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키우는 고양이 이름은 구루미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날 아침,
출근하는 남편의 발 밑에 웬 고양이 한 마리가 발길을 잡고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애교를 떨더란다. 심성이 고운 남편은 추운 날씨에 고양이를 밖으로 내쫓을 수 없어 우리 집으로 그 녀석을 인도했다. 현관문이 벌컥 열리자 마치 제 집인양 성큼성큼 들어오던 내새끼 첫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시간이 늦어 남편은 출근하고 고양이와 나 둘만 남게 되었다. 나는 이럴 때에 고양이에게 무엇을 줘야 하는지, 어떤 말을 건네야 하는지 하나도 알지 못해 한동안 멍청하게 앉아만 있다가 문득 냉장고에 우유가 있다는 사실이 떠올라(고양이에게 사람 먹는 우유 주시면 안됩니다✔몰랐어요😭) 우유와 냉동실에 있던 멸치를 꺼내 그릇에 담아 주었다.
너무나 맛있게 먹는 녀석의 모습에 괜히 뿌듯했다.
아이가 밥 먹는 틈을 타 조심스레 털을 쓰다듬어 보았는데 길고양이 답지않게 털이 유난히 부드러웠다. 그래서 순간, '아, 집고양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급히 인터넷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사람들은 고양이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들어가서 찾을 수 있는 어플을 소개시켜주었고, 남편과는 그 날 저녁 동물병원에 방문해 아이의 사진과 특징을 적어 실종 고양이 공고문을 올렸다.
수의사 선생님께서 일정 기간 주인이 나타나지 않을 시 법적으로 우리들이 키워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너무 예쁜 고양이였고 고작 하루지만 정이 들어 이 아이와 평생 함께 살고 싶다는 욕심이 문득 문득 들던 차였다. 그래도 우리 눈에 이렇게 예쁘면, 우리보다 더 오랜 시간 함께 했을 주인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이 아이를 예뻐하고 그리워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감정이 조금 복잡해졌었다.

 

시간이 흘러도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고양이와 몹시 정이 들었고 많은 시간을 함께 공유했다.
처음엔 낯을 조금 가리는가 싶었던 녀석도 우리의 일관된 사랑에 조금씩 마음을 여는 듯 했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우리집에 온 지 3년 되는 날 처음으로 녀석의 생일파티를 해주었다.

고양이 케이크도 사서 생일을 멋지게 축하해 주고 싶었는데 모자를 씌운 순간부터 엄청나게 싫어하기 시작했다..😣(당연한 결과)
그래서 사진도 후다닥 찍었다...😵
하지만 우리 좋으라고 하는 게 아닌 이래봬도 녀석의 생일 파티였으니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 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나는 저 때 우리 아기를 임신 중이었다. 고양이와 아기는 초음파로 통하는게 있나?(근거없는 소리)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 한 달동안 떠날거지. 떠나지마.'였던 것 같기도 하다.

 
제왕절개후 4박 5일을 병원에 있고, 쉬지 않고 2주를 산후조리원에서 보내고는 퇴실후 또 다시 산후조리원에 입소하게 되기까지(자세한 에피소드는 따로 포스팅 할 계획✔) 구루미는 혼자 근 한 달 동안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산후조리원에 일주일을 있을지, 이주일을 있을지 아직 미정이다. 하지만 나는 일주일만 머물고 싶다. 물론 내 몸은 편하지만 아기도 남의 손보다는 안전한 엄마 손을 타는 것이 좋고, 구루미도 걱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집에 돌아가서도 문제다...☠

아기에게 애정과 시간을 쏟아야 하는데 지금도 충분히 외로워 하는 우리 구루미 우울증 걸리는 건 아닌지 심히 걱정된다. (하지만 남편이 집에 있어 정말 다행이다.)

 

외로워 보이는 뒷모습에 마음이 짠하다.

구루미를 평생 책임지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내가 집이라는 우리에 가두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 생각을 핑계로 입양 보낼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저 보고싶고 만지고 싶다.
우리 고양이.

보고싶어, 구루미야.
엄마가 집에 돌아가면 맛있는 캔도 자주 따주고 츄르도 많이 줄게.
우리 구루미도 엄마에게 소중한 존재야.

 

아기와 초음파가 통했던 거라면 나와도 텔레파시가 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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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원에 다시 들어 오게 되어 아기가 없을 때 리뷰를 남기기 위해 넷플릭스로 영화를 찾아 봤다.
이 영화는 저번에 아는 형님에 박성웅, 라미란, 진영 배우가 나와 홍보하는 걸 들었던 기억이 나 선택하게 되었는데 킬링타임용으로 적절한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미쓰 와이프, 육혈포 강도단, 나쁜 피, 양아치 느와르 등을 제작한 강효진 감독은 미쓰 와이프에서도 바디 체인지를 소재로 하여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소재 자체에 상당한 흥미를 느낀 모양이다.

이야기는 엘리트 건달 아재 판수(박성웅)와 고등학생 동현(진영)이 몸을 부딪혀 영혼이 뒤바뀌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일진 무리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던 동현은 몸 안에 건달 아재가 들어와 두둑한 배짱, 넘사벽 싸움 실력을 단번에 갖게 된다. 바디 체인지 후 동현의 일진 처치하는 모습이 씬 중에서 가장 통쾌했다고 평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나 또한 그랬다. 또 동현의 아버지(김광규)가 사채 이자 빚을 갚지 못해 사채업자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있을 때 때마침 나타난 자신의 아들을 보호하려다 기절한 장면이 있었는데, 다음 장면에서 판수의 부하 만철(이준혁)이 사채업자들을 무력으로 제압한 후 사채의 이자를 뺀 원금만 갚을 수 있도록 정리한 것도 꽤 멋있었다.
(만철이 고등학생 모습인 자신의 상사를 인정하기까지의 과정이 재밌는 것이 깨알 웃음 포인트)

 

 

몸통 박치기로 혼수상태에 빠진 판수의 몸에 깃든 동현의 영혼은 긴 시간 병원에만 누워 있다. 어쩔 도리가 없이 동현, 그러니까 판수의 고등학교 생활은 이어지고 그러다 우연히 같은 반 친구 현정(이수민)이 엄마 라고 부르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경악 하게 되는데.

판수는 영혼이 뒤바뀌기 전 일명 은혜를 받으러 분식집을 찾아가 꽁치라면을 시킨 적이 있다. 예전에 먹었던 그 맛이 안 나 그냥 뱉어버리고는 가게를 나오려는데 웬 고등학생이 라면 네 다섯 그릇을 혼자 해치우고는 돈이 없어 죄송하다며 주인에게 연신 허리를 굽히자 이 아저씨가 다 낼테니 걱정하지 말고 가라며 판수를 가리킨다. 그렇게 자리를 떠난 고등학생이 현재 자신의 얼굴인 동현이고, 조만간 쬐깐한 선물 하나 주겠다던 가게 주인이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을 각색한 장본인이라는 것을 판수는 후에 알게 된다. 본인은 그저 현정이 엄마(라미란)의 꽁치라면 맛이 그리워 분식집을 찾았을 뿐이었는데.

"미선아."

 

 

딸의 친구가 자신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뒷통수를 후려 갈기고 어디 어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냐며 다소 부드럽게 으름장을 놓는다. 다음 장면, 친자 확인을 마친 동현은 그 어느 때보다 충격에 휩싸인다.

그래서 왜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는지 달려가 묻기도 전에 눈 앞에서 처참하게 왕따를 당하고 있는 자신의 딸을 보고 분노를 참지 않는다. 현정의 눈에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는 생각할 겨를도 없어 마치 슈퍼맨 처럼 존재도 몰랐던 소중한 딸의 일상을 지킨다.

그 옛날, 미선과 판수는 연인 사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판수가 조직 회장의 딸과 결혼하겠다고 통보하기 전까지 애틋한 사이였다. 미선의 입장에서는 일방적으로 이별을 고하고 떠난 판수가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나쁜 남자다. 그를 아직도 너무 사랑해서 그와 닮은 아이라도 낳아 키우고자 했던 미선에게 별안간 나타나 자신이 판수라며 마음을 뒤흔드는 동현의 존재가 그래서 몹시 불편했던 것이다.

 
하지만 동현의 입장에서 그는 유부남임에도 자신의 숨겨진 딸의 존재를 알았을 때 과거를 숨기거나 현정을 부담스러워 하지 않았다. 일부러 책임지려고 하는 게 아닌 본능적인 마음에서 나오는 행동들이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한편, 혼수상태에 빠졌던 판수는 영화가 중반을 지나고서야 깨어난다. 건달 아재의 모습으로 소심한 고등학생의 행동을 하는 것이 관객들의 웃음을 꽤 자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소심한 행동으로 영화를 끌어가기에는 무리가 있어 판수의 현부인과 장인어른 사이에서 동현의 지시를 받아 말을 전달해주는 것 밖엔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얘기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판수를 현부인은 대뜸 차로 들아받아버린다.

깜짝 놀란 동현이 그를 막아 결과적으로 그는 중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간다. 피칠갑을 하고 한 자 한 자 힘겹게 말을 이어가는 그의 눈엔 사랑하는 딸 현정이가 있었다.

"사랑하는 우리 딸. 아빠가 사랑하는거 늘 잊지마."

판수도, 미선도, 현정이까지 모두 당황스러워 하는 와중에 나만 눈물 흘리기가 어쩐지 뻘쭘해 눈물을 참았다. 생각해보면 굉장히 슬프고 감동적이며 아름다운 장면이다.
(만약 판수의 가정이 온전한 상태였다면 그건 또 다른 문제로 화두 되었을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 남편이라고 한들 차로 받아버리기까지 한 현부인에게 잘 사는 모습으로 복수하기 위해서라도 이들은 반드시 해피엔딩으로 끝나야했다.)

두 사람의 영혼이 제자리를 찾은 후 그들은 새사람이 되었다. 판수는 조직의 자리를 포기했고(만철이 영화 끝까지 함께 한 걸 보면 손을 씻었는지의 여부는 모르겠다.) 동현은 자신을 괴롭혔던 일진들이 전학 간 학교에서 마치 영웅 대접을 받으며 새로이 학교 생활을 재시작했다.

하교 한 동현과 현정이, 나란히 김밥을 말고 있는 판수와 동현이 아빠, 무거운 짐을 날라다 주는 만철과 그 모든 이에게 지시하고 있는 현정이 엄마. 급작스럽게 화면이 따뜻해진 감이 있지만 그들이 모두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 정도는 얼마든지 이해하고 넘어가줄 수 있다. 가족을 지키는 책임감 있는 자에게는 끊임없이 박수 쳐주고 싶기 때문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감동도 조금, 웃음도 조금이라며 실망을 감추지 못한 관객들이 분명히 있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영화가 흥행하지 못한 데에는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뜻이고.
하지만 내용 면에서 우리의 정서를 해칠만한 요소는 없었다.

 

 
사람에 따라 영화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의 따뜻함 강도 또한 다를 것이다. 나에게는 킬링타임용이자 매우 시의적절한 영화였다.

 


1️⃣ 진영 입덕 영화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공감한다. 액션씬도, 감정씬도 무난한 정도가 아니라 훌륭하게 소화한다. 맡는 작품마다 역할을 소화하는 능력이 뛰어나 언젠가는 '믿고 보는 배우'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 그리고 또 놀랐던 것이 조현영 배우의 연기력.
영화를 볼 때는 몰랐는데 그러고보니 레인보우의 멤버잖아! 연기 잘하는 신인 배우의 탄생인 줄 알았다. 일진 연기를 진짜 맛깔나게 소화한다. 과연 이번에 역할을 잘 만나서 그랬던 것인지, 어떤 역할이든 잘하는 숨은 보석인지, 그녀의 다음 작품을 주목해도 좋을 것 같다.

3️⃣ 이수민 배우는 왕따 당하는 역할이 어색했다. 오히려 전세역전 되어 일진의 목에 식판을 겨누는 장면이 그 어떤 장면보다 자연스러웠다. 통통 튀고 발랄한 캐릭터라 나중에 그에 걸맞는 작품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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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출생 유대계 미국 소설가 조앤 그린버그는 미국의 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이 꼭 읽어야 할 고전작품을 많이 써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이 소설은 영화와 연극으로도 상영되어 베스트셀러로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주인공 데버라는 정신분열증을 앓는 환자로 나오는데, 그녀를 둘러싼 가족과 병원 관계자 및 환자들의 행동이 매우 날카롭게 묘사된데에는 작가의 자전적인 작품이라는데 이유가 있다.

데버라는 '이르'라는 자신만의 세계에 만들어진 형태들에게 끊임없는 괴롭힘을 받는다. 그것들은 현실세계와 '이르'에 명확한 선을 그어두고 이곳이 더 편안하고 확실히 옳은 곳이라는 꼬드김을 반복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이르'의 세계가 있다면 그것은 엄연한 세계가 되겠지만 전 세계인 중 딱 한 사람, '이르'는 오로지 데버라에게만 존재하기 때문에 그녀의 가족은 회색 벽의 이상한 소리가 나는 정신병원에 그녀를 집어넣을 수 밖에 없었다.
그 곳에서 그녀는 각자의 이유로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의 앞 뒤가 맞지 않는 대화와 느닷없는 고함을 들으며 아주 천천히 그 곳에 적응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날 데버라는, 큰 소동을 벌였거나 문제를 일으킬 위험이 있는 사람을 이전시키는 D동으로 옮겨지게 된다. 그 소동이라 함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는 피학적인 행동과 종잡을 수 없는 고성을 일컫는다. 자신의 세계에 꼼짝없이 갇혀버린 그녀의 탈출구는 어디일까?

 

프라이드 박사는 '이르'가 허구의 세계임을 확신시키는 동시에 그녀 스스로 본심을 입 밖에 꺼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르'와 타협한 것 같아 보였던 데버라에게 한낱같은 희망은, 현실 세계의 평범한 것을 나도 하고 싶다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뜨개질과 같은 간단한 것. 교회에 다니고 싶다는 소망.

하지만 우리에게는 별 볼일 없이 여겨질 평범한 일상이 그녀에게는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실패하고 좌절해 병원에 다시 돌아온 그녀에게 만약 병원 관계자들과 박사 프라이드의 끊임없는 도움이 없었다면 그녀의 '이르'세계는 온전히 그녀를 잠식시켜 버렸을지도 모른다.
정신분열증은 스스로를 갉아먹는 병이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의 진실한 동정과 공감이 필요하다.
프라이드 박사가 보인 교류를 위한 노력은 환자를 담당하는 모든 병원 관계자들이 닮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내 주변에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없지만 언젠가 내 곁에서 정신분열로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도 프라이드의 자세를 취하고 싶다. 

또, 다른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사실 내게도 데버러같은 비밀 이르공간이 있다. 내게 즐거움을 주는 세계가 나를 파멸의 길로 끌고 내려가지 않도록 적당히 해야겠다는 무서운 경각심이 든다. 마음이 약하고 의지가 강하지 못한 내가 그녀와 같은 상황이 된다면 아마 나는 영원히 현실세계에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어 오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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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중견 작가 요시다 슈이치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 등에 의해 발전한 일본 '팝 문학'의 정점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작품으로는 '파크 라이프'와 '퍼레이드'등이 있는데 작품들이 차례대로 일본 순수문학을 대표하는 아쿠타가와상과, 대중문학을 대표하는 야마모토 슈고로 상을 수상하면서 대중성과 작품성을 두루 갖춘 작가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사랑에 난폭'을 읽고 간결하면서도 흡입력 있는 문체가 맘에 들어 나는 다음번에도 책을 들테지만, 그 땐 작가의 입장에서 본 솔직한 남자의 심리를 엿보고 싶다.
책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모모코와 내연녀가 번갈아가며 자신의 일기를 공개해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는 건, 남성 작가임에도 대단히 날카로운 시선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대도 욕심이 나는 이유는 순수한 독자 입장에서 사고 원인 제공자 남편 마모루의 우유부단하고 쉽게 정의내릴 수 없는 심리가 너무도 궁금하기 때문이다.
자기 아들 감싸기에 급급한 철없는 시어머니 데루코의 아들이기에 얼렁뚱땅 이해가 되는 식으로 넘어갔지만, 그 나름대로의 복잡한 심경을 어디 한 번 구경이나 해봅시다 싶기도 하고 궁금하다.

대충 느낌이 왔겠지만 이건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를 제목으로 써도 손색이 없는 불륜 막장 스토리를 다룬 소설이다.

 

결혼 8년차 주부 모모코는 자신에게 늘 냉담하기만 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살뜰히 남편을 내조하는 전통적인 현대 여성이다. 자신의 특기를 살려 문화센터에서 수제 비누 만들기 강좌를 하고, 오는 길에 찬거리를 사서 시어머니와 남편의 식사를 책임지는 평범한 주부에게 불륜은 그야말로 느닷없는 우박처럼 떨어졌는데, 너무도 평온하였기에, 행복을 깨고 싶지 않았기에 모모코는 당장 눈 앞에 닥친 현실을 부정하기 급급했고 그러는 사이 어느새 그녀는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무서운 여자'가 되어있었다. 남편의 불륜 사실과 동시에 내연녀의 임신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땐 과연 내가 어떻게 대처하는게 옳은 것일까. 만약 내게 그런 불똥이 튄다면…
확실한 건, 나는 모모코와 정반대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내연녀의 존재 자체와 임신 여부는 나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내가 해결할 첫번째 미션은, 마치 혼령처럼 내곁에 떠도는 남편과의 관계를 차근차근 되짚어 나가는 일일 것이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참을 수 없는 관계가 되버린다면 그 무엇이 이유가 되었건 같이 살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편을 사랑하지도, 그렇다고 못마땅해하지도, 시어머니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지도, 그렇다고 모진 구박을 받지도 않았던 모모코에게 결혼생활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친한 옛 직장 동료에게 다시 한 번 회사에 일자리를 알아봐달라고 부탁했지만 회사 여직원들의 험담을 통해 알게 된 직장 동료의 본심을 듣고 낙담해있던 찰나, 자신이 예전에 다녔던 회사보다 낮은 회사에 입사 지원서를 넣어도 기다렸다는 듯 떨어지고야 마는 자신의 무능함에 대한 두려움? 다시 시작하기에 늦은 것 같은 마흔이라는 나이와 결혼과 이혼의 꼬리표? 마흔이라면 나보다 족히 열 살은 더 많은 여자에게 주제 넘게 이 말을 남기고 싶다.
남편과 시어머니마저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누군가를 짓밟고 앞다퉈 달려나가는 시점에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지 않는건 스스로에게 내리는 형벌과 같다고.
다다미를 들고 흙을 파내 그 안에 들어가 남편과 시어머니의 대화를 들은 것과, 예전에 집에 함께 살았던 시아버지의 어머니, 사람들 말로는 '첩'의 억울함이 폭발한 '방화 사건'에 마음이 움직여 본인도 남의 집 화분에 불을 지르고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으면 그걸로 충분히 됐다고 생각한다.

남편과 내연녀의 죄책감은 몽글몽글 살아있게 냅두고, 모모코는 신선한 새 책의 더 튼튼한 첫 장을 찬란하게 시작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잘 사는것이 최고의 복수라는 말을 피부로 절절히 느끼는 날이 올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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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낳은지도 벌써 17일이나 흘렀다.
(빨리 수술해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게 엊그제같은데...😦)

나는 강동미즈여성병원에서 아기를 출산하고 4박 5일간 병원에서 지낸 후 연계 된 조리원으로 바로 이동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여서 홀몸이었으면 당연히 걸어갔겠지만 갓난아기와 아직 몸이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산모의 몸을 배려해 제공해 주신 차를 타고 너무나 편하게 조리원에 입소했다.

입소 규칙과 물품 사용 방법 등의 설명을 듣고,
병원 1인실보다 넓고 편리해 보이는 방을 구경하면서 '이 곳에서 푹 쉬다 가야지!' 라는 생각으로 좀 쉬어보려는 찰나. 전화가 왔다.

"수유하시겠어요?"

 

 

병원 신생아실에서도 모유수유를 몇 번 해봤던 터라 별다른 생각없이 전화가 오면 내려가고, 수유를 하고, 다시 아기를 돌려 보내고 그런 행동을 반복했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일명 '수유콜'이 들어오면 기쁜 마음으로 달려가 아기에게 젖을 먹일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전화가 올 때마다 어쩐지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머문 곳은 5층이었고 우리 아기는 4층에 있었다.
4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내가 거쳐야 하는 관문은 3가지가 있었는데 첫째, 방을 열고 닫을 때마다 필요한 카드키.
빈 몸으로 내려갈 때는 아무 문제 없으나 아기를 안고 올라와 한 손으로 아기를 받쳐 든 채 낑낑거리며 카드키를 갖다 대야 하는 과정이 매우 불편했다.

둘째를 가진다면 별다른 계획이 없을 시 다시 강동미즈여성병원, 그리고 산후조리원을 찾을 생각인데 그 때는 반드시 신생아실과 같은 층에 머물고 싶다! 반드시!

이러한 이유들로 나는 시간이 갈수록 수유콜을 받지 않게 되었다. 긴 텀을 두고 수유를 하거나, 연락을 주지 않으셔도 제가 알아서 내려 오겠다고 선생님들께 미리 말씀을 드려 놓았다.

그리고 비로소 혼자 갖게 된 시간에는 무얼 했느냐고?

 

 

 
미션처럼 밀려드는 밥 해치우기를 했다. ( ꒪⌓꒪)

밥은 하루에 세 끼, 간식 두 번, 야식이 한 번 나오는데 나는 원래 평상시에도 밥을 잘 챙겨먹지 않는 사람이라 매끼마다 나오는 밥을 정해진 시간에 먹는 것이 거의 불가능 했다. 그래서 미뤄두고 미뤄두면, 어느 날은 아침, 간식, 점심, 간식... 식판 둘 곳이 없을 정도로 해치워야 할 미션이 가득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배부른 소리다)

음식은 듣던 대로 영양을 생각해 고른 반찬이 꼬박 나왔다. 미역국은 거의 매번 나왔던 것 같고, 고기, 생선, 채소, 샐러드 등도 매일 맛과 모양이 다른 놈들로 식판에 올라왔다.

 

밥도 참 맛있었지만 나는 아침 간식으로 나오는 과일 주스가 너무 너무 맛있었다. 늘 바나나와 매번 다른 것들을 갈아 주시는 것 같았는데 물어볼 걸 그랬나? 너무 맛있었다. 밥도 밥이지만 그 시간이 너무 기다려졌었다...👍🏻

그렇게 밥을 다 먹고 핸드폰도 하고 책도 읽으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가끔 신생아실이 아닌 다른 곳에서 전화가 오기도 하는데 그 곳은 바로 에스테틱과 모유수유센터. (에스테틱 3회 이용권과 수유센터 몇...이었더라...😦 에스테틱에서는 샴푸와 하체테라피, 등테라피를 받았고, 수유센터에서는 가슴마사지를 받았다.)

 

 
수유센터에서 받는 가슴마사지는 남편 친구가 좋다고 강하게 추천한 탓도 있고 나도 젖양을 늘리기 위해 더 받고 싶어 3회 추가 결제 했다.
그리고 이건 정말 잘 받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시간을 들여도 잘 나오지 않던 모유가 마사지를 받고 들어 온 날은 확실히 달랐다. (유축할 때 눈으로 확인!) 비싼 돈 들여 받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조리원에 들어오고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쯤, 안내문을 보니 교육 프로그램 일정표가 보였는데 그 땐 이미 내가 알고 싶은 프로그램이 다 끝난 후라 너무 아쉬웠다😭

 

여유시간이 생기면 때때로 커튼을 쳤다.
이 장면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출산 할 때의 장면과 병원에 누워있을 때의 모든 장면.
그리고 조리원에서의 모든 장면을 기억하고 싶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므로 언젠가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잊혀지거나 흐려지겠지만 되도록 길게 이 장면들을 가슴 속에 간직하고 싶다.
아프고, 많은 감정을 느끼고, 속상해서 많이 울고, 여러 사람들을 만났던 곳.
그리고 우리 아기의 1년 같은 하루가 지나갔던 곳.
죽을 만큼 아팠던 진통을 생각하면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데 아기가 너무 예쁘고, 덩달아 내 하루하루도 반짝반짝 빛이 나니까(감정적으로는 힘들었지만. 돌아보면 그 어느때보다 아름다웠던) 이래서 엄마들이 둘째를 가지는가 보다 싶다.

 

처음으로 우리 아기 기저귀를 갈아보고, 속싸개를 여며보고, 딸꾹질 하나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고, 배냇짓이라고 하지만 처음 보는 우리 아기 미소에 덩달아 웃음 짓고, 자고 있는 아기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끊임없이 이야기 해주고... 이제 집에 가면 매일 반복 될 일상이겠지만 처음이라 더더욱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사랑하는 우리 아기인데도 처음 6시간 연속으로 아기를 봤을 때 진이 다 빠져 버려 녹초가 되었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우리 아기를 정성으로 보살펴주신 신생아실 선생님들께 너무 감사드린다. 첫 아기라 정신없는 산모였지만 다시 찾는다면 그 땐 조금 더 여유 있는 모습으로 인사 드리고 싶다.

진짜 마지막으로...

"아가야 이제 집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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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라는 작품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헤밍웨이의 하드보일드풍 작품이다. (그의 하드보일드풍의 걸작으로는 '살인청부업자(1927)', '킬리만자로의 눈(1936)'등이 있다.)

정확한 시기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실업자가 급증하는 경제 공황기를 배경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못 가진자들의 삶을 첨예하게 나타내었다.
배를 빌려주고 받는 뱃삯으로 아내와 딸들을 책임지는 가장 해리모건은 제 1부 <봄>에서 그간의 수고비를 모두 떼이는 사기를 당하고, 처자식을 위해서였겠지만 2, 3부의 가을, 겨울 사이 따뜻한 여름이 생략된 계기는 그간 거절해왔던 밀수업과 쿠바 중국인들 밀항에 가담하기로 작정하고부터 인 것 같다. 하지만 당시 떼인 돈이 현재의 집 한 채 값이며, 생업 수단인 낚시 장비를 모두 잃어버린 그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으리라.
쿠바인에게 총을 맞고 외팔이가 되어 물 위를 표류하다 미국 관리에게 배까지 압수당하는 신세가 되어 버린 후에도 그는 포기할 수 없었다. 해리도 앨버트도 먹고는 살아야 했으니까. 정신을 차리고 보면 그는 불쌍한 중국인들을 도와주겠답시고 어차피 죽을 인신매매업자 한 명을 죽였고, 또 다른 살인에 대비해 총을 장전하고 항해에 나섰다.
살인까지 한 그가 마침내 쿠바 은행강도들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이야기는 점점 더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데….

 

그는 결국 자신의 배에서 총을 맞는다.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바꿀 수 없다는 미묘한 말을 남긴 채. 뱃사람이 누릴 최소한의 행복마저 앗아간 이들은 결국 가진자들일까?
제목이 얘기하는 가진자는 작품 후반부에 살짝 나온다. 요트를 소유한 소수의 부유층이 언급되는데 아주 살짝 고개만 빼꼼한거라 못 가진자들의 구차한 삶이 더욱 강조되어 보인다.
실제로 당시 시대상은 쿠바의 마차도 정권이 무너지고 군부 쿠데타를 거쳐 격변의 혼란기를 겪은 후 미국이 정치, 군사, 경제적으로 쿠바를 지배했을 때였으니, 그 때 발흥한 쿠바의 독립을 열망하는 사회주의 혁명 세력 군단과 부유 속에 헤엄치는 자들이 서글픈 차이를 보였던 시기였다. (미국이 1898년 에스파냐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1959년까지 쿠바를 점령한 60년의 모든 시간이 담기지는 않았다. 책은 1937년에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1930년대 평균 가구소득이 200달러인데 반해 극중 인물 앨버트는 정부 구호 프로그램의 일을 하고 매주 7.5달러를 받았다.
사실 굳이 전쟁을 하는 중이 아니어도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모습과 별반 다를게 없다.

 

이와같은 공황이 계속된다면 현재의 우리는 우울증에 걸리거나 자살을 시도하는데, 언젠가는 목숨을 구제하려고 다른 사람을 위협하고 짓밟아버리는것에 '익숙해질수도' 있다.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실업자들을 궁지로 몰아넣으면 안된다. 개인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의 권리를 빼앗지 말자. 요트주인은 계속 요트주인이고 해리는 죽는 사회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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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 속에 아기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로부터 11개월이 지났다. 사랑하는 나의 아기는 예정일이 20년 1월 19일이었지만 예정일에 맞춰 태어나는 아기는 많지 않다고 들어 조금 느긋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1월 18일.
예정일을 하루 앞두고 새벽부터 배가 싸르르- 아파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통증이 간혹 있어왔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새벽 5시에 시작된 가진통은 6시가 지나고, 7시가 지나고, 비로소 8시쯤이 되어서야 진진통이라는 형태로 나에게 위험 신호를 보내왔다.


그래도 이 때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오전 11시가 지나고부터는 조금씩 참는 것이 힘들어졌다. 남편과 나는 부랴부랴 병원 갈 준비를 하고 담당 병원으로 향했다.

 

가자마자 여러가지 검사를 받고, 내진을 했다.
자궁문은 아직 2cm가랑 열린 정도.
'이...정도가 2cm라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그려져 조금 슬프고 무서워졌다.

 

병원에 도착한 날짜와 시각은 1월 18일 오후 1시 정도였다.

임신 내내 엄마에게 큰 스트레스를 안겨주지 않은 착한 딸이었기에 이 날도 짧은 시간 안에 세상 밖으로 나와 우리를 기쁘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대단한 착각이었지..........😭

오전 8시부터 시작된 진진통은 오후 1시를 지나, 5시를 가뿐히 넘기고 8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이에 딸이 걱정되어 오신 엄마가 어쩐지 슬프고 만감이 교차한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셨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 딸이 출산할 때 나도 비슷한 심정일 것 같다.)

 

 

8시에서 9시를 바라보는데 통증이 말도 못 하게 심하게 느껴져 내진을 하니 자궁문은 이제 겨우 3-4cm열려있다고 하셨다. 그 말이 고통을 더 가중시켰다.😱

그래도 이제까지 참고 버텨온 거.
수술을 고려해보자는 남편의 권유도 마다하고 조금 더 참아보겠다고 진통이 찾아올 때마다 남편의 손을 꼬옥 잡았다. (진통이 너무 아프게 느껴져 굴욕적이라고 알려져 있는 관장, 내진은 별로 신경쓰이지도 않았다.)

 

 

오후 9시.
너무 아파서 무통주사를 맞기로 했다. 아직 3cm밖에 열리지 않아 조금 이따 맞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에 조율을 거쳐 일단 약은 투여하지 않고 주사만 꽂고 있기로 했다. 새우처럼 등을 구부리고 척추에 주사를 꽂았는데 이 때 난 무슨 생각을 했던걸까?
선생님이 나가시고 남편이 들어오는데 서러워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소리를 참기 힘든 울음이 참을 수 없이 터졌다. 너무 아팠고 너무 힘들었다.
한결같이 옆을 지켜주는 남편이 없었더라면 나는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나와 같이 잠도 못 자고 고생하는 아내를 지켜보면서 자기가 대신 아파해주고 싶다는 남편에게 새삼스레 깊은 사랑과 고마움을 느꼈다.

 

 

무통주사 효과는 확실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진통에도 아픔은 하체를 아주 살짝 스치고 지나갈 뿐 아까처럼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지는 않았다. 무통주사 효과는 짧으면 1시간, 길면 2시간이라고하는데 나 같은 경우는 1시간 30분이었던 것 같다. 천국 같은 무통 효과가 끝나고 10시 30분.
또 다시 지옥같은 진통이 찾아왔다.

내진 결과 자궁문은 비로소 7cm.
11시가 되어야 무통 주사를 다시 맞을 수 있다고 하여 거대한 파도같은 진통을 남편과 함께 참아냈다.
한 번 더 맞게 된 무통주사 역시 효과는 좋았다.
(단점은 너무 시간이 짧아...😭)

11시에 맞은 무통주사 효과는 정확히 12시 30분까지 이어졌다. 이후에 또 맞으면 분만까지도 참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가벼워 졌었다.
하지만 간호사 선생님께서 이제는 무통주사를 놓지 않을 거라고 하셨고 이제 빨리 아기를 보자고 말씀 하셨다!
'헉...'

 

 

대략 오전 1시 부터 2시 30분 가량 까지 나는 인생에서 최대의 아픔을 경험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소리를 지르고, 벌거벗은 하체로 이리저리 뒹굴고, 눈은 초점을 찾지 못해 허공을 헤매고, 입은 침 한방울 나오지 않아 바싹바싹 말라만 가고..
그 때쯤에는 진통이 찾아오지 않아도 괴로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진통이 찾아오면 나는 차라리 죽고만 싶은 심정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결국 나는 자궁문이 모두 열렸음에도. 10cm나 열렸음에도. 아기 머리가 다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힘주기 할 기운이 남아있지않아 자연분만에 실패하고 말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이상 이 고통을 참아 낼 자신이 없어 수술을 진행해달라고 모두에게 소리쳤다.

모두가 만류하며 한 번만 더 해보자고 독려했지만 도저히 견딜 수 없이 매 초가 괴로웠다.

그 때 나를 달래던 간호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아기가 태어나면 해주고 싶은 말 생각해놔요. 우리도 궁금하니까. 할 수 있어. 엄마잖아."
결국은 고통을 참아내지 못한 엄마에게 이 말은 깊은 가르침으로 가슴 속에 남아 있다.
아이를 보면 이 말이 생각나고 더없이 미안해진다.

결국 의사 선생님은 제왕절개를 진행하셨다.
오후 1시에 입원하여 다음 날 오전 2시가 넘어서까지, 13시간의 긴 진통을 모두 참아내고는...
모두 이제까지 견딘 것이 아까우니까 조금만 더 견뎌보자고 하였지만 나는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밀려드는 고통을 끝끝내 이겨내지 못했다.

 

2020년 1월 19일 오전 3시 3분.

너무도 어렵사리 나의 사랑하는 아기는 세상에 태어났다.
모두가 조용한 가운데 엄마조차 아기에게 미안해 울고 있는 아이에게 인사 한 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했다.
안녕? 아가야. 첫 인사는 그렇게 해주고 싶었는데...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편과 아기가 인사를 나누고, 나는 회복을 위해 입원실로 아기는 신생아실로 옮겨졌다.

 
밥 먹을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병원에서는 산모의 빠른 회복을 위해 매 끼마다 미역국이 포함되어 나왔다.

산모가 아닌 사람들에게 아기 면회 시간은 정해져 있으며, 나는 새벽에도 아기가 너무 보고 싶어서 언제든지 수유콜을 해달라고 부탁해두었다. 그래서 잠을 못 잤던지 밥 먹는 도중이었던지에 관계없이 늘 연락이 오면 달려나갔다.

 

식사는 아침, 점심, 저녁, 그리고 중간에 간식, 야식까지 배고플 틈 없게 챙겨주셨다.

 
수술 부위가 아파서 허리를 숙일 수 없어 남편이 머리를 감겨 주었다. 서툰 손길로 귀에 물이 들어가고 옷이 다 젖어버렸지만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꺄르르르 한참을 웃다 나왔다.

 

입원 후 하루 이틀 정도는 상태를 봐주러 간호사 분들이 새벽에도 자주 들러 주신다. 약도 챙겨주시고, 시트도 갈아주시고, 심지어는 옷까지 손수 입혀주신다.
(내가 머물렀던 강동미즈여성병원은 의사 선생님을 포함하여 모든 간호사 분들이 친절하셨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기를 만나고, 남편의 사랑 가득 담긴 도움을 받고, 영양식을 매 끼 챙겨먹으며 4박 5일을 지내다 보니 어느새 퇴실 할 시간이 다 되었다.

남편에게 미안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금액을 지불하고 나는 바로 병원과 인계 된 산후조리원으로 장소를 옮겼다.

1월 23일 목요일.
퇴원 후 강동미즈여성병원 산후조리원에서의 첫 날이다. 2주 동안 머무를 예정이기에 생각보다 많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 오늘은 간단히 병원을 둘러본 후 모유센터와 에스테틱에서 가슴 마사지와 샴푸 서비스를 받았다.
(그리고 이 때까지 면회 시간에만 아기를 볼 수 있었던 남편도 아기를 직접 안아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아기는 저녁 맘마를 먹고 지금 신생아실에 있다.
얼굴을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눈물이 날 것 같고...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모습을 보면 예쁘고 사랑스럽고 나를 이렇게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어서 너무 너무 고맙다.
나의 출산 과정은 아기에게 평생의 마음의 빚으로 남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아기에게 더 잘해야지. 10잘할 거 20잘할거다. 큰 책임감을 느끼며 깊이 사랑하고 있는데, 이에 미안한 마음까지 더해져 나는 오늘 컨디션을 해칠 정도의 무리를 했다. 남편에게 너무 부담갖지 말라는 조언을 듣고 이제야 겨우 쉬는 중...

오늘 제대로 쉬고 내일 또 좋은 컨디션으로 아기 보러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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