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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서] 박혜란 - 아이 친구 엄마라는 험난한 세계 리뷰

유하우스 2022. 8. 31. 22:52


이 책은 현재 마흔 중반의 '아줌마(작가가 본인을 이르는 말)' 가 쓴 책입니다. 본인의 경험담과 생각을 진솔하게 들려주는데 술술 읽혀요. 읽으면서 든 생각인데, 작가님은 잘난 체를 하지 않는 분 같아요. 겸손이 몸에 밴 느낌이랄까. 그리고 사람을 무척 좋아하세요. 엄마들에게 몇 번 데이고 난 후부터는 조심을 하시는 듯 했지만요.

블로그나 유튜브에서 많은 선배맘들에게 육아 정보를 공유 받곤 합니다. 그런데 사람에 관한, 아줌마들의 기싸움에 관한 허심탄회한 이야기는 처음이라 신선했어요. '아이 엄마 친구' 관계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회의감이 들기 시작하는 분, 미리 마음을 단단히 잡숫고 싶으신 분. 이 책에 주목해주세요.

 

 


 

 

놀이터에서 모여있는 엄마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피곤할 것 같기도 하고, 끼고 싶기도, 끼고 싶지 않기도 해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놀이터나 아파트 광장 등에서 채아 엄마를 포함한 5명의 엄마들은 아이들을 함께 놀게 하곤 했다. 그렇게 단순히 5명이 모여있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그녀들은 매우 파워풀하게 보였다. 멀리서 봐도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어벤져스 캐릭터들처럼 그녀들은 특정 공간을 다수라는 뭉쳐진 힘으로 전세내어 지배하고 있었다. 그 기운에 눌려서일까, 나는 그녀들 근처에 접근할 수 없었다. 채아 엄마와 나 이렇게 단둘이 맞닥뜨린 상황이라면 나도 '거, 좀 해 볼 만 하겠는데' 싶었을지 모르겠으나, 그녀는 항상 다른 엄마들과 함께 있었고 나는 거의 혼자였다. 나는 나의 아이가 그녀의 아이와 놀다가 어떤 문제라도 생기면 무조건 내 아이의 잘못이 될 것만 같은 불안함을 느꼈다. 뒤돌아서면 그룹의 엄마들이 내 아이를 언짢게 여기거나, 내가 어떤 대처를 했다 하더라도 아이 엄마인 나를 오목조목 뜯어보게 될 상황이 그려지곤 했다. 그래서 웬만하면 그녀들의 아이들이 노는 곳을 피해 다른 장소에서 나의 아이를 놀게 했다.


잘만 지내면 참 좋을텐데 이 또한 관계라 균열이 일어날 때가 물론 있습니다. 위 글은 얼마나 껄쩍지근한 상황인지요. 나는 혼자, 저 쪽은 다수에요. 나는 조용하고, 저 쪽은 시끌벅적하죠. 게다가 우리는 한 때 알았던, 친했던 사이에요. 모두 알다시피 육아라는 게 상당한 에너지가 들어가는 일인데 이런 기싸움에 소중한 나의 힘을 써야 한다는 게... 보기만 해도 지치더라고요.

다른 엄마들은 어떤가요? 반대편에 있는, 채아 엄마의 줄에 서기로 마음 먹은 한 때 친했던 엄마들이요. 그냥 그거 아닐까요? 이게 맞든 틀리든 관계에서 튀고 싶지 않은 마음. 그러니까 한 마디로 용기가 없는거죠. 채아 엄마가 버럭! 하고 소리를 질렀던 그 날, 자신이 데려온 엄마와 채아 엄마가 서로 사이가 안 좋은지 저자는 몰랐어요. 그리고 기분이 나빴다고 해도 이렇게 편을 나눌 정도의 대단히 유치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차라리 잘 된 것 같아요. 그런 모임에는 나가지 않는 게 길게 봤을 때 더 좋죠. 개개인의 성품이 실은 어떤지엔 관계없이, 다수가 되었을 때 풍기는 그 냄새가 너무 별로잖아요?

 


 

신자유주의식 만남의 유연함인지 아니면 서로가 서로에게 온전히 진심이 아니어서 그런 것인지 이런저런 복잡다단한 이유들이 있겠지만 사실 다들 조금씩은 외롭고 어설프고 유치하기도 하다는 것, 그리고 매우 실리에 빠르다는 것(꼭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감정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정도는 나도 조금은 감을 잡은 것 같다.


저희 엄마가 그러셨어요. "너도 애 학교 들어가면 명품백 들고 다녀." 그래서 왜요? 하고 여쭤보니 아줌마들 알게 모르게 그런 거 다 보고 판단한다 하더라고요. '그건 그냥 엄마가 이상한 사람들을 만난 거 아닐까?' 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러진 못 했네요.

그런 말도 있어요. 명품백이고 뭐고 상관 없이 애가 공부 잘하면 비닐봉지를 들고 다녀도 엄마들이 친한 척 하면서 줄을 선다고.

아이에게 고급 교육 정보를 주고싶고, 내 아이가 흙수저보단 금수저와 친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이해해요. 하지만 인터넷에 검색하면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 세상인데... 학원에 전화 한 번 해서 물어보면 될 일인데. 아이 친구는 아이가 스스로 만드는 거고요.

엄마들끼리 자연스럽게 친해져 마음을 나누는 건 좋은 일이지만, 목적을 가지고, 내 이익을 위해 상대를 정보 ATM기 취급하는 관계는 옳지 못한 것 같아요. 옳지 못한 걸 떠나 자기 자신이 힘들잖아요.

제가 초보엄마라 생각이 짧은 걸까요? 언젠가는 저도 그 사람의 배경, 아이들의 성적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날이 올까요? 누구든 내 앞의 가장 좋은 선택지를 고르게 마련인데 제 앞에 그런 선택지 밖에 보이지 않는 날이 올까요?

 


 

나는 태우 엄마의 인맥이 부러우면서 동시에 두려웠다. 태우 엄마의 지인들은 그녀가 말하는대로 나라는 사람을 파악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주 태우 엄마 앞에서 '착해졌다'. 태우 엄마와 있으면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스스로 검열하며 나의 어설픈 말 한 마디가 우리 관계에 해가 되지는 않을까 늘 조심했다. 우리가 만나는 날, 시간, 대화 주제, 식사 메뉴 등 거의 모든 주도권을 그녀가 쥐고 있었다. 어느 날부턴가 나는 태우 엄마와 함께 있으면 상무님을 모시고 하는 회식 자리처럼 그 자리가 불편하기만 했다. 어떤 반박도 하지 못한 채 태우 엄마의 말을 듣는 역할만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 자신이 점점 더 바보가 되어가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나는 태우 엄마와의 관계마저 나빠진다면 다시 외톨이가 될 것 같아서, 스스로 눈 가리고 아웅 하며 그녀의 진짜 모습을 보지 않으려 한 것인지도 모른다. 무엇이 되었든, 그녀는 '난 다 좋아', '난 괜찮아', '아무거나 상관없어' 를 연발하는 나의 수용적인 태도에 분명 용기를 얻었으리라.


저는 위 글을 읽으며 엉뚱하게도 아이의 기관 담임 선생님과 제 사이가 머릿속에 떠올랐어요. 평판이 두려워서는 아니고, 내 말과 행동으로 인해 아이에게 영향이 갈까 걱정하는 제 모습이 아른거려서요. 아직 말도 완벽하게 하지 못 하는 내 아이와 낯선 어른, 엄마인 저는 조심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도 종종 '착해져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선생님을 포함하여 누구든 선을 넘으면 경고를 주고, 그래도 변함이 없다면 확실하게 대처합니다. 작가님의 마지막 문단 다시 보아주세요. 내 수용적인 태도에 상대는 용기를 얻거든요. 사람은 본능적으로 그래요.

그리고 비단 내 자신이 호구되지 않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요. 아이들은 말보다 분위기에 더 영향을 받는다는데 힘들어하는 엄마를 아이가 과연 모를까요?

 


 

그럼에도 김지영은 병이 났다. 영화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김지영이 아픈 이유는 고달픈 육아 때문이 아니다. 이기적인 남편 때문도 아니다. 시월드에 시달려서도 아니고, 친정 엄마가 딸을 원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눈 뜨자마자 아이가, 남편이, 시댁이, 친정이 나를 괴롭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모든 것이 한데 섞여서 결혼과 출산 이후 김지영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어 버렸다. 지영은 거기서 길을 잃었다.


저는 딸 가진 엄마라 벌써부터 걱정 돼요. 임신부터 출산, 육아까지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잖아요. 입덧부터 튼살까지, 출산은 말할 것도 없고, 육아는 보통 힘든가요 뭐. 눈 앞의 아이는 너무 예쁘지만 그 길을 언젠가 내 딸이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져요. 임신과 출산은 어쩔 수 없어도, 육아는 지금 세대의 우리들보다 훨씬 더 수월하게, 편하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으면 해요. '육아는 엄마가, 일은 아빠가' 의 공식이 아니라 '육아는 부모가, 일도 부모가' 로 제대로 바로잡히는 날이 오기를.

너무 큰 책임감과 부담감에 사로잡혀 우울증에 걸리지 않기를! 그리고 부모노릇이 힘들다는 걸, 엄살이 아니라는 걸 이 사회가 알아주기를 바라요.

 


 

누군가에게 '일'이란 나의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한 사람을 그 사람이게 하는 마지막 도구'인 것이다. 누구에게나 내가 나임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그런 나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시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전업주부라고 해서 예외이진 않다.


아줌마들을 만났을 때, 누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다고 하면 저는 그게 그렇게 멋져보이더라고요. 육아가 힘든 걸 아니까 '그와중에 그런 일을!' 싶은거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들은 것 같아서 그 사람이 막 반짝거려 보여요.

육아가 힘들 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보세요. 노래를 한다거나 책을 읽는다거나 퍼즐을 맞춘다거나? 그렇게 서서히 내 안에 잊고 살았던 나도 채워넣자고요.






선배맘들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진진하고 유익합니다. 특히 이 책은 인간적인 매력이 글에도 묻어나 읽기도 편했어요. 상황에 대한 예시는 옆집 서준이 엄마 이야기를 담은 것 마냥 생생하고 현실적이었고요. 그래서 편하게 보실 수 있으실거예요. ^^ 이만 줄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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