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궁금한 분들이 계실 것 같아요. 먼저 답을 할게요. 이 책은 3-7세를 '그 시기'로 놓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3-7세 아이는 부모가 말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대로 배우며 자란다고 해요. 그들에게 좋은 인성을 갖게 해주기 위해서는 부모가 좋은 인성으로 아이를 안아주어야 하며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아이가 궁금해 하는 것을 함께 알아가면 된다고 했어요.

제목이 좀 세서 긴장하신 분들 계실지 몰라 하는 얘긴데요. 부모자식 간에 중요하지 않은 시기가 어딨겠어요. '결정적' 이란 단어를 굳이 쓰신 이유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정서발달, 인성교육에 있어 결정적인 시기가 있다는 건 이제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죠. (0-3세, 만 3-6세) 그 시기에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걸 알려주고 있어요. 혹 놓쳤다고 해도 아이는 우리에게 많은 기회를 주니까 낙담 말아요. 이 책은 저같은 초보엄마에게 "오늘도 열심히 육아 해야겠다!"  와 같은 즐거운 동기부여를 주는 책입니다.

 

 

3-7세,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적 능력과 인성의 기초를 세우는 시기이다. 우리 아이가 바로 그 시간을 지나고 있다. 한순간 한순간이 정말 소중하다.

 

 

 

아이가 갓 4살이 되어 더 몰입하여 볼 수 있었는데요. 이 시기를 지나고 있는 다른 아이들의 사례를 보며, 우리 아이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과 평범한 부모의 저들 나름대로의 대처법을 보며 묘한 위로를 받기도 했습니다. ('당신이 이상한 게 아니다!' 란 말을 직접적으로 하진 않았지만,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뒤이어 따라오는 전문가의 조언과 철학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임숙 - 엄마가 놓쳐서는 안될 결정적 시기


내가 하는 말과 행동, 그리고 표정 및 분위기는 아이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 육아를 하는 부모님들 귀에 이제는 딱지가 앉을 정도로 수없이 들어왔던 그 사실을 이 책은 몇 번이고 인지시켜 줘요. 문제행동을 하는 아이들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아이가 아니라 그 행동을 먼저 한, 혹은 하도록 만든 부모가 먼저 있었음을 알게 되는데요.

<금쪽같은 내새끼>만 봐도 그래요. 문제행동을 한답시고 보여주는 아이들의 화면이 끝난 후 전문가는 부모가 그 부모에게 받았던 어린시절 양육방식을 돌아보게끔 하잖아요. (물론 모든 상황이 다 그런 건 아닙니다만 높은 확률적으로)

책 속에 이런 일례가 있었습니다. 아이가 자꾸만 동생을 때린다는 거예요. 부모가 하지 말라고 말리면 아이는 왜 말리느냐고 억울해 하고요. 이런 아이는 도대체 어떻게 키워야 할 지 모르겠다며 부모가 전문가에게 고민상담을 하러 온 겁니다.

알고보니 문제행동을 한 아이가 동생을 때리기 전, 잘못을 하면 그 부모는 아이를 때리고는 했더군요. '잘못을 하면 맞아야 한다' 는 잘못된 이념이 각인 되어 본능에 가까운 액션을 취했을 뿐인데, 나는 왜 동생이 내 블록을 무너뜨린 것을 보고도 때리면 안 되는 거냐고 생각한 거예요. 이 사례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건 과연 뭘까요?

 

 

인성을 가르치려면 우선 아이가 좋은 인성을 경험해야 한다.




먼저 우리 집을 돌아보았습니다. 제가 아이에게 주의를 주는 문제행동은 '물건을 던지는 것'이었어요. 여러 번 그러지 말라고 일러보고, 짐짓 단호한 투로 말을 해보기도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는데요.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가 어릴 때, 저희 부부는 멀리 떨어져 있으면 종종 물건을 던져 받고는 했어요. 빨리 빨리 효율적으로 처리를 하고 싶으니까, 별 생각없이 했던 행동인데 아이가 따라할 수도 있을 거라는 사실은 미처 신경을 쓰지 못 했던거죠.

그 모습을 기억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엄마 아빠가 물건 던지는 걸 보고 따라한거야?" 아이는 그렇다고 대답했어요. "그런 줄도 모르고 엄마는 하지 말라고만 했네. 앞으로는 엄마 아빠도 안 던질게. 위험하니까 우리 물건 던지지 말자"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일단 상황은 종결이 되었어요. 하지만 개선이 될 지는 더 지켜봐야겠죠?

아이 앞에서는 찬물도 함부로 못 마신다는 옛말이 떠올라요. 누가 누굴 나무라요.
아이에게 좋은 인성을 가르치려면 가장 가까운 부모가 그런 인성을 가지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가게에서 계산을 하고 나올 때 인사를 하는 부모의 모습, 어려운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부모의 모습,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지 않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아이는 자연스럽게 배울 거예요.

저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인데 이 사실을 배우고 난 이후 특히 더 행동을 조심하고 있어요. 낯설고 불편하지만... 좋은 점도 있긴 합니다. 그간 어른이라는 이유로 아무도 내게 지적하지 않았던 행동을 '아이가 보기에 어땠을까?' 싶어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거든요. 그럼으로써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고요.

 


조금 다른 이야기도 해 볼게요. 여러분은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자랐으면 하시나요? 인성이 바른 아이? 공부를 잘 하는 아이? 행복한 아이?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질문이란 거 알지만요.

혹시 제가 말한 보기 중에 유독 내 마음에 강하게 와닿는 게 있지는 않았나요? '이랬으면 좋겠다' 싶은거. 저는 있어요.

저는 아이가 '행복한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있죠, 얼마 전에 남편이 그러는 거예요. 아이가 남편이랑 있을 때는 규칙도 잘 지키고 해야 할 일도 완수를 잘 하는데, 저만 오면 땡깡을 부리는 아기로 변한다고, 너무 오냐오냐 하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괜찮지만 나중에도 괜찮겠느냐는 걱정 어린 말도 하나 더 얹어서요.

다른 게 부족해도 아이를 사랑만 해주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아닌 것 같아요. 균형이 중요한 것 같아요. 아이는 인형이 아니잖아요. 배우면 받아들이는 사람인데, 제가 너무 저 편한 육아를 했던 듯 해요.

남편이 제게 저 한 마디를 해주지 않았다면, 아래의 이 구절을 그냥 지나쳤더라면 아래와 같은 사단이 미래의 제게 일어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아찔해요. 미리 알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요.

 

가끔 상담실에는 아이를 키우며 성격만 중요시하는 파행적 모습에 회의를 느껴 공부보다 인성을 강조하면서 키운 아이와 부모가 찾아온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아이에게 공부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자유롭게 키웠는데 왜 상담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생겼을까? 어릴 적부터 친구와 함께 즐겁게 놀고 자유로운 시간을 갖도록 배려하며 키웠는데, 아이는 왜 점점 친구 관계에서도 문제가 생기고 알 수 없는 불안과 우울로 힘들어할까? 부모가 놓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과유불급.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뭐든 과하면 안 하느니만 못해요. 인성교육, 너무 좋은데, 필요한 거 아는데, 이 역시 '치우쳐지면' 이러한 문제가 충분히 생길 수 있어요. 아이가 다른 친구들을 만났는데 나만 못 한다는 소외감에 위축 되거나 자신감을 잃게 되는 모습... 상상만 해도 얼마나 마음 아파요.

그런데 동시에 저는 육아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해서요, 일부러 틀렸다고는 말하지 않았어요. 친구들 사이에서 제 목소리를 당당히 낼 수 없었던 경험을 통해 그 아이는 어떤 식으로든 한층 더 성숙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의 기질이 다 다르고, 각 집의 육아 방식이 비슷한 듯 해도 미세하게 다 다른데 어떻게 획일적인 결론이 날 수 있겠어요.

위 일례의 아이 이야기를 더 해 볼게요. 인성교육'만' 받은 이 친구가 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대요. 낯선 나라 친구들은 이방인을 바로 친구로 받아들여주지 않았다고 하고요. 하지만 아이는 이미 한국에서 소외감을 느낀 바 있기 때문에 크게 상처 받지 않고 오히려 친구들과 더 잘 지내기 위해 노력 했다고 해요.

저자는 한 쪽으로 치우쳐짐은 좋지 않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이미 그렇게 되었다면, 헤쳐나갈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주거나 아이를 믿어주어서 전화위복을 몸소 경험하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요.

 

아이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자라고 싶어 하는가이다. 아이가 자신이 다양한 능력을 키워 가며 잘 자라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인성만 강조하느라 아이가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을 소홀히 하다 보면 아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는 것도 별로 없다는 생각에 주눅 들고 위축된다. 나중에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지 걱정되고 불안해진다. 부모는 절대 비교하며 키우지 않았다 해도 아이 스스로 자기도 모르게 또래 아이들과 비교한다. 이런 시간이 쌓이면 서서히 정서 면에서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이에게 기본적인 것들은 꼭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건강한 자존감을 갖고 살 수 있도록 작은 성취부터 큰 성취까지 경험하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도 가능하면 해주는 게 좋다고 봐요. 아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더더욱이요.

(하지만 부모는 신이 아니니까 모든 판을 다 짜줄 순 없죠. 그럴 때는 없으면 없는대로, 주어진 환경에서 아이가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 해요. 겪지 않았으면 하지만, 겪을 수 밖에 없는 삶의 필연적인 숱한 장애물을 헤쳐나가는 연습, 그 안에서 문제해결능력과 회복탄력성을 기를 수 있을테니까요.)

저는 아직 아이가 어려서 새로운 세계와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나름대로 힘껏 길을 터주는 편이예요. 만일 아이가 힘들다거나 괴로워하면 이야기를 하고, 같이 손 잡고 나오고요.

길가에 핀 민들레 꽃에 관심을 보이는 아이의 관심이 더 깊어질 수 있게 놀이와 스킬로 잘 이끌어 주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 책의 제목을 한 번 더 떠올려 주시겠어요? 당연히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야합니다.

 

중요한 건 애착에 금이 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아이를 가르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배움이 노는 것 만큼이나 즐겁다는 사실을 깨닫게 도와야 한다. 즐겁게 배우는 아이는 힘든 공부도 해낼 수 있는 힘이 생기며 부모와의 좋은 관계를 평생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간다. 사춘기 아이가 문을 꽝 닫고 들어가 대답도 안 한다고 해서 아이 성격을 탓할 필요 없다. 아이가 성질이 못돼서 그런 게 아니다. 엄마가 자기 마음은 몰라주고 사랑을 핑계로 마음대로 휘두르니 괴로운 것이다.


아이가 네 살 밖에 안 되어 더 큰 아이들을 둔 부모들의 심정을 저는 잘 모르지만요. 네 살 아이는 아직까진 엄마가 뭘 하자고 하면 잘 따라와줘요. 그리고 어린 아이이기 때문에 놀이를 좋아하므로, 무언가를 놀이식으로 엮는 게 아직은 좀 쉽네요. 조금 더 큰 아이들의 경우 부모가 아이를 대하는 방식부터가 다르겠죠? 하지만 태도가 달라졌을 뿐 마음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무언가에 호기심을 보이는 아이의 말을 흘려 듣지 않고 그것에 더 빠져들 수 있도록 준비를 해주거나 사고를 확장시킬 수 있는 질문을 던지는 것. 좋은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소한 것이라도 아이의 마음이라면 존중하고 수용하고 진심으로 귀기울여주는 자세라고 생각해서 나름 열심히 실천하고 있고요.

저희 집 이야기를 해 볼게요. 아이가 영어를 친숙하게 느꼈으면 해서 이것저것 많이 보여주고 있어요. 제가 준비한 영어 놀이를 아이가 치우라고 하면 반응에 따라, "재밌는 건데 그럼 다음에 같이 해보자" 며 치우거나 "그럼 엄마 혼자 해 볼게. 엄마는 하고 싶어서" 얘기하고 잠시나마 혼자 하기도 해요. 그럼 운이 좋은 날은 다가와주기도 하더라고요?

핵심은 강요하면 안 된다는 것. 제 철칙이예요. 저는 아이가 좋아하는 춤과 노래 그리고 대화로 노출을 시켜 주고 있습니다. 덕분이라고 해야할지 아이의 최애곡은 ABC송이에요. 자기가 아는 단어, 질문이 들리면 큰 목소리로 대답 할 줄 알고요.

(본격적인 언어 공부는 측두엽이 발달하기 시작하는 만 6세 이후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그 활동이 욕구를 채워 주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친구 것을 빼앗기만 하던 아이가 친구에게 자기 장난감을 빌려 준 뒤 기분이 좋거나 칭찬을 받았다면, 아이 마음속에 새로운 사진이 저장되고 아이는 그 행동을 더 하고 싶어 한다. 힘들게 로봇을 만들었는데 완성하고 나니 아주 뿌듯했다면, 그 아이는 앞으로 더 멋지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우리 아이의 '좋은 세계'에 건설적이고 가치 있는 것들, 아이의 성장을 돕는 것들이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건 아이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적용 가능한 삶의 지혜예요. 어떤 경험을 하고 그것이 좋은 기분이었다면 우리는 그 행동을 또 하고 싶을테죠. 아이에게 배려를 가르치고 싶다면 배려를 하고나서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을 하게 해주세요. 그 후는 시키지 않아도 할 거예요.

사람은 머리보다 몸으로 부딪혀 알게 되는 일을 더 오래 기억하지 않나요? 뜨거운 걸 만져 몸이 놀란 기억은 평생 그가 뜨거운 불을 조심하도록 만들어요. 그리고 그건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왜?' 라는 의문이 끼어들 수가 없죠. 내가 겪은 것이기 때문에 그저 받아들일 수 밖에요.

그건 남과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경험이었다, 는 기억. 여러분은 어떤 게 떠오르세요? 봉사활동, 분리수거, 인사하기, 미소짓기... 생각해보니 꽤 여러가지가 있네요. 아이와 함께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끝나고 연관도서를 읽으면 더 오래 기억에 남겠어요!)

 

아이의 기질에 맞는 양육이 그리 어려운 건 아니다. 아이에 대한 호기심만 있으면 된다. '이래야 한다'가 아니라 '우리 아인 어떤 아이지?'라며 아이를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아이는 '전 이런 사람이에요'라며 온몸으로 자신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책을 읽고 가장 좋았던 점은 아이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에요. 저는 우리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대충 알아요.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하며 예술적인 활동을 좋아하죠. (아직까지는)

하지만 저는 저도 모르게 그 사실을 애써 지우려고 했음을 인정해요. 왜냐하면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아이는 키우기가 어렵거든요. 저, 그러니까 엄마가 힘들어요. 그래서 은근히 아이를 왜곡해 바라보기도 했어요.

이젠 인정해요. 아이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고 있는데 엄마라는 사람이 대체 뭘 바란건지... 참 웃기죠. 이젠 내 아이에 맞는 양육법을 택해 실행할 거예요. 너는 이런 아이여야 해, 가 아니라 너는 어떤 아이일까, 에서부터 다시 시작이에요.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현재의 생각도 아이가 보여주는 말과 행동으로 달라질 수 있어요. 앞으로는 아이가 보여주는 아이를 볼 거예요.






이 책에는 순한 아이, 까탈스러운 아이, 느린 아이에 대한 예시가 나와 있습니다. 읽어보시고 우리 아이는 어느 쪽인지 체크하며 읽어보시면 현명한 육아를 하시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좋은 내용이 너무 많은데 제 역량이 여기까지라 다 담을 수가 없네요. 이런 말 뭣하지만... 직접 읽어보시기를 추천 드립니다(?) 다 옮기지는 못 했지만 좋았던 이야기 조금 더 나누며 이번 포스트 마칠게요.






저자는 상상놀이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했는데요. 아이가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하거나 치료를 받으러 가야 하는데 무서워서 긴장하고 있는 경우 상상놀이를 제안해 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림책에서 봤던 용사가 내가 되어보는 거예요. 그래서 무서움과 두려움을 물리치고 멋지게 진료를 받는 거죠. 부모의 교묘한 연기력이 필요한 고도의 귀엽고도 치밀한 상상놀이인데, 잘만 먹힌다면 아이 마음이 단단해지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차마 내가 쓰러뜨리지는 못 했어도, 최소한 방어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만일 이기고 돌아온다면 아이 마음에 살포시 자리잡은 칭찬 스티커 같은 뿌듯함은 덤이고요.

그리고 아이의 그 어떤 말이라도 일단수용 해주라는 말도 인상깊었습니다. 순서를 기억하라는 거예요. 수용을 해 준 다음에 해결책을 제시하라고요. 수용은 그랬구나, 같은 건데요. 어른이니까 아이가 차마 표현하지 못한 감정에 적절한 이름을 붙여 대신 설명 해주면 돼요. 서러웠구나, 억울했구나, 불편했구나, 슬펐구나...

답답해서 울기만 했던 아이가 난생 처음 제 감정을 알게 되는 순간일지 몰라요. 커감에 따라 엄마가 알려준 그 감정을 정리하는 법도 배우게 될 테죠. 이런 과정이 없으면 속상한 것도 짜증, 슬픈 것도 짜증, 질투가 나는 것도 짜증, 서러운 것도 짜증, 혹은 화라는 이름 밖에 붙이지 못할 지도요. 이 역시 부모가 모든 걸 다 해줄 수는 없지만 때에 따라 도와줄 필요가 있는 일인 건 맞는 것 같아요.

끝까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이렇게 많다는 건... 실질적인 팁이 많다는 뜻일겁니다. 뻔한 위로의 말이 있는 건 아닌데 묘하게 위로가 되기도 하고요. 3-7세의 아이에게 중요한 게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신 분들, 아이를 이해하고 싶은 분들, 이 책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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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다른 육아서와 조금 다릅니다. 10년간의 암투병을 한 아이 엄마가 쓴 책이에요. 담백하게 하시는 말씀이 오히려 더 절절하게 다가와서 마음이 아팠는데요. 다행히 아이는 5년 내 생존률 5%라는 희박한 가능성을 뚫고 지금은 잘 살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에 오기까지, 책을 쓰기까지 가족이 겪었을 아픔과 힘듦은 저는 감히 가늠조차 하기가 어려워요.

'중추신경계 림프종' 이라는 희귀암이었어요. 명문대를 나온 엄마 밑에서 영재판정을 받은 아이가 어느 날 듣게 된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죠. 키는 어느정도 선에서 멈춰버리고, 시각장애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그로인해 겪는 사회적인 시선과 차별, 그리고 엄마의 편견... 장애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가 있었는데요.

제목은 무슨 뜻일까요? 길고 긴 투병생활을 함께 하며 엄마는 깨달아요. 내가 엄마여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하늘의 뜻이 그러하다면 받아들일 수 밖엔 없다고. 그 사실을 깨닫고 엄마는 아이와 매 순간을 생생하게 살아내려 노력해요.

우리는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며 현재를 낭비하는 엄마들을 많이 보죠. 이 엄마는 미래를 기대하기보다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아이에게 최선을 다합니다. 사람들의 시선과 말은 괘념치 않아요.

뻔뻔한 엄마? 저는 이 엄마야말로 진짜 엄마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앞세워 자기 욕망을 채우려는 게 아닌 진짜 아이가 원하는 걸 주려는 마음을 봤어요. 10년간 아이의 투병생활로 내공이 단단히 쌓인 분 같기도 했습니다.

오늘 제 리뷰는 늘 그래왔듯 책을 읽으며 하이라이트 해 두 었던 부분에 제 생각을 덧대는 형식으로 진행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걱정한 것은 '내 인생'이었다. 어떻게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생겼는지가 억울했다. 건강하고 똑똑한 아이로 길러 내고 싶은 바람은 물거품이 되었고, 내 커리어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편안하고 재미있게 키우고 있던 둘째 아이도 남의 손에 맡겨야 할 형편이 되었다. 무엇보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막막한 벼랑 끝에 서서, 앞으로 펼쳐질 상황을 견뎌 내는 일만 남았을 뿐, '선택'이란 더이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웠다.


이렇게 솔직할 수가 있나 싶어요. 안에 있는 치부를 다 꺼내 보여준 느낌. 제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솔직합니다. 아이가 암에 걸려 슬피 울던 내 모습이 실은 내 인생이 불쌍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그림이라니... 뜨끔합니다.

저도 아이가 위험한 상황에서 아이가 걱정스러운 마음 반, 내가 귀찮아질 게 뻔해 미리 제지하고 싶은 마음 반임을 고백해봐요. 심지어 아이가 아파서 응급실에 데려갔을 때 지금보다 더 불편한 내일이 오지 않도록 갖은 애를 쓰진 않았었나, 도 생각해봐요.

이런 생각을 하고 난 다음에는 가차없이 그 감정이 밀려오곤 합니다. '죄책감'. 나는 엄마도 아니다, 엄마가 이래도 되는건가? 회의감도 질 수 없다는 듯이 밀려오고요. 늘 결론은 '엄마도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겠어?'로 끝나곤 하지만, 마음이 무겁고 찜찜하지요.

이 책을 읽고 저는 비로소 조금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됐어요. 받아들이는거예요. '나는 이렇게 약한 인간이다. 다만, 나는 내 아이가 위험에 빠졌을 때 구해낼 의무가 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 라고요.

나는 아이를 통해 내가 '좋은 엄마', '훌륭한 엄마'임을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100점짜리 성적표를 받아서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이는 엄마가 하라니까, 엄마를 사랑하니까, 엄마의 사랑을 잃고 싶지 않으니까, 엄마가 하라는 대로 했다. 나는 아이의 그 지극한 사랑의 마음을 내 인생을 장식하는 장식품으로 사용했다.


내 자신이 빛나보이기 위해 아이의 인생을, 시간을, 감정을 소모시키는 일이 없어야 하는데, 아이의 순수하고 지극한 마음을 엄마라는 이름 뒤에 숨어 얼마나 이용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일이 그래요. 아이의 미래를 위한답시고 하는 일, 실은 그 안에 내 욕망이 숨어있음을 인정해야 해요. 지금, 혹은 나중에 나는 '어떤 엄마', '몇 점짜리 엄마'일까를 계산하고 나온 행동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가 없어요.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금방 합리화가 되는 점 유념할게요. 앞으론 제 이익이 아닌 아이를 위한 선택을 하도록 더 신중을 기하는 엄마가 되도록 노력할게요.

나도 모르게 아이의 숨소리를 세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면 얼른 아이의 몸에 코를 묻었다. 보들보들한 감촉, 따뜻한 온기, 쌕쌕거리는 숨소리, 엄마인 나만 알 수 있는 아이의 살냄새에 온 감각을 맡기고 있노라면 불안함에서 빠져나와 '지금 여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불안에 빠지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 지금 가진 것만으로 누릴 수 있는 충분한 자유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맛있는 밥을 먹을 자유도, 서로 눈 맞추고 웃을 자유도, 서로를 따뜻하게 안을 자유도 있다. 엄마들의 불안은 숙명이라지만, 벗어날 방법은 분명히 있다.


엄마이기 때문에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순 없어요. 내 욕망이 포함되어 있다 뿐이지 그렇다고 내가 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거든요. 인생을 먼저 살아봤기 때문에 바르고 빠른 길을 알잖아요. 그래서 저는 삶에서 놓쳐선 안 되는 것들, 놓쳐야 하는 것들을 알려주고 싶어요.

하지만... 그 생각에 너무 빠지다보면 아이의 '현재'와는 멀어지고, 어느새 '미래'만 보며 아둥바둥하는 엄마가 되어 있을지도요. 고맙게도 저자는 그 불안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해결책을 우리에게 제시해요.

아이의 온기, 숨소리, 나만 아는 살냄새. 온 감각을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아이에게 집중하라고요. 우리에겐 그럴 자유가 있다고요. 불안은 내가 만들어낸 거지만 평온함은 아이에게서 와요. 아이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어주나요?

좋은 게 좋은 게 아니라는 걸, 나쁜 건 나쁘다는 걸 그 때 분명히 말했어야 했다.


저자의 아이는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장학사가 학교에 왔을 때 반에서 쫓겨났었어요. 엄마는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됐고요. 그 상황을 만든 장본인은 전혀 미안하지 않은 얼굴로 사과를 하고 대충 무마하고 넘어가려 했다고 합니다. 엄마는 그런 상황이 처음이기도 하고, 화가 나지만 당황스럽기도 한 상태로 그녀에게 장애인들을 이해하는 시간을 보내라고 요구해요.

하지만 알았다는 대답과는 다르게 이행하지 않지요. 저자는 지금도 그 때와 비슷한 상황을 보거나 들으면 무척 화가 난다고 합니다. 저라도 그럴 것 같아요.

선배엄마가 '그 때 화냈어야 했다!'고 초보엄마들에게 예방주사를 놔주셨는데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저는 시뮬레이션을 돌려볼래요. 어색하고 어설프지만, 입 밖으로 말을 하는 연습을 해서 아이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는, 아이 눈에 멋있는 엄마가 되고싶어요. 남의 아픈 상처를 통해 교훈을 얻어 미안하네요.

만약 내가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분명하게 말할 것이다. 그리고 말하기 전에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엄마들과 연대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은 인간의 능력과 조건을 넘어서 서로가 존중하는 세상이라고, 서로의 선의를 믿는 세상이라고, 교사라는 자리에 있으려면 가장 여린 영혼에 대한 존중을 갖춰야 한다고, 그럴 수 없다면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말하고 적합성을 가릴 것이다. 내가 엄마가 된 의미가 바로 그것이니까.


같은 생각을 가진 엄마들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상심치 마세요. 내가 힘을 키우면 되니까. 다시 한 번, 이 말도 선배엄마가 초보엄마들에게 놔주는 예방주사라고 생각하자구요. 내가 더 멋지고 능력있는 엄마가 되어서, 할 말은 하는 똑부러진 엄마가 되어서, 아이가 제 힘으로는 이겨내지 못 하는 불합리한 상황을 겪을 때 위기에서 잘 빠져나올 수 있도록 우리가 힘을 보태주자구요!

나는 재빨리 내가 1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되돌아보았다. 무언가를 한 기억은 나지 않고, 무언가를 하지 않으려 애썼던 기억만 났다. '그건 잘했고 이건 잘못했어'라고 판단하지 않으려 애썼고, 정답을 주지 않으려 애썼고, 내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애썼다. 유일하게 하려고 애썼던 건 아이의 말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펜을 들고 받아 적으며 집중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이에게 휴식과 자유를 주었다니.


가족은 퇴원한 아이와 함께 지리산으로 거처를 옮겨요. 공부와 미래에 대한 압박을 내려놓고, 아이가 하고픈대로 엄마는 이제 따라만 갑니다. 유일하게 본인이 했던 일은 아이가 했던 말을 놓치지 않으려고 펜을 들고 받아 적은 것이었대요.

아직 미혼인 사람은 아이에게 휴식과 자유를 주는 일이 어려운 게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근데요, 이게 생각보다 어려워요. 엄마가 되면 있죠? 신경쓰라고 세상에서 갖가지 말을 다 쏟아내거든요. '이거 하면 아이 지능이 좋아져요', '지금 이 시기에 해야 해요', '다른 아이들은 다 하는 이거!' 귀가 쫑긋하는 수식어를 죄다 붙여가면서요.

아이에겐 최고로 좋은 것만 주고 싶은 우리 엄마들의 마음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거죠. 그런데 다른 엄마들도 다 한다니 뭔가 있을 것만 같고, 우리 아이만 안 하기엔 좀 그런 것 같아 나도 시작하게 되는... 뭐, 그런 악순환을 알면서도 시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위와 같이 아이가 하자는대로만 마냥 따라가기만 하는 삶이 말처럼 쉬운 게 결코 아니예요.

그래도 언젠가는, 단 한 달이라도요. 아이에게 진정한 휴식을 주는 날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정신 없는만큼 아이도 정신없을테니까, 신체적 정신적으로 오롯한 휴식을 선물해주고 싶어요.





여러가지 이유로 제목을 저렇게 붙였을거예요.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뻔뻔한 엄마로 보일 수도 있죠. 그러나 저는 현실을 그저 받아들인 사람에 대고 뻔뻔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네요. 아이도 그런 엄마를 예전보다 더 좋아할 것 같고요.

오랜 투병생활을 지켜보며 마음이 단단해진 엄마의 회고를 담은 책. 감히 이 안에서 무언가를 배워간다는 말을 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소중한 책이었습니다. 이미 그 시간을 지나온 엄마로서 지금 그 길을 걷고 있는 엄마들에게 건네는 육아팁도 중간 중간 담겨있으니 여러 의미에서 읽을만한 가치가 있어요.

책을 덮고, 저는 절망적이고 슬픈 상황에서 눈물을 흘리며 감정을 표현하는 것보다 나는 받아들였다는 태도가 오히려 마음을 더 울린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어요. 오늘 리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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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현재 마흔 중반의 '아줌마(작가가 본인을 이르는 말)' 가 쓴 책입니다. 본인의 경험담과 생각을 진솔하게 들려주는데 술술 읽혀요. 읽으면서 든 생각인데, 작가님은 잘난 체를 하지 않는 분 같아요. 겸손이 몸에 밴 느낌이랄까. 그리고 사람을 무척 좋아하세요. 엄마들에게 몇 번 데이고 난 후부터는 조심을 하시는 듯 했지만요.

블로그나 유튜브에서 많은 선배맘들에게 육아 정보를 공유 받곤 합니다. 그런데 사람에 관한, 아줌마들의 기싸움에 관한 허심탄회한 이야기는 처음이라 신선했어요. '아이 엄마 친구' 관계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회의감이 들기 시작하는 분, 미리 마음을 단단히 잡숫고 싶으신 분. 이 책에 주목해주세요.

 

 


 

 

놀이터에서 모여있는 엄마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피곤할 것 같기도 하고, 끼고 싶기도, 끼고 싶지 않기도 해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놀이터나 아파트 광장 등에서 채아 엄마를 포함한 5명의 엄마들은 아이들을 함께 놀게 하곤 했다. 그렇게 단순히 5명이 모여있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그녀들은 매우 파워풀하게 보였다. 멀리서 봐도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어벤져스 캐릭터들처럼 그녀들은 특정 공간을 다수라는 뭉쳐진 힘으로 전세내어 지배하고 있었다. 그 기운에 눌려서일까, 나는 그녀들 근처에 접근할 수 없었다. 채아 엄마와 나 이렇게 단둘이 맞닥뜨린 상황이라면 나도 '거, 좀 해 볼 만 하겠는데' 싶었을지 모르겠으나, 그녀는 항상 다른 엄마들과 함께 있었고 나는 거의 혼자였다. 나는 나의 아이가 그녀의 아이와 놀다가 어떤 문제라도 생기면 무조건 내 아이의 잘못이 될 것만 같은 불안함을 느꼈다. 뒤돌아서면 그룹의 엄마들이 내 아이를 언짢게 여기거나, 내가 어떤 대처를 했다 하더라도 아이 엄마인 나를 오목조목 뜯어보게 될 상황이 그려지곤 했다. 그래서 웬만하면 그녀들의 아이들이 노는 곳을 피해 다른 장소에서 나의 아이를 놀게 했다.


잘만 지내면 참 좋을텐데 이 또한 관계라 균열이 일어날 때가 물론 있습니다. 위 글은 얼마나 껄쩍지근한 상황인지요. 나는 혼자, 저 쪽은 다수에요. 나는 조용하고, 저 쪽은 시끌벅적하죠. 게다가 우리는 한 때 알았던, 친했던 사이에요. 모두 알다시피 육아라는 게 상당한 에너지가 들어가는 일인데 이런 기싸움에 소중한 나의 힘을 써야 한다는 게... 보기만 해도 지치더라고요.

다른 엄마들은 어떤가요? 반대편에 있는, 채아 엄마의 줄에 서기로 마음 먹은 한 때 친했던 엄마들이요. 그냥 그거 아닐까요? 이게 맞든 틀리든 관계에서 튀고 싶지 않은 마음. 그러니까 한 마디로 용기가 없는거죠. 채아 엄마가 버럭! 하고 소리를 질렀던 그 날, 자신이 데려온 엄마와 채아 엄마가 서로 사이가 안 좋은지 저자는 몰랐어요. 그리고 기분이 나빴다고 해도 이렇게 편을 나눌 정도의 대단히 유치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차라리 잘 된 것 같아요. 그런 모임에는 나가지 않는 게 길게 봤을 때 더 좋죠. 개개인의 성품이 실은 어떤지엔 관계없이, 다수가 되었을 때 풍기는 그 냄새가 너무 별로잖아요?

 


 

신자유주의식 만남의 유연함인지 아니면 서로가 서로에게 온전히 진심이 아니어서 그런 것인지 이런저런 복잡다단한 이유들이 있겠지만 사실 다들 조금씩은 외롭고 어설프고 유치하기도 하다는 것, 그리고 매우 실리에 빠르다는 것(꼭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감정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정도는 나도 조금은 감을 잡은 것 같다.


저희 엄마가 그러셨어요. "너도 애 학교 들어가면 명품백 들고 다녀." 그래서 왜요? 하고 여쭤보니 아줌마들 알게 모르게 그런 거 다 보고 판단한다 하더라고요. '그건 그냥 엄마가 이상한 사람들을 만난 거 아닐까?' 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러진 못 했네요.

그런 말도 있어요. 명품백이고 뭐고 상관 없이 애가 공부 잘하면 비닐봉지를 들고 다녀도 엄마들이 친한 척 하면서 줄을 선다고.

아이에게 고급 교육 정보를 주고싶고, 내 아이가 흙수저보단 금수저와 친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이해해요. 하지만 인터넷에 검색하면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 세상인데... 학원에 전화 한 번 해서 물어보면 될 일인데. 아이 친구는 아이가 스스로 만드는 거고요.

엄마들끼리 자연스럽게 친해져 마음을 나누는 건 좋은 일이지만, 목적을 가지고, 내 이익을 위해 상대를 정보 ATM기 취급하는 관계는 옳지 못한 것 같아요. 옳지 못한 걸 떠나 자기 자신이 힘들잖아요.

제가 초보엄마라 생각이 짧은 걸까요? 언젠가는 저도 그 사람의 배경, 아이들의 성적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날이 올까요? 누구든 내 앞의 가장 좋은 선택지를 고르게 마련인데 제 앞에 그런 선택지 밖에 보이지 않는 날이 올까요?

 


 

나는 태우 엄마의 인맥이 부러우면서 동시에 두려웠다. 태우 엄마의 지인들은 그녀가 말하는대로 나라는 사람을 파악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주 태우 엄마 앞에서 '착해졌다'. 태우 엄마와 있으면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스스로 검열하며 나의 어설픈 말 한 마디가 우리 관계에 해가 되지는 않을까 늘 조심했다. 우리가 만나는 날, 시간, 대화 주제, 식사 메뉴 등 거의 모든 주도권을 그녀가 쥐고 있었다. 어느 날부턴가 나는 태우 엄마와 함께 있으면 상무님을 모시고 하는 회식 자리처럼 그 자리가 불편하기만 했다. 어떤 반박도 하지 못한 채 태우 엄마의 말을 듣는 역할만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 자신이 점점 더 바보가 되어가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나는 태우 엄마와의 관계마저 나빠진다면 다시 외톨이가 될 것 같아서, 스스로 눈 가리고 아웅 하며 그녀의 진짜 모습을 보지 않으려 한 것인지도 모른다. 무엇이 되었든, 그녀는 '난 다 좋아', '난 괜찮아', '아무거나 상관없어' 를 연발하는 나의 수용적인 태도에 분명 용기를 얻었으리라.


저는 위 글을 읽으며 엉뚱하게도 아이의 기관 담임 선생님과 제 사이가 머릿속에 떠올랐어요. 평판이 두려워서는 아니고, 내 말과 행동으로 인해 아이에게 영향이 갈까 걱정하는 제 모습이 아른거려서요. 아직 말도 완벽하게 하지 못 하는 내 아이와 낯선 어른, 엄마인 저는 조심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도 종종 '착해져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선생님을 포함하여 누구든 선을 넘으면 경고를 주고, 그래도 변함이 없다면 확실하게 대처합니다. 작가님의 마지막 문단 다시 보아주세요. 내 수용적인 태도에 상대는 용기를 얻거든요. 사람은 본능적으로 그래요.

그리고 비단 내 자신이 호구되지 않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요. 아이들은 말보다 분위기에 더 영향을 받는다는데 힘들어하는 엄마를 아이가 과연 모를까요?

 


 

그럼에도 김지영은 병이 났다. 영화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김지영이 아픈 이유는 고달픈 육아 때문이 아니다. 이기적인 남편 때문도 아니다. 시월드에 시달려서도 아니고, 친정 엄마가 딸을 원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눈 뜨자마자 아이가, 남편이, 시댁이, 친정이 나를 괴롭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모든 것이 한데 섞여서 결혼과 출산 이후 김지영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어 버렸다. 지영은 거기서 길을 잃었다.


저는 딸 가진 엄마라 벌써부터 걱정 돼요. 임신부터 출산, 육아까지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잖아요. 입덧부터 튼살까지, 출산은 말할 것도 없고, 육아는 보통 힘든가요 뭐. 눈 앞의 아이는 너무 예쁘지만 그 길을 언젠가 내 딸이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져요. 임신과 출산은 어쩔 수 없어도, 육아는 지금 세대의 우리들보다 훨씬 더 수월하게, 편하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으면 해요. '육아는 엄마가, 일은 아빠가' 의 공식이 아니라 '육아는 부모가, 일도 부모가' 로 제대로 바로잡히는 날이 오기를.

너무 큰 책임감과 부담감에 사로잡혀 우울증에 걸리지 않기를! 그리고 부모노릇이 힘들다는 걸, 엄살이 아니라는 걸 이 사회가 알아주기를 바라요.

 


 

누군가에게 '일'이란 나의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한 사람을 그 사람이게 하는 마지막 도구'인 것이다. 누구에게나 내가 나임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그런 나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시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전업주부라고 해서 예외이진 않다.


아줌마들을 만났을 때, 누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다고 하면 저는 그게 그렇게 멋져보이더라고요. 육아가 힘든 걸 아니까 '그와중에 그런 일을!' 싶은거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들은 것 같아서 그 사람이 막 반짝거려 보여요.

육아가 힘들 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보세요. 노래를 한다거나 책을 읽는다거나 퍼즐을 맞춘다거나? 그렇게 서서히 내 안에 잊고 살았던 나도 채워넣자고요.






선배맘들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진진하고 유익합니다. 특히 이 책은 인간적인 매력이 글에도 묻어나 읽기도 편했어요. 상황에 대한 예시는 옆집 서준이 엄마 이야기를 담은 것 마냥 생생하고 현실적이었고요. 그래서 편하게 보실 수 있으실거예요. ^^ 이만 줄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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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이 책은 너무 오랜 기간 나눠 읽는 바람에 잊어버린 내용이 상당히 많기는 합니다. 이 글은 제가 책을 읽다가 하이라이트 해 둔 내용을 다시 읽고 기억을 되살려가며 제 생각을 적는 것으로 하려고 해요. 목차 소개 및 진지한 서평글이 아니니 참고 부탁드려요.

이 글을 막 읽기 시작했을 때 받았던 느낌, 그건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었습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정신과 의사가 집필한 책이라고 들었어요. 그런데 전혀 무뚝뚝하거나 무겁지 않고 (제 편견입니다) 친근함으로 중무장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었어요. 하은맘의 불량육아, 라는 책이 생각날 정도로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육아에서 많은 것을 내려놓으라고 얘길 합니다. '놀아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친구 만들어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아이에게 말 많이 안 걸어도 괜찮아요' 등등.. 제가 평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육아지침과는 전혀 다른 결이었어서 신선하고 또 놀라웠어요.

 

 


저자는 본인의 육아경험과 때로는 과학적 근거를 들어 부모를 안심시키려 부단히 애를 쓰는데요. 개인적으로 저는 경험만 주욱 늘어놓았다면 읽다가 관뒀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때때로 납득이 갈 만한 근거를 들어주기도 하고 뛰어난 글솜씨로 설득에 성공을 하기도 해서 덕분에 완독을 했던 것 같아요. 중간 중간 독자에게 말을 거는 듯, 장난을 치는 듯, 가볍고 재미있는 구절도 눈에 자주 띄었었네요.



하이라이트 해 둔 부분을 가져와볼게요.

🍃


이건 '나의 성장, 느리게 가도 괜찮아요.' 라는 챕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아이들 어릴 때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도로 뱃속에 집어넣을 수 없는 한, 엄마의 에너지는 아이로 향할 수 밖에요. 그만큼 '나의 성장 속도'는 정체하는 것처럼 보일 테고요. 하지만 진짜 멈춰있는 건 아니죠. 위로 올라가던 화살표가 옆으로 방향을 틀었을 뿐. 그것도 어마어마한 속도로요. 아이로 인해 인생의 폭이 얼마나 넓어졌습니까? 혼자였을 때보다 10배는 넓어지지 않았나요?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있잖아요.


이 생각은 한 번도 못 해봤던 거라 잠깐 멍- 해졌었던 기억이 납니다. 언제 위로 올라갈 수 있을까, 위만 바라보고 있었는데요.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있잖아요' 그러게 말입니다. 아기가 나오고나서 내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저는 솔직히 사람 안 변한다, 라는 말에 이제는 동의 안 해요. 아기 낳고 키우면 변할 수도 있다고 믿어요.

저는 사랑이 뭔지를 잘 몰랐던 사람인데 지금은 매일 매일 눈으로 보이는 사랑을 경험하고 살아요. 육아를 하기 전에는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것이지요. 아기를 예뻐할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이 정도로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니까요. 그리고 풀밭의 풀과 꽃을 이렇게 유심히 바라보고 예뻐하게 될 줄도 몰랐어요. 이제는 다른 아기들을 무심히 바라보지 않고요. 식당에서 시끄러운 아기와 밥을 먹는 엄마를 흘겨보지도 않습니다. (밥 먹는 아기에게 스마트폰을 보여주는 엄마를 질책하지도 않고요)

저자님이 인생이 옆으로 넓어졌다고 하셨는데 말씀 잘하셨습니다. 아기를 키우면서 저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있어요. 비단 아기와 아기 엄마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인간,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볼 수 있게 됐어요. 시간이 없어 위로 올라가지 못해 나는 정체되어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아기는 존재 자체 그 하나만으로 제게 커다란 배움의 시간을 선물하고 있었네요.

🍃


이건 어느 부분이었는지 잊어버렸습니다. 짧고 굵어요.

 

아이를 사랑하는 것과 아이 키우기를 즐기는 것은 별개의 문제예요.

 

이 한 문장은 제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육아를 잘 못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나날 속에서 괴로워 할 때, 불현듯 나의 아기에 대한 사랑이 의심이 될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이 문장이 그거 아니라고, 제 먹구름 가득한 생각에 대고 손을 휘휘 저어주는 것 같아서 되게 고마웠어요.

보고 있는데 보고 싶은, 때로는 보기만 했는데 눈가가 시큰거리는 놀랍고도 대단한 이 존재에 대한 감정을 저는 이제 헷갈리지 않을거예요. 육아가 힘든 것 뿐, 나는 아이를 사랑한다!

🍃

이 부분도 상당히 인상 깊었어요.

 

소심하다고 겁쟁이 아닙니다. "무서우면 안 해도 돼. 세상에 억지로 꼭 해야 되는 일이란 없어. 두려울 때 두렵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진짜 용기야. 너 겁쟁이 아니야." 그렇게 말해주세요.


이건 아기 뿐 아니라 다 큰 어른인 제게도 해주시는 말씀 같았어요. 모르면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두려울 때 두렵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무서우면 무섭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회사에 입사할 때만큼이나 퇴사할 때에도 큰 용기가 필요하죠. 용기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그리고 육아에 적용을 해보면... 아이가 두려워 할 때 이런 말이 선뜻 나올지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부모 마음에 '이겨냈으면' 하고, 이 경험을 발판 삼아 '성장했으면' 할테니까요. 아이와 함께 있을 땐 항상 그 어떤 것보다 아이 마음을 먼저 읽어주는게 중요하단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는 구절이었습니다. 너무 멋진 말인 것 같아요. "두려울 때 두렵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진짜 용기야. 너 겁쟁이 아니야."

🍃

이건 아이가 아직 기저귀를 떼지 않았을 때, 주위로부터 오는 걱정 공격에 대한 쿨한 방어 모습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아이가 기저귀 때문에 많이 스트레스 받아요. 주변에서 걱정하면 자신감 더 떨어지니까, 앞으로 그런 얘기 우리 집에서 하지 말아주세요. 애 들으면 큰일나요."


정확히는 '아이의 장래를 위한 걱정 공격'이 들어오면 이렇게 대답하래요. 너무 쿨하고 멋지지 않나요?





넘쳐나는 육아 정보에 지친 부모님들의 짐을 덜 수 있게 도와주는 육아서, 제로육아. 쓰고보니 제로육아만의 매력이 담긴 구절을 제가 가져오지는 못한 것 같네요. 아쉽지만, 남들은 다 저기 앞서 부지런히 걷고 뛰고 있는데 나만 뒤처진 것 같은 생각이 들 때 직접 한 번 봐보세요. 동지를 만난 것 같아서 마음이 좀 좋아지실겁니다.

저는 처음엔 '너무 다 괜찮다는 거 아니야?' 싶어 대충 쓴 책이 아닐까 의심까지 했었는데 아이를 방치하란 의도였다면 보다가 책을 덮었겠죠? 부모가 숨 쉴 구멍을 스스로 좀 만들란 얘깁니다. 육아가 힘들어 눈물이 나는 날, 저는 아기 낮잠을 재우자마자 멘토 선생님을 찾듯 제로육아를 찾았었어요.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라는 말이 듣고 싶었거든요.

저에게 그랬듯 누군가에게도 위로가 되기를 바라요. 작가님 책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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