말을 하고 욕설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럴 만한 용기는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수많은 사람들이 편의점 알바생은 하는 일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간단한 손님 응대, 계산 정도만 하면 된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한국 편의점 협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편의점 부대 서비스 종류는 총 30~40가지 이상에 달한다. 알바생들은 이제 유통, 판매 뿐 아니라 빵 굽기, 햄버거 만들기, 각종 튀김 튀기기와 알뜰 폰 판매, 공과금이나 세금 납부가 가능한 은행 업무까지 동시에 해내야 한다. 최근에는 홈쇼핑 상품 반품 대행 서비스와 물품 보관실, 탈의실까지 생기고 있어 편의점은 점점 '만능 플랫폼'이 되어가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서울시가 알바OO, 한국 노동 사회 연구소와 함께 2분기 알바OO 채용 공고를 분석한 결과, 편의점은 모든 직종 중에서 가장 임금을 낮게 받는 곳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아직 사회 생활 경험이 부족한 많은 학생들이 최저 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으로 일한다는 것을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고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부대 서비스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고 있는데 최저시급 지켜 달라는 말도 못하고 알바생들의 속은 오늘도 까맣게 타들어 간다.

 

 

그들은 드신 음식물은 버리고 가셔야 한다는 푯말에도 담배까지 지지고 간 테이블을 묵묵히 치우고 반말, 욕설, 손찌검, 술주정, 성희롱을 포함한 온갖 인격 모독을 당해도 '쉬운 일'이라는 편견 때문에 정당한 법적 약속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없다.

나이가 어린 학생들은 더욱이 그렇다. 사회 생활 경험이 거의 없는 학생들은 시급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게 쉽지 않다. 점주가 '다른 편의점에서도 다 그렇게 한다'라고 말하면 그만이니까.

돈을 적게 받는 노동자를 무시하는게 일상화 된 사회에서 개인의 이득을 위해 잘못된 인식에 동참하는 건 옳지 않다.

 

 

 

 

물론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는 양심적인 점주들도 많이 있다. 그 분들을 따라 올바른 판단을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져야 한다. 그게 옳다. 본사가 가져가는 로얄티나 강요 당하는 인테리어 시공비, 카드사 수수로율 등으로 인건비 삭감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얘기하는 점주들은 최저시급 미지급명백한 임금 체불이며 근로기준법에 위배되는 불법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불친절 하다는 이유로 알바생 얼굴에 끓는 라면을 끼얹은 사람은 사람들의 편의점 알바생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예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월급으로 등급을 매기며 '갑질'에 목말라 있는 사람들에게 <편의점 알바생도 사람>이라는 서글픈 인식을 심어줘야 할 때이다.

 

 

 

 

요즘 사회 문제는 주로 누군가의 인권을 무시해서 벌어진다.

 

그 해 일어났던 모아파트 입주민들이 관리소장에게 준 '가습기 살균제 치약' 사건. 식약처에서 회수 명령 내린 치약을 관리소장에게 건넨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 관리소장의 아들이 말하기를 아버지는 평소에도 입주민들에게 물건과 음식을 받아오곤 했었다는데 늘 유통기한이 지난 것이었다고 한다.

이 사건 또한 '저임금으로 힘들고 귀찮은 일을 하는 사람 =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이라는 인식 문제에서 비롯한다고 볼 수 있다. 잘못된 인식이 갑질을 만드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게다가 한 아파트의 관리소장에 대한 대우가 이 정돈데 경비원들의 상황은 오죽할까 싶다. 본래는 아파트의 방범과 순찰 업무를 위해 고용된 경비원이 주민들의 분리수거, 청소, 요구 사항도 들어주는게 당연한 사람으로 전락한 것도 이상하게 변질 되어버린 인식 문제다.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고.

기억해야 할 것은, 사람의 인연은 미로처럼 꼬이고 꼬여있어 내가 언제까지나 '갑'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쏜 화살이 사람들 사이를 돌고 돌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겨누지 말란 법은 없다.

 

 

나는 서로 존중 받기 위해 인권을 무시하는 사람이 스스로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 되었으면 좋겠다. 그럼 언젠가는 갑질하는 사람들도 사라지고, 사건 사고도 줄어들고, 좀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되지 않을까?

 

 

 

 

우리는 보통 배고플 때, 상비약이 필요할 때, 택배를 찾아야 할 때, 교통 카드나 핸드폰을 충전해야 할 때 편의점을 찾는다. 판매하는 라이터를 빌리려고, 금연 구역에서 담배 피고 먹은 음식을 스스로 치우지 않으려고, 가게에서도 사오는 종이컵과 젓가락을 공짜로 얻으려고 편의점을 찾지는 않는다. 동네 슈퍼나 대형 마트에서 그랬다간 당장 주의를 듣고 개선이 없을 경우 쫓겨날 것이다. 하지만 부당한 것을 요구하고 되레 큰 소리 치는 사람들은 왜 유독 편의점에서 많이 목격되는 걸까. 나는 궁금했다.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많이 선택하는 편의점에서 최저시급 미지급은 불법이며 눈 앞의 알바생이 최저시급을 받든 무임금으로 일하든 우리에게 그 사람을 무시할 권리는 없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 그 누구에게든 인권 침해와 직업 차별은 일어나선 안 될 일이다.

나는 얼굴에 펄펄 끓는 라면이 끼얹어진 알바생의 기사를 다시금 보고 그동안 편의점에서 벌어진 가슴 아픈 사건들이 떠올라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

최저시급도 주지 않는 점주들과 알바생이 친절하지 않아서 얼굴에 라면을 던지고 손찌검을 한 이모씨, 쓰레기통으로 직행해야 할 '가습기 살균제 치약'을 아파트 관리소장에게 준 아파트 입주민들에 우리가 느껴야 하는 바는 무엇인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 어느 정도는 자연스럽게 넘기고 있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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