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궁금한 분들이 계실 것 같아요. 먼저 답을 할게요. 이 책은 3-7세를 '그 시기'로 놓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3-7세 아이는 부모가 말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대로 배우며 자란다고 해요. 그들에게 좋은 인성을 갖게 해주기 위해서는 부모가 좋은 인성으로 아이를 안아주어야 하며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아이가 궁금해 하는 것을 함께 알아가면 된다고 했어요.

제목이 좀 세서 긴장하신 분들 계실지 몰라 하는 얘긴데요. 부모자식 간에 중요하지 않은 시기가 어딨겠어요. '결정적' 이란 단어를 굳이 쓰신 이유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정서발달, 인성교육에 있어 결정적인 시기가 있다는 건 이제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죠. (0-3세, 만 3-6세) 그 시기에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걸 알려주고 있어요. 혹 놓쳤다고 해도 아이는 우리에게 많은 기회를 주니까 낙담 말아요. 이 책은 저같은 초보엄마에게 "오늘도 열심히 육아 해야겠다!"  와 같은 즐거운 동기부여를 주는 책입니다.

 

 

3-7세,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적 능력과 인성의 기초를 세우는 시기이다. 우리 아이가 바로 그 시간을 지나고 있다. 한순간 한순간이 정말 소중하다.

 

 

 

아이가 갓 4살이 되어 더 몰입하여 볼 수 있었는데요. 이 시기를 지나고 있는 다른 아이들의 사례를 보며, 우리 아이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과 평범한 부모의 저들 나름대로의 대처법을 보며 묘한 위로를 받기도 했습니다. ('당신이 이상한 게 아니다!' 란 말을 직접적으로 하진 않았지만,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뒤이어 따라오는 전문가의 조언과 철학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임숙 - 엄마가 놓쳐서는 안될 결정적 시기


내가 하는 말과 행동, 그리고 표정 및 분위기는 아이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 육아를 하는 부모님들 귀에 이제는 딱지가 앉을 정도로 수없이 들어왔던 그 사실을 이 책은 몇 번이고 인지시켜 줘요. 문제행동을 하는 아이들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아이가 아니라 그 행동을 먼저 한, 혹은 하도록 만든 부모가 먼저 있었음을 알게 되는데요.

<금쪽같은 내새끼>만 봐도 그래요. 문제행동을 한답시고 보여주는 아이들의 화면이 끝난 후 전문가는 부모가 그 부모에게 받았던 어린시절 양육방식을 돌아보게끔 하잖아요. (물론 모든 상황이 다 그런 건 아닙니다만 높은 확률적으로)

책 속에 이런 일례가 있었습니다. 아이가 자꾸만 동생을 때린다는 거예요. 부모가 하지 말라고 말리면 아이는 왜 말리느냐고 억울해 하고요. 이런 아이는 도대체 어떻게 키워야 할 지 모르겠다며 부모가 전문가에게 고민상담을 하러 온 겁니다.

알고보니 문제행동을 한 아이가 동생을 때리기 전, 잘못을 하면 그 부모는 아이를 때리고는 했더군요. '잘못을 하면 맞아야 한다' 는 잘못된 이념이 각인 되어 본능에 가까운 액션을 취했을 뿐인데, 나는 왜 동생이 내 블록을 무너뜨린 것을 보고도 때리면 안 되는 거냐고 생각한 거예요. 이 사례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건 과연 뭘까요?

 

 

인성을 가르치려면 우선 아이가 좋은 인성을 경험해야 한다.




먼저 우리 집을 돌아보았습니다. 제가 아이에게 주의를 주는 문제행동은 '물건을 던지는 것'이었어요. 여러 번 그러지 말라고 일러보고, 짐짓 단호한 투로 말을 해보기도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는데요.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가 어릴 때, 저희 부부는 멀리 떨어져 있으면 종종 물건을 던져 받고는 했어요. 빨리 빨리 효율적으로 처리를 하고 싶으니까, 별 생각없이 했던 행동인데 아이가 따라할 수도 있을 거라는 사실은 미처 신경을 쓰지 못 했던거죠.

그 모습을 기억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엄마 아빠가 물건 던지는 걸 보고 따라한거야?" 아이는 그렇다고 대답했어요. "그런 줄도 모르고 엄마는 하지 말라고만 했네. 앞으로는 엄마 아빠도 안 던질게. 위험하니까 우리 물건 던지지 말자"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일단 상황은 종결이 되었어요. 하지만 개선이 될 지는 더 지켜봐야겠죠?

아이 앞에서는 찬물도 함부로 못 마신다는 옛말이 떠올라요. 누가 누굴 나무라요.
아이에게 좋은 인성을 가르치려면 가장 가까운 부모가 그런 인성을 가지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가게에서 계산을 하고 나올 때 인사를 하는 부모의 모습, 어려운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부모의 모습,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지 않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아이는 자연스럽게 배울 거예요.

저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인데 이 사실을 배우고 난 이후 특히 더 행동을 조심하고 있어요. 낯설고 불편하지만... 좋은 점도 있긴 합니다. 그간 어른이라는 이유로 아무도 내게 지적하지 않았던 행동을 '아이가 보기에 어땠을까?' 싶어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거든요. 그럼으로써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고요.

 


조금 다른 이야기도 해 볼게요. 여러분은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자랐으면 하시나요? 인성이 바른 아이? 공부를 잘 하는 아이? 행복한 아이?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질문이란 거 알지만요.

혹시 제가 말한 보기 중에 유독 내 마음에 강하게 와닿는 게 있지는 않았나요? '이랬으면 좋겠다' 싶은거. 저는 있어요.

저는 아이가 '행복한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있죠, 얼마 전에 남편이 그러는 거예요. 아이가 남편이랑 있을 때는 규칙도 잘 지키고 해야 할 일도 완수를 잘 하는데, 저만 오면 땡깡을 부리는 아기로 변한다고, 너무 오냐오냐 하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괜찮지만 나중에도 괜찮겠느냐는 걱정 어린 말도 하나 더 얹어서요.

다른 게 부족해도 아이를 사랑만 해주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아닌 것 같아요. 균형이 중요한 것 같아요. 아이는 인형이 아니잖아요. 배우면 받아들이는 사람인데, 제가 너무 저 편한 육아를 했던 듯 해요.

남편이 제게 저 한 마디를 해주지 않았다면, 아래의 이 구절을 그냥 지나쳤더라면 아래와 같은 사단이 미래의 제게 일어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아찔해요. 미리 알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요.

 

가끔 상담실에는 아이를 키우며 성격만 중요시하는 파행적 모습에 회의를 느껴 공부보다 인성을 강조하면서 키운 아이와 부모가 찾아온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아이에게 공부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자유롭게 키웠는데 왜 상담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생겼을까? 어릴 적부터 친구와 함께 즐겁게 놀고 자유로운 시간을 갖도록 배려하며 키웠는데, 아이는 왜 점점 친구 관계에서도 문제가 생기고 알 수 없는 불안과 우울로 힘들어할까? 부모가 놓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과유불급.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뭐든 과하면 안 하느니만 못해요. 인성교육, 너무 좋은데, 필요한 거 아는데, 이 역시 '치우쳐지면' 이러한 문제가 충분히 생길 수 있어요. 아이가 다른 친구들을 만났는데 나만 못 한다는 소외감에 위축 되거나 자신감을 잃게 되는 모습... 상상만 해도 얼마나 마음 아파요.

그런데 동시에 저는 육아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해서요, 일부러 틀렸다고는 말하지 않았어요. 친구들 사이에서 제 목소리를 당당히 낼 수 없었던 경험을 통해 그 아이는 어떤 식으로든 한층 더 성숙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의 기질이 다 다르고, 각 집의 육아 방식이 비슷한 듯 해도 미세하게 다 다른데 어떻게 획일적인 결론이 날 수 있겠어요.

위 일례의 아이 이야기를 더 해 볼게요. 인성교육'만' 받은 이 친구가 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대요. 낯선 나라 친구들은 이방인을 바로 친구로 받아들여주지 않았다고 하고요. 하지만 아이는 이미 한국에서 소외감을 느낀 바 있기 때문에 크게 상처 받지 않고 오히려 친구들과 더 잘 지내기 위해 노력 했다고 해요.

저자는 한 쪽으로 치우쳐짐은 좋지 않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이미 그렇게 되었다면, 헤쳐나갈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주거나 아이를 믿어주어서 전화위복을 몸소 경험하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요.

 

아이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자라고 싶어 하는가이다. 아이가 자신이 다양한 능력을 키워 가며 잘 자라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인성만 강조하느라 아이가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을 소홀히 하다 보면 아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는 것도 별로 없다는 생각에 주눅 들고 위축된다. 나중에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지 걱정되고 불안해진다. 부모는 절대 비교하며 키우지 않았다 해도 아이 스스로 자기도 모르게 또래 아이들과 비교한다. 이런 시간이 쌓이면 서서히 정서 면에서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이에게 기본적인 것들은 꼭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건강한 자존감을 갖고 살 수 있도록 작은 성취부터 큰 성취까지 경험하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도 가능하면 해주는 게 좋다고 봐요. 아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더더욱이요.

(하지만 부모는 신이 아니니까 모든 판을 다 짜줄 순 없죠. 그럴 때는 없으면 없는대로, 주어진 환경에서 아이가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 해요. 겪지 않았으면 하지만, 겪을 수 밖에 없는 삶의 필연적인 숱한 장애물을 헤쳐나가는 연습, 그 안에서 문제해결능력과 회복탄력성을 기를 수 있을테니까요.)

저는 아직 아이가 어려서 새로운 세계와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나름대로 힘껏 길을 터주는 편이예요. 만일 아이가 힘들다거나 괴로워하면 이야기를 하고, 같이 손 잡고 나오고요.

길가에 핀 민들레 꽃에 관심을 보이는 아이의 관심이 더 깊어질 수 있게 놀이와 스킬로 잘 이끌어 주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 책의 제목을 한 번 더 떠올려 주시겠어요? 당연히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야합니다.

 

중요한 건 애착에 금이 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아이를 가르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배움이 노는 것 만큼이나 즐겁다는 사실을 깨닫게 도와야 한다. 즐겁게 배우는 아이는 힘든 공부도 해낼 수 있는 힘이 생기며 부모와의 좋은 관계를 평생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간다. 사춘기 아이가 문을 꽝 닫고 들어가 대답도 안 한다고 해서 아이 성격을 탓할 필요 없다. 아이가 성질이 못돼서 그런 게 아니다. 엄마가 자기 마음은 몰라주고 사랑을 핑계로 마음대로 휘두르니 괴로운 것이다.


아이가 네 살 밖에 안 되어 더 큰 아이들을 둔 부모들의 심정을 저는 잘 모르지만요. 네 살 아이는 아직까진 엄마가 뭘 하자고 하면 잘 따라와줘요. 그리고 어린 아이이기 때문에 놀이를 좋아하므로, 무언가를 놀이식으로 엮는 게 아직은 좀 쉽네요. 조금 더 큰 아이들의 경우 부모가 아이를 대하는 방식부터가 다르겠죠? 하지만 태도가 달라졌을 뿐 마음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무언가에 호기심을 보이는 아이의 말을 흘려 듣지 않고 그것에 더 빠져들 수 있도록 준비를 해주거나 사고를 확장시킬 수 있는 질문을 던지는 것. 좋은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소한 것이라도 아이의 마음이라면 존중하고 수용하고 진심으로 귀기울여주는 자세라고 생각해서 나름 열심히 실천하고 있고요.

저희 집 이야기를 해 볼게요. 아이가 영어를 친숙하게 느꼈으면 해서 이것저것 많이 보여주고 있어요. 제가 준비한 영어 놀이를 아이가 치우라고 하면 반응에 따라, "재밌는 건데 그럼 다음에 같이 해보자" 며 치우거나 "그럼 엄마 혼자 해 볼게. 엄마는 하고 싶어서" 얘기하고 잠시나마 혼자 하기도 해요. 그럼 운이 좋은 날은 다가와주기도 하더라고요?

핵심은 강요하면 안 된다는 것. 제 철칙이예요. 저는 아이가 좋아하는 춤과 노래 그리고 대화로 노출을 시켜 주고 있습니다. 덕분이라고 해야할지 아이의 최애곡은 ABC송이에요. 자기가 아는 단어, 질문이 들리면 큰 목소리로 대답 할 줄 알고요.

(본격적인 언어 공부는 측두엽이 발달하기 시작하는 만 6세 이후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그 활동이 욕구를 채워 주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친구 것을 빼앗기만 하던 아이가 친구에게 자기 장난감을 빌려 준 뒤 기분이 좋거나 칭찬을 받았다면, 아이 마음속에 새로운 사진이 저장되고 아이는 그 행동을 더 하고 싶어 한다. 힘들게 로봇을 만들었는데 완성하고 나니 아주 뿌듯했다면, 그 아이는 앞으로 더 멋지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우리 아이의 '좋은 세계'에 건설적이고 가치 있는 것들, 아이의 성장을 돕는 것들이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건 아이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적용 가능한 삶의 지혜예요. 어떤 경험을 하고 그것이 좋은 기분이었다면 우리는 그 행동을 또 하고 싶을테죠. 아이에게 배려를 가르치고 싶다면 배려를 하고나서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을 하게 해주세요. 그 후는 시키지 않아도 할 거예요.

사람은 머리보다 몸으로 부딪혀 알게 되는 일을 더 오래 기억하지 않나요? 뜨거운 걸 만져 몸이 놀란 기억은 평생 그가 뜨거운 불을 조심하도록 만들어요. 그리고 그건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왜?' 라는 의문이 끼어들 수가 없죠. 내가 겪은 것이기 때문에 그저 받아들일 수 밖에요.

그건 남과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경험이었다, 는 기억. 여러분은 어떤 게 떠오르세요? 봉사활동, 분리수거, 인사하기, 미소짓기... 생각해보니 꽤 여러가지가 있네요. 아이와 함께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끝나고 연관도서를 읽으면 더 오래 기억에 남겠어요!)

 

아이의 기질에 맞는 양육이 그리 어려운 건 아니다. 아이에 대한 호기심만 있으면 된다. '이래야 한다'가 아니라 '우리 아인 어떤 아이지?'라며 아이를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아이는 '전 이런 사람이에요'라며 온몸으로 자신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책을 읽고 가장 좋았던 점은 아이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에요. 저는 우리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대충 알아요.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하며 예술적인 활동을 좋아하죠. (아직까지는)

하지만 저는 저도 모르게 그 사실을 애써 지우려고 했음을 인정해요. 왜냐하면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아이는 키우기가 어렵거든요. 저, 그러니까 엄마가 힘들어요. 그래서 은근히 아이를 왜곡해 바라보기도 했어요.

이젠 인정해요. 아이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고 있는데 엄마라는 사람이 대체 뭘 바란건지... 참 웃기죠. 이젠 내 아이에 맞는 양육법을 택해 실행할 거예요. 너는 이런 아이여야 해, 가 아니라 너는 어떤 아이일까, 에서부터 다시 시작이에요.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현재의 생각도 아이가 보여주는 말과 행동으로 달라질 수 있어요. 앞으로는 아이가 보여주는 아이를 볼 거예요.






이 책에는 순한 아이, 까탈스러운 아이, 느린 아이에 대한 예시가 나와 있습니다. 읽어보시고 우리 아이는 어느 쪽인지 체크하며 읽어보시면 현명한 육아를 하시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좋은 내용이 너무 많은데 제 역량이 여기까지라 다 담을 수가 없네요. 이런 말 뭣하지만... 직접 읽어보시기를 추천 드립니다(?) 다 옮기지는 못 했지만 좋았던 이야기 조금 더 나누며 이번 포스트 마칠게요.






저자는 상상놀이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했는데요. 아이가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하거나 치료를 받으러 가야 하는데 무서워서 긴장하고 있는 경우 상상놀이를 제안해 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림책에서 봤던 용사가 내가 되어보는 거예요. 그래서 무서움과 두려움을 물리치고 멋지게 진료를 받는 거죠. 부모의 교묘한 연기력이 필요한 고도의 귀엽고도 치밀한 상상놀이인데, 잘만 먹힌다면 아이 마음이 단단해지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차마 내가 쓰러뜨리지는 못 했어도, 최소한 방어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만일 이기고 돌아온다면 아이 마음에 살포시 자리잡은 칭찬 스티커 같은 뿌듯함은 덤이고요.

그리고 아이의 그 어떤 말이라도 일단수용 해주라는 말도 인상깊었습니다. 순서를 기억하라는 거예요. 수용을 해 준 다음에 해결책을 제시하라고요. 수용은 그랬구나, 같은 건데요. 어른이니까 아이가 차마 표현하지 못한 감정에 적절한 이름을 붙여 대신 설명 해주면 돼요. 서러웠구나, 억울했구나, 불편했구나, 슬펐구나...

답답해서 울기만 했던 아이가 난생 처음 제 감정을 알게 되는 순간일지 몰라요. 커감에 따라 엄마가 알려준 그 감정을 정리하는 법도 배우게 될 테죠. 이런 과정이 없으면 속상한 것도 짜증, 슬픈 것도 짜증, 질투가 나는 것도 짜증, 서러운 것도 짜증, 혹은 화라는 이름 밖에 붙이지 못할 지도요. 이 역시 부모가 모든 걸 다 해줄 수는 없지만 때에 따라 도와줄 필요가 있는 일인 건 맞는 것 같아요.

끝까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이렇게 많다는 건... 실질적인 팁이 많다는 뜻일겁니다. 뻔한 위로의 말이 있는 건 아닌데 묘하게 위로가 되기도 하고요. 3-7세의 아이에게 중요한 게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신 분들, 아이를 이해하고 싶은 분들, 이 책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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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감하다의 반댓말이 예민하다, 라는 거라면 저희 아이는 조금 예민한 편에 속하는 것 같아요. 특정 음식이나 소리에 소스라칠 정도의 경기를 일으키는 건 아닌데요. 지금이 32개월인데 아직도 새벽에 깨서 저를 찾고요. 계란 외의 다른 음식들은 간이 조금만 달라져도 입에 대지 않으려 해요. 낯선 사람들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이 조금 걸리지요.

하지만 그런 아이가 저는 이상하게 느껴지진 않습니다. 기질이니까요. 이 책에서는 예민한 아이 잘 키우는 법이라고 했지만, 제가 따로 부제를 붙여볼까 해요. '예민한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태도'. 이 책의 전반전인 내용은 예민한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에 관한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단순한 해결책보다 예민한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바람직한 자세가 우선이라고 보았습니다. 부모의 마음가짐,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구체적인 양육법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양육은 '기술'이 아닌 '태도'의 문제라고 믿습니다. 또한 이미 상황과 연령에 따른 문제 해결법은 쉽게 접할 수 있으니 다른 관점으로 쓴 책이 독자에게 더 큰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너무나 옳은 말이죠? 육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태도라고요. 부모의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거죠. 그 마음을 기본으로 하되 육아기술을 접목시키면 아이도 부모도 행복한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며 함께 나누고 싶었던 부분 체크해 두었어요. 덧붙여 제 생각도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부모의 양육 태도와 성장 환경이 아이의 예민함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아이의 기질에서 비롯된 이유가 분명히 있겠지만요. 저는 환경이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저희 아이가 계란 외의 다른 반찬에 낯선 간이 들어가면 입에 대지도 않는다고 했잖습니까? 고기는 물론이고 조림, 무침, 어쩔 땐 구이도 먹지 않아 애가 탈 때가 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지금 아이를 키운지 벌써 천 일이 다 되어가는데 제가 아이 앞에서 밥 먹는 모습을 보여준 게 외식을 제외하곤 열 손가락 안에 꼽더라고요. 아이를 먼저 먹이고 남는 자투리 시간에 밥을 먹었기 때문이죠.

엄마가 먼저 먹는 모습을 보여야 아이도 따라 먹는다고 하는데... 엄마는 먹지 않으면서 내게만 자꾸 권한다? 게다가 그게 낯선 음식이다? 그럼 당연히 저라도 거부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첫 아이고, 제게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말그대로 애지중지 하며 키워왔는데요. 얼마 전에 깨달았어요. 키즈카페에 가면 저희 아이보다 어린 아이들도 혼자서 잘만 놀더라고요? 저희 집은 항상 저나 아빠가 아이 곁에 꼭 붙어 있거든요. 그래서 아이가 다른 친구들과 상호교류하는 시간이 적어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때, 제 뒤에 숨는 행동을 하는 건 아닌가 싶었어요.

그래서 이제는 친구들에게 먼저 말을 걸도록 도와주고, 저희 시야에 아이가 보이는 거리를 유지해 혼자 놀도록 두기도 하고, 밥은 가능하면 같이 먹으려고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부모가 노력 하면 아이도 조금씩 바뀔거라고 생각해요.

 

일부 예민한 사람은 예민해서 불행해하기도 합니다. '난 왜 이럴까?', '왜 나만 유별날까?'라고 자책합니다. 현재와 미래가 아닌 과거에 집착하면서 자신이 실수했거나, 혹시나 실수했을지도 모르는 일을 계속 떠올립니다. 자책과 후회로 우울과 불안을 느끼며 자존감은 점점 떨어집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피하고 긴장을 풀기 위해 술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는 '예민함' 자체를 문제라고 보진 않습니다. 예민함을 잘 다루지 못해 일어나는 부정적인 상황들을 걱정할 뿐이죠. 자신의 예민함을 잘 다루지 못하면 자기 스스로와 상대방을 힘들게 만듭니다.

위의 글을 한 번 보세요. '나는 왜 이럴까?' 하는 자책감과 무력감,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이 예민한 사람들을 힘들게 만듭니다. 물론 예민함을 잘 다루면 괜찮습니다. 오히려 강점이 되죠. 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특별한 강점을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평생에 걸쳐 힘든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습니다.

아이가 불안함을 느끼고 초조해할 때, 마음을 공감해주고, 감정을 읽어주고, 보다 나은 방법을 제시해주세요. 그게 꼭 정답은 아니라 할지라도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아이를 위한 솔루션은 반드시 아이의 마음에 가닿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민함의 부정적인 결과를 예민함의 고유한 특성으로 오해합니다. 그렇기에 예민함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봅니다. 하지만 예민함 자체와 예민함을 잘 조절하지 못해 생긴 부정적인 결과는 별개입니다. 예민함 자체는 좋고 나쁜 것이 아닙니다. 예민함을 잘 조절하면 부정적인 결과가 아닌 긍정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예민함이란 받아들이는 자극과 그것에 대한 반응이 크다는 특성을 말하는 것이지, 좋고 나쁨, 옳고 그름,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기억하길 바랍니다.


위 글도 이 책의 핵심입니다. 예민함과 예민함을 잘 조절하지 못해 생기는 부정적인 결과는 별개라고요. 예민함은 다를 뿐이지 틀리다거나 나쁜 게 전혀 아니라고요. '예민하다'라는 말 자체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씌어져 있어 떠올리기만 해도 생각이 치우쳐버리는 건 저도 매한가지입니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해요.

 

예민한 아이는 관찰력이 좋습니다. 예민한 아이는 다른 사람의 기분, 생각, 기대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민한 아이는 공감 능력이 좋습니다. 여러분의 아이가 남의 눈치를 많이 본다면, 소심해 보이는 아이의 겉모습에 속상해하기보다는 아이의 잠재력에 기뻐해 주세요.


드디어 나왔네요, 예민해서 좋은 점. 예민한 아이들은 화질로 따지면 고화질, 음질로 따지면 고음질로 세상을 보고 듣습니다. 고화질, 고음질이 얼마나 좋은 지 여러분 아시죠? 같은 것을 보고 듣더라도 그 감동은 배가 되잖아요. 예민한 아이들은 그렇게 세상을 바라봅니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 맑은 새소리, 반짝이는 밤하늘, 붉에 물든 노을을 보며 자신의 인생을 더욱 다채로운 색깔로 칠하는거예요. 그로인해 얻게 되는 예술적인 영감과 경험은 또 얼마나 값진가요? 그렇게 예민한 아이는 작은것에도 크게 기뻐하는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예민한 어른이신 분들, 공감하시죠.)

또, 예민한 아이들의 특장점. 바로 공감능력이 좋다는 건데요. 실제로 머리가 좋아야 공감을 할 수 있거든요.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상대의 기분을 알아채고 그에 맞는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달란트예요. 이런 아이들이 교우관계도 좋고 학교 생활도 잘해요.

다만, 다른 사람의 기분과 생각에 반응하느라 자기 자신을 소홀히 하면 안 되겠지요. 그로인해 일어나는 부정적인 결과들로 인해 자신의 '예민함'을 싫어하게 될 수도 있어서요.

저 또한 예민한 사람이라 이 점을 늘 유념하고, 강점은 더 부각하는 그런 인생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눈치를 보면서 남의 기분만 맞추려는 아이에게는 자기 생각과 감정을 좀 더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모든 사람의 기분을 맞추지 않아도 괜찮다는 점을 알려 줍니다.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전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아이의 옆에 꼭 붙어서 알려주거나 나중에 단둘이 있게 되었을 때 알려주는 것도 좋지만 제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런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는 것' 같아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되 내 생각과 감정을 명확하게 말하는 과정과 결과를 보면서 아이는 스스로 깨달을거예요.

저는 얼마전에 이런 신조를 세웠어요. 첫 번째, 내 감정이 가장 중요하다. 두 번째, 타인에게 모욕감을 주지 말자. 이 둘의 균형이 깨지면 저나 상대방이 힘들어지더라고요. 저도 이렇게 애쓰고 있습니다.

 

아이가 이미 충분히 참은 것은 아닌지, 아이가 특정 상황에서 버틸 힘이 남아 있는지, 상황을 받아들일 준비가 충분히 되었는지를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또한 아이가 받은 자극이 얼마나 큰 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이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예민함을 조절하려 한다면 그건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겠죠. 부모의 욕심일 뿐. 이 상황의 주체는 아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나는 그저 도와주는 역할이라는 생각을 해요.

저희 아이는 낯선 사람과 말하기를 쑥스러워 하는 편인데요. 어제처럼 '안녕'이란 인사에 똑같이 '안녕'이라고 말을 하지 못 했어도, 어제보다 더 오래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칭찬받을만 한 것 같아요. 아이 딴에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거니까요. 어른의 잣대로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 아이는 이미 충분히 참은 것이 아닌지... 더 들여다보는 습관을 가지려고요.

남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까봐 친구의 무리한 요구도 들어주는 아이에게는 거절하는 연습이 꼭 필요합니다. 남에게 상처 주지 않으면서 본인의 의사를 전달할 방법을 부모와 함께 고민해 보세요. 아이 스스로 방법을 생각하지 못한다면 부모가 알려 줄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도록 연습합니다. "나도 도와주고 싶지만, 그건 내가 할 수 없을 것 같아"처럼요. 아이와 역할극을 해 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아이가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과 남에게 나쁜 평가를 받는 것은 별개라는 점도 추가로 알려 주면 좋겠죠. 다른 사람의 시선에 예민한 아이는 사람 앞에서 발표하기를 꺼립니다. 발표를 피할 수 없다면 아이는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이때도 아이에게 준비와 연습이 필요합니다. 준비하는 만큼 덜 불안해할 수 있습니다.


제가 예민한 사람이라 이 마음 너무 잘 알아요. 예민하면 쉽게 불안해지거든요? 그리고 완벽주의 성향도 꽤 높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을 시작하면 과정보다는 결과에 연연하는 경우가 있고, 애초에 성공하지 못할 것 같으면 시작하지도 않는 버릇도 조금 있어요.

저같은 사람에게 필요한 건... 연습이에요. 그냥 하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과 소통을 해야 하는 경우엔 직접 입 밖으로 말을 내뱉어 보는 것도 상당히 도움이 돼요. 저는 아이 친구 엄마들 모임에 처음 나갔을 때 꽤 긴장을 했었는데, 그 다음부터는 해야 할 말을 몇 개 준비해 가니 이전보다 떨리진 않더라고요.

예민한 사람의 불안함을 잠재울 수 있는 건, 단언컨대 타인이 결단코 아니고요. 스스로 조절을 해야 하는데 저같은 경우에는 저를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원하는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 '나를 위로해 주는 사람'으로 지정해두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전보다는 확실히 한결 나아요.

마음 공부랄까요, 예민한 사람들에게는 자기 자신에 대한 공부가 필수적인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가 예민하다면, 부모가 연습 대화 상대가 되어주세요. 연습 하다보면 좀 괜찮을거예요. 공부도 성적이 안 나올까봐 걱정이 되어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면, 아이에게 맞는 단계별로 조금씩 성취감을 느끼며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 불안함을 단단한 자존감으로 제스스로 뒤바꿀 수 있게요.

 

글쓰기가 능숙한 아이에게는 일기를 써 보라고 해도 좋습니다. 아이가 글을 쓰는 동안 어떤 상황에서 왜 힘들어하는지를 스스로 찾아낼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그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혹시라도 다르게 생각했을 수는 없는지를 물어보세요. 아이가 덜 극단적이고 덜 부정적인 생각을 떠올렸다면 좋은 신호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어떤 해결책이 있을지도 미리 함께 고민해 봅니다.


또한 저자는 자신에게 해줄 칭찬이나 격려의 말을 미리 준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조금 천천히 하는 아이야. 그러니까 내 속도대로 차분히 하면 돼.' 같은 말이요. 일기 쓰기와 입 밖으로 말을 꺼내보는 등의 방법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이 예민함을 조절하겠다는 뜻입니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경험이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옆에서 그럴 필요 없다고 얘기하는 건 소용 없어요. 예민한 아이가 스스로 단단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지혜로운 방법으로 도와주세요.




 

 

중간쯤 읽다가 어느새 듣는 사람을 어린 제 모습으로 상정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어요. 부모님이 내게 이렇게 해주셨다면 좋았겠다, 이런 말을 해주셨더라면 좋았겠다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했네요.

이 책은요. 조금 불친절해요. 무슨 뜻이냐면, 부모를 위로하진 않아요. 100퍼센트 예민한 아이의 편에 서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읽다가 조금 지치는 감이 없잖아 있었어요. '부모노릇 하기 힘들다' 싶은 생각도 들었었고요. 하지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정확히 전달 받았기 때문에 후회는 없습니다.

저희 아이가 32개월이잖아요. 예민한 아이의 어린 시절에 부모의 힘듦은 불가피한 것 같아요. 예민함을 잘 조절하기도 어려운 나이일 뿐더러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기보단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일이 더 많으니까요. 제가 초보엄마라 아직 도와주는 방법이 어설퍼 그런걸까요?

육아는 산넘어 산이라는데, 나중을 기약하며 지금 포기하면 안 되겠죠. (나중엔 더 힘들수도 있으니...) 노력해볼게요. 그럼, 오늘 리뷰는 여기서 마칠게요. 추워졌어요. 감기 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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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손상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애착손상이란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나 중요한 욕구가 있을 때 돌봄을 기대한 대상으로부터 외면 당하거나 거부당한 상처를 이르는 말인데요. 이 애착손상은 어릴 때 잠시 받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인생이 끝날 때까지 함께 해요. 같은 말인 '정서적 흙수저'로 자라나지 않도록 의식하며 육아를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이 책은 애착육아의 필요성, 애착손상의 문제점, 애착육아를 할 수 있도록 개인과 기업과 국가가 할 일, 발달 트라우마, 감정코칭 등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모들의 모습이 사례로 나오니 공감하며 읽을 수 있어요.

그리고 글의 말미에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불안과 희망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정말로 그랬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슬픈 마음이 들었는데요. 내 삶을 괴롭히는 원인과 정면으로 눈을 마주쳐서요. 부모와의 사이로 괴롭고 힘이 든다면 이 책을 한 번 펼쳐보세요. 이유 없이 나를 슬프게 만들었던 그 무언가가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되실거예요.


 


 

 

내가 무심코 아이에게 하는 말, 습관처럼 했던 행동과 눈빛이 아이의 자아상에 영향을 준다니 머리가 띵해요.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어떻게 대하고, 느끼고, 생각하는지를 바탕으로 자신의 자아상을 구축합니다.


그렇다고 매번 의식적으로 모습을 꾸며낼 순 없겠죠. 언젠가는 내가 꾸며낸다는 사실도 알아챌테니까. 그래서 앞으로는 평소에 좋은 생각을 해서 긍정적인 말과 행동이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려고요.

저는 부모의 끝없는 기대와 못마땅한 시선 속에서 살았어요. 지금은 죽을 때까지 그 욕망을 채울 수 없겠다 싶어 자포자기한 상태이고요. 저는 서른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이 내게 바라는 게 아주 많을 거라고 생각해 피로해져서 거리를 두기도 하고 그 사람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제 재단으로 결국 관계를 망가뜨려 버리기도 해요. 어린시절에 받은 트라우마가 어른인 저를 조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무의식 이거 아주 무서운 놈이죠?

 


 

아기가 태어나서 첫 3년 동안 학대나 방치 등으로 애착 형성이 잘되지 않으면 뇌의 회로, 구조, 기능, 신경계 발달에 지장이 생깁니다. 그 결과 정서적, 인지적, 관계적 발달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발달 트라우마는 대개 아이의 무의식에서 벌어집니다. 만 3세까지는 아직 합리적으로 생각하거나 이해하거나 분별할 능력이 없고, 언어로 정확하게 의사 표현을 할 수도 없습니다. 뭐가 옳고 그르지를 분별할 능력이 있어야 '내가 받을 걸 못 받았구나' 하고 알겠지만, 인지 발달이 미성숙하기 때문에 방치되거나 학대를 받아도 아이는 모르는 상태로, 즉, 무의식중에 트라우마를 겪습니다. 유아기에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한 경험은 이처럼 무의식에 각인되어 어른이 된 뒤에도 '알고는 있지만 생각나지 않는, 뭐라고 꼬집어서 말로 표현하거나 의식적 기억을 하지 못하는' 상태로 남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 부모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 아이는 그 반응에 따라 긍정, 또는 부정 회로가 뻥 뚫려버린다고 합니다. (오은영 박사님은 고속도로가 뚫린다고 표현하셨어요.) 성인이 되어 비슷한 상황을 맞닥뜨리면, 어릴 때의 그 경험, 말로 표현하거나 정확하게 기억을 할 순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내 안의 무의식이 그 길을 걷는다네요. 같은 상황인데도 누구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누구는 분노를 감당할 줄 몰라 요만한 일도 크게 만들어 일을 그르쳐요. 누구도 사랑하는 아이에게 가시밭길을 걷게하고 싶지는 않을텐데. 부모라면 애착을 꼭 배워야겠죠?


 

감정코칭

 

 

 

가트맨 박사는 "지난 100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대중 교육이 보급되면서 인지 위주의 지능 교육에 중점을 두었지만, 방대한 연구 결과 인지지능(IQ)은 인간의 지능 중 5퍼센트에 불과한 능력을 추정할 뿐이고, 장기적인 성공과 행복에는 정서지능(EQ)이 더 중요하다" 고 주장했습니다. 이어서 인지기능을 높이기 위해 어려서부터 읽기, 쓰기, 셈하기 등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처럼 정서지능을 키우기 위해서 가장 효과적이고 체계적이며 과학적인 방법이 감정코칭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감정코칭은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방법은 구체적으로 경청, 위로, 이해, 공감, 배려, 존중, 소통, 감사, 효도 등이며 이 또한 어릴 때부터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생존 기술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아이에게 한글과 영어를 가르치는 건 오히려 쉬울 수도 있어요. 공감과 이해, 배려... 이런 건 어떻게 가르칠까요? 저같은 경우는 책을 자주 활용합니다. 다양한 감정과 상황이 나오거든요. 저는 아이가 3년동안 보고 느꼈던 상황들 중 비슷한 시간이 있었다면 회상을 하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제가 어른으로 살면서 사회에서 지키고 있는 약속과 규칙, 더 나은 선택지들을 넌지시 알려주곤 하죠.

보다 좋은 방법은 부모가 본보기가 되어주는 거겠지만요.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라니까요. 계산을 하고 나올 때 인사를 하는 모습, 몸도 마음도 한참이나 어린 자신을 어른인 부모가 존중하는 모습, 소통하는 방법도 대화를 통해 자연스레 흡수할 수 있을거예요.

물론 저도 서른이 넘었는데 완벽하지 않아요. 그래서 끊임없이 공부해요.



한국의 아동과 청소년들의 행복도는 OECD국가 중 최하위 (feat.영어유치원)




예상치 못한 말을 책에서 들었는데요. 우리 어릴 때 '우량아 선발대회' 라는 게 있었대요. 아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네요? 포동포동한 아기를 보면 '잘 키웠다'느니 '장군감'이라느니... 우량아 아이를 둔 엄마는 엄마들 사이에서 부러움의 대상이었겠죠.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사실이 뭐냐면, 그 엄마들의 어린 시절로 한 번 돌아가볼게요. 그 시절 엄마들의 어린 시절은 먹을 게 없어 몹시 배고팠대요. 전쟁 시기를 겪었거든요. 굶주림에 시달리던 아이들이 커서 엄마가 되어 자신의 아이에게는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좋은 것을 주려고 한 거예요. 잘 살펴보면 그건 날 서럽게 만들었던 것, 비참하게 만들었던 것이었지요.

오늘 날 엄마들에게는 영어유치원이 대세죠. 유치원과 영유를 제대로 비교해보지도 않고 일단 넣고 보는 엄마들도 상당합니다. 우리 어릴 때는 영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자랐잖아요. 그래서 내 아이는 그런 스트레스, 설움 받고 자라지 말라고 우리 딴에 가장 좋은 걸 준답시고 그러는 건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 하나 더 가르쳐 드릴게요. 예전의 그 우량아 선발대회를 개최한 곳이 어디인지 아시나요? 분유회사 였다고 합니다. 우리 분유를 먹으면 아이가 포동해지고 건강해진다고 홍보한거예요. 엄마들의 마음을 이용한거라고요. 지금은 소아비만이라는 병명이 붙지만 당시에는 그런 단어가 끼어들 틈조차 없었나봐요.

저는 지금의 영유가 그 때의 분유회사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엄마들의 마음을 상업적으로 이용한 유아 영어 학원.

아이들이 행복하지가 않대요. 저도 학창시절 행복하지 않았어요. 어른들이 자신들의 로망을 아이들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봐요. 저부터, 유행에 치우치기보단 장단점을 비교하고, 객관적으로 생각하려고요. 그리 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수동공격을...

 

 

"난 괜찮아" 하면서 뚱하거나 시무룩한 채로 식사 시간 내내 아무 말을 안 하는 것은 전형적인 수동 공격의 모습입니다. 감정 표현을 극도로 자제하면서 약간의 암시만으로 가족을 공포로 몰아넣는 것도 수동 공격의 모습입니다. 수동 공격도 결국 공격입니다. 단지 남이 탓하거나 법적인 처벌을 받지 못할 정도로 객관적인 수위를 낮출 뿐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조용히 자녀의 목을 조르는 것 같은 압박감과 공포를 줄 수 있기에 독이 됩니다.


육아를 하다보면 화가 날 때가 당연히 있어요. 많아요. 그 때마다 화를 내면 안 되니까 꾹꾹 참는데요. 그 침묵조차 오래 유지 되면 수동 공격이란 이름이 붙으니 참... 어른스럽게 감정코칭 하고 싶고, 융통성 있게 유도 하고 싶지만 어디 그게 마음대로 되나요.

어른들 사이에서도 입을 꾹 다물고 '말 걸지마, 나 화났어!' 기운을 내뿜는 사람을 보면 흠칫 하게 돼요. 아이가 나중에 그 모습을 따라하지 않도록 그러지 않으려고요. 대신 그 자리에 지금은, 엄마가 왜 화가 났는지 설명을 해주거나 그마저도 안 될 것 같은 상황에선 가능하면 제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있어요. 잠시 시간을 가져야 해서요. 화가 나고, 속상해서 울고 싶은 상황... 부모도 사람이니까 그런 때가 분명히 오는데,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 지 미리 생각을 해놓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찐어른




하와이에서 1955년에 700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40년간 진행한 추적 연구가 있다고 해요. 회복탄력성 연구에 한 획을 그은 유명한 연구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외도에 빠지거나 알코올, 약물 중독 등 제대로 된 돌봄을 하지 못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 중 어떤 아이들은 완전히 무너지고, 어떤 아이들은 잘 성장했다고 하는데요. 과연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차이나게 만든걸까요?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는지'의 여부였습니다. 그 사람은 꼭 부모가 아니라 조부모, 친척, 이웃이기도 했어요. 단 한 명이라도 나를 조건없이 사랑해준다면, 아이들은 상처를 극복하고 살아나갈 수 있었어요.

그런데 만일 부모가 없는, 조부모가 없는 아이들은요. 이렇다 할 친척이 없는 환경이라면요? 이웃이, 공동체가 그들을 도와주면 된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저는 가정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회복탄력성을 키워주는 진짜 어른이 되고 싶어요. 그런 부모를 만나 불안정한 삶을 사는 건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이 아이들은 나중에 사회에 나와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요. 훗날의 사회, 나라를 위해서라도 어른들은 모두 모든 아이들을 보살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게 아닐까요.


 

감정코칭의 5단계

 

 

 

감정코칭의 핵심은 매우 간단합니다. '감정은 수용하되 행동은 수정한다.' 즉, 지도를 하기 전에 감정과 인격에 대한 지지를 해주는 것입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지도하는 선구자들과 글로벌 첨단 기업 창업자들을 보면 거의 모두 집단지능을 발휘한 협업자들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사회정서적 역량을 발휘하는 정서적 금수저로 키우려면 부모인 저는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자, 바로 감정코칭의 5단계입니다.

 

1단계 : 아이의 감정을 포착한다.
2단계 : 감정코칭을 할 좋은 기회로 여긴다.
3단계 : 아이 감정을 들어주고 공감한다.
4단계 : 감정에 이름을 붙여서 명료화한다.
5단계 : 바람직한 행동으로 이끌어준다.


아이기 때문에 미숙한 부분을 어른이 이해하고 존중한 후 가르쳐주는 겁니다. 마음을 존중 받아 마음 그릇이 넓고, 내가 널 사랑했듯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나와 너를 배려하며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아이로 자랐으면 해요. 발달 과정 중에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지 새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유명한 책인데, 유명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미처 담지 못한 내용이 훨씬 더 많으니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육아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지침서가, 부모와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는 위로가 되어줄거예요.

저는 이제 위로를 넘어 후련한 마음까지 듭니다. 나를 괴롭히던 원인을 알아내서요. 앞으로 기억도 안 나는 그 시절을 다시 걸으며 삼십년 넘게 울고 있는 어린 저를 안아줄거예요. 눈 앞의 아이에게는 그런 상처를 주지 않으려 노력할거고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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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내향적입니다. 그래서 매우 공감하며 읽었어요. 내향적인 사람들은 에너지를 어디에서 얻을까요? 외부자극, 친구와의 만남, 수다? 아뇨, 오롯이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얻어요. 그 누구에게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서 에너지를 얻습니다. 그래서 내향적인 사람들은 혼자 있을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하지만 육아를 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은 극히 드물어지죠. 정신적으로 에너지를 많이 쓰는데, 혼자 재충전할 시간을 갖지 못해 매우 스트레스를 받아합니다.

만일 제가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제 성격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고 살아갔을거예요. 아이는 제가 꽁꽁 감춰둔, 십년 이십년 전의 제 모습을 자꾸만 들춰내 극복하라고 등을 떠미는데요.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키운다! 는 말을 뼛속 깊이 실감하는 요즘이에요.

 

많은 내향인이 그렇게 옷깃을 여미지 않던가. 내게 잘 맞는 사람이란 걸 깨닫는 어떤 계기가 없으면 섣불리 다가가지 않는다. 만인의 연인이 되려는 공산 없이, 딱 한 줌의 사람에게만 호기심과 애정을 쏟는다. 각자의 이유가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맞지 않는 이에게까지 에너지를 짜내고 싶지는 않아서였다. 나는 한 사람이 올 때면 그 사람의 과거와 미래, 품고 있는 모든 것이 함께 온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마치 해일처럼 느껴져 겁이 났다. 그 감정의 파동만으로도 장거리 달리기를 한 것처럼 기진맥진해져, 늘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팠다.


어쩜 이렇게도 내 맘 같을까. 공감하는 분들 많으시죠? 저도 누군가를 만날 때 그가 마치 해일처럼 느껴져 덜컥 겁이 날 때가 있어요. 사실 이게 저의 요즘 최대 난제인데요. 아이가 기관 생활을 시작하고 아이 친구 엄마들을 거의 매일 같이 만나고 있거든요. 따로 커피를 마시거나 밥을 함께 먹기도 하고... 싫지 않아요. 다행히 좋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런데 걱정이 되는 건...

나의 의지로, 그들의 의지로 선택하여 이루어진 만남이 아니기 때문에 맞춰야 한다는 거예요. 갈등이 없어야만 하는 관계. 앞으로 많은 친구 엄마들을 만날텐데, 그 때마다 이런 시간을 거쳐야 하는걸까 싶어 답답해요.

이런 제 고민을 들으면 선배맘들은 친구 엄마 신경쓰지 말라고들 하시더라고요. 나중에 돌아보면 다 부질없다고. 그 시간에 내새끼 한 번 더 신경써주는 게 옳은 거라고들. 저는 초보엄마라 어려워요. 여튼... 아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시작된 만남이긴 하지만 조심해야 하고, 경직되어 있는, 때로는 어떤 가면을 써야만 하는 지금 저는 에너지를 많이 빼앗기고 있어요. 원체 인간관계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 저와 같은 사람들이 아마 이 피로감을 공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모르는 이들과의 생활이 내향인에게 편할리 없다. 랜덤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환경도, 누군가에게 관찰되는 것도 그리 달갑지는 않다. 관계 개척과 친밀 유지에는 막대한 에너지가 드는 법이다. 조리원에서 모르는 이들에게 쓴 에너지를 막 태어난 아이에게 나눠줬으면 더 좋았을걸. 남의 시선보다 더 중요한 것을 의식했어야 했다. 나같은 누군가가 있다면 좋은 만남을 기대하되 연연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정말, 괜찮다. '엄마 친구'들은 계속 생기고, 참여할 모임 역시 계속 늘어난다.


선배맘의 '정말, 괜찮다' 라는 말이 얼마나 든든한지요? 물론 '엄마 친구'들과의 관계가 모두 불편한 것만은 아니지만요. 살다보면 친구처럼, 친언니처럼 맘 맞는 누군가를 만날지도 몰라요. 하지만 조리원 동기를 만들겠다고, 친구를 만들어주겠다고, 꼭 해야 하는 일처럼 관계를 맺으려는 시도는 확실히 피곤해요. 그래서 저도 너무 얽매이지 않으려고요. 남의 시선보다 더 중요한 걸 의식했어야 했다고 선배맘이 그러잖아요.

 

엄마가 되면 마법처럼 씩씩해질 줄 알았다. 여느 사람들처럼 마땅히 손을 내밀어도 되는 도움이라면 당당히 요청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가 되는 수고와 맞바꿨는데, 이 정도 능력쯤은 생겼겠지. 그러나 아기를 안고 돌아온 나는 여전했다. 오히려 아기가 생기니 절대 약자가 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작은 부탁 하나 하기가 전보다 훨씬 더 어렵게 느껴졌다.


저도 엄마가 되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단단해지는 건 줄 알았어요. 그런데 웬걸. 더 물러졌어요. 물론 아이에 관한 일이라면 예민함이 하늘을 찔러 없던 용기도 쥐어짜 결국은 극복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체로 평온한 날의 아기를 안은 저는 강하지 않아요. 내가 강하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노력하고자 하는 마음이 오히려 더 주눅을 들게 하는 것도 같습니다. 엄마는 강하다, 란 말의 엄마는 어떤 엄마들일까요? 아, 눈치를 채지는 못하고 있지만 저도 그런 엄마가 되어가고 있는걸까요.

 

혼자 있고 싶다고 하면 주변에선 큰일 난 것처럼 나를 밖으로 끌어내며 그게 마치 우울증의 전조인 양 경계했다. 사실은 그 반대였는데. 나는 소란하고 바빠서, 나는 답답하고 우울했다. 내 안을 깊숙이 들여다보지 못했고, 고여서 찰랑대는 감정을 비워내지 못해 괴로웠다. 아기 울음소리가 뾰족한 바늘이 되어 고인 감정을 찌르면 툭툭, 눈물이 되어 떨어졌다.


내향인들은 혼자만의 시간이 꼬옥 꼭 필요하죠. 그런데 전쟁같은 육아에서 혼자만의 시간? 아이가 눈을 감고 있을 때나 가능한 얘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시간을 포기해버리면 우리는 나중에 미칠지도 몰라요 정말. 그 시간에 에너지를 얻는데요. 어떻게든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어야 해요.

몇 달 전 제가 육아가 너무 힘들다고 블로그에 글을 올린 적이 있어요. 그것도 여러 번. 힘들 때마다 참고 참다가 못 참겠어서 올린거예요.

이제야 돌아볼 수 있게 되었네요. 내 육아가 유달리 힘든 이유. 같은 시간 육아를 해도 남편은 쌩쌩하고 별 일 없어 보이는데 나만 이렇게 괴로운 이유.

저는 제 감정을 제 스스로 추스르고 저와 단둘이 조용히 대화 나눌 시간이 필요해요. 그 시간이 없으면 저도 없어요. 빈 껍데기나 마찬가지죠. 이미 동이난 마음 바닥에 대고 아이는 사랑을 갈구하고, 저는 재충전을 하지 못해 절규하며 괴로워했어요. 이 책을 조금 더 일찍 만났더라면... 아기 울음소리가 뾰족한 바늘이 되어 내 감정을 찔렀다는 말에 나 혼자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니라는 안도, 나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라는 위안을 받았었을건데 참 아쉬워요.

지금도 저는 제 감정을 혼자 추스를 시간이 부족하면 힘들어요. 그런데 한편으론 다행이에요. 이젠 내가 왜 힘든지 그 이유를 알게 되어서요.

 

 

육아서 속 엄마들은 모두 에너지 넘치고 빠릿빠릿해 보였다. 그네들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소문난 육아계 인플루언서들 역시 대개 활동가 타입이라는 것을. 그제야 생각이 났다. 모든 아이가 다르듯 모든 엄마도 다르구나. 모두가 타고난 영역과 살아온 세월, 체력과 환경 등이 다르니 당연한 일이다. 아이의 다름은 인정받지만, 엄마의 다름은 쉽게 간과된다. 아이의 기질은 세심하게 분류되지만, 엄마의 기질은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는다. 어느 학자는 내향성과 외향성을 '기질의 남과 북'이라 칭했다. 이 스펙트럼의 어느 지점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성격, 선택과 행동, 삶의 양식이 완전히 달라진다. 하지만 엄마들은 줄곧 '엄마'로만 뭉뚱그려졌다.


우리는 이 사실을 간과하고, 사실 알려고 하지도 않아요. 아이들 케어하기 급급해서. 육아 인플루언서들 많이 계시는데요. 저는 보면서 따라해 볼 엄두도 안 나더라고요. 그 분들은 하루에도 글을 몇 개씩 올리며 사람들과 소통까지 하는 여유를 보이시던데... 저는 정신이며 신체적인 체력, 시간도 없을 것 같고, 볼 때마다 저와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못해요! 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은 아녜요. 저는 제가 잘하는 분야가 따로 있어요.) 괜히 어설프게 따라했다가 바짓가랑이 찢어질 것만 같아요.

책육아도요. 한때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모임을 가졌던 적이 있는데요. 제가 주도해서요.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더라고요. 매일 읽은 책을 찍고 내용을 기록하는 일이, 사람들과 피드백을 주고받는 일이, 제게 육퇴 후 편안한 힐링이 되어주지 못하고 어느덧 피로감을 얹어주기만 했어요. 지금은 그 일을 잠시 멈추고, 아이가 원할 때, 제가 원할 때, 마음이 동할 때 책을 읽어주고 있어요. 그러니까 한 권을 읽어도 진정으로 빠져서 읽어줄 수가 있게 되더군요. 나는 내 스타일이 있건만... 내가 가장 편한 것이 있건만.

물론 좋은 건, 배울만한 건 흉내를 내서라도 시도해 볼 가치가 있죠. 하지만 육아에 지장이 갈 정도로 나를 지치게 하는 일이라면 그만둬요. 그 에너지와 체력 아껴 내 새끼한테 애정표현이나 한 번 더 해줄래요.

 

문제는 그거였다. 아무것도 안 하면 불안하고, 무언가 했다 하면 자신을 밀어붙이다 나가떨어지는 악순환의 반복. 번아웃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소외감과 이질감은 또 다른 스트레스였다. 어디서든 나와 비슷한 사람은 찾기 힘들고, 주변인들은 내가 왜 힘든지 이해하지 못했다.


작가님에게 크게 공감을 느꼈던 이유가 저와 매우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데요. 작가님도 책육아를 하시는 분이세요. 그것도 조용히 열정적으로. 그러다 에너지가 소진되면 나가떨어지고, 번아웃이 오고, 스트레스를 받고... 저 정말 제 얘기 써논 줄 알았잖아요.

뒤처지고 싶지 않아 강박적으로 아기 책을 사모으고 읽어주고 기록하고. 가르치고 데려가고 경험 시켜주고. 그러다 번아웃이 와서 숨쉬는 것 빼곤 아무것도 못 하겠어서 바닥에 대자로 누워 아이에게 입으로 애걸복걸 했던 적이 있어요. 절대 그러면 안 되지만 힘들어 화를 냈던 적도 있고요.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하는 일인데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결말이라니 참 한심하죠. 사실 저는 지금도 많은 것을 내려놓진 못 하고 있어요. 주변 엄마들이 좋은 거라고 하면 기웃거리다 일단 시켜보죠. 그러다 나중에 현타가 올 가능성이 농후한데, 알면서도.

달리기에서 밀리지 않게, 뒤처지지 않게 하루도 쉬지 않고 미친듯 달리는 육아보다 내 마음, 아이 마음이 편한 정도의 적당한 육아가 최고인 듯 해요. 근데 그거 어떻게 하는거예요?

 

조금은 너그럽고 가뿐해져 볼 일이었다. 요컨대 아이가 흙을 만지면 아이 손을 잡아끌다 지치지 말고 흙냄새도 맡아보고 파헤쳐도 보게 두는 것이다. 그 후 '흙'에 관한 책을 찾아 읽어주면 하루가 알뜰했다. 거스르는 것이 없는 만큼 자연스러웠다. 아이도 즐겁고 그 김에 책도 한 권 읽힐 수 있어 내 마음도 편했다. 물렁하고 마음 약한 엄마와 단단하고 완고한 아이가 마침내 짝! 소리 나게 손뼉을 치게 된 것이다. 어쩌면 해볼 만할지도 모르겠다. 내향적인 엄마와 에너지 넘치는 아이의 합은 사실 썩 괜찮은 조합일지도 모른다. 두 뺨에 따스한 활기가 돌았다.


아이가 흙에 관심을 보이면 흙을 많이 만지는 유치원, 놀이 기관을 알아보는 나란 엄마... 정말 엄마 욕심이란 생각이 물씬 들고 부끄럽네요. 흙을 좋아하면 매일 만지면 되고, 관심이 깊어지면 그저 산이며 숲으로 놀러가면 되는 일인데, 그쵸. 욕심이 족제비라 안그래도 힘든 육아를 더 힘든 쪽으로 끌고가는 것 같아요. 반성하게 돼요. 저는 많이 내려놔야 해요.

 

아무리 바빠도 '책 읽어달라'는 부탁은 거절하지 않기로 했다. "아구, 우리 아기 책 가져왔어? 재미있겠다!" 그렇게 엉덩이 두드려주며 최대한 즐거운 태도로 읽어주었다. 설거지 하다가도, 냄비 속을 휘젓다가도 마찬가지였다. 책 읽어주기 가장 좋은 순간은 아이가 원할 때임을 알게 된 후론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랬다.


책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저는 아이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으니까 책을 많이 읽어줘요. 그런데 설거지를 할 때, 바쁠 때는 읽어달라고 해도 "잠시만 기다려줘." 라고 말할 수 밖에 없어요. 그리고 그게 당연한거라고 생각했고... 그런데 이런 분이 계시네요.

저희 아이는 요즘 책에 대한 애정이 시들한데, 다 저 때문인 것 같고 그래요. 앞으로는 적어도 아이가 가져오는 건 언제 어디서든 읽어줘야겠어요. 엄마가 설거지 하다가 책을 읽어주면 책에 대해 얼마나 좋은 기억을 갖겠어요. 엄마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책.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책. 읽다보니 재미있고 유익한 책. 의식적으로 노력해야겠어요.

 

활동적인 아이의 책육아, 중요한 건 스피드다. '보고 싶은 욕구'와 '알고 싶은 욕구'가 바로 해소될 때, 아이는 책을 가장 달게 읽는다.


아이가 책을 원할 때 바로 찾아 읽을 수 있도록 배치를 하셨다고 해요. 즐겨읽는 책은 표지가 보이도록 두고. 저희집은 슬라이딩 3단 책장인데 뒤에 있는 장은 아이가 여간해선 잘 꺼내보질 않더라고요. 한 눈에 보이는게 아니라 그런지.

그리고 거의 제가 꺼내주기 때문에 아이 눈높이에 맞는 취향 저격 맞춤 책장인 것도 아니에요. 조만간 작업에 들어가야겠다 싶네요. 저희 아이도 활발한 편이라 원할 때 빨리 손에 쥐어지지 않으면 금세 다른 것에 한눈 팔거든요. 책에 흥미를 가질 수 있을만한 환경을 적극적으로 조성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는 화난 엄마는 이해해도 무기력한 엄마는 이해하지 못한다.


이 사실을 늦게 깨달아 아이를 힘들게 했어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놀이학교에 보내게 됐고요. 지금 생각하면 30개월도 안 된 아기를 왜 일정 부분 어른 대하듯 했는가 몰라요. 하루가 다르게 크는 애가 제법 어른스러워 보였는지 저를 이해할지도 모르다는 생각이 들었던가봐요. 어리석죠?

무기력한 제 모습을 아이에게 그대로 보이고, 그것도 모자라 저를 이해해달라고 실제로 얘기까지 했던 그 때의 제가 부끄러워요. 이 한 줄을 읽고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예체능, 영어, 사교육... 아이가 자랄수록 신경 쓸 게 많아진다. 트렌드는 수시로 변한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책이었다. 둘러보면 부러울 정도로 야무지고 행동력 좋은 엄마가 많았다. 하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책을 읽어주는 엄마는 의외로 드물었다. 아이 서너살까지 열심히 읽어주던 엄마들도 다섯 살 이후로는 책에 대한 신뢰와 마음이 식는 걸 심심찮게 봤다. 오늘도 밥을 짓는 꾸준함으로 책을 펼친다. 아이에게 매끼 밥상을 차려주듯 마음의 양식인 책도 그렇게 읽어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부모의 꾸준함에 아이는 자란다.


작가님은 나들이를 가거나 기분이 좋은 날 그와 관련된 책을 읽어주어 그 기분과 책이 연결되게 하셨대요. 아이를 안고 손, 발 등을 부드럽게 만져주며 '책=좋은 기분'이 될 수 있게 도왔다고도 하셨고요. 좋았던 감정과 연결된 행동은 무의식에 좋은 것으로 새겨질 것이므로 책에 관해서는 잔소리를 하거나 부정적인 말을 일체 하지 않으셨다고 하네요. 심지어 책 정리를 시킨 적도 없다고. 읽고 난 책을 제자리에 꽂아야만 한다면, 책을 빼 드는 일이 부담으로 작용할 게 걱정이 되서 그러셨다고 합니다.

책에 대한 좋은 기억을 안겨주기 위해 어릴 적부터 책을 밟고 성을 쌓는 등 장난감처럼 활용들을 하죠. 그런데 말마따나 그걸 다섯 살 이후까지 매일 해줄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에요. 저도 한 때는 화르륵 불타올랐다가 요즘은 잠잠한데 타오르지 않아도 좋으니까, 꾸준히 읽어나줬으면 좋겠네요.

 

드라이버를 들고 다니던 시절에는 이것저것 분해하는 탓에 세간살이가 남아나질 않았다. 아이는 금속의 경도를 확인해봐야 한다며 냉장고 표면을 긁었고, 라디오 안테나를 뽑았다. 스탠드는 몇 번이나 다시 샀는지 헤아릴 수도 없다. 장난감, 시계, 볼펜 등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 인내심이 동나기 전에 아이를 자유롭게 두고 잔소리를 줄일 수 있도록 환경을 바꿔야 했다. 살림살이가 망가질 때마다 아이를 탓하기보다 비싼 소품을 줄였고, 전기제품을 분해하는 것이 위험하다며 말리는 대신 코드를 뽑고 깨끗하게 닦아 안전하게 갖고 놀도록 내주었다. 공구 역시 아이 손에 맞는 작은 공구로 대체해주었다. 아이의 세계를 다정하게 바라보고 진지하게 탐험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는.


작가님의 아들 윤하군은 과학 영재로 SBS '영재발굴단' 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온 적이 있어요. 별다른 사교육을 받지도 않았는데 전문가들이 놀랄 정도의 과학 지식을 뽐낸 바 있죠. 그 비결은 저는 어머니의 교육 방식에 있다고 생각해요.

길에서 선풍기를 보고 집에 가져오고 싶으면 가져오게 했대요. 냉장고가 궁금하면 원리부터 역사까지 차근차근 설명해줬고요. 물놀이는 2년 가까이 했다는데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으셨대요. 나중이 되어 그 때를 돌아보며, 아마 그 때 과학을 많이 깨우쳤을거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나요.

위의 하이라이트 글과 더불어 윤하 어머님, 이 책의 작가님이 어떤 스타일인지 아시겠죠. 아이가 하고싶어 하는 일이라면 내 판단을 내세우지 않고 조용히 주변의 위험물만 치워 자유로운 환경을 만들어주는. 아, 나도 이런 엄마 되고싶다!

 

아이와 요리책을 펼치고 재료의 양과 액체의 들이를 재어보며 질문했다. "이 계량컵은 250ml까지 밖에 안 나와 있네. 700ml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스포이드로 숟가락에 물을 한 방울씩 떨어뜨려봐. 그리고 숟가락이 몇 ml인지 엄마한테 말해줘.", "이번에는 그 숟가락으로 물을 몇 번 떠야 한 컵을 다 채울 수 있는지 재어보자." 이런 질문을 하며 채소를 다듬고 밥을 안쳤다. 집 안 물건 중 누가 가져온 물건이 더 무거운지 따져보는 '무게 재기 시합'도 재미있었다. 이때 나는 크기만 컸지 속이 텅 빈 상자나 풍선을 가져갔다. 그리곤 "하하하! 내 물건이 더 크니 당연히 더 무겁겠지" 악당처럼 웃으며 저울에 올린다. 그러나 아이가 가져온 작은 쇠구슬이 더 무겁다. 이 시합을 통해 아이는 저울 읽는 법은 물론 무게를 결정짓는 건 크기(부피)가 아닌 밀도와 질량임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작가님은 밥도 하고 반찬도 만들어야 하는 주방에서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셨대요. 엄마가 밥할 때 아이는 온갖 재료들을 사부작 댔겠죠. 채소를 다듬거나 칼질, 밥 안치기 등을 가르쳐주어 지금은 아이가 해주는 밥을 드시고 계시다고 합니다.

주방에선 여러가지 실험을 할 수가 있어요. 일상 생활, 일상 소품으로 엄마와 재미있게 여러 실험을 하면 아이가 과학을 얼마나 친근하게 느낄까요.

 

울고 싶은 순간도 영화 보듯 제삼자의 눈으로 관찰하다 보면 어느새 지나간다.


힘들 때 한 발짝 떨어져 미래의 제가 됐다고 생각하고 현재의 저를 보는거예요. '힘들지? 다 지나가. 다만 후회할 짓은 하지마.' 텔레파시를 막 쏘면서요.

 

우리는 서로를 정보 ATM이나 경쟁 상대 취급하지 않는다. 주파수가 맞는 사람들이기에 자주 보지 않아도 든든하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 듣지 않아도 느낀다. 소란하지 않을 때, 예컨대 함께 미술관 관람을 하거나 익숙한 골목길을 거닐 때 넘치도록 즐겁다. 육아가 유난히 버겁고 일상이 쳐진다면, 이 친구들을 만나야 할 때다. 잠깐을 만나도 아랫목에서 푹 쉬었다 온 듯 몸과 마음이 데워지는 다정한 사람들.


이제 거의 이야기가 끝나가요. '엄마 친구'들에 관한 얘기에요. 이런 사람들도 있네요. 저도 이런 '엄마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상념에 빠져들면 아이가 저를 현실로 소환합니다. 엄마 오늘을 살아요. 하루하루 자라나는 나를 보세요. 오늘은 오늘뿐이에요.


아이와 함께 있을 때 자꾸만 딴 생각에 빠지는 제게 하는 말 같았어요.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느라 눈 앞의 소중한 사람, 아이에게 소홀해지는 날이 더러 있어요. 다시금 다짐하게 됩니다. 제가 아이에게 둘도 없는 친구로 환영받는 날이 앞으로 얼마나 되겠어요. 갈수록 제 인생에 집중할텐데.

아이가 넘치도록 사랑해줄 때 마음껏 누리고, 저도 흘러넘치게 사랑해줘야겠단 생각이 들어요.

 




내향적이라고 했지만 상당히 적극적인 작가님이셨죠? 에너지를 안에서 얻을 뿐, 엄마들은 누구나 다 아기에게 가장 좋은 걸 주고 싶어 합니다. 비슷한 성향의 분들이 읽으면 좋을 책 같아요.

그 잔잔하고 개구쟁이 같은 에너지를 육아의 어디에,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친절하게 가르쳐주니까 '이 육아서는 나를 어떻게 혼낼까?' 겁먹지 말고 보세요. 책 전체가 폭신한 빈백 같은 느낌이거든요, 정말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예비 부모들에게도 추천합니다. 과거의 제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었어서 그래요. 그럼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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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이 책은 너무 오랜 기간 나눠 읽는 바람에 잊어버린 내용이 상당히 많기는 합니다. 이 글은 제가 책을 읽다가 하이라이트 해 둔 내용을 다시 읽고 기억을 되살려가며 제 생각을 적는 것으로 하려고 해요. 목차 소개 및 진지한 서평글이 아니니 참고 부탁드려요.

이 글을 막 읽기 시작했을 때 받았던 느낌, 그건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었습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정신과 의사가 집필한 책이라고 들었어요. 그런데 전혀 무뚝뚝하거나 무겁지 않고 (제 편견입니다) 친근함으로 중무장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었어요. 하은맘의 불량육아, 라는 책이 생각날 정도로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육아에서 많은 것을 내려놓으라고 얘길 합니다. '놀아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친구 만들어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아이에게 말 많이 안 걸어도 괜찮아요' 등등.. 제가 평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육아지침과는 전혀 다른 결이었어서 신선하고 또 놀라웠어요.

 

 


저자는 본인의 육아경험과 때로는 과학적 근거를 들어 부모를 안심시키려 부단히 애를 쓰는데요. 개인적으로 저는 경험만 주욱 늘어놓았다면 읽다가 관뒀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때때로 납득이 갈 만한 근거를 들어주기도 하고 뛰어난 글솜씨로 설득에 성공을 하기도 해서 덕분에 완독을 했던 것 같아요. 중간 중간 독자에게 말을 거는 듯, 장난을 치는 듯, 가볍고 재미있는 구절도 눈에 자주 띄었었네요.



하이라이트 해 둔 부분을 가져와볼게요.

🍃


이건 '나의 성장, 느리게 가도 괜찮아요.' 라는 챕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아이들 어릴 때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도로 뱃속에 집어넣을 수 없는 한, 엄마의 에너지는 아이로 향할 수 밖에요. 그만큼 '나의 성장 속도'는 정체하는 것처럼 보일 테고요. 하지만 진짜 멈춰있는 건 아니죠. 위로 올라가던 화살표가 옆으로 방향을 틀었을 뿐. 그것도 어마어마한 속도로요. 아이로 인해 인생의 폭이 얼마나 넓어졌습니까? 혼자였을 때보다 10배는 넓어지지 않았나요?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있잖아요.


이 생각은 한 번도 못 해봤던 거라 잠깐 멍- 해졌었던 기억이 납니다. 언제 위로 올라갈 수 있을까, 위만 바라보고 있었는데요.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있잖아요' 그러게 말입니다. 아기가 나오고나서 내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저는 솔직히 사람 안 변한다, 라는 말에 이제는 동의 안 해요. 아기 낳고 키우면 변할 수도 있다고 믿어요.

저는 사랑이 뭔지를 잘 몰랐던 사람인데 지금은 매일 매일 눈으로 보이는 사랑을 경험하고 살아요. 육아를 하기 전에는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것이지요. 아기를 예뻐할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이 정도로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니까요. 그리고 풀밭의 풀과 꽃을 이렇게 유심히 바라보고 예뻐하게 될 줄도 몰랐어요. 이제는 다른 아기들을 무심히 바라보지 않고요. 식당에서 시끄러운 아기와 밥을 먹는 엄마를 흘겨보지도 않습니다. (밥 먹는 아기에게 스마트폰을 보여주는 엄마를 질책하지도 않고요)

저자님이 인생이 옆으로 넓어졌다고 하셨는데 말씀 잘하셨습니다. 아기를 키우면서 저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있어요. 비단 아기와 아기 엄마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인간,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볼 수 있게 됐어요. 시간이 없어 위로 올라가지 못해 나는 정체되어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아기는 존재 자체 그 하나만으로 제게 커다란 배움의 시간을 선물하고 있었네요.

🍃


이건 어느 부분이었는지 잊어버렸습니다. 짧고 굵어요.

 

아이를 사랑하는 것과 아이 키우기를 즐기는 것은 별개의 문제예요.

 

이 한 문장은 제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육아를 잘 못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나날 속에서 괴로워 할 때, 불현듯 나의 아기에 대한 사랑이 의심이 될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이 문장이 그거 아니라고, 제 먹구름 가득한 생각에 대고 손을 휘휘 저어주는 것 같아서 되게 고마웠어요.

보고 있는데 보고 싶은, 때로는 보기만 했는데 눈가가 시큰거리는 놀랍고도 대단한 이 존재에 대한 감정을 저는 이제 헷갈리지 않을거예요. 육아가 힘든 것 뿐, 나는 아이를 사랑한다!

🍃

이 부분도 상당히 인상 깊었어요.

 

소심하다고 겁쟁이 아닙니다. "무서우면 안 해도 돼. 세상에 억지로 꼭 해야 되는 일이란 없어. 두려울 때 두렵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진짜 용기야. 너 겁쟁이 아니야." 그렇게 말해주세요.


이건 아기 뿐 아니라 다 큰 어른인 제게도 해주시는 말씀 같았어요. 모르면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두려울 때 두렵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무서우면 무섭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회사에 입사할 때만큼이나 퇴사할 때에도 큰 용기가 필요하죠. 용기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그리고 육아에 적용을 해보면... 아이가 두려워 할 때 이런 말이 선뜻 나올지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부모 마음에 '이겨냈으면' 하고, 이 경험을 발판 삼아 '성장했으면' 할테니까요. 아이와 함께 있을 땐 항상 그 어떤 것보다 아이 마음을 먼저 읽어주는게 중요하단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는 구절이었습니다. 너무 멋진 말인 것 같아요. "두려울 때 두렵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진짜 용기야. 너 겁쟁이 아니야."

🍃

이건 아이가 아직 기저귀를 떼지 않았을 때, 주위로부터 오는 걱정 공격에 대한 쿨한 방어 모습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아이가 기저귀 때문에 많이 스트레스 받아요. 주변에서 걱정하면 자신감 더 떨어지니까, 앞으로 그런 얘기 우리 집에서 하지 말아주세요. 애 들으면 큰일나요."


정확히는 '아이의 장래를 위한 걱정 공격'이 들어오면 이렇게 대답하래요. 너무 쿨하고 멋지지 않나요?





넘쳐나는 육아 정보에 지친 부모님들의 짐을 덜 수 있게 도와주는 육아서, 제로육아. 쓰고보니 제로육아만의 매력이 담긴 구절을 제가 가져오지는 못한 것 같네요. 아쉽지만, 남들은 다 저기 앞서 부지런히 걷고 뛰고 있는데 나만 뒤처진 것 같은 생각이 들 때 직접 한 번 봐보세요. 동지를 만난 것 같아서 마음이 좀 좋아지실겁니다.

저는 처음엔 '너무 다 괜찮다는 거 아니야?' 싶어 대충 쓴 책이 아닐까 의심까지 했었는데 아이를 방치하란 의도였다면 보다가 책을 덮었겠죠? 부모가 숨 쉴 구멍을 스스로 좀 만들란 얘깁니다. 육아가 힘들어 눈물이 나는 날, 저는 아기 낮잠을 재우자마자 멘토 선생님을 찾듯 제로육아를 찾았었어요.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라는 말이 듣고 싶었거든요.

저에게 그랬듯 누군가에게도 위로가 되기를 바라요. 작가님 책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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