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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서] 이연진 - 내향육아 리뷰, 내향적이면서 동시에 적극적인 부모를 위한 책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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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서] 이연진 - 내향육아 리뷰, 내향적이면서 동시에 적극적인 부모를 위한 책

유하우스 2022. 8. 3. 01:15


저는 내향적입니다. 그래서 매우 공감하며 읽었어요. 내향적인 사람들은 에너지를 어디에서 얻을까요? 외부자극, 친구와의 만남, 수다? 아뇨, 오롯이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얻어요. 그 누구에게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서 에너지를 얻습니다. 그래서 내향적인 사람들은 혼자 있을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하지만 육아를 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은 극히 드물어지죠. 정신적으로 에너지를 많이 쓰는데, 혼자 재충전할 시간을 갖지 못해 매우 스트레스를 받아합니다.

만일 제가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제 성격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고 살아갔을거예요. 아이는 제가 꽁꽁 감춰둔, 십년 이십년 전의 제 모습을 자꾸만 들춰내 극복하라고 등을 떠미는데요.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키운다! 는 말을 뼛속 깊이 실감하는 요즘이에요.

 

많은 내향인이 그렇게 옷깃을 여미지 않던가. 내게 잘 맞는 사람이란 걸 깨닫는 어떤 계기가 없으면 섣불리 다가가지 않는다. 만인의 연인이 되려는 공산 없이, 딱 한 줌의 사람에게만 호기심과 애정을 쏟는다. 각자의 이유가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맞지 않는 이에게까지 에너지를 짜내고 싶지는 않아서였다. 나는 한 사람이 올 때면 그 사람의 과거와 미래, 품고 있는 모든 것이 함께 온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마치 해일처럼 느껴져 겁이 났다. 그 감정의 파동만으로도 장거리 달리기를 한 것처럼 기진맥진해져, 늘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팠다.


어쩜 이렇게도 내 맘 같을까. 공감하는 분들 많으시죠? 저도 누군가를 만날 때 그가 마치 해일처럼 느껴져 덜컥 겁이 날 때가 있어요. 사실 이게 저의 요즘 최대 난제인데요. 아이가 기관 생활을 시작하고 아이 친구 엄마들을 거의 매일 같이 만나고 있거든요. 따로 커피를 마시거나 밥을 함께 먹기도 하고... 싫지 않아요. 다행히 좋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런데 걱정이 되는 건...

나의 의지로, 그들의 의지로 선택하여 이루어진 만남이 아니기 때문에 맞춰야 한다는 거예요. 갈등이 없어야만 하는 관계. 앞으로 많은 친구 엄마들을 만날텐데, 그 때마다 이런 시간을 거쳐야 하는걸까 싶어 답답해요.

이런 제 고민을 들으면 선배맘들은 친구 엄마 신경쓰지 말라고들 하시더라고요. 나중에 돌아보면 다 부질없다고. 그 시간에 내새끼 한 번 더 신경써주는 게 옳은 거라고들. 저는 초보엄마라 어려워요. 여튼... 아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시작된 만남이긴 하지만 조심해야 하고, 경직되어 있는, 때로는 어떤 가면을 써야만 하는 지금 저는 에너지를 많이 빼앗기고 있어요. 원체 인간관계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 저와 같은 사람들이 아마 이 피로감을 공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모르는 이들과의 생활이 내향인에게 편할리 없다. 랜덤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환경도, 누군가에게 관찰되는 것도 그리 달갑지는 않다. 관계 개척과 친밀 유지에는 막대한 에너지가 드는 법이다. 조리원에서 모르는 이들에게 쓴 에너지를 막 태어난 아이에게 나눠줬으면 더 좋았을걸. 남의 시선보다 더 중요한 것을 의식했어야 했다. 나같은 누군가가 있다면 좋은 만남을 기대하되 연연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정말, 괜찮다. '엄마 친구'들은 계속 생기고, 참여할 모임 역시 계속 늘어난다.


선배맘의 '정말, 괜찮다' 라는 말이 얼마나 든든한지요? 물론 '엄마 친구'들과의 관계가 모두 불편한 것만은 아니지만요. 살다보면 친구처럼, 친언니처럼 맘 맞는 누군가를 만날지도 몰라요. 하지만 조리원 동기를 만들겠다고, 친구를 만들어주겠다고, 꼭 해야 하는 일처럼 관계를 맺으려는 시도는 확실히 피곤해요. 그래서 저도 너무 얽매이지 않으려고요. 남의 시선보다 더 중요한 걸 의식했어야 했다고 선배맘이 그러잖아요.

 

엄마가 되면 마법처럼 씩씩해질 줄 알았다. 여느 사람들처럼 마땅히 손을 내밀어도 되는 도움이라면 당당히 요청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가 되는 수고와 맞바꿨는데, 이 정도 능력쯤은 생겼겠지. 그러나 아기를 안고 돌아온 나는 여전했다. 오히려 아기가 생기니 절대 약자가 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작은 부탁 하나 하기가 전보다 훨씬 더 어렵게 느껴졌다.


저도 엄마가 되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단단해지는 건 줄 알았어요. 그런데 웬걸. 더 물러졌어요. 물론 아이에 관한 일이라면 예민함이 하늘을 찔러 없던 용기도 쥐어짜 결국은 극복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체로 평온한 날의 아기를 안은 저는 강하지 않아요. 내가 강하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노력하고자 하는 마음이 오히려 더 주눅을 들게 하는 것도 같습니다. 엄마는 강하다, 란 말의 엄마는 어떤 엄마들일까요? 아, 눈치를 채지는 못하고 있지만 저도 그런 엄마가 되어가고 있는걸까요.

 

혼자 있고 싶다고 하면 주변에선 큰일 난 것처럼 나를 밖으로 끌어내며 그게 마치 우울증의 전조인 양 경계했다. 사실은 그 반대였는데. 나는 소란하고 바빠서, 나는 답답하고 우울했다. 내 안을 깊숙이 들여다보지 못했고, 고여서 찰랑대는 감정을 비워내지 못해 괴로웠다. 아기 울음소리가 뾰족한 바늘이 되어 고인 감정을 찌르면 툭툭, 눈물이 되어 떨어졌다.


내향인들은 혼자만의 시간이 꼬옥 꼭 필요하죠. 그런데 전쟁같은 육아에서 혼자만의 시간? 아이가 눈을 감고 있을 때나 가능한 얘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시간을 포기해버리면 우리는 나중에 미칠지도 몰라요 정말. 그 시간에 에너지를 얻는데요. 어떻게든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어야 해요.

몇 달 전 제가 육아가 너무 힘들다고 블로그에 글을 올린 적이 있어요. 그것도 여러 번. 힘들 때마다 참고 참다가 못 참겠어서 올린거예요.

이제야 돌아볼 수 있게 되었네요. 내 육아가 유달리 힘든 이유. 같은 시간 육아를 해도 남편은 쌩쌩하고 별 일 없어 보이는데 나만 이렇게 괴로운 이유.

저는 제 감정을 제 스스로 추스르고 저와 단둘이 조용히 대화 나눌 시간이 필요해요. 그 시간이 없으면 저도 없어요. 빈 껍데기나 마찬가지죠. 이미 동이난 마음 바닥에 대고 아이는 사랑을 갈구하고, 저는 재충전을 하지 못해 절규하며 괴로워했어요. 이 책을 조금 더 일찍 만났더라면... 아기 울음소리가 뾰족한 바늘이 되어 내 감정을 찔렀다는 말에 나 혼자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니라는 안도, 나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라는 위안을 받았었을건데 참 아쉬워요.

지금도 저는 제 감정을 혼자 추스를 시간이 부족하면 힘들어요. 그런데 한편으론 다행이에요. 이젠 내가 왜 힘든지 그 이유를 알게 되어서요.

 

 

육아서 속 엄마들은 모두 에너지 넘치고 빠릿빠릿해 보였다. 그네들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소문난 육아계 인플루언서들 역시 대개 활동가 타입이라는 것을. 그제야 생각이 났다. 모든 아이가 다르듯 모든 엄마도 다르구나. 모두가 타고난 영역과 살아온 세월, 체력과 환경 등이 다르니 당연한 일이다. 아이의 다름은 인정받지만, 엄마의 다름은 쉽게 간과된다. 아이의 기질은 세심하게 분류되지만, 엄마의 기질은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는다. 어느 학자는 내향성과 외향성을 '기질의 남과 북'이라 칭했다. 이 스펙트럼의 어느 지점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성격, 선택과 행동, 삶의 양식이 완전히 달라진다. 하지만 엄마들은 줄곧 '엄마'로만 뭉뚱그려졌다.


우리는 이 사실을 간과하고, 사실 알려고 하지도 않아요. 아이들 케어하기 급급해서. 육아 인플루언서들 많이 계시는데요. 저는 보면서 따라해 볼 엄두도 안 나더라고요. 그 분들은 하루에도 글을 몇 개씩 올리며 사람들과 소통까지 하는 여유를 보이시던데... 저는 정신이며 신체적인 체력, 시간도 없을 것 같고, 볼 때마다 저와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못해요! 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은 아녜요. 저는 제가 잘하는 분야가 따로 있어요.) 괜히 어설프게 따라했다가 바짓가랑이 찢어질 것만 같아요.

책육아도요. 한때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모임을 가졌던 적이 있는데요. 제가 주도해서요.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더라고요. 매일 읽은 책을 찍고 내용을 기록하는 일이, 사람들과 피드백을 주고받는 일이, 제게 육퇴 후 편안한 힐링이 되어주지 못하고 어느덧 피로감을 얹어주기만 했어요. 지금은 그 일을 잠시 멈추고, 아이가 원할 때, 제가 원할 때, 마음이 동할 때 책을 읽어주고 있어요. 그러니까 한 권을 읽어도 진정으로 빠져서 읽어줄 수가 있게 되더군요. 나는 내 스타일이 있건만... 내가 가장 편한 것이 있건만.

물론 좋은 건, 배울만한 건 흉내를 내서라도 시도해 볼 가치가 있죠. 하지만 육아에 지장이 갈 정도로 나를 지치게 하는 일이라면 그만둬요. 그 에너지와 체력 아껴 내 새끼한테 애정표현이나 한 번 더 해줄래요.

 

문제는 그거였다. 아무것도 안 하면 불안하고, 무언가 했다 하면 자신을 밀어붙이다 나가떨어지는 악순환의 반복. 번아웃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소외감과 이질감은 또 다른 스트레스였다. 어디서든 나와 비슷한 사람은 찾기 힘들고, 주변인들은 내가 왜 힘든지 이해하지 못했다.


작가님에게 크게 공감을 느꼈던 이유가 저와 매우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데요. 작가님도 책육아를 하시는 분이세요. 그것도 조용히 열정적으로. 그러다 에너지가 소진되면 나가떨어지고, 번아웃이 오고, 스트레스를 받고... 저 정말 제 얘기 써논 줄 알았잖아요.

뒤처지고 싶지 않아 강박적으로 아기 책을 사모으고 읽어주고 기록하고. 가르치고 데려가고 경험 시켜주고. 그러다 번아웃이 와서 숨쉬는 것 빼곤 아무것도 못 하겠어서 바닥에 대자로 누워 아이에게 입으로 애걸복걸 했던 적이 있어요. 절대 그러면 안 되지만 힘들어 화를 냈던 적도 있고요.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하는 일인데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결말이라니 참 한심하죠. 사실 저는 지금도 많은 것을 내려놓진 못 하고 있어요. 주변 엄마들이 좋은 거라고 하면 기웃거리다 일단 시켜보죠. 그러다 나중에 현타가 올 가능성이 농후한데, 알면서도.

달리기에서 밀리지 않게, 뒤처지지 않게 하루도 쉬지 않고 미친듯 달리는 육아보다 내 마음, 아이 마음이 편한 정도의 적당한 육아가 최고인 듯 해요. 근데 그거 어떻게 하는거예요?

 

조금은 너그럽고 가뿐해져 볼 일이었다. 요컨대 아이가 흙을 만지면 아이 손을 잡아끌다 지치지 말고 흙냄새도 맡아보고 파헤쳐도 보게 두는 것이다. 그 후 '흙'에 관한 책을 찾아 읽어주면 하루가 알뜰했다. 거스르는 것이 없는 만큼 자연스러웠다. 아이도 즐겁고 그 김에 책도 한 권 읽힐 수 있어 내 마음도 편했다. 물렁하고 마음 약한 엄마와 단단하고 완고한 아이가 마침내 짝! 소리 나게 손뼉을 치게 된 것이다. 어쩌면 해볼 만할지도 모르겠다. 내향적인 엄마와 에너지 넘치는 아이의 합은 사실 썩 괜찮은 조합일지도 모른다. 두 뺨에 따스한 활기가 돌았다.


아이가 흙에 관심을 보이면 흙을 많이 만지는 유치원, 놀이 기관을 알아보는 나란 엄마... 정말 엄마 욕심이란 생각이 물씬 들고 부끄럽네요. 흙을 좋아하면 매일 만지면 되고, 관심이 깊어지면 그저 산이며 숲으로 놀러가면 되는 일인데, 그쵸. 욕심이 족제비라 안그래도 힘든 육아를 더 힘든 쪽으로 끌고가는 것 같아요. 반성하게 돼요. 저는 많이 내려놔야 해요.

 

아무리 바빠도 '책 읽어달라'는 부탁은 거절하지 않기로 했다. "아구, 우리 아기 책 가져왔어? 재미있겠다!" 그렇게 엉덩이 두드려주며 최대한 즐거운 태도로 읽어주었다. 설거지 하다가도, 냄비 속을 휘젓다가도 마찬가지였다. 책 읽어주기 가장 좋은 순간은 아이가 원할 때임을 알게 된 후론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랬다.


책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저는 아이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으니까 책을 많이 읽어줘요. 그런데 설거지를 할 때, 바쁠 때는 읽어달라고 해도 "잠시만 기다려줘." 라고 말할 수 밖에 없어요. 그리고 그게 당연한거라고 생각했고... 그런데 이런 분이 계시네요.

저희 아이는 요즘 책에 대한 애정이 시들한데, 다 저 때문인 것 같고 그래요. 앞으로는 적어도 아이가 가져오는 건 언제 어디서든 읽어줘야겠어요. 엄마가 설거지 하다가 책을 읽어주면 책에 대해 얼마나 좋은 기억을 갖겠어요. 엄마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책.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책. 읽다보니 재미있고 유익한 책. 의식적으로 노력해야겠어요.

 

활동적인 아이의 책육아, 중요한 건 스피드다. '보고 싶은 욕구'와 '알고 싶은 욕구'가 바로 해소될 때, 아이는 책을 가장 달게 읽는다.


아이가 책을 원할 때 바로 찾아 읽을 수 있도록 배치를 하셨다고 해요. 즐겨읽는 책은 표지가 보이도록 두고. 저희집은 슬라이딩 3단 책장인데 뒤에 있는 장은 아이가 여간해선 잘 꺼내보질 않더라고요. 한 눈에 보이는게 아니라 그런지.

그리고 거의 제가 꺼내주기 때문에 아이 눈높이에 맞는 취향 저격 맞춤 책장인 것도 아니에요. 조만간 작업에 들어가야겠다 싶네요. 저희 아이도 활발한 편이라 원할 때 빨리 손에 쥐어지지 않으면 금세 다른 것에 한눈 팔거든요. 책에 흥미를 가질 수 있을만한 환경을 적극적으로 조성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는 화난 엄마는 이해해도 무기력한 엄마는 이해하지 못한다.


이 사실을 늦게 깨달아 아이를 힘들게 했어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놀이학교에 보내게 됐고요. 지금 생각하면 30개월도 안 된 아기를 왜 일정 부분 어른 대하듯 했는가 몰라요. 하루가 다르게 크는 애가 제법 어른스러워 보였는지 저를 이해할지도 모르다는 생각이 들었던가봐요. 어리석죠?

무기력한 제 모습을 아이에게 그대로 보이고, 그것도 모자라 저를 이해해달라고 실제로 얘기까지 했던 그 때의 제가 부끄러워요. 이 한 줄을 읽고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예체능, 영어, 사교육... 아이가 자랄수록 신경 쓸 게 많아진다. 트렌드는 수시로 변한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책이었다. 둘러보면 부러울 정도로 야무지고 행동력 좋은 엄마가 많았다. 하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책을 읽어주는 엄마는 의외로 드물었다. 아이 서너살까지 열심히 읽어주던 엄마들도 다섯 살 이후로는 책에 대한 신뢰와 마음이 식는 걸 심심찮게 봤다. 오늘도 밥을 짓는 꾸준함으로 책을 펼친다. 아이에게 매끼 밥상을 차려주듯 마음의 양식인 책도 그렇게 읽어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부모의 꾸준함에 아이는 자란다.


작가님은 나들이를 가거나 기분이 좋은 날 그와 관련된 책을 읽어주어 그 기분과 책이 연결되게 하셨대요. 아이를 안고 손, 발 등을 부드럽게 만져주며 '책=좋은 기분'이 될 수 있게 도왔다고도 하셨고요. 좋았던 감정과 연결된 행동은 무의식에 좋은 것으로 새겨질 것이므로 책에 관해서는 잔소리를 하거나 부정적인 말을 일체 하지 않으셨다고 하네요. 심지어 책 정리를 시킨 적도 없다고. 읽고 난 책을 제자리에 꽂아야만 한다면, 책을 빼 드는 일이 부담으로 작용할 게 걱정이 되서 그러셨다고 합니다.

책에 대한 좋은 기억을 안겨주기 위해 어릴 적부터 책을 밟고 성을 쌓는 등 장난감처럼 활용들을 하죠. 그런데 말마따나 그걸 다섯 살 이후까지 매일 해줄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에요. 저도 한 때는 화르륵 불타올랐다가 요즘은 잠잠한데 타오르지 않아도 좋으니까, 꾸준히 읽어나줬으면 좋겠네요.

 

드라이버를 들고 다니던 시절에는 이것저것 분해하는 탓에 세간살이가 남아나질 않았다. 아이는 금속의 경도를 확인해봐야 한다며 냉장고 표면을 긁었고, 라디오 안테나를 뽑았다. 스탠드는 몇 번이나 다시 샀는지 헤아릴 수도 없다. 장난감, 시계, 볼펜 등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 인내심이 동나기 전에 아이를 자유롭게 두고 잔소리를 줄일 수 있도록 환경을 바꿔야 했다. 살림살이가 망가질 때마다 아이를 탓하기보다 비싼 소품을 줄였고, 전기제품을 분해하는 것이 위험하다며 말리는 대신 코드를 뽑고 깨끗하게 닦아 안전하게 갖고 놀도록 내주었다. 공구 역시 아이 손에 맞는 작은 공구로 대체해주었다. 아이의 세계를 다정하게 바라보고 진지하게 탐험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는.


작가님의 아들 윤하군은 과학 영재로 SBS '영재발굴단' 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온 적이 있어요. 별다른 사교육을 받지도 않았는데 전문가들이 놀랄 정도의 과학 지식을 뽐낸 바 있죠. 그 비결은 저는 어머니의 교육 방식에 있다고 생각해요.

길에서 선풍기를 보고 집에 가져오고 싶으면 가져오게 했대요. 냉장고가 궁금하면 원리부터 역사까지 차근차근 설명해줬고요. 물놀이는 2년 가까이 했다는데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으셨대요. 나중이 되어 그 때를 돌아보며, 아마 그 때 과학을 많이 깨우쳤을거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나요.

위의 하이라이트 글과 더불어 윤하 어머님, 이 책의 작가님이 어떤 스타일인지 아시겠죠. 아이가 하고싶어 하는 일이라면 내 판단을 내세우지 않고 조용히 주변의 위험물만 치워 자유로운 환경을 만들어주는. 아, 나도 이런 엄마 되고싶다!

 

아이와 요리책을 펼치고 재료의 양과 액체의 들이를 재어보며 질문했다. "이 계량컵은 250ml까지 밖에 안 나와 있네. 700ml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스포이드로 숟가락에 물을 한 방울씩 떨어뜨려봐. 그리고 숟가락이 몇 ml인지 엄마한테 말해줘.", "이번에는 그 숟가락으로 물을 몇 번 떠야 한 컵을 다 채울 수 있는지 재어보자." 이런 질문을 하며 채소를 다듬고 밥을 안쳤다. 집 안 물건 중 누가 가져온 물건이 더 무거운지 따져보는 '무게 재기 시합'도 재미있었다. 이때 나는 크기만 컸지 속이 텅 빈 상자나 풍선을 가져갔다. 그리곤 "하하하! 내 물건이 더 크니 당연히 더 무겁겠지" 악당처럼 웃으며 저울에 올린다. 그러나 아이가 가져온 작은 쇠구슬이 더 무겁다. 이 시합을 통해 아이는 저울 읽는 법은 물론 무게를 결정짓는 건 크기(부피)가 아닌 밀도와 질량임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작가님은 밥도 하고 반찬도 만들어야 하는 주방에서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셨대요. 엄마가 밥할 때 아이는 온갖 재료들을 사부작 댔겠죠. 채소를 다듬거나 칼질, 밥 안치기 등을 가르쳐주어 지금은 아이가 해주는 밥을 드시고 계시다고 합니다.

주방에선 여러가지 실험을 할 수가 있어요. 일상 생활, 일상 소품으로 엄마와 재미있게 여러 실험을 하면 아이가 과학을 얼마나 친근하게 느낄까요.

 

울고 싶은 순간도 영화 보듯 제삼자의 눈으로 관찰하다 보면 어느새 지나간다.


힘들 때 한 발짝 떨어져 미래의 제가 됐다고 생각하고 현재의 저를 보는거예요. '힘들지? 다 지나가. 다만 후회할 짓은 하지마.' 텔레파시를 막 쏘면서요.

 

우리는 서로를 정보 ATM이나 경쟁 상대 취급하지 않는다. 주파수가 맞는 사람들이기에 자주 보지 않아도 든든하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 듣지 않아도 느낀다. 소란하지 않을 때, 예컨대 함께 미술관 관람을 하거나 익숙한 골목길을 거닐 때 넘치도록 즐겁다. 육아가 유난히 버겁고 일상이 쳐진다면, 이 친구들을 만나야 할 때다. 잠깐을 만나도 아랫목에서 푹 쉬었다 온 듯 몸과 마음이 데워지는 다정한 사람들.


이제 거의 이야기가 끝나가요. '엄마 친구'들에 관한 얘기에요. 이런 사람들도 있네요. 저도 이런 '엄마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상념에 빠져들면 아이가 저를 현실로 소환합니다. 엄마 오늘을 살아요. 하루하루 자라나는 나를 보세요. 오늘은 오늘뿐이에요.


아이와 함께 있을 때 자꾸만 딴 생각에 빠지는 제게 하는 말 같았어요.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느라 눈 앞의 소중한 사람, 아이에게 소홀해지는 날이 더러 있어요. 다시금 다짐하게 됩니다. 제가 아이에게 둘도 없는 친구로 환영받는 날이 앞으로 얼마나 되겠어요. 갈수록 제 인생에 집중할텐데.

아이가 넘치도록 사랑해줄 때 마음껏 누리고, 저도 흘러넘치게 사랑해줘야겠단 생각이 들어요.

 




내향적이라고 했지만 상당히 적극적인 작가님이셨죠? 에너지를 안에서 얻을 뿐, 엄마들은 누구나 다 아기에게 가장 좋은 걸 주고 싶어 합니다. 비슷한 성향의 분들이 읽으면 좋을 책 같아요.

그 잔잔하고 개구쟁이 같은 에너지를 육아의 어디에,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친절하게 가르쳐주니까 '이 육아서는 나를 어떻게 혼낼까?' 겁먹지 말고 보세요. 책 전체가 폭신한 빈백 같은 느낌이거든요, 정말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예비 부모들에게도 추천합니다. 과거의 제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었어서 그래요. 그럼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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