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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희 -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 서평, 어른의 지혜가 녹아있어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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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희 -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 서평, 어른의 지혜가 녹아있어요

유하우스 2022. 9. 26. 00:17


이 책은 40년간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치유해 온 정신과 의사가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의 지혜가 담긴 책입니다. 전문의로서의 통찰, 엄마로서의 직언이 한데 담겨있지요. 읽으면서 따님이 참 부러웠습니다. 절제된 문장에서 딸을 향한 사랑은 감출수가 없었거든요.

이 책의 장점은 작가님의 성격에서 비롯된 것 같은데, 입바른 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꼽고 싶습니다. 담백해요. 딸아, 딸아, 하고 부르실 땐 괜시리 따듯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요.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느낌의 책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 가치관과 닮아있어 매우 공감하며 읽었어요. 그렇게 하이라이트 해 두었던 부분 인용하여 제 생각도 덧붙여 보는 시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

딸아, 만약 누군가 너에게 여자의 미덕을 이야기하고 모성을 운운하며 우리네 어머니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하거든 귀를 닫아버려라.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해라. 만약 상대방이 "참 못됐다"라고 말하면 칭찬으로 들어라. 그래야 많은 역할을 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으며, 너 자신을 지킬 수 있다.


이런 말을 하는 어머니 몇 분이나 계시나요? 저희 어머니는 늘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요, 그래야 탈이 없다고요. 저는 그 말이 저를 틀 안에 가둔다고 생각해서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순리대로 산다는 건 여성에게 엄청난 희생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거랑 똑같은 것 같거든요. 잘못된 풍습과 가치관은 고쳐야죠.

저는 딸을 낳아서 이런 생각이 더더욱 강해요. 어머니, 모성 운운하며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들, 희생을 강요하는 것들 제 대에서 최대한 끊어내고 싶어요. 아이는 제 뒷모습을 보고 자랄테니 제가 잘해야겠죠. 위와 같은 말은 적절한 때 해주는 게 좋겠다 싶어 하이라이트 해 두었었어요.

어느 미대 수업에서는 학생들에게 100개의 시안을 한 번에 제출하라는 과제를 내 준다고 한다. 뛰어난 작품하나를 만들기 위해 고심하는 것보다 어떤 것이든 100개를 그리면 그중에 뛰어난 작품이 나올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하는구나. 미완성을 견디는 것도 습관이다. 그리고 일단 하는 것 자체가 습관이 되면 정교하게 다듬는 일은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다.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제게 따스하게 일침을 가하는 말이었어요. 완벽하게 끝낼 생각 말고, 일단 하라고. 예를 들어볼까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이 블로그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미완성을 견디고 있습니다. 완성을 위해 매일 조금씩 정교하게 다듬고 있지요.

하다보면 언젠가는, 하는 마음이에요. 방향만 제대로 설정하고 꾸준히 나아가면 언젠가는 될 거라고요. 제 스스로도 만족할 수 있을만한 블로그가 될 거라고. 공부든 일이든 취미든 인생의 어느 때에도 적용 가능한 지혜로운 말인 것 같아 나누고 싶었습니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인생 최고의 기쁨은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에서 나온다. 좀 더 정확히는, 자신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받고 있다는"이라는 말을 남겼다.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기쁨이다. 그러니 어떤 경우에라도 타인을 사랑하는 일만큼은 보류하지 말자.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완성할 수 없다. 꽃도 벌이 날아와 당분의 균형을 잡아 주고, 애벌레가 꽃잎의 표면을 매끄럽게 해 주듯, 인간에게도 타인의 손길만이 채울 수 있는 공백과 결핍이 분명히 존재한다.


끊임없이 연애를 하고 일적으로 성공을 했음에도 늘 외로움에 둘러싸여 있는 사람이 있어요. 그건 고독과는 조금 다르지요. 꼭 제 안에 동그란 구멍이 뚫려있는 느낌? 그 구멍이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성취를 해도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걸 어려워 하더라고요. 말이 나와서 말인데, 대체 이 구멍은 '언제' 생기는 걸까요?

저는 어릴 때 부모에게 받았어야 할 관심과 사랑이 부재함으로 인해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전문가들이 아이와 부모의 애착관계가 중요하다고 입이 닳도록 얘기하는 이유가 있다니까요. 실제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치니까요.

저는 부끄럽게도 구멍이 있는 사람인데요. 제 아이만은 이런 허망하고 끊임없이 외로운 마음의 지옥을 겪지 않았으면 해 제가 할 수 있는 가능한의 많은 사랑을 전해주려 노력하고 있어요. 네가 무슨 말을 하고 행동을 하고 생각을 해도 나는 네 편이라고, 이유없이 너를 사랑하는 나는 무조건 네 편이라고, 네 생각을 들을거라고, 너를 외면하지 않을거라고. 다양한 방식으로 마음을 표현하고 있어요.

그리고 어릴 때의 결핍이 한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방치되고 있는 아이들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그 구멍을 제가 조금이나마 메워주고 싶어서요. 그런 어른이 되는 게 제 꿈 중 하나입니다. 물론 그럴 필요가 없는 상황이 베스트겠지만요.

어려서부터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에 노출되거나 능력을 넘어서는 지나친 목표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경우, 작은 과제 앞에서도 '내 힘으론 어쩔 수 없어' 하는 무력감을 학습하게 된다. 앞서 말했던 '학습된 무기력'이다. 어려서 발목이 묶인 코끼리는 다 자라서 제 발목의 끈을 끊어 낼 힘이 있어도 탈출을 시도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무기력을 학습하게 되면 충분히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게 된다.


내가 발목이 묶였던 코끼리라는 걸 안다는 것 자체만으로 얼마나 다행인지 싶어요. 이 사실을 모르면 그게 정말 비극인 것 같아요. 그런데 알고 있다해도 '학습된'무기력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곧 하다가 포기해버리고, 중간쯤 가다가 내려와버리고, 성공을 코앞에 두고 다 놓아버리는 그 일면에는 '나는 행복과 성공을 누릴 가치가 없는 사람이야'라는 심리가 짙게 깔려있는 듯 해요.

그런데 어쩌나요? 어찌할 방도를 모르는걸. 방법을 알아도 나에게 적용이 안되는걸.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생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아이를 이러한 우울과 불행의 늪에 빠뜨리고 싶지 않다면 사랑해줘야 해요, 표현해줘야 해요. 마음에 구멍이 생기지 않게 부모가 노력해야 해요.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말을 볼 때마다 스쳐지나가는 어두운 얼굴들이 너무 많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 중엔 제 얼굴도 있고요.

부탁을 하고 도움을 받는 일에 너무 인색해지지 말자. 언젠가는 너 역시 누군가의 부탁에 기꺼이 응해야 할 날이 오기 마련이다. 그러니 기꺼운 마음으로 타인에게 손을 내밀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말을 듣고 마음이 편해진 건 저 뿐일까요? 부탁을 하는 건 어쩐지 어려운 일처럼 느껴져요. 괜히 부담스러워요. 그런데 나도 나중에 이 사람의 부탁을 들어줄거라고 상정하고 다시금 시뮬레이션을 돌리면 아까보단 좀 더 편한 얼굴로 말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뜬금없지만 저는 이래서 책을 참 좋아해요. 한 줄짜리 글이 묶여있던 실타래 같은 마음을 순식간에 풀어주어서요. 위같은 말은 사실 멘토나 인생 선배에게 들을 수 있을법한 이야기 입니다. 다치고 굴러 경험으로 알게 되는 일일 수도 있고요. 인생꿀팁을 얻어 좋았습니다.




이렇게 보셨다시피 이 책은 '딸'이라고 했지만 성별에 관계없이 남녀노소가 읽을 수 있는 책이에요. (중간에 여자에게만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파트가 길지 않고 무겁지 않아 편하게 보실 수 있을거예요.) 주제가 다양하므로 저처럼 마음에 드는 부분을 쏙쏙 골라내어 후에 다시 읽는 재미도 있을 것 같고요. 어려운 단어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어려운 책이 아니고 실제 자신의 딸에게 마음을 담은 책이기 때문에 따뜻함이 저변에 깔려 있어 커피 한 잔 하며 읽기에 좋은 책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딸에게 담백한 엄마가 되고 싶어졌어요. 하고 싶은 말을 간결하게, 그리고 동시에 정확하게 하는 것. 이것도 능력인 것 같아 아직 갈 길이 멀지만요. 초보 엄마에게 계단 한 개를 더 밟도록 등불을 밝혀준 이 책에게 고마움은 표시하고 싶어요. 이만 마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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