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패니언' 이라는 직업은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 때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최초의 만국박람회였기에 접객 매너와 어학 능력이 뛰어난 고급 인력들이 별도의 교육을 받은 뒤 국제적인 행사, 사업 부양을 위한 파티에 투입 되었다고.
하지만 '컴패니언' 은 일본의 80년대 거품경제가 꺼지고 난 뒤 그들의 영예도 함께 꺼져서 이제는 가까스로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고 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 교코가 바로 컴패니언이다. 화려한 보석을 좋아하는 교코는 부잣집 남자와 결혼하기 위한 발판으로 이 직업을 이용하고 있는 듯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 작품이 심각한 사회경제적 부조리라는 묵중한 주제를 드러내고 있음에도 끝까지 너무 무거운 분위기로 흘러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교코가 한 몫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녀는 허영심을 대놓고 드러낸다.
특히 옆집으로 이사온 형사 시바타에게는 더더욱.

그런데 '그녀는 다 계획이 있다' 라니, 교코에게 무슨 계획이 있었다는 말인가? 추리소설에서 '계획' 은 영 께름칙한 어감인데, 게다가 형사가 바로 옆집에 산다잖아.
이거, 괜찮은걸까?
과연 누구에게, 무슨 계획이 있다는걸까.

#1. 에리의 죽음
같은 컴패니언으로 활동하던 에리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녀가 죽은 현장을 보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처럼 보이는데, 시바타 형사와 교코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히가시노게이고의 소설 속 주인공 형사는 늘 탐정과도 같은 면모가 돋보인다. 이번에도 역시 범인이 설치해 놓은 덫에 쉽게 걸려들지 않았다.
#2. 에리와 연인사이였다고 주장하는 마루모토
마루모토, 그에게는 연인이 한 명 더 있었다. 요코. 그렇다면 내연관계인 요코의 존재를 눈치챈 에리가 그로인해 비관적인 자기파괴적 행동을 했다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마루모토에 대한 분노를 참지 못 하고 그를 죽이려다 도리어 본인이 죽어버린 것인가? 마루모토는 에리가 죽은 현장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이기도 하다. 매우 강력한 용의자 선상에 올라있는 중.
#3. 교코와 다카미
교코는 부자인데다 매너도 좋은 다카미를 좋아한다. 그래서 그와의 약속이라면 일을 빼고서라도 잡으려 한다. 그리고 어쩐일인지 다카미도 교코에게 관심이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이상한 건, 교코와 자꾸만 만나려고 하는 다카미가 만날 때마다 에리의 사건을 묻는다는 것이다. 곧 에리의 친한 친구도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는데, 그 사건도 자꾸만 캐묻는 게 이상하다. 다카미는 교코에게 관심이 있는걸까, 사건들에 관심이 있는걸까?
#4. 다카미의 전화에서 흘러나온 수상한 여자 목소리
다카미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교코가 받은 전화 안에서는 흐느끼는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그 여자는 과연 누구였을까?
#5. 교코에게 추근덕거리는 겐조
겐조는 하나야 가의 셋째 아들이다. ('하나야 가' 는 에리가 죽은 그 날, 컴패니언들이 응대를 했던 전국 보석 체인점이다.) 망나니라고 불리울 정도로 행실이 지독히 튀는 사람으로 모두에게 알려져있다. 그런데 그런 그가 교코에게 관심을 보인다. 그녀와 만나고 싶어하고, 그녀와 시간을 함께 하기 위해 교코가 가장 좋아하는 보석을 선물하기도 한다.
#6. 이세
죽은 에리의 전연인이다. 이세 역시 죽었다. 에리보다 더 먼저. 이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으로 사건이 종결 되었었는데 아무래도 에리는 무언가 미심쩍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확실한 증거를 손에 넣었거나) 그 후 그녀는 도쿄로 올라온다.
에리는 이세를 많이 사랑했던 것 같다.

죽기 전, 이세의 메시지가 큰 힌트가 되었다. 그로인해 에리의 죽음의 비밀도 풀리고, 가해자들의 신상도 마침내 드러나게 되었으니까.
이세가 숨겨놓은 어쩌면 다잉메시지,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이 책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다. 그의 배후에 누가 있었는지를 알아내는 것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시바타와 교코의 노고, 죽은 유카리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겠다.

문이 굳게 잠긴 방에서 마치 혼자 죽음을 꾸민 것처럼 그려진 현장을 수상하다고 보는 것, 에리와 연인이라고 알려진 마루모토와의 관계 뒤 무언가 에리의 속셈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마침내 그 이유를 희미하게나마 파악하고 그녀의 고향인 나고야에 내려가 그녀의 전연인의 찜찜하게 마무리 된 사건을 재조명 하는 것 등.
이 밖에도 '조금 더 얘기해주지' 싶은 부분들이 많았는데 위에 열거한 것들은 그 중에서도 특히 더 아쉬웠던 부분이기에 구태여 남겨본다.
에리의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는 사실 큰 힌트라기보다 사람의 상상과 직감에 크게 의존했기에 끝에 가서 결국 모두를 골머리 앓게하던 문제가 해결되었을 땐 박수를 치면서 '바로 그거였구나!' 가 아닌, '아... 이거였구나. 이런 방법도 있네' 싶어 다소 싱거운 기분이 드는 게 아쉬웠다.
그리고 에리의 사건을 시작으로 덮어두었던 이세의 일, 다카미가 교코를 만날 때마다 에리의 사건을 물어보던 일들이 그다지 매끄럽다고 느끼지 않았다. (작가가 사건들이라는 퍼즐들을 미리 준비해 둔 뒤 어떻게든 맞춰지게 하려고 무리해서 갈고 다듬고 깎아낸 느낌)
1988년에 발표된 초창기 작품이라니까 이 정도는 감안하고 넘어가주어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지만...
내게 이 책은 재미있고 단순한 추리소설이었다. 내 생각을 더하고 자시고 할 건덕지가 없이 재미있고 단순한 추리소설. 그래도 이제까지는 추리물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서 무조건 작가의 의도를 건져냈는데, 이처럼 '내용'과 '재미' 만 담겨있는 소설은 처음인 듯 싶다.
그러니까 재미가 없었다는 뜻은 아닌데, 뭐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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