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접근기란


생후 16개월부터 24개월 사이 유아에게 나타나는 정신 성장 발달 단계를 뜻하는 말입니다. 이 시기에 아기는 엄마로부터 안정감과 신뢰감, 소속감을 얻고 싶어 하는 동시에 엄마로부터 독립하고 싶어 하는 양가적 감정이 존재해요. 어쩔 때는 일상 생활이 불가할 정도로 엄마에게 집착을 하다가도 '나는 이제 엄마 아빠 의견에 순순히 따르지 않겠다!'는 독립적 인격체로서의 존재감을 뿜어대서 부모가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 지 몰라 매우 힘들어 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18개월 이전의 육아


백일의 기적이라는 것이 아기가 백일이 되기까지 잠도 못 자고 힘들어서 통잠 자는 시기인 백일을 손꼽아 기다리다 마침내 아기가 통잠을 자주면 그 때 하는 말이잖아요. 저는 그 말에 공감을 해 본 적이 없어요. 아기는 새벽에 알람시계처럼 깼지만 새벽수유, 수면부족 다 괜찮았어요. 아기 보면서 현수막, 가랜드 등 셋팅하며 혼자 셀프백일상 치렀고요. 육퇴를 해도 부모의 역할 등을 공부하며 육아의 연장이었지만 할 만 하다고 생각했어요. 원더윅스 때는 평소보다 조금 지친 감이 있긴 했었지만요. 그런 시간이 아기 돌까지 이어졌습니다. 돌 지나고 몇 개월 지나고부터 슬슬 체력에 한계가 느껴지더군요.

18개월부터 시작된 재접근기


저는 재접근기라고 해서 저처럼 힘들어하시는 분은 적어도 제 주변에선 본 적이 없는데요. 이어서 계속 얘기 하자면, 아기 돌 전에 체력을 너무 끌어 쓴 것 같아요. 육아는 단거리 달리기가 아닌데 말이에요.

산후조리원에서 어떤 분이 그러셨어요. 육아라는 게 몇 개월은 사랑으로 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 다 힘들고 지친다고요. (그러므로 지금부터 건강 관리 해야 한다! 는 취지의 말이었어요) 그 말이 육아를 하는 내내 머리를 맴돌았지만 공감은 못 했었는데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는 걸 깨닫고부터는, 왜 그런 말을 하셨는지 알겠더라고요.



하루종일 깨질듯한 두통, 음식은 먹기만 하면 소화가 안 되서 구토, 온 몸은 바스러지기 일보직전이라 이러다 죽을 것 같아서 급하게 수액도 맞으러 다니고 보약도 지어 먹었어요. 한 번은, 길을 걷다 쓰러질 것 같아서 병원에 갔는데 증상을 이야기 해도 의사분이 병명을 모르겠다 하더라고요.

하지만 이게 제가 비단 여자이고 기초체력이 약해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격투기 챔피언인 명현만씨가 이런 말을 하셨거든요. 차라리 훈련을 하고 경기를 뛰는 게 낫지 육아는 진짜 못하겠다고요. 이렇게 체력이 건장한 남자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게 육아인데, 물론 체력이 좋으면 보다 더 짱짱하겠죠, 하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육아는 누구에게나 힘들고, 그 힘듦을 피할 순 없는 것 같아요.

 



아기는 단 하루도 쉬지 않고 휘몰아칩니다. 그렇게 18개월이 됐어요. 하루종일 나불거리던 제 입은 꽤 잠잠해졌어요. 말을 하는 것조차 에너지를 쓰는 일이라 체력 분배를 해야 겠단 생각이 들어, 꼭 해야 할 때만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냥 앉아만 있어도 감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기는 시도때도 없이 저를 일으키고 안아달라고 하죠. 한 번 안을 때마다 팔이 바들바들 떨리지만, 아기는 알 턱이 없으니 (알 필요도 없고) 힘들고, 지치고, 하루종일 거의 넋이 나간 상태였어요.

  재접근기가 힘든 이유 (주관적인 경험담)   


1️⃣ 의도적으로 부모의 인내심을 시험해요.

컵으로 물을 잘 마시다가 갑자기 바닥에 쏟아요. "이러면 안돼." 저는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가져온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이번에는 식탁에 쏟아요. "이러면 안 되는거야."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행위가 아닌 동작을 하고나서 제 눈치를 보며 씨익 웃는 것은 저의 반응을 보기 위함이에요. 이 정도 선에서는 엄마가 어떻게 반응할까를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잠시 뒤 먹던 밥을 내팽개치고 러닝타워에 올라가 정수기 옆에 모아둔 젖병 부속품을 하나 하나 바닥에 던지기 시작합니다.



엄마의 반응을 보기 위해 밥도 안 먹고, 잠을 안 자려고도 해요. 한 번은 재우려고 안았는데, 안기만 하면 내려놓으라고 해서 내려줬더니 기어코 12시까지 놀다가 결국 눈이 감겨 자더라고요. 중간 중간 "이제 그만 잘까?" 라는 저의 말에 고개를 내젓고, 잠들기 바로 직전까지도 절레절레. 눈이 다 감겼는데도 절레절레.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 말에 응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보여 당황스러웠어요.

2️⃣ 기초체력 이미 바닥났건만.. 여기서 더 떨어져요.

안아달라고 하는 횟수가 정말 많아졌어요. 그건 괜찮아요, 내새끼 안아주는 건 아무리 힘들어도 좋아요. 근데 안아달라고 해서 안아줬더니 이곳 저곳 다 깨물고 박치기 하고 얼굴 때리고 귀 잡아 뜯고 무차별 공격을 가할 땐 정말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모르겠어요. 그리고 또 자야 할 때, 이만 자자는 소리에 꼭 웃으면서 도망 가요. 그러다 안아들고 재워주려고 토닥거려주면 내려놓으라고 발버둥을 쳐요. 이 때, 눈을 감고 심호흡, 이 깍 깨물기, 다른 생각 하기, 오은영 선생님의 말씀 떠올리기 등 안간힘을 써야 아기에게 화내지 않을 수 있어요. 재접근기는 엄마에게 안정감을 얻고 싶은 동시에 독립하고 싶어하는 양가적 감정이 존재하는 시기잖아요. 그걸 하루내 몸으로 다 받아주려니 때로는 몸에서 열이 난다는 걸 물리적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입니다.

3️⃣ 인내심 한계, 내게 실망, 자존감 하락

아이에게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한 날,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나는 육아를 잘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예쁜 아기가 나같은 엄마를 만나서, 나 때문에 너도 나중에 약자에게 화를 내면 어쩌지... 사실 저는 이름 두 글자를 크게 부른 것에 지나지 않지만 저는 저의 그런 태도에서 큰 자괴감과 실망감 그리고 자존감 하락을 얻었어요.

왜 사람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크면 클수록 자괴감에 빠진다고 하잖아요. 저는 그동안 잘 해왔고, 앞으로도 잘 할 것만 같았는데,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했던 모습을 제가 해 버리고 만 날은 자기혐오와 우울감을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그와중에 아기의 어린 시절 사진을 그렇게 봤어요. 숨죽여 울면서요.

 



직장에서 상사가 싫으면 뒤에서 흉이라도 볼 수 있는데, 육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아기 흉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그 모든 화살이 다 내게 와요. 순간이나마 아기를 미워했던 시간이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힙니다. 그렇게 자존감이 떨어지고, 이게 심해지면 육아 우울증이 되는거예요.

  나름의 대처 방법   


어차피 지나가는 과정, 아이 마음에 생채기를 남길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저는 이러한 노력들을 하고 있어요. 일단 체력을 아껴야겠단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었고요. 그리고 체력을 기를 필요도 있는 것 같아 운동으로는 필라테스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느끼는 필라테스 선생님


1️⃣
일부러 힘내려고 애쓰지 않기

저는 일부러 기운내려 하지 않아요. 경험상 그러면 체력에서 더 후폭풍이 오더라고요. 재접근기도 어느 기간이기 때문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어요. 그래서 책이나 활동지, 블럭, 역할놀이 등 에너지를 써야 하는 활동은 아이가 하자고 가지고 올 때까지 기다려요. 어차피 이 시기엔 부모가 아닌 아이가 주도를 하더라고요.

2️⃣ 책은 글자만 읽는다

저는 원래 아이가 책을 읽어달라고 가지고 오면 등장인물에 따라 맛깔나게 읽어주고, 때로는 내용을 아예 보지 않고 그림을 읽거나, 내용에 충실하게 읽을 때도 있고, 예를들어 비행기면 책이 날아가는 등 한 권으로 매우 다양하게 놀아요. 그런데 정말 힘든 날은 힘을 좀 뺍니다. 무슨 내용인지 생각하려 하지 않고 그냥 글자만 읽어요. 최소한 대사는 좀 살리려고 하는 편인데 정말 힘들면 노력하지 않아요.

 



저는 수다쟁이 엄마에요. (이 게시글 하나만 봐도 아시겠지만) 밖에서도 사람들이 있건 말건 나불대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도 쉬지 않고 나불거립니다. 그런데 이 말하는 행위 자체가 에너지를 많이 앗아가더라고요. 앉아서 말을 하는데도요. 그래서 책 읽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기 옆에서 저는 몰래 체력 보충을 해요.

3️⃣ 유독 힘든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곳 가기

너무 당연한 소리라 쓸까 말까 고민하다 쓰는데요. 힘든 시간에 좋아하는 장소에 가요. 저는 유독 오전을 힘들어 해요. 기운이 하나도 없어요 이상하게. 그래서 그 시간에 온갖 문센 수업을 다 집어넣었어요. 낯선 사람(선생님, 애기 친구 엄마)들을 만나면 뇌가 각성하게 되니까요. 저는 10시쯤 문센, 그리고 그 근처 애기가 잘 먹는 밥집에서 식사, 집에 돌아와 바로 방문수업 이렇게 셋팅을 해두었어요. 오전을 이렇게 보내고나면 오후에 확실히 체력이 좀 남더라고요.

저같은 경우 수업이었고요. 산책이나 혹은 식당, 아니면 육아동지를 만나러 가거나, 가까이 계시다면 부모님 댁에 가는 것도 좋겠네요.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재접근기를 겪는 아기의 특징 중 하나가 대근육을 쓰는 놀이를 좋아하는 것이잖아요. 엄마는 잠시나마 쉬고, 애기는 마음껏 대근육을 움직이며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생각해요.

4️⃣ 남편, 도와라

돕는다는 표현이 적절치 않은데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쓸게요. 그런데 어떤 집은 남편이 너무 바빠 육아를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저마다의 사정들이 다 있을거예요. 그래서 아빠가 육아 하는 시간을 늘려보세요! 라고 하기엔 좀 무책임 한 것 같고, 남편이 애기를 볼 땐 들어가서 쉬시거나 아예 집을 나가보세요. 저는 집에 있으면 안 방에 들어와 있어도, 밖에서 나는 소리 때문에 정신적으로는 온전한 쉼이 이루어지지 않더라고요. 계속 긴장하고 있어야 해서요.

 



그리고 이건 혹 남편분들이 제 글을 읽고 계실지도 몰라 하는 말인데, 엄마가 행복해야 애기도 행복해요. 꼭 아셨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스트레스 받기 시작하면 악순환이 시작 돼요. 아기는 더 징징거리고, 엄마는 끝을 모르게 우울해지고, 엄마는 애기를 탓할 수도
없으니 남편이나 애먼 데 화풀이를 하고, 아기는 그 옆에서 더 크게 울고요. 평화로운 가정을 위해 육아가 정말 힘든 것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고, 많은 것을 포기하고 인내하고 초인적인 힘으로 버티고 있는 아내를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쉬게 해주거나 그게 힘들다면 따뜻하고 감동적인 말 한 마디라도 해주세요. (예를들어, "oo는 당신을 엄마로 만난 게 가장 큰 복인 것 같아")

육아도 양보다 질이잖아요. 아기를 위해서 엄마도 휴식이 필요해요.

  아기를 위해 해야할 일  


감정적이고, 지나친 거절은 아이를 좌절시키고 자존감에 상처를 입혀요. 영어 수학 만큼이나 중요한게 사회성인데, 이러한 태도는 향후 아이의 대인관계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매 분 매 초 주의하고 있어요. 아기가 위험한 행동을 했을 경우 훈육이나 긴 설명 보다는 단호하고 간단명료한 말로 바로 제지를 하고 있고요.

그리고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이 안아주고, 괜찮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요. 하루가 다르게 커서 때로는 어린이 같지만 실은 발달상 아직 뇌 발달이 미숙한 아기잖아요. 그리고 성장의 다음 단계를 밟는게 얼마나 무섭고 긴장되고 떨리겠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스킨십, 애정표현을 아낌없이 해주는 일인 것 같아서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사랑을 표현하고 있어요. 내 품에서 안정감을 얻고, 세상을 탐색할 에너지를 얻도록. 그럼 자연스럽게 저와 아기의 애착관계도 긍정적으로 형성이 되겠지요.




대충 힘들다는 말을 참 길게도 썼네요. 하지만 힘든만큼 행복해요. 아이가 스스로 이것저것 막 해보려 하고, 터득하는 말이 하나 둘 늘어가고, 엄마 아빠 행동을 모방할 때는 정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아요. 물론 그냥 있을 때도 그냥 바라만 보는데 눈물이 날 정도로 예쁘지만요.

아기가 자고 있어요. 뭐가 불편한지 자꾸 뒤척거리네요. 곧 옆에 가서 저도 누워야겠어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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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힘들어서 그나마 밖에 있는게 덜 힘드니까 오늘은 하루종일 밖에 있었다. 그리고 7시 30분쯤 집에 왔다. 이제 저녁을 먹으려는데 역시나 안 먹는다. 기본 한 시간이다.

"밥 먹고 놀자", "한 입만 먹자" 소리를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다. 의자에 앉히면 내리라고 난리고, 내려주면 돌아다니느라 밥을 안 먹는다. (그래서 19개월인데도 아직 9키로 밖에 안 된다)

밥 먹는 시간이 고역이다. 나는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데 요리를 해도 어차피 안 먹고 거의 다 버리니까 하기가 싫다. 재료는 사두면 사용 하지 못 하고 썩히는 일이 다반사다.

머리를 부여잡고 있다가 하도 안 와서 설거지를 하러 갔다.

뒤를 돌아보니 아이가 수은 건전지를 들고 있었다. 원래 몇 개가 들어 있었던건지 모를 건전지를. 크기가 작고, 만에하나라도 혹시나 먹었으면 큰일이기 때문에 일단 아이에게 물어봤다. "이거 먹었어?"

먹었단다. "안 먹었어?" 도리도리. "먹었어?" 먹었단다. 나는 다시 애기 옷이랑 내 옷이랑 챙겨 입고 택시를 불렀다. 그런데 그 정신 없는 와중에 아이가 내 허벅지를 깨물었다.

정말 짜증이 났다. 구강기도 아니고, 입에 가져다 댔을 때 이상하면 먹지 않았을 것 같지만, 혹시 모를 일에다 아이도 그렇다고 하니 병원에 가려던 중이었다. 차라리 아기가 확실하게 얘기를 해주면 좋겠는데 어쩔 땐 두 질문 모두에 다 끄덕끄덕... (아기라 당연한 일이다)

그런 와중에 허벅지를 깨물렸는데 그간 숱하게 깨무는거 아니야, 때리면 안돼, 꼬집으면 아파를 얘기해 왔던 시간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아이에게 절대 짜증, 그리고 소리는 지르지 않겠다고 다짐 했는데 그 순간, 화가 머리를 거치지 못하고 바로 입으로 나와버렸다.

"oo야, 아파!" 상황에 적절한 말 같아 보이지만 이 다섯 글자에 '도대체 왜 그러니, 몇 번을 얘기했니, 짜증난다'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고, 통화 중이던 남편도 아이도 다 깜짝 놀랐다.

남편은 왜 그러냐고 했고, 아이는 놀라서 허벅지를 호호 불어주었다. 이제까지 아프다고 하면 웃거나 그냥 말았는데 이 때처럼 다급하게 호호 불거나 쓰다듬거나 한 게 처음이라 순간 나도 놀랐다. 내가 무슨 짓을...

 


구리한양대병원 응급실에 갔다. 근데 대기가 길어 다른 병원을 추천하기에 서울아산병원 소아응급실로 갔다. 애가 밤 10시에 택시만 한 시간을 탄 거다. 오늘은 하필 금요일이었고, 어느 택시기사는 트로트를 크게 틀어놓고 콧노래를 부르며 거의 카레이서 뺨치게 달렸다. 금요일 밤이라 장사가 잘 된다나 어쩐다나.

밤 11시쯤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에 도착해 체온을 먼저 재는데, 밤이라 추울 것 같아 따뜻하게 입힌 내 탓 인가. 애기 체온이 37.5도가 나왔다. 코로나 검사를 해야 한단다.

정말 산 넘어 산이다. (tmi인데, 집에서 택시를 잡을 때 너무 먼 거리에 있는 택시가 배차되어 취소 했더니, 기사가 내게 욕을 했다. 심장이 두근 거렸다. 나는 원래 부당한 일을 겪으면 안 참는게 아니라 못 참는다. 근데 아기가 바로 앞에서 보고 있어 초인적인 힘으로 욕이 나오려는 걸 가까스로 참느라 심장이 두근 거렸다. 지금이라도 욕을 퍼부어주고 싶다)

 



"밤이라 따뜻하게 입혀 와서 그래요. 벗고 좀 이따 다시 잴게요" 안 그래도 낯선 데 왔다고 우는 애기 콧구멍에 그걸 어떻게 넣어. 겉옷을 벗고 대기하고 있는데 다행히 그냥 들어가란다. (엄마 체온이 정상이라 정말 옷 때문인 것 같다고 결론 내린 것 같다)

엑스레이를 찍었다. 낯선 곳, 낯선 사람. 아기는 눕기 싫고, 찍기 싫다고 내게 손을 뻗고 몸을 밀착하려 애썼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

엑스레이를 찍고 나서 다시 대기실에서 대기 하는데 평소 보여주지 않는 핸드폰으로 스노우앱에 들어가 엄마와 자기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변하는 화면을 띄워 주었다. 조금 웃어 보여서 다행이었다.

결과는 금방 나왔다. 쇠붙이라 엑스레이를 찍으면 금방 보인다는데 이 정도면 걱정 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소견.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전에 다른 의사에게 진찰 볼 때, 수은건전지는 식도를 타고 내려가면서부터 위험하다고, 상당히 위험하다고, 이것저것 내게 물어오셨어서 안그래도 더 긴장 했었는데.

추운 밤바람 맞으며 다시 택시를 기다렸다. 다행히 친절한 기사님을 만났다. 그런데 나 혼자면 그러려니 맘 놓고 가는데 아기를 안고 있어 어둔 밤 혹시 몰라 정신을 똑바로 차리게 되더라. 오늘은 생전 안 하던 실시간 위치 추적(안심메시지)도 남편에게 보내고. 아기는 집에 오는 길에 잠들었다.

삼십 분 정도 걸린 것 같다. 택시 뒷좌석에서 나는 펑펑 울었고, 기사님은 어린 애기가 말도 못 하고 얼마나 답답했겠냐고 아기 편을 들어주셨다. 아기를 꼭 안고 택시에서 내려 집에 도착해 아기를 내려놓고 이 글을 쓰기까지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수은건전지를 애가 먹었든 안먹었든 그 자리에 건전지를 놔둔 부모가 잘못이다. 그런데 말 못하는 애를 그렇게 닦달을 했다. "먹었어, 안 먹었어?" 이 질문을 몇 번을 한 건지...

허벅지를 깨물려서 짜증 낸 건 정말 느닷 없다. 평소 같으면 절대 화내지 않는다. 나는 일관성 없는 부모다. 최악이다. 아기의 불안을 키우는 일관성 없는 부모. 몸이 다 닳도록 노력 해도 아기는 바라고 바라고 바라기만 하니까 나도 지친 것 같다. 몸도 마음도 하루만이라도 좀 쉬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내 자신을 이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혹독하게 채찍질하며 인내해 온 모범생 내지는 성공한 사람들을 세상은 인정해 주는 것이다.

아기를 낳기 전, 나는 육아가 이런 일의 끝판왕일 줄은 전혀 몰랐다.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참아야 하고 아파야 하고 울어야 하는 일이었다. 정신과를 찾아야 할 지도 모르겠다. 육아우울증 인지도 모르지. 그런데 말만 번지르르한 위로를 받으면 상처를 받을 것 같아 겁이 난다. 마음이 너무 약해져 있어 믿고 들어간 곳에서 상처를 받으면 깊게 베일 것 같다.

눈 앞에 아기 용품이 제멋대로 어질러져 있다. 어느정도 치우고 자겠지만 전부 치울 힘은 없다. 내일은 제발 이렇게까지 어지르지 않았으면, 날 아프게 하지 않았으면, 밥 좀 제자리에서 잘 먹었으면, 양치질 좀 한 번에 끝냈으면, 하지 말라는 것 좀 하지 않았으면... 근데 그럴 일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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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로 인해 저번주는 수업이 없었어요. 단 한 주 빠졌을 뿐인데 기나긴 공백이 있었던 것 같네요. 선생님을 보자마자 아이는 잊지 않았다는 듯 해맑은 웃음으로 반갑게 맞이했어요.

8월 첫 째주 수업. 아이가 18개월에 들어서고 받은 첫 수업이에요. 언제나 그랬지만, 재접근기에 들고부터는 말그대로 '무섭게' 크고 있어서 주어진 재료들을 다른 태도로 바라볼까 아닐까 참 궁금했어요.


수업은 과일 이미지를 설명해주시는 것으로 시작됐어요. 오른쪽 노란 판에는 물티슈 캡이 붙어 있는건데요. 열고 닫으며 그 안의 이미지를 확인해볼 수 있는거예요. 왼쪽의 사진 8장과 똑같은 이미지가 있어서 서로 비교해 보는 과정이 인지 발달에 도움이 될 것 같았어요.

 


- 물티슈캡을 이용한 놀이는 엄마표놀이에서도 되게 유명하거든요. 진작 해주었어야 했는데 저는 아이가 18개월이 될 때까지 이거 하나 안 만들어주고 뭐했나 모르겠네요. 이 놀이는 물티슈 캡 안에 단추나 막대기, 폼폼이, 골판지, 수세미 등 촉감이 다른 것들을 넣고 아이가 열고 닫으며 원하는 것들을 만져보게 하거나, 모양·색깔·이미지 분류를 하기도 하고, 까꿍놀이를 해볼 수도 있어요. 아이 인지 발달은 물론 소근육 발달에도 좋은 놀이랍니다. (근데 왜 나는 여지껏...) 만들기 쉽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좋아해요. 저희 아이는 글루건으로 아무리 강력하게 붙여도 온 힘을 다해 다 뜯어낼 것 같지만, 그래도 해 줘 보려구요.


위에서 봤던 과일 친구들 중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딸기와 포도>였어요. 사진은 동글동글 포도가 데굴데굴 구르는 모습을 온 몸으로 표현하시는 와중에 저희 아이를 만나 덥석 끌어안으시는 모습이에요.

저는 이렇게 아이를 꼬옥 안아주시거나 안아서 들어 올려 주시는 스킨십을 타인에 대한 신뢰감이 생길 것 같아서 좋아하는 편이에요. (물론, 아이가 좋아하는 사람의 적정 수준의 애정표현에 한함)

포도가 데굴데굴 구른다는 것을 표현하신 이유는 앞전의 스토리텔링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뭐였더라.. 며칠 됐다고 내용을 고새 다 까먹었네요.


데굴데굴 구르는 포도에 이어 이번엔 빙글빙글 돌아가는 스핀벨이 등장했어요. 아이는 말렛으로 스핀벨을 스치며 벨소리를 들어보고 있어요. 이 스핀벨이라는 것은 도레미파솔라시도 8음이 있구요. 소리가 쨍하지 않고 아름답고 맑아요.

 


아, 좀 뜬금없다구요? 노크의 음악수업 날 악기들은요. 악기에서 주제를 떠올릴 수 있게 하거나 박자와 소리를 익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해요. 포도와 스핀벨의 공통점이라고는 '빙글빙글 돌 수 있다' 정도이지만, 매번 주제를 단번에 떠올릴 수 있는 악기를 어찌 만져보겠어요. 악기는 한정적인데요.

뭐가 됐든 이 시기엔, 악기를 만진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가령 트라이앵글을 친다고 해도 신체의 최소 두 부분 이상은 다른 방식으로 조작해야 하니까요.


포도가 다시 등장했어요. 삼각자료판에 보라색 폼폼이가 송알송알 포도 모습을 하고 있네요. 폼폼이 뒤에는 벨크로가 붙어 있어 아이가 뗐다 붙였다 할 수 있었어요. 그러고보니 저, 이제까지 단 한 번도 포도의 실물을 보여준 적이 없네요. 그래서 관심이 덜했나봐요.

선생님이 포도 이야기를 들려주고 계실 때 아이는 갑자기 스핀벨을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그 위에 폼폼이를 하나하나 올리더라구요. 위로 올라가 스핀벨 사진을 보면 아시겠지만, 뚫린 부분이 뭔가를 넣어보고자 하는 욕구를 이끌어냈나봐요.


노크의 스토리텔링은 수업의 도입부에 나오거든요. 이 날도 어김없이요. (수업 내용을 다 적을 수 없어 생략했어요) 그래서 이 날의 스토리텔링은 포도인 줄 알았는데 후반부에 딸기가 나오더라구요. 동그란 포도와 대비되어 도형 인지력 발달에 도움이 될 것 같았어요.


포도를 닮은 보라색 동그라미, 딸기를 닮은 빨간색 세모는 처음엔 삼각자료판에서 뗐다 붙였다를 하면서 눈사람도 만들어보고, 나비도 만들어보고, 애벌레도 만들어보다가 흥미가 떨어진 것 같을 때쯤 발판으로 탈바꿈이 됐어요. 씩씩하게 징검다리 건너듯, 걷고 있네요.


이제 마지막, 포도를 닮아 동그란 롤리팝드럼이에요. (사진엔 없지만 딸기를 닮은 트라이앵글도 있었어요.) 이제는 선생님이 하시는 행동을 정말 잘 따라해서 꼭 어린이 같아요. 이 날의 수업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답니다.





[여담] 서두에 잠깐 언급했다시피 아이에게 재접근기가 왔어요. 재접근기란 엄마와 본인이 분리된 존재임을 인식하고, 신뢰감과 안정감을 받고 싶은 동시에 독립하고 싶어하는 시기를 말하는데요, 그래서인지 '싫어', '아니' 와 같은 표현이 정말 많아졌어요. (얼마전엔 요리 하고 있는 제게 '맘마 안 먹어'라고..) 하루종일 불려다녀야 하고, 소파에 잠깐 앉을 수도 없어요. 하루 세 네 시간 정도가 아니라 아이가 깨어 있는 열 시간이 넘게요. 마의 18개월, 욕 나오는 18개월이라고 해서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 더 했어야 했나봐요. 신생아 때로 돌아가는거라고 생각을 해도 힘드네요.

왜냐하면 그 땐 체력이 있었으니까요. 1년 반동안 저는 제 체력을 아기에게 다 썼어요. (그래서 지금은 없는 시간 쪼개 운동으로 체력을 기르고 있답니다) 요즘은, 이러다 죽는 건 아닐까? 아이 초등학교 입학할 때까지 과연 내가 살아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네요.

물론, 아이는 정상적인 발달 단계를 잘 겪고 있는 거고 아이로 인해 저는 여전히 너무 행복하지만, 재접근기는 제 안의 아이를 토닥이느라 힘든 시기인 것 같아요. 이 시기가 지날 때까지 부디 잘 크고 있는 우리 아이에게 화를 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저와 같은 시기를 겪고 계신 부모님이 계시다면, 힘내시라는 말씀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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