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권위 있는 미션계 여학교 성마리아나 학원. 그 곳에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학생회와 거부할 수 없는 유행처럼 매력적인 연극부가 있다. 여학교다보니, 안경 쓴 모범생 사춘기 소녀들에게도 '왕자님'이 필요했는데 학교의 대대적인 연례 행사나 축제를 치를 때 당연히 제껴두고 진행을 하는게 당연했던 저 멀리 먼지 쌓인 '독서 클럽'의 왠지 모르게 멀리하고 싶은 소녀들이 느닷없는 일을 벌임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독서클럽'에서 기억해 두어야 할 이름은 단연 '아자미'다.
그녀는 못생기고 조용해서 학교에서 밀려났지만 성적은 톱을 달리는 독서클럽의 부장이다. 그녀는 17세기 프랑스의 유명한 문필가였던 시라노 드 베라주라크 (1619~1655, 기형적으로 큰 코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고 친구를 위해 대필하는 편지 속에 마음을 담아야 했던 시라노의 낭만적 사랑)에 푹 빠져있었는데 때마침 전학 온 베니코에 자신의 낭만을 뒤집어 씌워 '왕자님 만들기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성마리아나 소녀들은 이번에도 당연히 매력적인 연극부에서 자신들의 동경심을 쏟아부을 왕자님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지만, 아자미의 치밀한 연출과 그녀의 충실한 강아지 쓰보미를 신문부의 진성S 가네다 미치코에게 하룻밤 상대로 넘겨줌으로 판은 확실히 뒤집히고 만다.
연극부의 뜨거운 항의를 뒤로 하고 소녀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베니코는 완벽한 인형이 되어 그 해 '왕자님'에 선출 되었으며 현대판 드 베라주라크, 아자미의 꿈을 이루어 주었다.
고교 생활에 잊지 못할 추억을 쌓은 아자미의 다음 행동은 무엇이었냐고? 현명하고 똑똑한 소녀였으므로 그녀는 입시 준비를 위해 공부에 몰두했고, 원하는 대학에 합격까지 했다. 어느 날 성마리아나 학원에 전학 와 클럽 부장의 요구에 자기 자신을 버리고 '왕자님'타이틀을 얻었던 베니코는 그럼 어떻게 되었을까? 이 대목에서 베니코가 어디까지 본성을 숨기고 살았었는지 가늠이 된다.
그녀는 불량 소년을 만나 임신을 하고 학교를 중퇴한 후 결혼 하겠다고 학교에 이야기 한다. 그녀를 흠모하고 있던 무리들은 자기들이 추종했던 아름다운 '왕자님'의 추악한 본모습에 너나 할 것 없이 격분을 감추지 못한다.
"죽어버려! 죽어버려! 죽어버려!" 어쩌면 생애 처음 맛보았을 얌전한 성마리아나 여학생들의 들끓는 미움이었을 것이다.

제 1막의 어설픈 동경심(불량소년 이미지)이 미숙하지만 사과처럼 풋풋했고, 귀찮지만 미쳐날뛰게 내버려두고 싶을만큼 귀여웠다고 하면 이상해보이려나. 모두가 동의하는 순리를 만들어 그들만의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게 영화화 된다면 색감 참 예쁘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 2막은 성마리아나 학원의 설립자에 관한 이야기다.
먼 옛날, 그녀는 5살에 아버지로 인해 수도원에 들어간다.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은 마리아나는 사랑하는 그의 오빠 미셸을 찾아 금서를 빌려주는 카페 형태의 '철학적 복음호박'에 발을 들이게 된다. 아버지가 알면 놀라 자빠지셨겠지만 '신은 없다!'고 소리친 내력으로 집에서 쫓겨난 미셸이 자신의 카페에서 무신론 철학서를 읽든 그 책을 사람들과 돌아가며 읽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책의 내용과 분위기에 마리아나는 충격을 받았지만 그녀는 오빠를 사랑했기에 아버지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 다른 남매는 무수히 많은 시간을 각자의 색깔로 보내고, 시간이 두 사람을 같은 장소에 나란히 내려 놓았을 때 깔끔한 복장의 수녀복을 입은 마리아나와 부평초같은 삶의 나날이 여지껏 계속되고 있는 미셸이 서로를 마주했다. 하지만 곧, 텅빈 호박처럼 나이만 먹은 미셸은 몸과 마음이 동시에 아팠다. 일본으로 하느님 이야기를 전파하고 돌아온 마리아나가 자신의 손을 부여잡고 간곡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는데도 몸이 너무 아파 눈을 뜰 수 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마리아나가 어떤 식의 기도문을 하느님께 올렸는지는 자세히 서술되어 있지 않다. 다만 그것은 대단히 애달픈 마음이었으리라고 미셸은 짐작할 뿐이다.

마리아나의 꿈은 일본에 수녀원을 차리는 것이었다.
미셸이 아프지만 않았어도 그녀는 충분히 자신의 앞에 내어진 계단을 밟고 부지런히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미셸은 밤새 자신의 손을 꼭 잡고 싸늘히 죽어 있는 마리아나의 못내 이루지 못한 소중한 꿈을 꼭 이루어 주겠다고 다짐한다.

한 소녀의 이루지 못한 꿈이 결국은 도달한 형태이긴 하나 우아한 모습의 마리아나 동상이 실은 남자라는 사실에 안개 같은 구름이 두둥실 떠다니는 학교 아래 소녀들의 웃음을 떠올리면 왠지 알아서는 안 될 비밀을 알아버린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이 든다. 이 놀랍고도 위험천만한 비밀을 독서클럽지에 기록한게 누구냐고?

그러니까 언젠가부터 학교를 배회하는 할아버지와 닉네임 '시궁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학교의 내력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잠자코 듣고 있던 시궁쥐는 어느 순간, 귀신이라도 마주한 듯한 눈으로 할아버지를 보았겠지. 할아버지의 인자한 주름 뒤로 시궁쥐가 기록한 제 2막의 이야기 때문에 명문 학교 성 마리아나 학원의 위상이 떨어지면 그 후의 이야기가 전과는 다른 분위기로 그려질 것이다.
만화책 같은 전개, 재밌을 것 같다.

100년의 시간 동안 마리아나 학원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일들이 일어났는데 그 중에서 흥미로운 일을 꼽으라면 <학생회 밤무대화 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학교 최대 권력의 학생회에 전학생이 무단 침입해 미러볼을 달고 춤을 추는 사건은 전무후무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성마리아나 학원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 자녀나, 재벌 3세 등 늘 풍족한 삶을 누렸던 소녀들이 들어오는 곳이다. 온실 속 화초 같은 소녀들이 신흥 졸부와 함께 수업을 받고, 밥을 먹고, 더 나아가 그들에게 선도받는 것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늘 부채를 소지하고 다니는 세 아가씨(이하 부채파)는 전학 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회에 당돌한 제안을 했다.

학교를 남녀 공학으로 바꾸고, 찬미의 노래를 부르지 말자, 그리고 우리도 학생회에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

협박에 가까운 어리광에 여린 마음의 소녀들은 부채파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고 결국 학생회 안에서는 당파가 나뉘어지는 사태에 이르고야 말았다.
부채파와 소녀들은 마리아나 동상 밑에서 노래를 하고, 춤을 추고 그 당시의 학교는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잘못된 의견이라도 다수의 지지를 받으면 맞는 것이 되어버리는 법이다.
그리고 부채파와 소녀들은 부채파를 '왕자님'으로 선출하기로 마음 먹는데 왕자님을 뽑기로 약속되어 있는 날, 밖에서 놀다 검거 되었다는 부채파의 소식이 소녀들의 귀에 들려옴으로 성마리아나 학원은 원점으로 돌아가기 위해 또 한번 대소동이 일어나게 된다.
소녀들이 가지는 왕자님의 의미는 부채파의 생각보다 큰 것이었기에 그들이 더 이상 갈 곳 없는 처지가 되어버릴 때까지 성난 군중은 가열차게 그들을 몰아넣었다.

결국 부채파의 발길이 맞닿은 곳은 먼지 쌓인 건물 아래 칙칙한 독서클럽.

독서클럽의 부장 다카시마 기요코와 하세베 시구레는 부채파의 행보를 미리 예상하며 그녀들의 동아리 가입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던 참이었다. 기요코는 부원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그들을 포용하여 맞아들여준다. 하지만 한층 풀이 꺾이기는 했어도 여전히 오만방자한 부채파의 노래와 춤은 부원들의 심기를 몹시 불편하게 했고, 부장을 원망하게 했다. 그래도 기요코는 그들을 내쫓지 않았다. 그녀는 몇 년동안 발길을 끊었던 독서클럽에 성큼성큼 찾아온 학생회와 맞서 부장으로서 당당한 면모를 보여주었고 조용히 만인의 신뢰를 되찾았다.

'우리는 무정부주의자들이다.' 기요코의 보호가 없었다면 부채파는 전학을 가야했을지도 몰랐겠다고 무사히 졸업을 한 부채파 중 '복숭아 색 부채'는 생각한다. 문화에 섞여 귀화한 아가씨가 없었다면 성마리아나 학원에 길이길이 남을 <학생회 밤무대화 사건>은 기록되지 않았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인물이 서기를 맡은 점이 놀라웠고, 매번 그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 '독서클럽'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그 중에서도 '복숭아 색 부채'의 존재는 반전으로 느껴질만큼 신선하고 새로웠다.

제 4막은 '루비 더 스타'의 야마구치 주고야에 관한 이야기다. 린코라는 독서클럽 부원을 졸졸 쫓아다니던 주고야가 그녀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해 락 밴드를 결성한 후 그녀에게 상처받은 마음을 노래하고 다니며 린코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이야기인데, 플롯이 맘먹고 풀어놓자면 꽤 광범위해서 한 편의 장편소설이 되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만약 독서클럽이 영화화 된다면, 소녀들의 열광적인 사랑을 받으며 노래를 하는 야마구치 주고야는 왜인지 모르게 1막에서의 베니코와 비슷한 이미지가 아닐까 라고 상상했다.
그녀들은 공통적으로 예쁘장한 외모에 슬퍼 보이는 눈을 가졌고, 길고 늘씬한 팔다리로 나른하고 느릿 느릿한 행동을 하며, 학원을 빠져 나오면 각자의 본성을 드러낼 수 있는 곳에서 어른스러운 미소를 지을 것 같다.

마지막 제 5장은 뚱뚱하고 못생긴 도와와, 50년 전에 마리아나 학원을 졸업해 현재를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멋진 여성 아자미의 이야기다. 아자미가 누구냐고? 드 베르주라크에 빙의해 베니코 왕자 만들기 프로젝트에 대성공한 사람이라고 하면 기억이 날려나.
학교 요청에 응해 좋은 연설을 들려주러 온 아자미는 50년 전과 같이 현재도 학교를 떠들썩 하게 만드는 이슈가 두둥실 학교를 감싸고 있다는 사실에 따뜻하고 묘한 기분이 된다.

그녀가 방문했을 당시, 소녀들은 '부겐빌리아 님'때문에 한시도 콩닥거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 '부겐빌리아 님'(이라고 소녀들이 상상한)은 수업시간에 빼앗긴 핸드폰을 부겐빌리아 라는 꽃과 함께 서랍이나 책상에 올려 놓아 주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려 어느 순간부터 소녀들에게 소위 '왕자님'이라고 통용되고는 했다.

우연히 벌인 친절이 이다지도 큰 사태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에 도와는 학교 안 어디서든 숨을 곳을 찾기 바빴다. 하지만 하필이면 이 때, 나름대로의 전통을 고유하고 있는 독서클럽 건물이 폐쇄 된다는 이야기가 나돌았고, 존경하는 아자미 선배의 연설 소식이 들려오자 도와는 정말 마지막으로 '부겐빌리아 님'의 모습을 보이기로 마음 먹는다. 도와가 넣은 것이 확실한 가방 안의 독서클럽지를 품에 안고 옛날의 독서클럽 부원들을 만나러 카페에 도착한 아자미는 한줌의 재가 되어 버릴 한 공간의 시작과 끝을 당시의 부원들과 함께 맞게 되었다.

100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살아 숨쉬는 독서클럽지가 도와나 도와의 후배의 손에서 또 후배의 손으로, 110년, 120년 계속 이어진다면 더 좋았겠지만 장편소설이나 시리즈물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 또한 자연스러운 맺음이었던 것 같다.

'독서클럽'은 클럽 부원들이 성마리아나 학원에서 벌어졌던 기억해둘 만한 일을 기록한 비밀 수첩의 내용이다.

퀘퀘묵은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보는 느낌.

그 구성은 무척 새로우며, 모든 내용을 아우르는 커다란 틀이 중심을 잡아주어 헤매지 않게 도와준다.
소재와 구성, 탄탄한 짜임의 삼박자가 서로 욕심 부리는 일 없이 매우 조화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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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군조> 6월 호에 발표한 이 작품은 그 해 <군조> 신인상과 제 75회 아쿠타가와상을 동시 수상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일본 문학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무라카미 류의 처녀작이라 많은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서 읽어 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그런데 현재의 명성과는 걸맞지 않게 이 작품이 처음 출간 되었을 때 일본에서는 이 책의 내용이 문학의 소재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큰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더불어 인간의 내면을 그리지 않았다는 비판과 함께 고뇌와 회한도 담겨있지 않은 작품이라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고 하는데 청춘들의 끝모를 비애를 느낀 건 비단 나를 비롯한 소수 뿐이었다는 말이 되나.

1970년대 이 작품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엔 무려 19세 미만 구독 불가 판정을 받으며 읽어서는 안 되는 금서 취급을 당했다. 나는 사람들이 성과 약 묘사에만 눈을 번뜩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29년 전 내가 아무런 자각을 포함시키지 않고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상실감'이다. 1970년대 중반 일본은 근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뤄 내고 그 대신에 무엇인가를 잃었다. 이뤄낸 것, 그것은 일본의 고유의 문화를 위한 것은 아니었고..." 그들의 방탕한 생활에 손가락질 하고 고개 돌려버리는 사람들은 내가 확신하는데, 그들의 상실감 따위 제 알바 아니다.

독자는 청춘을 허비한 이들의 당시 일본 사회 시대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 일본은 고도의 경제 성장과 동시에 무섭게 침투한 미국의 대중 문화로 인해 큰 쇼크를 먹었다. 미국 음악을 틀고 패션을 모방하면서 자신들을 '노란 인형'으로 취급하는 미군을 따라했다. 나라는 더욱 풍요로워졌지만 국민의 인간성을 돌볼 여력은 없었던 모양이다.

나는 무라카미 류가 이 작품에서 방황하는 이들을 통해 무분별하게 미국 문화를 받아들이는 사회를 나타내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와는 다르게 너무 '현실적'이라는 평을 받는 작가 답지 않은가.

너무나 첨예한 그의 글이 일부는 쉽게 읽히지 않아 싫다고 말하지만 담아야만 하는 이야기를 거리낌없이 이야기로 풀어내는 작가는 흔치 않다고 본다. ('자극적인 소재를 사용한 책을 애장하고 있어요.'라고까진 말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 책은 무려 작가가 23살에 발표한 것이다.
처절한 한 때를 보내고 있는 류의 또래를 누구보다 잘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 격변의 시기에 자신의 소리를 낸 것과 작품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음악에 대한 방대한 지식이 작품이 작가를 잘 만났구나, 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이와 같은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이 만약 우리나라에서 영화화 된다면 거침없이 파국을 향해 치닫는 이들을 위한 청춘 영화가 되어 퇴폐미 신드롬 같은걸 불러올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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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회 보일드 에그즈 신인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전직 만화가 지망생이었던 저자를 한껏 녹여낸 듯한 여주인공이 25살의 나이에도 불구 여전히 소녀같은 이유는 도쿠나가 케이가 순수한 감성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순정 만화 여자 주인공과 마흔 여섯살 아저씨가 실제로 눈 앞에 팔랑거리는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키는데 그래서인지 생동감 넘치는 말과 행동이 여느 책보다 풍부하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산업 스파이 앞에서 발을 헛디뎌 만화 원고가 우수수 쏟아지는 장면이라던가, "인생은 하룻밤의 쇼같은 거리고 생각해" 운전대를 돌리는 그의 무심한 옆모습에서 느껴지는 안정감과 노련한 표정은 의도하지 않아도 저자의 장기가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비밀을 갖고 같은 공간에서 일하게 된 두 사람이 비록 만화같이 멋스러운 엔딩을 맞이하진 못했지만 소설책 다운 교훈이 고개를 빼꼼히 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회사의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가짜 센터장으로 부임한 아저씨는, 만화 투고에 열심이지만 매번 고비를 마시는 청춘 소녀에게 흘리듯 격려와 응원을 건넨다.
'아야카, 회사에 들어올 때 매번 오른발부터 밟는 거 알아? 가끔은 왼발부터 밟아도 돼.' 나는 이것이 산업 스파이 주제에 늘 콧노래를 부르고 다니는 유쾌한 아저씨가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믿는 젊은이들에게 조금은 인생을 즐겁게 살아도 된다고 수줍게 이야기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몽실몽실 했다.
아야카는 그 말에 왼 발을 디뎌 자신의 만화 원고를 A급으로 승급시켰고 자신의 꿈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자신이 한 말을 기억을 할는지 모를 의문의 센터장은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 그렇게 끝나버린 이야기에 혹자는 깊은 탄식과 허무함을 느꼈을지 모르겠다.

나는 오랜 기억 속, 순정 만화를 손에 쥐고 울고 울었던 어린 날의 내가 떠올라 은은하고 달콤한 기분으로 책을 덮었다.

생동감 넘치고 어린 아이 같은 사람들이 보고싶다.
지나치게 날카롭거나 과장된 행동으로 사랑받는 인물들.

저자가 실은 아직도 만화가를 꿈꾸고 있다면 의문의 센터장처럼 나도 조용히 그녀를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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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국내 개봉 된 데이빗 핀처 감독의 <나를 찾아줘>는 극장 상영 후 관람객들의 높은 평점과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나도 별 생각 없이 영화를 보러 들어갔다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멍한 상태로 조용히 극장을 나왔던 기억이 난다.

<몸을 긋는 소녀>로 데뷔한 길리언 플린은 전 작품 영화화 확정으로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또한 '피가 난무하지 않는 서스펜스를 쓸 수 있는 작가(월스트리트저널)'라는 극찬에 걸맞게 그녀의 이야기는 더없이 조용하고, 나긋나긋한 여성들만의 분위기가 짙게 깔려있다.

<나를 찾아줘>에서 주인공 역을 소화한 배우의 온화하지만 지독하게 차가운 표정이 아직도 눈 앞에 아른거리는 걸 보면 저자는 <몸을 긋는 소녀>에서의 아도라와 카밀에게도 '양날의 칼'을 쥐어준게 틀림없다.

그들은 3대에 걸쳐 모녀간의 애증이 비극으로 치닫는 과정을 그들도 모르는새 여과없이 보여주었는데, 킬링타임용 장르 문학을 선택함으로서 현실의 두려움을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앤과 내털리의 범인 찾기에 몰입 시켜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던 것 같다.

이야기는 시카고에서 일하고 있는 카밀이 사건 취재 차 자신이 살았던 윈드 갭으로 이동하면서 시작된다.

가족과 친구가 있는 윈드 갭에 카밀이 쉽게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그 곳에서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마을 주민들의 동경을 받는 돼지 농장 실소유자이며 상당한 재력가이자 최고 부유층이다. 그녀에게는 앨런이라는 새아빠와, 이붓동생 엠마가 곁에 있었는데 그 누구의 환영도 받지 못한 채 마치 하숙인처럼 방을 빌려 쓰게 된다.

아도라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사건 취재를 위해 현장과 피해자 가족 등을 만나고 다니면서 그녀는 캔자스시티에서 파견 나온 강력계 형사 리처드 윌리스와 피해자 내털리의 납치 목격자, 아도라의 상류 사회 친구들, '엠마 패거리'와 여러 번 부딪히게 된다.
이붓동생 엠마는 조숙한 여중생으로 예쁜 얼굴로 술과 약을 하고 다니는 불량 소녀지만 집에서만큼은 엄마 말씀을 잘 듣는 똘망똘망하고 여린 딸이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관심이 없는지, 엄마 아도라는 언제나 고급스러운 원피스를 입고 가정부를 호출해 기름진 음식을 먹는다. 새아빠에게는 한 번도 '아빠'라는 호칭을 써 본 적이 없지만 누구도 고치라고 지적하지 않았다.

그녀는 엠마에게 발뒤꿈치가 밟히고 그녀가 먹던 사탕에 머리가 뒤엉키면서, 리처드와 여러가지 정보를 주고 받았고 마침내는 죽임 당한 피해자들의 공통 분모를 발견해내고 만다.

두 소녀들은 조용한 성격이 아니었고 아도라에게 과외를 받거나 관심을 받고 있던 아이들이었다. 그와 동시에 엠마는 죽은 자신의 여동생을 질투 할만큼 사랑 받고 싶어 하는 아이였다.

카밀은 2주가 넘는 시간 동안 윈드 갭에 머물면서 자신을 죽이고 싶어라는 아도라의 광기와, 죽은 여동생이 사실은 건강했음에도 병원에서 죽어가야만 했던 이유를 뒤늦게 알게 된다.

앤과 내털리는 과연 누가 죽였으며 뽑은 이는 어디에 숨긴걸까?

아도라는 '좋은 엄마'가면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건강한 자기 아이를 병원에 입원 시켜 아픈 아이로 만든 후 땀을 뻘뻘 흘려가며 간호했고,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남들이 봐주기를 바랐다.

희생하고, 헌신하는, 이상적인 엄마 모습.

그것은 전부 죽은 엄마에게서 그녀가 기대한 모습이었다.
이미 바람이 통하게끔 구멍이 뚫려버린 풍선에 자기 만족이라는 기름을 콸콸 붓는다. 그 기름은 그 사람을 모조리 집어 삼키고 마침내는 종식시켜 버리고 만다.

엠마는 누가 봐도 엄지를 치켜 올릴 정도로 예쁘다.
그 미모로 친구들을 휘두르고, 남자들을 주무르고, 아! 자신의 친구를 남자에게 서적으로 팔아 넘겨도 여왕처럼 추대를 받는다. 과연 부족함 없어 보이는 예쁜 이 여자 아이를 통곡하게 만들 수 있는 이가 세상에 있을까?
엠마는 아도라에게 알약을 받았다. 하늘색의 우유도 받아 먹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아도라가 엠마의 상태를 확인하러 왔을 때, 그녀는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해주었다. 그래야 모두가 행복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도라는 그 약과 우유를 카밀에게도 주었다. 그것들은 말라리아 예방약, 산업용 관장약, 항발작 알약, 말에 쓰는 진정제 등이었다. 카밀은 자신의 몸을 그어야 편안함을 느꼈기 때문에 독약임을 알면서도 그것들을 삼켰고, 그녀보다 조금 영악하고 예민한 엠마는 약을 먹고 잠든 척을 했다. 착한 어머니 노릇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아이는 죽여버리는 아도라 때문에 그녀들은 서로 다른 길을 택한 듯 보이지만 결국은 두 사람 다 자신에게 깊은 상처를 낸다.
엄마에게 화는 커녕 투정 한 번 부리지 못한 카밀은 답답하고 화가 날 때면 자신의 몸 구석구석에 단어들을 각인 시킨다. (온 몸이 타듯이 따끔거려도 마음의 가시가 더 깊고 날카롭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엠마는 자신이 받아야 할 관심을 다른 사람이 받을 때 깊이 분노한다. 특히 자기보다 못생기고 나약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관심을 받으면 더욱 그랬다. 그래서- 엄마를 내버려둠으로 사랑받고자 했던 행동이 다른 사람을 죽이고 말았다.
카밀 또한 엠마의 등을 씻겨줄 때, 지나치게 과잉보호를 할까봐 스스로 절제 시켜야만 했다.

이 가족을 파멸로 이끈 저주의 근원은 어디라고 해야 옳을까. 가난과 학대의 대물림도 눈에 보이는 거라면 차라리 잡아서 돈으로 처리 해버리면 쉬운 일일텐데 말이다.

저자 길리언 플린은 <몸을 긋는 소녀>외 다른 작품에서도 이러한 가족의 소통 부재로 인한 안타까움을 잘 녹여내고 있다고 한다. 그녀와 우리는 범인을 잡았지만 풀어야 할 문제는 모두의 몫으로 남겨놓았다.

가정 폭력처럼 무서운 것이 서로를 향한 무관심이라는 것. 이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껴서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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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삭막해지고 냉정해지는 세상의 안과 밖에 끼어 희망의 지평을 노래한 작가 13명이 뭉쳤다.
시대의 회상과 현실의 부조리함을 동시에 이야기 하는 30대와 40대들의 대조적인 시선이 신기했으며 작가 소개란의 생년월일을 참고 하면서 작품을 비교하는 맛이 썩 흥미로웠다. 이토록 다양한 관점들은 음식을 가져오기가 용이한 뷔페에서 떠먹여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단편소설 모음집이 가진 나른하고 편안한 색조가 하나 하나의 작품에 애착을 갖게 했다.

형용하기 어려운 그들의 공통적인 아름다움을 차치하고 지금 나의 머릿속에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작품은 서진의 '홈, 플러스'와 김곰치의 '졸업'이다.

무조건 악보대로 완주해야만 좋은 곡이라는 선생님의 호통이 피아노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앗아가버린 한창훈의 '그 아이'와, 코 앞에 다가온 지구 종말에도 솔직해지지 못하는 아니, 끝까지 겸손해지지 못하는 박민규의 '끝까지 이럴래?', 완전히 은둔형 외톨이의 시선에만 의지한 최진영의 '월드빌 401호' 또한 인상 깊었지만 소재의 참신함에서는 저 두 작품이 1,2위를 두고 다투는 용호상박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서진의 '홈,플러스'는 의뢰인의 청탁을 받아 사라진 이를 찾아주는 뱀파이어의 이야기다. 뱀파이어는 의뢰인의 피를 마셔야만 피에 함유 된 실종인을 향한 열정으로 가열차게 일을 할 수 있다. 사라진 아들을 찾아달라는 계모의 부탁을 받고 홈플러스에서 마주친 동규는, 그의 시야에 들어온 순간 계모의 열정으로 대책없이 덜미가 잡히고 만다. 영악한 동규는 자신의 잘못은 시인하지 않고 도망치느라 다리에 맞았던 후라이팬의 상처만 계모에게 이르면서 집으로 돌아간다. 아들의 치료비를 제한 수고비를 탁자에 내려 놓은 계모에게 그는 동감할 수 없었다. 어렸을 적부터 부모의 학대를 견디고 자란 터라 한낱 계모의 심정이 이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병원에 계신 나뭇가지 같은 아버지를 찾아간다.
그리곤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아버지를 제압한 후, 주삿바늘을 혈관에 꽂아 자신이 먹을 만큼의 피를 채혈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뱀파이어에게 죄책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아버지의 피를 빨아들인다.
하지만 그 피는 아들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고, 만족스럽게 피를 빨던 뱀파이어는 이제껏 경험 해보지 못한 심장박동을 느끼며 당황스러워 한다.
사랑하는 아들이 남의 피를 빨아먹는 신세가 될 때까지 교류의 부재가 있었던 것은 안타까운 일이며 내게 먼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큰 그림으로 보아 이것은 분명 부정(父情)을 그려냈지만 마치 판타지 소설을 보는 듯한 즐거움 또한 함께 거머쥔 것이 눈에 띄는 작품이었다. 판타지 세계에서 현실로 하강하는 속도가 부담스럽지 않았던 것과 유하고 매끄러운 흐름이 참 좋았다.

김곰치의 '졸업'은 중학교 졸업을 앞둔 남학생, 여학생의 첫사랑 이야기다.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좋아하는 보경은 그 날도 어김없이 순철을 앞에 앉혀다 놓고 가상의 장면 장면을 각색해내기 시작한다. 그녀는 아마 성인이 된 후의 순철이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데 길을 찾는 듯 헤매고 있는 한 여자에게 버스 노선과 배차 시간을 알려주고 나서 이상하게 자리를 뜰 수가 없더란다. 보경은 그 여자가 바로 영은이라 말했고 순철은 상상 속의 영은보다 눈 앞의 화가 난 듯 자신을 노려보는 보경을 보며 몹시 당황스러워 했다.

그는 영은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자신이 망설일 일은 없을 것이며 무엇보다 너의 이야기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니까 화를 낼 일이 아니라고 차분히 보경을 타일렀다.

보경의 이토록 우울한 상상은 내일이 졸업식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식이 끝나면 보경은 도시로 이사를 가고 순철은 시골에 남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깜깜한 밤에 서로의 손을 잡고 눈을 감았다.

편안한 마음으로 지각한 순철은 내심 기대했던 상을 받지 못했다. 지각을 했으므로 교무실 문을 열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는데 돌연 떠오른 보경의 얼굴은 그녀도 나처럼 교무실 밖을 서성이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졸업식이 끝나고 함께 사진도 찍기로 했기 때문에 학교를 뒤지며 그녀를 찾았는데 이미 조용해진 학교보다 더 고요한 공기가 숨을 턱 막히게 했다.

한달음에 내달린 그녀의 집은 무너진지 오래였다.

그 집 에서 담배를 피우는 순철은 어릴 적 보경의 상상대로 훌쩍 자라있었다. 그리고 집에 오기 전 버스 정류장에서 마주친 혜진이라는 이름의 '이거 참 실망인데.'라는 말을 떠올린 순간 그는 멈칫했다.

장면을 이루고 있는 배경의 따뜻함은 첫사랑 영화의 여파인가 작가의 의도인가 알 수 없게 아름다운 색채로 물들었다. 첫사랑 이야기는 아름답지만 언제나 이루어지지 않는 편이 더욱 아름다운 것 같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구성이 마음에 들었고 '버스 정류장에서 마주친 여자'를 추억과 그리움과 후회의 매개체로 만들어 낸 작가의 역량이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홈,플러스'와 '졸업'을 통해 내가 시대를 오가는 이야기에 마음이 끌리는구나 라고도.)

전통적 권위를 가진 한겨레문학상에서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작품을 선별 했다는 것은 미래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신인 작가들에게 마음을 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처럼 좋은 작가를 발굴해내고자 하는 문학상에 수준 높은 상상력을 보내보자. 훗날, 누군가 나의 글을 읽고 '수상 작가 단편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감탄하는 독후감을 쓸 지도 모르는 일이다.

문학상 수상 작품들은 짧은 글에 큰 힘으로 나에게 배움을 준다. 아마 그 글을 써내느라 흘린 땀방울이 뱀파이어가 마신 피처럼, 순철의 손목에 자그맣게 뛰고 있는 보경의 존재처럼 필경 우주를 흔드는 힘이 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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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550만 부가 판매 된 <신데렐라 카니발>의 저자 인드레아스 프란체가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뒤, 다니엘 홀베는 '율리아 뒤랑 시리즈'를 이어
받아 집필하게 된다.

범죄 미스터리 스릴러 전형은 특유의 몰입감을 독자에게 달콤하게 선사한다. 안드레아스 프란체의 글은 조금 더 잔혹하며, 글 솜씨가 상당하다는데 다니엘 홀베의 이 작품은 출간 즉시 독일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는 현지 반응과는 다르게 '율리아 뒤랑 시리즈'를 알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실망스럽다는 평판을 받았다.

 

율리아 형사를 처음 접한 나는 그녀가 가장 비중이 높은 인물임을 처음 알았다. 많은 등장인물들의 내용 전개를 책임지느라 주인공이 병풍이 되어버린 느낌?
자신의 사건전담반을 비롯해 병드신 아버지를 돌보지 못하는 데에서 율리아의 갈등이 드러났지만 경찰청 동료인 프랑크의 딸 슈테파니의 집단 따돌림 사건과 그녀의 나체 사진을 올린 범인 찾기가 더 기억에 남는건 아쉬운 부분이다.

잃어버린 소녀들을 찾는데 주축이 된 두 형사는 하이에나 같은 연쇄X인범을 잡기 위해 밤낮으로 자기 자신과 싸운다.
잘못한 것이라고는 공원에 놀러 나온 것 밖에 없는 에바가 괴한에게 납치 당한 후 왜 쓰레기 봉투에 싸여 온 몸엔 범인의 침으로 범벅이 된 채 버려져 있어야 했을까.
자신의 지하실에 금발의 어린 소녀들을 감금해 온 범인은 의외로 그녀들을 탐하지는 않았다. 그는 성불구자였기 때문이다. 대신 코를 묻고 냄새를 맡다가 침을 적시고 잔인하게 죽인 뒤 관계를 하지 못하는 대신 받는 보상처럼 피를 핥아 먹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의 천재성에 반하는 육체의 열등감이 그를 미치게 만들어 버렸는지 모르겠다.

 

 

잔혹한 범인들의 표면적인 이유야 사람마다 각기 다르겠지만 열등감, 복수심, 비뚤어진 자기애는 언제나 공통적인 것 같다.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피해를 보는 사람들을 위해 건강한 사회에서 옳은 생각을 하고 살 수 있도록 개개인이 힘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갑작스레 떨어진 화장지처럼 끊임없이 출현하는 범죄자들을 매일 접하는 사람들도 새삼 위엄있게 다가온다. 작은 단서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추적해서 마침내 범인을 검거한 그녀의 직업 정신이 빛이 났고, 그런 그녀를 탄생 시킨 안드레아스 프란츠의 '율리아 뒤랑 시리즈'가 궁금해졌다.

제목부터 섬뜩한 작품들이 많아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이 찾아보는게 좋을 것 같아 기재하지 않겠다.
비록 이 작품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럽다는 평판을 받았지만 독일에서는 무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었다.
다른 작품에서의 그녀를 만나면 혹자도 느낄 것이다. 미스터리 스릴러를 집어 드는 독자의 마음을 안드레아스 프란츠가 알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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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 책 뒷 장에 간략하게 쓰여진 책 소개를 먼저 읽고 나는 처음부터 그녀를 떠올렸다.

정의, 올바른 것.

 

 

그것으로 인해 상처 받는 타인의 감정은 아랑곳하지 않는 냉혈한.

책 속의 노리코는 도를 넘는 정도였지만 내가 떠올린 그녀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싶을 뿐이지 충분히 도를 넘어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 아니, 어쩌면 어느 부분에서는 노리코보다 더 악할지도 모른다.
노리코는 아예 융통성이라고는 배제하고 모든 것에 정의를 가져다 댔지만, 그녀는 올바른 행동을 하면서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한 상황이 올 것 같으면 기지를 발휘해 융통성 있는 행동을 해 보이곤 했다. 자기는 늘 피해받지 않고, 빠져나갈 구실을 만들어 놓았다.
노리코는 자신의 딸이 잘못을 해도 자신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 딸보다 정의의 손을 들었지만, 그녀는 정의고 나발이고 자기에게 피해가 오지 않는 선택을 할 것 같다.
어쩌면 일반적인 사람의 행동이고 당연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그녀에게는 '남에게 상처를 주는 한이 있더라도'라는 전제가 붙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긴 시간 그런 행동을 하면서도 머리가 똑똑해서 절대 실수 한 번 하지 않는 그녀가 나는 진절머리 나게 싫었다.

노리코와 같은 사람과는 하루라도 빨리 연을 끊는게 낫다.

다른 네 명처럼 노리코와 같은 그녀를 죽이고 싶은 악의를 품게 될 지도 모르니까.

 

 

원인 제공은 노리코가 했는데 속앓이를 하는 건 네 명의 친구이고 그녀들은 평생을 답답함과 억울함에 가슴을 치며 살아야 한다. 최대한 빨리 그 지독한 악연을 끊어야 한다.


책에서 발췌
내 생각


"나였으면 바로 남자의 손을 붙잡아 비튼 다음 '여기 치한 있어요!'하고 사람들 보라고 소리쳤을 거야."라며 호언장담 했던 가즈키였지만 정작 자신이 그 입장이 되자 몸이 경직되어 움직일 수 없었다. 성추행을 당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부끄러워서,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깊은 죄책감에 빠져버린 것이다. 그 상태에서 소리 지르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 '성추행을 당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부끄러워서'라는 부분을 여러 번 읽었다. 이제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었다. 성추행을 당하는 피해자는 왜 부끄러워 지는걸까. 이유가 뭘까. 왜 그런 상태에서 당당하게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고 몸이 굳어버리는걸까. 잘 모르겠다.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정의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단죄하고 나면 뇌의 쾌락을 담당하는 부위가 활성화하여 마약을 했을 때와 비슷한 쾌감을 얻는다고 한다.
= 타인에 대한 인정이 결여되었을 때 나올 수 있는 행동인 것 같다. 하지만 정의라는 이름으로 사회는 고발자를 감싸주므로 사람들은 오늘도 누군가를 단죄한다. 당당하고 떳떳한 모습으로.

 

 

하라 야스히사의 만화 [킹덤] 46권에서 중국 초나라의 사상가 이사는 "법이란 희망이며, 국가가 그 국민에게 희망하는 인간의 바람직한 모습을 이상적인 형태로 만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희망'이 없이 무조건 '정의'만을 외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폭력입니다. 그래서 노리코가 외치는 '정의'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타인을 규탄하는 구실로만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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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와 전통을 자랑하는 제 144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니시무라 겐타의 소설 <고역열차>.

AKB48의 멤버 마에다 아츠코가 열연한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의 감독은 아츠코와 함께 꿈도 희망도 없는 간타를 극장에 노출시켰다.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를 본 적이 있는데 극 중 주인공인 다마코 역시 만화책을 읽는 일 빼곤 딱히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버리는 한심한 취업준비생이다. 계속해서 이러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다마코와 간타 같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위기감을 동시에 일깨워주고 싶은 것 같다.

 

 

간타는 하루 하루 일용직 노동으로 돈을 벌어 먹고 사는 중졸 학력의 청소년이다. 학교를 싫어하거나 딱히 공부를 못하는 것도 아니었던 간타에게 아버지의 성범죄는 자신 뿐만이 아닌 가족 모두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일이었다. 무슨 일을 해도 '성범죄자 가족' 이라는 딱지가 발목을 잡을 것 같아 그 나이에 누려야 할 당연한 것들을 외면하는 사이, 간타는 어느 순간 '애초에 심성이 뒤틀린 아이' 가 되어버리고 만다.

분명히 간타는 잘못한 것이 없다. 세상을 향한 간타의 분노가 무서워 다가오지 못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지만 어린 아이에게 '성범죄자 아들'이라는 이야기나 수군거리고 다니는 어른들은 정말 나쁜 것 같다.
간타는 열아홉의 나이에 항만 노동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 나가는데 그 곳에서 동갑내기 친구를 만나게 된다.
대학에 진학하기 전 용돈을 벌러 나온 구사카베는 적당히 공부를 하고, 보통의 여자친구를 사귀는 평범한 남학생이다. 하루는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은 간타가 꾀를 써 구사카베의 여자친구를 포함한 술자리를 만드는데 자신의 앞에서 진로 고민과 입바른 얘기를 주고 받는 두 사람에게 알 수 없는(간타만 모르는 열등감) 분노가 일어 모든 것을 망가뜨리고 싶어진다. 일부러 술을 잔뜩 마신 간타는 삿대질을 하며 성희롱은 고사하고 노력에 대한 모욕과 수치를 큰 소리로 떠벌린다.
소리만 크고 영양가 없는 고성에 질색했을 두 사람이 그 순간은 나도 안쓰러웠다.
두 사람에게는 그 날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간타는 너그러운 구사카베와도 서서히 멀어졌고, 그렇게 친구도, 연인도 없는 무미건조한 삶은 계속되었다.
이러다 노숙자로 쓸쓸히 죽어가는 건 아닐까 조용히 안타까워 하고 있었는데 나이든 간타는 자신의 노력을 있는대로 끌어모았으리라. 그의 뒷주머니에 꽂혀있던 후지사와 세이조의 사소설이 그를 구원해준 덕에 그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된다.

 

하지만 유일하게 아침을 기다리며, 뼈를 깎는 허리 고통에도 하루하루를 소설로 버티게 해준 문학상 수상은 끝내 간타를 외면했고 음울한 색채가 짙게 깔린 후반부의 이미지는 그야말로 절망적이었다. 그리고 작가는 간타의 고역열차는 앞으로도 계속된다는 듯 이야기의 막을 내려버렸다. 독자에게 상상의 여지를 주는 결말이 일본 드라마 <라이프>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이 책은 작가의 삶을 본 떠 만든 작품이다.

실제로 니시무라 겐타는 중졸에, 폭행 사건으로 두 차례 체포된 바가 있으며 부친이 성범죄로 감옥에 수감되었다. 부두 하역 노동이나 경비원, 주류판매점 배달원 등의 일을 하며 육체 노동으로 밥벌이를 하다 후지사와 세이조의 사소설에 마음이 움직여 뒤늦게 소설을 썼다고 한다.
이런 그가 일본 최고의 문학상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을 때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면 안 될 곳에 간다고 인터뷰 한 그가 빛이 되었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흙탕물에서도 꽃은 핀다. 고 정리해 두고 싶다.

세상은 밑바닥 인생을 살아온 간타의 성공 스토리를 기다리기 때문에 작가도 작품으로 더 힘을 냈으면 좋겠다.

 

 

니시무라 겐타의 이름은 <고역열차>로 내 가슴에 총알처럼 박혔다.
용기를 내 준 그에게 위로와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래는 니시무라 겐타의 인터뷰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자신보다 못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위안을 얻기 바란다."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 누나와도 연락을 끊은 지 26년이 지났어요. 수상 소식을 접하고 연락이 올 법도 하지만, 아직까지도 연락이 없어서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소식조차 모릅니다."

"30여년 전 11세의 나이로 떠밀리듯 야반도주를 했던 바로 그 순간, 내 인생은 종치고 막을 내려버렸어요. 제가 아무리 노력한들 성범죄자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지울 수는 없어요. 이 때문에 일자리는 한정 되고, 제대로 된 여자라면 바로 제 곁을 떠나버렸죠.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의 가족은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로 죄도 없이 벌을 받아요."

"한 번은 구치소에서 제 작품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는 편지를 받은 적이 있어요. 막다른 골목에 부딪친 사람들이 제 소설을 읽고 용기를 냈으면 좋겠어요. 한편으로는 '뭐 이런 소설이 다 있어?'라고 생각한다 해도, 소설을 읽고 즐길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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