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낳은지도 벌써 17일이나 흘렀다.
(빨리 수술해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게 엊그제같은데...😦)

나는 강동미즈여성병원에서 아기를 출산하고 4박 5일간 병원에서 지낸 후 연계 된 조리원으로 바로 이동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여서 홀몸이었으면 당연히 걸어갔겠지만 갓난아기와 아직 몸이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산모의 몸을 배려해 제공해 주신 차를 타고 너무나 편하게 조리원에 입소했다.

입소 규칙과 물품 사용 방법 등의 설명을 듣고,
병원 1인실보다 넓고 편리해 보이는 방을 구경하면서 '이 곳에서 푹 쉬다 가야지!' 라는 생각으로 좀 쉬어보려는 찰나. 전화가 왔다.

"수유하시겠어요?"

 

 

병원 신생아실에서도 모유수유를 몇 번 해봤던 터라 별다른 생각없이 전화가 오면 내려가고, 수유를 하고, 다시 아기를 돌려 보내고 그런 행동을 반복했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일명 '수유콜'이 들어오면 기쁜 마음으로 달려가 아기에게 젖을 먹일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전화가 올 때마다 어쩐지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머문 곳은 5층이었고 우리 아기는 4층에 있었다.
4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내가 거쳐야 하는 관문은 3가지가 있었는데 첫째, 방을 열고 닫을 때마다 필요한 카드키.
빈 몸으로 내려갈 때는 아무 문제 없으나 아기를 안고 올라와 한 손으로 아기를 받쳐 든 채 낑낑거리며 카드키를 갖다 대야 하는 과정이 매우 불편했다.

둘째를 가진다면 별다른 계획이 없을 시 다시 강동미즈여성병원, 그리고 산후조리원을 찾을 생각인데 그 때는 반드시 신생아실과 같은 층에 머물고 싶다! 반드시!

이러한 이유들로 나는 시간이 갈수록 수유콜을 받지 않게 되었다. 긴 텀을 두고 수유를 하거나, 연락을 주지 않으셔도 제가 알아서 내려 오겠다고 선생님들께 미리 말씀을 드려 놓았다.

그리고 비로소 혼자 갖게 된 시간에는 무얼 했느냐고?

 

 

 
미션처럼 밀려드는 밥 해치우기를 했다. ( ꒪⌓꒪)

밥은 하루에 세 끼, 간식 두 번, 야식이 한 번 나오는데 나는 원래 평상시에도 밥을 잘 챙겨먹지 않는 사람이라 매끼마다 나오는 밥을 정해진 시간에 먹는 것이 거의 불가능 했다. 그래서 미뤄두고 미뤄두면, 어느 날은 아침, 간식, 점심, 간식... 식판 둘 곳이 없을 정도로 해치워야 할 미션이 가득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배부른 소리다)

음식은 듣던 대로 영양을 생각해 고른 반찬이 꼬박 나왔다. 미역국은 거의 매번 나왔던 것 같고, 고기, 생선, 채소, 샐러드 등도 매일 맛과 모양이 다른 놈들로 식판에 올라왔다.

 

밥도 참 맛있었지만 나는 아침 간식으로 나오는 과일 주스가 너무 너무 맛있었다. 늘 바나나와 매번 다른 것들을 갈아 주시는 것 같았는데 물어볼 걸 그랬나? 너무 맛있었다. 밥도 밥이지만 그 시간이 너무 기다려졌었다...👍🏻

그렇게 밥을 다 먹고 핸드폰도 하고 책도 읽으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가끔 신생아실이 아닌 다른 곳에서 전화가 오기도 하는데 그 곳은 바로 에스테틱과 모유수유센터. (에스테틱 3회 이용권과 수유센터 몇...이었더라...😦 에스테틱에서는 샴푸와 하체테라피, 등테라피를 받았고, 수유센터에서는 가슴마사지를 받았다.)

 

 
수유센터에서 받는 가슴마사지는 남편 친구가 좋다고 강하게 추천한 탓도 있고 나도 젖양을 늘리기 위해 더 받고 싶어 3회 추가 결제 했다.
그리고 이건 정말 잘 받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시간을 들여도 잘 나오지 않던 모유가 마사지를 받고 들어 온 날은 확실히 달랐다. (유축할 때 눈으로 확인!) 비싼 돈 들여 받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조리원에 들어오고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쯤, 안내문을 보니 교육 프로그램 일정표가 보였는데 그 땐 이미 내가 알고 싶은 프로그램이 다 끝난 후라 너무 아쉬웠다😭

 

여유시간이 생기면 때때로 커튼을 쳤다.
이 장면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출산 할 때의 장면과 병원에 누워있을 때의 모든 장면.
그리고 조리원에서의 모든 장면을 기억하고 싶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므로 언젠가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잊혀지거나 흐려지겠지만 되도록 길게 이 장면들을 가슴 속에 간직하고 싶다.
아프고, 많은 감정을 느끼고, 속상해서 많이 울고, 여러 사람들을 만났던 곳.
그리고 우리 아기의 1년 같은 하루가 지나갔던 곳.
죽을 만큼 아팠던 진통을 생각하면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데 아기가 너무 예쁘고, 덩달아 내 하루하루도 반짝반짝 빛이 나니까(감정적으로는 힘들었지만. 돌아보면 그 어느때보다 아름다웠던) 이래서 엄마들이 둘째를 가지는가 보다 싶다.

 

처음으로 우리 아기 기저귀를 갈아보고, 속싸개를 여며보고, 딸꾹질 하나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고, 배냇짓이라고 하지만 처음 보는 우리 아기 미소에 덩달아 웃음 짓고, 자고 있는 아기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끊임없이 이야기 해주고... 이제 집에 가면 매일 반복 될 일상이겠지만 처음이라 더더욱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사랑하는 우리 아기인데도 처음 6시간 연속으로 아기를 봤을 때 진이 다 빠져 버려 녹초가 되었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우리 아기를 정성으로 보살펴주신 신생아실 선생님들께 너무 감사드린다. 첫 아기라 정신없는 산모였지만 다시 찾는다면 그 땐 조금 더 여유 있는 모습으로 인사 드리고 싶다.

진짜 마지막으로...

"아가야 이제 집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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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 속에 아기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로부터 11개월이 지났다. 사랑하는 나의 아기는 예정일이 20년 1월 19일이었지만 예정일에 맞춰 태어나는 아기는 많지 않다고 들어 조금 느긋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1월 18일.
예정일을 하루 앞두고 새벽부터 배가 싸르르- 아파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통증이 간혹 있어왔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새벽 5시에 시작된 가진통은 6시가 지나고, 7시가 지나고, 비로소 8시쯤이 되어서야 진진통이라는 형태로 나에게 위험 신호를 보내왔다.


그래도 이 때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오전 11시가 지나고부터는 조금씩 참는 것이 힘들어졌다. 남편과 나는 부랴부랴 병원 갈 준비를 하고 담당 병원으로 향했다.

 

가자마자 여러가지 검사를 받고, 내진을 했다.
자궁문은 아직 2cm가랑 열린 정도.
'이...정도가 2cm라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그려져 조금 슬프고 무서워졌다.

 

병원에 도착한 날짜와 시각은 1월 18일 오후 1시 정도였다.

임신 내내 엄마에게 큰 스트레스를 안겨주지 않은 착한 딸이었기에 이 날도 짧은 시간 안에 세상 밖으로 나와 우리를 기쁘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대단한 착각이었지..........😭

오전 8시부터 시작된 진진통은 오후 1시를 지나, 5시를 가뿐히 넘기고 8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이에 딸이 걱정되어 오신 엄마가 어쩐지 슬프고 만감이 교차한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셨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 딸이 출산할 때 나도 비슷한 심정일 것 같다.)

 

 

8시에서 9시를 바라보는데 통증이 말도 못 하게 심하게 느껴져 내진을 하니 자궁문은 이제 겨우 3-4cm열려있다고 하셨다. 그 말이 고통을 더 가중시켰다.😱

그래도 이제까지 참고 버텨온 거.
수술을 고려해보자는 남편의 권유도 마다하고 조금 더 참아보겠다고 진통이 찾아올 때마다 남편의 손을 꼬옥 잡았다. (진통이 너무 아프게 느껴져 굴욕적이라고 알려져 있는 관장, 내진은 별로 신경쓰이지도 않았다.)

 

 

오후 9시.
너무 아파서 무통주사를 맞기로 했다. 아직 3cm밖에 열리지 않아 조금 이따 맞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에 조율을 거쳐 일단 약은 투여하지 않고 주사만 꽂고 있기로 했다. 새우처럼 등을 구부리고 척추에 주사를 꽂았는데 이 때 난 무슨 생각을 했던걸까?
선생님이 나가시고 남편이 들어오는데 서러워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소리를 참기 힘든 울음이 참을 수 없이 터졌다. 너무 아팠고 너무 힘들었다.
한결같이 옆을 지켜주는 남편이 없었더라면 나는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나와 같이 잠도 못 자고 고생하는 아내를 지켜보면서 자기가 대신 아파해주고 싶다는 남편에게 새삼스레 깊은 사랑과 고마움을 느꼈다.

 

 

무통주사 효과는 확실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진통에도 아픔은 하체를 아주 살짝 스치고 지나갈 뿐 아까처럼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지는 않았다. 무통주사 효과는 짧으면 1시간, 길면 2시간이라고하는데 나 같은 경우는 1시간 30분이었던 것 같다. 천국 같은 무통 효과가 끝나고 10시 30분.
또 다시 지옥같은 진통이 찾아왔다.

내진 결과 자궁문은 비로소 7cm.
11시가 되어야 무통 주사를 다시 맞을 수 있다고 하여 거대한 파도같은 진통을 남편과 함께 참아냈다.
한 번 더 맞게 된 무통주사 역시 효과는 좋았다.
(단점은 너무 시간이 짧아...😭)

11시에 맞은 무통주사 효과는 정확히 12시 30분까지 이어졌다. 이후에 또 맞으면 분만까지도 참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가벼워 졌었다.
하지만 간호사 선생님께서 이제는 무통주사를 놓지 않을 거라고 하셨고 이제 빨리 아기를 보자고 말씀 하셨다!
'헉...'

 

 

대략 오전 1시 부터 2시 30분 가량 까지 나는 인생에서 최대의 아픔을 경험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소리를 지르고, 벌거벗은 하체로 이리저리 뒹굴고, 눈은 초점을 찾지 못해 허공을 헤매고, 입은 침 한방울 나오지 않아 바싹바싹 말라만 가고..
그 때쯤에는 진통이 찾아오지 않아도 괴로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진통이 찾아오면 나는 차라리 죽고만 싶은 심정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결국 나는 자궁문이 모두 열렸음에도. 10cm나 열렸음에도. 아기 머리가 다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힘주기 할 기운이 남아있지않아 자연분만에 실패하고 말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이상 이 고통을 참아 낼 자신이 없어 수술을 진행해달라고 모두에게 소리쳤다.

모두가 만류하며 한 번만 더 해보자고 독려했지만 도저히 견딜 수 없이 매 초가 괴로웠다.

그 때 나를 달래던 간호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아기가 태어나면 해주고 싶은 말 생각해놔요. 우리도 궁금하니까. 할 수 있어. 엄마잖아."
결국은 고통을 참아내지 못한 엄마에게 이 말은 깊은 가르침으로 가슴 속에 남아 있다.
아이를 보면 이 말이 생각나고 더없이 미안해진다.

결국 의사 선생님은 제왕절개를 진행하셨다.
오후 1시에 입원하여 다음 날 오전 2시가 넘어서까지, 13시간의 긴 진통을 모두 참아내고는...
모두 이제까지 견딘 것이 아까우니까 조금만 더 견뎌보자고 하였지만 나는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밀려드는 고통을 끝끝내 이겨내지 못했다.

 

2020년 1월 19일 오전 3시 3분.

너무도 어렵사리 나의 사랑하는 아기는 세상에 태어났다.
모두가 조용한 가운데 엄마조차 아기에게 미안해 울고 있는 아이에게 인사 한 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했다.
안녕? 아가야. 첫 인사는 그렇게 해주고 싶었는데...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편과 아기가 인사를 나누고, 나는 회복을 위해 입원실로 아기는 신생아실로 옮겨졌다.

 
밥 먹을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병원에서는 산모의 빠른 회복을 위해 매 끼마다 미역국이 포함되어 나왔다.

산모가 아닌 사람들에게 아기 면회 시간은 정해져 있으며, 나는 새벽에도 아기가 너무 보고 싶어서 언제든지 수유콜을 해달라고 부탁해두었다. 그래서 잠을 못 잤던지 밥 먹는 도중이었던지에 관계없이 늘 연락이 오면 달려나갔다.

 

식사는 아침, 점심, 저녁, 그리고 중간에 간식, 야식까지 배고플 틈 없게 챙겨주셨다.

 
수술 부위가 아파서 허리를 숙일 수 없어 남편이 머리를 감겨 주었다. 서툰 손길로 귀에 물이 들어가고 옷이 다 젖어버렸지만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꺄르르르 한참을 웃다 나왔다.

 

입원 후 하루 이틀 정도는 상태를 봐주러 간호사 분들이 새벽에도 자주 들러 주신다. 약도 챙겨주시고, 시트도 갈아주시고, 심지어는 옷까지 손수 입혀주신다.
(내가 머물렀던 강동미즈여성병원은 의사 선생님을 포함하여 모든 간호사 분들이 친절하셨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기를 만나고, 남편의 사랑 가득 담긴 도움을 받고, 영양식을 매 끼 챙겨먹으며 4박 5일을 지내다 보니 어느새 퇴실 할 시간이 다 되었다.

남편에게 미안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금액을 지불하고 나는 바로 병원과 인계 된 산후조리원으로 장소를 옮겼다.

1월 23일 목요일.
퇴원 후 강동미즈여성병원 산후조리원에서의 첫 날이다. 2주 동안 머무를 예정이기에 생각보다 많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 오늘은 간단히 병원을 둘러본 후 모유센터와 에스테틱에서 가슴 마사지와 샴푸 서비스를 받았다.
(그리고 이 때까지 면회 시간에만 아기를 볼 수 있었던 남편도 아기를 직접 안아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아기는 저녁 맘마를 먹고 지금 신생아실에 있다.
얼굴을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눈물이 날 것 같고...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모습을 보면 예쁘고 사랑스럽고 나를 이렇게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어서 너무 너무 고맙다.
나의 출산 과정은 아기에게 평생의 마음의 빚으로 남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아기에게 더 잘해야지. 10잘할 거 20잘할거다. 큰 책임감을 느끼며 깊이 사랑하고 있는데, 이에 미안한 마음까지 더해져 나는 오늘 컨디션을 해칠 정도의 무리를 했다. 남편에게 너무 부담갖지 말라는 조언을 듣고 이제야 겨우 쉬는 중...

오늘 제대로 쉬고 내일 또 좋은 컨디션으로 아기 보러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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