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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사쿠라바 가즈키 - 청년을 위한 독서 클럽 (스포주의)

유하우스 2020. 2. 18. 10:42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권위 있는 미션계 여학교 성마리아나 학원. 그 곳에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학생회와 거부할 수 없는 유행처럼 매력적인 연극부가 있다. 여학교다보니, 안경 쓴 모범생 사춘기 소녀들에게도 '왕자님'이 필요했는데 학교의 대대적인 연례 행사나 축제를 치를 때 당연히 제껴두고 진행을 하는게 당연했던 저 멀리 먼지 쌓인 '독서 클럽'의 왠지 모르게 멀리하고 싶은 소녀들이 느닷없는 일을 벌임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독서클럽'에서 기억해 두어야 할 이름은 단연 '아자미'다.
그녀는 못생기고 조용해서 학교에서 밀려났지만 성적은 톱을 달리는 독서클럽의 부장이다. 그녀는 17세기 프랑스의 유명한 문필가였던 시라노 드 베라주라크 (1619~1655, 기형적으로 큰 코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고 친구를 위해 대필하는 편지 속에 마음을 담아야 했던 시라노의 낭만적 사랑)에 푹 빠져있었는데 때마침 전학 온 베니코에 자신의 낭만을 뒤집어 씌워 '왕자님 만들기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성마리아나 소녀들은 이번에도 당연히 매력적인 연극부에서 자신들의 동경심을 쏟아부을 왕자님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지만, 아자미의 치밀한 연출과 그녀의 충실한 강아지 쓰보미를 신문부의 진성S 가네다 미치코에게 하룻밤 상대로 넘겨줌으로 판은 확실히 뒤집히고 만다.
연극부의 뜨거운 항의를 뒤로 하고 소녀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베니코는 완벽한 인형이 되어 그 해 '왕자님'에 선출 되었으며 현대판 드 베라주라크, 아자미의 꿈을 이루어 주었다.
고교 생활에 잊지 못할 추억을 쌓은 아자미의 다음 행동은 무엇이었냐고? 현명하고 똑똑한 소녀였으므로 그녀는 입시 준비를 위해 공부에 몰두했고, 원하는 대학에 합격까지 했다. 어느 날 성마리아나 학원에 전학 와 클럽 부장의 요구에 자기 자신을 버리고 '왕자님'타이틀을 얻었던 베니코는 그럼 어떻게 되었을까? 이 대목에서 베니코가 어디까지 본성을 숨기고 살았었는지 가늠이 된다.
그녀는 불량 소년을 만나 임신을 하고 학교를 중퇴한 후 결혼 하겠다고 학교에 이야기 한다. 그녀를 흠모하고 있던 무리들은 자기들이 추종했던 아름다운 '왕자님'의 추악한 본모습에 너나 할 것 없이 격분을 감추지 못한다.
"죽어버려! 죽어버려! 죽어버려!" 어쩌면 생애 처음 맛보았을 얌전한 성마리아나 여학생들의 들끓는 미움이었을 것이다.

제 1막의 어설픈 동경심(불량소년 이미지)이 미숙하지만 사과처럼 풋풋했고, 귀찮지만 미쳐날뛰게 내버려두고 싶을만큼 귀여웠다고 하면 이상해보이려나. 모두가 동의하는 순리를 만들어 그들만의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게 영화화 된다면 색감 참 예쁘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 2막은 성마리아나 학원의 설립자에 관한 이야기다.
먼 옛날, 그녀는 5살에 아버지로 인해 수도원에 들어간다.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은 마리아나는 사랑하는 그의 오빠 미셸을 찾아 금서를 빌려주는 카페 형태의 '철학적 복음호박'에 발을 들이게 된다. 아버지가 알면 놀라 자빠지셨겠지만 '신은 없다!'고 소리친 내력으로 집에서 쫓겨난 미셸이 자신의 카페에서 무신론 철학서를 읽든 그 책을 사람들과 돌아가며 읽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책의 내용과 분위기에 마리아나는 충격을 받았지만 그녀는 오빠를 사랑했기에 아버지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 다른 남매는 무수히 많은 시간을 각자의 색깔로 보내고, 시간이 두 사람을 같은 장소에 나란히 내려 놓았을 때 깔끔한 복장의 수녀복을 입은 마리아나와 부평초같은 삶의 나날이 여지껏 계속되고 있는 미셸이 서로를 마주했다. 하지만 곧, 텅빈 호박처럼 나이만 먹은 미셸은 몸과 마음이 동시에 아팠다. 일본으로 하느님 이야기를 전파하고 돌아온 마리아나가 자신의 손을 부여잡고 간곡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는데도 몸이 너무 아파 눈을 뜰 수 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마리아나가 어떤 식의 기도문을 하느님께 올렸는지는 자세히 서술되어 있지 않다. 다만 그것은 대단히 애달픈 마음이었으리라고 미셸은 짐작할 뿐이다.

마리아나의 꿈은 일본에 수녀원을 차리는 것이었다.
미셸이 아프지만 않았어도 그녀는 충분히 자신의 앞에 내어진 계단을 밟고 부지런히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미셸은 밤새 자신의 손을 꼭 잡고 싸늘히 죽어 있는 마리아나의 못내 이루지 못한 소중한 꿈을 꼭 이루어 주겠다고 다짐한다.

한 소녀의 이루지 못한 꿈이 결국은 도달한 형태이긴 하나 우아한 모습의 마리아나 동상이 실은 남자라는 사실에 안개 같은 구름이 두둥실 떠다니는 학교 아래 소녀들의 웃음을 떠올리면 왠지 알아서는 안 될 비밀을 알아버린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이 든다. 이 놀랍고도 위험천만한 비밀을 독서클럽지에 기록한게 누구냐고?

그러니까 언젠가부터 학교를 배회하는 할아버지와 닉네임 '시궁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학교의 내력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잠자코 듣고 있던 시궁쥐는 어느 순간, 귀신이라도 마주한 듯한 눈으로 할아버지를 보았겠지. 할아버지의 인자한 주름 뒤로 시궁쥐가 기록한 제 2막의 이야기 때문에 명문 학교 성 마리아나 학원의 위상이 떨어지면 그 후의 이야기가 전과는 다른 분위기로 그려질 것이다.
만화책 같은 전개, 재밌을 것 같다.

100년의 시간 동안 마리아나 학원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일들이 일어났는데 그 중에서 흥미로운 일을 꼽으라면 <학생회 밤무대화 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학교 최대 권력의 학생회에 전학생이 무단 침입해 미러볼을 달고 춤을 추는 사건은 전무후무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성마리아나 학원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 자녀나, 재벌 3세 등 늘 풍족한 삶을 누렸던 소녀들이 들어오는 곳이다. 온실 속 화초 같은 소녀들이 신흥 졸부와 함께 수업을 받고, 밥을 먹고, 더 나아가 그들에게 선도받는 것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늘 부채를 소지하고 다니는 세 아가씨(이하 부채파)는 전학 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회에 당돌한 제안을 했다.

학교를 남녀 공학으로 바꾸고, 찬미의 노래를 부르지 말자, 그리고 우리도 학생회에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

협박에 가까운 어리광에 여린 마음의 소녀들은 부채파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고 결국 학생회 안에서는 당파가 나뉘어지는 사태에 이르고야 말았다.
부채파와 소녀들은 마리아나 동상 밑에서 노래를 하고, 춤을 추고 그 당시의 학교는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잘못된 의견이라도 다수의 지지를 받으면 맞는 것이 되어버리는 법이다.
그리고 부채파와 소녀들은 부채파를 '왕자님'으로 선출하기로 마음 먹는데 왕자님을 뽑기로 약속되어 있는 날, 밖에서 놀다 검거 되었다는 부채파의 소식이 소녀들의 귀에 들려옴으로 성마리아나 학원은 원점으로 돌아가기 위해 또 한번 대소동이 일어나게 된다.
소녀들이 가지는 왕자님의 의미는 부채파의 생각보다 큰 것이었기에 그들이 더 이상 갈 곳 없는 처지가 되어버릴 때까지 성난 군중은 가열차게 그들을 몰아넣었다.

결국 부채파의 발길이 맞닿은 곳은 먼지 쌓인 건물 아래 칙칙한 독서클럽.

독서클럽의 부장 다카시마 기요코와 하세베 시구레는 부채파의 행보를 미리 예상하며 그녀들의 동아리 가입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던 참이었다. 기요코는 부원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그들을 포용하여 맞아들여준다. 하지만 한층 풀이 꺾이기는 했어도 여전히 오만방자한 부채파의 노래와 춤은 부원들의 심기를 몹시 불편하게 했고, 부장을 원망하게 했다. 그래도 기요코는 그들을 내쫓지 않았다. 그녀는 몇 년동안 발길을 끊었던 독서클럽에 성큼성큼 찾아온 학생회와 맞서 부장으로서 당당한 면모를 보여주었고 조용히 만인의 신뢰를 되찾았다.

'우리는 무정부주의자들이다.' 기요코의 보호가 없었다면 부채파는 전학을 가야했을지도 몰랐겠다고 무사히 졸업을 한 부채파 중 '복숭아 색 부채'는 생각한다. 문화에 섞여 귀화한 아가씨가 없었다면 성마리아나 학원에 길이길이 남을 <학생회 밤무대화 사건>은 기록되지 않았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인물이 서기를 맡은 점이 놀라웠고, 매번 그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 '독서클럽'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그 중에서도 '복숭아 색 부채'의 존재는 반전으로 느껴질만큼 신선하고 새로웠다.

제 4막은 '루비 더 스타'의 야마구치 주고야에 관한 이야기다. 린코라는 독서클럽 부원을 졸졸 쫓아다니던 주고야가 그녀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해 락 밴드를 결성한 후 그녀에게 상처받은 마음을 노래하고 다니며 린코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이야기인데, 플롯이 맘먹고 풀어놓자면 꽤 광범위해서 한 편의 장편소설이 되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만약 독서클럽이 영화화 된다면, 소녀들의 열광적인 사랑을 받으며 노래를 하는 야마구치 주고야는 왜인지 모르게 1막에서의 베니코와 비슷한 이미지가 아닐까 라고 상상했다.
그녀들은 공통적으로 예쁘장한 외모에 슬퍼 보이는 눈을 가졌고, 길고 늘씬한 팔다리로 나른하고 느릿 느릿한 행동을 하며, 학원을 빠져 나오면 각자의 본성을 드러낼 수 있는 곳에서 어른스러운 미소를 지을 것 같다.

마지막 제 5장은 뚱뚱하고 못생긴 도와와, 50년 전에 마리아나 학원을 졸업해 현재를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멋진 여성 아자미의 이야기다. 아자미가 누구냐고? 드 베르주라크에 빙의해 베니코 왕자 만들기 프로젝트에 대성공한 사람이라고 하면 기억이 날려나.
학교 요청에 응해 좋은 연설을 들려주러 온 아자미는 50년 전과 같이 현재도 학교를 떠들썩 하게 만드는 이슈가 두둥실 학교를 감싸고 있다는 사실에 따뜻하고 묘한 기분이 된다.

그녀가 방문했을 당시, 소녀들은 '부겐빌리아 님'때문에 한시도 콩닥거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 '부겐빌리아 님'(이라고 소녀들이 상상한)은 수업시간에 빼앗긴 핸드폰을 부겐빌리아 라는 꽃과 함께 서랍이나 책상에 올려 놓아 주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려 어느 순간부터 소녀들에게 소위 '왕자님'이라고 통용되고는 했다.

우연히 벌인 친절이 이다지도 큰 사태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에 도와는 학교 안 어디서든 숨을 곳을 찾기 바빴다. 하지만 하필이면 이 때, 나름대로의 전통을 고유하고 있는 독서클럽 건물이 폐쇄 된다는 이야기가 나돌았고, 존경하는 아자미 선배의 연설 소식이 들려오자 도와는 정말 마지막으로 '부겐빌리아 님'의 모습을 보이기로 마음 먹는다. 도와가 넣은 것이 확실한 가방 안의 독서클럽지를 품에 안고 옛날의 독서클럽 부원들을 만나러 카페에 도착한 아자미는 한줌의 재가 되어 버릴 한 공간의 시작과 끝을 당시의 부원들과 함께 맞게 되었다.

100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살아 숨쉬는 독서클럽지가 도와나 도와의 후배의 손에서 또 후배의 손으로, 110년, 120년 계속 이어진다면 더 좋았겠지만 장편소설이나 시리즈물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 또한 자연스러운 맺음이었던 것 같다.

'독서클럽'은 클럽 부원들이 성마리아나 학원에서 벌어졌던 기억해둘 만한 일을 기록한 비밀 수첩의 내용이다.

퀘퀘묵은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보는 느낌.

그 구성은 무척 새로우며, 모든 내용을 아우르는 커다란 틀이 중심을 잡아주어 헤매지 않게 도와준다.
소재와 구성, 탄탄한 짜임의 삼박자가 서로 욕심 부리는 일 없이 매우 조화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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