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연 작가의 작품입니다. 정해연 작가는 '유괴의 날', '구원의 날', '선택의 날', '홍학의 자리' 등의 작품을 써낸 분인데요. 홍학의 자리를 재미있게 읽어서 이번에도 기대를 가득 품고 읽었더랬죠.

'못 먹는 남자'의 장르는 특수 설정 스릴러입니다. 판타지 요소가 있어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죽음을 볼 수 있다는 설정이죠. 판타지 장르를 좋아하지 않아 초반엔... 살짝 걱정이 되더군요.

이 책의 특징을 먼저 정리하고 이야기를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으니 참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남겨봅니다!

이 책의 특징🎨



1) 장르는 특수 설정 스릴러다. 죽음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주인공이며 주인공은 누가, 언제, 어떻게 죽게 되는지 미리 알 수가 있다.

2) 읽다보면 장면들이 영화처럼 펼쳐진다.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집필을 하신 게 아닌가 싶은 정도!

3) 디테일이 부실하다.
- 목숨을 주고 받는 데 돈으로 거래하는 건 못된 짓이라고 하면서 막판엔 왜 3억을 받은건지(그 돈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 칼을 여러 번 맞은 주인공은 링겔을 잡아 뜯고 치료 도중 병원에서 나왔는데 그 상태로 어떻게 그렇게 잘 달리고 도망도 잘 치는지, 아파야 하는 게 정상이 아닌지.
- 주인공의 라이벌인 '중개인'은 초반엔 주인 없는 집에 먼저 들어와 있을 정도로 신출귀몰한 모습을 보이더니 나중엔 왜 최석태의 부하들에게 쫓겨 다니기만 했는지 등등...

4) 영화로 치면 시즌 2가 꼭 나와야 할 것 같은 마무리로 끝이 난다.


여러모로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못 먹는 남자'였습니다. 같이 보실까요?





과거,
초능력이 생기게 된 이유☄️




이야기는 2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화학공장 신재생에너지 개발팀 연구실이에요. 두 명의 아이, 두 명의 아빠가 있었죠.

두 명의 아이 중 한 명은 제영이였습니다. 제영은 아이의 돌발행동에 당황하는데요. 아이가 가스유출 버튼을 눌러버렸기 때문입니다.

제영의 아빠는 마음 아프지만 더 많은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 문을 내려버립니다. 한 명의 희생이 아니면 수많은 사람들이 영문 모를 피해를 입어야 했으니까요. 반면, 아이의 아빠는 아이를 구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그후... 아이의 아빠는 아이를 원망하며 살고, 제영의 아빠는 죄책감을 갖고 삽니다.

또, 두 아이에게는 기묘한 능력이 생겼습니다. 내가 아는 사람이 언제 어떻게 죽을 지 알 수 있는 바로 그 능력이요.


초능력의 3가지 법칙🪬




그 능력(누군가에게는 '저주'라는 표현이 어울리지만 편의상 능력으로 칭함)에는 3가지 법칙이 있습니다.


  • 첫째, 죽음이 보이는 대상은 자신이 얼굴을 아는 사람이다.
  • 둘째, 생의 운명은 바꿔도 사의 운명은 바꿀 수 없다. 죽음의 대상은 반드시 죽는다.
  • 셋째, 다른 사람이 대신 죽으면 죽음의 운명을 피할 수 있다.


제영🌕




제영은 먹지 않습니다. 먹으면 자꾸 내가 아는 사람의 죽는 모습이 보이니까요. 그리고 그 어떤 죽음도 잔혹하지 않은 것은 없었습니다. 교통사고로 깨진 머리에서 흐르는 뇌수, 튀어나온 살점들, 덜컥거리며 빠진 목뼈와 늘어진 혀, 다리 사이로 흐르는 오물의 장면을 봐야만 했죠. 그 기억이 괴로워 제영은 먹지 않습니다.

능력이 생긴 걸 알고 난 후 제영은 누군가의 죽음을 막아보려고도 했어요. 그림처럼 펼쳐지는 기억이라 잘만 하면 날짜와 시간을 추측할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 시도는 무참히도 실패하고 맙니다.

그렇게 아버지를 잃어요.


아이(중개인)🌑




아이도 타인의 죽음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그 능력을 자신의 배를 불리는 데 써요. 죽음의 운명을 앞두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말하죠.

몇날 며칠 몇시, 당신은 죽을 운명이다. 이 운명을 바꾸고 싶다면 당신 대신 누군가 죽어야만 한다. 내게는 그만한 가치 즉, 돈을 주어야 하고 당신 대신 죽어야 할 사람에게도 거액의 돈을 주어야 한다.

자신은 대신 죽을 사람과 운명을 거부하는 자를 중개해주는 사람이므로 '중개인'이고, 누군가를 대신해 죽는 것은 '대신사'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운명을 거부하는 제영,
운명을 이용하는 중개인🌛🌜




죽음을 보는 사람이 자기 자신 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제영은 그 길로 중개인을 찾아 나섭니다. 이미 한차례, 제영의 회사 사장 대신 누군가 대신 죽은 걸 목격한 직후라 불의한 상황에 화가 난 상태로요. 하지만 그런 제영을 가볍게 제압한 중개인은 그의 머리를 누르고 어떠한 장면을 보게 합니다.

불법 업소 앞에 서 있는 한 남자. 그 남자는 그 업소에 들어가려는 남자들을 붙잡고 부탁을 하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그 업소에서 일하게 된 딸을 지명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하고 있었어요. 사채업자에게 빌린 돈을 갚지 못 해 이지경까지 오게 된 것이었죠. 그 남자는 돈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목숨과 돈을 맞바꾸려 합니다. 딸을 이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었으니까요.

동시에, 부자인 최충묵은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하지만 거부해요. 그래서 중개인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가진 게 돈이고, 더 오래 살 수 있다니 그에겐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을테죠. 안타깝게도 그는 대신 죽을 사람에 대한 미안한 감정을 가지지는 않았습니다.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제영은 화가 치솟아요. 인간이라면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운명을 거스르려는 대신사를 막아보려 합니다. 최충묵이 죽기로 예정되어 있는 날, 대신 죽으러 가는 남자를 위해 일부러 교통사고를 내요. 그래서 남자는 살았죠. 두 번째 법칙을 기억하시나요?

죽음의 대상은 반드시 죽는다.

이번엔 운명이 그 누구도 데려갈 수 없었지만 곧 또 찾아옵니다. 중개인도, 제영도 최충묵의 죽을 모습을 미리 봤어요.

이번엔 과연 죽을 사람이 죽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대신사가 성공할까요.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딸을 위해 돈을 받고 목숨을 팔려고 한 남자의 이름은 김충수였어요. 하지만 딸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그 생각이 정말 딸을 위한 것이었을까요? 김충수의 생각에 더욱 확신을 불어넣은 조건은 자신이 뇌종양이라 어차피 죽을 목숨이었다는 겁니다.

그래, 어차피 죽을 거, 딸을 살리고 가는 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쪽이라고 생각한거죠.

하지만 수술을 해도 무조건 죽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살기 위해 노력하세요. 그걸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아저씨는 딸을 살리게 될 거예요.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아요."



실질적으로 돈도 필요했습니다. 돈 때문에 업소에 묶여있었으니까. 당시 제영에게는 아버지가 남기고 간 돈이 있었는데요. 그 돈을 김충수에게 주어요. 그리고 부탁합니다. 살기 위해 노력하라고. 그게 진짜 딸을 살리는 길이니까 살기 위해 노력하라고요.

여러분은 만일 김충수와 같은 입장에 서게 된다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어요? 소설은 제영이 빚을 갚아주었지만 실제로는 당장 월세 낼 돈도 없는 상황이라면요.

이 책은 제게 올바른 선택을 해야한다는 가르침을 주고 있는데 이 상황에서만은 말문이 턱 막혔어요. 김충수의 마음이 너무나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의 생각도 궁금해졌습니다.


제영과 솔지👫🏻




제영은 밥을 먹지 않아 영양실조로 응급실에 실려온 게 한 두번이 아니었어요. 그 때마다 간호사들은 또 왔네, 하며 큰 관심을 두지 않았었고요. 그런데 솔지는 달랐습니다. 왜 밥을 먹지 않느냐면서 그를 다그치고, 화내고, 걱정했죠.

왜냐하면 제영을 볼 때마다 먹고 싶어도 먹지 못 하고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가 떠올랐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유독 예민하게 반응했던 겁니다.

중개인을 피해 도망다니는 와중에도 제영은 솔지의 그러한 따스함을 떠올렸고, 자신에게 시간을 내주지 않는 바쁜 제영에게 솔지는 끝까지 관심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피할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운명🃏



중개인은 계속해서 제영을 노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일을 방해하는 제영을 죽이기 위해 미행을 하고 기습도 마다하지 않아요.

이야기가 거의 끝나갑니다.

제영의 눈에 솔지의 죽음이 보여요.

보이자마자 달려간 응급실에서 그는 솔지를 마주하게 되는데요. 솔지도 마찬가지로 운명을 피하지는 못 합니다.

그녀는 과연... 운명을 거스르고 살아날 수 있을까요?

이후의 이야기는 책에서 확인해 주세요.







솔지가 운명을 맞이하는 순간을 미리 본 제영이 응급실로 달려갔지만, 독자인 저는 또 한 번 의문을 품었습니다. 제영이 죽음을 보았을 때, 배경이 응급실인 건 알 수 있었지만 그 날이 언제, 몇 시인지는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건 내일일 수도 있었고, 일주일 후 였을 수도 있었습니다. 바로 달려가 그녀를 보게 된 건, 그저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치고 넘어가면 될지요?

그런데 이렇게 '그런 걸로 치고' 넘어가는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래서 디테일이 부족했다고 느꼈고, 이런 부분들은 아쉬웠어요.

하지만 필력이 상당하신 작가님이라 이 책도 영화를 보는 것처럼 읽었는데요. 전개가 빠르고, 묘사가 잘 되어있어 어렵지 않게 상상하며 보았어요.

그런데 영화화가 된다면 과연 제영과 중개인, 솔지는 어떤 배우가 그 몫을 따내어 갈 지, 떡 줄 사람 생각도 않는데 제가 벌써부터 걱정이에요. 제영은 몹시 말라야 하니까요. 글쎄요, 여러분? 어떨 것 같으세요? 어느정도 마른 게 아니라 아주 깡! 말라야 할텐데... (이 책이 언젠가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반가울 거예요. 캐스팅마저도 즐거운 상상입니다.😇)

저는 정해연 작가님의 '홍학의 자리'도 이미 읽었고, 리뷰까지 적어두었습니다. 업로드 예정이네요. 다음엔 '유괴의 날'을 읽어보려 해요. 유명한 작품이죠? 기대해주세요.

그럼 여러분도 즐거운 시간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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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작가님의 그 유명한 구의증명을 읽어보았습니다! 책을 덮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쉽지만 '기대하면 실망한다' 였지만... 작품이 별로였단 얘긴 아니고요. 제가 기대를 너무 많이 한 것 같아요.

 


이 책은 카니발리즘을 소재로 하고 있어요. 그런데 거기다가 작가님이 워낙에 또 묘사를 잘 하시는 분이라 마음이 여린 분들은 맘 단단히 잡숫고 읽으셔야 할 것 같더라고요.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가장 밝은 컬러가 회색? 대체로 다 어둡고, 더없이 까말 수 없는 부분도 많았었네요. 저는 한 번도 분홍색, 노란색을 느껴본 적이 없어요. 내용 자체가 그러한데 문체 또한 밝아 보이려 애쓰는 느낌이 없는지라 독자는 구와 담의 안타깝고 처절한 감정을 고스란히 전해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들입니다. 구는 남자고, 담이는 여자예요. 이 둘은 아주 어릴 적부터 함께 지냈어요. 불우한 가정환경이라는 공통분모가 그들을 더 끈끈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줄거리를 이야기 해볼게요.

 

 

줄거리

 



구의 부모님은 아이를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이었어요. 빚만 잔뜩 남기고 뿔뿔이 흩어진 책임감 없는 사람들이었죠. 담이의 부모님은 돌아가셨고요. 후에 곁에 있던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시게 되자 담이의 곁에는 승려로 출가했던 이모가 돌아와 곁을 지켜줍니다.

담이와 구는 함께 있을 때도, 함께 있지 않을 때도 늘 함께였어요. 서로가 보이지 않아도 서로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죠. 그들은 다른 연인들처럼 재미있는 곳을 놀러가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남들 다 하는 추억을 쌓지는 못 해도 언제나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었어요.

구는 도망간 부모 때문에 억지로 빚을 떠안게 되어 열일곱 살 때부터 일을 시작합니다. 온갖 일을 해요. 그러던 어느 날, 공장에서 한 직원의 아이인 노마를 알게 되는데요. 구와 담이, 노마는 순수한 우정을 나누어요. 자전거를 알려주고, 붕어빵을 나눠 먹죠. 하지만 운명은 정해져 있는걸까요. 누가 미리 써 놓은 대본처럼 노마는 한 순간에 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왜 그 날, 그 시간에, 노마가 사고를 당할 수 밖에 없었는지 구와 담이는 이해할 수가 없어서 큰 혼란에 빠져요.

노마의 일을 계기로 둘은 서로를 조금 멀리하게 됩니다. 그러다 구는 제 집이 있는 한 누나를 알게 되고 연애 비슷한 것을 하기도 하고요. 그 사실을 알게 된 담이는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그가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기다립니다.

그 사이에 담이의 이모가 죽어요. 하지만 곁에 구는 없었죠. 군대에 있었어요, 그 곳에서 담이를 열렬히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들은 각기 다른 공간에서 다른 모양의 슬픔을 느끼며 서로를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형이랑 누나는 사귀는 거 맞지? 노마가 물었다. 구와 나는 애매하게 웃었다. 우리는 사귄다는 단어를 채우고도 그 단어가 보이지 않을 만큼 넘쳐흐르는 관계였다.


후에 이 사실을 알게 된 구는 담에게 달려갑니다. 담은 예상했다는 듯, 올 줄 알았다는 듯, 마치 어제도 만난 사이인 양 구를 받아줘요. 그리고 말하죠. "같이 살래?"

하지만 세상은 그들에게 평화로운 시간을 허락해 주지 않습니다. 특히 빚쟁이들이요. 새 보금자리를 구할 때마다 그들은 그들을 찾아와 괴롭혔어요. 빚은 갚아도 갚아도 줄지 않고, 빚을 갚는 게 아니라 이자만 갚는 느낌이었죠. 그렇게 매일 도망만 치던 두 사람에게 마침내 '여기가 좋겠다' 싶은 곳에서, '이제 겨우 행복을 느껴볼 수 있겠구나' 싶었던 찰나에 그들은 그를 찾아와 기어이 죽여버리고 맙니다.

그렇게 죽은 구를 담은 먹어요. 말 그대로 진짜 먹어요. 시간을 두고 천천히 먹는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는 끝이 나요.






이 책은 호불호가 매우 강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평이 좋아서 놀랐어요. 인생 책으로 꼽는 분들이 상당히 많더라고요? 아래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제 생각입니다.

 

 

느낀점

 



구와 담이가 애틋하다 못해 가슴 절절한 사이였단 것은 알겠어요.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까지 깊은 사이가 되었는지에 대한 장면이 많지는 않아서, 그들의 말로만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밖에 없어서 아쉬웠어요. 이게 작가님의 한계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은 매 장면이 머릿 속에서 영화처럼 자연스럽게 재생 되어 풍성하게 즐길 수 있었거든요.) 제가 의도한 바를 잘 알아차리지 못한 걸 수도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체가 매력적이에요. 깔끔을 넘어 아예 짧은 문장 자체도 많고요. 일부러 이렇게 쓰신 것 같은데, 어떤 분위기를 내고자 함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여기서도 저는 제 한계를 느꼈습니다. 나중에 다시 읽을 땐 부디 작가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재... 책 소개를 먼저 읽고 이 책을 읽었었는데요. 소개를 읽자마자 거부감이 사실 있었어요. 지금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이해가 갑니다.

그들은 이 세상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인간은 다른 인간을 해치고, 작살내고, 죽이기까지 하잖아요. 이런 일이 매일 일어나죠. 그런 게 진정한 인간이라면 그들은 인간으로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구는 살아있을 때도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그런 구의 존재를 증명할 사람이 담이 빼곤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으니 (그나마 그와 관계가 있는 빚쟁이들은 그의 존재를 부정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었고) 담이는 구를 먹음으로 그가 영영 여기 있음을 증명 하고자 했던 거예요. 그리고 이 세상의 나쁜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살기를 소망했죠.

이런식으로 살다 간 구가 안쓰러워서, 받아들일 수 없어서, 이해할 수 없어서 제 안에 밀어 넣었던 겁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는 늘 함께 있는 거지, 믿으면서 말이예요.

 

몸은 고되고 앞날은 곤죽 같아도, 마음 한구석에 영영 변질되지 않을 따뜻한 밥 한 덩이를 품은 느낌이었다.


어떻게 생각 하시나요? 사실 징그러워요. 사람이 사람을... 말도 안 됩니다. 하지만 이 책에 윤리라는 잣대를 갖다대는 건 반칙인 것 같네요. 그 정도의 마음도 있음을 이해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들을 무겁게 짓눌렀던 빚 권하는 사회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누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어른들의 책임을 왜 아이들이 져야 하는지, 지금 이 시간에도 구와 담이가 느꼈던 그 때 그 마음을 그대로 느끼고 있는 어린 아이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생각할 여지를 많이 주는 책이기 때문에 여운이 길었어요. 왜 인기가 많은지 알겠네요. 개인적으로 저는 담이의 행위보다 구의 생애에 더 초점을 맞추고 보았는데 다른 분께도 그렇게 해보시라고 권하고 싶어요. 안그래도 먹는 행위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해도 자극적인 내용이라 자꾸만 머릿속에 떠오르니까요. 구를 의식해서 지켜봐 주세요.

작가님의 책을 계속 읽어볼 겁니다. 사회를 바라보는 따뜻하면서도 냉철한 시선이 글에 너무 잘 묻어나 있어서 매번 몰입감 쩌는 다큐멘터리 한 편씩 보는 기분이예요. 묘사를 잘 하셔서 이야기에 푹 빠져드는 황홀한 기분은 덤인 듯 하고요. 이런 작가의 책은 널리 알려져서 많이 읽혀지고 그리하여 더 많은 책을 쓸 수 있게 해드려야 한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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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입니다.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었다고 하는데 믿을 수가 없어요. 현대사회를 그려내는 묘사가 대단히 날카로워요. 이 책이 상을 받았을 당시 예심 심사위원은 물론이고 본심 심사위원까지 모두 만장일치를 했다고 해요.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이 책을 읽고 나면 누구든 납득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작가님, 정말 대단하세요.

 

<줄거리>



한 여자 아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자기소개를 하지 않아요. 간접적으로 누가 불러주지도 않지요. 사람들은 늘 저 편한대로 이름을 만들어 부르곤 했어요. 예쁘거나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게 아닌 욕지거리에 가까운 걸로다가요. 게다가 몇 살인지도 몰라요. 아무도 모릅니다.

아니, 부모는 알았을 수도 있어요. 낳았으니까. 아이가 아프건 말건 슬프건 말건 상관은 없지만, 자기 몸, 자기 시간 희생 했던 날은 기억할 거예요. 하지만 부모는 아이에게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정도로 아이에게 관심이 없었거든요.

밥을 먹었는지, 씻었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몰라요. 한 번은 아이가 죽은 척을 합니다. 그런데도 관심이 없네요. 죽은 척을 했다는 사실조차 몰라요. 엄마는 백 번도 넘게 밥을 안 주고요. 아빠는 틈만 나면 때립니다. 오죽하면 아빠가 '내 곁을 그냥 스쳐지나가기만 해도 고맙다'고 느꼈을 정도니까. 어떤 심정으로 살고 있었을 지 짐작이 가세요?

아빠가 엄마를 때릴 때 엄마는 그저 맞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맞으면 보호해주지 않았고요. 그 생활을 못 견딘 아이는 집을 나옵니다. 진짜 엄마, 진짜 아빠는 이런 사람들일 리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진짜엄마'를 찾아 떠나게 되지요. (그런데 '진짜아빠'는?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미운 정까지 다 탈탈 털리고 나면 기대조차 하지 않게 되는 사람 심리를 나타낸 걸까요)

 

1. 장미언니



집을 나온 아이는 웬 남자 아이를 만나게 됩니다. 조금 덜떨어져 보이는 아이였는데, 그는 여자들이 불건전한 일을 하는 곳에 살고 있었어요. 거기 사장이 자기 엄마였거든요. 그 아이를 따라간 곳에서 여자 아이(편의상 앞으로 소녀라고 하겠습니다)는 남자 아이의 숙제를 대신 해주며 숙식을 해결해요. 그리고 그 곳에서 장미언니를 알게 됩니다.

그녀는 예쁘고, 향기도 좋은 사람이었어요. 남자 아이의 엄마가 소녀를 박터지게 때릴 때 보호를 해주기도 했고요. 그래서 소녀는 장미언니가 내 '진짜엄마' 가 아닐까 생각해요.

하지만 이 언니의 단 한 가지의 흠이라면, 남자친구에 있었습니다. 백곰이라고 불리우는 남자친구는 걸핏하면 언니를 때리고는 했는데요. 여기서 문제는 장미언니가 전혀 반격을 하지 않는다는 데 있었어요. 나중에 백곰이 소녀와 단 둘이 있을 때 말로 가슴을 후벼파는 장면이 나오는데, 소녀는 이 말엔 꿈쩍도 하지 않아요. 하지만 언니가 백곰에게 그저 맞고만 있는 모습은 견딜 수가 없었죠.

 

그런 사람은 나의 진짜엄마가 될 자격이 없다. 엄마가 가짜가 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가짜엄마는 그냥 맞고만 있었다.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처음엔 모든 게 내 탓인 줄 알았다. 내가 보기에 아빠가 엄마를 때릴 이유는 하나도 없었으니까. 곤히 잠들었을 때도 쥐의 걸음 수를 헤아릴 만큼 예민했고 하얀 밥에 반찬 양념 묻히는 걸 싫어할 만큼 깔끔했으며, 누군가에게 나쁜 말을 들으면 맨살을 사포로 문댄 것처럼 오랫동안 아파했다. 그런 사람이 단숨에 괴물로 변해서 여자를 미친 듯이 때리는 데엔 분명 이유가 있을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렇게 약한 엄마는 내 진짜엄마가 될 자격이 없으니까요. 나를 지켜줄 수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소녀는 실망을 한 채 가게를 나오게 됩니다. 진짜엄마를 찾는 첫 번째 시도는 보기좋게 망했어요.

 

2. 태백식당 할머니



정처없이 걷다가 기차역에서 웬 할머니를 만나게 돼요. 할머니는 소녀에게 국수도 만들어 주고, 잠 잘 곳도 마련해줍니다. 손님이 거의 오지 않는 망한거나 다름 없는 식당을 운영 중이었던 태백식당 할머니. 소녀는 할머니 손을 잡고 장도 보러 가고, 장터에서 솜사탕도 사먹고, 태어나 처음 보는 신기한 것들을 구경하며 편안하고 행복한 기분을 느껴요. 누군가에겐 흔한 일이죠? 엄마 손을 잡고 장 보러 가는 일. 소녀에겐 인생의 첫 장에 기록 될 만한 대단히 기념비적인 날이었습니다.


나보다 조금 뒤늦게 식당으로 돌아온 할머니의 손에는 책이 들려 있었다. 찬수가 풀던 문제집과 비슷한 것이었다. 나는 할머니가 보는 앞에서 문제를 휙휙 풀어댔다. 할머니는 꾸부정하게 앉아 내가 하는 모양을 오랫동안 쳐다보다가 활짝 웃었다. 그때 처음 봤다. 할머니의 웃는 모습. 할머니가 웃으니까 나도 웃음이 날 뻔 했다. 그래도 꾹 참았다. 하지만 웃음은 눈물과 달리 참는다고 쉽게 참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참고 참다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아주 조금 웃었다. 내가 웃는 걸 보고 할머니가 또 웃었다. 봄바람이 창문을 와르르 훑으며 지나갔다.


이 글은 하이라이트를 해두었다가 읽고, 또 읽고... 몇 번을 반복해 읽었는지 몰라요. 읽을 때마다 행복해지는 단락이에요. 작가님의 필력과 묘사가 거의 충격적입니다.

소녀의 웃는 모습이 상상 되지 않나요? 너무나 반짝이는 영화 같은 한 순간이죠. 웃는 할머니 얼굴을 보고 참고 참다가 기어이 웃음이 터진 이 장면은 너무나도 아름다워요. 봄바람이 창문을 훑으며 지나갔다는 표현은 화룡점정입니다.

이야기로 돌아가볼게요. 어느 날, 누군가 찾아와요. 남자 여자, 그리고 여자 아이 둘. 남자는 할머니의 아들이었는데요. 서울에서 내려온 모양이에요. 그들은 서울살이 버릇을 못 고치고 할머니의 얼마 되지도 않는 수입을 제 돈 쓰듯 펑펑 써버립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드디어 본론을 얘기하죠.

이 식당을 팔고 그 돈을 사업 자금으로 좀 쓰자고. 할머니는 나는 이 식당만 있으면 된다며 호소에 가까운 거절을 해요. 아들은 그런식으로 줄곧 할머니를 괴롭혔어요. 그래서 소녀는 할머니를 지키기 위해 아들의 다리를 깨물어 버립니다. 진짜엄마가 꼭 젊을 필요는 없다고, 이렇게 늙은 할머니여도 내 진짜엄마일 수 있다고, 그렇게 믿고있던 소녀를, 할머니는 쫓아내버렸지만요.

이 기분에는 대체 어떤 단어가 가장 적합한가요? 행복을 느끼게 해 준 사람 고마운 사람, 나보다 더 소중하다고 믿었던 내 사람에게 내쫓기는 그런 기분 말이에요. 우리는 이해할 수 있어요. 그래, 가족이니까, 라는 생각에 다다를 수 있는데요. 소녀는 무척 괴로웠을 겁니다. 다음 날, 할머니는 소녀에게 돈을 쥐여주고 작별을 고해요.

 

3. 폐가의 남자



거지꼴로 돌아다니던 소녀의 손을 잡아준 '목소리'. 지나치게 따스한 그 목소리는 그녀를 교회로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 말씀을 듣게 하고, 찬송가를 부르게 해요. 강요하진 않았어요. '목소리'에게 중요한 건 사람들의 시선이었으니까. 사람들은 거지꼴인 소녀를 거둬들인 후 밥을 주고 또 잘 곳을 제공 해주는 그를 추켜세워줍니다.

하지만 소녀는 언제나 착한 척만 하는 남자와 교회가 싫었어요. 우연히 알게 된 폐가의 남자가 오히려 더 편했죠. 그는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소녀를 존중해 주었어요. 그래서 폐가 밖의 삶보다 폐가 안의 삶이 더 안락하고 행복하다고 느끼게 돼요. 그 안에서 소녀는 책도 많이 읽고, 누가 버린 일기장도 읽으며 나름대로 편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사람들이 폐가의 남자와 소녀를 발견했을 때, 그들은 웬일인지 그들을 떼어놓기에 급급해요. 아무것도 묻지 않고 한 명은 가해자, 남은 한 명은 피해자를 만들어 버리죠. 그렇게 그들의 편안한 나날은 단숨에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물론 등따시고 배부른 생활을 한 건 아니니까 누가 봐도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전의 삶보다 현재를 더 행복하다고 느끼고 무엇보다 스스로 만족하며 지내고 있었는데, 그 시간을 누가 무슨 권리로 빼앗을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돼요. 왜, 행색이 초라한 사람은 행복이 뭔지도 모르는 바보니까요? 그래도 되는거예요?

행복의 기준은 내가 정하는 거잖아요. 방법을 가르쳐줄 순 있어도 강요하면 안 되죠. 특히나 가난한 사람들에겐 내 생각이 맞다고 가해지는 폭력이 너무 보편적인 것 같아요. 맘 아파요.

 

4. 각설이패



소녀의 진짜엄마를 찾아 떠나는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딘가에는 분명 내 진짜엄마가 있을거라고 확신해요. 그러다 이번에는 각설이패를 만나게 되는데요. 트럭을 타고 전국을 돌며 불쇼와 농담을 들려주고 엿과 테이프를 파는 사람들이었어요. 소녀는 그들이 음악을 즐기고 무언가에 열중한 모습에 빠져들게 돼요.

대장이라고 불리우는 사나이는 소녀처럼 진짜엄마를 찾아 헤매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이유는 조금 달랐으나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결핍된 마음을 채우고자 마음은 똑같았어요.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한 사람이었죠. 그리고 또 한 명, 불같은 성격의 대장과는 정반대 스타일의 '달수 삼촌'. 그는 다정하고 세심하게 소녀를 챙기는 진짜 삼촌 같았습니다.

그들과 함께한 시간은 매 장면을 엮어 모아 하나의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예요. 마음이 답답하면서 동시에 아픈 구석이 많았네요.

달수 삼촌이 소녀와 헤어질 때, 손에 쥐어준 정은 마치 제게 쥐어진 뜨거운 무엇처럼 다가왔어요. 꼭 생생한 마음을 전해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기어이 터져버린 눈물 같은 마지막 포옹도 흘러넘치게 슬펐고요.

하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그 시간이 마냥 행복만 했던 건 아니예요. 새까만 재같은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냈던 소녀의 이 마음을 좀 보세요.

 

나는 맞지 않기 위해 작아지고 싶었다.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나를 찾지 못할 만큼 작아진다면, 가짜아빠가 나를 때릴 수도 없을 테니까.
아니, 그것도 거짓말이다. 나는 개미만큼 작아져서 가짜아빠의 몸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아주아주 강력한 폭탄을 들고. 그래서 가짜아빠의 몸을 산산조각 내고 싶었다. 살점 하나 남지 않을 만큼.
아니아니, 그것도 다 거짓말이다. 나는 엄마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원래 내가 살던 곳.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안락한 그곳에 다시 들어가 죽을 때까지 태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곳에서 그냥 엄마인 채로 살고 싶었다.


이토록 어두운 생각은 잊을만 하면 떠오르고 잊을만 하면 떠올라 도통 행복할 기회를 주지 않아요. 소녀가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 감이 오시나요. 이건 부모를 미워하는 수준을 넘어섰어요. 원망하는 수준을 넘어섰어요. 그들은 그녀를 정말 산산조각 냈거든요. 각기 다른 곳으로 떨어진 파편들이 '가짜아빠! 가짜엄마!' 하고 울부짖는 것 같지 않나요. 포효하는 것 같지 않나요. 나를 엄마 뱃 속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통곡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제까지 누군가를 만나 마음이 들뜰 때마다 진짜엄마가 아닌가 싶어 잠시나마 희망을 맛보았지만, 그 예상은 늘 보기좋게 빗나갔어요. 하지만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매일 자고 일어난 소녀의 마음이 전 날보다 더 커져 있었다는 거예요.

 

많은 것에 익숙해지는 동안, 나는 키도 조금 자라고 머리카락도 많이 길고 그리고, 무언지 모를 어떤 것도 불쑥 자랐다. 그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누구에게 확인받을 길도 없고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나는 느낄 수 있다. 폐가에서 남자가 주워 온 책을 읽으며, 남자와 나란히 누워 차디찬 허공을 말의 온기로 조금씩 채우던 순간, 터미널에서 삼촌이 나를 꼭 껴안던 그때 울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면서, 내 안의 어떤 것이 커졌다.


세상은 내 생각보다도 더 혹독하다는 것, 그러니 이 세상에 맞서 지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내 자신을 보호해야 함을 깨달은 게 아닐까요. 엄마 배에서 나올 때부터 우리는 사랑을 받고, 나는 사랑 받을만한 존재라는 걸 확신 하면서 커요, 보통은요. 하지만 이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한 돌 한 돌 쌓아 내가 살 집을 짓습니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날아오는 돌을 피해 몸을 숨길 곳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니까요.

그런데 생각보다 이런 사람 많은 거 아세요? 잔잔한 바다에 때때로 파도가 치는 보통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매일 폭풍우가 치는 마음을 잠재워야만 살 수 있는, 그러기 위해 아주 아주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만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대체 부모는 내게 왜 그랬을까?', '나는 왜 태어난거지?', '나는 뭐하는 사람일까?' 와 같은 풀리지 않는 대답을 수도없이 자문하면서 말이에요.

저 또한 그런 시간을 견뎌왔기 때문에 소녀의 모든 말과 행동이 마음 아팠어요. 내가 내게 건넨 질문, 돌아오지 않은 대답, 영원히 풀지 못할 것 같은 숙제, 그럼으로 내가 나를 원망하고, 미워하고 저주했던 시간. 그것들은 이제 한 단어에 꽁꽁 묶어뒀습니다. 그리고 저는 현재 그 단어를 밟고 살아가고 있죠. 탄력성이 좋고 향기 나는 마음이 아니라 속상할 때도 있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그 지옥 같은 시간을 지나 이만치 성장한 내가 대견할 때도 있는걸요.

 

5. 유미와 나리



집을 나온 유미와 나리는 부모에게 심한 학대를 받은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정신과 신체는 모두 부모의 좋은 스트레스 해소 대상이었어요. 그들의 안타깝기 그지없는 여러 일화는 비행청소년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것들이었고요. 그들이 안타까웠던 이유는, 이제까지 소녀가 만나왔던 사람들보다 독자인 제가 더 만나기 쉬운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조용히 주변을 돌아보게 되고, 조금 더 멀리에 있는 이웃들도 살펴보게 되더라고요.

 

난, 어린애에서 바로 노인이 된 것만 같아.


관심 끄라고 매서운 눈을 하면서도 실은 겁먹은 고양이 같은 아이들. 또래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장을 보고, 영화를 보고, 저녁을 먹고, 자기 친구를 집에 데려와 함께 노는데, 그들은 존재 가치라는 단 하나의 질문에 부모의 대답을 듣지 못 해 자신들이 그 답을 풀어보려고 무진 애를 씁니다. 때론 해서는 안 되는 행동도 하며 나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사람이란 걸 증명하려 하죠. 각 나이엔 어울리는 얼굴이라는 게 존재하는데, 왜 이들은 노인의 가면을 쓰고 사는지 몰라요. 누가 쓰도록 만든 거예요?

유미 나리와 어울리며 소녀는 한 남자 아이를 알게 됩니다. 그들은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곳에서 겨우 몸만 숨겨 함께 지내게 돼요. 그리고 옆에서 집 허물어지는 소리가 들리던 어느 날.

 

해가 저물 때까지 계속된 싸움에 노인들은 지칠대로 지쳤지만, 아무도 물러나진 않았다. 양복을 입은 사람이 나타나, 가서 얘기 좀 하자고 노인들을 끌고 갔다. 협상을 해주려나 보다 기대하고 그들을 따라간 사이 용역들이 빈집에 불을 지르고 컨테이너를 부쉈다. 시뻘건 불이 치솟았다. 집 안에는 옷이며 이불이며 세간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세상 단 한 장뿐인 사진도 있을 것이고, 어린아이의 일기장도 있을 것이다.


철거된 집에 살고 있던 사람들, 사라져가는 집을 지켜보는 그들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분노는 타오르는 시뻘건 불보다 더 거셌을 거예요. 소녀는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만 만나왔던 것 같네요. 그들의 배경은 항상 전쟁이었던 것 같고요.

유미와 나리, 그리고 당신의 곁을 스쳐간 그 이름 없는 소녀의 결말은 책에서 확인 하시라고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흥미진진하니 꼭 읽어보세요.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어린 날 내가 느낀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을 대신 표현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나도 몇 개의 단어만으로밖에 그 때를 설명할 수 없는데, 나보다 더 나의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 아주 자세하고도 날카롭게 표현을 해 준 느낌이었어요.

이런 사람들이 작가를 하는구나 싶더라니까요... 새삼스럽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경이로움마저 느꼈네요.

소설의 참맛은 나와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게 하는 데 있지 않겠습니까? 그 의미를 완벽하게 충족시킨 책. 그리고 그 어떤 에세이집보다 큰 위로를 준 책이었어요.

책을 덮고 제가 바로 다음 한 일은 '구의 증명'을 독서 리스트에 넣은 것이었습니다. 기대 돼요. 아주 많이. 작가님 앞으로도 책 출간 많이 해주세요...🙏 좋은 작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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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는 17살입니다. 어릴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조부모님 손에 길러졌어요. 하지만 조부모님마저 돌아가시게 되자 경주에게는 이제 함께 살았던 이 집만이 남았습니다.

 


집에 와서 하는 일이라곤 할머니 할아버지 속 긁어놓기, 돈 가져가기 밖에 없었던 삼촌이 찾아옵니다. 이 집 팔자고요. 그런데 왜 그걸 경주한테 말하느냐고요? 조부모님이 경주에게 유산으로 이 집을 남겨주고 가셨기 때문이에요. 비로소 경주가 서류에 도장을 찍어야만 집이 팔리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경주는 집을 팔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조부모님의 마지막 유언이었거든요. 삼촌은 고함을 지르거나 위협을 가하는 등의 방법으로 그녀에게 강요합니다.



"이 집은 절대 안 팝니다."

 

 

 

어디 어른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느냐고, 너는 애가 왜 이렇게 고집이 세냐고, 네가 뭐라 해도 결국 이 집을 팔게 될 거라는 삼촌의 말과 경주의 대답이 핑퐁처럼 최소 열 번 이상은 이어집니다. 경주도 참 대단해요.

 

애 vs. 어른


경주는 열 일곱살입니다. 삼촌은 서른이 넘었고요. 법적으로 한 명은 미성년자고 한 명은 어엿한 성인이지요. 그런데 이들의 태도를 한 번 보세요. '내가 가진 것은 노트북이나 비싼 패딩이 아니고 집이다. 자산이다.' 집을 소유했다는 것을 인지한 후 행동과 말투를 달리하는 이 고등학생. 꼭 필요한 말만 하고, 정확하게 행동하고, 분명한 태도를 보이려고 매사에 주의하는 경주는 어설프나마 어른스럽게 행동하려고 합니다.

대조적으로 삼촌은 상대방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적당히 구슬리면 될 거라고 생각해 철없는 행동을 하지요. 소리를 지르고, 발을 쾅쾅 구르고, 문을 세게 닫고 나가고, 으름장을 놓고, 제 딴에 무서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에요. 경주는 생각합니다.

 

나는 삼촌이 좀 더 지적이고 근사한 방법으로 나를 설득해 주기를 바랐다.

 

 

 

새삼 별스러울 것도 없어요. 세상엔 나잇값 못 하는 사람들 천지니까. 오히려 아이가 더 어른스러울 때가 있기도 하죠. 나이가 어른임을 증명하는 건 진짜 아닌 것 같아요. 어른은 어른답게 행동하고 자신과 남들이 인정해줄 때 붙일 수 있는 말 같습니다.

 

고모와 순지


고모와 그의 자녀 순지가 집에 찾아옵니다. 할머니가 물려주신 아파트를 말아먹고 갈 곳이 없었거든요. 고모도 처음엔 이 집을 팔고 세입자를 들이거나 이 자리에 새 집을 짓자고 설득 해요. 하지만 경주의 의지가 너무나 올곧았기 때문이겠죠. 고모는 적어도 삼촌처럼 끝까지 막무가내는 아니었습니다.

순지는 경주의 친구예요. 그도 처음엔 집을 파는 쪽에 생각이 기울어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삼촌이 저렇게 나오는데 결국은 팔게 되지 않을까, 하고요. 하지만 순지는 그렇게 생각을 했다 하더라도 아무런 힘이 없었어요. 미성년자였으니까요. 그는 종종 경주의 말동무가 되어줍니다.

고모부


경주 입장에서는 매일이 자연재해와 같은 하루 하루였겠지만 독자 입장에선 꽤 순탄한 전개였다고 생각합니다. 고모부가 등장하기 전까지는요.

고모부는 고모와 이혼한 사이예요. 이미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있죠. 그런데 왜 이 집에 찾아온 건지 모르겠어요. 게다가 길진 않지만 이 집에 잠시 잠깐 함께 살 거라네요? 이 집을 팔면 어마어마한 돈이 생기거든요. 정말이지 그 '돈'때문에 나잇값 못 하는 어른들이 하나 둘씩 생겨 나는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스포가 될 수 있겠습니다. 책을 읽으실 예정이신 분들은 이 부분 패스하시길 바라요. 거의 종반부에 고모부는 대단한 결심을 하나 하는데요. 아무리 설득을 하고 겁을 줘도 경주는 눈 하나 깜짝 안 하잖아요, 여기서 정말 못난 행동이 나옵니다. 삼촌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건 바로 경주를 지하 창고에 가두는 일이었어요. 집 서류를 넘겨주면 문을 열어준다네요. 삼촌은 옆에서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느냐'며 고모부를 말렸지만, 내심 이렇게 해서라도 일이 해결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을거예요. 결국 경주는 하루 반나절 정도를 창고에 갇혀 있게 됩니다.

경주를 꺼내준 사람은 근처에 사는 성이 할머니였어요. 사실 꺼내준 건 아닙니다. 성이 할머니는 경주 할머니가 돌아가신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분이 아니었거든요, 치매에 걸리셔서요. 자주 경주네 집에 와 정원을 손질하고 성이와 함께 돌아가시곤 했죠. 할머니가 창고로 다가가자 성이가 "할머니?"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것이었어요.



 

 

그 이후 고모와 고모부, 삼촌은 난리가 납니다. 경주가 듣고 있는지도 모르고 한바탕 말싸움을 해요. 고모는 삼촌에게 말합니다. 경주의 엄마 아빠가 죽은 건 너 때문이라고. 네가 경주의 엄마 아빠를 그 날 하필 불렀기 때문에 보러가다 사고가 난 거라고. 경주의 아빠가 할아버지 눈에 드는 게 네 입장에선 눈엣가시 아니었느냐고 말해요. 삼촌은 아빠가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다고 항변했지요.

이 집을 주축으로 경주의 부모님, 조부모님, 삼촌과 고모 등은 불편하게 얽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집도 나름의 비밀을 감추고 있었죠. 할아버지의 친구가 망하는 기회를 이용해 지어진 집이라는 게 삼촌의 단골멘트였어요. 그리고 그 친구가 찾아와 실수로 자신의 팔을 칼로 스쳤을 때 나온 피 때문에, 할아버지가 평생 삼촌의 요구를 들어주고 살아왔다는 사실도 경주는 어른들의 말싸움을 통해 알게 됩니다.

고모부는 지하 창고 사건 이후 집을 나가요. 그 날이 모두에게 전환점이 되어주긴 했나 봐요. 가장 큰 변화는, 삼촌이 달라졌거든요. 아무래도 조카를 창고에 가둔 건 아무리 인간 말종이라도 양심에 찔리는 일이었긴 했나봅니다.

삼촌과 나는 여름의 질서 속에 한참을 고요히 서 있었다. 삼촌이 어깨를 한 번 들썩이더니, 비밀이라도 말하듯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내가 잘못했다." 삼촌은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현관을 향해 돌아섰다.


다행이죠. 그런데 이제까지 경주가 마음 고생한 건 어디서 보상을 받을 수 있나요? 철이 없기로소니 고등학생 조카 앞에서 자신의 철부지 같은 행동을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나 싶습니다.

이 책을 덮고 씁쓸했던 이유는 이 책에 나오는 삼촌, 고모부, 고모 같은 어른들이 상당히 많다는 현실 때문이었어요.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건 저도 누군가에겐 이렇게 지긋지긋한 사람일 지 모른단 사실...)

진짜 어른은 어떤 사람을 일컫는 말일까요? 책에서 경주는 소중한 것을 자신의 소신을 걸고 지켜내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지 않으면서 자신의 뜻을 관철 시키는게 꽤 어른스러워 보이긴 했어요. 책에서 던지는 질문은 아니긴 하지만요. 생각해 볼만한 물음인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나는 물론이고 타인을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짙어집니다. 나와 타인에 대한 배려. 이 균형을 맞추는 삶을 살고 싶네요.



 

 

끝으로... 제목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왜 '나로 만든 집' 일까. 이 집은 말그대로 '경주'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목숨을 걸고라도 지키려고 했던 게 아닐까요? 나는 내 몸도 있지만, 생각도 있고 의지도 있고 신념도 있죠. 경주의 그 모든 것이 이 집을 이루고 있던 것이라고 생각해요. 결국은 아무도 이 집을 허물 수 없었습니다. 경주가 경주를 포기하지 않아서 아무도 허물 수 없었어요. 힘들었겠지만 끝까지 자신의 소리에 귀기울여 준 경주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이 책을 청소년들이 읽는다면, 많은 것을 가지고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자신의 옳다고 생각되는 소신을 어른들 중에도 나잇값 못 하는 덜 큰 어른들의 말을 듣고 꺾지 마세요. 그저 나이만 먹은 어른들에게 굴복하지 않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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