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엄마나이' 5살입니다. 아직 어린이죠. 그런데 이 5년 동안 저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잊을 수 없는 말, 행동, 그리고 감정.

보통 엄마들간의 만남을 '난이도 최상의 인간관계'라고 하는데요. 공감합니다. 그 어떤 관계보다 어려운 관계인 것 같아요.

들어가기에 앞서 이 책의 저자인 강빈맘을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강빈맘은...






강남에서 10년 이상 외국어 강사로 활동하며 입시생들의 멘토가 되어주었습니다. 출산 후에는 SNS에 쓰기 시작한 글을 본 엄마들의 공감을 사며 엄마들의 요청으로 결국 전자책 독립 출간에까지 성공을 하셨다고 하는데요.

그 이후 더 많은 사연과 피드백을 반영한 이 종이책, <내가 엄마들 모임에 안 나가는 이유>가 탄생했다고 합니다.









이 책에 대한 간단한 소개,
읽으면 좋은 사람







이 책은 엄마들간의 만남 자체를 거부하고 밀어내고 있지만은 않습니다. 그런 엄마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를 주기도 하고, 반대로 엄마들 만남에 활발히 참여하며 고된 육아에 비타민 같은 활력소를 경험하시는 분들을 존중하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 성격이 다릅니다. 그리고 이것 또한 인간관계이니 누가 옳고 틀리다는 정답이 없습니다. 다만, 내향적인 분들에게는 '아이를 매개로 만나게 된 다른 부모와의 만남'이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외향적인 분들보다 더 불편하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들께 이 책이 힘을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엄마들과의 만남에 지치신 분들, 겁을 먹고 계신 분들, 그리고 엄마관계가 아니더라도 인간관계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는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밀리의서재에서 밑줄을 쫙쫙 그으며 봤습니다.
남겨두었던 이야기, 여러분과 함께 보며 제 이야기도 나눠보겠습니다.


엄마들의 관계는 인간관계 난이도 최상에 속하는 관계라는 말이 있듯, 노력만으로 유지되기가 힘들다.




왜일까요? 직접 겪어본 분들은 이해하실 거예요. 왜냐하면 이 관계는 아이들로 맺어진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이 관계를 이어나가기 싫다고 하면 거진 끝이라고 봐야해요.

아이들은 아이들의 방식으로 표현 하죠. "쟤 싫어", "너랑 안 놀아", "나 괴롭혔어".

스스로 해결하지 못 하는 불편감을 부모에게 와서 털어놔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구체적으로. 그럼 부모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육아의 짐을 덜어보고자 시작하게 된 만남의 장이 오히려 어깨를 더 짓누를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고요.

또, 엄마들의 만남에서는 이제까지 내가 노력해서 이루어낸 것들이 큰 빛을 발하지 않습니다. 박사과정을 밟고 유능한 인재들과 열심히 일했던 커리어? 박수쳐주지 않아요. 내가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을 먼저 가 본 선배맘들, 육아정보가 많은 엄마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외국어를 처음 배우는 사람처럼 초보 엄마들은 모든 것을 새로 배워야 하는 느낌입니다. 아이 나이가 곧 엄마 나이에요. 😵‍💫

그리고 편견과 선입견, 고정관념이 짙은 관계이기도 합니다. 더러는 사는 집과 연봉, 직업, 시댁의 재력수준을 통해 그 엄마와 아이를 평가하기도 하니까요.








이 세계에는 '순수하게 저 사람이 좋아 인연을 맺고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이 없어요. (있다면 운이 좋으신 겁니다!) 씁쓸하지만 현실이죠.

나와 상대방이 일대일로만 맺어진 관계가 아닌 나와 아이, 상대방과 상대방의 아이, 이렇게 2인 1조로 만나는 관계이기 때문에 그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아이를 매개로 어떤 관계보다 쉽고 빠르게 유대감을 형성하지만, 반대로 아이 때문에 어떤 관계보다도 쉽게 등을 돌릴 수 있는 관계다. 아이들이 치고받고 싸우거나, 서로에게 상처라도 입히면 아이들보다 엄마들이 더 흥분한다. 결국 아이들이 나중에 다시 친해지고 싶어도, 엄마들 눈치를 보느라 같이 못 노는 일도 일어난다. 결국 어제의 절친이 오늘의 원수가 되어버린다.



친구들과 함께 노는 모습을 보는데 우리 아이만 묘하게 소외를 당하는 것 같다거나, 한 친구가 하자는대로 따라만 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생각이 많아지죠. 상대 아이에게 맞아서 오거나, 맞아서 왔는데도 상대 엄마에게 아무런 연락이 없으면 또 생각이 많아지고요.

처음엔 아이에게 문제해결법을 알려줄 겁니다. 그리고 상대 아이 엄마와 아는 사이라면 넌지시 얘기를 꺼내볼테죠. 이제 그 엄마의 대응에 따라 이 관계는 파멸할 수도, 더욱 더 깊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요.

어제는 싫었는데 오늘은 또 좋을 수도 있는 우리 아이들은 싸우면서 크잖아요. 그 과정에서 자기 의견을 말하고, 오해를 푸는 경험을 해 볼 수도 있고요. 마침내 사이가 회복된 아이들은 사이가 나빠진 엄마들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눈치만 보다가 결국은 멀어지고 맙니다. 놀아도 몰래 놀죠.

내 아이가 맞고 왔는데 상대 엄마가 적반하장의 태도로 오히려 내 아이가 바보같아 맞은거다, 라는 식으로 나온다면 그 관계는 정리해야 하는 게 맞습니다. (당연!)

하지만 대응이 내 성에 차지 않는, 영 서운한 것이었다면 흥분을 가라앉히고 조금 더 멀리 볼 필요가 있어요. 아이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그리고 티가 나지 않게, 서서히 거리를 두며 생각할 시간을 가지세요.

이건 갑자기 생각난 제 경험담인데요. 🫠


제 아이가 가지고 온 공을 다른 아이가 자기 것이라며 가지고 간 겁니다. 아이는 공을 돌려달라고 했고 상대 아이는 돌려주지 않았고요. 화가 난 아이는 놀이터에서 큰 목소리로 "OO이 싫어!" 라고 외쳤습니다. 같이 안 놀 거라고.

중간에서 엄마들은 난처했습니다. 나름대로 중재를 하고 수습을 하려 했지만 아이들은 울고 불고 화내고 떼쓰고 난리도 아니었죠... 결국 아이들을 데리고 각자의 집으로 가는 것으로 상황은 정리가 되었습니다. 🫠

그 후 상대 아이의 엄마가 저희와 놀이터에 가는 횟수를 조금씩 줄여가는 게 느껴졌어요. 저도 제 아이가 상대 아이와 만날 때마다 싸우는 게 보기 힘들어 생각이 많았는데, 그렇게 저와 제 아이가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는 선 안에서 조심히 행동을 하는 모습이 저는 고맙더군요? 어른스럽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싫다고 무작정 손절을 할 수만도 없는 이 관계를 잘 다루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고로 그 엄마는 첫째가 있는 선배맘이었는데 내공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하나를 배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가 자랄수록 신체 발육과 언어 발달뿐만 아니라 아이의 성향, 개개인의 재능, 사회성과 친구 관계까지도 비교 대상이 된다. 행여나 아이가 친구들 사이에서 인정받지 못하거나 치일까 봐 엄마의 마음은 불안하다. 하지만 엄마의 걱정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것을 재차 마음에 새기자. 아이는 부모의 눈빛을 먹고 살아간다. 걱정스러운 눈빛을 먹고 산 아이는 자기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신뢰의 눈빛을 먹고 자란 아이는 스스로를 신뢰한다.



저는 그래서 애시당초 엄마들과의 만남 약속을 잘 잡지 않습니다. 반 아이들 엄마들과도 일 년에 몇 번 볼까말까해요. 왜냐하면 저는 저를 아니까요.

저도 모르게 남들과 저를 비교하는 습관을 아이에게 적용할까 두려워서요. 괜히 자기 속도대로 잘 자라고 있는 아이 잡을까 두려워서요.

교육적으로 잘 가르치고 있는 엄마를 보면 집에 돌아와 나도 꼭 책 한 권이라도 읽혀 재워야 할 것 같고, 잘 차려 먹이는 엄마를 보면 제가 만든 밥상 메뉴를 보며 못난 엄마 같다는 생각에 자존감이 떨어집니다.

그게 무서워서 약속을 잡지 않습니다.

본문에서도 나왔는데, 엄마들 만남은 주로 육아를 하느라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라 했어요. 제가 조금 더 자신감이 있고, 꺾여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높은 회복탄력성을 갖게 되었을 때 나가고 싶어요.

"왜 거기 있잖아요. OO공원 가는 길에 있는 그 아파트요. 뭐, 어디 사는지가 중요한 건 아닌데... 그래도 좀 그렇지 않아요?" 입을 빼죽거리는 모습에서 오만과 불만이 동시에 느껴졌다. 오, 맙소사! 내가 마주하고 있는 이 엄마가 바로 뉴스에서만 보던 '아파트 시세로 계급을 나누는 엄마'였다니. 아이를 낳기 전 이런 엄마들에 관한 기사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엄마들의 세계에 들어와 보니,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없는 일도 아니었다.



저도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거짓말이 아니에요.
직접 겪기 전까지는 저도 신화 속에서나 나오는 유니콘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 그런데 진짜 있더라고요.

연봉, 직업, 전세자가여부, 평수, 차종, 대출은 끼고 들어왔는지, 받았다면 얼마 받았는지... 를 물어보는 사람이요! 심지어 저는 엄마, 아빠 두 명에게 질문을 받았습니다. 두 사람이 앉은 자리에서 눈빛을 반짝이며 다다다 물어보더라고요. 저건, 질문을 통해 상대의 재력을 확인해보겠다는 거잖아요?

상당히 무례한 행동이라 그 이후 단번에 손절했습니다. 불쾌해서요. 그리고 제가 그들에게 되갚아준 가장 큰 복수는 그게 잘못된 행동임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딘가에서 또 그런 질문을 반복할 거예요. 그럼으로 인해 뒤따르는 불행을 예견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아주었습니다. 🤪

엄마가 엄마들 관계에 전전긍긍, 아이의 친구 관계에도 전전긍긍하면 아이도 친구 없으면 큰일 나는 줄 알고 도리어 더 예민해지기 쉽다.



저도 제 부모를 보고 배우고 싶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 것들이 있어요. 무의식적으로 터득한 것들은 알아차리기도 어렵거니와 수정하기도 힘이 듭니다.

아이의 마음에 각인 될 질 낮은 행동들은 조심해야 합니다.

내 아이가 배제되어도 배신감 느끼지 말고, 반대로 내 아이가 다른 새로운 친구와 더 친해지더라도 죄책감 느끼지 말 것.



현재의 제게 거의 불가능한 말이라 앞으로 실천하려 노력하려고 그어두었습니다...🤣

저는 제 감정을 아이가 똑같이 느꼈다고 착각하지 않아야 하고, 아이의 이야기를 신중히 들어야 합니다. 오래 유심히 살피고 제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을 찾을 겁니다. 내 생각에 맞는 것 같다고 무작정 개입하는 게 아니라요.

이 세상엔 무례한 사람이 너무나 많고, 자신이 무례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드물다. 상대방의 무례함을 탓하면서 고통받고 살기엔 우리 인생이 너무 아깝다. 더군다나 무례함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 않은가? 누군가를 무례하다고 탓하기보단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려서 단단해지는 것이 원만하게 사는 비결이다. 그러기 위해선 다음 세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첫째, 적당히 둔감해질 것. 중요하지 않은 타인의 말은 담아두지 말고 흘려버릴 것. 둘째, 부당한 상황에선 적당히 받아칠 것. 좋은 사람 되려다 만만한 사람 되니,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것. 셋째, 피해의식을 버릴 것. 지금 내가 느끼는 고통이 내가 너무 예민해서 겪는 것일 수도 있음을 기억할 것.



이건 비단 엄마들과의 관계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 가능한 세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새들도 허수아비가 움직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를 조롱하고 곡식을 쪼아 먹는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관계에서 쓴맛과 단맛을 잘 배합한다. 단맛만 있으면 어린아이나 어리석은 사람들의 군것질감밖에 되지 않는다" 라며 부당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선함이 아니라 무능함임을 강조했다.



이 세계에서는 더더욱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무례하지도, 너무 착한 사람이지도 않도록.

육아 전문가는 "부모가 지나치게 허용적이어도 불안이 생긴다. 많이 경험하고 타인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자기만의 단단한 기준이 생겨야 아이가 편안해진다." 라고 말했다. 너무 좋은 부모가 오히려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부모에겐 아이의 마음을 무조건 수용해주는 것 이상의 역할이 있다. 바로 시련을 겪어 나갈 힘을 키워주는 것이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있듯, 세상은 시련으로 가득 차 있으니까.



저는 앞으로도 이 세계에서 부딪히고 깨지며 더 많이 배울겁니다. 슬프고 힘든 날도 있겠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을거예요. 시간은 흐르고, 시절인연은 추억 속에 묻힐 날이 올 테니까요. 그 때 내 옆에 있는 아이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지 않게 후회할 짓 하지 말아야죠. 🙋🏻‍♀️







더 쓰고 싶은데 이미 글이 너무 길어져서(저도 쓰면서 놀람...) 이만 줄일게요.

공감 가는 내용이 있었나요? 책에는 더 많은 내용들이 담겨있어요. 엄마들간의 관계로 인해 힘들어 하는 분이라면 꼭 읽어보세요.

그리고 강빈맘의 인스타그램에 가면 이 세계에 지친 엄마들이 입을 모아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어요. 댓글들을 보면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게 묘한 위로가 되더라고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관계입니다.

당신이 유별난 게 아니에요.


혹시 힘들어 하고 있다면 기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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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궁금한 분들이 계실 것 같아요. 먼저 답을 할게요. 이 책은 3-7세를 '그 시기'로 놓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3-7세 아이는 부모가 말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대로 배우며 자란다고 해요. 그들에게 좋은 인성을 갖게 해주기 위해서는 부모가 좋은 인성으로 아이를 안아주어야 하며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아이가 궁금해 하는 것을 함께 알아가면 된다고 했어요.

제목이 좀 세서 긴장하신 분들 계실지 몰라 하는 얘긴데요. 부모자식 간에 중요하지 않은 시기가 어딨겠어요. '결정적' 이란 단어를 굳이 쓰신 이유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정서발달, 인성교육에 있어 결정적인 시기가 있다는 건 이제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죠. (0-3세, 만 3-6세) 그 시기에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걸 알려주고 있어요. 혹 놓쳤다고 해도 아이는 우리에게 많은 기회를 주니까 낙담 말아요. 이 책은 저같은 초보엄마에게 "오늘도 열심히 육아 해야겠다!"  와 같은 즐거운 동기부여를 주는 책입니다.

 

 

3-7세,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적 능력과 인성의 기초를 세우는 시기이다. 우리 아이가 바로 그 시간을 지나고 있다. 한순간 한순간이 정말 소중하다.

 

 

 

아이가 갓 4살이 되어 더 몰입하여 볼 수 있었는데요. 이 시기를 지나고 있는 다른 아이들의 사례를 보며, 우리 아이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과 평범한 부모의 저들 나름대로의 대처법을 보며 묘한 위로를 받기도 했습니다. ('당신이 이상한 게 아니다!' 란 말을 직접적으로 하진 않았지만,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뒤이어 따라오는 전문가의 조언과 철학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임숙 - 엄마가 놓쳐서는 안될 결정적 시기


내가 하는 말과 행동, 그리고 표정 및 분위기는 아이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 육아를 하는 부모님들 귀에 이제는 딱지가 앉을 정도로 수없이 들어왔던 그 사실을 이 책은 몇 번이고 인지시켜 줘요. 문제행동을 하는 아이들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아이가 아니라 그 행동을 먼저 한, 혹은 하도록 만든 부모가 먼저 있었음을 알게 되는데요.

<금쪽같은 내새끼>만 봐도 그래요. 문제행동을 한답시고 보여주는 아이들의 화면이 끝난 후 전문가는 부모가 그 부모에게 받았던 어린시절 양육방식을 돌아보게끔 하잖아요. (물론 모든 상황이 다 그런 건 아닙니다만 높은 확률적으로)

책 속에 이런 일례가 있었습니다. 아이가 자꾸만 동생을 때린다는 거예요. 부모가 하지 말라고 말리면 아이는 왜 말리느냐고 억울해 하고요. 이런 아이는 도대체 어떻게 키워야 할 지 모르겠다며 부모가 전문가에게 고민상담을 하러 온 겁니다.

알고보니 문제행동을 한 아이가 동생을 때리기 전, 잘못을 하면 그 부모는 아이를 때리고는 했더군요. '잘못을 하면 맞아야 한다' 는 잘못된 이념이 각인 되어 본능에 가까운 액션을 취했을 뿐인데, 나는 왜 동생이 내 블록을 무너뜨린 것을 보고도 때리면 안 되는 거냐고 생각한 거예요. 이 사례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건 과연 뭘까요?

 

 

인성을 가르치려면 우선 아이가 좋은 인성을 경험해야 한다.




먼저 우리 집을 돌아보았습니다. 제가 아이에게 주의를 주는 문제행동은 '물건을 던지는 것'이었어요. 여러 번 그러지 말라고 일러보고, 짐짓 단호한 투로 말을 해보기도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는데요.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가 어릴 때, 저희 부부는 멀리 떨어져 있으면 종종 물건을 던져 받고는 했어요. 빨리 빨리 효율적으로 처리를 하고 싶으니까, 별 생각없이 했던 행동인데 아이가 따라할 수도 있을 거라는 사실은 미처 신경을 쓰지 못 했던거죠.

그 모습을 기억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엄마 아빠가 물건 던지는 걸 보고 따라한거야?" 아이는 그렇다고 대답했어요. "그런 줄도 모르고 엄마는 하지 말라고만 했네. 앞으로는 엄마 아빠도 안 던질게. 위험하니까 우리 물건 던지지 말자"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일단 상황은 종결이 되었어요. 하지만 개선이 될 지는 더 지켜봐야겠죠?

아이 앞에서는 찬물도 함부로 못 마신다는 옛말이 떠올라요. 누가 누굴 나무라요.
아이에게 좋은 인성을 가르치려면 가장 가까운 부모가 그런 인성을 가지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가게에서 계산을 하고 나올 때 인사를 하는 부모의 모습, 어려운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부모의 모습,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지 않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아이는 자연스럽게 배울 거예요.

저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인데 이 사실을 배우고 난 이후 특히 더 행동을 조심하고 있어요. 낯설고 불편하지만... 좋은 점도 있긴 합니다. 그간 어른이라는 이유로 아무도 내게 지적하지 않았던 행동을 '아이가 보기에 어땠을까?' 싶어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거든요. 그럼으로써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고요.

 


조금 다른 이야기도 해 볼게요. 여러분은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자랐으면 하시나요? 인성이 바른 아이? 공부를 잘 하는 아이? 행복한 아이?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질문이란 거 알지만요.

혹시 제가 말한 보기 중에 유독 내 마음에 강하게 와닿는 게 있지는 않았나요? '이랬으면 좋겠다' 싶은거. 저는 있어요.

저는 아이가 '행복한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있죠, 얼마 전에 남편이 그러는 거예요. 아이가 남편이랑 있을 때는 규칙도 잘 지키고 해야 할 일도 완수를 잘 하는데, 저만 오면 땡깡을 부리는 아기로 변한다고, 너무 오냐오냐 하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괜찮지만 나중에도 괜찮겠느냐는 걱정 어린 말도 하나 더 얹어서요.

다른 게 부족해도 아이를 사랑만 해주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아닌 것 같아요. 균형이 중요한 것 같아요. 아이는 인형이 아니잖아요. 배우면 받아들이는 사람인데, 제가 너무 저 편한 육아를 했던 듯 해요.

남편이 제게 저 한 마디를 해주지 않았다면, 아래의 이 구절을 그냥 지나쳤더라면 아래와 같은 사단이 미래의 제게 일어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아찔해요. 미리 알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요.

 

가끔 상담실에는 아이를 키우며 성격만 중요시하는 파행적 모습에 회의를 느껴 공부보다 인성을 강조하면서 키운 아이와 부모가 찾아온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아이에게 공부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자유롭게 키웠는데 왜 상담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생겼을까? 어릴 적부터 친구와 함께 즐겁게 놀고 자유로운 시간을 갖도록 배려하며 키웠는데, 아이는 왜 점점 친구 관계에서도 문제가 생기고 알 수 없는 불안과 우울로 힘들어할까? 부모가 놓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과유불급.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뭐든 과하면 안 하느니만 못해요. 인성교육, 너무 좋은데, 필요한 거 아는데, 이 역시 '치우쳐지면' 이러한 문제가 충분히 생길 수 있어요. 아이가 다른 친구들을 만났는데 나만 못 한다는 소외감에 위축 되거나 자신감을 잃게 되는 모습... 상상만 해도 얼마나 마음 아파요.

그런데 동시에 저는 육아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해서요, 일부러 틀렸다고는 말하지 않았어요. 친구들 사이에서 제 목소리를 당당히 낼 수 없었던 경험을 통해 그 아이는 어떤 식으로든 한층 더 성숙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의 기질이 다 다르고, 각 집의 육아 방식이 비슷한 듯 해도 미세하게 다 다른데 어떻게 획일적인 결론이 날 수 있겠어요.

위 일례의 아이 이야기를 더 해 볼게요. 인성교육'만' 받은 이 친구가 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대요. 낯선 나라 친구들은 이방인을 바로 친구로 받아들여주지 않았다고 하고요. 하지만 아이는 이미 한국에서 소외감을 느낀 바 있기 때문에 크게 상처 받지 않고 오히려 친구들과 더 잘 지내기 위해 노력 했다고 해요.

저자는 한 쪽으로 치우쳐짐은 좋지 않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이미 그렇게 되었다면, 헤쳐나갈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주거나 아이를 믿어주어서 전화위복을 몸소 경험하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요.

 

아이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자라고 싶어 하는가이다. 아이가 자신이 다양한 능력을 키워 가며 잘 자라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인성만 강조하느라 아이가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을 소홀히 하다 보면 아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는 것도 별로 없다는 생각에 주눅 들고 위축된다. 나중에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지 걱정되고 불안해진다. 부모는 절대 비교하며 키우지 않았다 해도 아이 스스로 자기도 모르게 또래 아이들과 비교한다. 이런 시간이 쌓이면 서서히 정서 면에서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이에게 기본적인 것들은 꼭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건강한 자존감을 갖고 살 수 있도록 작은 성취부터 큰 성취까지 경험하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도 가능하면 해주는 게 좋다고 봐요. 아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더더욱이요.

(하지만 부모는 신이 아니니까 모든 판을 다 짜줄 순 없죠. 그럴 때는 없으면 없는대로, 주어진 환경에서 아이가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 해요. 겪지 않았으면 하지만, 겪을 수 밖에 없는 삶의 필연적인 숱한 장애물을 헤쳐나가는 연습, 그 안에서 문제해결능력과 회복탄력성을 기를 수 있을테니까요.)

저는 아직 아이가 어려서 새로운 세계와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나름대로 힘껏 길을 터주는 편이예요. 만일 아이가 힘들다거나 괴로워하면 이야기를 하고, 같이 손 잡고 나오고요.

길가에 핀 민들레 꽃에 관심을 보이는 아이의 관심이 더 깊어질 수 있게 놀이와 스킬로 잘 이끌어 주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 책의 제목을 한 번 더 떠올려 주시겠어요? 당연히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야합니다.

 

중요한 건 애착에 금이 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아이를 가르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배움이 노는 것 만큼이나 즐겁다는 사실을 깨닫게 도와야 한다. 즐겁게 배우는 아이는 힘든 공부도 해낼 수 있는 힘이 생기며 부모와의 좋은 관계를 평생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간다. 사춘기 아이가 문을 꽝 닫고 들어가 대답도 안 한다고 해서 아이 성격을 탓할 필요 없다. 아이가 성질이 못돼서 그런 게 아니다. 엄마가 자기 마음은 몰라주고 사랑을 핑계로 마음대로 휘두르니 괴로운 것이다.


아이가 네 살 밖에 안 되어 더 큰 아이들을 둔 부모들의 심정을 저는 잘 모르지만요. 네 살 아이는 아직까진 엄마가 뭘 하자고 하면 잘 따라와줘요. 그리고 어린 아이이기 때문에 놀이를 좋아하므로, 무언가를 놀이식으로 엮는 게 아직은 좀 쉽네요. 조금 더 큰 아이들의 경우 부모가 아이를 대하는 방식부터가 다르겠죠? 하지만 태도가 달라졌을 뿐 마음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무언가에 호기심을 보이는 아이의 말을 흘려 듣지 않고 그것에 더 빠져들 수 있도록 준비를 해주거나 사고를 확장시킬 수 있는 질문을 던지는 것. 좋은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소한 것이라도 아이의 마음이라면 존중하고 수용하고 진심으로 귀기울여주는 자세라고 생각해서 나름 열심히 실천하고 있고요.

저희 집 이야기를 해 볼게요. 아이가 영어를 친숙하게 느꼈으면 해서 이것저것 많이 보여주고 있어요. 제가 준비한 영어 놀이를 아이가 치우라고 하면 반응에 따라, "재밌는 건데 그럼 다음에 같이 해보자" 며 치우거나 "그럼 엄마 혼자 해 볼게. 엄마는 하고 싶어서" 얘기하고 잠시나마 혼자 하기도 해요. 그럼 운이 좋은 날은 다가와주기도 하더라고요?

핵심은 강요하면 안 된다는 것. 제 철칙이예요. 저는 아이가 좋아하는 춤과 노래 그리고 대화로 노출을 시켜 주고 있습니다. 덕분이라고 해야할지 아이의 최애곡은 ABC송이에요. 자기가 아는 단어, 질문이 들리면 큰 목소리로 대답 할 줄 알고요.

(본격적인 언어 공부는 측두엽이 발달하기 시작하는 만 6세 이후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그 활동이 욕구를 채워 주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친구 것을 빼앗기만 하던 아이가 친구에게 자기 장난감을 빌려 준 뒤 기분이 좋거나 칭찬을 받았다면, 아이 마음속에 새로운 사진이 저장되고 아이는 그 행동을 더 하고 싶어 한다. 힘들게 로봇을 만들었는데 완성하고 나니 아주 뿌듯했다면, 그 아이는 앞으로 더 멋지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우리 아이의 '좋은 세계'에 건설적이고 가치 있는 것들, 아이의 성장을 돕는 것들이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건 아이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적용 가능한 삶의 지혜예요. 어떤 경험을 하고 그것이 좋은 기분이었다면 우리는 그 행동을 또 하고 싶을테죠. 아이에게 배려를 가르치고 싶다면 배려를 하고나서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을 하게 해주세요. 그 후는 시키지 않아도 할 거예요.

사람은 머리보다 몸으로 부딪혀 알게 되는 일을 더 오래 기억하지 않나요? 뜨거운 걸 만져 몸이 놀란 기억은 평생 그가 뜨거운 불을 조심하도록 만들어요. 그리고 그건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왜?' 라는 의문이 끼어들 수가 없죠. 내가 겪은 것이기 때문에 그저 받아들일 수 밖에요.

그건 남과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경험이었다, 는 기억. 여러분은 어떤 게 떠오르세요? 봉사활동, 분리수거, 인사하기, 미소짓기... 생각해보니 꽤 여러가지가 있네요. 아이와 함께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끝나고 연관도서를 읽으면 더 오래 기억에 남겠어요!)

 

아이의 기질에 맞는 양육이 그리 어려운 건 아니다. 아이에 대한 호기심만 있으면 된다. '이래야 한다'가 아니라 '우리 아인 어떤 아이지?'라며 아이를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아이는 '전 이런 사람이에요'라며 온몸으로 자신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책을 읽고 가장 좋았던 점은 아이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에요. 저는 우리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대충 알아요.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하며 예술적인 활동을 좋아하죠. (아직까지는)

하지만 저는 저도 모르게 그 사실을 애써 지우려고 했음을 인정해요. 왜냐하면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아이는 키우기가 어렵거든요. 저, 그러니까 엄마가 힘들어요. 그래서 은근히 아이를 왜곡해 바라보기도 했어요.

이젠 인정해요. 아이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고 있는데 엄마라는 사람이 대체 뭘 바란건지... 참 웃기죠. 이젠 내 아이에 맞는 양육법을 택해 실행할 거예요. 너는 이런 아이여야 해, 가 아니라 너는 어떤 아이일까, 에서부터 다시 시작이에요.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현재의 생각도 아이가 보여주는 말과 행동으로 달라질 수 있어요. 앞으로는 아이가 보여주는 아이를 볼 거예요.






이 책에는 순한 아이, 까탈스러운 아이, 느린 아이에 대한 예시가 나와 있습니다. 읽어보시고 우리 아이는 어느 쪽인지 체크하며 읽어보시면 현명한 육아를 하시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좋은 내용이 너무 많은데 제 역량이 여기까지라 다 담을 수가 없네요. 이런 말 뭣하지만... 직접 읽어보시기를 추천 드립니다(?) 다 옮기지는 못 했지만 좋았던 이야기 조금 더 나누며 이번 포스트 마칠게요.






저자는 상상놀이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했는데요. 아이가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하거나 치료를 받으러 가야 하는데 무서워서 긴장하고 있는 경우 상상놀이를 제안해 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림책에서 봤던 용사가 내가 되어보는 거예요. 그래서 무서움과 두려움을 물리치고 멋지게 진료를 받는 거죠. 부모의 교묘한 연기력이 필요한 고도의 귀엽고도 치밀한 상상놀이인데, 잘만 먹힌다면 아이 마음이 단단해지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차마 내가 쓰러뜨리지는 못 했어도, 최소한 방어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만일 이기고 돌아온다면 아이 마음에 살포시 자리잡은 칭찬 스티커 같은 뿌듯함은 덤이고요.

그리고 아이의 그 어떤 말이라도 일단수용 해주라는 말도 인상깊었습니다. 순서를 기억하라는 거예요. 수용을 해 준 다음에 해결책을 제시하라고요. 수용은 그랬구나, 같은 건데요. 어른이니까 아이가 차마 표현하지 못한 감정에 적절한 이름을 붙여 대신 설명 해주면 돼요. 서러웠구나, 억울했구나, 불편했구나, 슬펐구나...

답답해서 울기만 했던 아이가 난생 처음 제 감정을 알게 되는 순간일지 몰라요. 커감에 따라 엄마가 알려준 그 감정을 정리하는 법도 배우게 될 테죠. 이런 과정이 없으면 속상한 것도 짜증, 슬픈 것도 짜증, 질투가 나는 것도 짜증, 서러운 것도 짜증, 혹은 화라는 이름 밖에 붙이지 못할 지도요. 이 역시 부모가 모든 걸 다 해줄 수는 없지만 때에 따라 도와줄 필요가 있는 일인 건 맞는 것 같아요.

끝까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이렇게 많다는 건... 실질적인 팁이 많다는 뜻일겁니다. 뻔한 위로의 말이 있는 건 아닌데 묘하게 위로가 되기도 하고요. 3-7세의 아이에게 중요한 게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신 분들, 아이를 이해하고 싶은 분들, 이 책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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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한국인 최초 존스홉킨스 소아정신과 교수이자 의사예요. 발달장애 아이들을 20년 넘게 돌보면서 깨달은 지혜를 이 책에 담았습니다. 부모로서 가져야 할 자세를 알려주고 있지요. 읽으면서 몇 번이나 망치로 뒷통수를 얻어맞은 듯 했습니다. 육아서 사이에 통용되는 뻔한 말이 아닌 깊이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말이 여러 번 나왔어요.

서두에서부터요, '나는 누구인가?' 아이를 알아보기 전에 부모 자신을 돌아보라고 먼저 물어요. 그리고 부모들에게 자신이 핵심 신념으로 꼽고 있는 가치를 이 중에서 한 번 골라보라며 보기를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빨리 깨달았어요. 제목이 왜 <본질육아>인지를. 보기는 아래에 공유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찾아보세요. 이 중에서 다섯 개 정도를 꼽아 자신의 우선 순위에 놓고 마음 자세를 바로잡아보기를 권유 받았습니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진정성, 성취, 모험, 권위, 자율성, 균형, 아름다움, 용기, 공감력, 도전정신, 시민정신, 공동체정신, 역량, 기여, 독창성, 호기심, 결단력, 공정성, 믿음, 명성, 우정, 재미, 성장, 행복, 정직, 유머, 영향력, 내면의 조화, 정의, 친절, 지식, 리더십, 배움, 사랑, 충성도, 의미 있는 일, 개방성, 긍정성, 평화, 즐거움, 평정심, 인기, 인정, 종교, 평판, 존경, 책임, 안위, 자존감, 봉사, 영성, 안정성, 성공, 지위, 신뢰성, 부, 지혜


저도 이 중에서 다섯개를 꼽았습니다. 정말 꼽기 어려웠어요. 모두 소중한 가치들이라서요. 이 중에서 그래도 내가 더 필요로 하는 가치들을 우선 순위에 올려봤고요. 그러자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지가 훤히 드러나 신기했습니다. 다섯개의 단어가 저 자체를 설명하는 것 같기도 했어요. 그리고 제가 추구하는 이 가치와 인생관을 의도하든 하지 않든 아이에게 덧씌우지 않아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는 아이만의 가치를 직접 찾길 원해요.

왜 서두에서부터 이런 질문을 했는지 그 이유는 서서히 드러납니다. 저자는 육아를 '밥 짓기'로 비유 했어요. 쌀은 아이고, 물은 사랑과 보호, 불은 가치와 마음자세라고요. 우리가 밥을 지을 때 더 맛있는 밥을 짓기 위해 정량의 쌀 위에 물을 가득 넣고 불을 세게 때나요? 그럼 망치지요. 즉, 기본에만 충실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적당한 물과 불만 있으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지 않아도 밥은 자연히 잘 만들어져요. 개중엔 밥을 맛있게 만들겠다고 소금 후추를 치는 부모들이 있지 않느냐는 말도 있었는데, 저 왜 이 대목에서 멈칫 했는지 몰라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 해보려 합니다. 기억에 남았던 부분 정리해서 공유 할게요. 사실 워낙 많아서 이 정도가 추리고 추린겁니다. 위에 얘기 했다시피 머리를 한 대 가격 당한 듯한 구절이 상당히 많아요. 직접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 대체 어떤 부모상이 좋은 부모상일까?


자녀에게 헌신하는 부모?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사는 부모? 육아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녀의 독립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자주적이고 독립적으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는 부모가 좋은 부모 아닐까요. 스스로 행복을 쟁취하는 모습이 무엇보다 큰 유산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아이에게 바라는 모습이 있다면 내가 그 모습이 되면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도 아이였을 때가 있었으니 알잖아요. 백날 천날 얘기해봐야 안 듣는다는 거.

왜 운동을 하려면 헬스장에 가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몸뚱이는 움직이질 않잖아요. 주변에서 살 좀 빼라 운동해라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본인의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아요. 사람은 내적동기에 의해 움직이는 동물이라서요.

내 부모가 행복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만큼 강력한 동기부여는 없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노력을 하지 않아도 배고프면 밥을 먹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삶의 행동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해요.

✔️ 내적동기


내적동기가 무엇이냐. 반대로 외적동기를 먼저 이야기 할게요. 돈같은 물질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성적을 몇 점 이상 받으면 장난감 사줄게, 용돈을 얼마 줄게 하고 눈에 보이는 물질로 보상을 하는 것이지요. 그에 반해 내적동기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만들어줄 수도 없습니다. 내적동기는 오로지 나만이 구축할 수 있는 것이에요.

다만, 도와줄 수는 있습니다. 마음에 가닿게 도와줄 수 있지요. 저자는 내적동기로 '기여'를 이야기 했습니다. 예를들어, '네가 장난감을 치우면, 우리집이 깨끗해질 수 있게 도움을 주는거야'라는 식으로요. 스스로 성취감과 보람을 느끼게 돕는 것이라는 게 느껴지시죠.

저 또한 내적동기 유발을 위해 이 방법을 자주 사용합니다. '도와줘서 고마워', '네 덕분에', '엄마는 못 했는데 너는 해냈네', '어제보다 나아졌다' 같은 말을 많이 써요. 제가 그런 말을 하면 아이는 큰 소리로 대답하거나 조금 부끄러워 하며 괜시리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길 때가 있지요. 하지만 좋은 의도로 하는 말이라 할지라도 남발하면 좋지 않아요. 내 말과 행동이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눈치도 챙겨야 합니다.

 

✔️ 아이에게 꼭 가르쳐야 하는 4가지 가치


신뢰성, 책임감과 성실, 기여, 배려. 신뢰성은 행동과 말의 진실성을 이르는 말이고요. 기여는 내 재능으로 타인과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세상을 살아갈 때 꼭 지녀야 할 가치들을 여러분은 어떻게 가르쳐주고 계신가요? 책이나 영상매체를 통해 전할 수도 있겠지만요. 아무래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역시 부모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겠죠.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하니까요. 그러고보면, 아이를 키우며 나도 자란다는 말과 일맥상통 하는 면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나는 나, 너는 너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은 아이는 아이, 나는 나라는 것. 나의 좋은 면을 닮기 바란다며 타인인 아이와 나를 동일시 해서는 안 되겠죠. 저는 조련을 하는 것이 아니고 조력자라는 생각으로 육아를 하고 있어요.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도록 가치와 마음자세를 보여주고 일러주는 한편 욕심내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아이의 성공은 아이의 것이고 실패도 아이의 것이니 저는 그저 뒤에서 조용히 기뻐하거나 슬퍼할 뿐이라고요.

저자의 말처럼 물(사랑과 보호)과 불(가치와 마음자세)을 적당히 때어주기만 하면 그 후의 인생은 아이가 알아서 잘 헤쳐나갈 것이고, 근본이 튼튼하면 실패를 해도 배울점을 얻으며 제 힘으로 일어날 수 있으리라고 믿어요.

특히 출산 후 육아휴직으로 집에만 있게 되었다면 자존감이 더욱 떨어질 수 있다. 이런 격한 역할 전환(role transition)의 순간에 해로운 생각이 틈탈 수 있다. 그건 바로 '아이를 잘 키워냄으로써 내 자존감을 회복해 봐야겠다'는 생각이다. 아이와 내가 '완전히 다른 객체'라는 개념이 흐려지고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마치 아이가 나의 연장인 것처럼 인식될 수 있다. 이때 무의식적으로 아이를 대리만족의 수단으로 여기게 될 수 있는데, 여기서부터 부모와 아이의 불행이 시작된다. 그래서 부모의 자존감이 중요하다. 자신의 자존감이 어느 정도인지 먼저 파악하고, 자존감이 약하다면 이것을 직시하고 내 자존감을 더 건강하게 만드는 것을 우선순위로 두어야 한다.


부모의 자존감이 낮으면 아이에게 대리만족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부모는 부모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부모의 인생도 앞으로 최소 30년 이상 남았어요.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라도 부지런히 배우고 성장해야 해요. 저는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고, 미혼일 적부터 갖고 있던 취미 생활도 틈틈이 하고 있습니다. 제 자신을 챙겨가며 육아 하고 있어요. 부모가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다는 건 곧 가족의 평화와 연결되는 말인 것 같습니다.

 

✔️ 실패에 대하여


실패에 민감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실패할까봐 애초에 시작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죠. 왜 그런걸까요. 저는 그들의 어린 시절에 어른들의 '잘해야만 한다', '실패는 실망스러운 것'이라는 메시지가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네가 성공했냐 아니냐보다 이걸 했다는 게 용감한 거야. 잘하지 못할까봐 두려워서 못하는 사람도 많은데 넌 그걸 했잖아."

 

 

이런 말이 나옵니다. 예를들어 아이가 새로 전학 온 친구에게 '친구하자'라고 먼저 손을 내밀었다고 쳐요. 그런데 그 친구는 거절했고요. 아이는 집에 와서 엄마에게 "친구 사귀기에 실패했어"라고 말했어요. 이 때 부모가 내놓을만한 괜찮은 답변은 무엇일까요?

 

"그래? 서운하고 아쉬웠겠네. 그래도 친구에게 용기를 내서 물어봤기 때문에 있었던 실패 아니야? 같이 놀자고 했을 때 그 친구가 놀고 싶지 않을 수도 있기는 하지. 좀 어색해도 시도해본 것은 잘했어. 다음에 또 한번 물어보는 것도 괜찮겠는데."

 

 

실패를 아무렇지 않은 척 흘리거나 과민반응 하지 않았어요. 일단 아이의 마음을 공감해주고, 어른의 시각에서 지혜를 나누어줬죠. 비록 친구 사귀기에 실패했어도 너는 용기를 낸 것이라는 사실을 직시하도록 건넨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만일 제가 아이였다면 엄마에게 큰 위로와 힘을 얻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말은 오래도록 제 인생에 영향을 끼칠 것 같아요.

✔️ 조력자


위에 한 번 언급했던 단어네요. 저는 아이의 조력자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에게 부모는 우주일 수 있으나 저 자신은 그래요. 그래서 도와주려고 합니다. 제 마음대로 휘두르는 게 아니라요.

"어떻게 하면 내 말을 듣게 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하면 아이가 좋은 선택을 하도록 도와줄 것인가?"로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가령 밤에 잠들기를 싫어하는 아이라면 이제 그만 자자는 말보단 시계나 타이머를 활용하는 방법. "시계가 10을 가리키면 자는거야"라고 아이와 약속을 해두고, 아이가 스스로 약속을 지켰다면 밀려오는 작은 뿌듯함을 느낄 수 있게 도와주는거예요. "모래시계가 다 내려가면 자러 가는거야"라고 약속을 해도 좋을 것 같아요.

물론 말처럼 잘 안 되는게 바로 육아죠. 하지만 이런 느낌이라는 겁니다. 올바른 울타리를 미리 조성해 놓고 아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거요.



 

 

이 외에도 본질육아에는 고개가 끄덕여지는 육아팁이 참 많이 담겨 있습니다. 이대로 끝내기 아쉬우니 하이라이트 해 두었던 부분 두 개 더 공유 할게요.

 

내가 자유롭게 나의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권리가 있듯이 우리의 자녀들도 같은 권리가 있다. 아이에게 '내가 너의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에 대해 더 잘 아니까 너는 나의 말을 따르라'고 말해선 안 된다. 자녀의 자율성을 침해할 권리가 부모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았다.


이 말을 듣고 아이를 봤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옷을 입어야 하는데 계속 도망을 다니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도망은 제가 붙인 단어. 아이는 말을 못 하거나 하기 싫어서 안 했던거겠죠) 그 때, '그래, 너도 네 생각이 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보니까 제가 그 상황에 옷을 반드시 입혀야만 할 이유가 사라지는 걸 경험했어요. 그래서 "여기 둘 테니까 입고 싶으면 입어. 도움이 필요하면 얘기해"라고 말해줬습니다. 신기하게 화가 나지 않았습니다. 화가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아이의 자율성을 인정하니까 그 상황이 달리 보였어요.

"공부 잘해야 무시 안 당하고 산다. 이러면 커서 무시당해." 이 말은 상대적 존재 가치를 직접적으로 가르치는 것과 같은 심각한 표현이다.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존중받아야 할 절대적 존재 가치가 있다. 그런데 이 말은 네가 공부를 잘해야 가치 있는 사람으로 존중 받고 네가 공부를 못 하면 존중을 못 받는다는 완전히 잘못된 메시지가 아닌가. 게다가 노력해도 잘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면 열등감과 자괴감, 자책감이 생긴다. 반면 아이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하기도 한다고 해보자. 그럼 이 아이의 마음에는 공부를 잘 못하는 사람은 무시해도 된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자리 잡힌다. 그러므로 이런 말은 사람은 원래 급이 나누어지는 것이고, 높은 곳의 사람이 낮은 곳의 사람을 무시해도 되며, 네가 무시 당하게 된다면 다 네 탓이라는 굉장히 위험한 의미를 포함한다.


좀 길지만 다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이지요. 무심코 내뱉은 말이 아이의 가치관이 될 수 있어요. 공부 못하는 사람을 무시하는 사회 분위기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이지 않나 싶습니다. 네가 무시 당하는 것은 공부 못 하는 네 탓이라니요.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하는 제 말중에 잘못된 것은 또 없는지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문장 하나하나에 자신감과 확신이 깃들어 읽는 내내 수업을 받는 학생의 마음가짐으로 편하게 보았어요. 육아에 필요한 이러저러한 것 일단 다 빼고, 가장 중요한 걸 알기 원하시면 이 책 추천 드려요.

육아서를 읽을 때마다 드는 뻔한 생각이 있는데, 새삼 부모의 역할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아이의 도화지에 나는 마음대로 그림을 그려서는 안 되는 것 같아요. 붓을 쥐는 방법, 세상엔 다양한 그림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 그린 그림을 보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 등이 내게 허락되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역시나 오늘도 길어졌네요? 그래도... 당신에게 도움이 되는 글이었기를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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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어보니까 진정한 엄마 역할이 뭔지 알 수 있겠더라고요. 그 전에는 사회에서 강제로 씌운 엄마라는 가면, 내 엄마의 모습이 진짜고 전부인 줄만 알았어요.

잘못된 건 잘못된 거고요. 엄마도 미숙할 수 있어요.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모두 모성애가 있는 건 아닌 것 같고요.

이 책에서는 자기중심적이고 착취적이며 학대자인 엄마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사례가 담겨 있어요. 생각보다 극단적인 사례가 많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하니까요. 이보다 더 심한 엄마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대자인 엄마 밑에서 살고 있는 자녀들을 위한 대응법도 알려줘요. 실수로라도 입바른 소리 하지 않는 게 이 책의 특징이고요. 쉽사리 용서하란 말, 절대 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지독하게 자기중심적이며, 착취적인 학대자다. 자신의 자식조차 감정 쓰레기통이나 에너지 공급원으로 사용하며 끊임없이 남의 자존감을 도둑질해야만 살 수 있는 사람들이다.


책은 전체적으로 이렇게나 매운맛입니다. 돌려 말하지 않아요. 저자는 엄마가 나를 낳아준 사람이긴 하지만 내 정신에 지독한 피해를 입혔고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준 사람이란 것을 깨닫고 거리두기를 실천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그 거리두기가 '진정한 행복을 위한 첫걸음'이란 것을 알게 되어서 그 눈부신 발견을 독자들과 함께 하고 싶어 이 책을 펴낸 것 같아요. 

 

 

나르시시스트 엄마

 

 

 

나르시시즘 정신분석학적 용어로 자기애라고 번역하며 자기 자신에게 애착하는 일을 말해요. 그리스로마신화의 나르키소스 아시죠?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사랑에 빠져 시름시름 앓다가 죽은 그 청년이요. 나르키소스와 연관지어 독일의 정신과 의사 네케가 만든 말인데요. 엄마들 중에서도 이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람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가족은 꼭 나를 위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요. 내 말에 반기를 드는 사람은 불효자, 못된 남편이며 나는 비련의 여주인공이자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충실한 사람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죠.

그들의 내면은 사실 자기혐오와 불안, 자기 자신에 대한 의구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거예요.

 

어떤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몸이 아플 때마다 딸을 원망하기도 한다. "내가 너를 낳다가 병이 생겨서 지금까지 이 고생을 하는거야!" "어려서 네가 하도 밤에 잠을 안 자서 업어주다가 내 허리가 다 망가졌어!"라는 식이다. 이런 말을 들은 딸은 끔찍한 죄책감에 시달리기 쉽다.


일명 가스라이팅이라고도 하는데 이제는 너무 빈번한 일이라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분이 꽤 많을지도 모르겠어요. 엄마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들어보지 않은 분 계세요? 죄책감이 들게 하는 말을 들어보지 않은 분 계신가요? 그렇다면 그 분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금수저입니다.

저는 방임하는 부모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은 없으나 분위기로 읽을 수는 있었습니다. 저 집 딸은 그 회사에 들어갔구나, 부모에게 용돈을 그만큼이나 주는구나 싶어 스스로를 작아지게 만들곤 했죠. 다행히 저는 이제 그게 잘못된 방식이었음을 것을 압니다. 자녀에게 죄책감이나 무력감을 주어서는 안 돼요. 제 잘못이 아닌 그들의 잘못임을 알았기에 이제 저는 마음이 후련하기까지 합니다.

그런 말을 듣고 정말 내 탓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위해 저자는 그게 아니라고 강하게 손사래를 칩니다.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요.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요. 당신을 위해 당신은 그들과 거리두기를 할 필요가 있다고요.

 

여러분이 회사에서 부당한 요구를 받거나 인격 모독을 당한다고 해도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나약해 빠졌다" "이 악물고 버텨라" "다 네가 처신을 잘못해서지"라고 이야기 할 것이다. 부당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해도 엄마가 자신의 감정을 공감해준 적이 없기에, 딸은 사회적으로 굉장히 움츠러들어 있는 상태다. 그래서 누군가 자신을 학대하거나 이용해도, 내 목소리를 강하게 내야 할 때도 번번히 침묵하게 참게 된다. 자연히 이런 딸은 학교나 사회에서 '호구'가 되어버린다. 아무리 부당한 일을 당해도 누군가에게 이야기해서 도움을 얻기보다 그저 참고 인내하기만 한다. 누구도 나에게 공감해주거나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주 어려서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참는 것뿐이니까.


개인적인 이야기긴 하나 제가 어떤 집에 갔을 때의 에피소드 하나 들려드릴게요. 그 집의 아빠가 모르고 자녀의 물건을 버린거예요. 그런데 알고보니 모르고 버린 게 아니고 서랍을 열어서 자신의 판단 하에 쓸모 없는 물건인 줄 알고 버린 것이었죠. 하필이면 그게 딸에게 소중한 물건이었고요. 딸은 화를 냈어요. 내 물건에 함부로 손대지 말라고. 내 허락 없이 버리지 말라고.

저는 그게 건강하게 화내는 모습이라고 생각했어요. 더러는 '부모에게 화를 내는 게 바람직하다고?' 의문을 가지실지도 모르겠지만요. 물론 화가 올라오지 않았다면 좋았겠죠. 하지만 분명히 내 영역을 침범했고, 그게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하는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는 건, 저는 오히려 그게 더 건강하지 못한 대응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생각이긴 해요. 그 이후 그 집에 다시 놀러갔을 때, 다행히도 아빠와 딸은 이전처럼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어떠세요? 저희 집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에요. 감히 부모에게 화를 낸다고?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 말이 이해가 가지 않으신다고요?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의 부모님께서 당신의 화를 많이 인내해주셨다는 뜻이 되겠네요. 부럽습니다.

 

여러분이 지나간 일을 하나하나 들추며 이야기 하면 엄마는 "난 기억이 잘 안 난다. 너는 그런 사소한 것까지 다 기억하고 사니? 에휴, 얼마나 피곤하겠어"라고 발뺌하며 여러분을 예민하고 속 좁고 철없는 사람 취급할 것이다. 혹은 엎드려 절 받기 식으로 사과를 받을 수는 있다. "너 자신을 위해 부모를 용서해라"라는 말과 함께.


이런 부모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상처를 아이가 이야기 해주면 저는 고마울 것 같은데... 귀 기울여 줄거예요. 그리고 진심으로 사과할겁니다. '너는 그런 것까지 다 기억하고 사니? 이제 그만 잊어버려라' 라고 하는 게 아니라요.

자기 중심적인 부모 밑에서 힘들어 하는 자녀들의 말을 듣고 간혹 섣불리 단정 짓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무리 그래도 부모인데?', '부모 자식간은 그 어떤 것보다 끈끈하다!'는 식의 말을 하면서 말이죠.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보지 않았잖아요. 그런 말은 상처 받은 사람에게 또 상처가 되는 말입니다. 그 정도는 그 사람도 알고 있어요.

저는 뚱뚱한 자녀의 자존감을 깎아먹는 엄마 밑에서 괴로워 하는 동료에게 얼른 돈을 모아 독립을 하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는데요. 나름대로 열심히 운동하고 적게 먹는데 운동 좀 하라고, 그만 좀 먹으라고 잔소리를 하는 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했어요. 심성이 착한 아이였는데 엄마 얘기만 나오면 미간에 주름이 깊이 잡히는 게 참 안타까웠었지요. 지금은 독립해서 잘 살고 있나 모르겠네요.

 

당신은 지금까지 당신 가족에게 무엇이 가족간의 사랑이고 신뢰인지 수없이 이야기해왔을 것이다. 당신의 감정이 어떤지 수없이 애원하고 소리쳐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당신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당신이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가족은 자신들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다. 당신이 그토록 끊임없이 외쳤을 때는 아무도 당신 목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당신이 침묵하고 당신의 부재가 길어질수록 가족들은 오히려 당신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이건 여타 인간관계에도 그대로 적용이 가능한 말 같아요. 한 번 '호구'잡히면 그 사람이 하는 말엔 귀가 잘 기울여지지 않는 게 사람 본능인가 싶을 정도로, 한 번 화를 내거나 내지는 사라지는 정도라야 의문을 품지, 왠만해선 스스로 반성을 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뚱뚱했던 동료에게 얼른 독립을 하라고 한 것이었고요. 아무리 말해도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듣지 않을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들을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엄마의 얼토당토않은 시비와 떼쓰기에 지쳐버린 딸이 분노해서 소리를 지르거나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고 치자. 그러면 엄마는 "너는 철이 없구나" 혹은 "너는 예민하구나"라는 식으로 반응한다. 딸이 느끼는 감정을 철저하게 아마추어적인 반응으로 무시하는 것이다. 점차 딸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확신할 수 없다. 내가 점점 미쳐가고 있는 건 아닌 지 의심이 되고, 자신을 믿을 수 없어진다.


혹 이 말에 공감이 가신다면 B. A. 패리스의 비하인드도어, 브레이크다운 이라는 책을 추천해 드립니다. 여기서 남편을 엄마라고 상정해 놓고 보면 참 재미있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그래요.

 

 

[책] B. A. 패리스 - 비하인드도어 리뷰, 가스라이팅으로 버무려진 자극적인 심리스릴러 소설

제목은 생소할 수 있어도 이 표지는 익숙한 분들 많으실텐데요. 요즘 광고 많이 하잖아요, SNS에서. 저도 광고로 이 책을 처음 알았어요. 반은 속는 셈 치고 읽었는데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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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A. 패리스 - 브레이크다운, 누가 나를 고장내려 할 때

그녀의 작품을 또 읽고 말았습니다. 그녀 덕분에 '심리스릴러'라는 장르에 흥미가 생겼거든요. 제 글을 보아오신 분들은 저자의 이름이 낯설지 않으실거예요. [책] B. A. 패리스 - 비하인드도어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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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 그것에 반응하면 '예민하다', '철이 없다'는 식의 말로 상대를 할 말 없게 만드는 패턴, 아시죠? 그리고 그런 말을 계속적으로 함으로써 '내가 진짜 그런가?'싶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거 있잖아요. 사실 이건 가족 내에서만의 문제는 아니고 언제 어디서든 조심해야 하는거긴 하죠. 이렇게 세뇌하려는 사람들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조심해야 해요.

나르시시스트 엄마를 둔 많은 딸이 유년기-청소년기-초기 성인기에는 엄마를 돌보아준다. 누군가를 돌보고 보살필 때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 대체로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보다는 어딘가 부족하고 자신이 품어줘야 할 것만 같은 사람에게 끌리는 경우가 많다. 자신을 존중해주며 행복하고 건강한 연애를 할 수 있는 남자를 거부하고, 아무리 챙겨주고 보살펴주고 돌봐주어도 절대 만족하지 않는 엄마 같은 남자를 만난다. 그리고 평생 그 남자의 필요를 채워준다. 딸은 마치 자신이 평강공주라도 된 듯이 문제 상황에 처한 연인을 도와주려 애쓴다.


가정에서 결핍을 겪은 딸은 이상하게 자꾸 나쁜 남자를 만나려고 합니다. 어딘가 모자라고 삐딱한 남자만 만나려고 해요. 내가 저 남자를 정상적으로 살 수 있게 바꾸어 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봐요. 엄마를 바꾸고 싶었으나 성공하지 못한 그 노력을 남자친구를 통해 보상 받고 싶은 심리인걸까요? 이것도 한편으론 상대를 통제하고 싶은 욕망인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비난할 마음은 없고 안타까워요.

그 중에서도 마음 아픈 건, 평강공주를 자처하는 딸이 나쁜 남자와 결혼을 했을 경우. 또 딸을 낳으면요. 그 딸도 애를 쓰지 않는 이상 나쁜 남자를 만날 확률이 높다는거예요. 소중한 내 아이에게 이런 건... 물려주고 싶지 않잖아요? 그러기 위해선 일단 내 정신이 건강해야 하고, 정신이 건강한 사람을 만났을 때 알아챌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자신에게 결핍이 있다고 생각 된다면 더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고통스러운 치유 작업을 피하고자 많은 사람이 용서를 선택한다. 용서를 해야 내가 치유 되며, 결국 모두 행복해질 거라는 환상에 빠진다. 과거를 묻어둔 채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하지만 결국은 반복되는 희망 고문 속에서 실망감만 느낄 뿐이다. 이제는 아니다. 절대로 자신이 받았던 상처를 과소평가하고 외면해서는 안 된다.


저 심리상담 받을 때 심리상담가 선생님께서 여러가지 방법을 알려주셨는데요. 편지 쓰기, 입 밖으로 말 꺼내기, 내면아이 만나기 등 제 깊은 내면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도와주셨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단 한 가지 하지 않으신 게 있는데, 그게 뭐냐면요.

용서. 섣불리 엄마를 용서하란 말이요. 선생님은 용서를 하란 말 대신 '나는 그런 아픔을 겪었지만 내 아이에게만은 그런 아픔을 주지 않을거야' 다짐하게 도와주셨어요. 용서는 마음 안에 있는 어린 아이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도 함부로 '용서해'란 말은 해선 안 되는 것 같아요. 내 속의 어린 아이가 천천히 용서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도와주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아닐까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다는 건 당시 당신의 아이가 굉장한 상처를 받았다는건데 그 깊이를 무시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나의 엄마가 되어도 좋다. 우리에겐 스스로 돌보고, 사랑하고, 길러줄 수 있는 타고난 모성애가 있다. 마음속 엄마와 함께 나 자신에 대해 느끼고, 또한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마치 두살짜리 아이를 대하듯 따뜻하고 친절하게 가르쳐주자. "나는 사랑스러워" "나는 똑똑해" "나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야" "나는 재능이 있어" "내 내면과 외면은 모두 아름다워"라고 분명하게 이야기 해주자.


어느 순간부터 저는 제가 제 엄마가 되어주었어요. 맛있는 걸 먹여주고, 비난을 받으면 발끈하고, 저를 지키려고 애를 쓰죠. 엄마에게 사랑을 듬뿍 받았고, 받고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내가 내 엄마가 되는거예요.

때로는 비참하고 외롭고 공허할 때가 올 지도 몰라요. 그래도 어떡해요. 이 마음을 엄마가 아니면 채워줄 수가 없는데 엄마는 채울 생각이 없는 걸. 나라도 채워야죠.

심리상담가 선생님께 받은 팁 몇 개 공유 해드릴게요. 이제까지의 일생을 글로 한 번 쭉 써보는 게 도움이 돼요.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서요. 그리고 어릴 때의 내가 좋아할 법한 선물이나 음식을 먹여주거나 건네주는 것도 좋은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이건 제가 찾아낸 방법인데, 내 자존감이 올라갈 수 있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만남 후에 용기와 희망이 샘솟는 그런 사람들 있거든요? 그게 어린 아이든 랜선 친구든 상관없이요. 좋은 사람에게는 부드럽게 영혼을 달래는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저는 요즘 제 자신과 친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거울 속의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미소지어 주기도 하고 건강을 위해 건강식을 찾아 먹기도 하지요. 남들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기도 해요. 이런 방법을 알아서 다행이에요. 몰랐다면 저는 지금쯤 얼마나 피폐해져 있을지 상상만해도 슬픕니다. 

 

 


 

 

제목을 보고 '나는 왜 엄마 노릇이 힘든걸까?'로 오해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았는데, 이 책은 '나의 엄마'에 관한 것입니다. 나와 엄마 사이에 회의감이 들고 힘이 든다면 이 책을 한 번 보시기를 추천드려요. 백퍼센트 딸의 입장에서 쓴 책이라서 굉장한 위안을 받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반대로 내가 엄마 입장이라면 책장 넘기기가 어려울 것 같네요.)

오랜만에 매운맛 책을 읽으니 얼얼해요. 그래도 다시 한 번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어요. 제 자신에 대해 돌아보고 안아주고, 고생했다고 토닥여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상처받은 딸들에게 위로와 현실적인 대처방법을 알려주는 책. 자존감 도둑인 엄마로 인해 힘들어하는 수많은 딸들에게 이 책을 건네고 싶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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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포스터(IMPOSTOR)
란, 쉽게 말해 가면증후군을 뜻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늘 완벽한 모습만 보여야 하고, 내 민낯을 다른 사람이 알게 될까봐 불안해 하는 심리를 가진 사람을 뜻하는 것이죠. 듣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죠?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꽤 있다고 해요. 저 또한 임포스터이즘을 겪는 임포스터고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자는 메타인지 능력을 사용할 것을 제안합니다. (참고로 '메타인지 학습법'의 저자세요.) 메타인지는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정확히 아는 능력인데, 자신이 이제까지 걸어 오며 겪었던 시행착오와 숱한 실수를 잊지 않는 동시에 자신의 잘한 점은 인정을 해서, 남들로부터 칭찬을 들었을 때 자기비하적 겸손을 떨지 말라고 이야기 하고 있어요. 하지만 임포스터에게 가면을 벗는 법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또한, 가면이 언제나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고요.

우리가 쓰는 가면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만한 세 가지가 있는데, 본격적으로 말씀을 한 번 드려볼게요.

 

 




첫째, 천재가면. 자신은 처음부터 머리가 좋았던 사람인 것처럼 노력을 숨기고 결과만을 보여주려 애쓰는 사람들의 가면을 이르는 말입니다. 밥맛이죠.

둘째, 완벽가면. 완벽가면은 주변의 평가나 어른들의 말로부터 오는 영향이 클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서 또 흔하디 흔한 육아팁을 드립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너는 머리가 좋아!' 같은 칭찬을 하지 말라고들 하잖아요? 아이가 본인의 머리를 믿고 공부 하지 않을것을 염려해서요. 화려한 포장 뒤에 숨겨진 초라한 자신을 들키기 싫어 애초에 시작조차 하지 않는 이 완벽가면은, 부모가 아이에게 무심코 씌우기 쉬운 것이라 육아를 하며 늘 주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셋째, 겸손가면.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아도 제 스스로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 하는거예요. 사람들이 칭찬을 하는 덴 적어도 한 가지 이유가 존재하는데, 그 자리에 서기까지,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까지 늘 꽃길만 걸어오진 않았을 거 아니예요?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하고, 눈물 젖은 빵도 먹고, 배신도 당하고, 매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쉽지 않은 시간을 걸어왔을텐데 겸손가면을 쓴 사람들은 자신의 이 눈부시고도 영광스런 시간을 부정합니다. 일명 '자기비하적 겸손'을 떨어요.

자신이 겸손가면을 쓴 사람이라면요, 앞으로는 이렇게 해 보세요. '이제까지의 실수와 실패가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거예요.' 라고요. 똑같은 겸손인데 느낌이 사뭇 다르죠?

부모들은 "우리 아이는 주사 맞을 때도 우는 법이 없어. 너무 기특하지 않아?"라며 잘 참는 아이의 모습을 칭찬하곤 한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칭찬받을 만한 일인지는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가면을 쓰는 아이는 온순하고 착해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착함이 아니라 일종의 자기 숨기기다.


이런식으로 아이의 인생에 전반적인 영향을 끼치는 저의 말을 돌아보았어요. 주사는 아프고 무서운 거예요. 심지어 어른들에게도, 일순간 아픈 것임에는 명백해요. 그런데 아프지 않다고, 주사를 씩씩하게 잘 맞는 아이가 멋진 아이라고 우리는 얘기하죠. '거봐, 아무렇지 않잖아.' 스치듯이 흘린 제 말 한 마디에 아이는 조심스레 가면을 만들어 쓰고 다닐 준비를 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어요.

병원에서 소란을 일으키면 내가 귀찮으니까, 울면 달래기 힘이 드니까 아이에게 올바른 말을 해주지 못 한 것 같아요. 앞으로는 '주사는 처음 맞을 때만 따끔하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져. 네 병을 낫게 해주는 거니까 너무 불안해 하지마.'라고 얘기 해줘야겠어요.

 

내 딸 세린이도 망친 시험 때문에 기분이 상해서 시험에 대해 얘기하기를 아예 피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세린아, 엄마는 시험점수에는 큰 관심 없어. 시험지 가져와봐. 엄마랑 틀린 문제 같이 풀어보자."라고 하면, 아이도 시험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훨씬 더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된다.


메타인지 능력이 좋은 학생들이 성적도 좋다는 건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메타인지를 활용하여 공부할 수 있을까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모니터링.

어디부터 어디까지 모르고, 어떤 부분은 알고 있는지를 파악해요. 그리고 모르는 부분을 공부하면 됩니다. 틀린 문제는 왜 틀렸는지, 어디서 틀렸는지, 아는 문제는 왜 맞았는지 등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요. 또한, 자기가 현재 어느 수준에 와 있는지를 모르고 무작정 공부하는 건 옳지 못하다고 이야기들 합니다.

둘째, 컨트롤. 시험 점수가 나왔다면 이제 앞으로는 어떻게 공부할 것인지 학습 방향을 스스로 설정해 보는 것이에요. 참고로 첫번 째와 두번 째 모두 타인이 해 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고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본인이 해야 합니다. 제대로 된 목적과 목표 의식을 갖고 공부를 하면 효율은 물론이고 집중도도 좋아지지요. 그렇다면 이 두 가지를 자녀가 스스로 하게끔 만들려면 부모는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는 걸까요?

저는 부모의 가장 큰 역할은 동기부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습 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죠.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아이가 스스로 실수하고 굴러가며 깨닫는 과정인 것 같아요. 공부하는 내 모습을 보여주고, 공부를 하면 좋은 점을 알려주고,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도록 다양한 경험들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진짜 부모역할 아닐까요?

가령 사르트르에 관한 에세이를 잘 써냈다는 이유로 "넌 철학자구나" "전문가 같은데?"같이 과한 칭찬을 해주면, 아이는 더이상 배움이 필요 없는 단계에 도달했다고 착각하게 된다. 이런 착각에 빠진 아이는 자신이 모르는 문제를 만났을 때 이 분야를 다 알지 못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임에도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창피하게 여길 수 있다. 성공에 대한 두려움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지나친 칭찬이 아이에게 독이 된 경우다.


아이를 향한 칭찬이 독이 되는 경우에 대한 좋은 예시네요. 사람은 자신이 한 일에 비해 거창한 평가를 받으면 다음부터 이전과 같이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흐름을 탈 수가 없게 됩니다. 의식을 하기 시작하죠. 예시처럼, 나는 이제 도움이 필요 없는 단계에 도달했다고 과신하거나 '저번에 받은만큼(칭찬) 하지 못 하면 실망할텐데, 차라리 시작하지 말까?' 하며 내 의도와는 다르게 스스로의 잠재력을 막아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과도한 칭찬은 독이라고 하죠. 결과가 아닌 과정을 칭찬하라고도 하고요.

 

아이의 목표가 이뤄졌다면 그것은 아이의 노력과 운,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임을 인정하자. 하지만 아이가 스스로를 믿고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성공이 가능했다는 사실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균형 잡힌 양쪽의 사고가 가능하다면, 아이가 '나 혼자서는 잘 못한다'고 느낄 때 부끄러워하지 않고 솔직하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가면을 벗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성공엔 수많은 요인이 작용하고 결합하여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가면을 벗는 손쉬운 방법은 그냥 들켜버리는 것인데요. 남의 손 말고 내 손으로요. 부족함을 인정하고 도움을 청할 줄 알면 됩니다. 그럼 완벽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고요. 불안감이 완화 돼요. 또한, 가장 좋은 점은 이제 다른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내 자녀가 어리다면 이미 쓰고 있는 이 가면을 '네 스스로 벗어라'라고 한들 손끝 하나 대지 않을거란 건 자명하잖아요? 그럴 때 저자의 육아팁을 활용해보세요. 네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운과 너의 노력, 그리고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해줘 보세요. 모든 것이 균형을 이뤄 지금을 만들었고, 너는 앞으로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 필요가 있고, 자격이 있다고요. 물론, 아이 스스로 메타인지를 발휘해 깨닫는 게 가장 베스트겠지요.

메타인지에는 내가 해낸 모든 과정을 인정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자신이 못한 것뿐만 아니라 잘해낸 것, 성공한 것까지 모두 인정하고 자랑스러워할 자격이 있다.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는 우리나라에서 쉽지 않겠지만, 아이가 메타인지를 발휘해 스스로의 성공에 칭찬을 해줄 줄 아는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어요. 저자는 이런 자세가 진정한 겸손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저도 저를 돌아봤어요. 늘 못 하는 것만 부각해어 보곤 했는데, 저도 잘하는 게 꽤 있고, 이루어놓은 것도 있더라고요. 늘 목마른 사슴처럼 부족하다고만 생각했거든요. 그 시간들이 모두 모여 지금이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새삼 진하게 고생한 제가 기특하게 느껴져요.

 

 




가면증후군, 임포스터. 책은 메타인지를 이용해 임포스터이즘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또한, 가면이 꼭 필요한 때도 놓치지 않고 언급하는데요.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생존하기 위해 가면을 씀은 불가피해요. 하지만 그 행위가 나를 위한 것이냐 타인을 위한 것이냐 스스로에게 솔직히 물어보는 게 중요하겠죠.

실험 이야기 하나 들려드릴게요. 맛보기 실험을 했대요. A그룹에는 초콜릿을, B그룹에는 무를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나서 모두에게 퍼즐을 풀게 했다는데요. 과연 어떤 그룹이 퍼즐을 더 오래 풀었을까요?

결과는 초콜릿을 먹은 그룹이었습니다. 무를 먹은 B그룹은 무를 먹을 때 이미 자제력을 상당 부분 사용해서 퍼즐을 풀 에너지가 없었던 거예요.

눈 앞에 보이는 초콜릿을 먹고 싶지만 꾹 눌러참는 그 순간, 참가자들은 가면을 썼습니다. 가면을 쓰는 행위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입니다.

 

 

저는 아이가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해요. 마음 편한 삶을 살았으면 해요. 제가 살아보니 임포스터의 삶은 피곤합니다. 매번 가면을 쓰고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감추는 인생은 그야말로 불행한 시간의 연속이에요. 그래서 부모로서 저는 아이에게, 제가 저의 모든 것을 끌어안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하는데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요. 아이가 임포스터의 삶을 살지 않기를 바라요. 오늘도 저부터 잘해야겠다는 결론이 나네요. 결과보다는 과정의 중요성을, 올바른 칭찬과 제대로 된 말 한 마디를 해주는 하루를 보내겠습니다. 오늘 리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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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감하다의 반댓말이 예민하다, 라는 거라면 저희 아이는 조금 예민한 편에 속하는 것 같아요. 특정 음식이나 소리에 소스라칠 정도의 경기를 일으키는 건 아닌데요. 지금이 32개월인데 아직도 새벽에 깨서 저를 찾고요. 계란 외의 다른 음식들은 간이 조금만 달라져도 입에 대지 않으려 해요. 낯선 사람들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이 조금 걸리지요.

하지만 그런 아이가 저는 이상하게 느껴지진 않습니다. 기질이니까요. 이 책에서는 예민한 아이 잘 키우는 법이라고 했지만, 제가 따로 부제를 붙여볼까 해요. '예민한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태도'. 이 책의 전반전인 내용은 예민한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에 관한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단순한 해결책보다 예민한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바람직한 자세가 우선이라고 보았습니다. 부모의 마음가짐,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구체적인 양육법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양육은 '기술'이 아닌 '태도'의 문제라고 믿습니다. 또한 이미 상황과 연령에 따른 문제 해결법은 쉽게 접할 수 있으니 다른 관점으로 쓴 책이 독자에게 더 큰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너무나 옳은 말이죠? 육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태도라고요. 부모의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거죠. 그 마음을 기본으로 하되 육아기술을 접목시키면 아이도 부모도 행복한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며 함께 나누고 싶었던 부분 체크해 두었어요. 덧붙여 제 생각도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부모의 양육 태도와 성장 환경이 아이의 예민함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아이의 기질에서 비롯된 이유가 분명히 있겠지만요. 저는 환경이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저희 아이가 계란 외의 다른 반찬에 낯선 간이 들어가면 입에 대지도 않는다고 했잖습니까? 고기는 물론이고 조림, 무침, 어쩔 땐 구이도 먹지 않아 애가 탈 때가 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지금 아이를 키운지 벌써 천 일이 다 되어가는데 제가 아이 앞에서 밥 먹는 모습을 보여준 게 외식을 제외하곤 열 손가락 안에 꼽더라고요. 아이를 먼저 먹이고 남는 자투리 시간에 밥을 먹었기 때문이죠.

엄마가 먼저 먹는 모습을 보여야 아이도 따라 먹는다고 하는데... 엄마는 먹지 않으면서 내게만 자꾸 권한다? 게다가 그게 낯선 음식이다? 그럼 당연히 저라도 거부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첫 아이고, 제게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말그대로 애지중지 하며 키워왔는데요. 얼마 전에 깨달았어요. 키즈카페에 가면 저희 아이보다 어린 아이들도 혼자서 잘만 놀더라고요? 저희 집은 항상 저나 아빠가 아이 곁에 꼭 붙어 있거든요. 그래서 아이가 다른 친구들과 상호교류하는 시간이 적어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때, 제 뒤에 숨는 행동을 하는 건 아닌가 싶었어요.

그래서 이제는 친구들에게 먼저 말을 걸도록 도와주고, 저희 시야에 아이가 보이는 거리를 유지해 혼자 놀도록 두기도 하고, 밥은 가능하면 같이 먹으려고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부모가 노력 하면 아이도 조금씩 바뀔거라고 생각해요.

 

일부 예민한 사람은 예민해서 불행해하기도 합니다. '난 왜 이럴까?', '왜 나만 유별날까?'라고 자책합니다. 현재와 미래가 아닌 과거에 집착하면서 자신이 실수했거나, 혹시나 실수했을지도 모르는 일을 계속 떠올립니다. 자책과 후회로 우울과 불안을 느끼며 자존감은 점점 떨어집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피하고 긴장을 풀기 위해 술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는 '예민함' 자체를 문제라고 보진 않습니다. 예민함을 잘 다루지 못해 일어나는 부정적인 상황들을 걱정할 뿐이죠. 자신의 예민함을 잘 다루지 못하면 자기 스스로와 상대방을 힘들게 만듭니다.

위의 글을 한 번 보세요. '나는 왜 이럴까?' 하는 자책감과 무력감,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이 예민한 사람들을 힘들게 만듭니다. 물론 예민함을 잘 다루면 괜찮습니다. 오히려 강점이 되죠. 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특별한 강점을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평생에 걸쳐 힘든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습니다.

아이가 불안함을 느끼고 초조해할 때, 마음을 공감해주고, 감정을 읽어주고, 보다 나은 방법을 제시해주세요. 그게 꼭 정답은 아니라 할지라도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아이를 위한 솔루션은 반드시 아이의 마음에 가닿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민함의 부정적인 결과를 예민함의 고유한 특성으로 오해합니다. 그렇기에 예민함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봅니다. 하지만 예민함 자체와 예민함을 잘 조절하지 못해 생긴 부정적인 결과는 별개입니다. 예민함 자체는 좋고 나쁜 것이 아닙니다. 예민함을 잘 조절하면 부정적인 결과가 아닌 긍정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예민함이란 받아들이는 자극과 그것에 대한 반응이 크다는 특성을 말하는 것이지, 좋고 나쁨, 옳고 그름,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기억하길 바랍니다.


위 글도 이 책의 핵심입니다. 예민함과 예민함을 잘 조절하지 못해 생기는 부정적인 결과는 별개라고요. 예민함은 다를 뿐이지 틀리다거나 나쁜 게 전혀 아니라고요. '예민하다'라는 말 자체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씌어져 있어 떠올리기만 해도 생각이 치우쳐버리는 건 저도 매한가지입니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해요.

 

예민한 아이는 관찰력이 좋습니다. 예민한 아이는 다른 사람의 기분, 생각, 기대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민한 아이는 공감 능력이 좋습니다. 여러분의 아이가 남의 눈치를 많이 본다면, 소심해 보이는 아이의 겉모습에 속상해하기보다는 아이의 잠재력에 기뻐해 주세요.


드디어 나왔네요, 예민해서 좋은 점. 예민한 아이들은 화질로 따지면 고화질, 음질로 따지면 고음질로 세상을 보고 듣습니다. 고화질, 고음질이 얼마나 좋은 지 여러분 아시죠? 같은 것을 보고 듣더라도 그 감동은 배가 되잖아요. 예민한 아이들은 그렇게 세상을 바라봅니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 맑은 새소리, 반짝이는 밤하늘, 붉에 물든 노을을 보며 자신의 인생을 더욱 다채로운 색깔로 칠하는거예요. 그로인해 얻게 되는 예술적인 영감과 경험은 또 얼마나 값진가요? 그렇게 예민한 아이는 작은것에도 크게 기뻐하는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예민한 어른이신 분들, 공감하시죠.)

또, 예민한 아이들의 특장점. 바로 공감능력이 좋다는 건데요. 실제로 머리가 좋아야 공감을 할 수 있거든요.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상대의 기분을 알아채고 그에 맞는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달란트예요. 이런 아이들이 교우관계도 좋고 학교 생활도 잘해요.

다만, 다른 사람의 기분과 생각에 반응하느라 자기 자신을 소홀히 하면 안 되겠지요. 그로인해 일어나는 부정적인 결과들로 인해 자신의 '예민함'을 싫어하게 될 수도 있어서요.

저 또한 예민한 사람이라 이 점을 늘 유념하고, 강점은 더 부각하는 그런 인생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눈치를 보면서 남의 기분만 맞추려는 아이에게는 자기 생각과 감정을 좀 더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모든 사람의 기분을 맞추지 않아도 괜찮다는 점을 알려 줍니다.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전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아이의 옆에 꼭 붙어서 알려주거나 나중에 단둘이 있게 되었을 때 알려주는 것도 좋지만 제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런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는 것' 같아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되 내 생각과 감정을 명확하게 말하는 과정과 결과를 보면서 아이는 스스로 깨달을거예요.

저는 얼마전에 이런 신조를 세웠어요. 첫 번째, 내 감정이 가장 중요하다. 두 번째, 타인에게 모욕감을 주지 말자. 이 둘의 균형이 깨지면 저나 상대방이 힘들어지더라고요. 저도 이렇게 애쓰고 있습니다.

 

아이가 이미 충분히 참은 것은 아닌지, 아이가 특정 상황에서 버틸 힘이 남아 있는지, 상황을 받아들일 준비가 충분히 되었는지를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또한 아이가 받은 자극이 얼마나 큰 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이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예민함을 조절하려 한다면 그건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겠죠. 부모의 욕심일 뿐. 이 상황의 주체는 아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나는 그저 도와주는 역할이라는 생각을 해요.

저희 아이는 낯선 사람과 말하기를 쑥스러워 하는 편인데요. 어제처럼 '안녕'이란 인사에 똑같이 '안녕'이라고 말을 하지 못 했어도, 어제보다 더 오래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칭찬받을만 한 것 같아요. 아이 딴에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거니까요. 어른의 잣대로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 아이는 이미 충분히 참은 것이 아닌지... 더 들여다보는 습관을 가지려고요.

남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까봐 친구의 무리한 요구도 들어주는 아이에게는 거절하는 연습이 꼭 필요합니다. 남에게 상처 주지 않으면서 본인의 의사를 전달할 방법을 부모와 함께 고민해 보세요. 아이 스스로 방법을 생각하지 못한다면 부모가 알려 줄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도록 연습합니다. "나도 도와주고 싶지만, 그건 내가 할 수 없을 것 같아"처럼요. 아이와 역할극을 해 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아이가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과 남에게 나쁜 평가를 받는 것은 별개라는 점도 추가로 알려 주면 좋겠죠. 다른 사람의 시선에 예민한 아이는 사람 앞에서 발표하기를 꺼립니다. 발표를 피할 수 없다면 아이는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이때도 아이에게 준비와 연습이 필요합니다. 준비하는 만큼 덜 불안해할 수 있습니다.


제가 예민한 사람이라 이 마음 너무 잘 알아요. 예민하면 쉽게 불안해지거든요? 그리고 완벽주의 성향도 꽤 높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을 시작하면 과정보다는 결과에 연연하는 경우가 있고, 애초에 성공하지 못할 것 같으면 시작하지도 않는 버릇도 조금 있어요.

저같은 사람에게 필요한 건... 연습이에요. 그냥 하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과 소통을 해야 하는 경우엔 직접 입 밖으로 말을 내뱉어 보는 것도 상당히 도움이 돼요. 저는 아이 친구 엄마들 모임에 처음 나갔을 때 꽤 긴장을 했었는데, 그 다음부터는 해야 할 말을 몇 개 준비해 가니 이전보다 떨리진 않더라고요.

예민한 사람의 불안함을 잠재울 수 있는 건, 단언컨대 타인이 결단코 아니고요. 스스로 조절을 해야 하는데 저같은 경우에는 저를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원하는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 '나를 위로해 주는 사람'으로 지정해두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전보다는 확실히 한결 나아요.

마음 공부랄까요, 예민한 사람들에게는 자기 자신에 대한 공부가 필수적인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가 예민하다면, 부모가 연습 대화 상대가 되어주세요. 연습 하다보면 좀 괜찮을거예요. 공부도 성적이 안 나올까봐 걱정이 되어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면, 아이에게 맞는 단계별로 조금씩 성취감을 느끼며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 불안함을 단단한 자존감으로 제스스로 뒤바꿀 수 있게요.

 

글쓰기가 능숙한 아이에게는 일기를 써 보라고 해도 좋습니다. 아이가 글을 쓰는 동안 어떤 상황에서 왜 힘들어하는지를 스스로 찾아낼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그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혹시라도 다르게 생각했을 수는 없는지를 물어보세요. 아이가 덜 극단적이고 덜 부정적인 생각을 떠올렸다면 좋은 신호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어떤 해결책이 있을지도 미리 함께 고민해 봅니다.


또한 저자는 자신에게 해줄 칭찬이나 격려의 말을 미리 준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조금 천천히 하는 아이야. 그러니까 내 속도대로 차분히 하면 돼.' 같은 말이요. 일기 쓰기와 입 밖으로 말을 꺼내보는 등의 방법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이 예민함을 조절하겠다는 뜻입니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경험이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옆에서 그럴 필요 없다고 얘기하는 건 소용 없어요. 예민한 아이가 스스로 단단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지혜로운 방법으로 도와주세요.




 

 

중간쯤 읽다가 어느새 듣는 사람을 어린 제 모습으로 상정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어요. 부모님이 내게 이렇게 해주셨다면 좋았겠다, 이런 말을 해주셨더라면 좋았겠다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했네요.

이 책은요. 조금 불친절해요. 무슨 뜻이냐면, 부모를 위로하진 않아요. 100퍼센트 예민한 아이의 편에 서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읽다가 조금 지치는 감이 없잖아 있었어요. '부모노릇 하기 힘들다' 싶은 생각도 들었었고요. 하지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정확히 전달 받았기 때문에 후회는 없습니다.

저희 아이가 32개월이잖아요. 예민한 아이의 어린 시절에 부모의 힘듦은 불가피한 것 같아요. 예민함을 잘 조절하기도 어려운 나이일 뿐더러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기보단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일이 더 많으니까요. 제가 초보엄마라 아직 도와주는 방법이 어설퍼 그런걸까요?

육아는 산넘어 산이라는데, 나중을 기약하며 지금 포기하면 안 되겠죠. (나중엔 더 힘들수도 있으니...) 노력해볼게요. 그럼, 오늘 리뷰는 여기서 마칠게요. 추워졌어요. 감기 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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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다른 육아서와 조금 다릅니다. 10년간의 암투병을 한 아이 엄마가 쓴 책이에요. 담백하게 하시는 말씀이 오히려 더 절절하게 다가와서 마음이 아팠는데요. 다행히 아이는 5년 내 생존률 5%라는 희박한 가능성을 뚫고 지금은 잘 살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에 오기까지, 책을 쓰기까지 가족이 겪었을 아픔과 힘듦은 저는 감히 가늠조차 하기가 어려워요.

'중추신경계 림프종' 이라는 희귀암이었어요. 명문대를 나온 엄마 밑에서 영재판정을 받은 아이가 어느 날 듣게 된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죠. 키는 어느정도 선에서 멈춰버리고, 시각장애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그로인해 겪는 사회적인 시선과 차별, 그리고 엄마의 편견... 장애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가 있었는데요.

제목은 무슨 뜻일까요? 길고 긴 투병생활을 함께 하며 엄마는 깨달아요. 내가 엄마여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하늘의 뜻이 그러하다면 받아들일 수 밖엔 없다고. 그 사실을 깨닫고 엄마는 아이와 매 순간을 생생하게 살아내려 노력해요.

우리는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며 현재를 낭비하는 엄마들을 많이 보죠. 이 엄마는 미래를 기대하기보다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아이에게 최선을 다합니다. 사람들의 시선과 말은 괘념치 않아요.

뻔뻔한 엄마? 저는 이 엄마야말로 진짜 엄마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앞세워 자기 욕망을 채우려는 게 아닌 진짜 아이가 원하는 걸 주려는 마음을 봤어요. 10년간 아이의 투병생활로 내공이 단단히 쌓인 분 같기도 했습니다.

오늘 제 리뷰는 늘 그래왔듯 책을 읽으며 하이라이트 해 두 었던 부분에 제 생각을 덧대는 형식으로 진행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걱정한 것은 '내 인생'이었다. 어떻게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생겼는지가 억울했다. 건강하고 똑똑한 아이로 길러 내고 싶은 바람은 물거품이 되었고, 내 커리어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편안하고 재미있게 키우고 있던 둘째 아이도 남의 손에 맡겨야 할 형편이 되었다. 무엇보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막막한 벼랑 끝에 서서, 앞으로 펼쳐질 상황을 견뎌 내는 일만 남았을 뿐, '선택'이란 더이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웠다.


이렇게 솔직할 수가 있나 싶어요. 안에 있는 치부를 다 꺼내 보여준 느낌. 제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솔직합니다. 아이가 암에 걸려 슬피 울던 내 모습이 실은 내 인생이 불쌍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그림이라니... 뜨끔합니다.

저도 아이가 위험한 상황에서 아이가 걱정스러운 마음 반, 내가 귀찮아질 게 뻔해 미리 제지하고 싶은 마음 반임을 고백해봐요. 심지어 아이가 아파서 응급실에 데려갔을 때 지금보다 더 불편한 내일이 오지 않도록 갖은 애를 쓰진 않았었나, 도 생각해봐요.

이런 생각을 하고 난 다음에는 가차없이 그 감정이 밀려오곤 합니다. '죄책감'. 나는 엄마도 아니다, 엄마가 이래도 되는건가? 회의감도 질 수 없다는 듯이 밀려오고요. 늘 결론은 '엄마도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겠어?'로 끝나곤 하지만, 마음이 무겁고 찜찜하지요.

이 책을 읽고 저는 비로소 조금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됐어요. 받아들이는거예요. '나는 이렇게 약한 인간이다. 다만, 나는 내 아이가 위험에 빠졌을 때 구해낼 의무가 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 라고요.

나는 아이를 통해 내가 '좋은 엄마', '훌륭한 엄마'임을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100점짜리 성적표를 받아서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이는 엄마가 하라니까, 엄마를 사랑하니까, 엄마의 사랑을 잃고 싶지 않으니까, 엄마가 하라는 대로 했다. 나는 아이의 그 지극한 사랑의 마음을 내 인생을 장식하는 장식품으로 사용했다.


내 자신이 빛나보이기 위해 아이의 인생을, 시간을, 감정을 소모시키는 일이 없어야 하는데, 아이의 순수하고 지극한 마음을 엄마라는 이름 뒤에 숨어 얼마나 이용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일이 그래요. 아이의 미래를 위한답시고 하는 일, 실은 그 안에 내 욕망이 숨어있음을 인정해야 해요. 지금, 혹은 나중에 나는 '어떤 엄마', '몇 점짜리 엄마'일까를 계산하고 나온 행동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가 없어요.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금방 합리화가 되는 점 유념할게요. 앞으론 제 이익이 아닌 아이를 위한 선택을 하도록 더 신중을 기하는 엄마가 되도록 노력할게요.

나도 모르게 아이의 숨소리를 세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면 얼른 아이의 몸에 코를 묻었다. 보들보들한 감촉, 따뜻한 온기, 쌕쌕거리는 숨소리, 엄마인 나만 알 수 있는 아이의 살냄새에 온 감각을 맡기고 있노라면 불안함에서 빠져나와 '지금 여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불안에 빠지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 지금 가진 것만으로 누릴 수 있는 충분한 자유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맛있는 밥을 먹을 자유도, 서로 눈 맞추고 웃을 자유도, 서로를 따뜻하게 안을 자유도 있다. 엄마들의 불안은 숙명이라지만, 벗어날 방법은 분명히 있다.


엄마이기 때문에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순 없어요. 내 욕망이 포함되어 있다 뿐이지 그렇다고 내가 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거든요. 인생을 먼저 살아봤기 때문에 바르고 빠른 길을 알잖아요. 그래서 저는 삶에서 놓쳐선 안 되는 것들, 놓쳐야 하는 것들을 알려주고 싶어요.

하지만... 그 생각에 너무 빠지다보면 아이의 '현재'와는 멀어지고, 어느새 '미래'만 보며 아둥바둥하는 엄마가 되어 있을지도요. 고맙게도 저자는 그 불안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해결책을 우리에게 제시해요.

아이의 온기, 숨소리, 나만 아는 살냄새. 온 감각을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아이에게 집중하라고요. 우리에겐 그럴 자유가 있다고요. 불안은 내가 만들어낸 거지만 평온함은 아이에게서 와요. 아이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어주나요?

좋은 게 좋은 게 아니라는 걸, 나쁜 건 나쁘다는 걸 그 때 분명히 말했어야 했다.


저자의 아이는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장학사가 학교에 왔을 때 반에서 쫓겨났었어요. 엄마는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됐고요. 그 상황을 만든 장본인은 전혀 미안하지 않은 얼굴로 사과를 하고 대충 무마하고 넘어가려 했다고 합니다. 엄마는 그런 상황이 처음이기도 하고, 화가 나지만 당황스럽기도 한 상태로 그녀에게 장애인들을 이해하는 시간을 보내라고 요구해요.

하지만 알았다는 대답과는 다르게 이행하지 않지요. 저자는 지금도 그 때와 비슷한 상황을 보거나 들으면 무척 화가 난다고 합니다. 저라도 그럴 것 같아요.

선배엄마가 '그 때 화냈어야 했다!'고 초보엄마들에게 예방주사를 놔주셨는데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저는 시뮬레이션을 돌려볼래요. 어색하고 어설프지만, 입 밖으로 말을 하는 연습을 해서 아이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는, 아이 눈에 멋있는 엄마가 되고싶어요. 남의 아픈 상처를 통해 교훈을 얻어 미안하네요.

만약 내가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분명하게 말할 것이다. 그리고 말하기 전에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엄마들과 연대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은 인간의 능력과 조건을 넘어서 서로가 존중하는 세상이라고, 서로의 선의를 믿는 세상이라고, 교사라는 자리에 있으려면 가장 여린 영혼에 대한 존중을 갖춰야 한다고, 그럴 수 없다면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말하고 적합성을 가릴 것이다. 내가 엄마가 된 의미가 바로 그것이니까.


같은 생각을 가진 엄마들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상심치 마세요. 내가 힘을 키우면 되니까. 다시 한 번, 이 말도 선배엄마가 초보엄마들에게 놔주는 예방주사라고 생각하자구요. 내가 더 멋지고 능력있는 엄마가 되어서, 할 말은 하는 똑부러진 엄마가 되어서, 아이가 제 힘으로는 이겨내지 못 하는 불합리한 상황을 겪을 때 위기에서 잘 빠져나올 수 있도록 우리가 힘을 보태주자구요!

나는 재빨리 내가 1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되돌아보았다. 무언가를 한 기억은 나지 않고, 무언가를 하지 않으려 애썼던 기억만 났다. '그건 잘했고 이건 잘못했어'라고 판단하지 않으려 애썼고, 정답을 주지 않으려 애썼고, 내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애썼다. 유일하게 하려고 애썼던 건 아이의 말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펜을 들고 받아 적으며 집중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이에게 휴식과 자유를 주었다니.


가족은 퇴원한 아이와 함께 지리산으로 거처를 옮겨요. 공부와 미래에 대한 압박을 내려놓고, 아이가 하고픈대로 엄마는 이제 따라만 갑니다. 유일하게 본인이 했던 일은 아이가 했던 말을 놓치지 않으려고 펜을 들고 받아 적은 것이었대요.

아직 미혼인 사람은 아이에게 휴식과 자유를 주는 일이 어려운 게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근데요, 이게 생각보다 어려워요. 엄마가 되면 있죠? 신경쓰라고 세상에서 갖가지 말을 다 쏟아내거든요. '이거 하면 아이 지능이 좋아져요', '지금 이 시기에 해야 해요', '다른 아이들은 다 하는 이거!' 귀가 쫑긋하는 수식어를 죄다 붙여가면서요.

아이에겐 최고로 좋은 것만 주고 싶은 우리 엄마들의 마음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거죠. 그런데 다른 엄마들도 다 한다니 뭔가 있을 것만 같고, 우리 아이만 안 하기엔 좀 그런 것 같아 나도 시작하게 되는... 뭐, 그런 악순환을 알면서도 시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위와 같이 아이가 하자는대로만 마냥 따라가기만 하는 삶이 말처럼 쉬운 게 결코 아니예요.

그래도 언젠가는, 단 한 달이라도요. 아이에게 진정한 휴식을 주는 날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정신 없는만큼 아이도 정신없을테니까, 신체적 정신적으로 오롯한 휴식을 선물해주고 싶어요.





여러가지 이유로 제목을 저렇게 붙였을거예요.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뻔뻔한 엄마로 보일 수도 있죠. 그러나 저는 현실을 그저 받아들인 사람에 대고 뻔뻔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네요. 아이도 그런 엄마를 예전보다 더 좋아할 것 같고요.

오랜 투병생활을 지켜보며 마음이 단단해진 엄마의 회고를 담은 책. 감히 이 안에서 무언가를 배워간다는 말을 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소중한 책이었습니다. 이미 그 시간을 지나온 엄마로서 지금 그 길을 걷고 있는 엄마들에게 건네는 육아팁도 중간 중간 담겨있으니 여러 의미에서 읽을만한 가치가 있어요.

책을 덮고, 저는 절망적이고 슬픈 상황에서 눈물을 흘리며 감정을 표현하는 것보다 나는 받아들였다는 태도가 오히려 마음을 더 울린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어요. 오늘 리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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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40년간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치유해 온 정신과 의사가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의 지혜가 담긴 책입니다. 전문의로서의 통찰, 엄마로서의 직언이 한데 담겨있지요. 읽으면서 따님이 참 부러웠습니다. 절제된 문장에서 딸을 향한 사랑은 감출수가 없었거든요.

이 책의 장점은 작가님의 성격에서 비롯된 것 같은데, 입바른 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꼽고 싶습니다. 담백해요. 딸아, 딸아, 하고 부르실 땐 괜시리 따듯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요.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느낌의 책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 가치관과 닮아있어 매우 공감하며 읽었어요. 그렇게 하이라이트 해 두었던 부분 인용하여 제 생각도 덧붙여 보는 시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

딸아, 만약 누군가 너에게 여자의 미덕을 이야기하고 모성을 운운하며 우리네 어머니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하거든 귀를 닫아버려라.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해라. 만약 상대방이 "참 못됐다"라고 말하면 칭찬으로 들어라. 그래야 많은 역할을 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으며, 너 자신을 지킬 수 있다.


이런 말을 하는 어머니 몇 분이나 계시나요? 저희 어머니는 늘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요, 그래야 탈이 없다고요. 저는 그 말이 저를 틀 안에 가둔다고 생각해서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순리대로 산다는 건 여성에게 엄청난 희생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거랑 똑같은 것 같거든요. 잘못된 풍습과 가치관은 고쳐야죠.

저는 딸을 낳아서 이런 생각이 더더욱 강해요. 어머니, 모성 운운하며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들, 희생을 강요하는 것들 제 대에서 최대한 끊어내고 싶어요. 아이는 제 뒷모습을 보고 자랄테니 제가 잘해야겠죠. 위와 같은 말은 적절한 때 해주는 게 좋겠다 싶어 하이라이트 해 두었었어요.

어느 미대 수업에서는 학생들에게 100개의 시안을 한 번에 제출하라는 과제를 내 준다고 한다. 뛰어난 작품하나를 만들기 위해 고심하는 것보다 어떤 것이든 100개를 그리면 그중에 뛰어난 작품이 나올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하는구나. 미완성을 견디는 것도 습관이다. 그리고 일단 하는 것 자체가 습관이 되면 정교하게 다듬는 일은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다.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제게 따스하게 일침을 가하는 말이었어요. 완벽하게 끝낼 생각 말고, 일단 하라고. 예를 들어볼까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이 블로그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미완성을 견디고 있습니다. 완성을 위해 매일 조금씩 정교하게 다듬고 있지요.

하다보면 언젠가는, 하는 마음이에요. 방향만 제대로 설정하고 꾸준히 나아가면 언젠가는 될 거라고요. 제 스스로도 만족할 수 있을만한 블로그가 될 거라고. 공부든 일이든 취미든 인생의 어느 때에도 적용 가능한 지혜로운 말인 것 같아 나누고 싶었습니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인생 최고의 기쁨은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에서 나온다. 좀 더 정확히는, 자신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받고 있다는"이라는 말을 남겼다.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기쁨이다. 그러니 어떤 경우에라도 타인을 사랑하는 일만큼은 보류하지 말자.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완성할 수 없다. 꽃도 벌이 날아와 당분의 균형을 잡아 주고, 애벌레가 꽃잎의 표면을 매끄럽게 해 주듯, 인간에게도 타인의 손길만이 채울 수 있는 공백과 결핍이 분명히 존재한다.


끊임없이 연애를 하고 일적으로 성공을 했음에도 늘 외로움에 둘러싸여 있는 사람이 있어요. 그건 고독과는 조금 다르지요. 꼭 제 안에 동그란 구멍이 뚫려있는 느낌? 그 구멍이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성취를 해도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걸 어려워 하더라고요. 말이 나와서 말인데, 대체 이 구멍은 '언제' 생기는 걸까요?

저는 어릴 때 부모에게 받았어야 할 관심과 사랑이 부재함으로 인해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전문가들이 아이와 부모의 애착관계가 중요하다고 입이 닳도록 얘기하는 이유가 있다니까요. 실제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치니까요.

저는 부끄럽게도 구멍이 있는 사람인데요. 제 아이만은 이런 허망하고 끊임없이 외로운 마음의 지옥을 겪지 않았으면 해 제가 할 수 있는 가능한의 많은 사랑을 전해주려 노력하고 있어요. 네가 무슨 말을 하고 행동을 하고 생각을 해도 나는 네 편이라고, 이유없이 너를 사랑하는 나는 무조건 네 편이라고, 네 생각을 들을거라고, 너를 외면하지 않을거라고. 다양한 방식으로 마음을 표현하고 있어요.

그리고 어릴 때의 결핍이 한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방치되고 있는 아이들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그 구멍을 제가 조금이나마 메워주고 싶어서요. 그런 어른이 되는 게 제 꿈 중 하나입니다. 물론 그럴 필요가 없는 상황이 베스트겠지만요.

어려서부터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에 노출되거나 능력을 넘어서는 지나친 목표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경우, 작은 과제 앞에서도 '내 힘으론 어쩔 수 없어' 하는 무력감을 학습하게 된다. 앞서 말했던 '학습된 무기력'이다. 어려서 발목이 묶인 코끼리는 다 자라서 제 발목의 끈을 끊어 낼 힘이 있어도 탈출을 시도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무기력을 학습하게 되면 충분히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게 된다.


내가 발목이 묶였던 코끼리라는 걸 안다는 것 자체만으로 얼마나 다행인지 싶어요. 이 사실을 모르면 그게 정말 비극인 것 같아요. 그런데 알고 있다해도 '학습된'무기력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곧 하다가 포기해버리고, 중간쯤 가다가 내려와버리고, 성공을 코앞에 두고 다 놓아버리는 그 일면에는 '나는 행복과 성공을 누릴 가치가 없는 사람이야'라는 심리가 짙게 깔려있는 듯 해요.

그런데 어쩌나요? 어찌할 방도를 모르는걸. 방법을 알아도 나에게 적용이 안되는걸.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생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아이를 이러한 우울과 불행의 늪에 빠뜨리고 싶지 않다면 사랑해줘야 해요, 표현해줘야 해요. 마음에 구멍이 생기지 않게 부모가 노력해야 해요.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말을 볼 때마다 스쳐지나가는 어두운 얼굴들이 너무 많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 중엔 제 얼굴도 있고요.

부탁을 하고 도움을 받는 일에 너무 인색해지지 말자. 언젠가는 너 역시 누군가의 부탁에 기꺼이 응해야 할 날이 오기 마련이다. 그러니 기꺼운 마음으로 타인에게 손을 내밀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말을 듣고 마음이 편해진 건 저 뿐일까요? 부탁을 하는 건 어쩐지 어려운 일처럼 느껴져요. 괜히 부담스러워요. 그런데 나도 나중에 이 사람의 부탁을 들어줄거라고 상정하고 다시금 시뮬레이션을 돌리면 아까보단 좀 더 편한 얼굴로 말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뜬금없지만 저는 이래서 책을 참 좋아해요. 한 줄짜리 글이 묶여있던 실타래 같은 마음을 순식간에 풀어주어서요. 위같은 말은 사실 멘토나 인생 선배에게 들을 수 있을법한 이야기 입니다. 다치고 굴러 경험으로 알게 되는 일일 수도 있고요. 인생꿀팁을 얻어 좋았습니다.




이렇게 보셨다시피 이 책은 '딸'이라고 했지만 성별에 관계없이 남녀노소가 읽을 수 있는 책이에요. (중간에 여자에게만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파트가 길지 않고 무겁지 않아 편하게 보실 수 있을거예요.) 주제가 다양하므로 저처럼 마음에 드는 부분을 쏙쏙 골라내어 후에 다시 읽는 재미도 있을 것 같고요. 어려운 단어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어려운 책이 아니고 실제 자신의 딸에게 마음을 담은 책이기 때문에 따뜻함이 저변에 깔려 있어 커피 한 잔 하며 읽기에 좋은 책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딸에게 담백한 엄마가 되고 싶어졌어요. 하고 싶은 말을 간결하게, 그리고 동시에 정확하게 하는 것. 이것도 능력인 것 같아 아직 갈 길이 멀지만요. 초보 엄마에게 계단 한 개를 더 밟도록 등불을 밝혀준 이 책에게 고마움은 표시하고 싶어요. 이만 마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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