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외롭거나 슬퍼서 견딜 수 없을 때,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게 그 감정을 배출한다. 약자는 그 배출구로 희생된다. 또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괴로울 때 자신이 만든 세계로 도망쳐 들어간다. 그리고 자신의 주관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보고 듣고 기억하는 일들을 제멋대로 비틀어버린다. 이 소설은 그처럼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이 책에서는 일단 사람을 죽이고, 그 몸을 운반하고, 다리를 꺾거나 입에 비누를 넣는 등 괴상망측한 행동을 일상처럼 일삼고 환생, 학대, 이상성욕, 트라우마 등 무거운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이 점 인지하고 읽는 편이 좋겠습니다. *오늘도 스포주의*





주인공 미치오는 집에 유인물을 가져다주라는 이와무라 선생님의 부탁에 S의 집으로 가요. 하지만 거기엔 목을 길게 빼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 S의 모습이 기다리고 있었죠. 미치오는 다시 학교로 가 선생님께 이 사실을 알립니다. 그리고 선생님, 형사 두 명과 함께 집에 가니 S의 몸은 감쪽같이 사라져 있는데요. 대체 누가 가지고 간 것일까요?

 

누군가 미치오에게 말을 걸어요. "미치오!" 말을 한 사람, 아니 곤충은 다름아닌 거미였어요. 거미는 자신이 S라고 소개를 해요. 거미로 환생을 했대요. 그리고 미치오에게 부탁해요. 자신의 몸을 찾아달라고.

 

 



S와 미치오 그리고 세살배기 미치오의 동생 미카는 꽤 열심히 범인색출에 몰두합니다. 그들이 주목한 범인은 이와무라 선생님이었는데요. S의 제안으로 그들은 이와무라 선생님의 집에 몰래 침입하는 것에까지 성공해요. S의 몸을 이와무라 선생님이 가져갔을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러나 거기서 본 것은 그들이 예상치 못한 것이었어요. 어린 남학생들의 사진, 싫다고는 하지만 진짜 싫어하는 것 같진 않은 비디오 속 알몸의 S모습. 미치오는 혼란스러워합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S가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지는 않음을 인식하고 의심을 하고 또 싸우기도 해요.

S의 집 가까이에 다이조 라는 할아버지가 살아요. 다이조는 우연히 만난 미치오에게 이와무라 선생님이 쓴 자신의 뒤틀린 욕망이 담긴 책의 존재를 알려줘요. 자신의 그릇된 욕망이 세상에 드러날까 두려워 S를 죽인 게 아닐까, 미치오는 이제 거의 확신해요. 그래서 형사에게 언제 밀고를 할지 기회만 엿봐요. 그런데 진짜 이와무라 선생님이 범인일까요?





1️⃣ S
죽은 뒤 거미로 환생한 아이. 심한 사시에, 어머니와 살고 있어요. 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당했어요. 아이들은 노골적으로 S에게 다가오기를 꺼려했죠. 지나가는 아이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칼처럼 날카롭게 느껴졌을까 안타까웠어요.

억울하고 억눌린 감정을 분출 할 방도가 없는 S는 결국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맙니다. 힘없는 개와 고양이를 노려 그들을 죽이는 거요. S가 살고 있는 N마을에서는 개와 고양이가 죽임을 당한 후 입엔 비누, 다리는 반대로 꺾여 있는 괴상한 사건이 9번이나 발생해요. 그런데 S는 죽이기만 했을 뿐 다리를 부러뜨리지는 않았다네요?

S가 죽인 동물의 다리를 부러뜨린 사람은 다리를 부러뜨리다 우연히 창문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S와 눈이 마주쳐요. 그 때 S는 동정과 안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고 합니다. '나와 똑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동질감을 느낀 것 같기도 해요. 그 후로 S는 먼저 몹쓸 짓을 하고 그 사람을 위해 지도에 자리 표시를 해 그 사람 집 앞에 놓아둡니다. 그게 그 사람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거예요.

S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데요. 이마저도 그 사람에게 알려줍니다. 마음이 얼마나 지옥같았으면 그런 행위를 하고, 끝까지 그런 걸 우정이랍시고 주다니. 하지만 따돌림을 당해 억울했던 S처럼 이유없이 죽은 동물들도 힘들고 슬펐겠죠. 그저 9개의 에피소드로 치부하고 넘어간 게 아쉬워요.

 

 



2️⃣ S의 어머니
아들의 죽음을 슬퍼합니다. 그런데 둘이 어떠한 시간을 보냈는지 장면이 하나도 나오지 않아서 'S의 엄마가 뭔가를 숨기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다행히 그런 건 아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S가 부모에게 받은 사랑이 턱없이 부족했음을 작가가 그렇게 전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나 싶어요.

3️⃣ 도코할머니
미치오가 고민상담을 하러 가는 따뜻한 할머니에요. 미치오가 뭔가를 부탁하면 도코할머니는 이상한 주문을 외운 후 실마리가 될 힌트를 꼭 알려주세요. 이번에도 '에이고(냄새)'라는 키워드를 알려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지요. 하지만 슬프게도 어느 날 도코할머니는 개와 고양이가 죽임을 당했던 것처럼 끔찍한 일을 당해요. 과연 누가 그런걸까요.

4️⃣ 다이조 할아버지
다이조 할아버지가 그랬어요. 근데 다이조 할아버지는 몰랐대요. 집에 찾아오는 삼색고양이가 도코할머니일 줄. 도코할머니가 환생하여 고양이가 된 거였더라고요. S가 죽고 더 이상 부러뜨릴 것이 없자 정이 들었던 고양이에게 몹쓸 짓을 해버린 다이조.

S가 지도를 준 사람은 다이조 할아버지였습니다. 그런데 왜 다이조는 다리를 부러뜨릴까요?

어릴 적, 엄마가 돌아가시자 이웃집 아줌마들은 엄마를 둘러싸고 엄마의 다리를 부러뜨렸어요. 그 중 한 아줌마와 눈이 마주치고 다이조는 패닉 상태로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마는데요. 그게 실은 장례절차 중 하나였거든요. 아줌마들이 악의가 있어서 그랬던 게 아니라. 다이조는 엄마가 아줌마의 남편들과 밤늦게 어울려서 아줌마들이 복수를 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어느 날, 다이조는 엄마의 관 안에 아무도 없는 것을 발견합니다. 다이조는 아줌마들에게 한을 품은 엄마가 관 안에서 스스로 나왔다고 생각했어요.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개가 끌고 갔나 그래요.) 그리고 하필이면 엄마의 다리를 부러뜨린 아줌마가 누군가에게 습격을 당해 해를 입는 일이 발생해, 다이조는 엄마에게 엄청난 공포를 느끼고 맙니다.

노인이 된 다이조 앞에 하루는 뺑소니를 당한 한 여학생이 눈에 띄었어요. "용서하지 않을거야." 다이조를 뺑소니범이라고 오해한 여학생이 말해요. 다이조는 순간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입니다. 그리고 엄마가 그랬듯 이 여학생이 나중에 관에서 나와 자신에게 복수를 하지 못하게 그 때 그 아줌마들처럼 다리를 부러뜨려요.

죄책감을 가지면서도 S에게 건네받은 지도의 장소에 가 매번 똑같은 짓을 저지릅니다. 다이조도 생각하면 안타까운 인물이죠. 극심한 트라우마에 일흔이 될 때까지 시달리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또한 소중한 동물들의 생명을 앗아간 데에 대한 면죄부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무고한 다른 생명을 해치면 안되죠.

 

 



5️⃣ 미치오
미치오는 초등학생임에도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가여운 아이예요. 어렸을 때 엄마를 깜짝 놀래켜주고 싶어 했던 장난이 엄마 뱃속에 있던 아기를 유산시키는 결과를 낳은 후 엄마에겐 투명인간보다 못 한 취급을 받아요. 엄마는 항상 미카만 찾아요. 미치오의 동생이요.

그 일이 있은 후 엄마는 다시는 임신을 못 하는 몸이 되었는데 어떻게 미카를 낳았을까요? 엄마는 인형을 보고 미카라고 부르고, 미치오는 도마뱀을 보고 미카라고 불러요. 둘 다 정신병에 걸린거예요.

미치오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텐데, 라며 미카를 부러워 합니다. 아빠는 늘 피곤한 눈을 한 그냥 함께 생활하는 사람이에요. 미치오의 엄마가 미치오에게 퍼붓는 악담은 상상을 초월하는데요. 미치오가 기분 나쁜 것을 보았다고 하자 '너보다 기분 나쁘니?', S사건의 목격자라는 걸 알게 됐을 땐, '이번에도 네가 죽였지?' 하지만 미치오는 순한 양처럼 그 자리를 뜨거나 담담히 받아들일 뿐이었어요.

미치오는 거미가 된 S, 도마뱀이 된 미카, 고양이가 된 도코할머니, 곱등이가 된 다이조 할아버지를 병에 넣고 돌봐주어요. 모두 외로움과 공허함이 만들어 낸 것들입니다.

이야기 후반부에 다이조 할아버지를 무섭게 몰아부치는 미치오의 분노가 인상적인데요. 그게 그 아이의 본모습이 아닐까 싶었어요. 그리고 사실 S는 미치오 때문에 죽었답니다. 학교에서 연극을 하기로 했는데 미치오는 연극이 하기 싫어서 S의 집에 가서 S에게 죽어주면 안 되겠냐고 했어요. 그 말을 듣고 S는 그렇게 된 것이고요. 미치오는 왜 이런 아이가 된걸까요.


"저뿐만이 아니에요.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 속에 있잖아요. 자신만의 이야기 속에요. 그리고 그 이야기는 항상 뭔가를 숨기려고 하고, 또 잊으려고 하잖아요."


저는 부모에게 원인이 있다고 생각해요. 한참 사랑을 받아도 모자랄 나이에 무시를 당하고 인정받지 못해서 얼마나 서글프고 화가나고 원망스러웠겠어요. 사람이 사람답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사랑이 필수인데 말이에요. 아이에게 부모는 신이라고 하잖아요. 신이 자신을 외면해버리면... 거기다 미치오의 신은 미치오에게 악담을 퍼부었어요.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힘이 들었겠죠. 그래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도피했던거고.

슈스케의 소설에는 인간의 생각과 착각, 잘못 듣는 것들이 진상을 가로막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등장한다. 우리 인간이 사소한 생각에 쉽게 좌우되고, 보지 않았는데 보았다고 생각하고, 하지 않은 행위를 했다고 생각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독자는 인정사정없이 철저히 깨닫게 된다.


늘 생각을 조심해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내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생각이라고 다 옳은 건 아니라고 누가 그랬는데, 내가 알고 있는 사실도 정말 참인지 객관적으로 따져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아요.

저도 제 생각만으로 일, 관계를 그르친 적이 몇 번 있어요. 내 생각이 내 주관에 의해 해석된 것인지 남들이 들어도 납득할 만한 일인지 이제 잘 가려야겠죠.

그나저나 다이조, 미치오의 트라우마가 만든 결과는 그야말로 참혹하네요. 트라우마 관리도 필요한 것 같아요.

끝으로... 이야기가 맥거핀으로 이용만 되고 스르르 사라져버린 것이 있어요. 이와무라 선생님의 악취미. 어린 아이들을 상대로 그런 짓을 하는 건 악질 중에 악질이죠. 그것도 선생님이. 근데 책에서는 이와무라 선생님이 범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그 내용도 자연스럽게 묻혀졌어요. 생각할거리나 교훈을 주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쉬워요.

반응형


이 책을 고를 때만해도 무서운 책일 줄 몰랐는데, 상당히 옥죄어오는 소설이더고만요. 한 편의 공포영화를 글로 풀어놓은 것 같아서 중간에 멈추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두려운 존재'도 내내 멈춰있을 것 같아 차라리 후루룩 읽어버리자! 싶어 금세 완독했던 책입니다.

📬
줄거리 먼저 이야기 해볼게요. 스포주의!



초등학생 유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새아버지를 맞아요. 새아버지는 세 사람의 단란한 가정을 꿈꿉니다. 엄마, 본인, 그리고 엄마 뱃속의 아기. 새아버지가 해외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어머니도 자연히 그 곳에 머물고, 유마는 여름방학 동안만 새아버지의 동생 즉 삼촌과 함께 살 것을 제안하듯 강요 받는데요. (초등학생인데!) 하지만 다행인 건 유마가 삼촌을 좋아한단거예요. 변변찮은 사람 같긴 하지만 자유분방하고 또 새아버지와 다른 이미지가 퍽 마음에 들거든요. 삼촌은 유마를 자신의 별장으로 데리고 갑니다.

'변변찮은 삼촌이 이런 별장을...?!'

별장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근사했어요. 사실 그 별장은 별장 앞에 있는 숲에서 행방불명 되었던 아이를 되찾아 준 부모에게 받은 보답이었답니다. 이름은 '고무로 저택'.

행방불명이요? 숲, 일명 사사숲이라고 부르는데요. 사사숲에만 가면 아이들이 없어지는거예요. 운이 좋아 돌아온다고 해도 이전에 내가 알던 내 아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고요. 마치 다른 무엇인가 내 아이 옷을 입고 있는 느낌? 그래서 삼촌은 유마에게 신신당부 해요. 절대 사사숲에 가면 안 된다고!

유마는 유별난 애예요.


현재 살고 있는 세계 말고 다른 세계를 이계라고 합니다. 유마는 이계에 두 번이나 다녀온 적이 있어요.

 

 

 

 

첫 번째 이계는 도무지 끝이 안 보이는 길을 팔이 긴 '무엇'에게 쫓기며 쉼없이 뛰는 것이었어요. 끝나지 않는 길을 '무엇'은 긴 팔을 휘적휘적 대며 끊임없이 쫓아와요. 묘사로 상상을 해 봤을 때 사람은 아니었어요. 겁주기 위해, 사람이 아닌 것이 그냥 사람을 골려주려고 쫓아오는 느낌.

저는 유마의 첫 번째 이계에서 그 무엇의 존재와 행동이 아닌 다른 것에 섬뜩함을 느꼈는데요. 초등학생 아이가 괴상망측한 무엇에게 쫓기고 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눈만 빼꼼 내밀고 구경만 할 뿐 도와주지 않아요. 집집마다 붙어있는 사람들의 눈이 얼굴이 표정이, 이상했어요. 이 책이 영화화 된다면 이 부분 소름돋는 장면일 것 같아요.

두 번째 이계는 학교가 배경이에요. 처음부터 끝까지 얼굴은 물론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지요.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 하나로 유마를 공포에 떨게 만들어요.

편하게 그냥 하이힐이라고 할게요. 하이힐은 각 교실 문을 하나하나 열어봐요. '누가 있나?'가 아닌 '아무도 없는거 맞지?'의 느낌으로.

그러다 하이힐은 유마의 소리를 들어요. 그렇게 시작된 학교에서의 추격전은 유마를 매우 고통스럽게 만드는데요. 독자 입장에선 그다지 몰입이 잘 되진 않았어서 전 그냥 그랬어요.

자, 여하튼.. 이러한 경험들을 한 적이 있는 유마가 음산한 사사숲, 고무로 저택에 머물게 되었으니 잠을 편하게 잘 수 있을리가요?

매일 밤 빈 집에서 인기척을 느껴요.


들어가기 전에 잠깐. 저는 매일 밤 그렇게 두려움에 떨면서 유마가 왜 나돌아다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리고 '~하는 건 어째서일까', '~이기 때문일까', '어쨌든' 이런 표현이 유독 많이 나와서 지겹다는 생각을 좀 했네요.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파악하고 넘어가지 않는 게 유달리 많았어요. 주인공이 초등학생이라 그랬나.

 

 

 

유마는 밤중에 들리는 인기척에 괴로워합니다. 그러다 문 사이로 나를 바라보는 눈과 눈이 마주치고 경악해요. 그 눈은 세이, 그러니까 삼촌의 애인 사토미(같이 삶)의 아들이었는데요. 실은, 유마가 멋대로 질문 하고 멋대로 단정 지어 결론 내린 것이었던 것 뿐이었죠. 그 아이는 세이가 아니라 사사숲에서 행방불명된 아이였거든요.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젠 이 세상에 없는 아이요.

이 사실을 모르는 유마는 세이가 사사숲에 가자고 했을 때 함께 따라나서요. 우정을 나누고 있다고 착각하고요. 유마와 세이가 숲에 들어간 후 일어나는 일들은 폐쇄공포증을 느끼시는 분들은 읽기 힘들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느덧 숲에서 유마는 세이를 잃어버려요. 그러다 좁은 굴에서 또 모습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는 무서운 소리와 형체에 끊임없이 쫓기게 되는데요. 이 시간이 짧지 않기 때문에, '질질 끈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다 도망이 끝난 지점에 정신을 차려보니 그 곳은 고무로 저택. 바로 삼촌이 행방불명된 아이(세이. 원래 이름은 고이즈미 마사토)를 죽인 곳에 와 있었어요.

삼촌...?


말없이 사사숲에 간 유마에게 화가 난 삼촌은 유마에게 크게 화를 내고 갑자기 엄마에게 전화를 해 돈을 요구합니다. 이게 마가의 반전 중 하나에요. 목소리 변조를 해서 유괴범인양 협박을 해요.

삼촌은 유마를 집 안에 가두는데요. 밖으로 나갈 궁리를 하고 실제로 실행에 옮기려고도 했지만 번번히 가로막히게 됩니다. 그러다 갑자기 철컥.

문이 열려요. 밖에 나가니 아무도 없네요. 아주 조심히 밖으로 나오는 유마. 하지만 곧 삼촌에게 발각됩니다. 포박당한 상태로 삼촌에게 이끌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데..

"지금이야!" 유마만 그 소리를 들었어요. 그순간 삼촌의 다리를 잡고, 위험한 구간에 서 있던 삼촌은 중심을 잃고 밖으로 떨어져요. 그렇게 삼촌도 세이처럼 세상을 떠나게 돼요.

삼촌이 나쁜 사람일 거라는 건 예상했어요. 근데 내용 자체가 쫄깃한 맛이 없다보니 저도모르게 삼촌에 기대를 좀 했던 모양이에요. 상당히 나쁜 사람으로 그려져 큰 반전을 안겨줄 줄 알았어요. 삼촌은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네요. 다 허술해요. 작가님, 이렇게 재미 없는 사람에게 큰 비중을 안겨주시다니요..

유마


엄마와 다시 만나 일상으로 돌아왔어요. 시간이 꽤 흐른 뒤 유마는 다시 고무로 저택 앞에 가 봅니다. 차마 들어갈 용기는 없어 문 앞에서 그저 바라보기만 해요. 그러다 발걸음을 돌리려는 찰나.

"새아빠가 죽은 일에 죄책감을 느끼냐?"

이미 죽은 아이의 목소리, 세이의 목소리가 들려와요. 유마의 새아빠는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요.

"일부러 두고 온거야."

내내 조용하고 얌전한 모습만 비추던 유마의 다른 면을 보게 되어 가장 의외라고 생각했던 장면이었어요. 새아빠는 유마의 RC카를 밟고 넘어져 돌아가셨습니다. 거의 처음으로 유마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장면.

느낀점 📬


이 책에는 대부분 사람이 아닌 것들이 유마를 괴롭혀요. (삼촌 빼고) 하지만 그것들이 유마를 해했나요, 신체에 일격을 가했나요. 그것들은 유마의 돈을 빼앗거나 목숨을 위협하거나 인격을 유린하진 않았어요. 그저 놀래키고 장난쳤을 뿐.

 


그에비해 사람은 돈 때문에 가족을 감금하고, 돈과 생명을 교환하려 하고, 억울하게 죽은 사람을 입에 올리며 안주처럼 뜯어댔어요. 유마의 새아버지는 초등학생 아이를 책임지고 싶어하지 않았고요. 그럼 그 아이는 어디서 밥을 먹고 어떻게 살아가요? 아이를 보호할 여력이 있는 보호자가 책임을 지지 않는 건 생명을 경시하는 행위라고 봐요. 다시 한 번, 진짜 공포는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죽은 영혼이 무섭지 않다는 건 아니에요. 근데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덴, 역시 사람만한 게 없다고 생각해요.

공포소설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소설이긴 했습니다.

 

✔참고로 '마가'는 미쓰다신지의 <집시리즈> 중 한 편입니다. '흉가', '화가' 편이 더 있어요.

 

반응형


실은 이 책은 너무 오랜 기간 나눠 읽는 바람에 잊어버린 내용이 상당히 많기는 합니다. 이 글은 제가 책을 읽다가 하이라이트 해 둔 내용을 다시 읽고 기억을 되살려가며 제 생각을 적는 것으로 하려고 해요. 목차 소개 및 진지한 서평글이 아니니 참고 부탁드려요.

이 글을 막 읽기 시작했을 때 받았던 느낌, 그건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었습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정신과 의사가 집필한 책이라고 들었어요. 그런데 전혀 무뚝뚝하거나 무겁지 않고 (제 편견입니다) 친근함으로 중무장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었어요. 하은맘의 불량육아, 라는 책이 생각날 정도로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육아에서 많은 것을 내려놓으라고 얘길 합니다. '놀아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친구 만들어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아이에게 말 많이 안 걸어도 괜찮아요' 등등.. 제가 평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육아지침과는 전혀 다른 결이었어서 신선하고 또 놀라웠어요.

 

 


저자는 본인의 육아경험과 때로는 과학적 근거를 들어 부모를 안심시키려 부단히 애를 쓰는데요. 개인적으로 저는 경험만 주욱 늘어놓았다면 읽다가 관뒀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때때로 납득이 갈 만한 근거를 들어주기도 하고 뛰어난 글솜씨로 설득에 성공을 하기도 해서 덕분에 완독을 했던 것 같아요. 중간 중간 독자에게 말을 거는 듯, 장난을 치는 듯, 가볍고 재미있는 구절도 눈에 자주 띄었었네요.



하이라이트 해 둔 부분을 가져와볼게요.

🍃


이건 '나의 성장, 느리게 가도 괜찮아요.' 라는 챕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아이들 어릴 때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도로 뱃속에 집어넣을 수 없는 한, 엄마의 에너지는 아이로 향할 수 밖에요. 그만큼 '나의 성장 속도'는 정체하는 것처럼 보일 테고요. 하지만 진짜 멈춰있는 건 아니죠. 위로 올라가던 화살표가 옆으로 방향을 틀었을 뿐. 그것도 어마어마한 속도로요. 아이로 인해 인생의 폭이 얼마나 넓어졌습니까? 혼자였을 때보다 10배는 넓어지지 않았나요?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있잖아요.


이 생각은 한 번도 못 해봤던 거라 잠깐 멍- 해졌었던 기억이 납니다. 언제 위로 올라갈 수 있을까, 위만 바라보고 있었는데요.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있잖아요' 그러게 말입니다. 아기가 나오고나서 내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저는 솔직히 사람 안 변한다, 라는 말에 이제는 동의 안 해요. 아기 낳고 키우면 변할 수도 있다고 믿어요.

저는 사랑이 뭔지를 잘 몰랐던 사람인데 지금은 매일 매일 눈으로 보이는 사랑을 경험하고 살아요. 육아를 하기 전에는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것이지요. 아기를 예뻐할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이 정도로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니까요. 그리고 풀밭의 풀과 꽃을 이렇게 유심히 바라보고 예뻐하게 될 줄도 몰랐어요. 이제는 다른 아기들을 무심히 바라보지 않고요. 식당에서 시끄러운 아기와 밥을 먹는 엄마를 흘겨보지도 않습니다. (밥 먹는 아기에게 스마트폰을 보여주는 엄마를 질책하지도 않고요)

저자님이 인생이 옆으로 넓어졌다고 하셨는데 말씀 잘하셨습니다. 아기를 키우면서 저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있어요. 비단 아기와 아기 엄마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인간,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볼 수 있게 됐어요. 시간이 없어 위로 올라가지 못해 나는 정체되어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아기는 존재 자체 그 하나만으로 제게 커다란 배움의 시간을 선물하고 있었네요.

🍃


이건 어느 부분이었는지 잊어버렸습니다. 짧고 굵어요.

 

아이를 사랑하는 것과 아이 키우기를 즐기는 것은 별개의 문제예요.

 

이 한 문장은 제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육아를 잘 못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나날 속에서 괴로워 할 때, 불현듯 나의 아기에 대한 사랑이 의심이 될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이 문장이 그거 아니라고, 제 먹구름 가득한 생각에 대고 손을 휘휘 저어주는 것 같아서 되게 고마웠어요.

보고 있는데 보고 싶은, 때로는 보기만 했는데 눈가가 시큰거리는 놀랍고도 대단한 이 존재에 대한 감정을 저는 이제 헷갈리지 않을거예요. 육아가 힘든 것 뿐, 나는 아이를 사랑한다!

🍃

이 부분도 상당히 인상 깊었어요.

 

소심하다고 겁쟁이 아닙니다. "무서우면 안 해도 돼. 세상에 억지로 꼭 해야 되는 일이란 없어. 두려울 때 두렵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진짜 용기야. 너 겁쟁이 아니야." 그렇게 말해주세요.


이건 아기 뿐 아니라 다 큰 어른인 제게도 해주시는 말씀 같았어요. 모르면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두려울 때 두렵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무서우면 무섭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회사에 입사할 때만큼이나 퇴사할 때에도 큰 용기가 필요하죠. 용기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그리고 육아에 적용을 해보면... 아이가 두려워 할 때 이런 말이 선뜻 나올지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부모 마음에 '이겨냈으면' 하고, 이 경험을 발판 삼아 '성장했으면' 할테니까요. 아이와 함께 있을 땐 항상 그 어떤 것보다 아이 마음을 먼저 읽어주는게 중요하단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는 구절이었습니다. 너무 멋진 말인 것 같아요. "두려울 때 두렵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진짜 용기야. 너 겁쟁이 아니야."

🍃

이건 아이가 아직 기저귀를 떼지 않았을 때, 주위로부터 오는 걱정 공격에 대한 쿨한 방어 모습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아이가 기저귀 때문에 많이 스트레스 받아요. 주변에서 걱정하면 자신감 더 떨어지니까, 앞으로 그런 얘기 우리 집에서 하지 말아주세요. 애 들으면 큰일나요."


정확히는 '아이의 장래를 위한 걱정 공격'이 들어오면 이렇게 대답하래요. 너무 쿨하고 멋지지 않나요?





넘쳐나는 육아 정보에 지친 부모님들의 짐을 덜 수 있게 도와주는 육아서, 제로육아. 쓰고보니 제로육아만의 매력이 담긴 구절을 제가 가져오지는 못한 것 같네요. 아쉽지만, 남들은 다 저기 앞서 부지런히 걷고 뛰고 있는데 나만 뒤처진 것 같은 생각이 들 때 직접 한 번 봐보세요. 동지를 만난 것 같아서 마음이 좀 좋아지실겁니다.

저는 처음엔 '너무 다 괜찮다는 거 아니야?' 싶어 대충 쓴 책이 아닐까 의심까지 했었는데 아이를 방치하란 의도였다면 보다가 책을 덮었겠죠? 부모가 숨 쉴 구멍을 스스로 좀 만들란 얘깁니다. 육아가 힘들어 눈물이 나는 날, 저는 아기 낮잠을 재우자마자 멘토 선생님을 찾듯 제로육아를 찾았었어요.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라는 말이 듣고 싶었거든요.

저에게 그랬듯 누군가에게도 위로가 되기를 바라요. 작가님 책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반응형
<달러구트 꿈백화점>
2021년 밀리 독서 대상 '올해의 책'에 선정, 소설 분야 주간 베스트 도서, 밀리 독서 리포트 2021에 소개 📚

 

원래 판타지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데 하도 밀리의서재에 많이 보여 그냥 한 번 읽어보았어요. 순서 무시하고 다짜고짜 총평 할게요. 등장인물들의 입체감이나 개연성이 부족해 탄탄한 느낌은 못 받았고요. 소재는 신선해요. 그리고 작가님 글도 잘 쓰세요. 빠져들어요. 이 책을 시작으로 판타지소설에도 관심을 가져보려 하고 있어요.


 

달러구트의 꿈백화점에서는


다양한 꿈을 팝니다. 하늘을 날아볼수도 있고, 그리웠던 사람을 만나볼수도, 타인의 삶을 살아볼수도 있어요. 금액이요? 맞아요 당연히 돈 내야죠. 후불이고, 느끼는 감정만 반납을 하면 돼요. 쉽죠.

읽으면서 저는 지난 내 꿈을 돌아봤어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꿈이 없어 나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사람은 없는건가.. 하는 섭섭함도 들었고, 수학문제가 하도 안 풀려서 내내 씨름하다 마침내 꿈에서 그 문제를 풀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토록 생생한 꿈을 꿀 정도로 나는 이제까지 가슴 터지게 무언가 갈망을 해 본 적이 없는건가.. 싶기도 했어요. 꿈을 다채롭게 꾸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저는.

각설하고 이제 기억에 남는 책 내용 공유해볼게요. 스포일러가 될 지도 모르겠어요.

🍃

이건 답을 내리지 못해 조금 답답한 마음에 쓰는 내용인데요.

 

 



한 아이가 5살 때 즈음 부모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났어요.


그리고 아이는 꿈을 사서 부모가 너무 슬퍼하지 않을 타이밍에 맞춰 꿈을 꿀 수 있게 해줍니다. 짠! 하고 꿈 속에 자기가 나타나는거죠. 반가워하는 부모에게 아이는 나 잘 있다고, 밑에서 행복한 삶을 살았었다고 얘기해줘요. 왜 인생을 살다보면 안 좋은 기억이 있게 마련인데 나는 좋은 기억밖에 없다고 기특하고 슬픈 얘기까지 합니다.

꿈에서 깬 부부는 예상과 달리 오열하지 않고 그저 이불을 움켜쥐고 서로 마주본 채 이 이야기를 끝내요.

부부는 왜 그러고 있었을까 생각해봤어요. 근데 생각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 상상을 해야 했네요. 나를 먼저 떠난 내 아이가 내 꿈에 나타나 잘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나는?

매일 매일 무너져내리는 가슴이 그 날은 안 무너질까요 과연. 오히려 더 슬프진 않을지. 아니면 어제보단 더 밝게 하루를 살아낼 수 있을지.. 저는 아직도 제 답을 내리지 못했어요. 그리고 상상일뿐인데 너무 가혹하더라고요. 누군가에겐 지금 현재 진행중일 크나큰 아픔일텐데 공감을 해보려 애를 써도 안 되었어요.

상상으로 안 되는 것도 있구나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이런걸 두고 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아픔이라고 하는거구나 싶었어요.


🍃

악몽에 대한 이야기도 해볼게요.

당신은 어떤 꿈을 악몽이라고 보시나요?


귀신이 나오는 꿈?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 혹자는, 그리고 저는 기억하기 싫은 과거가 다시 떠오르는 꿈을 악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책에선 갑자기 악몽의 좋은 점, 그러니까 장점을 찾아내요.

책에선 가짓수를 나누진 않았지만 저는 두 가지로 나눠봤는데요. 첫째는, 안도.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악몽을 꾸고 난 후 안도를 느끼기도 합니다. 현실이 아니라 꿈이었으니까요. 안도는 좋은 감정이죠.

예를들어, 군대를 전역한 군인이 다신 돌아가기 싫은 군대에 다시 가는 꿈을 꿨다고 쳐요. 꿈에서 깨면 이내 현실감각을 되찾아 안도의 감정을 느낄거예요. 그리고 더 나아가 감사의 마음을 느끼면 이건 거의 일석이조 아닌가 싶은데 어떤가요?

 

 



둘째는, 해결하지 않고 지나간 내 시간을 다시 마주할 수 있다는 것.

트라우마. 무섭죠. 꿈에서조차 다시 겪기 싫은게 트라우마일겁니다. 그런데 그 꿈을 만드는 제작자가 달러구트의 꿈백화점에는 있어요. 그리고 달러구트는 그 제작자를 독려하기까지 하는데요. 기억하기도 싫은 그 시간을 다시 마주하게 되는 그 꿈이 과연 내게 어떤 도움을 줄까요?

매일 나를 따라다니며 조금씩 갉아먹는 트라우마지만 저는 때때로 이 사실을 망각합니다. 그게 편하니까요. 하지만 내 안의 나는, 그 시간의 나는, 해결되지 않은 그 시간 속에서 아마 해결이 될 때까지 괴롭힘을 당할테죠. 그래서 저는 10살의 저, 18살의 저, 24살의 저 등 매순간의 저와 눈 맞추고 진솔한 대화를 하려 애를 씁니다.

특히나 '트라우마'라면요, 우리는 문제를 해결 할 수는 없어도 반드시 내 안의 나와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야만 하잖아요. 아니면 내가 너무 가여우니까. 달러구트는 누군가의 진정한 회복을 위해 악몽을 만드는 제작자를 독려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원하지 않는 악몽을 꾸고, 다시 한 번 그 시간으로 돌아가 상황과 감정을 다시금 겪습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을 돌릴 수는 없지만 단 한 가지 '감정'만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니까 그 때의 나를 꼭 안아주며 대화 나누고 이제는 내게 힘이 되어줄 만한 감정을 선택 하는게 트라우마 극복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한 번에 될 리는 당연히 만무하지만요.

제가 지금 심리상담을 받고 있는데 반드시 있어야 하더라고요. 그 시간을 제대로 마주하는 시간이요.

여튼.. 괴로운 꿈을 꾸고 나서 가만히 묵상하는 시간을 앞으론 꼭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입체감이 부족해요.

등장인물들에 친근감을 느끼기 어려웠어요.


이제 내용에서 걸어나와 책 표지를 보고 드는 생각을 적어볼까 하는데요. 물론 제 상상력이 부족한 탓일 수 있습니다. 달러구트는 능력있고 동시에 포용력 있으며 인간적인 매력까지 갖춘 인물이라고 저는 해석했어요. 그런데 달러구트 만큼이나 비중있는 역을 맡은 직원 페니에게선 이렇다할 특징을 찾아내지 못했어요. 그냥 일 열심히 하고, 적당히 호기심 있어요. 사람들과 깊은 애정을 나누거나 갈등을 겪는 일은 없었습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작가님이 독자를 등장인물이 아닌 이 신선한 내용 자체에 빠트리려는 의도를 가지고 그러셨나 싶기도 한데.. 누군가에게는 큰 단점으로 다가가 혹평을 받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더 쓰고 싶은데 늦었네요. 그래도 2편이 남아있어요. 놀랍지만 저는 해리포터도 읽지 않은 사람이에요. 판타지소설을 그 정도로 즐겨 읽지 않는 스타일이란 말이에요. 근데 달러구트 꿈백화점 2편은 읽어보려고요. 입체감이 부족하단 얘기를 했지만 저는 이것들을 뛰어넘는 이 신선한 소재에 큰 매력을 느꼈거든요. 😉

2편도 가능하면 후기를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2편에는 재미난 이야기들이 더욱 가득했으면 좋겠어요.

반응형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권위 있는 미션계 여학교 성마리아나 학원. 그 곳에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학생회와 거부할 수 없는 유행처럼 매력적인 연극부가 있다. 여학교다보니, 안경 쓴 모범생 사춘기 소녀들에게도 '왕자님'이 필요했는데 학교의 대대적인 연례 행사나 축제를 치를 때 당연히 제껴두고 진행을 하는게 당연했던 저 멀리 먼지 쌓인 '독서 클럽'의 왠지 모르게 멀리하고 싶은 소녀들이 느닷없는 일을 벌임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독서클럽'에서 기억해 두어야 할 이름은 단연 '아자미'다.
그녀는 못생기고 조용해서 학교에서 밀려났지만 성적은 톱을 달리는 독서클럽의 부장이다. 그녀는 17세기 프랑스의 유명한 문필가였던 시라노 드 베라주라크 (1619~1655, 기형적으로 큰 코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고 친구를 위해 대필하는 편지 속에 마음을 담아야 했던 시라노의 낭만적 사랑)에 푹 빠져있었는데 때마침 전학 온 베니코에 자신의 낭만을 뒤집어 씌워 '왕자님 만들기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성마리아나 소녀들은 이번에도 당연히 매력적인 연극부에서 자신들의 동경심을 쏟아부을 왕자님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지만, 아자미의 치밀한 연출과 그녀의 충실한 강아지 쓰보미를 신문부의 진성S 가네다 미치코에게 하룻밤 상대로 넘겨줌으로 판은 확실히 뒤집히고 만다.
연극부의 뜨거운 항의를 뒤로 하고 소녀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베니코는 완벽한 인형이 되어 그 해 '왕자님'에 선출 되었으며 현대판 드 베라주라크, 아자미의 꿈을 이루어 주었다.
고교 생활에 잊지 못할 추억을 쌓은 아자미의 다음 행동은 무엇이었냐고? 현명하고 똑똑한 소녀였으므로 그녀는 입시 준비를 위해 공부에 몰두했고, 원하는 대학에 합격까지 했다. 어느 날 성마리아나 학원에 전학 와 클럽 부장의 요구에 자기 자신을 버리고 '왕자님'타이틀을 얻었던 베니코는 그럼 어떻게 되었을까? 이 대목에서 베니코가 어디까지 본성을 숨기고 살았었는지 가늠이 된다.
그녀는 불량 소년을 만나 임신을 하고 학교를 중퇴한 후 결혼 하겠다고 학교에 이야기 한다. 그녀를 흠모하고 있던 무리들은 자기들이 추종했던 아름다운 '왕자님'의 추악한 본모습에 너나 할 것 없이 격분을 감추지 못한다.
"죽어버려! 죽어버려! 죽어버려!" 어쩌면 생애 처음 맛보았을 얌전한 성마리아나 여학생들의 들끓는 미움이었을 것이다.

제 1막의 어설픈 동경심(불량소년 이미지)이 미숙하지만 사과처럼 풋풋했고, 귀찮지만 미쳐날뛰게 내버려두고 싶을만큼 귀여웠다고 하면 이상해보이려나. 모두가 동의하는 순리를 만들어 그들만의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게 영화화 된다면 색감 참 예쁘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 2막은 성마리아나 학원의 설립자에 관한 이야기다.
먼 옛날, 그녀는 5살에 아버지로 인해 수도원에 들어간다.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은 마리아나는 사랑하는 그의 오빠 미셸을 찾아 금서를 빌려주는 카페 형태의 '철학적 복음호박'에 발을 들이게 된다. 아버지가 알면 놀라 자빠지셨겠지만 '신은 없다!'고 소리친 내력으로 집에서 쫓겨난 미셸이 자신의 카페에서 무신론 철학서를 읽든 그 책을 사람들과 돌아가며 읽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책의 내용과 분위기에 마리아나는 충격을 받았지만 그녀는 오빠를 사랑했기에 아버지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 다른 남매는 무수히 많은 시간을 각자의 색깔로 보내고, 시간이 두 사람을 같은 장소에 나란히 내려 놓았을 때 깔끔한 복장의 수녀복을 입은 마리아나와 부평초같은 삶의 나날이 여지껏 계속되고 있는 미셸이 서로를 마주했다. 하지만 곧, 텅빈 호박처럼 나이만 먹은 미셸은 몸과 마음이 동시에 아팠다. 일본으로 하느님 이야기를 전파하고 돌아온 마리아나가 자신의 손을 부여잡고 간곡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는데도 몸이 너무 아파 눈을 뜰 수 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마리아나가 어떤 식의 기도문을 하느님께 올렸는지는 자세히 서술되어 있지 않다. 다만 그것은 대단히 애달픈 마음이었으리라고 미셸은 짐작할 뿐이다.

마리아나의 꿈은 일본에 수녀원을 차리는 것이었다.
미셸이 아프지만 않았어도 그녀는 충분히 자신의 앞에 내어진 계단을 밟고 부지런히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미셸은 밤새 자신의 손을 꼭 잡고 싸늘히 죽어 있는 마리아나의 못내 이루지 못한 소중한 꿈을 꼭 이루어 주겠다고 다짐한다.

한 소녀의 이루지 못한 꿈이 결국은 도달한 형태이긴 하나 우아한 모습의 마리아나 동상이 실은 남자라는 사실에 안개 같은 구름이 두둥실 떠다니는 학교 아래 소녀들의 웃음을 떠올리면 왠지 알아서는 안 될 비밀을 알아버린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이 든다. 이 놀랍고도 위험천만한 비밀을 독서클럽지에 기록한게 누구냐고?

그러니까 언젠가부터 학교를 배회하는 할아버지와 닉네임 '시궁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학교의 내력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잠자코 듣고 있던 시궁쥐는 어느 순간, 귀신이라도 마주한 듯한 눈으로 할아버지를 보았겠지. 할아버지의 인자한 주름 뒤로 시궁쥐가 기록한 제 2막의 이야기 때문에 명문 학교 성 마리아나 학원의 위상이 떨어지면 그 후의 이야기가 전과는 다른 분위기로 그려질 것이다.
만화책 같은 전개, 재밌을 것 같다.

100년의 시간 동안 마리아나 학원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일들이 일어났는데 그 중에서 흥미로운 일을 꼽으라면 <학생회 밤무대화 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학교 최대 권력의 학생회에 전학생이 무단 침입해 미러볼을 달고 춤을 추는 사건은 전무후무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성마리아나 학원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 자녀나, 재벌 3세 등 늘 풍족한 삶을 누렸던 소녀들이 들어오는 곳이다. 온실 속 화초 같은 소녀들이 신흥 졸부와 함께 수업을 받고, 밥을 먹고, 더 나아가 그들에게 선도받는 것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늘 부채를 소지하고 다니는 세 아가씨(이하 부채파)는 전학 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회에 당돌한 제안을 했다.

학교를 남녀 공학으로 바꾸고, 찬미의 노래를 부르지 말자, 그리고 우리도 학생회에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

협박에 가까운 어리광에 여린 마음의 소녀들은 부채파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고 결국 학생회 안에서는 당파가 나뉘어지는 사태에 이르고야 말았다.
부채파와 소녀들은 마리아나 동상 밑에서 노래를 하고, 춤을 추고 그 당시의 학교는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잘못된 의견이라도 다수의 지지를 받으면 맞는 것이 되어버리는 법이다.
그리고 부채파와 소녀들은 부채파를 '왕자님'으로 선출하기로 마음 먹는데 왕자님을 뽑기로 약속되어 있는 날, 밖에서 놀다 검거 되었다는 부채파의 소식이 소녀들의 귀에 들려옴으로 성마리아나 학원은 원점으로 돌아가기 위해 또 한번 대소동이 일어나게 된다.
소녀들이 가지는 왕자님의 의미는 부채파의 생각보다 큰 것이었기에 그들이 더 이상 갈 곳 없는 처지가 되어버릴 때까지 성난 군중은 가열차게 그들을 몰아넣었다.

결국 부채파의 발길이 맞닿은 곳은 먼지 쌓인 건물 아래 칙칙한 독서클럽.

독서클럽의 부장 다카시마 기요코와 하세베 시구레는 부채파의 행보를 미리 예상하며 그녀들의 동아리 가입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던 참이었다. 기요코는 부원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그들을 포용하여 맞아들여준다. 하지만 한층 풀이 꺾이기는 했어도 여전히 오만방자한 부채파의 노래와 춤은 부원들의 심기를 몹시 불편하게 했고, 부장을 원망하게 했다. 그래도 기요코는 그들을 내쫓지 않았다. 그녀는 몇 년동안 발길을 끊었던 독서클럽에 성큼성큼 찾아온 학생회와 맞서 부장으로서 당당한 면모를 보여주었고 조용히 만인의 신뢰를 되찾았다.

'우리는 무정부주의자들이다.' 기요코의 보호가 없었다면 부채파는 전학을 가야했을지도 몰랐겠다고 무사히 졸업을 한 부채파 중 '복숭아 색 부채'는 생각한다. 문화에 섞여 귀화한 아가씨가 없었다면 성마리아나 학원에 길이길이 남을 <학생회 밤무대화 사건>은 기록되지 않았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인물이 서기를 맡은 점이 놀라웠고, 매번 그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 '독서클럽'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그 중에서도 '복숭아 색 부채'의 존재는 반전으로 느껴질만큼 신선하고 새로웠다.

제 4막은 '루비 더 스타'의 야마구치 주고야에 관한 이야기다. 린코라는 독서클럽 부원을 졸졸 쫓아다니던 주고야가 그녀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해 락 밴드를 결성한 후 그녀에게 상처받은 마음을 노래하고 다니며 린코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이야기인데, 플롯이 맘먹고 풀어놓자면 꽤 광범위해서 한 편의 장편소설이 되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만약 독서클럽이 영화화 된다면, 소녀들의 열광적인 사랑을 받으며 노래를 하는 야마구치 주고야는 왜인지 모르게 1막에서의 베니코와 비슷한 이미지가 아닐까 라고 상상했다.
그녀들은 공통적으로 예쁘장한 외모에 슬퍼 보이는 눈을 가졌고, 길고 늘씬한 팔다리로 나른하고 느릿 느릿한 행동을 하며, 학원을 빠져 나오면 각자의 본성을 드러낼 수 있는 곳에서 어른스러운 미소를 지을 것 같다.

마지막 제 5장은 뚱뚱하고 못생긴 도와와, 50년 전에 마리아나 학원을 졸업해 현재를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멋진 여성 아자미의 이야기다. 아자미가 누구냐고? 드 베르주라크에 빙의해 베니코 왕자 만들기 프로젝트에 대성공한 사람이라고 하면 기억이 날려나.
학교 요청에 응해 좋은 연설을 들려주러 온 아자미는 50년 전과 같이 현재도 학교를 떠들썩 하게 만드는 이슈가 두둥실 학교를 감싸고 있다는 사실에 따뜻하고 묘한 기분이 된다.

그녀가 방문했을 당시, 소녀들은 '부겐빌리아 님'때문에 한시도 콩닥거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 '부겐빌리아 님'(이라고 소녀들이 상상한)은 수업시간에 빼앗긴 핸드폰을 부겐빌리아 라는 꽃과 함께 서랍이나 책상에 올려 놓아 주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려 어느 순간부터 소녀들에게 소위 '왕자님'이라고 통용되고는 했다.

우연히 벌인 친절이 이다지도 큰 사태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에 도와는 학교 안 어디서든 숨을 곳을 찾기 바빴다. 하지만 하필이면 이 때, 나름대로의 전통을 고유하고 있는 독서클럽 건물이 폐쇄 된다는 이야기가 나돌았고, 존경하는 아자미 선배의 연설 소식이 들려오자 도와는 정말 마지막으로 '부겐빌리아 님'의 모습을 보이기로 마음 먹는다. 도와가 넣은 것이 확실한 가방 안의 독서클럽지를 품에 안고 옛날의 독서클럽 부원들을 만나러 카페에 도착한 아자미는 한줌의 재가 되어 버릴 한 공간의 시작과 끝을 당시의 부원들과 함께 맞게 되었다.

100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살아 숨쉬는 독서클럽지가 도와나 도와의 후배의 손에서 또 후배의 손으로, 110년, 120년 계속 이어진다면 더 좋았겠지만 장편소설이나 시리즈물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 또한 자연스러운 맺음이었던 것 같다.

'독서클럽'은 클럽 부원들이 성마리아나 학원에서 벌어졌던 기억해둘 만한 일을 기록한 비밀 수첩의 내용이다.

퀘퀘묵은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보는 느낌.

그 구성은 무척 새로우며, 모든 내용을 아우르는 커다란 틀이 중심을 잡아주어 헤매지 않게 도와준다.
소재와 구성, 탄탄한 짜임의 삼박자가 서로 욕심 부리는 일 없이 매우 조화로웠다.

반응형

1976년 <군조> 6월 호에 발표한 이 작품은 그 해 <군조> 신인상과 제 75회 아쿠타가와상을 동시 수상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일본 문학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무라카미 류의 처녀작이라 많은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서 읽어 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그런데 현재의 명성과는 걸맞지 않게 이 작품이 처음 출간 되었을 때 일본에서는 이 책의 내용이 문학의 소재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큰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더불어 인간의 내면을 그리지 않았다는 비판과 함께 고뇌와 회한도 담겨있지 않은 작품이라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고 하는데 청춘들의 끝모를 비애를 느낀 건 비단 나를 비롯한 소수 뿐이었다는 말이 되나.

1970년대 이 작품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엔 무려 19세 미만 구독 불가 판정을 받으며 읽어서는 안 되는 금서 취급을 당했다. 나는 사람들이 성과 약 묘사에만 눈을 번뜩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29년 전 내가 아무런 자각을 포함시키지 않고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상실감'이다. 1970년대 중반 일본은 근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뤄 내고 그 대신에 무엇인가를 잃었다. 이뤄낸 것, 그것은 일본의 고유의 문화를 위한 것은 아니었고..." 그들의 방탕한 생활에 손가락질 하고 고개 돌려버리는 사람들은 내가 확신하는데, 그들의 상실감 따위 제 알바 아니다.

독자는 청춘을 허비한 이들의 당시 일본 사회 시대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 일본은 고도의 경제 성장과 동시에 무섭게 침투한 미국의 대중 문화로 인해 큰 쇼크를 먹었다. 미국 음악을 틀고 패션을 모방하면서 자신들을 '노란 인형'으로 취급하는 미군을 따라했다. 나라는 더욱 풍요로워졌지만 국민의 인간성을 돌볼 여력은 없었던 모양이다.

나는 무라카미 류가 이 작품에서 방황하는 이들을 통해 무분별하게 미국 문화를 받아들이는 사회를 나타내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와는 다르게 너무 '현실적'이라는 평을 받는 작가 답지 않은가.

너무나 첨예한 그의 글이 일부는 쉽게 읽히지 않아 싫다고 말하지만 담아야만 하는 이야기를 거리낌없이 이야기로 풀어내는 작가는 흔치 않다고 본다. ('자극적인 소재를 사용한 책을 애장하고 있어요.'라고까진 말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 책은 무려 작가가 23살에 발표한 것이다.
처절한 한 때를 보내고 있는 류의 또래를 누구보다 잘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 격변의 시기에 자신의 소리를 낸 것과 작품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음악에 대한 방대한 지식이 작품이 작가를 잘 만났구나, 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이와 같은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이 만약 우리나라에서 영화화 된다면 거침없이 파국을 향해 치닫는 이들을 위한 청춘 영화가 되어 퇴폐미 신드롬 같은걸 불러올텐데.

반응형

 

제 12회 보일드 에그즈 신인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전직 만화가 지망생이었던 저자를 한껏 녹여낸 듯한 여주인공이 25살의 나이에도 불구 여전히 소녀같은 이유는 도쿠나가 케이가 순수한 감성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순정 만화 여자 주인공과 마흔 여섯살 아저씨가 실제로 눈 앞에 팔랑거리는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키는데 그래서인지 생동감 넘치는 말과 행동이 여느 책보다 풍부하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산업 스파이 앞에서 발을 헛디뎌 만화 원고가 우수수 쏟아지는 장면이라던가, "인생은 하룻밤의 쇼같은 거리고 생각해" 운전대를 돌리는 그의 무심한 옆모습에서 느껴지는 안정감과 노련한 표정은 의도하지 않아도 저자의 장기가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비밀을 갖고 같은 공간에서 일하게 된 두 사람이 비록 만화같이 멋스러운 엔딩을 맞이하진 못했지만 소설책 다운 교훈이 고개를 빼꼼히 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회사의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가짜 센터장으로 부임한 아저씨는, 만화 투고에 열심이지만 매번 고비를 마시는 청춘 소녀에게 흘리듯 격려와 응원을 건넨다.
'아야카, 회사에 들어올 때 매번 오른발부터 밟는 거 알아? 가끔은 왼발부터 밟아도 돼.' 나는 이것이 산업 스파이 주제에 늘 콧노래를 부르고 다니는 유쾌한 아저씨가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믿는 젊은이들에게 조금은 인생을 즐겁게 살아도 된다고 수줍게 이야기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몽실몽실 했다.
아야카는 그 말에 왼 발을 디뎌 자신의 만화 원고를 A급으로 승급시켰고 자신의 꿈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자신이 한 말을 기억을 할는지 모를 의문의 센터장은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 그렇게 끝나버린 이야기에 혹자는 깊은 탄식과 허무함을 느꼈을지 모르겠다.

나는 오랜 기억 속, 순정 만화를 손에 쥐고 울고 울었던 어린 날의 내가 떠올라 은은하고 달콤한 기분으로 책을 덮었다.

생동감 넘치고 어린 아이 같은 사람들이 보고싶다.
지나치게 날카롭거나 과장된 행동으로 사랑받는 인물들.

저자가 실은 아직도 만화가를 꿈꾸고 있다면 의문의 센터장처럼 나도 조용히 그녀를 응원하고 싶다.

반응형

 

 

2014년 국내 개봉 된 데이빗 핀처 감독의 <나를 찾아줘>는 극장 상영 후 관람객들의 높은 평점과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나도 별 생각 없이 영화를 보러 들어갔다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멍한 상태로 조용히 극장을 나왔던 기억이 난다.

<몸을 긋는 소녀>로 데뷔한 길리언 플린은 전 작품 영화화 확정으로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또한 '피가 난무하지 않는 서스펜스를 쓸 수 있는 작가(월스트리트저널)'라는 극찬에 걸맞게 그녀의 이야기는 더없이 조용하고, 나긋나긋한 여성들만의 분위기가 짙게 깔려있다.

<나를 찾아줘>에서 주인공 역을 소화한 배우의 온화하지만 지독하게 차가운 표정이 아직도 눈 앞에 아른거리는 걸 보면 저자는 <몸을 긋는 소녀>에서의 아도라와 카밀에게도 '양날의 칼'을 쥐어준게 틀림없다.

그들은 3대에 걸쳐 모녀간의 애증이 비극으로 치닫는 과정을 그들도 모르는새 여과없이 보여주었는데, 킬링타임용 장르 문학을 선택함으로서 현실의 두려움을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앤과 내털리의 범인 찾기에 몰입 시켜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던 것 같다.

이야기는 시카고에서 일하고 있는 카밀이 사건 취재 차 자신이 살았던 윈드 갭으로 이동하면서 시작된다.

가족과 친구가 있는 윈드 갭에 카밀이 쉽게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그 곳에서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마을 주민들의 동경을 받는 돼지 농장 실소유자이며 상당한 재력가이자 최고 부유층이다. 그녀에게는 앨런이라는 새아빠와, 이붓동생 엠마가 곁에 있었는데 그 누구의 환영도 받지 못한 채 마치 하숙인처럼 방을 빌려 쓰게 된다.

아도라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사건 취재를 위해 현장과 피해자 가족 등을 만나고 다니면서 그녀는 캔자스시티에서 파견 나온 강력계 형사 리처드 윌리스와 피해자 내털리의 납치 목격자, 아도라의 상류 사회 친구들, '엠마 패거리'와 여러 번 부딪히게 된다.
이붓동생 엠마는 조숙한 여중생으로 예쁜 얼굴로 술과 약을 하고 다니는 불량 소녀지만 집에서만큼은 엄마 말씀을 잘 듣는 똘망똘망하고 여린 딸이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관심이 없는지, 엄마 아도라는 언제나 고급스러운 원피스를 입고 가정부를 호출해 기름진 음식을 먹는다. 새아빠에게는 한 번도 '아빠'라는 호칭을 써 본 적이 없지만 누구도 고치라고 지적하지 않았다.

그녀는 엠마에게 발뒤꿈치가 밟히고 그녀가 먹던 사탕에 머리가 뒤엉키면서, 리처드와 여러가지 정보를 주고 받았고 마침내는 죽임 당한 피해자들의 공통 분모를 발견해내고 만다.

두 소녀들은 조용한 성격이 아니었고 아도라에게 과외를 받거나 관심을 받고 있던 아이들이었다. 그와 동시에 엠마는 죽은 자신의 여동생을 질투 할만큼 사랑 받고 싶어 하는 아이였다.

카밀은 2주가 넘는 시간 동안 윈드 갭에 머물면서 자신을 죽이고 싶어라는 아도라의 광기와, 죽은 여동생이 사실은 건강했음에도 병원에서 죽어가야만 했던 이유를 뒤늦게 알게 된다.

앤과 내털리는 과연 누가 죽였으며 뽑은 이는 어디에 숨긴걸까?

아도라는 '좋은 엄마'가면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건강한 자기 아이를 병원에 입원 시켜 아픈 아이로 만든 후 땀을 뻘뻘 흘려가며 간호했고,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남들이 봐주기를 바랐다.

희생하고, 헌신하는, 이상적인 엄마 모습.

그것은 전부 죽은 엄마에게서 그녀가 기대한 모습이었다.
이미 바람이 통하게끔 구멍이 뚫려버린 풍선에 자기 만족이라는 기름을 콸콸 붓는다. 그 기름은 그 사람을 모조리 집어 삼키고 마침내는 종식시켜 버리고 만다.

엠마는 누가 봐도 엄지를 치켜 올릴 정도로 예쁘다.
그 미모로 친구들을 휘두르고, 남자들을 주무르고, 아! 자신의 친구를 남자에게 서적으로 팔아 넘겨도 여왕처럼 추대를 받는다. 과연 부족함 없어 보이는 예쁜 이 여자 아이를 통곡하게 만들 수 있는 이가 세상에 있을까?
엠마는 아도라에게 알약을 받았다. 하늘색의 우유도 받아 먹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아도라가 엠마의 상태를 확인하러 왔을 때, 그녀는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해주었다. 그래야 모두가 행복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도라는 그 약과 우유를 카밀에게도 주었다. 그것들은 말라리아 예방약, 산업용 관장약, 항발작 알약, 말에 쓰는 진정제 등이었다. 카밀은 자신의 몸을 그어야 편안함을 느꼈기 때문에 독약임을 알면서도 그것들을 삼켰고, 그녀보다 조금 영악하고 예민한 엠마는 약을 먹고 잠든 척을 했다. 착한 어머니 노릇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아이는 죽여버리는 아도라 때문에 그녀들은 서로 다른 길을 택한 듯 보이지만 결국은 두 사람 다 자신에게 깊은 상처를 낸다.
엄마에게 화는 커녕 투정 한 번 부리지 못한 카밀은 답답하고 화가 날 때면 자신의 몸 구석구석에 단어들을 각인 시킨다. (온 몸이 타듯이 따끔거려도 마음의 가시가 더 깊고 날카롭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엠마는 자신이 받아야 할 관심을 다른 사람이 받을 때 깊이 분노한다. 특히 자기보다 못생기고 나약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관심을 받으면 더욱 그랬다. 그래서- 엄마를 내버려둠으로 사랑받고자 했던 행동이 다른 사람을 죽이고 말았다.
카밀 또한 엠마의 등을 씻겨줄 때, 지나치게 과잉보호를 할까봐 스스로 절제 시켜야만 했다.

이 가족을 파멸로 이끈 저주의 근원은 어디라고 해야 옳을까. 가난과 학대의 대물림도 눈에 보이는 거라면 차라리 잡아서 돈으로 처리 해버리면 쉬운 일일텐데 말이다.

저자 길리언 플린은 <몸을 긋는 소녀>외 다른 작품에서도 이러한 가족의 소통 부재로 인한 안타까움을 잘 녹여내고 있다고 한다. 그녀와 우리는 범인을 잡았지만 풀어야 할 문제는 모두의 몫으로 남겨놓았다.

가정 폭력처럼 무서운 것이 서로를 향한 무관심이라는 것. 이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껴서 유감이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