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하늘말나리야'시리즈 중 마지막 3부작을 읽어보았어요. <숨은 길 찾기>는 달밭마을에 남은 바우와 미르의 삶을 조명한 편이었는데요. 실패와 시련과 슬픔을 딛고 제 길을 나아가려는 아이들의 도전이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

[너도 하늘말나리야 시리즈]

1부 : 너도 하늘말나리야
2부 : 소희의 방
3부 : 숨은 길 찾기



1부가 나오고 2부가 나오기까지, 1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3부는 또 4년이란 시간을 기다려야 했죠.

세월이 무색하게 모든 이야기는 정말 만 3년의 시간을 걷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문화도 인식도 달라진 게 많았을텐데 그 미묘한 다름들을 찾기가 어려웠어요.

이 시리즈를 읽기를 원하신다면 순서대로 읽으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자연스러운 전개 방향입니다.

《이금이 - 너도 하늘말나리야》 어른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나누며 크는 아이들

청소년문학을 읽고 있어요. 어렸을 땐 청소년소설을 많이 읽었는데 나이가 드니 자연스레 읽지 않게 되더라고요. 그 때의 예민하고 섬세한 감수성을 다시 느껴보고자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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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 - 소희의 방》  빚에는 돈으로 갚을 것과 마음으로 갚아야 할 것이 따로 있다.

이금이 작가의 '너도 하늘말나리야'시리즈 중 2부 을 읽어보았습니다. 초등학생이었던 소희가 중학생이 된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요. 그래서인지 책의 전체적인 이미지도 좀 달라요. 초등학생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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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의 숨은 길 찾기




서울로 올라간 소희에게 작지만 분명한 열등감을 느끼던 미르는 소희가 진로계획을 물어보자 덜컥 '뮤지컬'이라고 답해버려요. 그렇게 예고 입학을 위한 여정을 저도 모르게 걷게 되죠.

예고 진학을 희망하는 다른 학생들의 끼와 열정은 미르가 견줄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미르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경력사항에 한 줄이라도 더 적어내기 위해 학교에서 진행하는 공연에 열심히 참여하죠.

공연의 초반은 말그대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미르가 노래를 부르기 전까지는요.

어수선하던 객석에서 마침내 터져나온 박수갈채와 환호는 미르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이 정말 미르가 걷고 싶은 길인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애초에 환경이 만들어 낸 꿈이지 미르의 가슴이 시켜서 한 일이 아니잖아요.


바우의 숨은 길 찾기




소희가 서울로 올라간 뒤 덩그러니 놓인 소희의 집은 바우가 조용히 돌보아주고 있었습니다. 잡초 관리를 해주고 식물과 꽃들이 건강히 잘 자랄 수 있게 도와주고 있었어요.

바우는 원래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는 소년이었습니다. 미술로 심리 치료를 하는 사람이 되기를 꿈꾸었던 적도 있어요.

소희의 집을 돌보며 바우의 꿈은 자연스럽게 바뀌었습니다. 식물과 꽃이 살고 죽는 모습을 평생 지켜보고 싶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생명과학고에 가기로 결심합니다.

바우의 아빠는 농사일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런데 예상 외로 바우를 존중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 일이 얼마나 고되고, 고된만큼 인정받지 못힌다는 현실적인 문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일테죠. 바우가 대학 진학을 해서 이 달밭마을을 떠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겠고요.

바우는 자신의 꿈을 인정해주지 않는 아빠에게 화가 납니다.

학교에 새로이 전학 온 재이라는 친구가 있는데요. 친구들이 말하길 재이가 바우를 좋아한다네요? 그래서일까요. 바우는 자꾸만 재이가 신경쓰입니다.

그들은 순간이나마 잊지 못 할 추억을 하나 둘 만들고 연극을 함께 합니다. 서로의 영화 감상 느낀점도 나누며 애틋한 마음을 키워갑니다.

그리고 무심코 들어간 농고의 정원에서 바우는 재이에게 마음을 고백하는데요. 고백을 받아준 재이가 단 몇 분만에 갑자기 돌변하고 말았습니다. 바우가 뭘... 잘못한 걸까요?


소희의 숨은 길 찾기




서울로 올라온 소희는 외고 입시 준비에 몰두합니다. 그리고 넉넉한 집안형편 덕에 호주로 영어캠프까지 다녀오죠. 학생 신분엔 더할 나위 없이 준비된 환경입니다.

하지만 소희는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꿈을 찾아냅니다.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해요. 그렇게 외고 입시 준비를 포기해버리고 마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가는 소희가 용기 있다고 생각해요. 외고에 가든 일반 학교에 가서 작가가 되는 길을 찾아보든 열심히 잘만 살면 됩니다. 어른인 저도 정답은 모르지만요. 확실한 건, 어떤 길로 가도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과 후회는 남으니까요. 작가를 택한 소희는 예대 입시를 준비하면서 학생으로서의 본분인 학업도 소홀히 하면 안 될 것이기에 지게 될 부담이 어깨를 짓누르겠죠? 힘듦을 이겨내고 자신이 택한 길로 꼭 성공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숨은 길 찾기>에는 꼭 필요한 인물인 재이라는 아이가 등장합니다. 서울에서 달밭마을로 전학 왔으며 바우를 좋아하고 있죠. 재이 덕분에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의 내용도 자세히 알게 되었어요. 재이가 들려주는 영화 이야기도 <숨은 길 찾기>의 묘미 중 하나입니다.

중학생 시점의 '죽은 시인의 시회' 느낀점을 들어보세요. 당차고 솔직한 그들의 말은 굳은 어른의 머리에 생각할 거리들을 줍니다.

이 외에도 <숨은 길 찾기>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미르의 엄마와 바우 아빠 이야기, 미르에게 부모와 동생이 더 생긴 일, 바우와 재이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제게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들만 꺼내 글을 써보았는데요.

이게 끝이 아니니 깊은 이야기는 직접 읽어보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끝으로, 하이라이트 나누겠습니다.




 

어릴때는 어른이되면 삶을 꿰뚫어 볼 줄 아는 혜안은 물론 앞날에 대한 예지력도 생길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이 들수록 인간은 영원히 불완전하며 미성숙한 존재임을 더 확실히 느끼게 될 뿐이다. 한동안은 그런 사실에 자괴감과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조차도 오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이 작품 속 어른들은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실수하고 실패하고 좌절하며 새롭게 시작한다.



작가는 이 책을 보는 청소년 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심심한 위로를 건네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보는 어른은 완전한 모습일 지 몰라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걸 어른들은 매우 잘 알죠.

 

그런 사정을 처음부터 알았다면 이곳을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았을 거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좀 더 존중하고 믿을 필요가 있다. 자기에게 닥친 일인데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결정이나 판단에서 소외되고 제외되는 것, 진짜 기분 나쁘다.



어린 시절에 어른들을 보며 느꼈던 답답함을 이렇게라도 해소시켜 보세요. 제가 어린 시절에 어른들은 저에게 설명해 주지 않았거든요.

저는 제 아이에게 그런 기억을 주지 않을겁니다. 내 결정으로 인해 아이 인생에 타격이 갈 일은 아이와 이야기를 꼭 나누고 아이의 의견도 듣고, 부모의 생각도 입으로 꺼내 들려줄 거예요.

사랑의 신인 큐피드가 어떤 신의 시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큐피드는 들판에 있는 시녀를 향해 사랑의 화살을 쏘았다. 그런데 화살이 빗나가 시녀 대신 옆에 있던 오랑캐꽃에 맞았고 상처 입은 오랑캐꽃에서 팬지가 태어났나고 했다. 그 내용을 다 읽었을 때 재이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 팬지 꽃말이 나를 생각해 주세요래



식물과 꽃을 사랑하는 아이들의 마음이 책에 묻어나 향기롭기 그지없습니다. 꽃말의 어원이 인상 깊은 부분이라 여러분과도 나누고 싶었어요.

 






제가 부족한 사람이라 이 책을 이렇게까지밖에 소개하지 못 하는 게 안타깝습니다. 어른들이 읽어도 재미있는 책이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물론 청소년들에게도 권하고 싶고요.

이 책을 읽으며 바우, 미르, 소희와 같은 시간을 걷고 있는 친구들을 돌아보게 되었고, 청소년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어린 시절의 제가 하지 못했던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아이들을 보며 해소감과 위로를 받았기 때문에 작가님께 감사하단 말도 남기고 싶었습니다.

여러분도 좋은 시간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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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 작가의 '너도 하늘말나리야'시리즈 중 2부 <소희의 방>을 읽어보았습니다. 초등학생이었던 소희가 중학생이 된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요. 그래서인지 책의 전체적인 이미지도 좀 달라요. 초등학생 소희 이미지가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소희라는 한 아이의 성장을 옆에서 지켜보고 작가가 글로 옮긴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1부 <너는 하늘말나리야>에서의 소희는 엄마, 아빠 없이 할머니와 사는 조손가정의 아이로 나왔었습니다. 그리고 2부 <소희의 방>에서는 두 살때 저를 떼어놓고 서울로 올라간 재혼한 엄마와 함께 사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죠.

개인적으로 2부 참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1부에서는 미르, 바우, 소희. 세 친구의 이야기를 나눠 듣는 느낌이라 더 알고 싶은 마음에 아쉬움이 없잖았는데 2부에서는 맘편히 소희의 이야기에만 집중할 수 있어 좋았어요.

소개해 봅니다.




#엄마와의 재회




2살 때 헤어진 엄마와 다시 만난 소희는 이 장면이 몹시 어색했습니다. 끌어안고 눈물을 펑펑 흘리는 정돈 아니더라도 뜨거운 눈길로나마 지나간 시간 속에 홀로 서 있는 소희를 안아줄 줄 알았거든요.

부자 남자와 재혼한 엄마는 이런 질문이나 하고 앉아 있습니다.


"무슨 과목 좋아해?" 이 질문 역시 허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국어하고 사회요." 엄마는 나한테 궁금한 게 진짜 이런 것들인가. 소희는 그게 궁금했다. 엄마는 다시 헛기침을 했다. 잘 나오지 않는 말을 억지로 꺼내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개인적으로 비슷한 경험이 있어 소름 끼쳤습니다. 경험해 보지 못 한 사람은 이 장면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상당히 현실적인 장면입니다.

이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부모라 할지라도 말이죠. 저같으면 그 자리에 나온 소희의 2살, 3살, 4살...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매년의 소희를 떠올리려 애쓰며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미안해하고 그 마음을 표현하려 노력했을 거예요. 그런데 자기 먹고 살기 바빠서, 제 인생 챙기기 바빠서 정말로 새끼를 돌보지 못하는 부모들도 정말로 많습니다.


하지만 소희는 낯선 사람이 아니다. 딸을 12년만에 만났으면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에 대한 회한으로 감정이 요동쳐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엄마를 위로할 준비까지 돼 있는 소희에게 엄마는 이웃집 아줌마가 할 법한 질문들이나 하고 있었다. "그렇구나. 취미는 뭐야?" "...책 읽는 거요." "그렇구나."




엄마는 재혼한 아저씨와의 사이에 아들도 둘이나 있고 딸도 있었어요. 그들이 더 많으니까, 소희 한 명쯤은 미뤄두어도 되는걸까요? 소희는 그런 엄마를 이해해 주는 게 맞는걸까요?


#엄마의 집




소희는 새아빠 그리고 우진, 우혁이라는 남동생들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엄마 집에서의 생활은 예상대로 녹록지 않았어요. 붙임성 좋고 귀여운 우진은 늘 소희에게 잘해주었지만 우혁은 소희만 보면 가시를 드러내고 적대감을 보였거든요.

마치 엄마를 빼앗긴 것 같이 행동했어요. 감정에 솔직한 거라고 봐주어야 할지요.


엄마가 지금 걱정하고 신경 써야 할 사람은 우혁이 아니라 그동안 버려두었던 자신이다. 소희는 엄마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나는 갑자기 생긴 게 아니라 원래부터 있었다고요! 엄마를 뺏긴 건 우혁이가 아니라 내가 먼저라고요!' 하지만 소희는 그 말을 하지 못 했다. 엄마까지 자신을 귀찮아하게 될 까봐 무서웠다. 소희는 자기 방이 있고 반 아이들에게 엄친딸 소리를 듣게 해주는 이 집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제 이 집이 아니면 갈 곳이 없다.




엄마는 현재의 생활이 무너지지 않는 게 소희의 마음을 돌보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윤소희와 정소희




새아빠 이름에 맞춰 성을 바꾸게 된 소희. 다행히 전학간 중학교에서 채경이라는 성격 좋은 친구를 만나게 됩니다. 풋풋한 첫사랑도 하고요. 좋아하면 안 될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은 혼란스러운 기분에 빠지기도 하죠.

소희의 학교생활을 들여다보니 초등학생 소희가 어엿하게 잘 성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열 다섯 여자아이의 성장 드라마를 보는 듯해 '그 나이 땐 그럴 수 있어! 하지만 이건 조심해야해!' 훈수를 두고 싶기까지 했어요.


#'우리 애들'




자, 비싼 옷과 학용품을 주렁주렁 달고 학교에 다니게 된 소희는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이전에는 보지도 못 했던 물건을 갖게 되었으니 어깨에 힘이 들어갔을까요?

소희는 단순한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할머니가 그랬다. 빚에는 돈으로 갚을 것과 마음으로 갚아야 할 게 따로 있다고. 돈으로 갚아야 하는 빚을 마음으로 눙쳐도 안 되고 마음으로 갚아야 하는 빚을 돈으로 해결해서도 안 되는 법이라고. 소희는 엄마가 자기에게 진 빚이야말로 돈으로 갚을 수도 없고, 갚아서도 안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아이였어요. 그래서 엄마가 자꾸만 소희의 지난 날을 돈으로 해결하려 하는 모습이 못마땅했죠. 소희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건 비싼 메이커 옷이 아니라 그동안 보고싶어도 볼 수 없었던 엄마의 따뜻한 눈빛과 말과 행동이에요.


"카메라가 어떻게 됐다는거야?" 소희 방으로 온 엄마가 물었다.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없어졌어요." 소희는 울상을 했다. "발이 달린 것도 아니고 어디 있겠지. 잘 찾아보지도 않고 우진이부터 잡으면 어떻게 해? 우리 애들은 그런 짓 안 해." 순간 엄마의 '우리 애들'이라는 말이 파편처럼 튀어 가슴에 박혔다. '우리 애들이라니. 그럼 나는 엄마한테 뭐지? 지금, 우리 애들이 아닌 내가 거짓말을 한다는 건가?'




이 때쯤 되니 독자인 저도 엄마를 용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제가 이 글을 읽었더라면 가슴이 엄청 답답했을 거예요. 왜냐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단 걸 본능적으로 깨달아 버렸을테니까요. 여기서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란, '엄마에게 엄마의 잘못을 바로잡아주는' 거예요. 아이가 어른을 설득하는 일 자체도 쉽지 않은데, 이런 말을 생각 없이 툭 내뱉어버리는 어른 앞에 아이는 의지를 상실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희 엄마는 운이 좋은거죠. 이런 말을 들었는데도 소희가 그 다음에 기회를 몇 번이나 더 주었으니까.

저도 어릴 때 어른들의 생각없는 말에 깊은 상처를 받은 적이 많았어요. 그 때나 지금이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또 다짐합니다. 나는 어린 아이들에게 생각 없는 말로 상처를 주지 않겠다고. 반박할 힘이 부족한 아이들 앞에선 더더욱 조심하겠다고요.


#물품보관함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러 나가려는데 옷이 촌스러워요. 그래서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입고 온 옷(엄마가 사준 옷)은 물품보관함에 구겨 넣어버리죠.


문득 그동안 자청한 거라고 여겼던 모범생 역할이 실은 보이지 않는 강요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 없이 할머니와 사는 환경이, 할머니한테도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동정이나 손가락질이 죽기보다 싫었던 자존심이, 모범생 노릇을 할 때나 대견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는 어른들이... 보이지 않는 강요는 잠깐 동안 생각해도 줄줄이 떠오를 만큼 많았다. 소희는 스스로에 대한 연민이 울컥 솟구치는 걸 지그시 눌렀다. 이제 상관없다. 강요에 따라 억지로 입고 있었던 모범생 옷은 조금 전 벗어 버렸다. 소희는 그 옷을 쓰레기통에 처박고 싶은 걸 참고 물품 보관함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는 열지 않을 것처럼 잠가 버렸다.




속이 다 시원한 장면입니다.


#스무살 리나




내면이 성숙한 멋진 리나가 한국에 왔습니다. 새아빠의 딸이죠. 소희는 긴장했지만 곧 리나와 친해지게 됩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위로와 조언까지 듣게 돼요.


리나가 우는 소희를 꼭 안았다. "너 때문이라고 자책하지 마. 엄마의 불행이나 고통을 외면하라는 게 아니라 그걸 네 것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는 말이야. 엄마는 엄마고 너는 너야. 우리는 모두 각자 인생을 사는 거야. 이건 닥터가 내게 해 준 말이야. 대신 넌 너나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부당한 일을 당할 때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돼. 네 마음이 건강해야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 올바른 판단을 하고 당당하게 표현하거나 행동할 수 있어."




리나는 한국에서 외국으로 돌아가기 전, 아빠에게 일침을 놓아요. 엄마한테 잘해야 한다고 말예요. 그건 내내 소희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어요.

그리고 제가 소희에게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도 해주고 가네요. 소희에게 이런 멋진 언니가 있다는 게 참 기쁩니다.

저도 소희, 소희와 같은 친구들에게 얘기 해주고 싶어요.

엄마는 엄마고, 너는 너라고.

너는 엄마의 인생을 이해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고 사과를 받을 게 있으면 마땅히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이유없이 상처를 받아선 안 될 소중한 사람이라고. 그런다고 네 안의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지금 네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엄마를 이해하는 게 아니라, 그동안 방치되어 상처 입었던 너를 돌보아주는 것임을 알았으면 좋겠다고요.


다시 보고싶은 소희




'너는 하늘말나리야'시리즈 1부가 끝나고 2부 <소희의 방>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1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3부는 달밭마을에 남은 미르와 바우의 이야기라고 하는데요. 저는 스무살 소희, 스물다섯, 서른의 소희도 보고싶어요. (작가님 보고 계세요?)

모범생인 줄로만 알았던 소희의 다양한 면모를 들여다보는 게 재미있고 흥미로웠거든요. 어릴 적 제 자신을 들여다보는 여행도 재밌었고요.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겠죠. 그래도, 다신 못 볼 소희라도 어딘가에선 부디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자극적이지 않고 순수한 내용이었는데 울림이 매우 큰 책이었습니다. 결핍가정의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고 조금이라도 위로와 해소를 느꼈으면 좋겠어요.

✔️ 1, 3부 후기가 업로드 되었습니다.

《이금이 - 너도 하늘말나리야》 어른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나누며 크는 아이들

청소년문학을 읽고 있어요. 어렸을 땐 청소년소설을 많이 읽었는데 나이가 드니 자연스레 읽지 않게 되더라고요. 그 때의 예민하고 섬세한 감수성을 다시 느껴보고자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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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 - 숨은 길 찾기》 무수히 많은 갈래 중 내 숨은 길 찾기, 시리즈 마지막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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