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완전한 행복>을 펴낸 소설가 정유정님이 극찬을 한 책!


"작가로서 '내 것을 빼앗겼다'는 기분이 드는 이야기가 있다. 아직 안 쓴 게 아니라 생각조차 못 했으면서 빼앗긴 듯 억울한 이야기. 이 소설이 그렇다."




이런 감정을 저도 느껴본 적이 있어서 공감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저는 작가님과는 다르게 책에서보다 이 책을 쓴 작가에게 더 큰 감동을 받았어요. 바로 이전에 '사라진 여자들'이라는 책의 리뷰를 쓴 적이 있거든요?

2023.07.11 - 《메리 쿠비카 - 사라진 여자들》 서스펜스와 반전이 대박인 책. 범인은 과연?

《메리 쿠비카 - 사라진 여자들》 서스펜스와 반전이 대박인 책. 범인은 과연?

저자는 , , , 라는 책을 써냈어요. 그녀의 책들은 전 세계 30여 개국에서 번역 출간 되었습니다. 특히 이 책, '사라진 여자들'은 출간 전부터 TV 드라마 시리즈 제작이 확정되어 화제를 불러일으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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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는 말은 차치하고 이런 생각은 대체 어떻게 하는거야? 싶었거든요. 두 번째 작품을 읽고난 지금은 그저 박수를 쳐주고 싶어요. 재능 자체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는 뜻이예요.

하지만 굳이 비교를 하자면요. <사라진 여자들>이 더 재밌긴 해요. <디아더미세스>는 그에비해 조금 난해한 편인 것 같고... 심리 스릴러물이라는 장르로 비교를 하면 <디아더미세스>가 우세했다고 봐요. 후반부의 속도감은 작정하고 썼다는 확신이 들 정도로 몰입감이 상당했거든요.



 
 


넷플릭스에서 영화화 한다고 알려져 있는 '디아더미세스'는 전 세계20개국에서 번역 출판 되었고 출간과 동시에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 합니다.

책만 읽어도 영화를 보는 것처럼 실감나고 스릴이 넘쳤는데 배우들이 연기를 하면 어떤 느낌일지 정말 기대 돼요. 책의 주인공인 세이디와 윌의 캐스팅도 참 궁금하고요.

이 책은 세 여자의 시선이 교차되며 진행됩니다. 세이디, 카밀, 마우스. 그리고 후에 세이디의 남편인 윌의 시점이 나오는데요. 스포는 최대한 자제하면서 각각의 인물과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세이디👩🏻‍⚕️




산부인과 의사인 그녀는 집안의 재정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동시에 엄마의 역할도 나름 잘해내고 있습니다. 어느날, 아들 오토의 학교에서 연락을 받아요. 오토가 매우 위험한 물건을 학교에 가지고 왔다는 연락이었죠.

학교로 달려간 세이디는 오토의 입에서 "엄마가 가지고 가라고 해서", "엄마가 시켜서"와 같은 말을 들어요. 그녀는 당황했지만 어째서인지 오토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진 않네요.

이와중에 병원 업무는 너무 과도했어요. 말그대로 심신이 피로했습니다. 하필이면 그 때 남편의 외도 사실까지 알아버리게 되고 말고요.

남편 윌의 누나인 앨리스가 자택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윌의 가족은 앨리스가 유산으로 남긴 집으로 이사를 가기로 합니다.

그 집엔 앨리스의 딸인 이모젠이 살고 있었어요. 아직 어린 이모젠을 보살피고 함께 살 생각으로 이사를 했는데 이모젠은 윌의 가족, 특히 세이디에게 적대감을 드러냅니다. 세이디가 이모젠의 방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위협을 가할 정도로요.

앨리스가 살던 이 집.

음산하고 황량하고 처연한 냄새가 감도는 이 곳은 유쾌하지 않은 곳입니다. 그리고 곧 이웃인 모건이 죽었다는 소식까지 들려오네요.

그런데 사람들은 왜 자꾸 세이디를 범인으로 모는걸까요? 진범이 밝혀지지 않은 사건이라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진실을 파헤치려 하고 있는 세이디에게. 그녀도 당황했는걸요.


카밀🙍🏻‍♀️




횡단보도에서 우연히 만난 윌이라는 남자에게 한 눈에 빠진 카밀. 어느 날 밤 그와 파티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지만 그 장소엔 카밀 대신 앨리스가 나가게 됩니다. 그로인해 그들은 사랑을 시작하고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되지요.

카밀은 그런 세이디를 미워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결혼을 한 후에도 윌을 향한 마음을 접지 않고 몰래 지켜보고, 유혹하고, 틈만 나면 그의 눈에 띄려 갖은애를 썼어요. 그녀는 과연 그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요?


마우스🙍🏻‍♂️




엄마를 여의고 아빠와 행복하게 살고 있던 마우스에게 갑자기 새엄마가 생겼어요. 새엄마는 아빠가 있을 땐 마우스에게 잘해주고 아빠가 없으면 마우스를 학대했습니다. 변기물을 내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개집에 가둘 정도로요.

마우스는 괴로워해요. 하지만 아빠에게 말하지 않죠. 왜냐하면 아빠는 새엄마를 사랑하는 것 같고, 어쨌든 본인만 참으면 아빠가 생각하는 이 가정의 평화는 지속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니까요.

가정폭력을 당한 마우스는 가여운 아이예요.


윌👨🏻‍💼




세이디의 남편이자 만인의 인정과 부러움을 사는 완벽한 남자. 바쁜 세이디를 대신해 군말 없이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도 돌보고 세이디의 상태까지 살펴봐줘요.

그의 단점이라면 아내인 세이디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는 것. 왠지 모르게 그는 세이디가 무슨 말만 하면 '네가 예민해서 그래', '왜 그렇게까지 생각하는거야?'와 같은 면박을 줍니다.

저는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는데요. 정말로 세이디가 남보다 유별나서 그랬던건지 아니면 그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랬던건지 별 일이 아닌데도 부풀려 고민 하는 세이디가 걱정이 되어 달램의 의도로 그랬던건지는 지켜볼 만한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인상적이었던 하이라이트🫗

 

축축한 흙과 비릿한 바다, 우거진 숲의 냄새가 뒤섞인 공기가 낯설게 느껴졌다. 전혀 집같이 느껴지지 않는 냄새였다. 길가에 내려앉은 적막함이 불편했다. 소름 끼치는 고요함, 사람을 긴장시키는 적막함 속에서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이 안전하다는 말이 떠올랐다.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주택 단지로 이사온 세이디. 특히 이 동네는 더 그래요. 사람이 죽어나가고, 다른 사람들은 자꾸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보고, 사람 사는 정이라곤 찾아보기가 어려운 곳이죠.

언젠가 '지나치게 고요해서 귀가 아플 정도로 시끄럽다' 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적막이 소음보다 시끄럽다는 생각 해보신 적 있나요?

개들이 뛰쳐나갔다. 얼마 전부터 파기 시작한 마당 한구석으로 곧장 달려갔다. 최근 들어 개들이 이상할 정도로 땅 파기 놀이에 집착해서 신경에 거슬렸다. 땅을 파지 못하게 주의를 주려고 손바닥을 맞부딪쳤다.



범인을 추리하는 데 있어 큰 힌트예요. 하지만 무엇을 숨겨놓았는지 누가 숨겨두었는지는 말하지 않을게요.

창문을 통해 윌이 뜨겁게 타오르는 벽난로 앞 소파에 앉아있는 게 보였다. 다리를 꼰 채 깊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신나게 웃으며 뛰어다니던 테이트가 윌의 옆을 지나자 윌이 배를 간질였고, 아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테이트가 윌에게서 도망쳐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고, 더이상 내가 볼 수 없는 곳으로 사라졌다. 소파로 돌아온 윌이 깍지 낀 손으로 머리 뒤를 받치고 소파에 등을 기대어 앉은 모습이 평화로워 보였다.



사람은 누구나 양면의 모습이 있잖아요. 세이디의 눈에 익숙했던 윌이 낯설게 느껴지는 장면을 설명하고 있는거예요. 세이디는 이 때 무슨 생각을 하고 했을까요? 그리고 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물론 내가 직접 해결할 수도 있었지만 나를 위해 대신 해줄 사람이 있는데 내가 굳이 나설 이유가 있을까?



이 부분을 읽고 B.A.패리스가 떠올랐어요. 그녀의 작품들은 가스라이팅이 버무려진 걸로 유명하죠.

에린이라는 여자가 죽었어요. 그녀는 누구의 손에 왜, 어떤 방식으로 죽은걸까요. 참고로 에린은 윌과 세이디 두 사람 모두와 연관 있는 여자였습니다.

아, 최근에 죽은 모건도 마찬가지였고요.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있을까. 사실 상대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는다.



이 책을 이십대에 읽었다면 지금보다 더 깊이 빠졌을테고 생각이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해 몹시 헤맸을 것 같아요. 삼십대인 지금 읽은 게 다행이랄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그 사람이 내가 아는 모습과는 정반대의 본질을 가지고 있고, 언제든지 내 뒷통수를 치고 도망갈 수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어느덧 자기보호가 자연스러워진 나이가 됐습니다.

무서워요. 사람은 내가 모르는 게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아요.



 

이 책은 한 여자가 사람들의 의심과 비난, 가스라이팅 속에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요.

이야기는 후반부에 폭풍처럼 휘몰아칩니다.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궁금한 이유가 거기 있어요. 각 인물을 맡은 배우들이 그 긴박감 넘치는 장면 장면들을 어떻게 표현해 낼지가 참 궁금합니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책들도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릴게요.

 

[책] B. A. 패리스 - 비하인드도어 리뷰, 가스라이팅으로 버무려진 자극적인 심리스릴러 소설

제목은 생소할 수 있어도 이 표지는 익숙한 분들 많으실텐데요. 요즘 광고 많이 하잖아요, SNS에서. 저도 광고로 이 책을 처음 알았어요. 반은 속는 셈 치고 읽었는데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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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B. A. 패리스 - 테라피스트 리뷰, 죄책감은 무서운 감정이에요

그녀의 를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다른 작품도 읽어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비하인드도어가 더 재밌었네요. 이 책의 묘미는 후반부에 모두 몰려있는 것 같아요. '누가 범인이지?' 의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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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A. 패리스 - 브레이크다운, 누가 나를 고장내려 할 때

그녀의 작품을 또 읽고 말았습니다. 그녀 덕분에 '심리스릴러'라는 장르에 흥미가 생겼거든요. 제 글을 보아오신 분들은 저자의 이름이 낯설지 않으실거예요. [책] B. A. 패리스 - 비하인드도어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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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와 남자들의 수준이 비등비등하다는 점에서 결이 비슷하거든요.

원래 무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책이나 영화는 안 보는 편인데 심리스릴러물은 오싹하면서도 현실성이 있어 자꾸 보게 되네요. 다음에 또 이런 류의 책을 기깔나게 쓰는 작가가 있으면 소개와 함께 데리고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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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굿 걸>, <프리티 베이비>, <디 아더 미세스>, <돈트 유 크라이>라는 책을 써냈어요. 그녀의 책들은 전 세계 30여 개국에서 번역 출간 되었습니다. 특히 이 책, '사라진 여자들'은 출간 전부터 TV 드라마 시리즈 제작이 확정되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고 하는데요. 그로인해 그녀에게 붙여진 '스릴러의 여왕'이라는 별칭은 몇 번이고 불러도 아깝지 않은 정도입니다.

2022년 후반기에 나온 작품인데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을 수 없어요. 나름 최신작이잖아요. 뜨끈한 선물을 받았는데 내용물까지 환상적이라 벅찬 기분마저 드는. 후에 그녀가 낼 작품들에 벌써부터 설렙니다.



등장인물 소개 & 스포 없는 줄거리




한 소녀가 갇혀 있어요. 그녀는 개죽을 먹으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습니다. 그녀를 가둔 이들은 그녀가 죽건 말건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아요. 앙상하고 더러운 그녀의 이름은 OO. (이름이 스포가 되어 자제합니다.)

한 남자가 있어요. 어린 아이와 남편을 두고 밤늦게 외출을 나가는 아내는 하루사이에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옵니다. 왜, 대체 누가, 어떻게? 그녀를 죽였을까요. 그녀의 이름은 셸리입니다.

조시와 레오, 메러디스와 딜라일라. 여기서 조시는 아빠, 메러디스는 엄마, 레오와 딜라일라는 각각 남동생과 누나입니다. 여기서 메러디스와 딜라일라가 사라졌어요. 엄마와 딸이 사라진거죠. 이 역시 왜? 누가? 어떻게?

그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해 볼게요. 메러디스(엄마)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증거가 발견 되었어요. 딜라일라(딸)는 무려 11년이나 실종 되었고요. 아, 11년... 그럼 혹시 아직 해답이 나오지 않은 첫 장의 불쌍한 개죽 먹는 소녀가 이 주인공은 아닐까요?

비아와 케이트. 그들은 조시의 이웃사촌입니다. 아내와 딸을 잃은 그를 위로하며 잃어버린 가족을 찾는 데 최선을 다해 도움을 줘요.





이 책의 핵심은 메러디스와 딜라일라를 찾는 것입니다. 그들을 데려간 범인을 찾는거죠.

그런데 정말 찾기 어려워요. 중간 중간 작가가 쳐놓은 덫에 쉽게 빠지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인데요. 겨우 빠져나왔다 싶으면 또 다른 덫이 있고 그런 식이에요. 그런데 또, '짜증나. 안 해!' 라는 말은 나올 수가 없게 독자를 내용에 몰입하게 하는데, 그 매력은 작가의 장기인 것 같더라고요.

가정과 일에 있어 부족함이 없어 보이던 메러디스(엄마). 사라진 딸은 잘 있으니 걱정 말라는 메시지와 함께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생에 이별을 고한 이유는 뭘까요?

그러던 어느 날... 조시는 딜라일라(딸)를 찾게 되는데요. 편의상 '여자'라고 할게요. 여자는 자신이 딜라일라 라고 주장해요. 하지만 조시는 또 한 번 무너지죠. 망가질대로 망가진 이 '여자'가 내 딸 딜라일라라니... 받아들이기 힘들어 괴로워합니다.

'여자'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점, 레오. 그는 딜라일라의 남동생인데요. '여자'의 몰골과 행색 때문에, 그 꼴로 찍힌 기사 사진들 때문에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해요. 여과없는 소년다운 시점이 인상적입니다.

자, 이야기는 이렇게 평탄하게 흘러가다가... 마침내 범인을 알려줄까요?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작가는 우리를 혼란에 빠뜨립니다. 엄마와 딸의 실종과 죽음. 동네에서 벌어지는 느닷없는 범죄사건들.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요? 셸리가 소송을 준비 중이었고 메러디스가 증인을 준비 중이던 셸리의 주치의, 폭력적이던 셸리의 남편, 어느 날엔가부터 레오가 거부를 시작한 아이들의 아이돌보미, 레오는 아랑곳 않고 조시의 이성적인 매력에 관심을 보이던 한 여자형사, 아니면 또 다른 그 누군가일까요?



 

함께 보고 싶은 하이라이트🧩

 

메러디스와 딜라일라가 실종되었다는 것을 레오도 알고 있을까? 네 살 아이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이야기인지라 아마도 모를 것 같았다. 크레파스는 없어질 수 있다. 퍼즐 조각도 없어질 수 있다. 하지만 엄마와 누나가 없어진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다양한 사람들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그 중 가장 어린 레오의 시점은 분위기를 전환 시켜주는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참고로 레오는 일이 벌어졌던 때 너무 어렸기 때문에 과거의 시간을 이야기 해 줄 수는 없고 현재 고등학생이 된 레오의 눈에 지금 보이는 것을 아이의 관점에서 들려주고 있는데요.

엄마와 누나를 잃고 저 자신도 잃어버린 아빠를 보는 레오는, 아빠를 이렇게 만든 누나가 싫다, 라고 말하기도 하고, 아빠를 유혹하는 듯한 형사를 혐오하기도 합니다. 가감없고 직설적이죠.

그런데 저는 다양한 사람들이 나오는 가운데, 작가가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서술할 기회를 주는게 어쩌면 범인을 유추할 수 있는 하나의 힌트가 아닐까 싶어 레오도 용의선상에 집어 넣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어쩌면 레오보다 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셸리와 그의 남편, 비아의 시점은 따로 조명이 되지 않는 게 의아했었거든요.

그래서... 과연 제 예상은 맞았을까요, 틀렸을까요?

분만실에서도 섬뜩한 일들을 여럿 목격했다. 내가 출산할 때 경험했던 일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였다. 출산할 때 태아의 욕구가 산모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위기였다. 그래서 여성들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것을 모를 때가 많다. 어쩌면 산모에게 아무런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있다 해도 스스로 결정을 내릴 시간이나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는다.

출산 과정에서 산모에게 동의를 받는 과정 없이 의료진의 결정이 내려진다. 또 출산 과정에서 괜히 번거로운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 침묵하는 여성들이 너무도 많다. 산모를 향한 부당한 대우가 의료적 처치라는 미명하에 만연하게 행해진다.


그러고보면 출산할 때 저도 마음 편한 수술을 한 것 같지는 않아요. 설명은 짤막했고, 어떤 건 제 동의 없이 진행이 되기도 했었거든요. 수술실에서는 저 포함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아기를 낳는 산모보다 세상에 나올 아기를 더 우선해요.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 출산도우미 메러디스의 역할은 따뜻하게 다가왔습니다. 사경을 헤매고 있는 산모의 옆에서 위해주고 격려해주는 메러디스의 존재가 더없이 소중히 느껴졌어요.

메러디스가 일을 하는 장면 중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이런거예요. 산모에게 지금 우리가 이러이러한 수술을 하려고 하고, 후에 이러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을 들려준 거요. 그리고 뒤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행을 해도 되는지,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의견을 묻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메러디스가 출산 도우미다보니 출산을 돕는 장면이 당연히 나오는데 과거를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리고 훗날 우리 딸이 겪게 될 분만실 그림이 그려져 벌써부터 마음이 아프기도 했어요. 여자는 아기 낳는 기계가 아니고, 희생이 당연시 되어야 하는 건 아닌데.

아, 문득. 제왕절개 수술에 동의하느냐고 고함을 치던 간호사가 생각나네요. 고통에 몸부림 치느라 대답을 못 했는데 산모에게 소리소리를. 다시 생각해도 역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여성의 실종이라는 큰 틀 외에도 저자는 여성들만이 느끼는 미묘한 불쾌감에 대해 이야기 한다. 조용한 주차장을 거닐며 누군가 내 뒤를 따르는 것만 같은 불안감, 내 집인데도 눈치를 보게 되는 인테리어 작업자들의 불편한 시선, 아이들을 따라 형성된 학부모 커뮤니티 내 신경전, 임신으로 불어난 몸을 향한 압박감, 불쾌하고 적나라한 산부인과 진료, '해피엔딩'을 맞이한다는 이유만으로 출산 과정에서 완벽히 묵살되고 마는 산모의 고통,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하원시키는 아빠보다 등원시키는 엄마가 자연스럽게 악역이 되고야 마는 현실.

저자는 이런 일상적이고도 어찌 보면 평범하기까지 한, 하지만 뒤늦게 생각해보면 묘하게 뒷맛이 씁쓸해지는 이야기들로 알게 모르게 독자들을 긴장시킨다. 슬쩍슬쩍 독자를 건드리는 언짢은 요소들은 가랑비에 진창이 되고 마는 땅처럼 독자들의 발을 무겁게 잡아끈다.


밤늦은 시간에 뒤에서 발소리만 들려도 움찔하는 거. 저만 그런 거 아니죠? 아니 사실, 움찔 정도가 아니죠. 죽음으로 이어지는 사례를 많이 들어왔어서 본능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껴 발이 걸음을 재촉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제가 남편에게 이 얘기를 하니 공감을 잘 못 하더라고요. 그래서 반대로 남자가 늦은 시간에 혼자 길을 걷다 몹쓸 짓을 당하는 사례가 많아지면 그 땐 당신도 나처럼 두려움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말해줬어요.

아이를 낳고 아이 친구 엄마들 사이에서 느끼는 신경전, 불쾌하고 적나라한 산부인과 진료, 내 집인데도 마음 편히 다닐 수 없게 만드는 작업자 인부들의 노골적인 시선들. 읽기만 하는데도 불편해서 씁쓸한 기분으로 읽었습니다. 공감이 많이 됐어요.

그런데 요즘은요. 이로인해 불편한 것보다 이 사실을 불편하다고 말했을 때 '불편하면 자세를 고쳐 앉아'라고 말하는 무신경이 더 화가 날 때가 종종 있어요. 그래서 공감도 역시 머리가 좋아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죠.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악행에는 끝이 없다.


사람보다 무서운 건 없는 것 같아요. 귀신? 안 무서워요. 제가 유일하게 귀신을 무서워 할 때는 그 귀신의 얼굴이 사람 형상일 때 입니다.  

자기는 초대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상한 아이가 거실 창문 앞에 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초대 받았다고 해도 내가 못 가게 했을 테지만 말이다. 파이퍼와 릴리는 앞마당에서 손을 잡고 웃으며 춤을 췄다. 내게 복수를 하기 위해 내 아이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저열한 방법을 쓰는 카산드라에게 소름이 끼쳤다.


이런 것도 소름끼쳐요.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 주기 위해 그 사람의 약점을 노리는 행위. 저에게도 소중한 약점이 있어서 남일 같지 않았고 카산드라의 이런 행동에 화가 났어요.

'시간이 지닌 치유의 힘', 이는 저자가 독자들에게 꾸준하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다. 하지만 그저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될 것이다. 반드시 희망적인 결론은 아닐지라도, 불행에 '방점'을 찍고 미래로 나아가는 인간의 의지가 더해질 때만 시간이 지닌 힘 또한 발휘될 수 있다.


요즘들어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의 효력에 대해 생각해요. 내버려둔다고 시간이 모든 것을 치유해주지는 않는 것 같아요. 반드시 방점을 찍고, 후에 자신이 의지를 갖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길이 열리는 그런 일들도 있는 듯 해요.

나는 그 말 뒤에 숨어 무엇을 덮어두고 살고 있는지 돌아봤어요.





작가는 이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음습하게 가지고 갑니다. 질척거리는 땅, 흐리고 안개낀 하늘 같은 날씨 묘사도 많고요. 그렇게 어두운 배경 가운데 등장인물들도 유쾌한 사람들이 아니다보니 다 읽고나면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싶어질 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책인데도 불구하고 꼭 '보는' 것 같아서 신기했어요. 마치 영화처럼요. 다른 사람의 상상력을 이렇게까지 자극하는 건 상당한 재능인 것 같다고 생각했네요.

오랜만에 진짜 재밌게 봤어요. 강추하는 책이에요. 저 개인적으론 이 작가를 알게 되어 기쁘고요. 이다음에 바로 이 작가의 다른 책을 이어 볼 생각입니다.

여름에 딱 읽기 좋은 소설, 서늘하고 오싹한 <사라진 여자들>. 평소에 스릴러 영화를 즐겨 보는 분들이 계시다면 더 재미있게 읽으실 것 같네요. 모쪼록 좋은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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