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작품을 또 읽고 말았습니다. 그녀 덕분에 '심리스릴러'라는 장르에 흥미가 생겼거든요. 제 글을 보아오신 분들은 저자의 이름이 낯설지 않으실거예요.

 

 

[책] B. A. 패리스 - 비하인드도어 리뷰, 가스라이팅으로 버무려진 자극적인 심리스릴러 소설

제목은 생소할 수 있어도 이 표지는 익숙한 분들 많으실텐데요. 요즘 광고 많이 하잖아요, SNS에서. 저도 광고로 이 책을 처음 알았어요. 반은 속는 셈 치고 읽었는데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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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B. A. 패리스 - 테라피스트 리뷰, 죄책감은 무서운 감정이에요

그녀의 <비하인드도어>를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다른 작품도 읽어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비하인드도어가 더 재밌었네요. 이 책의 묘미는 후반부에 모두 몰려있는 것 같아요. '누가 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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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도 이미 유명한 작품들인데 제가 리뷰한 바 있거든요. 아직 못 보셨다면, 참고 해주시길 바라고요. 오늘은, 브레이크다운입니다. 역시나 이번에도 가스라이팅이 난무해요. 특히 이번에는 제가 범인을 맞추지 못 할 정도로 주인공인 캐시 만큼이나 맘고생을 많이 했는데요. 심리적으로 힘들더라고요. 과연... 어떤 내용이었을까요? 소개해볼게요. 참고로 <스포주의>입니다.

줄거리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날, 캐시는 숲속을 관통해야 하는 블랙워터라는 길을 선택해요. 남편 매튜가 절대 그 길로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요. 그 결과, 캐시는 그 곳에서 웬 여자와 눈이 마주치게 됩니다. 멈춘 차 안에서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던 여자... 누구였을까요?

비가 너무 많이 내려 당시에는 알지 못 했어요. 하지만 곧 뉴스 보도를 통해 알게 됩니다. 그 여자는 자신과 함께 점심을 먹은 적이 있는 제인이었다는 사실을요.

캐시는 죄책감에 휩싸입니다. 당시 무언가 이상했는데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고, 집에 돌아가 경찰에 신고해야지 해놓고도 잊어버렸어요, 경찰이 증인을 찾을 때도 뒤늦게 나섰고요. 그래서 그녀는 심리적 압박에 시달려요.

게다가 범인은 아직 잡히지 않은 상태인데, 타살이었대요. 그가 캐시의 차 번호를 외웠으면 어쩌죠? 그럼 자연히 집 전화번호도 알 수 있게 되는데요. 그 이후 캐시네 집에는 침묵의 전화가 매일 걸려옵니다.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면 상대는 아무 말을 하지 않는거예요.

캐시의 어머니는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셨어요. 어머니의 병수발을 해 온 캐시는 그 병의 무서움을 알기 때문에 자신에게도 그런 일이 생길까 몹시 걱정하는데요. 그런데 실제로 요즘, 자꾸만 의심스러운 일이 생깁니다. 사람들과의 약속을, 기계 사용법을 잊어버려요. 구매한 물건을 사고 또 사서 주위 사람을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하고요.

분명히 놓여있던 칼이 다시 돌아와보니 없고, 외출하고 와 보니 컵의 위치가 바뀌어 있고, 조용한 집 안에서 나는 기척을 기묘하게도 그녀만 겪어요. 그래서 그녀는 범인이 자신을 노리고 있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제가요, 캐시만큼이나 맘고생을 했다고 했었잖아요? 그런데 상황이 그래요. 캐시 입장에서는 약속을 하지 않았는데 성립이 되어 있고 느닷없이 기계가 말을 듣지 않고 뜬금없는 물건들이 도착해 있는거예요. 하지만 이렇다할 이유는 딱히 모르겠으니 내 잘못인 것만 같고...)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 레이철은 그녀가 이렇게 힘들어 할 때마다 위로를 해줍니다. 어느 날은 두 사람이 점심을 함께 먹으려 하는데 화장실에 다녀온 레이철이 급히 가 볼 데가 있다는거예요. 그리고 그녀가 나가자마자 웬 학생이 다가와 '제 친구가 당신의 친구 핸드폰을 훔쳤어요, 미안해요.' 라며 사과하죠.

핸드폰 속에는 캐시의 남편인 매튜와 레이철의 애정이 가득 담겨 있었는데요. 이제까지 캐시를 곤궁에 빠뜨렸던 모든 상황의 작전도 함께 적혀 있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예요.



 

 

캐시는 분노합니다. 창고에 칼이 하나 있었는데, 언론에 보도 된 실제 사건 현장에 사용된 칼이었어요. 그 칼은 왜 그 집 창고에 있는걸까요? 매튜가 범인이어서? 매튜와 연인인 레이철이 범인이어서? 캐시는 두 사람에게 복수를 하려고 레이철의 행주로 칼을 감싸고, 매튜가 범행 당시 집에 있었기는 하나 정말 그랬는지는 모르겠다는 말을 경찰에게 늘어놔요.

범인이요? 레이철이었습니다. 저만큼이나 캐시도 놀라요. 그저 복수하고 싶었을 뿐인데, 정말 그녀가 그랬을거라고는 생각지 못 했었거든요. 레이철은 캐시의 부모님이 제 2의 딸이라고 했을 정도로 그녀를 예뻐했는데, 자신에게는 유산을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에 화가나 캐시의 돈을 빼앗기로 매튜와 모의한 거예요. 그런데 매튜와 자신의 관계를 제인이 알게 되고, 그 사실을 캐시에게 말하겠다는 그녀를 죽이게 된... 그런 연유였던거죠.

참고로 매일 집에 전화를 걸어오던 사람은 매튜였습니다. 레이철 못지 않게 매튜도 어마어마해요. 그는 캐시와 한 집에 살았던 사람이에요. 캐시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동시에 가하는 가스라이팅이, 돌이켜보니 너무나 자연스럽고 소름끼쳐 혐오감이 들더라고요.


주인공, 캐시



 

그녀는 끝까지 불쌍하기만 한 건 아니었습니다. 문자를 보고 난 뒤 이제까지 자신의 생각과 어긋났던 사람을 모두 다시 찾아가요. 그리고 묻습니다. 내가 정말 그렇게 말 했었느냐고. '아니? 네 친구가 그러던데?', '남편이 그러던데요?' 사람들은 대답하죠. 나도 엄마처럼 치매에 걸린 건 아닐까 스스로를 의심하던 캐시. 그녀는 정상이었습니다. 망상증 환자도 아니었어요.

그리고 마침내 그들에게 복수를 하죠.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상황을 연출하고 제 3자가 그들을 이상한 사람인 것처럼 바라보게끔 만드는 수법. 그러다 운 좋게 제인 사건의 범인이 밝혀진거고요.

만일 내가 그 핸드폰을 받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두 사람이 어떻게 나를 배신했는지, 지금으로서는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슬픔에 빠져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못하게 될까봐 두렵다. 점박이 암소(가게 이름)에서 수화기를 통해 매튜의 목소리를 듣고 모든 속임수의 실타래가 풀리던 순간, 결심한 것이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편과 가장 친한 친구 두 사람을 동시에 잃어 속상한 마음이 컸을텐데 분노를 동력 삼아 진정한 복수란 이런것이다, 본때를 보여준 게 아주 멋져요.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으세요?

 

 

레이철



 

처음부터 제인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을 거예요. 이제까지의 일들이 모두 수포로 돌아갈까봐 그랬겠죠. 캐시의 돈을 뺏어야 하는데 매튜와의 관계가 들켜버리면 안 되니까 그녀의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엄연한 범죄를 두둔할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요.

아빠가 레이철에게 유산을 남기지 않아 얼마나 소외된 기분을 느꼈을지, 내가 이해했어야 했다. 어떻게 그렇게 무심할 수 있었을까?


부모님을 여의고 캐시의 부모님에게 사랑을 받고 자란 레이철. 제 2의 딸이라는 소리를 듣고 자란 그녀도 그들을 진짜 부모처럼 의지하고 따랐던걸까요? 진한 배신감으로 인해 일어난 비극이에요. 어떻게 나에게는 유산을 남기지 않을 수 있는지 레이철은 이해할 수가 없었대요.

사실 캐시는 레이철의 마흔 살 생일 선물로 집을 사 두었어요. 생일에 맞춰 주려고 했던 거지요. '선물을 조금 더 일찍 주어야 했던 걸까?' 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레이철은 착한 친구를 두었었답니다.



 

 

남편 매튜는 레이철에게 끌려다닌 인상을 남겼기 때문에 따로 언급을 하지는 않을래요. 저는 처음엔 매튜가 범인인 줄 알았어요. 캐시가 집에서 이상한 일들을 겪을 때마다 그녀를 위로할 뿐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는 않았거든요.

그러다 나중에는 캐시가 범인이 아닐까도 생각 했었습니다. 건망증이 너무 심해 제인을 죽인 이유를 무의식 중에 잊어버린 건 아닐까 싶었어요. 친구 존이 범인인 것 같기도, 범인은 따로 있는 것 같기도 했는데, 제 머릿 속 용의자 선상에 레이철은 없었기에 결과가 더욱 충격으로 다가왔었습니다.



 

 

저는 이번에 깜빡 속아 넘어갔어요. 여러분은 어떠셨어요? 초반에 눈치를 채버려서 책 자체가 재미 없었다는 분도 계셨는데, 저는 그 분이 눈치가 참 빠른 분인 것 같아요.

이전에 읽었던 저자의 책들과 비교하면 흡인력은 역시나 마지막 100장 정도에 몰빵이 되어있었던 것 같고요. 소재는 역시나 참신했습니다. B. A. 패리스는 일상 생활에서 벌어지는 막장 스토리를 너무나 잘 풀어 써요. 어딘가에서는 정말 일어날 것만 같은 일들이에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이은해 사건이 생각 났습니다. 내가 믿고 소중히 여기는 누군가가 나를 가스라이팅 하고 있다면. 언젠가부터는 그 사실을 내가 눈치를 채겠지만, 그 때 즈음엔 이미 내가 나보다 그 사람을 더 사랑하고 있어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가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임을 깨닫게 되지요. 심리를 조작해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것은 아니, 사람의 기능을 망가뜨려 놓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을 가지고 놀겠다는 말과 같은데 이건 개중에서도 아주 사악한 짓 같아요.



 

 

의사마저도 두 사람의 계략에 놀아나 그녀가 정신증 환자인 줄 알고 약을 처방해 주었습니다. 만약 내가 캐시의 입장이라면, 이 세상에 나 말고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고 있다면...

내가 나를 끝까지 믿어줄 수 있을까요? 세뇌가 얼마나 무서운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B. A. 패리스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껴요. 내가 내 말을 잘 들어줘야지. 나를 더 많이 사랑해줘야지, 하고요. 이번에도 역시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글을 참 맛깔나게 쓰는 이 작가. 피 한 방울 안 나오는데 어쩜 그렇게 사람을 피 말리게 하는지 몰라요. 리뷰는 이만 마칠게요. 제 글을 읽고 궁금한 점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댓글 남겨주세요. 읽고 내려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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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비하인드도어>를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다른 작품도 읽어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비하인드도어가 더 재밌었네요. 이 책의 묘미는 후반부에 모두 몰려있는 것 같아요. '누가 범인이지?' 의심하고 궁금해하느라 내내 기가 빨렸는데, 진상이 밝혀지고 그 사람이 실은 어떤 인간이었는지에 대해 서술하는 부분은 그야말로 짜릿 그 자체. 내용 소개해볼게요.

 

테라피스트 내용(스포주의)



앨리스와 레오는 짧은 기간, 그것도 주말 연애를 마치고 결혼에 골인합니다. 호화로운 주택에 함께 살게 돼요. 이 주택단지에는 다른 부부들도 살고 있는데요. 탐신네, 이브네, 마리아네, 로나 아주머니네... 이웃들의 눈길이 곱지만은 않네요? 텃세를 부리는걸까요?

앨리스는 알게 돼요. 이 집에서 누군가 죽었음을. 그것도 타의에 의해서. 죽은 사람은 니나라는 여자이고, 범인은 올리브라는 남자로 둘은 사이 좋은 부부였다는데요.

니나가 바람을 폈대요. 그리고 그 사실을 그녀는 이웃인 로나 아주머니에게 털어놓았다고 해요. 그 다음날 그녀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 돼요. 로나 아주머니는 진술했어요. 니나가 죽기 전, 올리브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 걸 봤다고. 하지만 올리브는 그 날 집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공원에 앉아 있었다고 경찰에 진술했어요.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걸까요?

사건은 올리브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종결이 되버리고 맙니다. 그가 정말 진범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이제 가릴수가 없어요. 이웃들은 찜찜하지만 한편으론 안심하며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합니다.

올리브가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고 호소할 때 이웃들은 불안했거든요. 니나가 바람을 폈다고 했죠? 올리브가 아니라면 바람을 피운 사람이 죽였을 가능성이 크겠죠. 그런데 그러려면 그 자가 누구인지 이웃들을 의심해봐야 하고, 그 중엔 내 남편도 속해있기 때문에 내 남편도 의심을 해봐야 해요. 그리고 만일 바람 피운 상대가 범인이 아니라면, 그 사람의 와이프가 니나를 죽일수도 있는거예요. 이러한 가능성들이 그들의 숨통을 조였던 모양입니다. 올리브가 사건을 끝내주자 이웃들은 더는 파헤치려 하지 않고 일상으로 돌아가요.

 

앨리스의 혼란


앨리스는 이웃들과 친하게 지내기 위해 집들이 파티를 엽니다. 그런데 그 날, 웬 남자가 나타나요. '누가 아직 안 온걸까?' 어림짐작 하던 앨리스는 그 자가 '팀'이라고 확정을 지어버려요. 그는 자신이 누구라고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파티가 끝나고야 알았어요. 팀이 파티에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럼 그 남자는 누구였을까요? 그는 앨리스가 집에 혼자 있을 때 자신이 죽은 니나 사건을 재조사하는 사립탐정이라고 소개하러 오는데요. 앨리스는 이 니나 사건을 그냥 흘려들을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죽은 자신의 언니 이름이 니나였거든요. 그리고 언니를 그렇게 만든 사람이 자기라는 죄책감을 평생 갖고 살고 있었고요. 판결에서마저 무죄를 받아 벌을 받을 기회마저 빼앗긴 앨리스에요. 앨리스는 옛날부터 '니나'라는 이름만 들으면 집착 수준으로 그 사람을 들여다보는 습관이 있었어요.

사립탐정 즉, 토머스는 자신이 올리브 누나의 부탁을 받아 움직이는거라고 얘기해요. 올리브의 누나는 현재 아파서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이며, 자신의 동생은 무죄이니 진실을 밝혀달라고 부탁했는가봐요.






앨리스는 당시 자신의 남편 레오를 의심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 집에 커다란 비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레오가 자신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신뢰가 불신으로 변한 상태에서, '그가 니나를 죽이고 범인이 범행현장에 다시 오듯 돌아온 건 아닐까.' 퍼즐을 맞춰보는 중이었죠.

남편에 대한 의심을 키우는 증거들은 속속들이 등장합니다. 일례를 얘기하자면 여권. 여권을 확인하니 그 안의 이름은 앨리스가 알고 있는 이름이 아니었어요. 여권 속 이름으로 인터넷에 검색을 하니 그가 실은 감옥 생활을 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요. 다른 집 다 놔두고 왜 꼭 이 집에 살려는 고집을 부렸는지, 왜 아내인 내게 이름을 거짓말 했는지... 레오를 향한 앨리스의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합니다.

비슷한 시간, 이웃사람들은 여전히 앨리스를 이해하지 못해요. 그나마 친한 사람이었던 이브는 앨리스를 이해하는 듯 보였지만 책의 후반부에 탐신이 "당신은 망상증 환자예요!" 라고 말할 때 평소와는 달리 이브가 탐신을 제지하지 않죠. 마치 어느정도는 그 말에 동조한다는 듯이요.

앨리스는 우리 집에 웬 남자가 왔었고, 그 남자는 사립탐정이며, 올리브 누나의 부탁을 받아 사건을 재조사 하고 있다는 얘기를 사람들에게 거듭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왜 끝난 일을 다시 화두에 올리느냐며 그녀를 못마땅해했죠. 특히 탐신이요. 그녀는 폭발해요. 당신은 우리 모두를 의심하고 있고, 우리는 당신이 말한 그 남자를 보지 못했다. 이제 좀 그만하라고 말이예요.

생각해보면요... 토머스는 일주일에 한 번씩 앨리스네 집에 왔거든요. 그런데 이웃들은 그를 본 적이 한 번도 없대요. 어떻게 된 일일까요?

 

반전


토머스는 로나 아주머니의 아들이었어요. 부모를 폭행하는 못된 아들, 실명은 존이었죠. 그리고 니나 사건의 범인도 그였습니다. 이웃들이 이제껏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이유는 로나 아주머니네서 앨리스 집이 매우 가깝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었어요.

 

"올리브는 누나가 없어요!"


토머스는 올리브 누나의 부탁을 받아 조사하고 있는거라고 했는데. 여느때처럼 그와 나란히 커피를 마시고 있다가 탐신에게 받은 문자가 촉발점이 되어 앨리스는 떨기 시작해요. 그리고 올리브에게 정말 누나가 없는지 확인을 해달라고 레오에게 보낸 문자의 답장을 토머스가 목격한 순간, 그의 본모습이 드러납니다.

그는 앨리스를 묶고 그녀의 머리를 잘라요. 그는 다른 사람의 심리를 조종하고 이용하는데 기쁨을 느끼는 성격장애자였어요. 로나 아주머니는 뒤에서 황망히 그를 바라만 보는데요. 폭주기관차인 아들을 말릴 힘이 없어서요. 그 순간 로나 아주머니의 남편인 에드워드 아저씨가 충격으로 돌아가세요. 앨리스와 로나 아주머니는 용기를 내서 토머스를 쓰러뜨리고, 무차별적으로 타격을 가해 그에게 벗어나요.

앰뷸런스 안에서 앨리스와 로나 아주머니가 나누는 대화가 인상적이에요.

 

"아주머니가 제 목숨을 구했어요. 그게 아주머니가 한 일이에요. 아주머니가 제 목숨을 살렸어요." 그리고 몸을 내밀어 아주머니에게 키스했다. "고마워요." 그것으로 충분하지는 않았으리라. 하지만 자신의 아들을 죽인 엄마에게, 잘 알지도 못하는 남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모자를 하나로 묶고 있던 탯줄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도록 그토록 잔인하게 잘라버린 엄마에게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때 아주머니가 갑자기 기운이 나는 듯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내가 댁의 목숨을 구했다면, 날 위해 한 가지만 해줄래요?" 아주머니가 물었다. "그리고 우리 바깥양반을 위해. 바깥양반도 그걸 원할 거예요." "물론이죠, 뭐든지요." "살아요."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당신 몫의 인생을 살아요. 지난 20년 동안 과거 속에서 살았잖아요. 이제 온전한 삶이 주어졌으니 죄책감 때문에 인생을 낭비하지 마요. 인간은 누구나 실수하는 법이니까."


'니나' 에서 이제 그만 벗어나라고요. 죄책감으로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고요. 물론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치러야합니다. 하지만 앨리스의 경우는 사고였어요.

이런 말도 나옵니다. '법원이 나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무죄를 선고하면서 나는 처벌받을 권리를 빼앗겼고 그때부터 스스로를 벌해왔다.' 고... 앨리스가 잡은 운전대의 차 안에 사랑하는 언니와 엄마가 있었고 모두에게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났던 것 뿐...

 

그래서 그런거였다. 그가 옥살이를 했다는 걸 알았을 때 용서하지 못한 건 그의 범죄 이력이 아니라 질투 때문이었다. 나는 과거에 발이 묶여 있는데, 그는 자신이 저지른 짓을 속죄하고 새인생을 살 수 있었다는 사실이 샘났다. 안 그래도 그가 니나에 대해 말해주지 않아서 당황하고 있던 차에 혼란이 더욱 심해졌고, 그래서 신뢰해도 될 것 같은 그 사람에게, 로나 아주머니의 은밀한 경고로 의도치 않게 생긴 불신과 의심이 주변 사람들과의 우정을 물들이기 시작하면서 한결같음을 상징하게 된 그 사람에게 의지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토머스 그레인저의 탓으로 돌릴 수 있는 건 오직 그가 밤중에 집 안을 어슬렁거리며 내게 두려움을 주입시켰다는 것 뿐이다. 나머지는 내가 그의 손에 놀아나서 자초한 일이다.


죄책감으로 시작된 상상이 결국은 앨리스를 집어삼켜 일어난 비극. 내 주변 사람들을 의심하고 끝내는 나조차도 믿을수가 없게 되는. 한마디로 주제에 딱 맞는 주인공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앨리스는 토머스에게 놀아났어요. 그가 만들어놓은 판 위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게임말 같았죠.

생각해보면 죄책감은 얼마나 무서운 감정인가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머리를 마비시키죠. 죄책감으로 인해 다른 사람을, 나를 슬프게 하는 일도 서슴지 않아요. 앨리스는 로나 아주머니에게 삶의 큰 지혜를 배웠어요. 작중의 앨리스처럼 죄책감으로 내 삶을 갉아먹고 있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제 글을 읽고, 괴로운 그 감정에서 벗어나면 좋겠어요. 토머스처럼 내 그 감정을 이용하는 사람이 나타나기 전에요.






토머스의 정체가 드러나기전까진 누가 누구를 해하지도, 그런 시도를 하지도 않는데 쫄깃한 긴장감이 인상적인 책이었어요. 근데 영화로 치자면 마지막 10분을 위해 모든 시간에 누군가를 의심하고 실망하고 의심하고 실망하고의 연속이라 저 개인적으로는 조금 지치고 힘들었던 책이었기도 합니다. 재미가 후반에 너무 몰빵되어 있어요.

 

다들 올리버가 니나를 죽였다고 그렇게 빠르게 인정한 데는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 어쩌면 그들이 누군가를, 니나와 바람을 피웠다고 의심되는 서클의 누군가를 보호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그게 누구일까?


이 긴장감을 너무 오래 가져가야 해요. 전에 읽었던 저자의 <비하인드도어> 같은 경우 주인공의 본모습이 빨리 드러났고, 그 후 각기 다른 씬들이 속도감 있게 진행됐기 때문에 읽는 재미가 있었는데...

그래도 다른 책을 또 읽어보려 합니다. 내용적으로는 조금 루즈한 편이었으나 가독성은 좋았거든요. (저자의 장점인 것 같아요.) 다음에 읽어볼 책은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작품이면 좋겠어요.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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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생소할 수 있어도 이 표지는 익숙한 분들 많으실텐데요. 요즘 광고 많이 하잖아요, SNS에서.


저도 광고로 이 책을 처음 알았어요. 반은 속는 셈 치고 읽었는데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해요. 심리스릴러라는 장르를 확실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내용(스포주의)

 



그레이스는 평범한 30대 여성이에요. 밀리라고 하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동생을 키우고 있고요. 왜 '키우고'있느냐 하면, 부모님이 밀리를 거두기 싫어해서 그레이스가 동생을 책임지고 있거든요.

어느 날, 공원이었어요. 그레이스와 밀리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잭이라는 남자를 만나게 돼요. 훗날 잭은 그 날 공원에서의 만남으로 그레이스에게 첫 눈에 반했다고 합니다.


40대 변호사에요. 남편에게 매맞는 아내들을 변호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잘생겼어요. 모두에게 친절하고, 유능한 직업을 가진 그에게 사람들은 호의적입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남들에게 말 못할 비밀은 있는데요.

어릴 적, 잭의 아버지는 어머니를 정신적으로 괴롭혔어요. 지하실 같은 곳에 가두고 공포스러워 하는 어머니를 보고 즐거워 하곤 했죠. 그런 어머니를 보며 잭은 처음엔 아버지에게 경멸을 느꼈지만, 시간이 갈수록 감정이 변모하여 그를 존경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지하실에서 나오려 애를 쓸 때, 그걸 막으려고 어머니를 때리기 시작해요. 그러다 어머니가 죽고 마는데요. 잭은 그 죄를 아버지에게 뒤집어 씌워요. 그렇게 아버지는 감옥에 갑니다.

경찰이 왔을 때 소년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였고 자신은 어머니를 보호하려 했다고 말했어. 그래서 아버지는 감옥에 갔고 소년은 기뻤지. 소년이 나이가 들자 그 역시 아버지가 그랬듯 자기만의 사람을 갈망하기 시작했어. 원할 때마다 얼마든지 공포를 주입할 수 있는 사람, 계속 숨겨둘 수 있는 사람,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사람.


이건 그레이스와 잭이 결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잭이 해준 이야기에요. 잭은 이 이야기 속의 소년을 자기라고 칭하지는 않았지만, 갑자기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어요.

(이 얘기를 하기 바로 직전에 잭은 그레이스를 방에 가두고, 앞으로 밀리도 가두겠다고, 내게 공포라는 맛을 보게 해 줄 사람을 찾아 헤매왔다고 고백했거든요. 그리고 절망적이게도 그레이스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 밀리를 목적으로 너는 이용할 뿐이라는 말도 해요.)

잭은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그러했듯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존재로 그레이스를 선택한거예요. 밀리를 약점으로 삼아 이용할 수 있겠다, 싶어서요.

그레이스


그레이스는 그와 결혼을 취소하려 애쓰는데요. 당연히 해주지 않죠. 그래서 그에게서 도망가려 해요. 하지만 그도 쉽지 않습니다. 그레이스가 난동을 부려 사람들이 도와주려고 다가오면 잭은 그레이스를 조울증이 있는 환자로 만들어서 그녀의 말에는 신빙성이 없다고 느끼게 해요.

그래도 그레이스는 도망갈 기회를 계속해서 만들어요. 하지만 그 시도는 번번히 좌절되고 맙니다.

잭은 상대가 공포를 느끼면 좋아하는 사람이었어요. 그 공포의 냄새를 맡기 위해 일부러 그레이스가 도망갈 수 있는 구실을 마련해두기도 합니다. 물론, 그가 마련해둔 장치이기 때문에 성공할리는 만무하지만요. 탈출에 성공하는 줄 알고 흥분했던 그레이스가 결국은 좌절과 무력감을 느끼는 걸 보고 잭은 기뻐해요. 그리고 네 생각을 내가 전부 꿰뚫고 있다는 얘기를 하죠.

"어디 있어, 그레이스?" 노래 부르는 듯한 나지막한 잭의 목소리가 중앙 홀 쪽에서 들려 더욱 공포스러웠다. 고요한 어둠 속에서 잭이 킁킁 냄새를 맡는 소리가 들렸다. "음, 공포의 냄새, 너무 좋아." 숨을 하아 내쉬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의 발소리가 자박자박 점점 가까워 와 나는 더욱 몸을 움츠렸다. 발소리가 멈췄다. 온 신경을 귀에 집중시키고 있는데, 뺨에서 그의 숨결이 느껴졌다. 잭이 속삭였다. "어흥!" 나는 안도감이 뒤섞인 울음을 왈칵 터뜨렸고 잭은 미친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작가가 말미에 '그레이스를 보며 독자는 답답함을 느낄 지도 모른다'고 얘기했는데, 저는 전혀요? 많은 사람이 그레이스처럼 행동했을 것이고요. 그 중 대다수는 중도에 포기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레이스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어요.

 



밀리


지켜야 할 존재가 있었으니까요. 부모님마저 밀리를 거두기 꺼려하는데, 그레이스는 온 마음으로 밀리를 끌어안아요.

밀리는 다운증후군이 있어 시설에서 지내고 있어요. 밀리는 결혼식 날 그레이스의 들러리를 서기를 원했어요. 하지만 잭이 계단에서 몰래 밀어버리는 바람에 할 수 없었죠. 그 때부터 밀리는 잭을 싫어해요. 하지만 밀리가 잭을 싫어하면 잭이 밀리를 위해 마련한 (끔찍한)방으로 하루라도 빨리 데려올 가능성이 있어, 그레이스는 밀리에게 잭을 좋아해야 한다고 강요해요.

밀리는 똑똑한 아이에요. 그래서 그레이스의 의도를 눈치채고 잭의 앞에서 잭을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대신 조지쿠니(조지클루니)는 싫다는 말을 계속 하는데, 조지쿠니가 바로 잭이에요.

그레이스가 잭 때문에 집에 갇혀 밖에 나올 수 없었기 때문에 밀리는 시설에서 외로웠어요. 잭이 전한 찾아오지 못하는 이유라는 것들이 '친구를 만나야 해서', '피곤해서'여서 더 그러했죠.

복수의 계기


그레이스가 탈출을 시도할 때마다 잭은 그녀를 잡고 벌을 줘요. 지하실에 가두거나, 밥을 주지 않거나 하는 식으로. 그래도 그레이스는 참을 수 있었어요. 계속 탈출을 시도해야 했죠. 왜냐하면 잭이 밀리를 '이 집'에 데리고 온다고 했거든요. '이 집'이라는 건, 잭이 마련한, 남들이 보기에는 으리으리한 집인데요. 그레이스에게 벌을 준답시고 가두는 지하실이라는 곳은 끔찍하기 그지없어요.

바닥부터 천장이 모조리 빨강으로 칠해진 곳이고요. 어느 날 잭이 그레이스에게 초상화를 그리라는 요구를 했는데, 그녀가 받은 사진에는 모두 매맞는 여자들의 모습이 담겨있었어요. 자신에게 의뢰를 하러 온 피해자들의 사진들이었죠. 그레이스는 구역질을 참으며 초상화를 그려요.

그리고 그 초상화를 그 빨간 방에 전시합니다. 잭은 밀리를 집에 데리고 오면 이 방에 가두겠다고 얘기해요. 그레이스는 그것만은 막아야 했어요. 왜냐하면 자신이 그 안에 가두어져 봤거든요.

복수


복수를 해야겠다고 그레이스는 다짐해요. 탈출이 끝이 아니라 이 남자를 죽여야겠다고요.

밀리가 지내는 시설에 갔는데, 밀리가 요즘 밤에 잠을 잘 못 잔다네요. 그래서 수면제를 먹고 있대요. 그런데 알고보니 밀리는 약을 먹지 않고 그 약을 모아두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레이스를 만나 '조지쿠니 나쁜 남자' 라는 말을 반복하며 이 약을 조지쿠니에게 먹이라고 해요. 그레이스는 그래서는 안 된다며 약을 버리는 척 했는데, 실은 옷소매에 약을 숨겨왔어요. 완벽한 계획을 위해 밀리마저 잠시 속입니다.

잭이 변호사잖아요. 지금 중요한 사건을 하나 맡고 있는데 이제까지 패소를 해본 적 없는 잭이 재판에서 지게 될 위기에 놓여요. 이 시점에 그레이스는 틈을 파고듭니다. 매일 위스키를 나눠 마시자고 해요.

그리고 잭이 패소하고 돌아온 날, 그레이스는 계획을 행동으로 옮깁니다.

위스키에 잘게 부순 약을 타 넣어요. 그리고 대화 도중 갑자기 잭의 얼굴에 위스키를 끼얹어요. 비틀거리는 사이 그레이스는 있는 힘껏 아래로 도망가고요. 하지만 어느새 쫓아온 잭이 그레이스를 지하실에 가두려 해요. 그레이스는 잭에게 매달려요. 매달린 채 바닥까지 내려온 그레이스는 그의 무릎을 꼭 껴안고 힘을 줘 그의 다리를 넘어뜨립니다. 넘어진 그를 지하실에 넣고 그레이스는 결국 문까지 닫는데 성공해요.

지하실은 안에서 열 수 없어요.

통쾌함


독자들에게 통쾌함을 주는 부분은 잭의 죽음이 다가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그레이스는 잭이 그랬던것처럼, 모두에게 피해자인 척을 하며 잭이 저와 통화가 안 된다고 호소해요. 그레이스는 홀로 태국에 와 있는데요. 잭이 서류 작업을 마치고 곧 따라온다고 했는데 연락이 안 된다며, 누구라도 좋으니 좀 도와달라고 그렇게 '남편 잃은 아내'이미지를 써요.

사람들은 그녀를 동정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할 말과 행동을 미리 예측하며 매 순간 순간 치밀하게 연기해요.

영국에 있는 잭이 홀로 목숨을 끊은 것 같다고 누군가 그녀에게 소식을 전해줍니다. 그레이스는 무너지는 척 오열해요. 약물과다복용으로 죽었다고 그러더군요.

연대할 누군가


에스터라는 인물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레이스와 잭을 의뭉스럽게 바라보는 사람이에요. 에스터가 실의에 빠진 그레이스에게 커피 한 잔 하자고 합니다. 그리고 그레이스에게 들려줘요. 잭은 약물과다복용이 아니라 탈수에 의해 죽었다고.

그걸 어떻게 알아? 남편이 얘기해줬대요. 에스터의 남편은 잭과 같은 변호사거든요. 그리고 잭이 죽어있는 당시를 목격한 사람이기도 하고요.

에스터가 갑자기 물어요. 잭의 마지막 모습이 기억나느냐고. 잭이 우리에게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해주었던 것, 손을 흔들어 주었던 것이 기억나느냐고. 그레이스는 에스터를 바라봅니다.

잭이 딱 한 번 사람들 앞에서 말실수를 한 적이 있어요. 그레이스를 감시하는데 정신이 팔린 나머지 말실수를 했던거죠. 그 때 잭은 밀리를 그들의 집 중 '빨간 방'으로 데려올 것이라는 말을 했는데, 에스터는 이 실수를 잊지 않고 있었어요.

그레이스가 목숨처럼 사랑하는 밀리를 끔찍한 그 방에 데리고 온다는 데 동의했을리가 없어요. 에스터는 내내 의문을 가져왔던 것 같습니다. 에스터는 그간 잭이 그레이스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은 것, 그레이스가 핸드폰도 이메일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등을 이유로 들어 퍼즐을 맞춰봤을거예요. 그리고 이 완벽해보이는 가족에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어느 순간 눈치챘겠지요.





물리적인 폭력을 당할 경우에는 흔적이 남아요. 하지만 정신적인 폭력을 당할 경우에는 피해자의 말과 그간의 정황 밖에는 달리 증거가 없습니다. 신호를 보내면 눈치를 채주는 것도 손을 잡아주는 하나의 방법인 것 같아요. 그리고 피해자는 그레이스처럼 지지 않으려는 마음, 독기를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아요. 쉽지 않겠지만요.

이 책의 원제인 'Behind Closed Doors'란 '은밀히, 비공개로'라는 뜻으로 '밀실 회담을 나누다'등에 주로 쓰이는 표현이다. 공식적인 일들도 밀실에서 부당하고 야만적인 방식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아직 너무나 많은 이시대에, 더구나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현관문을 닫은 후 개인적인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어떨까? 공식적으로는 누구에게나 좋아 보이는 행동을 하고서,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는 자기만의 사악한 욕심을 채우기 위한 밀담을 나누는 이들처럼 모든 것에 철저히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며 살아가는 인간은 오늘날에도 존재한다.


요즘은 가스라이팅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더라고요. 아내를, 남편을, 아이들을 괴롭히는 교묘한 덫. 다양한 형태로 이미 많은 가정에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동물적 폭력은 문명의 발달에 따라 분명 줄어들지만, 심리적 폭력은 더욱 교묘하고 기이한 형태로 현대 사회에서 개인 삶의 틈새를 파고든다. 이 소설의 악당 잭 역시 아내에게 따귀 한 번 때리지 않고 자신의 가학적 욕망을 관철한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까 싶지만, 멀쩡한 사람을 정신병자로 몰아가고 노예로 부리고 감금하는 일 정도는 요즘도 너무나 흔하게 일어난다. 어수룩한 사람들만 당하는 일도 아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그레이스도 충분히 지성인이지만, 남보다 조금 부드럽고 감성적인 성격에 무척 사랑스러운 동생이 있다는 것이 결정적이 약점이 되어버린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상대의 약점을 건드리는 일에 주저가 없는 사람들. 저는 가정에서의 문제 뿐 아니라 보이스피싱과 염전노예도 떠올랐어요. 심리적 폭력이 갈수록 교묘하고 기이한 형태로 개인 삶의 틈새로 파고든다는 말이 소름끼쳐요.





작가의 다른 책을 읽어볼 생각이에요. 그 유명한 '테라피스트'를 읽어보려고 하는데요. 심리스릴러라는 장르에 흥미가 생겨서요. 후기가 궁금하다면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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