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은행나무는 참 예쁩니다.
 
노랗게 물든 나무 아래를 걷다 보면 괜히 사진도 한장 찍고 싶어지죠.
 
바닥에 떨어진 은행을 밟기 전까지만요...
 
한 번 잘못 밟으면 가을 감성은 거기서 끝나요. 그 때부터 관심사는 단풍이 아니라 내 신발이 되죠. 
 
대체 저 조그만 은행에서는 왜 저렇게 강렬한 냄새가 나는걸까요?
 
 

 
 

1. 은행 냄새의 정체

 

 
은행 특유의 냄새와 관련된 대표적인 물질은 부티르산과 헥산산입니다.
 
둘 다 휘발성 지방산으로, 은행 씨앗을 감싸고 있는 말랑한 바깥층에서 발견 돼요.
 
특히 부티르산은 산패한 버터나 구토물 특유의 냄새와도 관련된 물질인데요. 
 
학술 자료에서도 부티르산과 헥산산은 은행 특유의 악취와 관련된 주요 성분으로 설명하고 있어요.
 
(출처: Journal of Ecology, International Biological Flora: Ginkgo biloba (2022))
 
은행 몇 알이 길 전체에서 존재감을 뽐내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거죠.
 
크기는 미니인데 냄새는 전혀 미니가 아니야...
 
 

2. 사실 열매도 아니에요

 

 
우리가 은행나무 열매라고 부르는 은행은 식물학적으로 진짜 열매가 아니에요.
 
은행나무는 겉씨식물이라 사과나 귤처럼 씨방이 자라 만들어지는 열매가 없습니다. 
 
우리가 과육처럼 생각했던 노랗고 말랑한 부분도 사실은 씨앗을 감싸고 있는 외종피예요.
 
(출처: Oregon State University, Ginkgo biloba)
 
그리고 바로 이 외종피에 부티르산과 헥산산 같은 냄새 성분이 들어 있는 거고요. 
 
평생 은행 열매라고 불러왔는데 사실 씨앗이었다니...  
 
 

3. 떨어진 뒤 더 고약해져요

 

 
그렇다면 나무에 매달려 있을 때보다 바닥에 떨어진 은행 주변에서 냄새가 유독 심한 이유는 뭘까요?
 
핵심은 <외종피의 부패> 입니다.
 
은행이 땅에 떨어져 며칠이 지나면 말랑한 외종피가 썩기 시작하고, 그 안에 들어 있는 부티르산과 헥산산 때문에 특유의 악취가 두드러져요. 
 
하버드 아널드수목원에서도 은행의 고약한 냄새는 씨앗이 땅에 떨어진 뒤 외종피가 부패하기 시작하면서 나타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바닥에 물러진 은행이 잔뜩 떨어져 있다면 코가 먼저 알아차리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닌거죠. 
 
 

4. 냄새나는 건 암나무예요

 

 
그런데 모든 은행나무 아래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닙니다.
 
은행나무는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는 암수딴그루 식물인데요.  
 
일반적으로 암나무가 씨앗을 만들고 수나무는 꽃가루를 만들어요. 
 
그래서 가을에 볼 수 있는 바닥에 떨어진 냄새나는 은행들은 암나무에서 나온 거고요. 
 
실제로 조경에서는 이 냄새 문제 때문에 씨앗을 만들지 않는 수나무를 선호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은행나무가 있는데도 바닥이 유난히 평화롭다면, 나무가 깔끔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떨어뜨릴 은행이 없는 쪽이었단 사실.
 
흥미롭지 않나요.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별거 없었습니다.
 
며칠 전 길을 걷는데 어디선가 강렬한 냄새가 확 올라오더라고요. 
 
순간 표정부터 구겼다가 문득 궁금해졌어요.
 
대체 은행은 왜 이렇게까지 냄새가 나는걸까... 하고요. 😑
 
평소 같았으면 그냥 코 막고 지나갔을텐데, 이번에는 괜히 궁금증이 생겨 하나둘 찾아보다 여기까지 왔습니다.
 
결국 사람을 공부하게 하는 건 꼭 거창한 계기가 필요한 건 아닌가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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