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이 심하게 와서 이것저것 막 다 해보다가 결국엔 책을 집어들었어요. 목차도 안 보고, 지은이가 누구인지도 알아보지 않고 그저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된 책이었는데요. 따뜻하더라고요. 저자는 <여수언니 정혜영>이라는 이름의 유튜버이기도 해요. 책을 읽는 내내 '어떤 사람이지...' 찾아보지 않고서는 못 배길 정도로 궁금해져서 영상을 기웃거리기도 했답니다.


제목에서 느껴지다시피 이 책은 독자에게 위로와 휴식, 응원을 주고 있어요. 목차를 몇 개 소개 드려볼게요.

오늘 나는 행복으로 할래 / 오늘은 행복할 내일의 예고편 / 운 좋게 실수했다 / 시련의 꽃말은 터닝포인트 / 아낌없이 나를 키우는 양육자 / 언제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등등...
(물론, 많은 목차 중 제가 마음에 드는 것들로만 쏙쏙 뽑아온 거예요.)

사실 저는 내용보다 목차를 더 오래 볼 때가 많았어요. 특히 '운 좋게 실수했다'는 너무 좋더라고요. 단 한 줄 만으로도 여러 생각을 할 수가 있더군요.

에세이기 때문에 제가 꼭 전해야 할 메시지는 없어요. 인상 깊었던 구절을 공유하며 제 생각도 덧붙이는 형식으로 글을 써 내려가 볼까 합니다 :)

 


 

1층부터 10층까지 열 번 정도 달려서 왕복하면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심장은 터질 듯이 뛰었고 기분도 상쾌해졌다. 한 층 한 층 올라가며 목표를 달성하는 기쁨도 있었다.


'나는 뭐 하는 사람이에요.' 굳이 소개 하지 않아도 일상 루틴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대충 저자는 이러한 사람이구나, 라는 게 파악이 됐어요.

운동을 좋아하고 잘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궁금해서 유튜브를 들어가보니 방송을 켜놓고 운동하는 모습을 촬영해 업로드 한 영상이 있을 정도로요. 육아를 하는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새벽의 정해진 시간엔 무조건 일어나 운동을 하는 꾸준함과 성실함에 감탄했어요.

1층부터 10층까지 열 번 왕복? 저는 엄두가 안 나요.

어느 날은 <나는 의사다>라는 팟캐스트에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나와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상담하러 온 환자들이 빠짐없이 던지는 질문이 있다고 한다. "선생님은 행복하세요?"

늘 우울하고 슬픈 환자를 상담하는 선생님은 과연 행복할까? 환자들은 궁금했을 것이다. 그 질문에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1년 중 20일은 행복하고, 300일은 힘들고 나머지 45일은 그저 그렇다고. 365일 중 딱 20일만 행복하다는 말에 환자들은 다시 궁금해한다.

"그런 삶은 불행한 삶 아닌가요?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살아요?"

"저는 그 20일을 기다리는 재미로 삽니다. 한 달에 행복한 날이 딱 이틀만 있어도 그 이틀을 기대하고 기다리면서 오늘을 보낼 수 있지요. 오늘 조금 힘들어도 행복하게 보낼 내일의 예고편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누군가에게는 깊이 공감이 될 말 같아서 하이라이트 해두었었어요. 오늘 많이 상처받고 힘들었어도 너무 크게 좌절하지 말아라,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 는 취지의 말 저도 좋았었고요.

오늘 힘들었어도, 비록 내일도 힘들 예정이어도 화이팅이에요. '한 달에 행복한 날 딱 이틀!' 이 기다리고 있어요. 그 날이 미처 내게 못 오고 지나쳤다면 또 다음 달을 기약하면 되고요.

이제나 올까 저제나 올까 어떤 방식으로 올까 기대하며 사는 인생, 희망적이고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긍정적으로 살다보면 한 달에 딱 이틀! 있는 행복의 수도 자연스럽게 늘어나지 않을까요?

운 좋게 실수했다


위에서 잠깐 언급했는데 이 짧은 한 문장에 되게 오래 빠져 있었어요. 거창하게 말하자면, 인생을 되돌아보게 되던데요.

요즘들어 그런 생각을 해요. 이십대 때 많이 실수 해두길 잘했다고. 그 때 당시엔 그 날, 그 시간, 순간 하나 하나가 견딜 수 없이 아파서 괴로웠는데 지금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자산이 되어 있으니까요. 이래서 어른들이 이십대 때 경험을 많이 해보라고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 주변을 둘러보면 과거에 내가 한 실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느냐에 따라 현모습이 결정되어 있는 것 같다고도 생각한답니다.

물론 떠올리는 것만으로 아직도 가슴 찌릿한 실패도 있죠.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겪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이다 싶은... 최근에 어떤 영상을 봤어요.

이미 벌어진 사건은 제자리에 있어요. 사건은 움직이지 않아요. 그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만 의지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거예요. 내가 별 일 아니라고 하면 별 일 아닌거고, 이거 되게 큰일이다 하면 그렇게 되는거라고 하더라고요.

...음, 그래도요.

너무 큰 상처를 받아서 어떠한 말로도 위로도 회복도 안 되는 일이 있을 수 있어요. 그 일을 도약하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 자체가 또 다른 형태의 가해일 수 있는 일이 있죠. 이해해요. 그래서 모든 사람들에게 '시각을 달리해보세요.' 라고 감히 말 할 순 없어요.

하지만 저는 조금씩 시도 해보려고요. 그 기억이 나를 갉아먹고 있다면 방향을 틀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럴 용기가 조금은 생겨서요. 언젠가는 끔찍한 기억도 "그래, 운 좋게 실수했다!"고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날이 꼭 왔으면 좋겠어요.

화살은 활시위를 뒤로 최대한 당겨야 가장 멀리 날릴 수 있고, 공은 높은 곳에서 떨어뜨릴수록 더 높이 튀어 오를 수 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엄마가 된 입장에서 이 글은 씁쓸하고 먹먹합니다. 이십대 때의 저라면 이 글에 위로를 받고 원동력 삼아 오늘처럼 내일도 열심히 살았을 거예요. 내일 더 열심히 했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활시위를 뒤로 최대한 당길 수가 없네요? 내가 그러고 있으면 내 딸이, 애기 아빠가 방치 되니까.

온전히 나 자신 한 명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던 미혼의 제가 문득 그리워졌어요.

아이가 조금 더 크면 또 다시 한 번 이렇게 열정적으로 내 자신을 위해 활시위를 뒤로 당길 수 있는 날이 오리라고 믿어요. 염원해요.

삶은 실패와 성공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 해냄과 배움으로 나뉜다. 실패는 늘 나에게 배움을 준다. 실패의 끝에는 어제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나아진 내가 있다.


저 - 위에 했던 말과 일맥상통하는 글이네요. 말이 이어지니까 제 말도 더 이어보자면요. 아이유 노래 중에 '아이와 나의 바다'라는 곡이 있거든요. 거기 이런 가사가 나와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일들이 있지."

실패로 인해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상황과 시간과 마음 그리고 또 다른 여러가지가 동시에 도와줘야 겨우 회복이 가능하잖아요. 왜 그런 일이 있잖아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분이 계시다면 왜 나만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 하는지 실패 속에서 배우지 못 하는지 자책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힘들 때 저 가사를 떠올려보세요.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없는 일도 있고, 그 안에서 내가 뭘 배우지 못 하고 있어도 이상한 게 아니라 정상적인 거라고요. 해석은 제각각인 거니까 저는 이상하게도 위 글을 읽고 이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둘째, 스스로 기분을 잘 풀어줄 수 있을 때.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화도 나고 눈물도 나고, 주체할 수 없이 짜증이 나기도 한다. 어깨에 짊어진 짐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을 더 많이 느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른이라면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언제쯤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챕터에요.)

어릴 때는 화가 나면 주체할 수 없는 상태로 살았던 것 같아요. 울고, 화내고, 그러다 무덤덤해지고... 나 자신이랑 대화하는 법을 몰랐으니까요.

이제는 내가 내 눈치를 보고 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음식을 먹여주며, 장소들에 데려가줘요. 내 기분을 풀어주려 애써요.

넷째, 정신적 성장을 멈추지 않을 때. 신체는 20대가 되면 대부분의 성장이 멈추고, 그 이후부터는 점차 노화의 과정을 겪는다. 하지만 정신적인 성장은 나이와 상관이 없다.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생각하고 바라고 실행하고, 많은 경험과 실패를 거듭하며 한 단계씩 나아갈 때 성장할 수 있다. 특히 부끄럽거나 싫은 일, 힘든 일을 마주했을 때 도망치지 않고 묵묵히 받아들이며 책임감을 발휘한다면, 한층 더 성숙한 어른이 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첫째, 셋째가 빠져있어 혼란스러우실까봐 알려드려요. 첫째는 '단단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을 때', 셋째는 '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있을 때' 입니다.)

저는 유독 둘째, 넷째가 와닿았고 그래서 그 부분만 하이라이트를 해두었어요.

부끄럽거나 싫은 일, 힘든 일을 마주했을 때 도망치지 않고 묵묵히 받아들이며 책임감을 발휘한다는 말이 좋았어요. 어릴 때는 나이 핑계 대며 어느 정도 피해갈 수 있는 일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안 되네요? 만에하나 제가 지금 감당해야 할 무게를 짊어지지 않겠다고 내팽개치고 도망가버린다면, 삶에 큰 균열을 일으키는 매우 중대한 사건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돌이킬 수 없을 것도 같고.

그래서 무거운 부담감을 갖고 있지 않아도 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어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타임머신 개발은 대체 언제 되는거야...(뜬금)

어른이니 어른답게 책임감 있게 받아들이고 그때 그때 잘 처신하며 살아야죠. 이제는 부끄럽다고, 힘들다고 도망치지 않을거예요. 이젠 그게 더 부끄러워요.





책 속에 더 좋은 내용이 많았는데 제게 와닿았던 내용들만 다루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짧다고 느끼실 수도 있어요. 아쉽지만 이해가 잘 되지 않거나 공감이 되지 않았던 내용을 억지로 붙잡고 있긴 싫어서요.

저처럼 한 문장을 가지고 반나절 이상 골몰하는 분들에겐 딱 맞는 옷 같은 느낌이 아닐 수도 있지만요. 마음을 살랑살랑 훑고 지나가는 산뜻한 바람 같은 책을 기다리는 분들에겐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읽을 때, 잔잔하고 조용한 음악과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고요.

저자분이 워낙에 긍정 에너지 뿜뿜이시거든요 :) 위로와 더불어 자존감 향상에도 도움 되는 책을 찾고 계시다면 이 책 추천 드려요. 좋은 시간 되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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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40년간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치유해 온 정신과 의사가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의 지혜가 담긴 책입니다. 전문의로서의 통찰, 엄마로서의 직언이 한데 담겨있지요. 읽으면서 따님이 참 부러웠습니다. 절제된 문장에서 딸을 향한 사랑은 감출수가 없었거든요.

이 책의 장점은 작가님의 성격에서 비롯된 것 같은데, 입바른 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꼽고 싶습니다. 담백해요. 딸아, 딸아, 하고 부르실 땐 괜시리 따듯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요.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느낌의 책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 가치관과 닮아있어 매우 공감하며 읽었어요. 그렇게 하이라이트 해 두었던 부분 인용하여 제 생각도 덧붙여 보는 시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

딸아, 만약 누군가 너에게 여자의 미덕을 이야기하고 모성을 운운하며 우리네 어머니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하거든 귀를 닫아버려라.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해라. 만약 상대방이 "참 못됐다"라고 말하면 칭찬으로 들어라. 그래야 많은 역할을 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으며, 너 자신을 지킬 수 있다.


이런 말을 하는 어머니 몇 분이나 계시나요? 저희 어머니는 늘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요, 그래야 탈이 없다고요. 저는 그 말이 저를 틀 안에 가둔다고 생각해서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순리대로 산다는 건 여성에게 엄청난 희생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거랑 똑같은 것 같거든요. 잘못된 풍습과 가치관은 고쳐야죠.

저는 딸을 낳아서 이런 생각이 더더욱 강해요. 어머니, 모성 운운하며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들, 희생을 강요하는 것들 제 대에서 최대한 끊어내고 싶어요. 아이는 제 뒷모습을 보고 자랄테니 제가 잘해야겠죠. 위와 같은 말은 적절한 때 해주는 게 좋겠다 싶어 하이라이트 해 두었었어요.

어느 미대 수업에서는 학생들에게 100개의 시안을 한 번에 제출하라는 과제를 내 준다고 한다. 뛰어난 작품하나를 만들기 위해 고심하는 것보다 어떤 것이든 100개를 그리면 그중에 뛰어난 작품이 나올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하는구나. 미완성을 견디는 것도 습관이다. 그리고 일단 하는 것 자체가 습관이 되면 정교하게 다듬는 일은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다.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제게 따스하게 일침을 가하는 말이었어요. 완벽하게 끝낼 생각 말고, 일단 하라고. 예를 들어볼까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이 블로그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미완성을 견디고 있습니다. 완성을 위해 매일 조금씩 정교하게 다듬고 있지요.

하다보면 언젠가는, 하는 마음이에요. 방향만 제대로 설정하고 꾸준히 나아가면 언젠가는 될 거라고요. 제 스스로도 만족할 수 있을만한 블로그가 될 거라고. 공부든 일이든 취미든 인생의 어느 때에도 적용 가능한 지혜로운 말인 것 같아 나누고 싶었습니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인생 최고의 기쁨은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에서 나온다. 좀 더 정확히는, 자신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받고 있다는"이라는 말을 남겼다.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기쁨이다. 그러니 어떤 경우에라도 타인을 사랑하는 일만큼은 보류하지 말자.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완성할 수 없다. 꽃도 벌이 날아와 당분의 균형을 잡아 주고, 애벌레가 꽃잎의 표면을 매끄럽게 해 주듯, 인간에게도 타인의 손길만이 채울 수 있는 공백과 결핍이 분명히 존재한다.


끊임없이 연애를 하고 일적으로 성공을 했음에도 늘 외로움에 둘러싸여 있는 사람이 있어요. 그건 고독과는 조금 다르지요. 꼭 제 안에 동그란 구멍이 뚫려있는 느낌? 그 구멍이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성취를 해도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걸 어려워 하더라고요. 말이 나와서 말인데, 대체 이 구멍은 '언제' 생기는 걸까요?

저는 어릴 때 부모에게 받았어야 할 관심과 사랑이 부재함으로 인해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전문가들이 아이와 부모의 애착관계가 중요하다고 입이 닳도록 얘기하는 이유가 있다니까요. 실제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치니까요.

저는 부끄럽게도 구멍이 있는 사람인데요. 제 아이만은 이런 허망하고 끊임없이 외로운 마음의 지옥을 겪지 않았으면 해 제가 할 수 있는 가능한의 많은 사랑을 전해주려 노력하고 있어요. 네가 무슨 말을 하고 행동을 하고 생각을 해도 나는 네 편이라고, 이유없이 너를 사랑하는 나는 무조건 네 편이라고, 네 생각을 들을거라고, 너를 외면하지 않을거라고. 다양한 방식으로 마음을 표현하고 있어요.

그리고 어릴 때의 결핍이 한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방치되고 있는 아이들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그 구멍을 제가 조금이나마 메워주고 싶어서요. 그런 어른이 되는 게 제 꿈 중 하나입니다. 물론 그럴 필요가 없는 상황이 베스트겠지만요.

어려서부터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에 노출되거나 능력을 넘어서는 지나친 목표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경우, 작은 과제 앞에서도 '내 힘으론 어쩔 수 없어' 하는 무력감을 학습하게 된다. 앞서 말했던 '학습된 무기력'이다. 어려서 발목이 묶인 코끼리는 다 자라서 제 발목의 끈을 끊어 낼 힘이 있어도 탈출을 시도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무기력을 학습하게 되면 충분히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게 된다.


내가 발목이 묶였던 코끼리라는 걸 안다는 것 자체만으로 얼마나 다행인지 싶어요. 이 사실을 모르면 그게 정말 비극인 것 같아요. 그런데 알고 있다해도 '학습된'무기력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곧 하다가 포기해버리고, 중간쯤 가다가 내려와버리고, 성공을 코앞에 두고 다 놓아버리는 그 일면에는 '나는 행복과 성공을 누릴 가치가 없는 사람이야'라는 심리가 짙게 깔려있는 듯 해요.

그런데 어쩌나요? 어찌할 방도를 모르는걸. 방법을 알아도 나에게 적용이 안되는걸.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생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아이를 이러한 우울과 불행의 늪에 빠뜨리고 싶지 않다면 사랑해줘야 해요, 표현해줘야 해요. 마음에 구멍이 생기지 않게 부모가 노력해야 해요.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말을 볼 때마다 스쳐지나가는 어두운 얼굴들이 너무 많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 중엔 제 얼굴도 있고요.

부탁을 하고 도움을 받는 일에 너무 인색해지지 말자. 언젠가는 너 역시 누군가의 부탁에 기꺼이 응해야 할 날이 오기 마련이다. 그러니 기꺼운 마음으로 타인에게 손을 내밀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말을 듣고 마음이 편해진 건 저 뿐일까요? 부탁을 하는 건 어쩐지 어려운 일처럼 느껴져요. 괜히 부담스러워요. 그런데 나도 나중에 이 사람의 부탁을 들어줄거라고 상정하고 다시금 시뮬레이션을 돌리면 아까보단 좀 더 편한 얼굴로 말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뜬금없지만 저는 이래서 책을 참 좋아해요. 한 줄짜리 글이 묶여있던 실타래 같은 마음을 순식간에 풀어주어서요. 위같은 말은 사실 멘토나 인생 선배에게 들을 수 있을법한 이야기 입니다. 다치고 굴러 경험으로 알게 되는 일일 수도 있고요. 인생꿀팁을 얻어 좋았습니다.




이렇게 보셨다시피 이 책은 '딸'이라고 했지만 성별에 관계없이 남녀노소가 읽을 수 있는 책이에요. (중간에 여자에게만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파트가 길지 않고 무겁지 않아 편하게 보실 수 있을거예요.) 주제가 다양하므로 저처럼 마음에 드는 부분을 쏙쏙 골라내어 후에 다시 읽는 재미도 있을 것 같고요. 어려운 단어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어려운 책이 아니고 실제 자신의 딸에게 마음을 담은 책이기 때문에 따뜻함이 저변에 깔려 있어 커피 한 잔 하며 읽기에 좋은 책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딸에게 담백한 엄마가 되고 싶어졌어요. 하고 싶은 말을 간결하게, 그리고 동시에 정확하게 하는 것. 이것도 능력인 것 같아 아직 갈 길이 멀지만요. 초보 엄마에게 계단 한 개를 더 밟도록 등불을 밝혀준 이 책에게 고마움은 표시하고 싶어요. 이만 마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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