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로 큰 사랑을 받아 우리나라에서도 영화화 된 <안녕, 헤이즐>은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너무나 유명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영화의 리뷰를 보니, '한동안 여운이 남는 멋진 영화', '따뜻한 듯 아픈 영화', '삶에 대한 생각과 태도가 달라지게 하는 영화' 등의 극찬이 주를 이루었는데 책을 보며 내가 느낀 작가의 이야기 방식이 그의 작품을 접하는 모두에게 비슷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리라고 생각한다.

'이름을 말해줘'에서 그는 같은 이름의 여자만 19명을 사귀는 신동을 통해 사춘기 소년소녀의 풋내기 사랑과 어설픈 실수, 찬란하고 아름다운 청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어렸을 때부터 신동소리를 듣고 자란 19살의 콜린은 사랑을 '수학적 그래프 공식'으로 만들어 19명의 캐서린에게 차인 이유를 알게 되길 원했는데 그와 더불어, 공식을 만듦으로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고 싶다'는 명백한 사실을 콜린 스스로 실토했던 부분이 현실적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콜린이 무려 19번이나 같은 이름의 다른 사람에게 차이는 기분을 나는 잘 모르지만, 친한 친구와 자동차 여행을 한다고 긴 시간 집을 떠나있는건 당연해 보인다. (그것은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제대로 된 형태로 만져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다.) 물론 19살의 콜린이 한층 성숙되기 위해 하산과 여행을 떠난 건 아니었겠지만 여행을 통해 우연히 만나게 된 여러 사람들로 인해 콜린은 많은 것을 배웠다.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유레카!"라고 외치는 콜린에게 하산은 이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고개를 내젓는다. 사랑은 공식화 될 수 없다는 걸 설득하지 않는 일도 친구 입장에선 쉬운게 아니었을텐데 콜린은 친구도 참 잘둔 것 같다.

어느 날 콜린은, 솔직하고 순수한 소녀 린지에 끌려 양아치 '또다콜(또 다른 이름의 콜린)'을 물리치고, 캐서린이 아닌 여자와 컴컴한 동굴에서 단 둘이 뽀뽀를 하기에까지 이른다. 콜린이 이제까지 19명의 캐서린을 만나왔던 건, 그저 우연이었다고 콜린은 이야기 하지만 필연으로 만들어낸 인위적인 과거 반복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생각해보면, 지나왔던 캐서린들을 학문처럼 공부했던 것이 어쩌면 19번이나 차일 수 있었던 이유가 될 수도 있지 않나.

난생 처음 캐서린이 아닌 여자와 뽀뽀한 순간, 콜린은 비로소 미래를 바라볼 수 있었다.

콜린이 우연한 여행을 계기로 강박에서 벗어나 홀가분한 마음으로 건샷(머물렀던 장소)을 떠나는 장면이 아직도 눈 앞에 아른거린다. 하산과 자동차 여행을 하러 처음 건샷에 왔을 때 얼굴에 가득했던 근심은 어딘가로 묻혀버리고,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와 설렘의 아우라가 온 몸 곳곳에서 피어났다. 사랑은 손가락이 아닌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는 당연한 말이 새삼 교훈처럼 느껴진다.

더불어 등장인물들이 미성년자여서 더없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장면들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다.

19살의 콜린, 하산, 린지, '또다콜'은 이제 겨우 첫 발을 떼었기에 나로서는 그저 부러워서 심장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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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중견 작가 요시다 슈이치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 등에 의해 발전한 일본 '팝 문학'의 정점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작품으로는 '파크 라이프'와 '퍼레이드'등이 있는데 작품들이 차례대로 일본 순수문학을 대표하는 아쿠타가와상과, 대중문학을 대표하는 야마모토 슈고로 상을 수상하면서 대중성과 작품성을 두루 갖춘 작가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사랑에 난폭'을 읽고 간결하면서도 흡입력 있는 문체가 맘에 들어 나는 다음번에도 책을 들테지만, 그 땐 작가의 입장에서 본 솔직한 남자의 심리를 엿보고 싶다.
책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모모코와 내연녀가 번갈아가며 자신의 일기를 공개해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는 건, 남성 작가임에도 대단히 날카로운 시선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대도 욕심이 나는 이유는 순수한 독자 입장에서 사고 원인 제공자 남편 마모루의 우유부단하고 쉽게 정의내릴 수 없는 심리가 너무도 궁금하기 때문이다.
자기 아들 감싸기에 급급한 철없는 시어머니 데루코의 아들이기에 얼렁뚱땅 이해가 되는 식으로 넘어갔지만, 그 나름대로의 복잡한 심경을 어디 한 번 구경이나 해봅시다 싶기도 하고 궁금하다.

대충 느낌이 왔겠지만 이건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를 제목으로 써도 손색이 없는 불륜 막장 스토리를 다룬 소설이다.

 

결혼 8년차 주부 모모코는 자신에게 늘 냉담하기만 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살뜰히 남편을 내조하는 전통적인 현대 여성이다. 자신의 특기를 살려 문화센터에서 수제 비누 만들기 강좌를 하고, 오는 길에 찬거리를 사서 시어머니와 남편의 식사를 책임지는 평범한 주부에게 불륜은 그야말로 느닷없는 우박처럼 떨어졌는데, 너무도 평온하였기에, 행복을 깨고 싶지 않았기에 모모코는 당장 눈 앞에 닥친 현실을 부정하기 급급했고 그러는 사이 어느새 그녀는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무서운 여자'가 되어있었다. 남편의 불륜 사실과 동시에 내연녀의 임신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땐 과연 내가 어떻게 대처하는게 옳은 것일까. 만약 내게 그런 불똥이 튄다면…
확실한 건, 나는 모모코와 정반대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내연녀의 존재 자체와 임신 여부는 나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내가 해결할 첫번째 미션은, 마치 혼령처럼 내곁에 떠도는 남편과의 관계를 차근차근 되짚어 나가는 일일 것이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참을 수 없는 관계가 되버린다면 그 무엇이 이유가 되었건 같이 살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편을 사랑하지도, 그렇다고 못마땅해하지도, 시어머니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지도, 그렇다고 모진 구박을 받지도 않았던 모모코에게 결혼생활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친한 옛 직장 동료에게 다시 한 번 회사에 일자리를 알아봐달라고 부탁했지만 회사 여직원들의 험담을 통해 알게 된 직장 동료의 본심을 듣고 낙담해있던 찰나, 자신이 예전에 다녔던 회사보다 낮은 회사에 입사 지원서를 넣어도 기다렸다는 듯 떨어지고야 마는 자신의 무능함에 대한 두려움? 다시 시작하기에 늦은 것 같은 마흔이라는 나이와 결혼과 이혼의 꼬리표? 마흔이라면 나보다 족히 열 살은 더 많은 여자에게 주제 넘게 이 말을 남기고 싶다.
남편과 시어머니마저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누군가를 짓밟고 앞다퉈 달려나가는 시점에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지 않는건 스스로에게 내리는 형벌과 같다고.
다다미를 들고 흙을 파내 그 안에 들어가 남편과 시어머니의 대화를 들은 것과, 예전에 집에 함께 살았던 시아버지의 어머니, 사람들 말로는 '첩'의 억울함이 폭발한 '방화 사건'에 마음이 움직여 본인도 남의 집 화분에 불을 지르고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으면 그걸로 충분히 됐다고 생각한다.

남편과 내연녀의 죄책감은 몽글몽글 살아있게 냅두고, 모모코는 신선한 새 책의 더 튼튼한 첫 장을 찬란하게 시작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잘 사는것이 최고의 복수라는 말을 피부로 절절히 느끼는 날이 올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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