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패니언' 이라는 직업은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 때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최초의 만국박람회였기에 접객 매너와 어학 능력이 뛰어난 고급 인력들이 별도의 교육을 받은 뒤 국제적인 행사, 사업 부양을 위한 파티에 투입 되었다고.

하지만 '컴패니언' 은 일본의 80년대 거품경제가 꺼지고 난 뒤 그들의 영예도 함께 꺼져서 이제는 가까스로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고 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 교코가 바로 컴패니언이다. 화려한 보석을 좋아하는 교코는 부잣집 남자와 결혼하기 위한 발판으로 이 직업을 이용하고 있는 듯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 작품이 심각한 사회경제적 부조리라는 묵중한 주제를 드러내고 있음에도 끝까지 너무 무거운 분위기로 흘러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교코가 한 몫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녀는 허영심을 대놓고 드러낸다.
 
특히 옆집으로 이사온 형사 시바타에게는 더더욱. 
 


 


그런데 '그녀는 다 계획이 있다' 라니, 교코에게 무슨 계획이 있었다는 말인가? 추리소설에서 '계획' 은 영 께름칙한 어감인데, 게다가 형사가 바로 옆집에 산다잖아.
 
이거, 괜찮은걸까?
 
과연 누구에게, 무슨 계획이 있다는걸까.
 

(스포없음)

 
 
 

#1. 에리의 죽음

 
같은 컴패니언으로 활동하던 에리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녀가 죽은 현장을 보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처럼 보이는데, 시바타 형사와 교코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히가시노게이고의 소설 속 주인공 형사는 늘 탐정과도 같은 면모가 돋보인다. 이번에도 역시 범인이 설치해 놓은 덫에 쉽게 걸려들지 않았다.
 

#2. 에리와 연인사이였다고 주장하는 마루모토

 
마루모토, 그에게는 연인이 한 명 더 있었다. 요코. 그렇다면 내연관계인 요코의 존재를 눈치챈 에리가 그로인해 비관적인 자기파괴적 행동을 했다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마루모토에 대한 분노를 참지 못 하고 그를 죽이려다 도리어 본인이 죽어버린 것인가? 마루모토는 에리가 죽은 현장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이기도 하다. 매우 강력한 용의자 선상에 올라있는 중.
 

#3. 교코와 다카미

 
교코는 부자인데다 매너도 좋은 다카미를 좋아한다. 그래서 그와의 약속이라면 일을 빼고서라도 잡으려 한다. 그리고 어쩐일인지 다카미도 교코에게 관심이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이상한 건, 교코와 자꾸만 만나려고 하는 다카미가 만날 때마다 에리의 사건을 묻는다는 것이다. 곧 에리의 친한 친구도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는데, 그 사건도 자꾸만 캐묻는 게 이상하다. 다카미는 교코에게 관심이 있는걸까, 사건들에 관심이 있는걸까?
 

#4. 다카미의 전화에서 흘러나온 수상한 여자 목소리

 
다카미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교코가 받은 전화 안에서는 흐느끼는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그 여자는 과연 누구였을까?
 

#5. 교코에게 추근덕거리는 겐조

 
겐조는 하나야 가의 셋째 아들이다. ('하나야 가' 는 에리가 죽은 그 날, 컴패니언들이 응대를 했던 전국 보석 체인점이다.) 망나니라고 불리울 정도로 행실이 지독히 튀는 사람으로 모두에게 알려져있다. 그런데 그런 그가 교코에게 관심을 보인다. 그녀와 만나고 싶어하고, 그녀와 시간을 함께 하기 위해 교코가 가장 좋아하는 보석을 선물하기도 한다.  
 

#6. 이세

 
죽은 에리의 전연인이다. 이세 역시 죽었다. 에리보다 더 먼저. 이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으로 사건이 종결 되었었는데 아무래도 에리는 무언가 미심쩍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확실한 증거를 손에 넣었거나) 그 후 그녀는 도쿄로 올라온다. 
 
에리는 이세를 많이 사랑했던 것 같다.
 

 

 
 

죽기 전, 이세의 메시지가 큰 힌트가 되었다. 그로인해 에리의 죽음의 비밀도 풀리고, 가해자들의 신상도 마침내 드러나게 되었으니까. 
 
이세가 숨겨놓은 어쩌면 다잉메시지,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이 책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다. 그의 배후에 누가 있었는지를 알아내는 것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시바타와 교코의 노고, 죽은 유카리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겠다.
 

 
 


 

 

문이 굳게 잠긴 방에서 마치 혼자 죽음을 꾸민 것처럼 그려진 현장을 수상하다고 보는 것, 에리와 연인이라고 알려진 마루모토와의 관계 뒤 무언가 에리의 속셈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마침내 그 이유를 희미하게나마 파악하고 그녀의 고향인 나고야에 내려가 그녀의 전연인의 찜찜하게 마무리 된 사건을 재조명 하는 것 등.
 
이 밖에도 '조금 더 얘기해주지' 싶은 부분들이 많았는데 위에 열거한 것들은 그 중에서도 특히 더 아쉬웠던 부분이기에 구태여 남겨본다.
 
에리의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는 사실 큰 힌트라기보다 사람의 상상과 직감에 크게 의존했기에 끝에 가서 결국 모두를 골머리 앓게하던 문제가 해결되었을 땐 박수를 치면서 '바로 그거였구나!' 가 아닌, '아... 이거였구나. 이런 방법도 있네' 싶어 다소 싱거운 기분이 드는 게 아쉬웠다. 
 
그리고 에리의 사건을 시작으로 덮어두었던 이세의 일, 다카미가 교코를 만날 때마다 에리의 사건을 물어보던 일들이 그다지 매끄럽다고 느끼지 않았다. (작가가 사건들이라는 퍼즐들을 미리 준비해 둔 뒤 어떻게든 맞춰지게 하려고 무리해서 갈고 다듬고 깎아낸 느낌) 
 
1988년에 발표된 초창기 작품이라니까 이 정도는 감안하고 넘어가주어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지만...
 
내게 이 책은 재미있고 단순한 추리소설이었다. 내 생각을 더하고 자시고 할 건덕지가 없이 재미있고 단순한 추리소설. 그래도 이제까지는 추리물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서 무조건 작가의 의도를 건져냈는데, 이처럼 '내용'과 '재미' 만 담겨있는 소설은 처음인 듯 싶다.   
 
그러니까 재미가 없었다는 뜻은 아닌데,
뭐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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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물의 대가 히가시노게이고의 책을 오랜만에 읽어보았습니다. 드라마나 영화 상영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 아닌가 싶을만큼 이번에는 특히 더 유달리 복잡하고 긴 이야기였는데요.

<희망의 끈> 등장인물도 많고, 전개방식이 순서대로가 아닌지라 집중을 하지 않으면 따라가기가 어렵다는 점을 미리 안내 드릴게요.

등장인물이 많다고 했으니 각 인물들에 대한 설명부터 해봅니다. 🙋🏻‍♀️




등장인물,
내용






♦️
유키노부 :

열 살 남짓 되던 두 아이를 지진으로 인해 잃어요. 이후 그의 인생도 생기를 잃습니다. 마침내 그와 그의 아내가 일어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새로운 아기를 맞이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는데요. 하지만 아내의 나이가 많아 임신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낳은 소중한 그들의 딸의 이름,
모나.

죽은 두 아이의 몫까지 행복하길 바라며 금이야옥이야 애지중지 키우죠.

비록 그의
아내는 모나가 어릴 때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지만, 그는 엄마의 역할까지 도맡아 최선을 다합니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들어서일까요?
모나는 아빠에게 냉담합니다. 아빠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왜? 독자인 저도 자꾸만 이런 모나 앞에서 멈칫하고, 솔직해지지 못 하는 유키노부에 의문이 들었는데요.

그들 사이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걸까요?

그리고 아빠는 '야요이 찻집'에 왜 자꾸 들르는 걸까요. 찻집 사장인 야요이가 마음에 들어서? 아님 그저 차가 맛있어서?

실은 유키노부와 죽은 그의 아내 레이코는 모나에게 말 못할 비밀을 모나가 태어나기 전부터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언젠가는 모나에게, 그리고 '야요이 찻집'의 야요이에게, 그 비밀을 이야기 해야만 합니다.



♦️
레이코 :

유키노부의 아내. 지진으로 소중한 두 아이를 잃었죠. 그들이 살기 위해서는 또 다른 아이가 필요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요. 남편과 레이코는 아직 모나가 뱃 속에 있을 때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모나를 낳을지 안 낳을지는 그들의 선택에 달려 있었어요. 더 정확히는 아기를 낳는 레이코의 선택에 달려 있었죠.

그녀는 모나를 낳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녀는 모나를 사랑으로 보살펴요.

하지만
언젠가는 이야기 해야 합니다. 죽음이 코 앞에 당도해 있는 레이코가 말을 할 수 없다면 그녀의 남편인 유키노부라도 그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
야오이 :

'야오이 찻집'을 운영하는 모두에게 신망이 두터운 여성. 10년 전 이혼했고, 그들 사이에 아이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행복해 보이던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죽임을 당합니다.
원한관계도, 사소한 금전문제도 없던 그녀를 누가, 대체, 왜 죽인걸까요?

형사들은 그녀의 지인들은 물론이고 통화를 한 모든 이를 추적조사합니다. 그 조사란 것은 꽤 먼 옛날에까지 이르게 되는데요.

그녀와 그녀의 전남편인 와타누키는 아이를 원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을 해도 아이는 생기지 않았어요. 마침내 체외수정을 하지만 그 또한 실패로 돌아가고야 말았고요. 야요이는 아이를 무척이나 갖고 싶었습니다. 자신이 낳은 아이를 보는 게 간절한 사람이었죠.  

이 이야기는 그녀의 죽음과 연관이 없어보이지만 실은 이것이 핵심입니다.



♦️
와타누키 :

야요이 못지 않게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남자. 야요이의 전남편이었죠.

그녀와는 10년 전에 이혼을 했음에도 그녀의 사후처리를 도맡겠다고 하는 등 의심스러운 행동을 해 형사들의 표적이 되고 있습니다.

그는 현재 다유코라는 여성과 동거중에 있는데요. 아이를 가지지 못 하는 다유코와도 곧 헤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야요이가 죽은 뒤 그는 눈에 띄게 초조하고 불안한 듯 보여요.



♦️
다유코 :

학창시절에 아기를 지운 경험이 있습니다. 아기를 낳고 싶었지만 당연히 주변에서 만류를 했으니까요. 그리고 사회인이 되었을 때, 한 유부남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다유코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듯 보였습니다. 부인과 헤어지고 다유코와 아기를 낳아 알콩달콩 살고 싶다는 달콤한 말을 시도때도 없이 하는 남자였죠.

그리고 마침내 다유코에게 아기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유부남은 당황스러워하며 일단은 아기를 지우자고 합니다. 아기가 있으면 이혼이 어렵다는 등의 갖가지 핑계를 들면서요. 그의 설득에 다유코는 피눈물을 흘리며 두 번째 아기를 지우게 됩니다.

그리고 곧 그에게 이별통보를 받아요.

패닉이 온 다유코는 그가 건네는 돈을 무시하고 그에게 다시 한 번 아기를 갖자는 이야기를 하는데요. 말로는 차에서 비참하게 내동댕이 쳐진 후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다시 한 번 찾아온 사랑인 와타누키는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었어요. 하지만 두 번의 수술로 다유코에게는 아기가 들어서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보다 아기를 원하는 남자를 이제야 만났는데.

어느 날, 그의 전부인인
야요이가 그를 불러내요. 그 이후 와타누키는 그녀는 물론이고 생활 전반에 불안을 느끼는 듯 보였습니다. 그들의 안정된 생활을 깨뜨린 야요이에게 화가 난 다유코는 그녀를 찾아가요.



♦️
마쓰미야 :

야요이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 그런데 사건만을 해결하는 인물이 아니에요. 그의 복잡하게 얽힌 사연도 조명을 받고 있죠.

아야코라는 여성에게 받은 전화 내용은 실로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의 아빠가 살아있다고, 병실에 누워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합니다. 그 얘기를 전한 아야코는 아빠의 딸이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아야코와는 이복남매가 되는 거죠.



♦️
가쓰코 :

마쓰미야의 엄마. 마쓰미야에게 아빠는 어릴 적 죽었다고 설명해오곤 했어요. 그녀는 벌어진 상황에 맞닥뜨리기를 거부하다가 마침내 비밀을 털어놉니다.

그녀와 그의 남편이 될 뻔 했던 사람 즉, 마쓰미야의 친아빠와의 관계는 평탄한 게 아니었습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유부남이었어요. 아이도 있었죠. 하지만 그는 곧 이혼 할 것이라며 그녀와의 관계를 지속해 나가길 원했습니다. 그의 현부인은 자신이 모르는 불쾌한 비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 사이에 생긴 아이, 마쓰미야는 세상빛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이는 아빠 없이 자라나야 했는데요. 이유인즉슨, 아빠가 전부인에게 돌아갔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내가 죽을 병에 걸려서요.

마쓰미야의 엄마는 그렇게 홀로 마쓰미야를 키웠습니다.



♦️
마쓰미야의 아버지 :

본인이 죽을 것을 예상하고 유언장을 작성했습니다. 그 안에 마쓰미야의 이름을 적시했죠. 그의 딸은 유언장을 미리 열어보고 그를 찾아 나섭니다. 생전에 마쓰미야를 또 보게 되리라곤 그도 기대하지 않았을 거예요.







무척 길죠? 이야기 여러개가 겹쳐 있어요. 순서도 제각각이고요. 드라마나 영화로 접했다면 좀 나앗을지도 모르지만 책으로 읽으니 여간 복잡한 게 아니었습니다. (집중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몰입해 읽어 재미는 있었지만요.)

이야기는 아기를 낳고 싶은 여성, 낳고 싶은 남성들을 비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자에 크게 치우쳐진 것 같아요. 솔직히 읽으면서 작가가 남자라 여성에 공감을 못 하는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읽으면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점 남겨보겠습니다.



✔️
아기를 두 번 지운
경험이 있는 다유코






다유코는 아기를 두 번 지웠습니다. 아기를 낳고 싶었지만 지울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의하여 내린 결론이었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수술을 마치고 온 본인에게 돈을 주며 헤어지자고 말하는 유부남에게 자기와 다시 한 번 더 아기를 갖자고 매달리는 여성은 일반적이지 않으며 미쳤다고 봐야 옳은 게 아닐까요.

학창시절에 실수로 갖게 된 아기를 낳고 싶어할 때부터 이상하다 싶었는데 작가가 다유코를 이상하게 이해한 것 같아요. 작중에 다유코가 말해요. '아기를 낳아도 된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고. 그녀가 바란 건 타인의 인정과 관심, 사랑이었지 진정한 아기가 아니었어요. 다유코에게는 다른 아기들을 예뻐하거나 그리워하는 장면이 단 한 번도 보여지지 않습니다.

다유코를 그저 아기를 원하는 인물로만 보기에는 오류가 있는 듯 해요.



✔️
마쓰미야의 어머니 다쓰코,
자발적인 미혼모






그녀는 유부남과 관계를 지속해오다 그가 떠나자 그 몰래 그와 함께 만든 아기를 낳죠. 태어날 아기의 입장은 왜 생각을 안 하는가요.

저 같으면 마쓰미야를 낳지 않았을 겁니다. 마쓰미야를 위해서. 최근, '낳음 당했다'는 표현을 들었어요. 매우 거친 표현이라 거부감이 들긴 하지만 그 표현 말고는 달리 설명할 말이 없을 정도로 무책임한 부모에게 분노를 느끼고 있음이 전해집니다. 왜 출발선에서부터 차별이 있어야 하느냐고 울부짖는 아이들의 통한의 외침을 모른 척 하지 마세요.

각자의 사정은 다 다릅니다. 원하지 않았는데 미혼모, 미혼부가 된 사람들도 많아요. 그리고 연예인 사유리처럼 책임감과 뚜렷한 신념을 가지고 자발적인 미혼부모가 되신 분들도 많죠.

이야기 속 마쓰미야의 어머니는 유부남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오다 아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생명은 소중하니 그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주는 게 맞는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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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왜 안 되는데? 부모에게 자식은 마음의 버팀목이고 인생의 보람이야.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야. 그게 정상이라고." "우리 집은 정상이 아니야. 나는 태어날 때부터 누구 대신이었어. 자식 둘을 잃은 엄마 아빠가 자신들의 슬픔을 달래려고 낳은 아이잖아. 어릴 적부터 줄곧 그런 말을 들었어. 모나는 저 세상으로 간 언니와 오빠 몫까지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중략)

"나는 나야. 누군가를 대신해서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단 말이야! 죽은 사람 몫까지 살라는 말도 듣고 싶지 않아!"



내가 낳았으니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있는 것 같아요.

부끄럽지만 저도요.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에 꾹꾹 눌러 참을 뿐이죠... 부모는 태어난 아기에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가 없을 때 혼자 겪어내야 할 여러 상황에 솔루션을 제공하고 함께 연습도 해야 해요.

내 아이에게 나는 내 꿈을 대신 이루어주길 바라거나 소망을 투영하지 않도록 애씁니다.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가 좋은 곳에 취업을 하면 편하게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공부를 강요하는 것도 지양하고. 부모는 그저 본보기를 보여주고, 방법을 알려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선택은 오롯이 아이가 하는거라고요.

모나에게 자연스럽게 가했던 압박과 통제를 통해 저 자신을 돌아봅니다. '사랑'이라는 것이 때로는 많은 것을 보지 못 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는 너를 여러 가지로 힘들게 하고 말았지만, 무엇이 모나에게 최선인지 아빠 나름대로 많이 생각했어. 네게 결코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단다. 어떻게든 너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지. 왜냐하면..." 유키노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이었다. "아빠는 모나를 사랑하니까."



작가는 꼭 완전한 형태의 가정이 아니어도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고, 그 가정은 행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야오이와 레이코, 다유코의 쉽지 않은 임신과 불임치료 이야기가 주를 이뤄 솔직히 이 생각에 가닿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만.

동상이몽에서 군인 아빠와 중학생 여자아이의 고민이 소개된 적이 있었어요. 그 때 그 고민보다는 군인 아빠가 새아빠라는 사실에 객석은 더 많이 술렁였죠. 군인 아빠는 아빠 이름 앞에 굳이 '새'자를 붙여야 하느냐고 했습니다. 그리고 딸에게 영상 메시지를 하나 남겼는데요.

"세상이 다 너를 배신해도 아빠만큼은 네 편이라는 거. 내가 지켜준다는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화면이 비춘 여자아이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모나도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 같아요. 동상이몽 여자아이도 모나도, 어쩌면 진심어린 부모의 그런 말, 행동, 눈빛이 간절했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꾼 히가시노게이고의 필력은 여전합니다. 술술 읽혀요. 아시죠?

다만 이 책을 읽을 때는 꼭 집중 하셔야 해요... 집중하지 않으면 생각이 여러갈래로 뻗어 혼란스러울 수 있거든요.

수정란, 임신, 불임치료, 미혼부모가정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있으니 다른 상황에 처한 인물들은 이 주제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하신 분들께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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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동조압력, 자기보신, 집단 따돌림, 학교폭력, 집단주의, 꼬리자르기 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동조압력 : 소수의견을 가진 사람에게, 암묵 중에 다수 의견에 맞추는 것을 강제하는 것.

▪️자기보신 : 자기 한 몸의 안전만을 바라고 보호하는 것.




읽는 내내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가 얹힌 듯 갑갑했어요. 일본 작품이잖아요, 주제가 국적을 잘 만났다고 생각했네요. 일본 사람들이 특히 잘하는 눈치보기, 과잉충성, 사건은폐, 잘못됐다고 생각 하면서도 휩쓸리기와 같은 모습들을 아주 잘 그려냈습니다.

지독하다고 생각하는 한편, 이런 일본인이 있어 다행이다 싶기도 했고요. 작가도 어디 가서 이런 얘길 대놓고 하긴 어려웠을 거예요. 그래서 이런 식으로라도 목소리를 낸 데 박수쳐주고 싶었어요. 이런 식으로라도 제 목소릴 내야죠.



일부 스포를 포함하고 있으니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내용 소개부터 갈게요. 🪄




<과거>




이 곳은
유복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것 같은' 하토하 지구입니다. 이 마을은 다른 곳과는 다른 특이점 및 차별점이 있는데요. 일단, <입주 자격 조건>입니다.


  • 1. 남편은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진 자일 것
  • 2. 아내는 전업주부일 것
  • 3. 자녀는 둘 이상이어야 할 것


그래서 기모토는 직업을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마을의 방범대원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는 그녀의 남편은 때때로 그녀를 무시해요. "여자는 몰라도 돼."라면서요.

근데, 이 뿐만이면 다행이게요?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마을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똘똘 뭉친 마을의 방범대원들은 주민들을 옭아매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는 건, 지켜야 하는 규칙을 더 만들었다는 뜻이냐?

하면... 뭐, 그것도 맞는데요. 진짜 특이한 게 곧 나옵니다.



🧩
기모토의 아들 다카유키의 죽음



유치원생이었던 다카유키가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집에 돌아오지 않는겁니다. 엄마는 걱정스런 마음에 놀이터에도 가보고, 친구네 집에도 가보고, 마을을 샅샅이 뒤지며 아들을 찾았죠. 하지만 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그녀는 뒤늦게 신고를 하려고 합니다.

그 어느때보다 다급한 순간, 그녀를 멈칫하게 만든 건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도 될까...'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요.

마을에서 무슨 사건이 벌어졌을 땐, 꼭 지구대에 먼저 전화 해야하는 게 알게 모르게 퍼져있는 이 마을 사람들간의 규칙이었거든요.

기모토는 그 규칙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경찰서에 전화를 합니다. 그리고 남편이 돌아오죠. 경찰에게 먼저 전화를 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자마자 남편은 아내를 무섭게 노려봅니다. 곧, 마을의 방범대원들에게 급히 연락을 돌린 남편, 방범대원들은 경찰보다 더 빨리 집에 찾아옵니다. 그리고 경찰에 먼저 전화를 한 기모토에게 무언의 눈치를 주죠.



🧩
목격자의 잘못된 증언



기모토의 아들은 이튿날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방범대원 중 한 명이었던 마쓰오가 범행 추정 시각에 동네에서 수상한 사람을 봤다는 제보를 하는데요. 그 인물은 베트남에서 우리나라로 일하러 들어온 한 노동자였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한날 한시 모여 그 베트남인의 집 앞으로 가서 확성기로 그를 불러내고 돌을 던지고, 죄를 인정하라고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베트남인은 나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고, 결백하다고 했어요. 그리고 기모토는 그의 눈을 보고 직감으로 알았습니다.

그는 범인이 아니라고요.



🧩
흐지부지 끝나고 만 범인 찾기



결국 사건은 미제로 남게 되었습니다. 범인을 색출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기모토는 사람이 너무 슬프면, 자면서도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마을 만들기 말일세. 나쁜 짓은 외부에서 들어온 놈이 한다, 우리 마을에는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없다, 그러니 행여 마을 사람이 나쁜 짓을 저지르기라도 하면 없었던 일처럼 뭉개버리는 거지."

"설마."

"이 마을은 그게 통한다니까."







🧩
하토하 지구에서 벌어진 일가족 실종 사건



19년 전쯤, 하토하 지구에서는 기모토의 아들 다카유키가 유괴되어 죽은 것 말고도 기묘한 사건이 하나 더 있었는데요. 일가족이 갑자기 실종 되었던 겁니다.

그들은 부동산업자인 노부카와에게 토지를 맡기고 어딘가로 가버렸다고 해요.

마을 사람들은 그 가족의 실종사건은 이 하토하 지구에서 집을 빼고 나간 후에 일어난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밑에서 이어집니다.



🧩
지구장 대리 노부카와



지구장이었던 스가이가 자리에서 물러나고 그 뒤는 이제 노부카와라는 사람이 맡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스가이처럼 앞에 나와 진두지휘를 하지 않고 자신은 스가이의 대리일 뿐이라며 한 발 뒤로 물러나 있는 태세를 취하는데요. 실제로는 마을의 모든 일이 노부카와의 지휘 아래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일이 조금이라도 잘못 되면 자신은 살짝 담가두었던 발을 바로 빼고 발뺌하려는 속셈이었죠. 그래서 지구장 '대리'라는 방패막이를 앞세웠던겁니다. 졸렬한 사람이죠.

노부카와가 지구장 대리가 된 후 마을의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그의 아내가 무심결에 한 말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규칙'이 되고 또, '법'이 되고는 했어요.


실제로 쓰레기 배출 규칙이며 공원에서 놀이기구를 없앤 것, 밤 외출을 제한한 것도 전부 노부카와 부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렇다고 명령조로 말한 것도 아니고 넋두리처럼 툭 흘리기만 해도 널리 퍼져나가, "그 댁 부인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하며 동조하는 주부들이 늘어나면서 '당연'하게 굳어졌다. '당연한 것'과 '당연하지 않은 것'을 판단하고자 하는 문제의식도 없이, 마을의 운영 방침은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도 노부카와 부부의 암묵적인 지시를 주위 사람들이 따르는 형태로 '당연'해졌다.




🧩 료코 가족의 이사



그런 하토하 지구에 어느 날, 료코 가족이 이사를 옵니다. 료코, 남편, 아들, 딸. 이렇게 네 식구였죠. 료코는 바로 옆 집에 사는 기모토와 가까이 지내게 됩니다. 그녀는 기모토가 어린 아들을 안타깝게 잃은 사연을 듣고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진심어린 위로와 공감을 건네는데요. 그런 료코의 태도를 보고 서서히 기모토도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곧, 마을엔... 흉흉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해요.


하토하 지구 주민 여러분께. 남B2에 사는 사람이 마을의 안전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특히 여자쪽이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면서 우리를 중상모략 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을 주민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여자쪽'이라는 건, 료코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누가 이런 소문을 내고 있는걸까요?

아니, 이사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료코가 대체 뭘 잘못했길래 이런 소문이 나돌고 있는거죠?



<현재>





♟️
변호사 이와타, 조사원 마사키



변호사 이와타를 찾아 온 한 소녀는 제 가족을 찾고 싶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보육원에서 자랐으며 가족을 알지는 못 하나 이제는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사는지, 왜 나를 버리고 갔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다고 해요. 그래야 자기 자신에 대한 정체성도 정립이 될 거라면서 말이죠.

이와타는 조사원 마사키에게 그녀의 가족을 찾으라는 임무를 내립니다. (그(마사키)와 그녀(이와타)는 마사키의 안타까운 사건으로 얽힌 신뢰할 수 있는 관계) 마사키는 그녀가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이번에도 그녀의 임무를 잘 수행해보려고 합니다.

이와타는 마사키에게 정보를 흘려요. 그렇게 마사키는 하토하 지구에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
실종된 일가족의 딸, 마키



가족을 찾아 하토하 지구를 찾은 마키를 미행하다가 마사키는 위험에 처한 그녀를 구해주게 되고, 그리하여 둘은 함께 다니는 처지가 됩니다.

하지만 마키가 마을 주민들에게 실종된 일가족 사건을 수없이 물어도 돌아오는 건 싸늘한 반응들 뿐이었어요. (더 적확한 표현은 '적의를 드러냈음'이 맞아요.) 도무지 꼬인 실타래는 풀릴 줄을 몰랐죠.

료코(마키가 엄마라고 주장하는)의 집을 찾은 뒤 그 근처에 사는 이웃에게 한 번 더 정보를 구할 때, 문을 열고 나온 여자는 바로 옛날에 아들을 잃은 기모토였습니다. 기모토는 마키를 보자마자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 해요.



♟️
사람들의 죽음



얼마 뒤 마키는 경찰서에 참고인 자격으로 앉아있습니다. 누군가 죽었는데 그 자리에 마키가 함께 있었거든요.

마사키는 이와타와 또 다른 변호사의 도움으로 마키를 보호하고, 이번에는 진실을 향해 눈을 더 똑바로 뜹니다.

마을 주민들은 마키와 마사키가 묵고 있던 숙소에 찾아와 '이 마을에 나쁜 사람은 없다!', '여자를 죽인 범인은 그 안에 있다!'며 소리를 지르고 돌을 던졌어요. 19년 전, 기모토의 아들 다카유키가 유괴되었을 때, 애먼 베트남인을 목격자의 증언 하나에만 의지해 범인으로 몰아갔을 때처럼요.

아, 그런데 마키의 부모는 정말 누가 죽인걸까요? 아니면 어딘가에 살아있는걸까요? 그녀는 왜 그런 험한 짓을 당해야 했던걸까요?

한 아들이 유괴되고 끔찍한 죽음을 겪어야 했던 것과, 료코 가족이 일순 실종되었던 것, 그리고 마키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소란스러워진 마을 사이, 무언가 접점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느낀점 나눠요🐬





하토하 마을 주민들은 자신들이 사는 마을이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곳이라고 부르짖었습니다. 특히 방범대원들이 그랬죠. 그래서 그 신념에 어긋나거나 어긋나려 하는 사람들을 보면 먹이를 발견한 맹수처럼 달려가 사정없이 물어뜯어버렸습니다. 그들은 '규칙'을 어긴 사람은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싫으면 이사를 가라고 했는데, 글쎄요...

마을엔 그렇게 단순한 사람들만, 바람대로 범죄를 전혀 저지르지 않는 깨끗한 사람들만, 모여살고 있는 게 아니었는데요. 이사를 가고 싶어도 가지 못 하는 사람들도 섞여 있었을 테고요.

그냥 순응하고 있는거죠. 말하지 않는다고, 대두되지 않는다고, 그게 다 '옳은 일'인 건 아니잖아요. 단체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은 당연하다는 듯 터부시되는 모습들이 착잡했어요.

저는 신안 염전 노예가 생각나더군요. 공무원마저 도와주지 않는 곳에서 힘없는 개인은 대체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같은 인간을 '주인님'이라고 말하는 생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역시 이번에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하토하 지구에서는 개인의 목소리를 아예 싹이 날 때부터 즈려밟고 짓이겨버렸습니다. 그리고 흔적도 없이 없애버렸습니다.

사람은 누군가 그렇게 당하는 걸 보기만 해도 두려움을 느끼는 존재입니다. 여유로운 마음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지죠. 인간의 악마같은 면모 중 하나인데요, 무력으로 제압하고, 본보기를 보여줘서 대들지 못 하게 하고, 눈치를 보게 만들고, 마침내는 '내 생각'을 바꾸게 하는... 그런 것들이요.

일본은 특히 다른 사람의 시선을 매우 많이 의식하기 때문에 이런 게 심합니다. 누가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눈치로 공기 중에 떠다니는 추측을 냉큼 잡아 공공연한 사실로 만들기도 하죠.

당연히 눈치를 주는 사람도 문젭니다. 눈치를 주는 사람은 내 손에 피 묻히지 않고 상대를 주무르고 싶다는 속내를 가지고 있어요. 나중에 문제가 커지면, '나는 그러라고 한 적 없어.' 발뺌을 하려는 거고요. 이렇게 음침한 행동은 특히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많이 보여지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주범이 되기는 싫고 상대는 괴롭히고 싶고, 그럼 그들은 주변에 말을 흘리거나 분위기를 만들기도 합니다. 누명을 씌우기도 하고, 가스라이팅을 하기도 하고요. 직접적인 폭력을 써서 경찰에 잡혀가는 짓은 가급적 하지 않습니다. 하더라도 무리 속에 숨어서 하지.

차라리 대놓고 말하고 좋고 싫은 점을 명확히 하는 게 더 나은데, 그럴 용기는 또 없는 게 나약한 그들의 공통점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도 점점 일본처럼 이렇게 영악한 방식으로 상대를 괴롭히는 일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저는 아이가 있는 학부모다보니 가장 먼저 학교폭력이 걱정됐는데요. 만일, 사건이 발생하면 내 아이는 무조건 피해자, 가해자, 방관자 셋 중 하나의 역할을 해야만 하니까요. 가스라이팅에 속아넘어가지 않는 단단한 자아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줘야겠다는 새삼스런 다짐을 오늘도 또 해봅니다.

치사하고, 역겨우면서 더러운 속내를 오랜 시간 읽었더니 탄산이 땡깁니다.🥤사이다 곁에 두고 읽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끝으로, 이런 마음을 불러일으켰다는 건 작가로선 큰 수확일 것입니다. 사노 히로미는 이 작품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가 되었는데요.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기대가 됩니다.

이 책을 통해 저는 저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압박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어요. 자연스럽게 모두가 하고 있기에 나도 하고 있는 것들, 한 번도 '왜?' 하고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들, 실은 하지 않으면 내가 더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들 있죠?

구조적으로 단단하게 만들어놓은 것이라 할지라도 의심해봐야지, 그리고 그것이 부당한 일이라면 언젠가는 그 천장이 부서지게 나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내야지, 하고요.

그럼 여러분도 여러분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다음 책리뷰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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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게이고의 작품 좋아하세요? 그럼 가가형사를 알고 계시겠네요. 이 책은 '신참자'시리즈의 완결편이고, 마지막이라선지 가가형사의 숨겨진 가정사가 나와요. 이전에 읽은 '희망의 끈'에서는 마츠미야 형사의 가정사가 나왔었는데 말이죠.

마츠미야와 가가는 사촌지간이에요.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 온 두 사람의 가정사는 그들을 한층 더 입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느끼게 해줍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흥미롭고요.) 히가시노게이고의 책을 읽다보면 소설 속에 있는 인물들이 어딘가 실제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듭니다.


 


2020년, 아베히로시(가가 역)와 마츠시마 나나코(히로미 역)가 주연을 맡아 영화로도 개봉이 된 바 있는 <기도의 막이 내릴 때>입니다.

저는 책도 읽고 영화도 보았는데 원작에서 크게 벗어난 내용은 없는 것 같았어요.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편한 쪽을 선택해서 보세요.

자, 이제 중요한 스포일러는 최대한 자제하면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




 




1️⃣ 가가형사의 엄마 유리코



여자 혼자 외딴 곳에 왔습니다. 곧, 술집에 취업을 하는데요. 그녀는 음울해 보이면서도 밝고, 밝아보이는 듯 하면서도 제 얘기를 도통 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를 취업 시켜준 술집 사장은 그녀가 신경이 쓰이면서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 그러려니, 참견은 하지 않아요. 하지만 그래야 했던걸까요? 결근이 잦았던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그녀는 숨을 거둔 채 자택에서 발견되고 맙니다.

타살의 정황도 없고, 우울증을 앓았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혼자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정리가 되었어요. 그녀가 살던 집을 정리할 때는 보증인이었던 술집 사장이 그 역을 맡아야 했는데요. 유골이며 유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곤란을 겪고 있을 즈음, 가게에서 그녀와 친근해 보였던 와타베라는 남자에게 연락이 옵니다.

그가 전화번호를 알려준 덕에 사장은 그녀의 아들인 '가가'에게 연락을 할 수 있었죠.

그리고 훗날 가가는 와타베라는 남성을 찾고싶어 합니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사장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안개처럼 사라져버린 그 남자를 찾기 위해 가가는 무려 16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립니다.



2️⃣ 두 죽음. 그 사이엔 어떤 연관이?



오시타니 미치코라는 여성이 코시카와 무츠오라는 사람의 집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됩니다. 그 두 사람 사이엔 아무런 교집합이 없었는데요. 곧, 그 동네의 한 오두막에서 유사한 방법으로 또 누군가가 죽은 채 발견됩니다.

형사들은 두 사건을 동일인물의 소행으로 보고 증거를 찾기 시작해요.



3️⃣ 아사이 히로미



한때는 연극배우를 하기도 했던 연극 연출가 아사이 히로미. 그녀가 왜 용의자의 선상에 올랐느냐 하면, 오시타니가 죽기 전에 히로미를 만나러 도쿄로 갔었기 때문이죠. 오시타니가 일하는 곳에서 히로미의 엄마를 발견했는데 그 사실을 알려주러 간 것이었어요.

허나 히로미에게 엄마는 증오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녀는 가족에게 빚을 잔뜩 떠넘기고 도망갔고, 그로인해 빚쟁이는 날마다 집에 찾아왔으며 아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히로미는 그 후 보육원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고요. 몇 십년 동안 연락이 끊긴 엄마를 누군가 발견했다 한들 그건 히로미완 관계 없는 일이었습니다.



4️⃣ 집주인과 노숙자



형사들은 오시타니와 오두막에서 불타 죽은 노숙자를 누군가가 죽인거라 생각했지만, DNA감정 결과 코시카와 무츠코(오시타니가 죽은 집의 주인)와 노숙자는 동일인물이라는 결론에 이르러요.

죽은 남자에 대한 신상정보를 찾아내기 위한 숱한 탐문수사가 이뤄집니다.



5️⃣ 나에무라 선생님



오시타니와 히로미의 접점을 찾아 헤매던 중, 그들의 중학교 시절 은사였던 나에무라 선생님에 대한 소식을 듣습니다. 그는 현재 행방불명 상태였는데요.

생전의 그는 누군가와 부적절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었어요. 가정이 있음에도 내연녀를 몰래 만났고, 그녀에게 값비싼 악세사리를 사주는 등의 행위로 부인의 마음에 생채기를 남기곤 했죠.

형사들은 나에무라 선생님과 히로미, 오시타니의 접점을 찾아내기 위해 당시 함께 재학했던 동창생들의 의견을 수집하기 시작합니다.



6️⃣ 과거에 사라진 히로미



하지만 중학교 동창생들은 히로미를 잘 기억하지 못 했어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기도 했지만 그녀의 마지막이 흐지부지한 모습이었거든요.

히로미의 아버지는 건물에서 투신해 죽었는데요. 생각해보면 당시 그 작은 동네에서 '소문'이 나지 않았다는 자체가 의아한 일입니다. 그들은 그후 히로미 아버지가 어떻게 되었는지, 어디로 가게 되었는지를 잘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어쩐지, 누군가 히로미를 감싸주고 보호해주는 느낌이 들지요.



7️⃣ 가가 어머니의 달력, 코시카와 집에 있던 달력



가가 형사가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할 때 보관해 놓은 것 중 하나가 달력입니다. 그 달력에는 달마다 다리 이름이 달리 쓰여져 있었는데요.

오시타니가 죽은 집, 그러니까 코시카와의 집에서도 달마다 다른 다리 이름이 반복되는 게 발견 되었어요.

필적 감정을 해보니 두 달력은 모두 똑같은 인물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와타베와 코시카와는 동일인물이었던 거예요.



8️⃣ 다리들



가가는 히로미를 유력 용의자로 보고 그 다리들에 서 있는 그녀의 사진을 찾기 시작합니다. 다리 씻기 행사가 있던 날, 사진을 찍은 자들에게 부탁을 하죠. 그리고 마침내 그는 그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녀는 왜, 그 다리'들'에 서 있었던 걸까요?



9️⃣ 검도잡지



가가는 검도에 출중합니다. 잡지에도 실린 적이 있어요. 몇 년 전, 히로미가 자신의 연극 부원들에게 검도를 가르쳐달라며 찾아온 적이 있을 정도로요.



🔟 히로미는 가가를 어떻게 찾아왔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녀가 그를 찾은 건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노력이고 필연이었죠. 그런데 그녀는 왜, 가가 형사를 만나고자 했던걸까요?



☑️ 다시 한 번, 히로미.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히로미를 찾아갑니다. 먹잇감을 앞둔 사냥꾼 같은 가가는 이제 본격적으로 그녀를 옭아매기 시작해요. DNA 채취를 위해 그녀의 집에서 몰래 머리카락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가가는 과연 누구와 히로미의 DNA를 대조해 볼까요? 그녀는 누군가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그 누군가도 그녀를 지키기 위해 이 모든 일이 일어났던 것이죠.

수수께끼의 비밀은 책에서 확인해 주세요.




 



이 이야기의 하이라이트는 아직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살짝 힌트만 주자면요. 히로미의 가족들은 그들의 엄마가 집을 나간 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 후 어떤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가 이 책의 핵심이에요. 그 이야기가 끝난 후 자연스레 범인도 검거가 되고요. 음... 그래도 아직 아리송 하시죠?

저도 책이 상당히 두꺼운데 읽는 내내 단서가 별로 없어 의문만을 계속 읽는 게 솔직히 힘들었어요. 막판에 그간의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시켜주는 한 방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역시 히가시노게이고' 라는 말엔 동의하고 말았지만요. 생각을 많이 하게 하더군요.




 



이 책에는 다양한 부모들이 나옵니다. 아이를 버리고 도망가는 사람, 아이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 심지어는 아이를 위해 도망가는 사람 등...

그들은 모두 겉으로는 아이를 위한 결정이었다곤 하나 결국 또 저 편한 결론들이 아니었나 싶었네요. 부모가 되었다 해도 인간은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동물인 것 같아요. 끝내 죽음을 택한 누군가마저 저는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을 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절박한 상황에 그것만이 최선이었다고 한다면 인간은 애초에 그렇게 셋팅이 되어 태어났다고 밖에 볼 수 없고... 나약한 인간의 한계를 간접적으로나마 접하고나니 씁쓸하기 그지없어요.


또, 저는 욕 먹어야 마땅한 사람에 대한 단죄가 충분치 않았다는 점에 대해 분노했는데 이런 걸 여운이라 해야 할지... 는 잘 모르겠어요. 책을 덮어도 어딘가에 살아 숨쉬고 있는 그와 같은 사람은 언젠가 제 목도 조를 것 같아 찜찜합니다. 볕들 구멍 하나 없었던 참혹한 그의 삶에 대입을 하면 숨이 막힐 정도로 안쓰럽지만, 그에 의해 희생 당한 피해자는요. (왜 작가님마저 조명 해주지 않으셨나요?) 그에게 그랬듯 피해자에게도 가족이 있었는데요.

실제로는 이보다 더 흉악한 인간이 많으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저는 이만 이 책을 마무리 하려 합니다.

여러분도 여러분만의 메시지를 발견하시기를 바랄게요.

그럼 좋은 시간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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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스에 료코가 주연을 맡아 큰 화제가 되었던 일본 영화 <비밀>. 1999년에 상영 되었어요. 오래됐죠.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은 왠만해선 다 재미있는지라 이번에도 의심 않고 읽기 시작했는데요.

너무 놀랐어요. 오래된 작품이니만큼 지금은 작가의 사상이 변해있으리라고... 믿고 싶어요.

책 내용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영화로 보면 좀 다를까 싶어 일부러 찾아봤어요. 그런데 내용 자체가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것이다보니 아무리 배우들이 열연을 해도 불쾌하고 찝찝한 마음은 들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읽고나면 반드시 의견이 한 쪽으로 치우쳐져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을 하실지 궁금하네요.




내용



엄마 나오코와 딸 모나미는 외가 제사를 지내기 위해 버스를 타고 이동해요. 하지만 그 버스는 산중에서 추락하여 많은 사상자를 내게 됩니다. 나오코와 모나미는 같은 병원에 입원하게 돼요.

그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간 아빠 헤이스케는 의식이 몽롱한 나오코의 손을 꼭 잡고 들릴 듯 말 듯한 그녀의 목소리에 귀기울입니다. 나오코는 모나미를 찾아요. 헤이스케는 모녀가 손을 잡을 수 있도록 침대를 붙여줍니다.

모나미의 손을 잡은 순간, 나오코는 이제 되었다는 듯 눈을 감는데요.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이번에는 모나미가 눈을 뜹니다.



"여보..."





딸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모녀가 손을 잡을 때 엄마의 영혼이 딸의 몸 속으로 들어간 걸까요? 모나미는 식물인간이 될 뻔 했지만 가까스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고, 곧 일상 생활도 가능하게 됩니다.

그리고 헤이스케에게 나오코만 아는, 모나미는 알 수 없는 부부만의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자신이 나오코라고 설득을 시작해요.

나오코의 평소 습관, 요리 솜씨, 취미, 어른스러움은 흉내를 낸다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모나미의 몸을 빌린 나오코와의 시간이 시작되죠.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그들은 부부지만 결코 관계를 맺을 수 없었습니다. 비록 눈 앞에 있는 사람이 나오코라고 해도 겉모습은 영락없는 딸의 모습이기 때문이었죠. 그런 그녀와 관계를 맺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꾹 참아요. (그로인해 짧게나마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바람을 시도하기도 했네요.)

나오코는 정신은 어른이어도 몸은 어린 아이여서 그런 욕구가 올라오지는 않았지만 남편을 위해 잠자리를 시도해보자는 제안을 몇 번이나 합니다. (심지어는 '입으로...' 라는 말이 나왔... 진짜 혈압!)

그리고 자신의 처지를 과학적으로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 혹여나 딸이 돌아올 수도 있으니 멋진 인생을 살아놔야 한다는 마음, 열심히 공부하지 못 했던 지난 세월을 답습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공부에 매진해요. 열심히 했기에 결국 의대에 붙게 되고요.

하지만 합격 한 뒤 학교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일들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을 해두지 못했습니다. 연애를 할 수도 있고, 누군가 그녀를 좋아할 수도 있고, 동아리 활동을 하다보면 귀가가 늦어지기도 하는 것들 말이에요.

나오코를 위해 연애도 재혼도 포기한 헤이스케 입장에서는 서운함을 토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헤이스케를 나오코는 이해하지 못 했지만요.

그녀는 헤이스케 몰래 일명 썸을 타고 있는 소마 선배를 만나러 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오코 몰래 도청 기계를 설치해 대화 내용을 엿듣고 해당 장소에 미리 나가있던 헤이스케도 잘한 건 아니네요. 나오코는 집에 돌아와 기계를 발견하고 그에게 불같이 화를 냅니다.

그 이후 나오코는 시든 풀처럼 생활해요. 헤이스케가 결국 두손 두발 다 들게 되죠. 그녀에게 그녀만의 인생을 살라고 얘기합니다.






나오코와 모나미가 산중의 버스 추락 사고로 인해 영혼이 뒤바뀌었잖습니까? 그 버스에 타고 있던 피해자들의 유족들은 모임을 만들어 버스 회사에 높은 액수의 보상금을 요구하는데요. 그 과정에서 알게 되는 졸음 운전을 한 버스 기사의 가족사도 조명이 되고 있습니다.

졸음 운전을 한 버스 기사는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었어요. 하지만 투잡을 하고 있었음에도 그의 아내는 늘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고백했죠. 알고보니 그는 자신의 친아들은 아니지만 호적상엔 아들로 올라가있는 아이를 도와주기 위해 버는 돈을 그 쪽으로 보내고 있던 것이었어요. 재혼한 아내가 데려온 딸은 그러면 그럴수록 가난한 생활을 벗어날 수 없는데 말입니다.







내용이 막바지로 치달을 즈음 모나미의 몸 안에선 다시 한 번 신기한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잠시였지만 나오코의 영혼은 어딘가로 달아나고 진짜 모나미가 돌아와요.

그리고 정신을 잃으면 또 잠시 뒤에 나오코가 돌아오는 그런 식이 몇 번 반복되었죠. 나오코는 모나미에게 그간 자신이 지내온 시간을 설명해 주기 위해 메모를 남겨놓기 시작해요.

헤이스케는 모나미도 만날 수 있고 나오코도 만날 수 있는 현실에 행복해 해요. 하지만 자신은 이제 곧 영영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암시의 메시지를 남기는 나오코에 곧 불안해지고 말죠.

그녀의 말대로 나오코는 점차 모습을 드러내는 시간이 줄어들어 갔습니다.

자, 이제 대망의 결말만 남았습니다. 이 결말은 (이제까지의 내용으로만 봐도 충분히 호불호가 갈릴 만한 내용이라고 생각되지만...) 상당히 의외인 편입니다.

이제 모나미의 몸을 차지하게 되는 사람은 누구인지. 그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헤이스케는 어떤 길로 나아가게 될 지 이 부분들이 핵심인데요. 그러므로 이건 책에서 직접 확인해 보세요.

즐거움을 위해 찝찝하다거나 통쾌하다거나 하는 힌트도 남기지 않겠습니다.


함께 읽고 싶은 하이라이트
& 느낀점



헤이스케는 말똥말똥해진 눈으로 어둠을 응시하면서 나는 딸과 아내, 어느 쪽을 잃은 것일까, 라고 생각했다.



몹시 의아했던 점이 헤이스케는 아무리 모나미의 몸에 나오코가 들어왔다고 해도 그렇게 된 둘의 처지를 왜 깊이 슬퍼하지 않았느냐는 거예요.

내가 아는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렇게 사람의 감정을 몇 년이 훅 지나버린 듯 스쳐지나가버리는 작가가 아닌데... 당황스러웠어요.

"규칙 하나를 깨면 두 번째, 세 번째가 깨지는 건 순식간이야. 결국 엉망이 되겠지. 예전의 내 인생이 그런 식이었어. 결국 초등학교에서 전문대까지 14년이나 학교에 다녔으면서도 살아가기 위한 방도를 하나도 배우지 못했어. 나는 그런 짓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아. 그런 깊은 후회를 되풀이하는 건 절대로 싫어."



누구나 한 번쯤 하는 상상, 어린 시절로 돌아가 그 시간을 다시 살아보는 것. 나쁘지 않죠. 하지만 나오코는 후에 모나미가 돌아온다면 딸이 좋아할 만한 선택보다 자신의 생각을 우선합니다. 자신이 후회하는 시간을 모나미의 몸을 빌려 회복하고자 해요.

모나미의 몸을 빌리고 있는 주제에 남편에게 관계를 시도해 보자고 하는 망언이나 이런 이기적인 생각은 너무 무지하고 모자란 모성애 결여된 엄마 같아 보는 데 거북했어요.

10대 때만 보이는 것, 나이를 먹으면 차츰 보이지 않는 것이 분명 지금의 나오코의 눈에는 보이는 것이다.



십대를 다시 사는 나오코는 신이 났습니다. 만일 모나미였다면 어떤 학교를 가고 싶어 했을까, 어떤 수업을 좋아했을까, 어떤 첫사랑을 겪을 수 있었을까 고민을 하는 장면이 하나도 안 나와요.

작가가 남자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쪽으로 글을 쓰게 된 걸까 싶을 정도로 실망스러웠습니다.

저라면... 일단 사라진 모나미를 아주 오래 그리워 할 것 같은데. 거울을 볼 때마다 눈물을 쏟아낼 수도 있고요. 참으로 짧은 시간에 회복이 가능할 수 있었던 나오코가 비현실적인 가상 인물처럼 느껴졌고 그런 그녀에게 공감을 할 수 없어 힘들었습니다.

가지카와는 이쓰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가. 단순히 함께 살기로 한 여자가 데려온 아이였을 뿐인가. 과거에 내팽개친 친아들과 현재 돌봐주어야 할 의붓딸 사이에서 그는 어떻게 마음의 균형을 유지했을까.



졸음 운전을 한 버스 기사의 이름이 가지카와입니다. 그는 호적상에 친아들로 올라 있는 피가 섞이지 않은 아들과 죽기 전 날까지 함께 살았던 의붓딸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지 못했습니다. 의붓딸을 소중히 여겼다는 내용이 나오지 않고 아들에게 생활비를 가져다주느라 딸이 생활고를 겪었다는 내용만 나오거든요.

개인적으로 이 책에는 이해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참 많이 나오는데 그 중 가지카와도 한 몫 합니다. 아들에게 돈을 가져다주려고 투잡을 뛰다가 졸음 운전을 하게 되서 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들고, 그로인해 생활이 어려워짐과 동시에 정신이 피폐해진 그의 두 번째 아내 역시 죽고 말았으니까요.





초안이 된 단편의 제목은 <안녕, 아빠>였다고 하는데요. <비밀>도 썩 와닿는 느낌은 아니지만, 모나미보다 나오코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므로 차라리 바꾼 게 나은 것 같습니다.

결말이 이상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저는 결말까지 가기도 전에 이미 충격을 맛봐서 결말은 그저 그랬어요. 어떻게 딸의 몸에 들어가 있는 엄마라는 사람이 자신과 남편을 위해, 후에 딸이 돌아오면 대체 어떻게 설명을 하려고 잠자리를 요구할 수 있는지 도통 이해가 되질 않아요.

그 충격이 너무 심해서 그 장면을 두둔하는 사람들에게조차 당혹감이 드네요.

나오코는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요. 만약 모나미가 딸이 아니라 남자였다면, 아들이었다면, 그래도 똑같아요. 어떻게 자녀의 몸을 빌린 상태에서 배우자에게 관계를 제안합니까? 아, 토나올 것 같아. 더 심한 말 하고 싶은데 그냥 그만 할게요.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가 필요하신 분들 또 혼란스럽고 싶은 분들께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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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간단한 내용의 책이 어떻게 일본에서 드라마화 되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개인적으론 재미가 없었어요. 히가시노게이고의 팬이신가요? 그럼 아실거예요. 이 책엔 유가와 마나부 교수가 나옵니다. ('유가와 마나부 시리즈'는 '용의자 X의 헌신'을 포함함 추리 소설 모음집) 저는 유가와 마나부 이야기를 좋아해요. 그가 나오기만 하면 영영 풀리지 않을 것 같던 문제도 결국은 뚝딱 하고 풀려버리고 마는, 등장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런 경험을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이건 너무... 너무 심플한 내용이 아니었나 싶은데요.

 

 

줄거리

 



마시바 요시다카(이하 요시다카)는 자택에서 안타까운 모습으로 발견 됩니다. 그를 발견한 사람은 그와 내연 관계였던 와카야마 히로미(이하 히로미). 요시다카의 부인인 아야네는 삿포로에 있는 친정에 가 있는 상태였습니다. 참고로 아야네와 히로미는 스승과 제자 사이였어요.

어쩌다 스승의 남편과 부적절한 관계를 갖게 되었는지 시작부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요시다카는 여자를 '사랑'해서 만나는 게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아이를 낳아줄 '여자'를 원한 것 뿐이었죠. 결혼한 지 1년이 지났는데도 아야네에서 아이 소식이 없자 그는 그의 제자인 히로미에게 눈을 돌렸던 거예요.

아야네와 만나기 전, 그는 준코라는 여자와도 만났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 역시 버림을 받았죠.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요.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 슬픈 결말을 맺어요. 준코와 아야네는 친구 사이였는데요. 준코는 결단을 내리기 전, 아야네에게 독극물을 택배로 보냅니다. 왜, 무슨 이유에서?

한편, 수사팀은 요시다카의 사인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어 진척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때... 눈치 밥말아먹은 구사나기 형사가 아야네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껴요. 어쩔 수 없이 가오루는 천재라고 불리우는 유가와 마나부 교수를 찾아가 도움을 청합니다.

그는 요시다카가 죽기 전에 마신 커피에 집중해요. 그리고 그 안에 타졌을 독극물의 경로를 파고들지요. 여기서 조금 독특한 이야기 전개 방식이 펼쳐지는데요. 범인을 부인인 아야네로 상정해 놓고, 그녀가 어떻게 정수기를 이용하여 그의 목숨을 노릴 수 있었는가를 알아내기 위해 애를 씁니다. 이 과정을 두고 사람들은 모두 불가능한 일이라고 고개를 내젓는데,(저도 그랬었고요.) 하지만 결국 유가와 마나부는 그 트릭을 알아내는 데 성공합니다.

범행의 수법과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진범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부인 아야네? 내연관계였던 히로미? 그것도 아니면 요시다카가 전에 만났던 그 누군가?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세요. 그리고 책에서 그 결과를 확인해 보세요.

 

 

이 책에서 아쉬웠던 점

 



트릭의 불확실성이 너무 큽니다. 시간이 너무 길어요. 그래서 '이게 성공해서 요시다카가 죽은거예요.' 라는 말에 쉽게 납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도대체 요시다카에겐 무슨 매력이 있기에... 준코부터 아야네, 히로미까지. 궁금했는데 그의 매력이 설명된 바가 없고, 이미 죽은 자라 대사도 하나 없어 짐작을 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래도 명색이 주인공인데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안그래도 그의 사상에 반기를 오천만개는 들고 싶은데, 이해를 하는 데만도 무지막지한 상상력을 동원해야 해서 되게 피곤했어요.

형사 구사나기와 가오루. 구사나기는 위에 말했듯 피해자의 부인인 아야네에게 사랑에 빠져요. 말그대로 '이와중에'요. 그래서 유가와 마나부가 이렇다할 증거를 보여주어도 '그녀는 아니야. 어쨌든 아니야!'식의 거의 땡깡 비슷한 반론을 펼치기에 이르죠. 실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가오루 역시 아야네를 범인으로 정해 놓고 추리를 시작하긴 했지만, 왜 그녀가 제 1순위가 되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는 알려주지 않아 읽는 내내 의문이 들었습니다. 유가와 마나부가 아니었다면 이 책은... 저에게 나쁜 쪽으로 희대의 작품으로 남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 책이 좋았던 점

 



결말이 알고 싶어 빠져든다기보다는 아무래도 작가의 글솜씨, 문체(번역) 자체가 유려하게 흘러가는 편이라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는 뜻이지만, 잘 읽힙니다. 어딘가 이동하는 중에 추리소설 한 권 읽기 원하신다면 이 책을 추천 드려요.

 

 

제목의 의미

 



책을 다 읽은 후 성녀는 누구인가 싶었어요. 두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요. 첫째, 요시다카의 질긴 아기 타령이 마침내 끝이 나잖아요. 저는 그 어리숙한 생각을 끝내준 누군가가 성녀라고 생각했습니다. 여자를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아기 낳는 기계라고 보는 그 마음은 가히 몰상식하다 라고 표현을 해도 모자르죠. 그 마음을 강하게 비난한 자일거라고 생각했어요. 즉, 독극물을 택배로 보낸 준코 혹은 히로미를 그에게서 구해낸 아야네를 의미한 게 아니었을까요.

저자가 이토록 거창한 제목을 붙인 이유는 요시다카의 가치관 속에서 그녀들을 구해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함 아닌가 싶었습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표지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구제의 나날이 끝나는 순간 단죄는 시작 되리라'. 아야네는 언제든지 요시다카를 죽일 수 있었어요. 그녀가 그를 죽이지 않고 기회를 여러 번 주었던 나날이 구제로 표현이 되었고, 단죄는 마침내 실행을 했음을 뜻하는 말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전작에 비해서

 



별로예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원래 놀라운 흡인력이 특징적인 작가라 이제까지의 저는 그의 모든 페이지를 넘긴 후 놓여진 책을 보고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얼얼함을 감당하려 애써왔어요. 그런데 이 책은 그러고 말고 자시고 할 것이 없었네요. 추리소설인데 트릭이 허술 했다는 게 가장 실망스러웠어요.





흙탕물 다 튀겨놓고 이제와 딴소리냐고 하실 수도 있지만... 남에겐 최악이었어도 당신에겐 의미 있는 작품이 될 지도 모르니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한 번 읽어보세요. 저도 훗날 다시 읽었을 땐, 책을 읽는 장소와 감정 그리고 컨디션에 따라 다른 느낌을 받을 수도 있어요.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고 있기 때문인지 몰라도 다음은 그만의 휴머니즘이 돋보이는 작품을 읽고 싶네요. 유가와 마나부 선생의 뛰어난 추리가 돋보이는 소설은 시간 간격을 좀 두고 후에 읽을 생각이에요. 음, 이런 날씨엔 어떤 책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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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하라는 미즈타니를 '신'이라고 부릅니다. 사토하라 뿐만이 아니에요. 반에 있는 모든 아이들이 미즈타니를 신라고 불렀는데요. 왜일까요?

미즈타니는 우리가 난관에 봉착했을 때 해결책을 주어 무사히 지나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들먹거리지는 않아요. 그런데요, 재미있는 사실 하나 알려드릴까요? 그 신이라는 미즈타니하고 사토하라는요... 초등학교 5학년이에요!


5학년이 추리소설의 주인공이라고?!





그래도 저자는 어거지를 부리지는 않습니다. 코난처럼 괴상한 약을 먹고 현탐정보다 사건을 더 잘 해결하는 그런 비현실적인 요소를 넣진 않았어요. 그들은 정말 초등학교 5학년 같습니다. 신이라고 불리우는 미즈타니만 또래보다 조금 더 지혜로운 느낌이랄까요? 그렇다면 과연 신은 어떤 사건들을 해결했을까... 궁금하지 않으세요?

1부 : 봄을 만드는 법



어느 날, 사토하라는 실수로 할아버지의 벚꽃절임 통을 깨뜨려요. 그건 돌아가신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할아버지가 무척 아끼는 것이었는데 말이예요. 사토하라는 미즈타니를 찾아갑니다.

그는 솔직하게 말하거나 다시 만드는 등의 방법이 있다며 보기를 알려주고 사토하라에게 선택권을 줘요. 그래서 사토하라는 할머니를 떠올리며 새로이 만들기로 결심하는데요. 하지만 반전은 없었어요, 결국 할아버지께 들키고 맙니다. 제법 비슷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그건 벚꽃이 아니라 아몬드꽃이었거든요. 꽃 모양이 닮아 신이 실수한거예요. 그래도 결과는 그닥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추억을 떠올리는 듯한 모습으로 '네가 기억하고 있구나'라고 말씀하셨어요. 자신은 할머니의 레시피를 잊어버렸다며 종종 속상해하곤 하셨거든요. 결국 들키긴 했지만, 다시 만들길 잘한 것 같죠?

벚꽃절임이라는 음식이 계속 나와 이미지와 향을 떠올릴 수 밖에 없는 향긋한 에피소드였어요. 읽는 내내 향이 떠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보셨다시피 신은 꽃을 잘못 알아보는 실수를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토하라는 그를 존경하고, 좋아하고, 함께 다니는데요. 흐물흐물, 단단하지 않은 그 마음이 저는 오히려 현실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우정은 계속됩니다.

2부 : 여름의 '자유' 연구



가와카미는 중독에 빠진 아빠를 게임 가게에서 퇴출 당하도록 도와달라는 요청을 해요. 미즈타니는 그녀의 부탁 뒤에 숨은 진짜 의도를 눈치채는데요. 그녀는 쓰레기장 같은 집에서 학대를 당하고 있는 아이였거든요.

그녀가 원하는대로 아빠가 그 가게에서 퇴출을 당하면요. 집 뒷 문을 이용해 갈 수 있는 게임 가게에 가게 될 것이었어요. 그래서 그가 지나는 길의 계단 하나를 일부러 미리 없애놓고, 남몰래 죽이려는 속셈이었던 거지요.

그녀는 그림을 몹시 잘 그렸어요. 그 자리에 자신이 그린 계단 그림을 하나 채워넣으려고 했던겁니다. 신은 말립니다. 네가 만일 그 일에 네 그림을 사용한다면, 너는 두 번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될 거라면서요.

하지만 신은 그녀의 생각 자체를 비난하진 않아요. 그런 사람은 죽어도 마땅하다고 말합니다. 반면, 사토하라는 정말로 평범한 초등학생인데요. 가만히 듣고만 있던 그가 그런 말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 보호소 같은 곳에 가 있으면 어떻겠냐는 현실적인 제안을 합니다. 하지만 가와카미는 보호소에 가지 않고, 학교에도 나오지 않고 종적을 감춰요. 그리고 학교에는 그녀가 죽었다는 소문이 돌지요.

이것으로 이 에피소드는 끝이 나는데요. 후에 그녀의 이름이 또 한 번 나옵니다. 이 2부에서 신의 공감능력이 두드러졌다고 생각해요. 만약 어른이었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5학년이잖아요?

3부 : 작전회의는 가을의 비밀



이 에피소드에서는 신의 지혜로움과 배려심이 드러납니다. 그는 가을 운동회 기마전에서 작전을 짜는 역할을 맡게 돼요. 머리에 땜빵이 있는 친구가 수비만을 하도록, 괜히 공격을 하러 갔다가 친구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지 않도록 그에게 유리한 작전을 짜주죠.

그가 속한 팀이 승리를 하게 되고, 작전을 짠 미즈타니에게 반 친구들은 또 한 번 '신'이라고 말하는데요. 독자들은 분명 그 친구들보다 더 놀랐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끝까지 따뜻한 마음을 감춰요. 그 모습이 참 인상적이더군요. 개인적으로 이 3부에서 저는 미즈타니를 '신'이라고 부르고 싶었습니다.

4부 : 겨울에 진실은 전하지 않는다



2부에서 사라진 가와카미 있죠? 그녀가 학교에 나오지 않자 아이들은 괴담을 하나 만들어 내요. 그녀의 이름이 나오는, 그저 이름만이 나오는 한 공포 책을 선정해 '그 책을 다 읽으면 저주를 받는다'라는 소문을 내고 다니기 시작한거예요.

한 거들먹거리는 친구가 신에게 찾아왔어요. 도서관에서 랜덤으로 책 세 권을 뽑았는데 한 권에는 내 이름이, 나머지 책들에는 조심하라는 둥의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고 네 지혜를 좀 빌려달라면서 말이죠.

누가 그런걸까요? 전말은 이래요. 사토하라는 친구인 가와카미가 사라졌는데 그런 괴담을 만들어 웃고 떠드는 친구들이 싫었어요. 그래서 그 친구에게 일명 본때를 보여준거예요.

이 4부에서는 사토하라가 범인이었던만큼 탐정 역할을 맡은 미즈타니에게 모든 것을 다 말하지는 않는데요. 그럼으로 인해 미즈타니가 문제를 다 풀고나서 서운하다, 배신감을 느꼈다는 감정을 토로하는 게 뭇 초등학생의 감정 싸움을 보는 것 같아 저는 마냥 귀엽고 흐뭇했습니다. 이 때쯤 되니 참으로 순수한 소설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에필로그 : 봄방학의 정답 공개



전학간 이다라는 이름의 친구가 찾아와요. 네 살 배기 동생이 없어졌다면서요. 동생은 평소에 '미아가 되면 집으로 돌아와라' 라는 말을 기억하고 호텔에 가 있었는데, 그 이유가 왜냐하면... 가족이 이사 중에 호텔에 잠시 머물렀었거든요. 네 살 배기 아기의 눈에는 호텔이 이사간 집인 줄 알았던거예요. 참으로 귀여운 이야기죠.






사실 책장을 덮고 조금 심난했어요. 신이 신같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들더군요. 내가 너무 찌들어서, 그들의 섬세하고 복잡다단한 감정선을 눈치채지 못했거나 알면서도 귀찮아서 지나친 건 아닐까... 하고요. 분명 초등학생의 하루하루에서 반짝거리는 무언가를 얻어갈 수 있었을텐데. 저는 실패한 것 같아요.

그런 생각도 듭니다. 이 책을 진지하게 읽고, 마음 깊이 느끼는 바가 있는 사람을 만나보고 싶어요. 그리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좀 들어보고 싶네요.

초등학생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냐, 는 질문에는 반반이에요. 추리소설다운 시원한 맛을 느끼지 못할 것 같고, 조금 밍숭맹숭해서요. 제 기준엔 너어무 순수하다고나 할까요? 잔인한 탐정소설을 읽기 어려워 하시는 분들, 입문용으로 맛보기 소설이 필요하시다면 이 책을 추천드려 볼게요. 상당히 순한 맛입니다. 그럼 오늘의 리뷰는 여기서 마칠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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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라기 게이치, 그는 사형수입니다. 한 아내와 남편 그리고 두 살배기 아기를 무참히 짓밟았단 이유로 현장에서 체포되었어요. 그리고 그 끔찍한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가 한 명 있었는데요. 이름은 이오 요시코, 아기의 할머니였습니다. 그녀는 조발성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었지요.

가부라기 게이치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게요. 그는... 탈옥을 합니다. 그래서 그의 목에 어마어마한 현상금이 걸려요. 잘못된 제보로 인해 수사가 오히려 진척되지 않을 정도로요. 그는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고 있는걸까요? 왜 잡히지 않는거죠?

그는 수염, 점 위치, 헤어스타일 등을 교묘하게 바꿔 원래의 인상을 탈피하고 왼손잡이라는 생활습관도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매사에 조심을 했습니다. 무려 직업을 갖기도 하고요. 연애감정을 품기도 했어요. 우습죠? 탈옥한 사형수가 지가 뭔데, 남의 인생은 짓밟아놓고?

개호사, 공사 현장 작업원, 여관 직원, 재택 기자 등 그는 다양한 직종에서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주인공 가부라기 게이치의 입장에서 설명이 되지 않아요. 그를 만난 사람들이 그에 대해 이야기 하는 걸로 엮여져 있습니다. 감히 그에게 발언권도 주지 않겠다는 저자의 의도였을까요? 객관적인 의도에서 바라봐달라는 뜻이었을까요?

조금 의아하게도요. 그를 만나 겪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바보 아니야? 아무리 소설이라도 그런 흉악한 범죄자가 사람들에게 평판이 좋아?' 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어요. 저도 그랬거든요.

개인적으로 저는 준지라는 사람을 만났을 때 제 마음에 진심으로 의문이 드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 혹시 진범 아닌 거 아니야?'




라고요. 사실 읽다보면 이러한 종류의 소설을 많이 읽은 사람은 금방 눈치 챕니다. 제목의 '정체'의 '정체'도 알게 되지요. 그래서 반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읽었어요. 그런데... 반전은 없더군요. 여기서부터 스포주의 입니다.

가부라기 게이치는 정말 범인이 아니었어요. 사건이 일어났던 날 당시로 함께 거슬러 올라가 볼게요.

그는, 18살이었던 그는, 길을 걷다가 웬 남자와 마주치게 되는데요. 낯선 사람을 보고 씨익 웃고 지나가던 그 사람, 스프링처럼 튀면서 앞으로 나아가던 그 사람, 가부라기 게이치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죗값을 치르지 않은 그 사람을 그는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어야 했어요. 곧이어 들리던 여자의 비명소리와 그를 연관지어 생각했어야 했고요.

소리가 난 곳으로 들어가보니 그 곳엔 한 아내와 남편 그리고 두 살배기 아기가 처참한 모습으로 피칠갑을 하고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놀랍게도 숨이 붙어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어요. 바로 아기의 할머니였죠. 그녀는 아들의 숨이 아직 붙어있다는 걸 확인하고 몸에 있는 칼을 빼내려고 했습니다. 그럼 더 출혈이 심해지기 때문에 그는 그녀를 말렸고요. 그리고, 그럼으로 인해 그의 얼굴과 몸에는 피해자들의 피가, 칼에는 지문이 묻게 된 점이 매우 애석하고도 안타까운 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상황을 보자마자 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를 당장 체포해요. 황당한가요? 할머니는 진범의 얼굴을 보았고, 진위여부를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그녀에게 증언을 부탁하면 되겠다고요?

그녀는요, 조발성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었는데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는거예요. 그녀가 경찰에게 남긴 말은 단 하나. '진범은 검은 옷을 입었고...' 그렇게 가부라기 게이치는 구치소에 수감이 됩니다.


너무 억울하잖아요. 그래서 탈옥한거예요. 내가 한 짓이 아닌데, 어마어마한 죗값을 내가 치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아무리 상황이 그렇다해도, 수사를 하다보면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지는 거 아닌가요?

몇 년 전 화성연쇄사건의 진범이 옛날에 자신이 한 짓을 토로하면서 억울하게 수감되어 있던 피해자가 몇 십년 만에 풀려나는 희대의 가슴 아픈 사건이 있었지요. 그는 왜 진범이 아니었는데도 죄를 뒤집어 쓰고 복역을 했던걸까요?


누가 뒤집어 씌운걸까요?




가부라기 게이치의 변호사는 죄를 인정해서 감형을 꾀하자는 제안을 하고, 여론은 미친듯이 뜨겁기만 합니다. 보호시설에서 생활을 하고 있던 그는 아무도 편이 되어주지 않았어요. 유일한 목격자인 할머니마저 경찰의 등쌀에 밀려 그를 진범으로 지목하게 됐고요.

그가 탈옥을 하고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고 했잖습니까? 그 중엔 개호사도 있었는데요. 개호시설에서 일을 하게 돼요. 그 시설에는... 이오 요시코가 있었습니다. 할머니요. 유일한 목격자. 가부라기 게이치가 일부러 노리고 들어간거죠.


왜? 복수 하려고?




아뇨. 제발 기억을 떠올려달라고, 매일밤 그녀의 손을 붙들고 간청과 더불어 도움을 주려는 노력을 합니다. 물론 자신의 정체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가면 뒤에 철저히 가린채로요. 그녀는 그 당시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너무 괴롭다며 그의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는 마지막 화자, (에피소드마다 화자가 달라집니다.) 마이라는 여자의 입을 통해 전해져요. 그녀는 그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그가 탈옥수와 비슷한 점이 너무 많다는 걸 눈치 채곤 관리자에게 이야기 한 후 경찰이 오게 만들죠. 가부라기 게이치는 패닉상태가 되어 마이를 인질로 잡고 자기 이야기를 좀 들어달라고 절규에 가까운 부탁을 합니다.

슬프게도 그는... 그 자리에서 죽어요. 경찰이 쏜 총에 맞아서요.





이 책의 리뷰를 보면 대다수가 '마음이 아프다' 라고 말씀들을 하세요. 저 또한 그랬습니다. 비단 소설일 뿐이지만, 몇 년 전에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일로 억울한 옥중생활을 하신 분의 이야기가 전파를 탔었잖아요. 그 분이 생각나 마음이 아프더군요.

언젠가 한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이춘재의 죄를 뒤집어쓰고 복역을 한 피해자가 그 당시를 떠올리면 어떻냐는 질문에 구토를 하러 갔다고요. 몇 십 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그 때를 떠올리기만 하는 것으로도 신체적으로 강한 거부 반응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그 당시에, 피해자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는 소설 속에서도 나오지 않습니다.





무고죄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인간의 인권을 법이라는 잣대로 마음대로 조이고 끊는 제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어요. 무거운 주제이므로 일단은 각성하는 상태에서 마무리를 지었지만요. 이 책, '정체'를 통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데 의의를 둡니다.

책이 상당히 두껍습니다. 하지만 흡인력 있는 저자의 글재주로 책장은 휘리릭 넘어가요. (가끔 번역에 오탈이 발견되어 멈칫하는 순간이 여러 번 있긴 했었습니다만) 저는 무고죄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분께 이 책을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재미로 읽기를 원하시는 분께는 '고구마 결말'이니 마음의 각오 단단히 하시라는 말씀 드리고 싶고요.

이 작가는 이 책으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인사를 건넸다고 합니다. 나중에 서점에서 그의 이름을 보았을 때, 외면하고 싶지는 않은 첫 만남이었어요. 여러분은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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