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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메이 다메히토 - 정체 서평, 진범의 정체는? (스포주의) 본문
가부라기 게이치, 그는 사형수입니다. 한 아내와 남편 그리고 두 살배기 아기를 무참히 짓밟았단 이유로 현장에서 체포되었어요. 그리고 그 끔찍한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가 한 명 있었는데요. 이름은 이오 요시코, 아기의 할머니였습니다. 그녀는 조발성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었지요.
가부라기 게이치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게요. 그는... 탈옥을 합니다. 그래서 그의 목에 어마어마한 현상금이 걸려요. 잘못된 제보로 인해 수사가 오히려 진척되지 않을 정도로요. 그는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고 있는걸까요? 왜 잡히지 않는거죠?
그는 수염, 점 위치, 헤어스타일 등을 교묘하게 바꿔 원래의 인상을 탈피하고 왼손잡이라는 생활습관도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매사에 조심을 했습니다. 무려 직업을 갖기도 하고요. 연애감정을 품기도 했어요. 우습죠? 탈옥한 사형수가 지가 뭔데, 남의 인생은 짓밟아놓고?
개호사, 공사 현장 작업원, 여관 직원, 재택 기자 등 그는 다양한 직종에서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주인공 가부라기 게이치의 입장에서 설명이 되지 않아요. 그를 만난 사람들이 그에 대해 이야기 하는 걸로 엮여져 있습니다. 감히 그에게 발언권도 주지 않겠다는 저자의 의도였을까요? 객관적인 의도에서 바라봐달라는 뜻이었을까요?
조금 의아하게도요. 그를 만나 겪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바보 아니야? 아무리 소설이라도 그런 흉악한 범죄자가 사람들에게 평판이 좋아?' 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어요. 저도 그랬거든요.
개인적으로 저는 준지라는 사람을 만났을 때 제 마음에 진심으로 의문이 드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 혹시 진범 아닌 거 아니야?'
라고요. 사실 읽다보면 이러한 종류의 소설을 많이 읽은 사람은 금방 눈치 챕니다. 제목의 '정체'의 '정체'도 알게 되지요. 그래서 반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읽었어요. 그런데... 반전은 없더군요. 여기서부터 스포주의 입니다.
가부라기 게이치는 정말 범인이 아니었어요. 사건이 일어났던 날 당시로 함께 거슬러 올라가 볼게요.
그는, 18살이었던 그는, 길을 걷다가 웬 남자와 마주치게 되는데요. 낯선 사람을 보고 씨익 웃고 지나가던 그 사람, 스프링처럼 튀면서 앞으로 나아가던 그 사람, 가부라기 게이치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죗값을 치르지 않은 그 사람을 그는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어야 했어요. 곧이어 들리던 여자의 비명소리와 그를 연관지어 생각했어야 했고요.
소리가 난 곳으로 들어가보니 그 곳엔 한 아내와 남편 그리고 두 살배기 아기가 처참한 모습으로 피칠갑을 하고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놀랍게도 숨이 붙어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어요. 바로 아기의 할머니였죠. 그녀는 아들의 숨이 아직 붙어있다는 걸 확인하고 몸에 있는 칼을 빼내려고 했습니다. 그럼 더 출혈이 심해지기 때문에 그는 그녀를 말렸고요. 그리고, 그럼으로 인해 그의 얼굴과 몸에는 피해자들의 피가, 칼에는 지문이 묻게 된 점이 매우 애석하고도 안타까운 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상황을 보자마자 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를 당장 체포해요. 황당한가요? 할머니는 진범의 얼굴을 보았고, 진위여부를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그녀에게 증언을 부탁하면 되겠다고요?
그녀는요, 조발성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었는데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는거예요. 그녀가 경찰에게 남긴 말은 단 하나. '진범은 검은 옷을 입었고...' 그렇게 가부라기 게이치는 구치소에 수감이 됩니다.
너무 억울하잖아요. 그래서 탈옥한거예요. 내가 한 짓이 아닌데, 어마어마한 죗값을 내가 치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아무리 상황이 그렇다해도, 수사를 하다보면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지는 거 아닌가요?
몇 년 전 화성연쇄사건의 진범이 옛날에 자신이 한 짓을 토로하면서 억울하게 수감되어 있던 피해자가 몇 십년 만에 풀려나는 희대의 가슴 아픈 사건이 있었지요. 그는 왜 진범이 아니었는데도 죄를 뒤집어 쓰고 복역을 했던걸까요?
누가 뒤집어 씌운걸까요?
가부라기 게이치의 변호사는 죄를 인정해서 감형을 꾀하자는 제안을 하고, 여론은 미친듯이 뜨겁기만 합니다. 보호시설에서 생활을 하고 있던 그는 아무도 편이 되어주지 않았어요. 유일한 목격자인 할머니마저 경찰의 등쌀에 밀려 그를 진범으로 지목하게 됐고요.
그가 탈옥을 하고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고 했잖습니까? 그 중엔 개호사도 있었는데요. 개호시설에서 일을 하게 돼요. 그 시설에는... 이오 요시코가 있었습니다. 할머니요. 유일한 목격자. 가부라기 게이치가 일부러 노리고 들어간거죠.
왜? 복수 하려고?
아뇨. 제발 기억을 떠올려달라고, 매일밤 그녀의 손을 붙들고 간청과 더불어 도움을 주려는 노력을 합니다. 물론 자신의 정체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가면 뒤에 철저히 가린채로요. 그녀는 그 당시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너무 괴롭다며 그의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는 마지막 화자, (에피소드마다 화자가 달라집니다.) 마이라는 여자의 입을 통해 전해져요. 그녀는 그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그가 탈옥수와 비슷한 점이 너무 많다는 걸 눈치 채곤 관리자에게 이야기 한 후 경찰이 오게 만들죠. 가부라기 게이치는 패닉상태가 되어 마이를 인질로 잡고 자기 이야기를 좀 들어달라고 절규에 가까운 부탁을 합니다.
슬프게도 그는... 그 자리에서 죽어요. 경찰이 쏜 총에 맞아서요.
이 책의 리뷰를 보면 대다수가 '마음이 아프다' 라고 말씀들을 하세요. 저 또한 그랬습니다. 비단 소설일 뿐이지만, 몇 년 전에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일로 억울한 옥중생활을 하신 분의 이야기가 전파를 탔었잖아요. 그 분이 생각나 마음이 아프더군요.
언젠가 한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이춘재의 죄를 뒤집어쓰고 복역을 한 피해자가 그 당시를 떠올리면 어떻냐는 질문에 구토를 하러 갔다고요. 몇 십 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그 때를 떠올리기만 하는 것으로도 신체적으로 강한 거부 반응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그 당시에, 피해자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는 소설 속에서도 나오지 않습니다.
무고죄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인간의 인권을 법이라는 잣대로 마음대로 조이고 끊는 제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어요. 무거운 주제이므로 일단은 각성하는 상태에서 마무리를 지었지만요. 이 책, '정체'를 통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데 의의를 둡니다.
책이 상당히 두껍습니다. 하지만 흡인력 있는 저자의 글재주로 책장은 휘리릭 넘어가요. (가끔 번역에 오탈이 발견되어 멈칫하는 순간이 여러 번 있긴 했었습니다만) 저는 무고죄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분께 이 책을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재미로 읽기를 원하시는 분께는 '고구마 결말'이니 마음의 각오 단단히 하시라는 말씀 드리고 싶고요.
이 작가는 이 책으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인사를 건넸다고 합니다. 나중에 서점에서 그의 이름을 보았을 때, 외면하고 싶지는 않은 첫 만남이었어요. 여러분은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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