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엄마나이' 5살입니다. 아직 어린이죠. 그런데 이 5년 동안 저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잊을 수 없는 말, 행동, 그리고 감정.

보통 엄마들간의 만남을 '난이도 최상의 인간관계'라고 하는데요. 공감합니다. 그 어떤 관계보다 어려운 관계인 것 같아요.

들어가기에 앞서 이 책의 저자인 강빈맘을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강빈맘은...






강남에서 10년 이상 외국어 강사로 활동하며 입시생들의 멘토가 되어주었습니다. 출산 후에는 SNS에 쓰기 시작한 글을 본 엄마들의 공감을 사며 엄마들의 요청으로 결국 전자책 독립 출간에까지 성공을 하셨다고 하는데요.

그 이후 더 많은 사연과 피드백을 반영한 이 종이책, <내가 엄마들 모임에 안 나가는 이유>가 탄생했다고 합니다.









이 책에 대한 간단한 소개,
읽으면 좋은 사람







이 책은 엄마들간의 만남 자체를 거부하고 밀어내고 있지만은 않습니다. 그런 엄마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를 주기도 하고, 반대로 엄마들 만남에 활발히 참여하며 고된 육아에 비타민 같은 활력소를 경험하시는 분들을 존중하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 성격이 다릅니다. 그리고 이것 또한 인간관계이니 누가 옳고 틀리다는 정답이 없습니다. 다만, 내향적인 분들에게는 '아이를 매개로 만나게 된 다른 부모와의 만남'이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외향적인 분들보다 더 불편하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들께 이 책이 힘을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엄마들과의 만남에 지치신 분들, 겁을 먹고 계신 분들, 그리고 엄마관계가 아니더라도 인간관계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는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밀리의서재에서 밑줄을 쫙쫙 그으며 봤습니다.
남겨두었던 이야기, 여러분과 함께 보며 제 이야기도 나눠보겠습니다.


엄마들의 관계는 인간관계 난이도 최상에 속하는 관계라는 말이 있듯, 노력만으로 유지되기가 힘들다.




왜일까요? 직접 겪어본 분들은 이해하실 거예요. 왜냐하면 이 관계는 아이들로 맺어진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이 관계를 이어나가기 싫다고 하면 거진 끝이라고 봐야해요.

아이들은 아이들의 방식으로 표현 하죠. "쟤 싫어", "너랑 안 놀아", "나 괴롭혔어".

스스로 해결하지 못 하는 불편감을 부모에게 와서 털어놔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구체적으로. 그럼 부모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육아의 짐을 덜어보고자 시작하게 된 만남의 장이 오히려 어깨를 더 짓누를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고요.

또, 엄마들의 만남에서는 이제까지 내가 노력해서 이루어낸 것들이 큰 빛을 발하지 않습니다. 박사과정을 밟고 유능한 인재들과 열심히 일했던 커리어? 박수쳐주지 않아요. 내가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을 먼저 가 본 선배맘들, 육아정보가 많은 엄마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외국어를 처음 배우는 사람처럼 초보 엄마들은 모든 것을 새로 배워야 하는 느낌입니다. 아이 나이가 곧 엄마 나이에요. 😵‍💫

그리고 편견과 선입견, 고정관념이 짙은 관계이기도 합니다. 더러는 사는 집과 연봉, 직업, 시댁의 재력수준을 통해 그 엄마와 아이를 평가하기도 하니까요.








이 세계에는 '순수하게 저 사람이 좋아 인연을 맺고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이 없어요. (있다면 운이 좋으신 겁니다!) 씁쓸하지만 현실이죠.

나와 상대방이 일대일로만 맺어진 관계가 아닌 나와 아이, 상대방과 상대방의 아이, 이렇게 2인 1조로 만나는 관계이기 때문에 그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아이를 매개로 어떤 관계보다 쉽고 빠르게 유대감을 형성하지만, 반대로 아이 때문에 어떤 관계보다도 쉽게 등을 돌릴 수 있는 관계다. 아이들이 치고받고 싸우거나, 서로에게 상처라도 입히면 아이들보다 엄마들이 더 흥분한다. 결국 아이들이 나중에 다시 친해지고 싶어도, 엄마들 눈치를 보느라 같이 못 노는 일도 일어난다. 결국 어제의 절친이 오늘의 원수가 되어버린다.



친구들과 함께 노는 모습을 보는데 우리 아이만 묘하게 소외를 당하는 것 같다거나, 한 친구가 하자는대로 따라만 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생각이 많아지죠. 상대 아이에게 맞아서 오거나, 맞아서 왔는데도 상대 엄마에게 아무런 연락이 없으면 또 생각이 많아지고요.

처음엔 아이에게 문제해결법을 알려줄 겁니다. 그리고 상대 아이 엄마와 아는 사이라면 넌지시 얘기를 꺼내볼테죠. 이제 그 엄마의 대응에 따라 이 관계는 파멸할 수도, 더욱 더 깊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요.

어제는 싫었는데 오늘은 또 좋을 수도 있는 우리 아이들은 싸우면서 크잖아요. 그 과정에서 자기 의견을 말하고, 오해를 푸는 경험을 해 볼 수도 있고요. 마침내 사이가 회복된 아이들은 사이가 나빠진 엄마들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눈치만 보다가 결국은 멀어지고 맙니다. 놀아도 몰래 놀죠.

내 아이가 맞고 왔는데 상대 엄마가 적반하장의 태도로 오히려 내 아이가 바보같아 맞은거다, 라는 식으로 나온다면 그 관계는 정리해야 하는 게 맞습니다. (당연!)

하지만 대응이 내 성에 차지 않는, 영 서운한 것이었다면 흥분을 가라앉히고 조금 더 멀리 볼 필요가 있어요. 아이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그리고 티가 나지 않게, 서서히 거리를 두며 생각할 시간을 가지세요.

이건 갑자기 생각난 제 경험담인데요. 🫠


제 아이가 가지고 온 공을 다른 아이가 자기 것이라며 가지고 간 겁니다. 아이는 공을 돌려달라고 했고 상대 아이는 돌려주지 않았고요. 화가 난 아이는 놀이터에서 큰 목소리로 "OO이 싫어!" 라고 외쳤습니다. 같이 안 놀 거라고.

중간에서 엄마들은 난처했습니다. 나름대로 중재를 하고 수습을 하려 했지만 아이들은 울고 불고 화내고 떼쓰고 난리도 아니었죠... 결국 아이들을 데리고 각자의 집으로 가는 것으로 상황은 정리가 되었습니다. 🫠

그 후 상대 아이의 엄마가 저희와 놀이터에 가는 횟수를 조금씩 줄여가는 게 느껴졌어요. 저도 제 아이가 상대 아이와 만날 때마다 싸우는 게 보기 힘들어 생각이 많았는데, 그렇게 저와 제 아이가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는 선 안에서 조심히 행동을 하는 모습이 저는 고맙더군요? 어른스럽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싫다고 무작정 손절을 할 수만도 없는 이 관계를 잘 다루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고로 그 엄마는 첫째가 있는 선배맘이었는데 내공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하나를 배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가 자랄수록 신체 발육과 언어 발달뿐만 아니라 아이의 성향, 개개인의 재능, 사회성과 친구 관계까지도 비교 대상이 된다. 행여나 아이가 친구들 사이에서 인정받지 못하거나 치일까 봐 엄마의 마음은 불안하다. 하지만 엄마의 걱정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것을 재차 마음에 새기자. 아이는 부모의 눈빛을 먹고 살아간다. 걱정스러운 눈빛을 먹고 산 아이는 자기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신뢰의 눈빛을 먹고 자란 아이는 스스로를 신뢰한다.



저는 그래서 애시당초 엄마들과의 만남 약속을 잘 잡지 않습니다. 반 아이들 엄마들과도 일 년에 몇 번 볼까말까해요. 왜냐하면 저는 저를 아니까요.

저도 모르게 남들과 저를 비교하는 습관을 아이에게 적용할까 두려워서요. 괜히 자기 속도대로 잘 자라고 있는 아이 잡을까 두려워서요.

교육적으로 잘 가르치고 있는 엄마를 보면 집에 돌아와 나도 꼭 책 한 권이라도 읽혀 재워야 할 것 같고, 잘 차려 먹이는 엄마를 보면 제가 만든 밥상 메뉴를 보며 못난 엄마 같다는 생각에 자존감이 떨어집니다.

그게 무서워서 약속을 잡지 않습니다.

본문에서도 나왔는데, 엄마들 만남은 주로 육아를 하느라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라 했어요. 제가 조금 더 자신감이 있고, 꺾여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높은 회복탄력성을 갖게 되었을 때 나가고 싶어요.

"왜 거기 있잖아요. OO공원 가는 길에 있는 그 아파트요. 뭐, 어디 사는지가 중요한 건 아닌데... 그래도 좀 그렇지 않아요?" 입을 빼죽거리는 모습에서 오만과 불만이 동시에 느껴졌다. 오, 맙소사! 내가 마주하고 있는 이 엄마가 바로 뉴스에서만 보던 '아파트 시세로 계급을 나누는 엄마'였다니. 아이를 낳기 전 이런 엄마들에 관한 기사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엄마들의 세계에 들어와 보니,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없는 일도 아니었다.



저도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거짓말이 아니에요.
직접 겪기 전까지는 저도 신화 속에서나 나오는 유니콘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 그런데 진짜 있더라고요.

연봉, 직업, 전세자가여부, 평수, 차종, 대출은 끼고 들어왔는지, 받았다면 얼마 받았는지... 를 물어보는 사람이요! 심지어 저는 엄마, 아빠 두 명에게 질문을 받았습니다. 두 사람이 앉은 자리에서 눈빛을 반짝이며 다다다 물어보더라고요. 저건, 질문을 통해 상대의 재력을 확인해보겠다는 거잖아요?

상당히 무례한 행동이라 그 이후 단번에 손절했습니다. 불쾌해서요. 그리고 제가 그들에게 되갚아준 가장 큰 복수는 그게 잘못된 행동임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딘가에서 또 그런 질문을 반복할 거예요. 그럼으로 인해 뒤따르는 불행을 예견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아주었습니다. 🤪

엄마가 엄마들 관계에 전전긍긍, 아이의 친구 관계에도 전전긍긍하면 아이도 친구 없으면 큰일 나는 줄 알고 도리어 더 예민해지기 쉽다.



저도 제 부모를 보고 배우고 싶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 것들이 있어요. 무의식적으로 터득한 것들은 알아차리기도 어렵거니와 수정하기도 힘이 듭니다.

아이의 마음에 각인 될 질 낮은 행동들은 조심해야 합니다.

내 아이가 배제되어도 배신감 느끼지 말고, 반대로 내 아이가 다른 새로운 친구와 더 친해지더라도 죄책감 느끼지 말 것.



현재의 제게 거의 불가능한 말이라 앞으로 실천하려 노력하려고 그어두었습니다...🤣

저는 제 감정을 아이가 똑같이 느꼈다고 착각하지 않아야 하고, 아이의 이야기를 신중히 들어야 합니다. 오래 유심히 살피고 제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을 찾을 겁니다. 내 생각에 맞는 것 같다고 무작정 개입하는 게 아니라요.

이 세상엔 무례한 사람이 너무나 많고, 자신이 무례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드물다. 상대방의 무례함을 탓하면서 고통받고 살기엔 우리 인생이 너무 아깝다. 더군다나 무례함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 않은가? 누군가를 무례하다고 탓하기보단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려서 단단해지는 것이 원만하게 사는 비결이다. 그러기 위해선 다음 세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첫째, 적당히 둔감해질 것. 중요하지 않은 타인의 말은 담아두지 말고 흘려버릴 것. 둘째, 부당한 상황에선 적당히 받아칠 것. 좋은 사람 되려다 만만한 사람 되니,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것. 셋째, 피해의식을 버릴 것. 지금 내가 느끼는 고통이 내가 너무 예민해서 겪는 것일 수도 있음을 기억할 것.



이건 비단 엄마들과의 관계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 가능한 세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새들도 허수아비가 움직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를 조롱하고 곡식을 쪼아 먹는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관계에서 쓴맛과 단맛을 잘 배합한다. 단맛만 있으면 어린아이나 어리석은 사람들의 군것질감밖에 되지 않는다" 라며 부당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선함이 아니라 무능함임을 강조했다.



이 세계에서는 더더욱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무례하지도, 너무 착한 사람이지도 않도록.

육아 전문가는 "부모가 지나치게 허용적이어도 불안이 생긴다. 많이 경험하고 타인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자기만의 단단한 기준이 생겨야 아이가 편안해진다." 라고 말했다. 너무 좋은 부모가 오히려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부모에겐 아이의 마음을 무조건 수용해주는 것 이상의 역할이 있다. 바로 시련을 겪어 나갈 힘을 키워주는 것이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있듯, 세상은 시련으로 가득 차 있으니까.



저는 앞으로도 이 세계에서 부딪히고 깨지며 더 많이 배울겁니다. 슬프고 힘든 날도 있겠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을거예요. 시간은 흐르고, 시절인연은 추억 속에 묻힐 날이 올 테니까요. 그 때 내 옆에 있는 아이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지 않게 후회할 짓 하지 말아야죠. 🙋🏻‍♀️







더 쓰고 싶은데 이미 글이 너무 길어져서(저도 쓰면서 놀람...) 이만 줄일게요.

공감 가는 내용이 있었나요? 책에는 더 많은 내용들이 담겨있어요. 엄마들간의 관계로 인해 힘들어 하는 분이라면 꼭 읽어보세요.

그리고 강빈맘의 인스타그램에 가면 이 세계에 지친 엄마들이 입을 모아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어요. 댓글들을 보면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게 묘한 위로가 되더라고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관계입니다.

당신이 유별난 게 아니에요.


혹시 힘들어 하고 있다면 기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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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한국인 최초 존스홉킨스 소아정신과 교수이자 의사예요. 발달장애 아이들을 20년 넘게 돌보면서 깨달은 지혜를 이 책에 담았습니다. 부모로서 가져야 할 자세를 알려주고 있지요. 읽으면서 몇 번이나 망치로 뒷통수를 얻어맞은 듯 했습니다. 육아서 사이에 통용되는 뻔한 말이 아닌 깊이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말이 여러 번 나왔어요.

서두에서부터요, '나는 누구인가?' 아이를 알아보기 전에 부모 자신을 돌아보라고 먼저 물어요. 그리고 부모들에게 자신이 핵심 신념으로 꼽고 있는 가치를 이 중에서 한 번 골라보라며 보기를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빨리 깨달았어요. 제목이 왜 <본질육아>인지를. 보기는 아래에 공유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찾아보세요. 이 중에서 다섯 개 정도를 꼽아 자신의 우선 순위에 놓고 마음 자세를 바로잡아보기를 권유 받았습니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진정성, 성취, 모험, 권위, 자율성, 균형, 아름다움, 용기, 공감력, 도전정신, 시민정신, 공동체정신, 역량, 기여, 독창성, 호기심, 결단력, 공정성, 믿음, 명성, 우정, 재미, 성장, 행복, 정직, 유머, 영향력, 내면의 조화, 정의, 친절, 지식, 리더십, 배움, 사랑, 충성도, 의미 있는 일, 개방성, 긍정성, 평화, 즐거움, 평정심, 인기, 인정, 종교, 평판, 존경, 책임, 안위, 자존감, 봉사, 영성, 안정성, 성공, 지위, 신뢰성, 부, 지혜


저도 이 중에서 다섯개를 꼽았습니다. 정말 꼽기 어려웠어요. 모두 소중한 가치들이라서요. 이 중에서 그래도 내가 더 필요로 하는 가치들을 우선 순위에 올려봤고요. 그러자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지가 훤히 드러나 신기했습니다. 다섯개의 단어가 저 자체를 설명하는 것 같기도 했어요. 그리고 제가 추구하는 이 가치와 인생관을 의도하든 하지 않든 아이에게 덧씌우지 않아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는 아이만의 가치를 직접 찾길 원해요.

왜 서두에서부터 이런 질문을 했는지 그 이유는 서서히 드러납니다. 저자는 육아를 '밥 짓기'로 비유 했어요. 쌀은 아이고, 물은 사랑과 보호, 불은 가치와 마음자세라고요. 우리가 밥을 지을 때 더 맛있는 밥을 짓기 위해 정량의 쌀 위에 물을 가득 넣고 불을 세게 때나요? 그럼 망치지요. 즉, 기본에만 충실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적당한 물과 불만 있으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지 않아도 밥은 자연히 잘 만들어져요. 개중엔 밥을 맛있게 만들겠다고 소금 후추를 치는 부모들이 있지 않느냐는 말도 있었는데, 저 왜 이 대목에서 멈칫 했는지 몰라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 해보려 합니다. 기억에 남았던 부분 정리해서 공유 할게요. 사실 워낙 많아서 이 정도가 추리고 추린겁니다. 위에 얘기 했다시피 머리를 한 대 가격 당한 듯한 구절이 상당히 많아요. 직접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 대체 어떤 부모상이 좋은 부모상일까?


자녀에게 헌신하는 부모?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사는 부모? 육아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녀의 독립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자주적이고 독립적으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는 부모가 좋은 부모 아닐까요. 스스로 행복을 쟁취하는 모습이 무엇보다 큰 유산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아이에게 바라는 모습이 있다면 내가 그 모습이 되면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도 아이였을 때가 있었으니 알잖아요. 백날 천날 얘기해봐야 안 듣는다는 거.

왜 운동을 하려면 헬스장에 가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몸뚱이는 움직이질 않잖아요. 주변에서 살 좀 빼라 운동해라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본인의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아요. 사람은 내적동기에 의해 움직이는 동물이라서요.

내 부모가 행복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만큼 강력한 동기부여는 없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노력을 하지 않아도 배고프면 밥을 먹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삶의 행동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해요.

✔️ 내적동기


내적동기가 무엇이냐. 반대로 외적동기를 먼저 이야기 할게요. 돈같은 물질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성적을 몇 점 이상 받으면 장난감 사줄게, 용돈을 얼마 줄게 하고 눈에 보이는 물질로 보상을 하는 것이지요. 그에 반해 내적동기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만들어줄 수도 없습니다. 내적동기는 오로지 나만이 구축할 수 있는 것이에요.

다만, 도와줄 수는 있습니다. 마음에 가닿게 도와줄 수 있지요. 저자는 내적동기로 '기여'를 이야기 했습니다. 예를들어, '네가 장난감을 치우면, 우리집이 깨끗해질 수 있게 도움을 주는거야'라는 식으로요. 스스로 성취감과 보람을 느끼게 돕는 것이라는 게 느껴지시죠.

저 또한 내적동기 유발을 위해 이 방법을 자주 사용합니다. '도와줘서 고마워', '네 덕분에', '엄마는 못 했는데 너는 해냈네', '어제보다 나아졌다' 같은 말을 많이 써요. 제가 그런 말을 하면 아이는 큰 소리로 대답하거나 조금 부끄러워 하며 괜시리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길 때가 있지요. 하지만 좋은 의도로 하는 말이라 할지라도 남발하면 좋지 않아요. 내 말과 행동이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눈치도 챙겨야 합니다.

 

✔️ 아이에게 꼭 가르쳐야 하는 4가지 가치


신뢰성, 책임감과 성실, 기여, 배려. 신뢰성은 행동과 말의 진실성을 이르는 말이고요. 기여는 내 재능으로 타인과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세상을 살아갈 때 꼭 지녀야 할 가치들을 여러분은 어떻게 가르쳐주고 계신가요? 책이나 영상매체를 통해 전할 수도 있겠지만요. 아무래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역시 부모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겠죠.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하니까요. 그러고보면, 아이를 키우며 나도 자란다는 말과 일맥상통 하는 면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나는 나, 너는 너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은 아이는 아이, 나는 나라는 것. 나의 좋은 면을 닮기 바란다며 타인인 아이와 나를 동일시 해서는 안 되겠죠. 저는 조련을 하는 것이 아니고 조력자라는 생각으로 육아를 하고 있어요.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도록 가치와 마음자세를 보여주고 일러주는 한편 욕심내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아이의 성공은 아이의 것이고 실패도 아이의 것이니 저는 그저 뒤에서 조용히 기뻐하거나 슬퍼할 뿐이라고요.

저자의 말처럼 물(사랑과 보호)과 불(가치와 마음자세)을 적당히 때어주기만 하면 그 후의 인생은 아이가 알아서 잘 헤쳐나갈 것이고, 근본이 튼튼하면 실패를 해도 배울점을 얻으며 제 힘으로 일어날 수 있으리라고 믿어요.

특히 출산 후 육아휴직으로 집에만 있게 되었다면 자존감이 더욱 떨어질 수 있다. 이런 격한 역할 전환(role transition)의 순간에 해로운 생각이 틈탈 수 있다. 그건 바로 '아이를 잘 키워냄으로써 내 자존감을 회복해 봐야겠다'는 생각이다. 아이와 내가 '완전히 다른 객체'라는 개념이 흐려지고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마치 아이가 나의 연장인 것처럼 인식될 수 있다. 이때 무의식적으로 아이를 대리만족의 수단으로 여기게 될 수 있는데, 여기서부터 부모와 아이의 불행이 시작된다. 그래서 부모의 자존감이 중요하다. 자신의 자존감이 어느 정도인지 먼저 파악하고, 자존감이 약하다면 이것을 직시하고 내 자존감을 더 건강하게 만드는 것을 우선순위로 두어야 한다.


부모의 자존감이 낮으면 아이에게 대리만족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부모는 부모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부모의 인생도 앞으로 최소 30년 이상 남았어요.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라도 부지런히 배우고 성장해야 해요. 저는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고, 미혼일 적부터 갖고 있던 취미 생활도 틈틈이 하고 있습니다. 제 자신을 챙겨가며 육아 하고 있어요. 부모가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다는 건 곧 가족의 평화와 연결되는 말인 것 같습니다.

 

✔️ 실패에 대하여


실패에 민감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실패할까봐 애초에 시작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죠. 왜 그런걸까요. 저는 그들의 어린 시절에 어른들의 '잘해야만 한다', '실패는 실망스러운 것'이라는 메시지가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네가 성공했냐 아니냐보다 이걸 했다는 게 용감한 거야. 잘하지 못할까봐 두려워서 못하는 사람도 많은데 넌 그걸 했잖아."

 

 

이런 말이 나옵니다. 예를들어 아이가 새로 전학 온 친구에게 '친구하자'라고 먼저 손을 내밀었다고 쳐요. 그런데 그 친구는 거절했고요. 아이는 집에 와서 엄마에게 "친구 사귀기에 실패했어"라고 말했어요. 이 때 부모가 내놓을만한 괜찮은 답변은 무엇일까요?

 

"그래? 서운하고 아쉬웠겠네. 그래도 친구에게 용기를 내서 물어봤기 때문에 있었던 실패 아니야? 같이 놀자고 했을 때 그 친구가 놀고 싶지 않을 수도 있기는 하지. 좀 어색해도 시도해본 것은 잘했어. 다음에 또 한번 물어보는 것도 괜찮겠는데."

 

 

실패를 아무렇지 않은 척 흘리거나 과민반응 하지 않았어요. 일단 아이의 마음을 공감해주고, 어른의 시각에서 지혜를 나누어줬죠. 비록 친구 사귀기에 실패했어도 너는 용기를 낸 것이라는 사실을 직시하도록 건넨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만일 제가 아이였다면 엄마에게 큰 위로와 힘을 얻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말은 오래도록 제 인생에 영향을 끼칠 것 같아요.

✔️ 조력자


위에 한 번 언급했던 단어네요. 저는 아이의 조력자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에게 부모는 우주일 수 있으나 저 자신은 그래요. 그래서 도와주려고 합니다. 제 마음대로 휘두르는 게 아니라요.

"어떻게 하면 내 말을 듣게 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하면 아이가 좋은 선택을 하도록 도와줄 것인가?"로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가령 밤에 잠들기를 싫어하는 아이라면 이제 그만 자자는 말보단 시계나 타이머를 활용하는 방법. "시계가 10을 가리키면 자는거야"라고 아이와 약속을 해두고, 아이가 스스로 약속을 지켰다면 밀려오는 작은 뿌듯함을 느낄 수 있게 도와주는거예요. "모래시계가 다 내려가면 자러 가는거야"라고 약속을 해도 좋을 것 같아요.

물론 말처럼 잘 안 되는게 바로 육아죠. 하지만 이런 느낌이라는 겁니다. 올바른 울타리를 미리 조성해 놓고 아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거요.



 

 

이 외에도 본질육아에는 고개가 끄덕여지는 육아팁이 참 많이 담겨 있습니다. 이대로 끝내기 아쉬우니 하이라이트 해 두었던 부분 두 개 더 공유 할게요.

 

내가 자유롭게 나의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권리가 있듯이 우리의 자녀들도 같은 권리가 있다. 아이에게 '내가 너의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에 대해 더 잘 아니까 너는 나의 말을 따르라'고 말해선 안 된다. 자녀의 자율성을 침해할 권리가 부모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았다.


이 말을 듣고 아이를 봤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옷을 입어야 하는데 계속 도망을 다니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도망은 제가 붙인 단어. 아이는 말을 못 하거나 하기 싫어서 안 했던거겠죠) 그 때, '그래, 너도 네 생각이 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보니까 제가 그 상황에 옷을 반드시 입혀야만 할 이유가 사라지는 걸 경험했어요. 그래서 "여기 둘 테니까 입고 싶으면 입어. 도움이 필요하면 얘기해"라고 말해줬습니다. 신기하게 화가 나지 않았습니다. 화가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아이의 자율성을 인정하니까 그 상황이 달리 보였어요.

"공부 잘해야 무시 안 당하고 산다. 이러면 커서 무시당해." 이 말은 상대적 존재 가치를 직접적으로 가르치는 것과 같은 심각한 표현이다.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존중받아야 할 절대적 존재 가치가 있다. 그런데 이 말은 네가 공부를 잘해야 가치 있는 사람으로 존중 받고 네가 공부를 못 하면 존중을 못 받는다는 완전히 잘못된 메시지가 아닌가. 게다가 노력해도 잘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면 열등감과 자괴감, 자책감이 생긴다. 반면 아이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하기도 한다고 해보자. 그럼 이 아이의 마음에는 공부를 잘 못하는 사람은 무시해도 된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자리 잡힌다. 그러므로 이런 말은 사람은 원래 급이 나누어지는 것이고, 높은 곳의 사람이 낮은 곳의 사람을 무시해도 되며, 네가 무시 당하게 된다면 다 네 탓이라는 굉장히 위험한 의미를 포함한다.


좀 길지만 다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이지요. 무심코 내뱉은 말이 아이의 가치관이 될 수 있어요. 공부 못하는 사람을 무시하는 사회 분위기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이지 않나 싶습니다. 네가 무시 당하는 것은 공부 못 하는 네 탓이라니요.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하는 제 말중에 잘못된 것은 또 없는지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문장 하나하나에 자신감과 확신이 깃들어 읽는 내내 수업을 받는 학생의 마음가짐으로 편하게 보았어요. 육아에 필요한 이러저러한 것 일단 다 빼고, 가장 중요한 걸 알기 원하시면 이 책 추천 드려요.

육아서를 읽을 때마다 드는 뻔한 생각이 있는데, 새삼 부모의 역할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아이의 도화지에 나는 마음대로 그림을 그려서는 안 되는 것 같아요. 붓을 쥐는 방법, 세상엔 다양한 그림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 그린 그림을 보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 등이 내게 허락되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역시나 오늘도 길어졌네요? 그래도... 당신에게 도움이 되는 글이었기를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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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다른 육아서와 조금 다릅니다. 10년간의 암투병을 한 아이 엄마가 쓴 책이에요. 담백하게 하시는 말씀이 오히려 더 절절하게 다가와서 마음이 아팠는데요. 다행히 아이는 5년 내 생존률 5%라는 희박한 가능성을 뚫고 지금은 잘 살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에 오기까지, 책을 쓰기까지 가족이 겪었을 아픔과 힘듦은 저는 감히 가늠조차 하기가 어려워요.

'중추신경계 림프종' 이라는 희귀암이었어요. 명문대를 나온 엄마 밑에서 영재판정을 받은 아이가 어느 날 듣게 된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죠. 키는 어느정도 선에서 멈춰버리고, 시각장애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그로인해 겪는 사회적인 시선과 차별, 그리고 엄마의 편견... 장애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가 있었는데요.

제목은 무슨 뜻일까요? 길고 긴 투병생활을 함께 하며 엄마는 깨달아요. 내가 엄마여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하늘의 뜻이 그러하다면 받아들일 수 밖엔 없다고. 그 사실을 깨닫고 엄마는 아이와 매 순간을 생생하게 살아내려 노력해요.

우리는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며 현재를 낭비하는 엄마들을 많이 보죠. 이 엄마는 미래를 기대하기보다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아이에게 최선을 다합니다. 사람들의 시선과 말은 괘념치 않아요.

뻔뻔한 엄마? 저는 이 엄마야말로 진짜 엄마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앞세워 자기 욕망을 채우려는 게 아닌 진짜 아이가 원하는 걸 주려는 마음을 봤어요. 10년간 아이의 투병생활로 내공이 단단히 쌓인 분 같기도 했습니다.

오늘 제 리뷰는 늘 그래왔듯 책을 읽으며 하이라이트 해 두 었던 부분에 제 생각을 덧대는 형식으로 진행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걱정한 것은 '내 인생'이었다. 어떻게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생겼는지가 억울했다. 건강하고 똑똑한 아이로 길러 내고 싶은 바람은 물거품이 되었고, 내 커리어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편안하고 재미있게 키우고 있던 둘째 아이도 남의 손에 맡겨야 할 형편이 되었다. 무엇보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막막한 벼랑 끝에 서서, 앞으로 펼쳐질 상황을 견뎌 내는 일만 남았을 뿐, '선택'이란 더이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웠다.


이렇게 솔직할 수가 있나 싶어요. 안에 있는 치부를 다 꺼내 보여준 느낌. 제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솔직합니다. 아이가 암에 걸려 슬피 울던 내 모습이 실은 내 인생이 불쌍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그림이라니... 뜨끔합니다.

저도 아이가 위험한 상황에서 아이가 걱정스러운 마음 반, 내가 귀찮아질 게 뻔해 미리 제지하고 싶은 마음 반임을 고백해봐요. 심지어 아이가 아파서 응급실에 데려갔을 때 지금보다 더 불편한 내일이 오지 않도록 갖은 애를 쓰진 않았었나, 도 생각해봐요.

이런 생각을 하고 난 다음에는 가차없이 그 감정이 밀려오곤 합니다. '죄책감'. 나는 엄마도 아니다, 엄마가 이래도 되는건가? 회의감도 질 수 없다는 듯이 밀려오고요. 늘 결론은 '엄마도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겠어?'로 끝나곤 하지만, 마음이 무겁고 찜찜하지요.

이 책을 읽고 저는 비로소 조금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됐어요. 받아들이는거예요. '나는 이렇게 약한 인간이다. 다만, 나는 내 아이가 위험에 빠졌을 때 구해낼 의무가 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 라고요.

나는 아이를 통해 내가 '좋은 엄마', '훌륭한 엄마'임을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100점짜리 성적표를 받아서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이는 엄마가 하라니까, 엄마를 사랑하니까, 엄마의 사랑을 잃고 싶지 않으니까, 엄마가 하라는 대로 했다. 나는 아이의 그 지극한 사랑의 마음을 내 인생을 장식하는 장식품으로 사용했다.


내 자신이 빛나보이기 위해 아이의 인생을, 시간을, 감정을 소모시키는 일이 없어야 하는데, 아이의 순수하고 지극한 마음을 엄마라는 이름 뒤에 숨어 얼마나 이용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일이 그래요. 아이의 미래를 위한답시고 하는 일, 실은 그 안에 내 욕망이 숨어있음을 인정해야 해요. 지금, 혹은 나중에 나는 '어떤 엄마', '몇 점짜리 엄마'일까를 계산하고 나온 행동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가 없어요.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금방 합리화가 되는 점 유념할게요. 앞으론 제 이익이 아닌 아이를 위한 선택을 하도록 더 신중을 기하는 엄마가 되도록 노력할게요.

나도 모르게 아이의 숨소리를 세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면 얼른 아이의 몸에 코를 묻었다. 보들보들한 감촉, 따뜻한 온기, 쌕쌕거리는 숨소리, 엄마인 나만 알 수 있는 아이의 살냄새에 온 감각을 맡기고 있노라면 불안함에서 빠져나와 '지금 여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불안에 빠지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 지금 가진 것만으로 누릴 수 있는 충분한 자유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맛있는 밥을 먹을 자유도, 서로 눈 맞추고 웃을 자유도, 서로를 따뜻하게 안을 자유도 있다. 엄마들의 불안은 숙명이라지만, 벗어날 방법은 분명히 있다.


엄마이기 때문에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순 없어요. 내 욕망이 포함되어 있다 뿐이지 그렇다고 내가 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거든요. 인생을 먼저 살아봤기 때문에 바르고 빠른 길을 알잖아요. 그래서 저는 삶에서 놓쳐선 안 되는 것들, 놓쳐야 하는 것들을 알려주고 싶어요.

하지만... 그 생각에 너무 빠지다보면 아이의 '현재'와는 멀어지고, 어느새 '미래'만 보며 아둥바둥하는 엄마가 되어 있을지도요. 고맙게도 저자는 그 불안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해결책을 우리에게 제시해요.

아이의 온기, 숨소리, 나만 아는 살냄새. 온 감각을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아이에게 집중하라고요. 우리에겐 그럴 자유가 있다고요. 불안은 내가 만들어낸 거지만 평온함은 아이에게서 와요. 아이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어주나요?

좋은 게 좋은 게 아니라는 걸, 나쁜 건 나쁘다는 걸 그 때 분명히 말했어야 했다.


저자의 아이는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장학사가 학교에 왔을 때 반에서 쫓겨났었어요. 엄마는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됐고요. 그 상황을 만든 장본인은 전혀 미안하지 않은 얼굴로 사과를 하고 대충 무마하고 넘어가려 했다고 합니다. 엄마는 그런 상황이 처음이기도 하고, 화가 나지만 당황스럽기도 한 상태로 그녀에게 장애인들을 이해하는 시간을 보내라고 요구해요.

하지만 알았다는 대답과는 다르게 이행하지 않지요. 저자는 지금도 그 때와 비슷한 상황을 보거나 들으면 무척 화가 난다고 합니다. 저라도 그럴 것 같아요.

선배엄마가 '그 때 화냈어야 했다!'고 초보엄마들에게 예방주사를 놔주셨는데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저는 시뮬레이션을 돌려볼래요. 어색하고 어설프지만, 입 밖으로 말을 하는 연습을 해서 아이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는, 아이 눈에 멋있는 엄마가 되고싶어요. 남의 아픈 상처를 통해 교훈을 얻어 미안하네요.

만약 내가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분명하게 말할 것이다. 그리고 말하기 전에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엄마들과 연대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은 인간의 능력과 조건을 넘어서 서로가 존중하는 세상이라고, 서로의 선의를 믿는 세상이라고, 교사라는 자리에 있으려면 가장 여린 영혼에 대한 존중을 갖춰야 한다고, 그럴 수 없다면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말하고 적합성을 가릴 것이다. 내가 엄마가 된 의미가 바로 그것이니까.


같은 생각을 가진 엄마들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상심치 마세요. 내가 힘을 키우면 되니까. 다시 한 번, 이 말도 선배엄마가 초보엄마들에게 놔주는 예방주사라고 생각하자구요. 내가 더 멋지고 능력있는 엄마가 되어서, 할 말은 하는 똑부러진 엄마가 되어서, 아이가 제 힘으로는 이겨내지 못 하는 불합리한 상황을 겪을 때 위기에서 잘 빠져나올 수 있도록 우리가 힘을 보태주자구요!

나는 재빨리 내가 1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되돌아보았다. 무언가를 한 기억은 나지 않고, 무언가를 하지 않으려 애썼던 기억만 났다. '그건 잘했고 이건 잘못했어'라고 판단하지 않으려 애썼고, 정답을 주지 않으려 애썼고, 내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애썼다. 유일하게 하려고 애썼던 건 아이의 말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펜을 들고 받아 적으며 집중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이에게 휴식과 자유를 주었다니.


가족은 퇴원한 아이와 함께 지리산으로 거처를 옮겨요. 공부와 미래에 대한 압박을 내려놓고, 아이가 하고픈대로 엄마는 이제 따라만 갑니다. 유일하게 본인이 했던 일은 아이가 했던 말을 놓치지 않으려고 펜을 들고 받아 적은 것이었대요.

아직 미혼인 사람은 아이에게 휴식과 자유를 주는 일이 어려운 게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근데요, 이게 생각보다 어려워요. 엄마가 되면 있죠? 신경쓰라고 세상에서 갖가지 말을 다 쏟아내거든요. '이거 하면 아이 지능이 좋아져요', '지금 이 시기에 해야 해요', '다른 아이들은 다 하는 이거!' 귀가 쫑긋하는 수식어를 죄다 붙여가면서요.

아이에겐 최고로 좋은 것만 주고 싶은 우리 엄마들의 마음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거죠. 그런데 다른 엄마들도 다 한다니 뭔가 있을 것만 같고, 우리 아이만 안 하기엔 좀 그런 것 같아 나도 시작하게 되는... 뭐, 그런 악순환을 알면서도 시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위와 같이 아이가 하자는대로만 마냥 따라가기만 하는 삶이 말처럼 쉬운 게 결코 아니예요.

그래도 언젠가는, 단 한 달이라도요. 아이에게 진정한 휴식을 주는 날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정신 없는만큼 아이도 정신없을테니까, 신체적 정신적으로 오롯한 휴식을 선물해주고 싶어요.





여러가지 이유로 제목을 저렇게 붙였을거예요.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뻔뻔한 엄마로 보일 수도 있죠. 그러나 저는 현실을 그저 받아들인 사람에 대고 뻔뻔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네요. 아이도 그런 엄마를 예전보다 더 좋아할 것 같고요.

오랜 투병생활을 지켜보며 마음이 단단해진 엄마의 회고를 담은 책. 감히 이 안에서 무언가를 배워간다는 말을 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소중한 책이었습니다. 이미 그 시간을 지나온 엄마로서 지금 그 길을 걷고 있는 엄마들에게 건네는 육아팁도 중간 중간 담겨있으니 여러 의미에서 읽을만한 가치가 있어요.

책을 덮고, 저는 절망적이고 슬픈 상황에서 눈물을 흘리며 감정을 표현하는 것보다 나는 받아들였다는 태도가 오히려 마음을 더 울린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어요. 오늘 리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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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현재 마흔 중반의 '아줌마(작가가 본인을 이르는 말)' 가 쓴 책입니다. 본인의 경험담과 생각을 진솔하게 들려주는데 술술 읽혀요. 읽으면서 든 생각인데, 작가님은 잘난 체를 하지 않는 분 같아요. 겸손이 몸에 밴 느낌이랄까. 그리고 사람을 무척 좋아하세요. 엄마들에게 몇 번 데이고 난 후부터는 조심을 하시는 듯 했지만요.

블로그나 유튜브에서 많은 선배맘들에게 육아 정보를 공유 받곤 합니다. 그런데 사람에 관한, 아줌마들의 기싸움에 관한 허심탄회한 이야기는 처음이라 신선했어요. '아이 엄마 친구' 관계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회의감이 들기 시작하는 분, 미리 마음을 단단히 잡숫고 싶으신 분. 이 책에 주목해주세요.

 

 


 

 

놀이터에서 모여있는 엄마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피곤할 것 같기도 하고, 끼고 싶기도, 끼고 싶지 않기도 해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놀이터나 아파트 광장 등에서 채아 엄마를 포함한 5명의 엄마들은 아이들을 함께 놀게 하곤 했다. 그렇게 단순히 5명이 모여있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그녀들은 매우 파워풀하게 보였다. 멀리서 봐도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어벤져스 캐릭터들처럼 그녀들은 특정 공간을 다수라는 뭉쳐진 힘으로 전세내어 지배하고 있었다. 그 기운에 눌려서일까, 나는 그녀들 근처에 접근할 수 없었다. 채아 엄마와 나 이렇게 단둘이 맞닥뜨린 상황이라면 나도 '거, 좀 해 볼 만 하겠는데' 싶었을지 모르겠으나, 그녀는 항상 다른 엄마들과 함께 있었고 나는 거의 혼자였다. 나는 나의 아이가 그녀의 아이와 놀다가 어떤 문제라도 생기면 무조건 내 아이의 잘못이 될 것만 같은 불안함을 느꼈다. 뒤돌아서면 그룹의 엄마들이 내 아이를 언짢게 여기거나, 내가 어떤 대처를 했다 하더라도 아이 엄마인 나를 오목조목 뜯어보게 될 상황이 그려지곤 했다. 그래서 웬만하면 그녀들의 아이들이 노는 곳을 피해 다른 장소에서 나의 아이를 놀게 했다.


잘만 지내면 참 좋을텐데 이 또한 관계라 균열이 일어날 때가 물론 있습니다. 위 글은 얼마나 껄쩍지근한 상황인지요. 나는 혼자, 저 쪽은 다수에요. 나는 조용하고, 저 쪽은 시끌벅적하죠. 게다가 우리는 한 때 알았던, 친했던 사이에요. 모두 알다시피 육아라는 게 상당한 에너지가 들어가는 일인데 이런 기싸움에 소중한 나의 힘을 써야 한다는 게... 보기만 해도 지치더라고요.

다른 엄마들은 어떤가요? 반대편에 있는, 채아 엄마의 줄에 서기로 마음 먹은 한 때 친했던 엄마들이요. 그냥 그거 아닐까요? 이게 맞든 틀리든 관계에서 튀고 싶지 않은 마음. 그러니까 한 마디로 용기가 없는거죠. 채아 엄마가 버럭! 하고 소리를 질렀던 그 날, 자신이 데려온 엄마와 채아 엄마가 서로 사이가 안 좋은지 저자는 몰랐어요. 그리고 기분이 나빴다고 해도 이렇게 편을 나눌 정도의 대단히 유치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차라리 잘 된 것 같아요. 그런 모임에는 나가지 않는 게 길게 봤을 때 더 좋죠. 개개인의 성품이 실은 어떤지엔 관계없이, 다수가 되었을 때 풍기는 그 냄새가 너무 별로잖아요?

 


 

신자유주의식 만남의 유연함인지 아니면 서로가 서로에게 온전히 진심이 아니어서 그런 것인지 이런저런 복잡다단한 이유들이 있겠지만 사실 다들 조금씩은 외롭고 어설프고 유치하기도 하다는 것, 그리고 매우 실리에 빠르다는 것(꼭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감정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정도는 나도 조금은 감을 잡은 것 같다.


저희 엄마가 그러셨어요. "너도 애 학교 들어가면 명품백 들고 다녀." 그래서 왜요? 하고 여쭤보니 아줌마들 알게 모르게 그런 거 다 보고 판단한다 하더라고요. '그건 그냥 엄마가 이상한 사람들을 만난 거 아닐까?' 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러진 못 했네요.

그런 말도 있어요. 명품백이고 뭐고 상관 없이 애가 공부 잘하면 비닐봉지를 들고 다녀도 엄마들이 친한 척 하면서 줄을 선다고.

아이에게 고급 교육 정보를 주고싶고, 내 아이가 흙수저보단 금수저와 친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이해해요. 하지만 인터넷에 검색하면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 세상인데... 학원에 전화 한 번 해서 물어보면 될 일인데. 아이 친구는 아이가 스스로 만드는 거고요.

엄마들끼리 자연스럽게 친해져 마음을 나누는 건 좋은 일이지만, 목적을 가지고, 내 이익을 위해 상대를 정보 ATM기 취급하는 관계는 옳지 못한 것 같아요. 옳지 못한 걸 떠나 자기 자신이 힘들잖아요.

제가 초보엄마라 생각이 짧은 걸까요? 언젠가는 저도 그 사람의 배경, 아이들의 성적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날이 올까요? 누구든 내 앞의 가장 좋은 선택지를 고르게 마련인데 제 앞에 그런 선택지 밖에 보이지 않는 날이 올까요?

 


 

나는 태우 엄마의 인맥이 부러우면서 동시에 두려웠다. 태우 엄마의 지인들은 그녀가 말하는대로 나라는 사람을 파악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주 태우 엄마 앞에서 '착해졌다'. 태우 엄마와 있으면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스스로 검열하며 나의 어설픈 말 한 마디가 우리 관계에 해가 되지는 않을까 늘 조심했다. 우리가 만나는 날, 시간, 대화 주제, 식사 메뉴 등 거의 모든 주도권을 그녀가 쥐고 있었다. 어느 날부턴가 나는 태우 엄마와 함께 있으면 상무님을 모시고 하는 회식 자리처럼 그 자리가 불편하기만 했다. 어떤 반박도 하지 못한 채 태우 엄마의 말을 듣는 역할만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 자신이 점점 더 바보가 되어가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나는 태우 엄마와의 관계마저 나빠진다면 다시 외톨이가 될 것 같아서, 스스로 눈 가리고 아웅 하며 그녀의 진짜 모습을 보지 않으려 한 것인지도 모른다. 무엇이 되었든, 그녀는 '난 다 좋아', '난 괜찮아', '아무거나 상관없어' 를 연발하는 나의 수용적인 태도에 분명 용기를 얻었으리라.


저는 위 글을 읽으며 엉뚱하게도 아이의 기관 담임 선생님과 제 사이가 머릿속에 떠올랐어요. 평판이 두려워서는 아니고, 내 말과 행동으로 인해 아이에게 영향이 갈까 걱정하는 제 모습이 아른거려서요. 아직 말도 완벽하게 하지 못 하는 내 아이와 낯선 어른, 엄마인 저는 조심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도 종종 '착해져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선생님을 포함하여 누구든 선을 넘으면 경고를 주고, 그래도 변함이 없다면 확실하게 대처합니다. 작가님의 마지막 문단 다시 보아주세요. 내 수용적인 태도에 상대는 용기를 얻거든요. 사람은 본능적으로 그래요.

그리고 비단 내 자신이 호구되지 않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요. 아이들은 말보다 분위기에 더 영향을 받는다는데 힘들어하는 엄마를 아이가 과연 모를까요?

 


 

그럼에도 김지영은 병이 났다. 영화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김지영이 아픈 이유는 고달픈 육아 때문이 아니다. 이기적인 남편 때문도 아니다. 시월드에 시달려서도 아니고, 친정 엄마가 딸을 원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눈 뜨자마자 아이가, 남편이, 시댁이, 친정이 나를 괴롭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모든 것이 한데 섞여서 결혼과 출산 이후 김지영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어 버렸다. 지영은 거기서 길을 잃었다.


저는 딸 가진 엄마라 벌써부터 걱정 돼요. 임신부터 출산, 육아까지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잖아요. 입덧부터 튼살까지, 출산은 말할 것도 없고, 육아는 보통 힘든가요 뭐. 눈 앞의 아이는 너무 예쁘지만 그 길을 언젠가 내 딸이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져요. 임신과 출산은 어쩔 수 없어도, 육아는 지금 세대의 우리들보다 훨씬 더 수월하게, 편하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으면 해요. '육아는 엄마가, 일은 아빠가' 의 공식이 아니라 '육아는 부모가, 일도 부모가' 로 제대로 바로잡히는 날이 오기를.

너무 큰 책임감과 부담감에 사로잡혀 우울증에 걸리지 않기를! 그리고 부모노릇이 힘들다는 걸, 엄살이 아니라는 걸 이 사회가 알아주기를 바라요.

 


 

누군가에게 '일'이란 나의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한 사람을 그 사람이게 하는 마지막 도구'인 것이다. 누구에게나 내가 나임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그런 나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시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전업주부라고 해서 예외이진 않다.


아줌마들을 만났을 때, 누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다고 하면 저는 그게 그렇게 멋져보이더라고요. 육아가 힘든 걸 아니까 '그와중에 그런 일을!' 싶은거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들은 것 같아서 그 사람이 막 반짝거려 보여요.

육아가 힘들 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보세요. 노래를 한다거나 책을 읽는다거나 퍼즐을 맞춘다거나? 그렇게 서서히 내 안에 잊고 살았던 나도 채워넣자고요.






선배맘들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진진하고 유익합니다. 특히 이 책은 인간적인 매력이 글에도 묻어나 읽기도 편했어요. 상황에 대한 예시는 옆집 서준이 엄마 이야기를 담은 것 마냥 생생하고 현실적이었고요. 그래서 편하게 보실 수 있으실거예요. ^^ 이만 줄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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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이 책은 너무 오랜 기간 나눠 읽는 바람에 잊어버린 내용이 상당히 많기는 합니다. 이 글은 제가 책을 읽다가 하이라이트 해 둔 내용을 다시 읽고 기억을 되살려가며 제 생각을 적는 것으로 하려고 해요. 목차 소개 및 진지한 서평글이 아니니 참고 부탁드려요.

이 글을 막 읽기 시작했을 때 받았던 느낌, 그건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었습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정신과 의사가 집필한 책이라고 들었어요. 그런데 전혀 무뚝뚝하거나 무겁지 않고 (제 편견입니다) 친근함으로 중무장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었어요. 하은맘의 불량육아, 라는 책이 생각날 정도로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육아에서 많은 것을 내려놓으라고 얘길 합니다. '놀아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친구 만들어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아이에게 말 많이 안 걸어도 괜찮아요' 등등.. 제가 평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육아지침과는 전혀 다른 결이었어서 신선하고 또 놀라웠어요.

 

 


저자는 본인의 육아경험과 때로는 과학적 근거를 들어 부모를 안심시키려 부단히 애를 쓰는데요. 개인적으로 저는 경험만 주욱 늘어놓았다면 읽다가 관뒀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때때로 납득이 갈 만한 근거를 들어주기도 하고 뛰어난 글솜씨로 설득에 성공을 하기도 해서 덕분에 완독을 했던 것 같아요. 중간 중간 독자에게 말을 거는 듯, 장난을 치는 듯, 가볍고 재미있는 구절도 눈에 자주 띄었었네요.



하이라이트 해 둔 부분을 가져와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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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나의 성장, 느리게 가도 괜찮아요.' 라는 챕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아이들 어릴 때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도로 뱃속에 집어넣을 수 없는 한, 엄마의 에너지는 아이로 향할 수 밖에요. 그만큼 '나의 성장 속도'는 정체하는 것처럼 보일 테고요. 하지만 진짜 멈춰있는 건 아니죠. 위로 올라가던 화살표가 옆으로 방향을 틀었을 뿐. 그것도 어마어마한 속도로요. 아이로 인해 인생의 폭이 얼마나 넓어졌습니까? 혼자였을 때보다 10배는 넓어지지 않았나요?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있잖아요.


이 생각은 한 번도 못 해봤던 거라 잠깐 멍- 해졌었던 기억이 납니다. 언제 위로 올라갈 수 있을까, 위만 바라보고 있었는데요.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있잖아요' 그러게 말입니다. 아기가 나오고나서 내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저는 솔직히 사람 안 변한다, 라는 말에 이제는 동의 안 해요. 아기 낳고 키우면 변할 수도 있다고 믿어요.

저는 사랑이 뭔지를 잘 몰랐던 사람인데 지금은 매일 매일 눈으로 보이는 사랑을 경험하고 살아요. 육아를 하기 전에는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것이지요. 아기를 예뻐할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이 정도로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니까요. 그리고 풀밭의 풀과 꽃을 이렇게 유심히 바라보고 예뻐하게 될 줄도 몰랐어요. 이제는 다른 아기들을 무심히 바라보지 않고요. 식당에서 시끄러운 아기와 밥을 먹는 엄마를 흘겨보지도 않습니다. (밥 먹는 아기에게 스마트폰을 보여주는 엄마를 질책하지도 않고요)

저자님이 인생이 옆으로 넓어졌다고 하셨는데 말씀 잘하셨습니다. 아기를 키우면서 저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있어요. 비단 아기와 아기 엄마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인간,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볼 수 있게 됐어요. 시간이 없어 위로 올라가지 못해 나는 정체되어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아기는 존재 자체 그 하나만으로 제게 커다란 배움의 시간을 선물하고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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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어느 부분이었는지 잊어버렸습니다. 짧고 굵어요.

 

아이를 사랑하는 것과 아이 키우기를 즐기는 것은 별개의 문제예요.

 

이 한 문장은 제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육아를 잘 못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나날 속에서 괴로워 할 때, 불현듯 나의 아기에 대한 사랑이 의심이 될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이 문장이 그거 아니라고, 제 먹구름 가득한 생각에 대고 손을 휘휘 저어주는 것 같아서 되게 고마웠어요.

보고 있는데 보고 싶은, 때로는 보기만 했는데 눈가가 시큰거리는 놀랍고도 대단한 이 존재에 대한 감정을 저는 이제 헷갈리지 않을거예요. 육아가 힘든 것 뿐, 나는 아이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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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도 상당히 인상 깊었어요.

 

소심하다고 겁쟁이 아닙니다. "무서우면 안 해도 돼. 세상에 억지로 꼭 해야 되는 일이란 없어. 두려울 때 두렵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진짜 용기야. 너 겁쟁이 아니야." 그렇게 말해주세요.


이건 아기 뿐 아니라 다 큰 어른인 제게도 해주시는 말씀 같았어요. 모르면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두려울 때 두렵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무서우면 무섭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회사에 입사할 때만큼이나 퇴사할 때에도 큰 용기가 필요하죠. 용기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그리고 육아에 적용을 해보면... 아이가 두려워 할 때 이런 말이 선뜻 나올지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부모 마음에 '이겨냈으면' 하고, 이 경험을 발판 삼아 '성장했으면' 할테니까요. 아이와 함께 있을 땐 항상 그 어떤 것보다 아이 마음을 먼저 읽어주는게 중요하단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는 구절이었습니다. 너무 멋진 말인 것 같아요. "두려울 때 두렵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진짜 용기야. 너 겁쟁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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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아이가 아직 기저귀를 떼지 않았을 때, 주위로부터 오는 걱정 공격에 대한 쿨한 방어 모습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아이가 기저귀 때문에 많이 스트레스 받아요. 주변에서 걱정하면 자신감 더 떨어지니까, 앞으로 그런 얘기 우리 집에서 하지 말아주세요. 애 들으면 큰일나요."


정확히는 '아이의 장래를 위한 걱정 공격'이 들어오면 이렇게 대답하래요. 너무 쿨하고 멋지지 않나요?





넘쳐나는 육아 정보에 지친 부모님들의 짐을 덜 수 있게 도와주는 육아서, 제로육아. 쓰고보니 제로육아만의 매력이 담긴 구절을 제가 가져오지는 못한 것 같네요. 아쉽지만, 남들은 다 저기 앞서 부지런히 걷고 뛰고 있는데 나만 뒤처진 것 같은 생각이 들 때 직접 한 번 봐보세요. 동지를 만난 것 같아서 마음이 좀 좋아지실겁니다.

저는 처음엔 '너무 다 괜찮다는 거 아니야?' 싶어 대충 쓴 책이 아닐까 의심까지 했었는데 아이를 방치하란 의도였다면 보다가 책을 덮었겠죠? 부모가 숨 쉴 구멍을 스스로 좀 만들란 얘깁니다. 육아가 힘들어 눈물이 나는 날, 저는 아기 낮잠을 재우자마자 멘토 선생님을 찾듯 제로육아를 찾았었어요.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라는 말이 듣고 싶었거든요.

저에게 그랬듯 누군가에게도 위로가 되기를 바라요. 작가님 책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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