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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림 - 나는 뻔뻔한 엄마가 되기로 했다 서평, 받아들이는 과정이 마음 아파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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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림 - 나는 뻔뻔한 엄마가 되기로 했다 서평, 받아들이는 과정이 마음 아파요

유하우스 2022. 9. 27. 11:02


이 책은 다른 육아서와 조금 다릅니다. 10년간의 암투병을 한 아이 엄마가 쓴 책이에요. 담백하게 하시는 말씀이 오히려 더 절절하게 다가와서 마음이 아팠는데요. 다행히 아이는 5년 내 생존률 5%라는 희박한 가능성을 뚫고 지금은 잘 살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에 오기까지, 책을 쓰기까지 가족이 겪었을 아픔과 힘듦은 저는 감히 가늠조차 하기가 어려워요.

'중추신경계 림프종' 이라는 희귀암이었어요. 명문대를 나온 엄마 밑에서 영재판정을 받은 아이가 어느 날 듣게 된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죠. 키는 어느정도 선에서 멈춰버리고, 시각장애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그로인해 겪는 사회적인 시선과 차별, 그리고 엄마의 편견... 장애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가 있었는데요.

제목은 무슨 뜻일까요? 길고 긴 투병생활을 함께 하며 엄마는 깨달아요. 내가 엄마여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하늘의 뜻이 그러하다면 받아들일 수 밖엔 없다고. 그 사실을 깨닫고 엄마는 아이와 매 순간을 생생하게 살아내려 노력해요.

우리는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며 현재를 낭비하는 엄마들을 많이 보죠. 이 엄마는 미래를 기대하기보다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아이에게 최선을 다합니다. 사람들의 시선과 말은 괘념치 않아요.

뻔뻔한 엄마? 저는 이 엄마야말로 진짜 엄마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앞세워 자기 욕망을 채우려는 게 아닌 진짜 아이가 원하는 걸 주려는 마음을 봤어요. 10년간 아이의 투병생활로 내공이 단단히 쌓인 분 같기도 했습니다.

오늘 제 리뷰는 늘 그래왔듯 책을 읽으며 하이라이트 해 두 었던 부분에 제 생각을 덧대는 형식으로 진행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걱정한 것은 '내 인생'이었다. 어떻게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생겼는지가 억울했다. 건강하고 똑똑한 아이로 길러 내고 싶은 바람은 물거품이 되었고, 내 커리어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편안하고 재미있게 키우고 있던 둘째 아이도 남의 손에 맡겨야 할 형편이 되었다. 무엇보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막막한 벼랑 끝에 서서, 앞으로 펼쳐질 상황을 견뎌 내는 일만 남았을 뿐, '선택'이란 더이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웠다.


이렇게 솔직할 수가 있나 싶어요. 안에 있는 치부를 다 꺼내 보여준 느낌. 제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솔직합니다. 아이가 암에 걸려 슬피 울던 내 모습이 실은 내 인생이 불쌍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그림이라니... 뜨끔합니다.

저도 아이가 위험한 상황에서 아이가 걱정스러운 마음 반, 내가 귀찮아질 게 뻔해 미리 제지하고 싶은 마음 반임을 고백해봐요. 심지어 아이가 아파서 응급실에 데려갔을 때 지금보다 더 불편한 내일이 오지 않도록 갖은 애를 쓰진 않았었나, 도 생각해봐요.

이런 생각을 하고 난 다음에는 가차없이 그 감정이 밀려오곤 합니다. '죄책감'. 나는 엄마도 아니다, 엄마가 이래도 되는건가? 회의감도 질 수 없다는 듯이 밀려오고요. 늘 결론은 '엄마도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겠어?'로 끝나곤 하지만, 마음이 무겁고 찜찜하지요.

이 책을 읽고 저는 비로소 조금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됐어요. 받아들이는거예요. '나는 이렇게 약한 인간이다. 다만, 나는 내 아이가 위험에 빠졌을 때 구해낼 의무가 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 라고요.

나는 아이를 통해 내가 '좋은 엄마', '훌륭한 엄마'임을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100점짜리 성적표를 받아서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이는 엄마가 하라니까, 엄마를 사랑하니까, 엄마의 사랑을 잃고 싶지 않으니까, 엄마가 하라는 대로 했다. 나는 아이의 그 지극한 사랑의 마음을 내 인생을 장식하는 장식품으로 사용했다.


내 자신이 빛나보이기 위해 아이의 인생을, 시간을, 감정을 소모시키는 일이 없어야 하는데, 아이의 순수하고 지극한 마음을 엄마라는 이름 뒤에 숨어 얼마나 이용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일이 그래요. 아이의 미래를 위한답시고 하는 일, 실은 그 안에 내 욕망이 숨어있음을 인정해야 해요. 지금, 혹은 나중에 나는 '어떤 엄마', '몇 점짜리 엄마'일까를 계산하고 나온 행동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가 없어요.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금방 합리화가 되는 점 유념할게요. 앞으론 제 이익이 아닌 아이를 위한 선택을 하도록 더 신중을 기하는 엄마가 되도록 노력할게요.

나도 모르게 아이의 숨소리를 세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면 얼른 아이의 몸에 코를 묻었다. 보들보들한 감촉, 따뜻한 온기, 쌕쌕거리는 숨소리, 엄마인 나만 알 수 있는 아이의 살냄새에 온 감각을 맡기고 있노라면 불안함에서 빠져나와 '지금 여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불안에 빠지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 지금 가진 것만으로 누릴 수 있는 충분한 자유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맛있는 밥을 먹을 자유도, 서로 눈 맞추고 웃을 자유도, 서로를 따뜻하게 안을 자유도 있다. 엄마들의 불안은 숙명이라지만, 벗어날 방법은 분명히 있다.


엄마이기 때문에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순 없어요. 내 욕망이 포함되어 있다 뿐이지 그렇다고 내가 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거든요. 인생을 먼저 살아봤기 때문에 바르고 빠른 길을 알잖아요. 그래서 저는 삶에서 놓쳐선 안 되는 것들, 놓쳐야 하는 것들을 알려주고 싶어요.

하지만... 그 생각에 너무 빠지다보면 아이의 '현재'와는 멀어지고, 어느새 '미래'만 보며 아둥바둥하는 엄마가 되어 있을지도요. 고맙게도 저자는 그 불안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해결책을 우리에게 제시해요.

아이의 온기, 숨소리, 나만 아는 살냄새. 온 감각을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아이에게 집중하라고요. 우리에겐 그럴 자유가 있다고요. 불안은 내가 만들어낸 거지만 평온함은 아이에게서 와요. 아이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어주나요?

좋은 게 좋은 게 아니라는 걸, 나쁜 건 나쁘다는 걸 그 때 분명히 말했어야 했다.


저자의 아이는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장학사가 학교에 왔을 때 반에서 쫓겨났었어요. 엄마는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됐고요. 그 상황을 만든 장본인은 전혀 미안하지 않은 얼굴로 사과를 하고 대충 무마하고 넘어가려 했다고 합니다. 엄마는 그런 상황이 처음이기도 하고, 화가 나지만 당황스럽기도 한 상태로 그녀에게 장애인들을 이해하는 시간을 보내라고 요구해요.

하지만 알았다는 대답과는 다르게 이행하지 않지요. 저자는 지금도 그 때와 비슷한 상황을 보거나 들으면 무척 화가 난다고 합니다. 저라도 그럴 것 같아요.

선배엄마가 '그 때 화냈어야 했다!'고 초보엄마들에게 예방주사를 놔주셨는데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저는 시뮬레이션을 돌려볼래요. 어색하고 어설프지만, 입 밖으로 말을 하는 연습을 해서 아이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는, 아이 눈에 멋있는 엄마가 되고싶어요. 남의 아픈 상처를 통해 교훈을 얻어 미안하네요.

만약 내가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분명하게 말할 것이다. 그리고 말하기 전에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엄마들과 연대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은 인간의 능력과 조건을 넘어서 서로가 존중하는 세상이라고, 서로의 선의를 믿는 세상이라고, 교사라는 자리에 있으려면 가장 여린 영혼에 대한 존중을 갖춰야 한다고, 그럴 수 없다면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말하고 적합성을 가릴 것이다. 내가 엄마가 된 의미가 바로 그것이니까.


같은 생각을 가진 엄마들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상심치 마세요. 내가 힘을 키우면 되니까. 다시 한 번, 이 말도 선배엄마가 초보엄마들에게 놔주는 예방주사라고 생각하자구요. 내가 더 멋지고 능력있는 엄마가 되어서, 할 말은 하는 똑부러진 엄마가 되어서, 아이가 제 힘으로는 이겨내지 못 하는 불합리한 상황을 겪을 때 위기에서 잘 빠져나올 수 있도록 우리가 힘을 보태주자구요!

나는 재빨리 내가 1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되돌아보았다. 무언가를 한 기억은 나지 않고, 무언가를 하지 않으려 애썼던 기억만 났다. '그건 잘했고 이건 잘못했어'라고 판단하지 않으려 애썼고, 정답을 주지 않으려 애썼고, 내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애썼다. 유일하게 하려고 애썼던 건 아이의 말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펜을 들고 받아 적으며 집중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이에게 휴식과 자유를 주었다니.


가족은 퇴원한 아이와 함께 지리산으로 거처를 옮겨요. 공부와 미래에 대한 압박을 내려놓고, 아이가 하고픈대로 엄마는 이제 따라만 갑니다. 유일하게 본인이 했던 일은 아이가 했던 말을 놓치지 않으려고 펜을 들고 받아 적은 것이었대요.

아직 미혼인 사람은 아이에게 휴식과 자유를 주는 일이 어려운 게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근데요, 이게 생각보다 어려워요. 엄마가 되면 있죠? 신경쓰라고 세상에서 갖가지 말을 다 쏟아내거든요. '이거 하면 아이 지능이 좋아져요', '지금 이 시기에 해야 해요', '다른 아이들은 다 하는 이거!' 귀가 쫑긋하는 수식어를 죄다 붙여가면서요.

아이에겐 최고로 좋은 것만 주고 싶은 우리 엄마들의 마음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거죠. 그런데 다른 엄마들도 다 한다니 뭔가 있을 것만 같고, 우리 아이만 안 하기엔 좀 그런 것 같아 나도 시작하게 되는... 뭐, 그런 악순환을 알면서도 시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위와 같이 아이가 하자는대로만 마냥 따라가기만 하는 삶이 말처럼 쉬운 게 결코 아니예요.

그래도 언젠가는, 단 한 달이라도요. 아이에게 진정한 휴식을 주는 날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정신 없는만큼 아이도 정신없을테니까, 신체적 정신적으로 오롯한 휴식을 선물해주고 싶어요.





여러가지 이유로 제목을 저렇게 붙였을거예요.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뻔뻔한 엄마로 보일 수도 있죠. 그러나 저는 현실을 그저 받아들인 사람에 대고 뻔뻔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네요. 아이도 그런 엄마를 예전보다 더 좋아할 것 같고요.

오랜 투병생활을 지켜보며 마음이 단단해진 엄마의 회고를 담은 책. 감히 이 안에서 무언가를 배워간다는 말을 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소중한 책이었습니다. 이미 그 시간을 지나온 엄마로서 지금 그 길을 걷고 있는 엄마들에게 건네는 육아팁도 중간 중간 담겨있으니 여러 의미에서 읽을만한 가치가 있어요.

책을 덮고, 저는 절망적이고 슬픈 상황에서 눈물을 흘리며 감정을 표현하는 것보다 나는 받아들였다는 태도가 오히려 마음을 더 울린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어요. 오늘 리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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