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힘들어서 그나마 밖에 있는게 덜 힘드니까 오늘은 하루종일 밖에 있었다. 그리고 7시 30분쯤 집에 왔다. 이제 저녁을 먹으려는데 역시나 안 먹는다. 기본 한 시간이다.

"밥 먹고 놀자", "한 입만 먹자" 소리를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다. 의자에 앉히면 내리라고 난리고, 내려주면 돌아다니느라 밥을 안 먹는다. (그래서 19개월인데도 아직 9키로 밖에 안 된다)

밥 먹는 시간이 고역이다. 나는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데 요리를 해도 어차피 안 먹고 거의 다 버리니까 하기가 싫다. 재료는 사두면 사용 하지 못 하고 썩히는 일이 다반사다.

머리를 부여잡고 있다가 하도 안 와서 설거지를 하러 갔다.

뒤를 돌아보니 아이가 수은 건전지를 들고 있었다. 원래 몇 개가 들어 있었던건지 모를 건전지를. 크기가 작고, 만에하나라도 혹시나 먹었으면 큰일이기 때문에 일단 아이에게 물어봤다. "이거 먹었어?"

먹었단다. "안 먹었어?" 도리도리. "먹었어?" 먹었단다. 나는 다시 애기 옷이랑 내 옷이랑 챙겨 입고 택시를 불렀다. 그런데 그 정신 없는 와중에 아이가 내 허벅지를 깨물었다.

정말 짜증이 났다. 구강기도 아니고, 입에 가져다 댔을 때 이상하면 먹지 않았을 것 같지만, 혹시 모를 일에다 아이도 그렇다고 하니 병원에 가려던 중이었다. 차라리 아기가 확실하게 얘기를 해주면 좋겠는데 어쩔 땐 두 질문 모두에 다 끄덕끄덕... (아기라 당연한 일이다)

그런 와중에 허벅지를 깨물렸는데 그간 숱하게 깨무는거 아니야, 때리면 안돼, 꼬집으면 아파를 얘기해 왔던 시간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아이에게 절대 짜증, 그리고 소리는 지르지 않겠다고 다짐 했는데 그 순간, 화가 머리를 거치지 못하고 바로 입으로 나와버렸다.

"oo야, 아파!" 상황에 적절한 말 같아 보이지만 이 다섯 글자에 '도대체 왜 그러니, 몇 번을 얘기했니, 짜증난다'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고, 통화 중이던 남편도 아이도 다 깜짝 놀랐다.

남편은 왜 그러냐고 했고, 아이는 놀라서 허벅지를 호호 불어주었다. 이제까지 아프다고 하면 웃거나 그냥 말았는데 이 때처럼 다급하게 호호 불거나 쓰다듬거나 한 게 처음이라 순간 나도 놀랐다. 내가 무슨 짓을...

 


구리한양대병원 응급실에 갔다. 근데 대기가 길어 다른 병원을 추천하기에 서울아산병원 소아응급실로 갔다. 애가 밤 10시에 택시만 한 시간을 탄 거다. 오늘은 하필 금요일이었고, 어느 택시기사는 트로트를 크게 틀어놓고 콧노래를 부르며 거의 카레이서 뺨치게 달렸다. 금요일 밤이라 장사가 잘 된다나 어쩐다나.

밤 11시쯤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에 도착해 체온을 먼저 재는데, 밤이라 추울 것 같아 따뜻하게 입힌 내 탓 인가. 애기 체온이 37.5도가 나왔다. 코로나 검사를 해야 한단다.

정말 산 넘어 산이다. (tmi인데, 집에서 택시를 잡을 때 너무 먼 거리에 있는 택시가 배차되어 취소 했더니, 기사가 내게 욕을 했다. 심장이 두근 거렸다. 나는 원래 부당한 일을 겪으면 안 참는게 아니라 못 참는다. 근데 아기가 바로 앞에서 보고 있어 초인적인 힘으로 욕이 나오려는 걸 가까스로 참느라 심장이 두근 거렸다. 지금이라도 욕을 퍼부어주고 싶다)

 



"밤이라 따뜻하게 입혀 와서 그래요. 벗고 좀 이따 다시 잴게요" 안 그래도 낯선 데 왔다고 우는 애기 콧구멍에 그걸 어떻게 넣어. 겉옷을 벗고 대기하고 있는데 다행히 그냥 들어가란다. (엄마 체온이 정상이라 정말 옷 때문인 것 같다고 결론 내린 것 같다)

엑스레이를 찍었다. 낯선 곳, 낯선 사람. 아기는 눕기 싫고, 찍기 싫다고 내게 손을 뻗고 몸을 밀착하려 애썼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

엑스레이를 찍고 나서 다시 대기실에서 대기 하는데 평소 보여주지 않는 핸드폰으로 스노우앱에 들어가 엄마와 자기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변하는 화면을 띄워 주었다. 조금 웃어 보여서 다행이었다.

결과는 금방 나왔다. 쇠붙이라 엑스레이를 찍으면 금방 보인다는데 이 정도면 걱정 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소견.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전에 다른 의사에게 진찰 볼 때, 수은건전지는 식도를 타고 내려가면서부터 위험하다고, 상당히 위험하다고, 이것저것 내게 물어오셨어서 안그래도 더 긴장 했었는데.

추운 밤바람 맞으며 다시 택시를 기다렸다. 다행히 친절한 기사님을 만났다. 그런데 나 혼자면 그러려니 맘 놓고 가는데 아기를 안고 있어 어둔 밤 혹시 몰라 정신을 똑바로 차리게 되더라. 오늘은 생전 안 하던 실시간 위치 추적(안심메시지)도 남편에게 보내고. 아기는 집에 오는 길에 잠들었다.

삼십 분 정도 걸린 것 같다. 택시 뒷좌석에서 나는 펑펑 울었고, 기사님은 어린 애기가 말도 못 하고 얼마나 답답했겠냐고 아기 편을 들어주셨다. 아기를 꼭 안고 택시에서 내려 집에 도착해 아기를 내려놓고 이 글을 쓰기까지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수은건전지를 애가 먹었든 안먹었든 그 자리에 건전지를 놔둔 부모가 잘못이다. 그런데 말 못하는 애를 그렇게 닦달을 했다. "먹었어, 안 먹었어?" 이 질문을 몇 번을 한 건지...

허벅지를 깨물려서 짜증 낸 건 정말 느닷 없다. 평소 같으면 절대 화내지 않는다. 나는 일관성 없는 부모다. 최악이다. 아기의 불안을 키우는 일관성 없는 부모. 몸이 다 닳도록 노력 해도 아기는 바라고 바라고 바라기만 하니까 나도 지친 것 같다. 몸도 마음도 하루만이라도 좀 쉬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내 자신을 이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혹독하게 채찍질하며 인내해 온 모범생 내지는 성공한 사람들을 세상은 인정해 주는 것이다.

아기를 낳기 전, 나는 육아가 이런 일의 끝판왕일 줄은 전혀 몰랐다.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참아야 하고 아파야 하고 울어야 하는 일이었다. 정신과를 찾아야 할 지도 모르겠다. 육아우울증 인지도 모르지. 그런데 말만 번지르르한 위로를 받으면 상처를 받을 것 같아 겁이 난다. 마음이 너무 약해져 있어 믿고 들어간 곳에서 상처를 받으면 깊게 베일 것 같다.

눈 앞에 아기 용품이 제멋대로 어질러져 있다. 어느정도 치우고 자겠지만 전부 치울 힘은 없다. 내일은 제발 이렇게까지 어지르지 않았으면, 날 아프게 하지 않았으면, 밥 좀 제자리에서 잘 먹었으면, 양치질 좀 한 번에 끝냈으면, 하지 말라는 것 좀 하지 않았으면... 근데 그럴 일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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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우는 고양이 이름은 구루미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날 아침,
출근하는 남편의 발 밑에 웬 고양이 한 마리가 발길을 잡고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애교를 떨더란다. 심성이 고운 남편은 추운 날씨에 고양이를 밖으로 내쫓을 수 없어 우리 집으로 그 녀석을 인도했다. 현관문이 벌컥 열리자 마치 제 집인양 성큼성큼 들어오던 내새끼 첫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시간이 늦어 남편은 출근하고 고양이와 나 둘만 남게 되었다. 나는 이럴 때에 고양이에게 무엇을 줘야 하는지, 어떤 말을 건네야 하는지 하나도 알지 못해 한동안 멍청하게 앉아만 있다가 문득 냉장고에 우유가 있다는 사실이 떠올라(고양이에게 사람 먹는 우유 주시면 안됩니다✔몰랐어요😭) 우유와 냉동실에 있던 멸치를 꺼내 그릇에 담아 주었다.
너무나 맛있게 먹는 녀석의 모습에 괜히 뿌듯했다.
아이가 밥 먹는 틈을 타 조심스레 털을 쓰다듬어 보았는데 길고양이 답지않게 털이 유난히 부드러웠다. 그래서 순간, '아, 집고양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급히 인터넷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사람들은 고양이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들어가서 찾을 수 있는 어플을 소개시켜주었고, 남편과는 그 날 저녁 동물병원에 방문해 아이의 사진과 특징을 적어 실종 고양이 공고문을 올렸다.
수의사 선생님께서 일정 기간 주인이 나타나지 않을 시 법적으로 우리들이 키워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너무 예쁜 고양이였고 고작 하루지만 정이 들어 이 아이와 평생 함께 살고 싶다는 욕심이 문득 문득 들던 차였다. 그래도 우리 눈에 이렇게 예쁘면, 우리보다 더 오랜 시간 함께 했을 주인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이 아이를 예뻐하고 그리워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감정이 조금 복잡해졌었다.

 

시간이 흘러도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고양이와 몹시 정이 들었고 많은 시간을 함께 공유했다.
처음엔 낯을 조금 가리는가 싶었던 녀석도 우리의 일관된 사랑에 조금씩 마음을 여는 듯 했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우리집에 온 지 3년 되는 날 처음으로 녀석의 생일파티를 해주었다.

고양이 케이크도 사서 생일을 멋지게 축하해 주고 싶었는데 모자를 씌운 순간부터 엄청나게 싫어하기 시작했다..😣(당연한 결과)
그래서 사진도 후다닥 찍었다...😵
하지만 우리 좋으라고 하는 게 아닌 이래봬도 녀석의 생일 파티였으니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 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나는 저 때 우리 아기를 임신 중이었다. 고양이와 아기는 초음파로 통하는게 있나?(근거없는 소리)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 한 달동안 떠날거지. 떠나지마.'였던 것 같기도 하다.

 
제왕절개후 4박 5일을 병원에 있고, 쉬지 않고 2주를 산후조리원에서 보내고는 퇴실후 또 다시 산후조리원에 입소하게 되기까지(자세한 에피소드는 따로 포스팅 할 계획✔) 구루미는 혼자 근 한 달 동안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산후조리원에 일주일을 있을지, 이주일을 있을지 아직 미정이다. 하지만 나는 일주일만 머물고 싶다. 물론 내 몸은 편하지만 아기도 남의 손보다는 안전한 엄마 손을 타는 것이 좋고, 구루미도 걱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집에 돌아가서도 문제다...☠

아기에게 애정과 시간을 쏟아야 하는데 지금도 충분히 외로워 하는 우리 구루미 우울증 걸리는 건 아닌지 심히 걱정된다. (하지만 남편이 집에 있어 정말 다행이다.)

 

외로워 보이는 뒷모습에 마음이 짠하다.

구루미를 평생 책임지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내가 집이라는 우리에 가두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 생각을 핑계로 입양 보낼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저 보고싶고 만지고 싶다.
우리 고양이.

보고싶어, 구루미야.
엄마가 집에 돌아가면 맛있는 캔도 자주 따주고 츄르도 많이 줄게.
우리 구루미도 엄마에게 소중한 존재야.

 

아기와 초음파가 통했던 거라면 나와도 텔레파시가 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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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사건을 보며, 2016년, 변한 게 없다  (0) 2020.02.14

 
1932년 출생 유대계 미국 소설가 조앤 그린버그는 미국의 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이 꼭 읽어야 할 고전작품을 많이 써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이 소설은 영화와 연극으로도 상영되어 베스트셀러로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주인공 데버라는 정신분열증을 앓는 환자로 나오는데, 그녀를 둘러싼 가족과 병원 관계자 및 환자들의 행동이 매우 날카롭게 묘사된데에는 작가의 자전적인 작품이라는데 이유가 있다.

데버라는 '이르'라는 자신만의 세계에 만들어진 형태들에게 끊임없는 괴롭힘을 받는다. 그것들은 현실세계와 '이르'에 명확한 선을 그어두고 이곳이 더 편안하고 확실히 옳은 곳이라는 꼬드김을 반복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이르'의 세계가 있다면 그것은 엄연한 세계가 되겠지만 전 세계인 중 딱 한 사람, '이르'는 오로지 데버라에게만 존재하기 때문에 그녀의 가족은 회색 벽의 이상한 소리가 나는 정신병원에 그녀를 집어넣을 수 밖에 없었다.
그 곳에서 그녀는 각자의 이유로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의 앞 뒤가 맞지 않는 대화와 느닷없는 고함을 들으며 아주 천천히 그 곳에 적응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날 데버라는, 큰 소동을 벌였거나 문제를 일으킬 위험이 있는 사람을 이전시키는 D동으로 옮겨지게 된다. 그 소동이라 함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는 피학적인 행동과 종잡을 수 없는 고성을 일컫는다. 자신의 세계에 꼼짝없이 갇혀버린 그녀의 탈출구는 어디일까?

 

프라이드 박사는 '이르'가 허구의 세계임을 확신시키는 동시에 그녀 스스로 본심을 입 밖에 꺼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르'와 타협한 것 같아 보였던 데버라에게 한낱같은 희망은, 현실 세계의 평범한 것을 나도 하고 싶다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뜨개질과 같은 간단한 것. 교회에 다니고 싶다는 소망.

하지만 우리에게는 별 볼일 없이 여겨질 평범한 일상이 그녀에게는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실패하고 좌절해 병원에 다시 돌아온 그녀에게 만약 병원 관계자들과 박사 프라이드의 끊임없는 도움이 없었다면 그녀의 '이르'세계는 온전히 그녀를 잠식시켜 버렸을지도 모른다.
정신분열증은 스스로를 갉아먹는 병이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의 진실한 동정과 공감이 필요하다.
프라이드 박사가 보인 교류를 위한 노력은 환자를 담당하는 모든 병원 관계자들이 닮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내 주변에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없지만 언젠가 내 곁에서 정신분열로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도 프라이드의 자세를 취하고 싶다. 

또, 다른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사실 내게도 데버러같은 비밀 이르공간이 있다. 내게 즐거움을 주는 세계가 나를 파멸의 길로 끌고 내려가지 않도록 적당히 해야겠다는 무서운 경각심이 든다. 마음이 약하고 의지가 강하지 못한 내가 그녀와 같은 상황이 된다면 아마 나는 영원히 현실세계에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어 오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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