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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우스
《최진영 - 구의증명》 누가 구와 담이를 미치게 만든거야 본문
최진영 작가님의 그 유명한 구의증명을 읽어보았습니다! 책을 덮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쉽지만 '기대하면 실망한다' 였지만... 작품이 별로였단 얘긴 아니고요. 제가 기대를 너무 많이 한 것 같아요.
이 책은 카니발리즘을 소재로 하고 있어요. 그런데 거기다가 작가님이 워낙에 또 묘사를 잘 하시는 분이라 마음이 여린 분들은 맘 단단히 잡숫고 읽으셔야 할 것 같더라고요.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가장 밝은 컬러가 회색? 대체로 다 어둡고, 더없이 까말 수 없는 부분도 많았었네요. 저는 한 번도 분홍색, 노란색을 느껴본 적이 없어요. 내용 자체가 그러한데 문체 또한 밝아 보이려 애쓰는 느낌이 없는지라 독자는 구와 담의 안타깝고 처절한 감정을 고스란히 전해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들입니다. 구는 남자고, 담이는 여자예요. 이 둘은 아주 어릴 적부터 함께 지냈어요. 불우한 가정환경이라는 공통분모가 그들을 더 끈끈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줄거리를 이야기 해볼게요.
줄거리
구의 부모님은 아이를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이었어요. 빚만 잔뜩 남기고 뿔뿔이 흩어진 책임감 없는 사람들이었죠. 담이의 부모님은 돌아가셨고요. 후에 곁에 있던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시게 되자 담이의 곁에는 승려로 출가했던 이모가 돌아와 곁을 지켜줍니다.
담이와 구는 함께 있을 때도, 함께 있지 않을 때도 늘 함께였어요. 서로가 보이지 않아도 서로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죠. 그들은 다른 연인들처럼 재미있는 곳을 놀러가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남들 다 하는 추억을 쌓지는 못 해도 언제나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었어요.
구는 도망간 부모 때문에 억지로 빚을 떠안게 되어 열일곱 살 때부터 일을 시작합니다. 온갖 일을 해요. 그러던 어느 날, 공장에서 한 직원의 아이인 노마를 알게 되는데요. 구와 담이, 노마는 순수한 우정을 나누어요. 자전거를 알려주고, 붕어빵을 나눠 먹죠. 하지만 운명은 정해져 있는걸까요. 누가 미리 써 놓은 대본처럼 노마는 한 순간에 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왜 그 날, 그 시간에, 노마가 사고를 당할 수 밖에 없었는지 구와 담이는 이해할 수가 없어서 큰 혼란에 빠져요.
노마의 일을 계기로 둘은 서로를 조금 멀리하게 됩니다. 그러다 구는 제 집이 있는 한 누나를 알게 되고 연애 비슷한 것을 하기도 하고요. 그 사실을 알게 된 담이는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그가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기다립니다.
그 사이에 담이의 이모가 죽어요. 하지만 곁에 구는 없었죠. 군대에 있었어요, 그 곳에서 담이를 열렬히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들은 각기 다른 공간에서 다른 모양의 슬픔을 느끼며 서로를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형이랑 누나는 사귀는 거 맞지? 노마가 물었다. 구와 나는 애매하게 웃었다. 우리는 사귄다는 단어를 채우고도 그 단어가 보이지 않을 만큼 넘쳐흐르는 관계였다.
후에 이 사실을 알게 된 구는 담에게 달려갑니다. 담은 예상했다는 듯, 올 줄 알았다는 듯, 마치 어제도 만난 사이인 양 구를 받아줘요. 그리고 말하죠. "같이 살래?"
하지만 세상은 그들에게 평화로운 시간을 허락해 주지 않습니다. 특히 빚쟁이들이요. 새 보금자리를 구할 때마다 그들은 그들을 찾아와 괴롭혔어요. 빚은 갚아도 갚아도 줄지 않고, 빚을 갚는 게 아니라 이자만 갚는 느낌이었죠. 그렇게 매일 도망만 치던 두 사람에게 마침내 '여기가 좋겠다' 싶은 곳에서, '이제 겨우 행복을 느껴볼 수 있겠구나' 싶었던 찰나에 그들은 그를 찾아와 기어이 죽여버리고 맙니다.
그렇게 죽은 구를 담은 먹어요. 말 그대로 진짜 먹어요. 시간을 두고 천천히 먹는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는 끝이 나요.
이 책은 호불호가 매우 강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평이 좋아서 놀랐어요. 인생 책으로 꼽는 분들이 상당히 많더라고요? 아래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제 생각입니다.
느낀점
구와 담이가 애틋하다 못해 가슴 절절한 사이였단 것은 알겠어요.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까지 깊은 사이가 되었는지에 대한 장면이 많지는 않아서, 그들의 말로만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밖에 없어서 아쉬웠어요. 이게 작가님의 한계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은 매 장면이 머릿 속에서 영화처럼 자연스럽게 재생 되어 풍성하게 즐길 수 있었거든요.) 제가 의도한 바를 잘 알아차리지 못한 걸 수도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체가 매력적이에요. 깔끔을 넘어 아예 짧은 문장 자체도 많고요. 일부러 이렇게 쓰신 것 같은데, 어떤 분위기를 내고자 함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여기서도 저는 제 한계를 느꼈습니다. 나중에 다시 읽을 땐 부디 작가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재... 책 소개를 먼저 읽고 이 책을 읽었었는데요. 소개를 읽자마자 거부감이 사실 있었어요. 지금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이해가 갑니다.
그들은 이 세상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인간은 다른 인간을 해치고, 작살내고, 죽이기까지 하잖아요. 이런 일이 매일 일어나죠. 그런 게 진정한 인간이라면 그들은 인간으로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구는 살아있을 때도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그런 구의 존재를 증명할 사람이 담이 빼곤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으니 (그나마 그와 관계가 있는 빚쟁이들은 그의 존재를 부정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었고) 담이는 구를 먹음으로 그가 영영 여기 있음을 증명 하고자 했던 거예요. 그리고 이 세상의 나쁜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살기를 소망했죠.
이런식으로 살다 간 구가 안쓰러워서, 받아들일 수 없어서, 이해할 수 없어서 제 안에 밀어 넣었던 겁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는 늘 함께 있는 거지, 믿으면서 말이예요.
몸은 고되고 앞날은 곤죽 같아도, 마음 한구석에 영영 변질되지 않을 따뜻한 밥 한 덩이를 품은 느낌이었다.
어떻게 생각 하시나요? 사실 징그러워요. 사람이 사람을... 말도 안 됩니다. 하지만 이 책에 윤리라는 잣대를 갖다대는 건 반칙인 것 같네요. 그 정도의 마음도 있음을 이해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들을 무겁게 짓눌렀던 빚 권하는 사회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누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어른들의 책임을 왜 아이들이 져야 하는지, 지금 이 시간에도 구와 담이가 느꼈던 그 때 그 마음을 그대로 느끼고 있는 어린 아이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생각할 여지를 많이 주는 책이기 때문에 여운이 길었어요. 왜 인기가 많은지 알겠네요. 개인적으로 저는 담이의 행위보다 구의 생애에 더 초점을 맞추고 보았는데 다른 분께도 그렇게 해보시라고 권하고 싶어요. 안그래도 먹는 행위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해도 자극적인 내용이라 자꾸만 머릿속에 떠오르니까요. 구를 의식해서 지켜봐 주세요.
작가님의 책을 계속 읽어볼 겁니다. 사회를 바라보는 따뜻하면서도 냉철한 시선이 글에 너무 잘 묻어나 있어서 매번 몰입감 쩌는 다큐멘터리 한 편씩 보는 기분이예요. 묘사를 잘 하셔서 이야기에 푹 빠져드는 황홀한 기분은 덤인 듯 하고요. 이런 작가의 책은 널리 알려져서 많이 읽혀지고 그리하여 더 많은 책을 쓸 수 있게 해드려야 한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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