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 작가님의 그 유명한 구의증명을 읽어보았습니다! 책을 덮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쉽지만 '기대하면 실망한다' 였지만... 작품이 별로였단 얘긴 아니고요. 제가 기대를 너무 많이 한 것 같아요.

 


이 책은 카니발리즘을 소재로 하고 있어요. 그런데 거기다가 작가님이 워낙에 또 묘사를 잘 하시는 분이라 마음이 여린 분들은 맘 단단히 잡숫고 읽으셔야 할 것 같더라고요.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가장 밝은 컬러가 회색? 대체로 다 어둡고, 더없이 까말 수 없는 부분도 많았었네요. 저는 한 번도 분홍색, 노란색을 느껴본 적이 없어요. 내용 자체가 그러한데 문체 또한 밝아 보이려 애쓰는 느낌이 없는지라 독자는 구와 담의 안타깝고 처절한 감정을 고스란히 전해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들입니다. 구는 남자고, 담이는 여자예요. 이 둘은 아주 어릴 적부터 함께 지냈어요. 불우한 가정환경이라는 공통분모가 그들을 더 끈끈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줄거리를 이야기 해볼게요.

 

 

줄거리

 



구의 부모님은 아이를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이었어요. 빚만 잔뜩 남기고 뿔뿔이 흩어진 책임감 없는 사람들이었죠. 담이의 부모님은 돌아가셨고요. 후에 곁에 있던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시게 되자 담이의 곁에는 승려로 출가했던 이모가 돌아와 곁을 지켜줍니다.

담이와 구는 함께 있을 때도, 함께 있지 않을 때도 늘 함께였어요. 서로가 보이지 않아도 서로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죠. 그들은 다른 연인들처럼 재미있는 곳을 놀러가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남들 다 하는 추억을 쌓지는 못 해도 언제나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었어요.

구는 도망간 부모 때문에 억지로 빚을 떠안게 되어 열일곱 살 때부터 일을 시작합니다. 온갖 일을 해요. 그러던 어느 날, 공장에서 한 직원의 아이인 노마를 알게 되는데요. 구와 담이, 노마는 순수한 우정을 나누어요. 자전거를 알려주고, 붕어빵을 나눠 먹죠. 하지만 운명은 정해져 있는걸까요. 누가 미리 써 놓은 대본처럼 노마는 한 순간에 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왜 그 날, 그 시간에, 노마가 사고를 당할 수 밖에 없었는지 구와 담이는 이해할 수가 없어서 큰 혼란에 빠져요.

노마의 일을 계기로 둘은 서로를 조금 멀리하게 됩니다. 그러다 구는 제 집이 있는 한 누나를 알게 되고 연애 비슷한 것을 하기도 하고요. 그 사실을 알게 된 담이는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그가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기다립니다.

그 사이에 담이의 이모가 죽어요. 하지만 곁에 구는 없었죠. 군대에 있었어요, 그 곳에서 담이를 열렬히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들은 각기 다른 공간에서 다른 모양의 슬픔을 느끼며 서로를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형이랑 누나는 사귀는 거 맞지? 노마가 물었다. 구와 나는 애매하게 웃었다. 우리는 사귄다는 단어를 채우고도 그 단어가 보이지 않을 만큼 넘쳐흐르는 관계였다.


후에 이 사실을 알게 된 구는 담에게 달려갑니다. 담은 예상했다는 듯, 올 줄 알았다는 듯, 마치 어제도 만난 사이인 양 구를 받아줘요. 그리고 말하죠. "같이 살래?"

하지만 세상은 그들에게 평화로운 시간을 허락해 주지 않습니다. 특히 빚쟁이들이요. 새 보금자리를 구할 때마다 그들은 그들을 찾아와 괴롭혔어요. 빚은 갚아도 갚아도 줄지 않고, 빚을 갚는 게 아니라 이자만 갚는 느낌이었죠. 그렇게 매일 도망만 치던 두 사람에게 마침내 '여기가 좋겠다' 싶은 곳에서, '이제 겨우 행복을 느껴볼 수 있겠구나' 싶었던 찰나에 그들은 그를 찾아와 기어이 죽여버리고 맙니다.

그렇게 죽은 구를 담은 먹어요. 말 그대로 진짜 먹어요. 시간을 두고 천천히 먹는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는 끝이 나요.






이 책은 호불호가 매우 강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평이 좋아서 놀랐어요. 인생 책으로 꼽는 분들이 상당히 많더라고요? 아래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제 생각입니다.

 

 

느낀점

 



구와 담이가 애틋하다 못해 가슴 절절한 사이였단 것은 알겠어요.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까지 깊은 사이가 되었는지에 대한 장면이 많지는 않아서, 그들의 말로만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밖에 없어서 아쉬웠어요. 이게 작가님의 한계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은 매 장면이 머릿 속에서 영화처럼 자연스럽게 재생 되어 풍성하게 즐길 수 있었거든요.) 제가 의도한 바를 잘 알아차리지 못한 걸 수도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체가 매력적이에요. 깔끔을 넘어 아예 짧은 문장 자체도 많고요. 일부러 이렇게 쓰신 것 같은데, 어떤 분위기를 내고자 함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여기서도 저는 제 한계를 느꼈습니다. 나중에 다시 읽을 땐 부디 작가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재... 책 소개를 먼저 읽고 이 책을 읽었었는데요. 소개를 읽자마자 거부감이 사실 있었어요. 지금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이해가 갑니다.

그들은 이 세상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인간은 다른 인간을 해치고, 작살내고, 죽이기까지 하잖아요. 이런 일이 매일 일어나죠. 그런 게 진정한 인간이라면 그들은 인간으로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구는 살아있을 때도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그런 구의 존재를 증명할 사람이 담이 빼곤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으니 (그나마 그와 관계가 있는 빚쟁이들은 그의 존재를 부정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었고) 담이는 구를 먹음으로 그가 영영 여기 있음을 증명 하고자 했던 거예요. 그리고 이 세상의 나쁜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살기를 소망했죠.

이런식으로 살다 간 구가 안쓰러워서, 받아들일 수 없어서, 이해할 수 없어서 제 안에 밀어 넣었던 겁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는 늘 함께 있는 거지, 믿으면서 말이예요.

 

몸은 고되고 앞날은 곤죽 같아도, 마음 한구석에 영영 변질되지 않을 따뜻한 밥 한 덩이를 품은 느낌이었다.


어떻게 생각 하시나요? 사실 징그러워요. 사람이 사람을... 말도 안 됩니다. 하지만 이 책에 윤리라는 잣대를 갖다대는 건 반칙인 것 같네요. 그 정도의 마음도 있음을 이해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들을 무겁게 짓눌렀던 빚 권하는 사회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누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어른들의 책임을 왜 아이들이 져야 하는지, 지금 이 시간에도 구와 담이가 느꼈던 그 때 그 마음을 그대로 느끼고 있는 어린 아이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생각할 여지를 많이 주는 책이기 때문에 여운이 길었어요. 왜 인기가 많은지 알겠네요. 개인적으로 저는 담이의 행위보다 구의 생애에 더 초점을 맞추고 보았는데 다른 분께도 그렇게 해보시라고 권하고 싶어요. 안그래도 먹는 행위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해도 자극적인 내용이라 자꾸만 머릿속에 떠오르니까요. 구를 의식해서 지켜봐 주세요.

작가님의 책을 계속 읽어볼 겁니다. 사회를 바라보는 따뜻하면서도 냉철한 시선이 글에 너무 잘 묻어나 있어서 매번 몰입감 쩌는 다큐멘터리 한 편씩 보는 기분이예요. 묘사를 잘 하셔서 이야기에 푹 빠져드는 황홀한 기분은 덤인 듯 하고요. 이런 작가의 책은 널리 알려져서 많이 읽혀지고 그리하여 더 많은 책을 쓸 수 있게 해드려야 한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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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입니다.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었다고 하는데 믿을 수가 없어요. 현대사회를 그려내는 묘사가 대단히 날카로워요. 이 책이 상을 받았을 당시 예심 심사위원은 물론이고 본심 심사위원까지 모두 만장일치를 했다고 해요.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이 책을 읽고 나면 누구든 납득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작가님, 정말 대단하세요.

 

<줄거리>



한 여자 아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자기소개를 하지 않아요. 간접적으로 누가 불러주지도 않지요. 사람들은 늘 저 편한대로 이름을 만들어 부르곤 했어요. 예쁘거나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게 아닌 욕지거리에 가까운 걸로다가요. 게다가 몇 살인지도 몰라요. 아무도 모릅니다.

아니, 부모는 알았을 수도 있어요. 낳았으니까. 아이가 아프건 말건 슬프건 말건 상관은 없지만, 자기 몸, 자기 시간 희생 했던 날은 기억할 거예요. 하지만 부모는 아이에게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정도로 아이에게 관심이 없었거든요.

밥을 먹었는지, 씻었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몰라요. 한 번은 아이가 죽은 척을 합니다. 그런데도 관심이 없네요. 죽은 척을 했다는 사실조차 몰라요. 엄마는 백 번도 넘게 밥을 안 주고요. 아빠는 틈만 나면 때립니다. 오죽하면 아빠가 '내 곁을 그냥 스쳐지나가기만 해도 고맙다'고 느꼈을 정도니까. 어떤 심정으로 살고 있었을 지 짐작이 가세요?

아빠가 엄마를 때릴 때 엄마는 그저 맞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맞으면 보호해주지 않았고요. 그 생활을 못 견딘 아이는 집을 나옵니다. 진짜 엄마, 진짜 아빠는 이런 사람들일 리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진짜엄마'를 찾아 떠나게 되지요. (그런데 '진짜아빠'는?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미운 정까지 다 탈탈 털리고 나면 기대조차 하지 않게 되는 사람 심리를 나타낸 걸까요)

 

1. 장미언니



집을 나온 아이는 웬 남자 아이를 만나게 됩니다. 조금 덜떨어져 보이는 아이였는데, 그는 여자들이 불건전한 일을 하는 곳에 살고 있었어요. 거기 사장이 자기 엄마였거든요. 그 아이를 따라간 곳에서 여자 아이(편의상 앞으로 소녀라고 하겠습니다)는 남자 아이의 숙제를 대신 해주며 숙식을 해결해요. 그리고 그 곳에서 장미언니를 알게 됩니다.

그녀는 예쁘고, 향기도 좋은 사람이었어요. 남자 아이의 엄마가 소녀를 박터지게 때릴 때 보호를 해주기도 했고요. 그래서 소녀는 장미언니가 내 '진짜엄마' 가 아닐까 생각해요.

하지만 이 언니의 단 한 가지의 흠이라면, 남자친구에 있었습니다. 백곰이라고 불리우는 남자친구는 걸핏하면 언니를 때리고는 했는데요. 여기서 문제는 장미언니가 전혀 반격을 하지 않는다는 데 있었어요. 나중에 백곰이 소녀와 단 둘이 있을 때 말로 가슴을 후벼파는 장면이 나오는데, 소녀는 이 말엔 꿈쩍도 하지 않아요. 하지만 언니가 백곰에게 그저 맞고만 있는 모습은 견딜 수가 없었죠.

 

그런 사람은 나의 진짜엄마가 될 자격이 없다. 엄마가 가짜가 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가짜엄마는 그냥 맞고만 있었다.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처음엔 모든 게 내 탓인 줄 알았다. 내가 보기에 아빠가 엄마를 때릴 이유는 하나도 없었으니까. 곤히 잠들었을 때도 쥐의 걸음 수를 헤아릴 만큼 예민했고 하얀 밥에 반찬 양념 묻히는 걸 싫어할 만큼 깔끔했으며, 누군가에게 나쁜 말을 들으면 맨살을 사포로 문댄 것처럼 오랫동안 아파했다. 그런 사람이 단숨에 괴물로 변해서 여자를 미친 듯이 때리는 데엔 분명 이유가 있을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렇게 약한 엄마는 내 진짜엄마가 될 자격이 없으니까요. 나를 지켜줄 수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소녀는 실망을 한 채 가게를 나오게 됩니다. 진짜엄마를 찾는 첫 번째 시도는 보기좋게 망했어요.

 

2. 태백식당 할머니



정처없이 걷다가 기차역에서 웬 할머니를 만나게 돼요. 할머니는 소녀에게 국수도 만들어 주고, 잠 잘 곳도 마련해줍니다. 손님이 거의 오지 않는 망한거나 다름 없는 식당을 운영 중이었던 태백식당 할머니. 소녀는 할머니 손을 잡고 장도 보러 가고, 장터에서 솜사탕도 사먹고, 태어나 처음 보는 신기한 것들을 구경하며 편안하고 행복한 기분을 느껴요. 누군가에겐 흔한 일이죠? 엄마 손을 잡고 장 보러 가는 일. 소녀에겐 인생의 첫 장에 기록 될 만한 대단히 기념비적인 날이었습니다.


나보다 조금 뒤늦게 식당으로 돌아온 할머니의 손에는 책이 들려 있었다. 찬수가 풀던 문제집과 비슷한 것이었다. 나는 할머니가 보는 앞에서 문제를 휙휙 풀어댔다. 할머니는 꾸부정하게 앉아 내가 하는 모양을 오랫동안 쳐다보다가 활짝 웃었다. 그때 처음 봤다. 할머니의 웃는 모습. 할머니가 웃으니까 나도 웃음이 날 뻔 했다. 그래도 꾹 참았다. 하지만 웃음은 눈물과 달리 참는다고 쉽게 참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참고 참다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아주 조금 웃었다. 내가 웃는 걸 보고 할머니가 또 웃었다. 봄바람이 창문을 와르르 훑으며 지나갔다.


이 글은 하이라이트를 해두었다가 읽고, 또 읽고... 몇 번을 반복해 읽었는지 몰라요. 읽을 때마다 행복해지는 단락이에요. 작가님의 필력과 묘사가 거의 충격적입니다.

소녀의 웃는 모습이 상상 되지 않나요? 너무나 반짝이는 영화 같은 한 순간이죠. 웃는 할머니 얼굴을 보고 참고 참다가 기어이 웃음이 터진 이 장면은 너무나도 아름다워요. 봄바람이 창문을 훑으며 지나갔다는 표현은 화룡점정입니다.

이야기로 돌아가볼게요. 어느 날, 누군가 찾아와요. 남자 여자, 그리고 여자 아이 둘. 남자는 할머니의 아들이었는데요. 서울에서 내려온 모양이에요. 그들은 서울살이 버릇을 못 고치고 할머니의 얼마 되지도 않는 수입을 제 돈 쓰듯 펑펑 써버립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드디어 본론을 얘기하죠.

이 식당을 팔고 그 돈을 사업 자금으로 좀 쓰자고. 할머니는 나는 이 식당만 있으면 된다며 호소에 가까운 거절을 해요. 아들은 그런식으로 줄곧 할머니를 괴롭혔어요. 그래서 소녀는 할머니를 지키기 위해 아들의 다리를 깨물어 버립니다. 진짜엄마가 꼭 젊을 필요는 없다고, 이렇게 늙은 할머니여도 내 진짜엄마일 수 있다고, 그렇게 믿고있던 소녀를, 할머니는 쫓아내버렸지만요.

이 기분에는 대체 어떤 단어가 가장 적합한가요? 행복을 느끼게 해 준 사람 고마운 사람, 나보다 더 소중하다고 믿었던 내 사람에게 내쫓기는 그런 기분 말이에요. 우리는 이해할 수 있어요. 그래, 가족이니까, 라는 생각에 다다를 수 있는데요. 소녀는 무척 괴로웠을 겁니다. 다음 날, 할머니는 소녀에게 돈을 쥐여주고 작별을 고해요.

 

3. 폐가의 남자



거지꼴로 돌아다니던 소녀의 손을 잡아준 '목소리'. 지나치게 따스한 그 목소리는 그녀를 교회로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 말씀을 듣게 하고, 찬송가를 부르게 해요. 강요하진 않았어요. '목소리'에게 중요한 건 사람들의 시선이었으니까. 사람들은 거지꼴인 소녀를 거둬들인 후 밥을 주고 또 잘 곳을 제공 해주는 그를 추켜세워줍니다.

하지만 소녀는 언제나 착한 척만 하는 남자와 교회가 싫었어요. 우연히 알게 된 폐가의 남자가 오히려 더 편했죠. 그는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소녀를 존중해 주었어요. 그래서 폐가 밖의 삶보다 폐가 안의 삶이 더 안락하고 행복하다고 느끼게 돼요. 그 안에서 소녀는 책도 많이 읽고, 누가 버린 일기장도 읽으며 나름대로 편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사람들이 폐가의 남자와 소녀를 발견했을 때, 그들은 웬일인지 그들을 떼어놓기에 급급해요. 아무것도 묻지 않고 한 명은 가해자, 남은 한 명은 피해자를 만들어 버리죠. 그렇게 그들의 편안한 나날은 단숨에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물론 등따시고 배부른 생활을 한 건 아니니까 누가 봐도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전의 삶보다 현재를 더 행복하다고 느끼고 무엇보다 스스로 만족하며 지내고 있었는데, 그 시간을 누가 무슨 권리로 빼앗을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돼요. 왜, 행색이 초라한 사람은 행복이 뭔지도 모르는 바보니까요? 그래도 되는거예요?

행복의 기준은 내가 정하는 거잖아요. 방법을 가르쳐줄 순 있어도 강요하면 안 되죠. 특히나 가난한 사람들에겐 내 생각이 맞다고 가해지는 폭력이 너무 보편적인 것 같아요. 맘 아파요.

 

4. 각설이패



소녀의 진짜엄마를 찾아 떠나는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딘가에는 분명 내 진짜엄마가 있을거라고 확신해요. 그러다 이번에는 각설이패를 만나게 되는데요. 트럭을 타고 전국을 돌며 불쇼와 농담을 들려주고 엿과 테이프를 파는 사람들이었어요. 소녀는 그들이 음악을 즐기고 무언가에 열중한 모습에 빠져들게 돼요.

대장이라고 불리우는 사나이는 소녀처럼 진짜엄마를 찾아 헤매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이유는 조금 달랐으나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결핍된 마음을 채우고자 마음은 똑같았어요.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한 사람이었죠. 그리고 또 한 명, 불같은 성격의 대장과는 정반대 스타일의 '달수 삼촌'. 그는 다정하고 세심하게 소녀를 챙기는 진짜 삼촌 같았습니다.

그들과 함께한 시간은 매 장면을 엮어 모아 하나의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예요. 마음이 답답하면서 동시에 아픈 구석이 많았네요.

달수 삼촌이 소녀와 헤어질 때, 손에 쥐어준 정은 마치 제게 쥐어진 뜨거운 무엇처럼 다가왔어요. 꼭 생생한 마음을 전해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기어이 터져버린 눈물 같은 마지막 포옹도 흘러넘치게 슬펐고요.

하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그 시간이 마냥 행복만 했던 건 아니예요. 새까만 재같은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냈던 소녀의 이 마음을 좀 보세요.

 

나는 맞지 않기 위해 작아지고 싶었다.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나를 찾지 못할 만큼 작아진다면, 가짜아빠가 나를 때릴 수도 없을 테니까.
아니, 그것도 거짓말이다. 나는 개미만큼 작아져서 가짜아빠의 몸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아주아주 강력한 폭탄을 들고. 그래서 가짜아빠의 몸을 산산조각 내고 싶었다. 살점 하나 남지 않을 만큼.
아니아니, 그것도 다 거짓말이다. 나는 엄마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원래 내가 살던 곳.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안락한 그곳에 다시 들어가 죽을 때까지 태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곳에서 그냥 엄마인 채로 살고 싶었다.


이토록 어두운 생각은 잊을만 하면 떠오르고 잊을만 하면 떠올라 도통 행복할 기회를 주지 않아요. 소녀가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 감이 오시나요. 이건 부모를 미워하는 수준을 넘어섰어요. 원망하는 수준을 넘어섰어요. 그들은 그녀를 정말 산산조각 냈거든요. 각기 다른 곳으로 떨어진 파편들이 '가짜아빠! 가짜엄마!' 하고 울부짖는 것 같지 않나요. 포효하는 것 같지 않나요. 나를 엄마 뱃 속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통곡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제까지 누군가를 만나 마음이 들뜰 때마다 진짜엄마가 아닌가 싶어 잠시나마 희망을 맛보았지만, 그 예상은 늘 보기좋게 빗나갔어요. 하지만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매일 자고 일어난 소녀의 마음이 전 날보다 더 커져 있었다는 거예요.

 

많은 것에 익숙해지는 동안, 나는 키도 조금 자라고 머리카락도 많이 길고 그리고, 무언지 모를 어떤 것도 불쑥 자랐다. 그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누구에게 확인받을 길도 없고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나는 느낄 수 있다. 폐가에서 남자가 주워 온 책을 읽으며, 남자와 나란히 누워 차디찬 허공을 말의 온기로 조금씩 채우던 순간, 터미널에서 삼촌이 나를 꼭 껴안던 그때 울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면서, 내 안의 어떤 것이 커졌다.


세상은 내 생각보다도 더 혹독하다는 것, 그러니 이 세상에 맞서 지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내 자신을 보호해야 함을 깨달은 게 아닐까요. 엄마 배에서 나올 때부터 우리는 사랑을 받고, 나는 사랑 받을만한 존재라는 걸 확신 하면서 커요, 보통은요. 하지만 이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한 돌 한 돌 쌓아 내가 살 집을 짓습니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날아오는 돌을 피해 몸을 숨길 곳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니까요.

그런데 생각보다 이런 사람 많은 거 아세요? 잔잔한 바다에 때때로 파도가 치는 보통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매일 폭풍우가 치는 마음을 잠재워야만 살 수 있는, 그러기 위해 아주 아주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만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대체 부모는 내게 왜 그랬을까?', '나는 왜 태어난거지?', '나는 뭐하는 사람일까?' 와 같은 풀리지 않는 대답을 수도없이 자문하면서 말이에요.

저 또한 그런 시간을 견뎌왔기 때문에 소녀의 모든 말과 행동이 마음 아팠어요. 내가 내게 건넨 질문, 돌아오지 않은 대답, 영원히 풀지 못할 것 같은 숙제, 그럼으로 내가 나를 원망하고, 미워하고 저주했던 시간. 그것들은 이제 한 단어에 꽁꽁 묶어뒀습니다. 그리고 저는 현재 그 단어를 밟고 살아가고 있죠. 탄력성이 좋고 향기 나는 마음이 아니라 속상할 때도 있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그 지옥 같은 시간을 지나 이만치 성장한 내가 대견할 때도 있는걸요.

 

5. 유미와 나리



집을 나온 유미와 나리는 부모에게 심한 학대를 받은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정신과 신체는 모두 부모의 좋은 스트레스 해소 대상이었어요. 그들의 안타깝기 그지없는 여러 일화는 비행청소년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것들이었고요. 그들이 안타까웠던 이유는, 이제까지 소녀가 만나왔던 사람들보다 독자인 제가 더 만나기 쉬운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조용히 주변을 돌아보게 되고, 조금 더 멀리에 있는 이웃들도 살펴보게 되더라고요.

 

난, 어린애에서 바로 노인이 된 것만 같아.


관심 끄라고 매서운 눈을 하면서도 실은 겁먹은 고양이 같은 아이들. 또래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장을 보고, 영화를 보고, 저녁을 먹고, 자기 친구를 집에 데려와 함께 노는데, 그들은 존재 가치라는 단 하나의 질문에 부모의 대답을 듣지 못 해 자신들이 그 답을 풀어보려고 무진 애를 씁니다. 때론 해서는 안 되는 행동도 하며 나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사람이란 걸 증명하려 하죠. 각 나이엔 어울리는 얼굴이라는 게 존재하는데, 왜 이들은 노인의 가면을 쓰고 사는지 몰라요. 누가 쓰도록 만든 거예요?

유미 나리와 어울리며 소녀는 한 남자 아이를 알게 됩니다. 그들은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곳에서 겨우 몸만 숨겨 함께 지내게 돼요. 그리고 옆에서 집 허물어지는 소리가 들리던 어느 날.

 

해가 저물 때까지 계속된 싸움에 노인들은 지칠대로 지쳤지만, 아무도 물러나진 않았다. 양복을 입은 사람이 나타나, 가서 얘기 좀 하자고 노인들을 끌고 갔다. 협상을 해주려나 보다 기대하고 그들을 따라간 사이 용역들이 빈집에 불을 지르고 컨테이너를 부쉈다. 시뻘건 불이 치솟았다. 집 안에는 옷이며 이불이며 세간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세상 단 한 장뿐인 사진도 있을 것이고, 어린아이의 일기장도 있을 것이다.


철거된 집에 살고 있던 사람들, 사라져가는 집을 지켜보는 그들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분노는 타오르는 시뻘건 불보다 더 거셌을 거예요. 소녀는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만 만나왔던 것 같네요. 그들의 배경은 항상 전쟁이었던 것 같고요.

유미와 나리, 그리고 당신의 곁을 스쳐간 그 이름 없는 소녀의 결말은 책에서 확인 하시라고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흥미진진하니 꼭 읽어보세요.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어린 날 내가 느낀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을 대신 표현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나도 몇 개의 단어만으로밖에 그 때를 설명할 수 없는데, 나보다 더 나의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 아주 자세하고도 날카롭게 표현을 해 준 느낌이었어요.

이런 사람들이 작가를 하는구나 싶더라니까요... 새삼스럽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경이로움마저 느꼈네요.

소설의 참맛은 나와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게 하는 데 있지 않겠습니까? 그 의미를 완벽하게 충족시킨 책. 그리고 그 어떤 에세이집보다 큰 위로를 준 책이었어요.

책을 덮고 제가 바로 다음 한 일은 '구의 증명'을 독서 리스트에 넣은 것이었습니다. 기대 돼요. 아주 많이. 작가님 앞으로도 책 출간 많이 해주세요...🙏 좋은 작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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