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영화로 접한 분들도 많을거예요. 동그랗게 뜬 눈을 위로 하고 누군가를 직시하는 눈빛은 연출된 이미지였음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죠.

2014년 개봉된 <나를 찾아줘>, 데이빗 핀처 감독의 작품이었는데요. 이 영화는 개봉 전, 책으로 먼저 독자들을 만났습니다. 작가는 길리언 플린. 여성 작가이며, 스티븐 킹을 비롯해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극찬을 받은 바 있습니다. ('예리하고 강렬한 진짜 스토리텔러', '피가 난무하지 않는 서스펜스를 쓸 수 있는 작가') 아마존 종합 1위, 뉴욕타임스 소설 1위를 차지하기도 했었다네요.




이 책은 결혼기념일 아침에 갑자기 사라진 아내와 그녀를 죽인 용의자로 의심 받고 있는 남편을 통해 인간의 어두운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심리 스릴러입니다.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둡고, 남편인 닉의 시점을 따라가다보면 숨통이 조여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이야기는 아내인 에이미, 남편 닉의 시점이 교차되며 진행 됩니다. 제 글에는
스포가 포함되어 있으니 이 점 유의하며 읽어주시길 당부 드려요.


사라진 에이미




닉과 에이미의 결혼기념일 5주년 날.

에이미는 사라집니다. 닉은 열려있는 현관에서 자신의 집을 보곤 놀라요. 마치 그녀가 싸움을 한 후(혹은 폭행을 당한 후) 사라진 것처럼 집이 어수선 했으니까요.

도착한 경찰은 보여지고 있는 흔적, 숨겨진 흔적을 따라 범인 찾기에 착수합니다.


유력한 용의자 남편, 닉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로 남편인 닉을 가리킵니다. 그는 알리바이가 없었거든요. 아내가 사라진 시간에 다른 곳에서 사색을 즐기고 있었다고 했지만 증인 증거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론다 보니 형사는 사라진 에이미가 남기고 간 편지 한 통을 발견해요. 그 편지는 보물찾기를 하듯 다음 편지가 있는 곳을 알려주고 있는 일종의 단서였죠. 닉은 보물찾기를 결혼기념일마다 에이미가 늘 해오던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그 편지가 있는 곳은 모두 닉이 유죄임을 알려주고 있었어요. 그리고 닉만 알았어요.

자신이 바람을 피고 있었다는 걸 에이미가 알고 있었다는 것을요.

모든 단서는 내가 바람을 피운 장소에 숨겨져 있었다. 에이미는 보물찾기를 이용해서 나로 하여금 모든 부정의 현장을 순례하도록 만든 것이다.



닉의 내연녀, 앤디




닉은 그의 쌍둥이 남매인 마고의 집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고의 집에 웬 여자가 찾아와요.

앤디.

1년 가까이 닉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사람.

닉은 그녀를 사랑했지만 이 상황에서 그녀의 등장은 위험할 것이라고 판단해 돌려보내려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본능에 충실할 뿐...

설득이 되지 않은 채로 돌아간 앤디를 배웅하고 돌아선 닉의 앞엔 실망한 고가 서 있었습니다.


들끓는 민심




닉의 사무실에는 여자 팬티들이 있었습니다. 신용카드 내역에는 막대한 금액으로 쇼핑을 한 흔적이 있었는데 그 물건들은 고의 장작 헛간에 숨겨져 있었고요. 에이미가 사라지기 전, 그녀의 생명 보험금이 상향되는 쪽으로 수정이 된 건 닉이 서명을 한 것으로 드러나 그는 이제 본격적인 경찰의 추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에이미가 시킨 것'이라는 그의 주장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제 집 앞에서 술 한 잔 사 먹을 수 조차 없는 처지가 됩니다. 매스컴에 모습을 드러내 에이미가 돌아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던 그는 '뻔뻔한 남자'가 되었어요.


에이미... 어디 있어?




그 시각, 에이미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도망다니고 있었습니다.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계획 해놓고 경찰이 그 선물들을 하나 하나 푸르며 남편인 닉의 숨통을 조여주길 바라고 있었죠.

에이미는 더는 이 결혼 생활이 즐겁지 않았거든요. 처음 만났을 때 닉은 에이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썼는데, 이젠 잘 보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그에게 분노를 느꼈어요. 그래서 언제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완벽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남편의 약점을 이용한 계획을 세웠던 거예요.

그녀는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사람들이 소수 모여있는 곳에 자리를 잡아요. 곧, 그들에게 돈을 빼앗겨 거지 신세가 되지만요.


'어메이징 에이미',
그리고 그들의 결혼생활




에이미는 자신에게 관심 없는 닉에게 서운함을 토로하거나 화를 내지 않았어요. 그런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에이미에게 무관심해진 닉은 마침내 그녀를 거들떠도 보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어요.

나는 닉의 아내가 아닌 것 같다. 사람인 것 같지도 않다. 나는 소파나 뻐꾸기시계처럼 싣고 내려지는 존재다. 물건, 그것도 쓸모없는 물건. 나는 필요하다면 쓰레기장에 던져질, 강 속으로 집어 던져질 어떤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진짜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다. 나는 사라져 버릴 것만 같다.



에이미의 부모님은 에이미를 모델로 삼은 '어메이징 에이미'라는 책 시리즈로 큰 인기와 부를 얻었는데요. 책과 실제 에이미 사이엔 괴리감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실제 에이미는 무언가를 포기했지만, '어메이징 에이미'는 좌절을 딛고 일어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많은 사람들은 '어메이징 에이미'를 부러워 했어요.

그래서 자기도 모르는 새 에이미에게 강박이 생겼나 봅니다. 책 속의 여인처럼 완벽하고 쿨한 사람으로 보이기를 바랬죠. 닉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어요. 꾸며진 모습을 보여준 거예요.

결혼은 서로의 진짜를 드러내고 상대의 모습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모난 부분들을 다듬어 나가는 과정인데요. 그들은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어요.

에이미는 이 사실을 견딜 수 없어 했고요.

상상할 수 있는가? 마침내 당신의 진실한 자아를 당신의 배우자이자 소울메이트에게 보여줬더니 그가 당신을 싫어한다. 그렇게 처음으로 증오가 싹텄다. 나는 이 문제를 아주 오래 생각했다. 나는 그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독자에게 뼈에 사무친 조언을 남길 정도로...

에이미는 닉과 살기 시작했을 때, 닉이 가위 하나 없는 걸 보고 어떻게 문명인이라 할 수 있느냐고 했어요. 닉은 그런 그녀의 말을 웃어 넘겼고. 훗날 에이미는 자조해요. 그리고 충고하죠.

변변한 가위 하나 없는 남자와는 절대 결혼해선 안 된다고. 그런 결혼은 끝이 나쁘다고요.


에이미의 심경변화




에이미는 닉을 감옥에 보내고, 그리고 자기 자신도 죽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매스컴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 오는 닉의 모습에 점점 마음을 바꾸는데요.

비로소... 듣고 싶었던 말을 듣고서야 에이미는, 계획을 중단합니다.

정말이지 사실이다. 이 끔찍한 상황이 벌어지고 나서야 우리는 깨달은 것이다. 닉과 내가 천생연분이라는 것을. 나는 조금 넘치고 그는 조금 부족하다. 나는 우리 부모의 지나친 관심 때문에 잔뜩 곤두선 가시나무이고, 그는 아버지에게 찔려 수많은 상처를 가진 남자다. 나의 가시와 그의 상처는 서로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나는 집으로, 그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그 당시 에이미는 데시의 공간에 머물러 있었어요.

데시는 20년 전, 에이미와 연인사이였으나 헤어지고 난 후 죽겠다는 소동을 일으킨 바 있는 인물이에요. 그래서 에이미 실종사건의 용의자 중 한 명으로 지목되기도 했고요.

에이미는 빈털터리가 된 후 데시에게 연락해 그의 마음을 이용했지만 필요가 없어지자 깨끗이 없앱니다. 이 역시 주도면밀하게요.


돌아온 에이미




닉은 숨 쉬듯 에이미를 욕하고 있었습니다. 카메라 앞에서는 에이미에게 용서를 빌고 앞으로는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 했지만 진심이 아니었어요.

그런 닉 앞에 피투성이가 된 에이미가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닉이 '아내를 죽였지만 증거가 없어서 잡혀가지 않는 파렴치한'이라고 단정을 짓고 있었는데, 에이미의 등장과 함께 '아내를 잃었을 뿐이었던 가여운 사람'이었다고 다시금 떠들어대기 시작합니다.

에이미는 경찰에 진술합니다. 데시가 나에게 어떻게 했는지, 실종 첫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몹쓸 짓을 했는지.

단 한 사람... 닉만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요.

그녀에게서 등을 돌렸다. 순간 한 손에 칼을 든 그녀가 복종하지 않는 나를 향해 입술을 앙다무는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다시 돌아섰다. 그렇다, 나의 아내는 결코 등을 보여줘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건네지는 임신 테스트기. 닉은 그녀가 돌아온 뒤 한 번도 그녀를 안은 적이 없어요. 이건 언젠가 그의 것을 보관해 두었다가 닉을 옭아매려 그녀가 꾸며낸 짓이었어요. 평생 자신과 이혼할 수 없도록요.

처음 그들이 만났을 때처럼 다시 한 번 더,

자신에게 애정과 헌신을 쏟기를 바라면서요.







이 책을 다 읽고...




각기 다른 집의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에이미는 자신의 부모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을 평생에 걸쳐 받았어요. 그들은 '어메이징 에이미', 즉, 그들이 만들어 낸 또 다른 에이미를 너무 많이 사랑했죠.

닉의 아빠는 여자를 혐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시도때도 없이 여자들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험한 말을 하고 다녔죠. 그 여자들이 아무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도 그저 자기 자신의 자격지심, 수치심, 결핍과 분노가 만나 스스로를 가해자로 만들고 뭇 여성들을 피해자로 만들고 있었어요.

닉의 엄마는 아들을 마마보이로 키운 여자였습니다. 자기 혼자서는 집안일을 할 수 없는 남자로 키웠어요.

네... 그런 두 사람이 만난겁니다. 🤦🏻‍♀️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었죠. 자신의 안에서는 항상 무언가를 갈구하고 있지만, 사람들 앞에서는 완벽의 모습을 가장하고 있다는 것이요.

마침내 결혼을 통해 두 사람이 또 다른 하나가 될 때 그들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야만 하는데, 에이미와 닉은 상대의 욕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서로에게 실망하고, 마침내는 자기 자신에게도 실망해 버린거죠.

불행의 씨앗은 두 사람이 자라온 집안 환경에 있었습니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거예요. (물론, 부모들도 일부러 잘못되라고 그런 건 아닐테고 살다보니 그리 된 것이겠죠.)

저는 이 책을 읽고, 나도 언젠가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는 어른이 될까 겁났습니다. 니가 나였어도 그랬을 거야, 그 상황에선 어쩔 수 없는 단 하나의 선택이었어, 괴로움을 호소하는 자식 앞에서 내 인생을 설득하는 어른이 될까 두렵더라고요.

자식을 낳았다면 자식의 입장을 생각해야 해요. 그러기 싫으면 낳지 말아야죠.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여 자식을 키웠는데도 예상치 못 하게 나 때문에 괴로워 할 수 있어요. 그럴 땐 에이미와 닉의 부모처럼 방관을 하는 것이 아니라 늦게나마 이해라도 해보려 노력할 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를 위한 더 좋은 선택이 있었을 텐데, 내 생각이 짧았어, 반성할 줄 아는 어른이 되고 싶어요.

(그렇다고 에이미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 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성격이 형성된 원인을 이야기 했을 뿐... 죄를 지었다면 죗값은 받아야죠.)







이야기는 닉과 에이미의 시점이 교차되어 책인데도 꼭 영화를 보는 것 같아 재밌었습니다. 스릴러물 답게 중간 중간 반전과 극적인 전개가 책에서 손을 떼지 못 하게 만들었고요.

에이미는 당신이 살면서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인물일 가능성이 높은데요. '이 사람은 대체...' 싶을 거예요. 장난스레 말하자면, 에이미는 파워J 성향이에요. '참 대~단하다...' 싶으실 수도 있어요.

에이미의 세계를 엿보고 싶으신 분들은 책으로든 영화로든 한 번 접해보시길 권합니다. 👍🏻

그럼 좋은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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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국내 개봉 된 데이빗 핀처 감독의 <나를 찾아줘>는 극장 상영 후 관람객들의 높은 평점과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나도 별 생각 없이 영화를 보러 들어갔다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멍한 상태로 조용히 극장을 나왔던 기억이 난다.

<몸을 긋는 소녀>로 데뷔한 길리언 플린은 전 작품 영화화 확정으로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또한 '피가 난무하지 않는 서스펜스를 쓸 수 있는 작가(월스트리트저널)'라는 극찬에 걸맞게 그녀의 이야기는 더없이 조용하고, 나긋나긋한 여성들만의 분위기가 짙게 깔려있다.

<나를 찾아줘>에서 주인공 역을 소화한 배우의 온화하지만 지독하게 차가운 표정이 아직도 눈 앞에 아른거리는 걸 보면 저자는 <몸을 긋는 소녀>에서의 아도라와 카밀에게도 '양날의 칼'을 쥐어준게 틀림없다.

그들은 3대에 걸쳐 모녀간의 애증이 비극으로 치닫는 과정을 그들도 모르는새 여과없이 보여주었는데, 킬링타임용 장르 문학을 선택함으로서 현실의 두려움을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앤과 내털리의 범인 찾기에 몰입 시켜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던 것 같다.

이야기는 시카고에서 일하고 있는 카밀이 사건 취재 차 자신이 살았던 윈드 갭으로 이동하면서 시작된다.

가족과 친구가 있는 윈드 갭에 카밀이 쉽게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그 곳에서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마을 주민들의 동경을 받는 돼지 농장 실소유자이며 상당한 재력가이자 최고 부유층이다. 그녀에게는 앨런이라는 새아빠와, 이붓동생 엠마가 곁에 있었는데 그 누구의 환영도 받지 못한 채 마치 하숙인처럼 방을 빌려 쓰게 된다.

아도라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사건 취재를 위해 현장과 피해자 가족 등을 만나고 다니면서 그녀는 캔자스시티에서 파견 나온 강력계 형사 리처드 윌리스와 피해자 내털리의 납치 목격자, 아도라의 상류 사회 친구들, '엠마 패거리'와 여러 번 부딪히게 된다.
이붓동생 엠마는 조숙한 여중생으로 예쁜 얼굴로 술과 약을 하고 다니는 불량 소녀지만 집에서만큼은 엄마 말씀을 잘 듣는 똘망똘망하고 여린 딸이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관심이 없는지, 엄마 아도라는 언제나 고급스러운 원피스를 입고 가정부를 호출해 기름진 음식을 먹는다. 새아빠에게는 한 번도 '아빠'라는 호칭을 써 본 적이 없지만 누구도 고치라고 지적하지 않았다.

그녀는 엠마에게 발뒤꿈치가 밟히고 그녀가 먹던 사탕에 머리가 뒤엉키면서, 리처드와 여러가지 정보를 주고 받았고 마침내는 죽임 당한 피해자들의 공통 분모를 발견해내고 만다.

두 소녀들은 조용한 성격이 아니었고 아도라에게 과외를 받거나 관심을 받고 있던 아이들이었다. 그와 동시에 엠마는 죽은 자신의 여동생을 질투 할만큼 사랑 받고 싶어 하는 아이였다.

카밀은 2주가 넘는 시간 동안 윈드 갭에 머물면서 자신을 죽이고 싶어라는 아도라의 광기와, 죽은 여동생이 사실은 건강했음에도 병원에서 죽어가야만 했던 이유를 뒤늦게 알게 된다.

앤과 내털리는 과연 누가 죽였으며 뽑은 이는 어디에 숨긴걸까?

아도라는 '좋은 엄마'가면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건강한 자기 아이를 병원에 입원 시켜 아픈 아이로 만든 후 땀을 뻘뻘 흘려가며 간호했고,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남들이 봐주기를 바랐다.

희생하고, 헌신하는, 이상적인 엄마 모습.

그것은 전부 죽은 엄마에게서 그녀가 기대한 모습이었다.
이미 바람이 통하게끔 구멍이 뚫려버린 풍선에 자기 만족이라는 기름을 콸콸 붓는다. 그 기름은 그 사람을 모조리 집어 삼키고 마침내는 종식시켜 버리고 만다.

엠마는 누가 봐도 엄지를 치켜 올릴 정도로 예쁘다.
그 미모로 친구들을 휘두르고, 남자들을 주무르고, 아! 자신의 친구를 남자에게 서적으로 팔아 넘겨도 여왕처럼 추대를 받는다. 과연 부족함 없어 보이는 예쁜 이 여자 아이를 통곡하게 만들 수 있는 이가 세상에 있을까?
엠마는 아도라에게 알약을 받았다. 하늘색의 우유도 받아 먹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아도라가 엠마의 상태를 확인하러 왔을 때, 그녀는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해주었다. 그래야 모두가 행복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도라는 그 약과 우유를 카밀에게도 주었다. 그것들은 말라리아 예방약, 산업용 관장약, 항발작 알약, 말에 쓰는 진정제 등이었다. 카밀은 자신의 몸을 그어야 편안함을 느꼈기 때문에 독약임을 알면서도 그것들을 삼켰고, 그녀보다 조금 영악하고 예민한 엠마는 약을 먹고 잠든 척을 했다. 착한 어머니 노릇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아이는 죽여버리는 아도라 때문에 그녀들은 서로 다른 길을 택한 듯 보이지만 결국은 두 사람 다 자신에게 깊은 상처를 낸다.
엄마에게 화는 커녕 투정 한 번 부리지 못한 카밀은 답답하고 화가 날 때면 자신의 몸 구석구석에 단어들을 각인 시킨다. (온 몸이 타듯이 따끔거려도 마음의 가시가 더 깊고 날카롭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엠마는 자신이 받아야 할 관심을 다른 사람이 받을 때 깊이 분노한다. 특히 자기보다 못생기고 나약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관심을 받으면 더욱 그랬다. 그래서- 엄마를 내버려둠으로 사랑받고자 했던 행동이 다른 사람을 죽이고 말았다.
카밀 또한 엠마의 등을 씻겨줄 때, 지나치게 과잉보호를 할까봐 스스로 절제 시켜야만 했다.

이 가족을 파멸로 이끈 저주의 근원은 어디라고 해야 옳을까. 가난과 학대의 대물림도 눈에 보이는 거라면 차라리 잡아서 돈으로 처리 해버리면 쉬운 일일텐데 말이다.

저자 길리언 플린은 <몸을 긋는 소녀>외 다른 작품에서도 이러한 가족의 소통 부재로 인한 안타까움을 잘 녹여내고 있다고 한다. 그녀와 우리는 범인을 잡았지만 풀어야 할 문제는 모두의 몫으로 남겨놓았다.

가정 폭력처럼 무서운 것이 서로를 향한 무관심이라는 것. 이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껴서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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