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간단한 내용의 책이 어떻게 일본에서 드라마화 되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개인적으론 재미가 없었어요. 히가시노게이고의 팬이신가요? 그럼 아실거예요. 이 책엔 유가와 마나부 교수가 나옵니다. ('유가와 마나부 시리즈'는 '용의자 X의 헌신'을 포함함 추리 소설 모음집) 저는 유가와 마나부 이야기를 좋아해요. 그가 나오기만 하면 영영 풀리지 않을 것 같던 문제도 결국은 뚝딱 하고 풀려버리고 마는, 등장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런 경험을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이건 너무... 너무 심플한 내용이 아니었나 싶은데요.

 

 

줄거리

 



마시바 요시다카(이하 요시다카)는 자택에서 안타까운 모습으로 발견 됩니다. 그를 발견한 사람은 그와 내연 관계였던 와카야마 히로미(이하 히로미). 요시다카의 부인인 아야네는 삿포로에 있는 친정에 가 있는 상태였습니다. 참고로 아야네와 히로미는 스승과 제자 사이였어요.

어쩌다 스승의 남편과 부적절한 관계를 갖게 되었는지 시작부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요시다카는 여자를 '사랑'해서 만나는 게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아이를 낳아줄 '여자'를 원한 것 뿐이었죠. 결혼한 지 1년이 지났는데도 아야네에서 아이 소식이 없자 그는 그의 제자인 히로미에게 눈을 돌렸던 거예요.

아야네와 만나기 전, 그는 준코라는 여자와도 만났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 역시 버림을 받았죠.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요.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 슬픈 결말을 맺어요. 준코와 아야네는 친구 사이였는데요. 준코는 결단을 내리기 전, 아야네에게 독극물을 택배로 보냅니다. 왜, 무슨 이유에서?

한편, 수사팀은 요시다카의 사인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어 진척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때... 눈치 밥말아먹은 구사나기 형사가 아야네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껴요. 어쩔 수 없이 가오루는 천재라고 불리우는 유가와 마나부 교수를 찾아가 도움을 청합니다.

그는 요시다카가 죽기 전에 마신 커피에 집중해요. 그리고 그 안에 타졌을 독극물의 경로를 파고들지요. 여기서 조금 독특한 이야기 전개 방식이 펼쳐지는데요. 범인을 부인인 아야네로 상정해 놓고, 그녀가 어떻게 정수기를 이용하여 그의 목숨을 노릴 수 있었는가를 알아내기 위해 애를 씁니다. 이 과정을 두고 사람들은 모두 불가능한 일이라고 고개를 내젓는데,(저도 그랬었고요.) 하지만 결국 유가와 마나부는 그 트릭을 알아내는 데 성공합니다.

범행의 수법과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진범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부인 아야네? 내연관계였던 히로미? 그것도 아니면 요시다카가 전에 만났던 그 누군가?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세요. 그리고 책에서 그 결과를 확인해 보세요.

 

 

이 책에서 아쉬웠던 점

 



트릭의 불확실성이 너무 큽니다. 시간이 너무 길어요. 그래서 '이게 성공해서 요시다카가 죽은거예요.' 라는 말에 쉽게 납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도대체 요시다카에겐 무슨 매력이 있기에... 준코부터 아야네, 히로미까지. 궁금했는데 그의 매력이 설명된 바가 없고, 이미 죽은 자라 대사도 하나 없어 짐작을 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래도 명색이 주인공인데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안그래도 그의 사상에 반기를 오천만개는 들고 싶은데, 이해를 하는 데만도 무지막지한 상상력을 동원해야 해서 되게 피곤했어요.

형사 구사나기와 가오루. 구사나기는 위에 말했듯 피해자의 부인인 아야네에게 사랑에 빠져요. 말그대로 '이와중에'요. 그래서 유가와 마나부가 이렇다할 증거를 보여주어도 '그녀는 아니야. 어쨌든 아니야!'식의 거의 땡깡 비슷한 반론을 펼치기에 이르죠. 실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가오루 역시 아야네를 범인으로 정해 놓고 추리를 시작하긴 했지만, 왜 그녀가 제 1순위가 되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는 알려주지 않아 읽는 내내 의문이 들었습니다. 유가와 마나부가 아니었다면 이 책은... 저에게 나쁜 쪽으로 희대의 작품으로 남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 책이 좋았던 점

 



결말이 알고 싶어 빠져든다기보다는 아무래도 작가의 글솜씨, 문체(번역) 자체가 유려하게 흘러가는 편이라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는 뜻이지만, 잘 읽힙니다. 어딘가 이동하는 중에 추리소설 한 권 읽기 원하신다면 이 책을 추천 드려요.

 

 

제목의 의미

 



책을 다 읽은 후 성녀는 누구인가 싶었어요. 두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요. 첫째, 요시다카의 질긴 아기 타령이 마침내 끝이 나잖아요. 저는 그 어리숙한 생각을 끝내준 누군가가 성녀라고 생각했습니다. 여자를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아기 낳는 기계라고 보는 그 마음은 가히 몰상식하다 라고 표현을 해도 모자르죠. 그 마음을 강하게 비난한 자일거라고 생각했어요. 즉, 독극물을 택배로 보낸 준코 혹은 히로미를 그에게서 구해낸 아야네를 의미한 게 아니었을까요.

저자가 이토록 거창한 제목을 붙인 이유는 요시다카의 가치관 속에서 그녀들을 구해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함 아닌가 싶었습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표지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구제의 나날이 끝나는 순간 단죄는 시작 되리라'. 아야네는 언제든지 요시다카를 죽일 수 있었어요. 그녀가 그를 죽이지 않고 기회를 여러 번 주었던 나날이 구제로 표현이 되었고, 단죄는 마침내 실행을 했음을 뜻하는 말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전작에 비해서

 



별로예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원래 놀라운 흡인력이 특징적인 작가라 이제까지의 저는 그의 모든 페이지를 넘긴 후 놓여진 책을 보고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얼얼함을 감당하려 애써왔어요. 그런데 이 책은 그러고 말고 자시고 할 것이 없었네요. 추리소설인데 트릭이 허술 했다는 게 가장 실망스러웠어요.





흙탕물 다 튀겨놓고 이제와 딴소리냐고 하실 수도 있지만... 남에겐 최악이었어도 당신에겐 의미 있는 작품이 될 지도 모르니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한 번 읽어보세요. 저도 훗날 다시 읽었을 땐, 책을 읽는 장소와 감정 그리고 컨디션에 따라 다른 느낌을 받을 수도 있어요.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고 있기 때문인지 몰라도 다음은 그만의 휴머니즘이 돋보이는 작품을 읽고 싶네요. 유가와 마나부 선생의 뛰어난 추리가 돋보이는 소설은 시간 간격을 좀 두고 후에 읽을 생각이에요. 음, 이런 날씨엔 어떤 책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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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작품을 또 읽고 말았습니다. 그녀 덕분에 '심리스릴러'라는 장르에 흥미가 생겼거든요. 제 글을 보아오신 분들은 저자의 이름이 낯설지 않으실거예요.

 

 

[책] B. A. 패리스 - 비하인드도어 리뷰, 가스라이팅으로 버무려진 자극적인 심리스릴러 소설

제목은 생소할 수 있어도 이 표지는 익숙한 분들 많으실텐데요. 요즘 광고 많이 하잖아요, SNS에서. 저도 광고로 이 책을 처음 알았어요. 반은 속는 셈 치고 읽었는데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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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B. A. 패리스 - 테라피스트 리뷰, 죄책감은 무서운 감정이에요

그녀의 <비하인드도어>를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다른 작품도 읽어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비하인드도어가 더 재밌었네요. 이 책의 묘미는 후반부에 모두 몰려있는 것 같아요. '누가 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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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도 이미 유명한 작품들인데 제가 리뷰한 바 있거든요. 아직 못 보셨다면, 참고 해주시길 바라고요. 오늘은, 브레이크다운입니다. 역시나 이번에도 가스라이팅이 난무해요. 특히 이번에는 제가 범인을 맞추지 못 할 정도로 주인공인 캐시 만큼이나 맘고생을 많이 했는데요. 심리적으로 힘들더라고요. 과연... 어떤 내용이었을까요? 소개해볼게요. 참고로 <스포주의>입니다.

줄거리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날, 캐시는 숲속을 관통해야 하는 블랙워터라는 길을 선택해요. 남편 매튜가 절대 그 길로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요. 그 결과, 캐시는 그 곳에서 웬 여자와 눈이 마주치게 됩니다. 멈춘 차 안에서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던 여자... 누구였을까요?

비가 너무 많이 내려 당시에는 알지 못 했어요. 하지만 곧 뉴스 보도를 통해 알게 됩니다. 그 여자는 자신과 함께 점심을 먹은 적이 있는 제인이었다는 사실을요.

캐시는 죄책감에 휩싸입니다. 당시 무언가 이상했는데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고, 집에 돌아가 경찰에 신고해야지 해놓고도 잊어버렸어요, 경찰이 증인을 찾을 때도 뒤늦게 나섰고요. 그래서 그녀는 심리적 압박에 시달려요.

게다가 범인은 아직 잡히지 않은 상태인데, 타살이었대요. 그가 캐시의 차 번호를 외웠으면 어쩌죠? 그럼 자연히 집 전화번호도 알 수 있게 되는데요. 그 이후 캐시네 집에는 침묵의 전화가 매일 걸려옵니다.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면 상대는 아무 말을 하지 않는거예요.

캐시의 어머니는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셨어요. 어머니의 병수발을 해 온 캐시는 그 병의 무서움을 알기 때문에 자신에게도 그런 일이 생길까 몹시 걱정하는데요. 그런데 실제로 요즘, 자꾸만 의심스러운 일이 생깁니다. 사람들과의 약속을, 기계 사용법을 잊어버려요. 구매한 물건을 사고 또 사서 주위 사람을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하고요.

분명히 놓여있던 칼이 다시 돌아와보니 없고, 외출하고 와 보니 컵의 위치가 바뀌어 있고, 조용한 집 안에서 나는 기척을 기묘하게도 그녀만 겪어요. 그래서 그녀는 범인이 자신을 노리고 있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제가요, 캐시만큼이나 맘고생을 했다고 했었잖아요? 그런데 상황이 그래요. 캐시 입장에서는 약속을 하지 않았는데 성립이 되어 있고 느닷없이 기계가 말을 듣지 않고 뜬금없는 물건들이 도착해 있는거예요. 하지만 이렇다할 이유는 딱히 모르겠으니 내 잘못인 것만 같고...)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 레이철은 그녀가 이렇게 힘들어 할 때마다 위로를 해줍니다. 어느 날은 두 사람이 점심을 함께 먹으려 하는데 화장실에 다녀온 레이철이 급히 가 볼 데가 있다는거예요. 그리고 그녀가 나가자마자 웬 학생이 다가와 '제 친구가 당신의 친구 핸드폰을 훔쳤어요, 미안해요.' 라며 사과하죠.

핸드폰 속에는 캐시의 남편인 매튜와 레이철의 애정이 가득 담겨 있었는데요. 이제까지 캐시를 곤궁에 빠뜨렸던 모든 상황의 작전도 함께 적혀 있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예요.



 

 

캐시는 분노합니다. 창고에 칼이 하나 있었는데, 언론에 보도 된 실제 사건 현장에 사용된 칼이었어요. 그 칼은 왜 그 집 창고에 있는걸까요? 매튜가 범인이어서? 매튜와 연인인 레이철이 범인이어서? 캐시는 두 사람에게 복수를 하려고 레이철의 행주로 칼을 감싸고, 매튜가 범행 당시 집에 있었기는 하나 정말 그랬는지는 모르겠다는 말을 경찰에게 늘어놔요.

범인이요? 레이철이었습니다. 저만큼이나 캐시도 놀라요. 그저 복수하고 싶었을 뿐인데, 정말 그녀가 그랬을거라고는 생각지 못 했었거든요. 레이철은 캐시의 부모님이 제 2의 딸이라고 했을 정도로 그녀를 예뻐했는데, 자신에게는 유산을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에 화가나 캐시의 돈을 빼앗기로 매튜와 모의한 거예요. 그런데 매튜와 자신의 관계를 제인이 알게 되고, 그 사실을 캐시에게 말하겠다는 그녀를 죽이게 된... 그런 연유였던거죠.

참고로 매일 집에 전화를 걸어오던 사람은 매튜였습니다. 레이철 못지 않게 매튜도 어마어마해요. 그는 캐시와 한 집에 살았던 사람이에요. 캐시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동시에 가하는 가스라이팅이, 돌이켜보니 너무나 자연스럽고 소름끼쳐 혐오감이 들더라고요.


주인공, 캐시



 

그녀는 끝까지 불쌍하기만 한 건 아니었습니다. 문자를 보고 난 뒤 이제까지 자신의 생각과 어긋났던 사람을 모두 다시 찾아가요. 그리고 묻습니다. 내가 정말 그렇게 말 했었느냐고. '아니? 네 친구가 그러던데?', '남편이 그러던데요?' 사람들은 대답하죠. 나도 엄마처럼 치매에 걸린 건 아닐까 스스로를 의심하던 캐시. 그녀는 정상이었습니다. 망상증 환자도 아니었어요.

그리고 마침내 그들에게 복수를 하죠.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상황을 연출하고 제 3자가 그들을 이상한 사람인 것처럼 바라보게끔 만드는 수법. 그러다 운 좋게 제인 사건의 범인이 밝혀진거고요.

만일 내가 그 핸드폰을 받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두 사람이 어떻게 나를 배신했는지, 지금으로서는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슬픔에 빠져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못하게 될까봐 두렵다. 점박이 암소(가게 이름)에서 수화기를 통해 매튜의 목소리를 듣고 모든 속임수의 실타래가 풀리던 순간, 결심한 것이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편과 가장 친한 친구 두 사람을 동시에 잃어 속상한 마음이 컸을텐데 분노를 동력 삼아 진정한 복수란 이런것이다, 본때를 보여준 게 아주 멋져요.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으세요?

 

 

레이철



 

처음부터 제인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을 거예요. 이제까지의 일들이 모두 수포로 돌아갈까봐 그랬겠죠. 캐시의 돈을 뺏어야 하는데 매튜와의 관계가 들켜버리면 안 되니까 그녀의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엄연한 범죄를 두둔할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요.

아빠가 레이철에게 유산을 남기지 않아 얼마나 소외된 기분을 느꼈을지, 내가 이해했어야 했다. 어떻게 그렇게 무심할 수 있었을까?


부모님을 여의고 캐시의 부모님에게 사랑을 받고 자란 레이철. 제 2의 딸이라는 소리를 듣고 자란 그녀도 그들을 진짜 부모처럼 의지하고 따랐던걸까요? 진한 배신감으로 인해 일어난 비극이에요. 어떻게 나에게는 유산을 남기지 않을 수 있는지 레이철은 이해할 수가 없었대요.

사실 캐시는 레이철의 마흔 살 생일 선물로 집을 사 두었어요. 생일에 맞춰 주려고 했던 거지요. '선물을 조금 더 일찍 주어야 했던 걸까?' 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레이철은 착한 친구를 두었었답니다.



 

 

남편 매튜는 레이철에게 끌려다닌 인상을 남겼기 때문에 따로 언급을 하지는 않을래요. 저는 처음엔 매튜가 범인인 줄 알았어요. 캐시가 집에서 이상한 일들을 겪을 때마다 그녀를 위로할 뿐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는 않았거든요.

그러다 나중에는 캐시가 범인이 아닐까도 생각 했었습니다. 건망증이 너무 심해 제인을 죽인 이유를 무의식 중에 잊어버린 건 아닐까 싶었어요. 친구 존이 범인인 것 같기도, 범인은 따로 있는 것 같기도 했는데, 제 머릿 속 용의자 선상에 레이철은 없었기에 결과가 더욱 충격으로 다가왔었습니다.



 

 

저는 이번에 깜빡 속아 넘어갔어요. 여러분은 어떠셨어요? 초반에 눈치를 채버려서 책 자체가 재미 없었다는 분도 계셨는데, 저는 그 분이 눈치가 참 빠른 분인 것 같아요.

이전에 읽었던 저자의 책들과 비교하면 흡인력은 역시나 마지막 100장 정도에 몰빵이 되어있었던 것 같고요. 소재는 역시나 참신했습니다. B. A. 패리스는 일상 생활에서 벌어지는 막장 스토리를 너무나 잘 풀어 써요. 어딘가에서는 정말 일어날 것만 같은 일들이에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이은해 사건이 생각 났습니다. 내가 믿고 소중히 여기는 누군가가 나를 가스라이팅 하고 있다면. 언젠가부터는 그 사실을 내가 눈치를 채겠지만, 그 때 즈음엔 이미 내가 나보다 그 사람을 더 사랑하고 있어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가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임을 깨닫게 되지요. 심리를 조작해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것은 아니, 사람의 기능을 망가뜨려 놓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을 가지고 놀겠다는 말과 같은데 이건 개중에서도 아주 사악한 짓 같아요.



 

 

의사마저도 두 사람의 계략에 놀아나 그녀가 정신증 환자인 줄 알고 약을 처방해 주었습니다. 만약 내가 캐시의 입장이라면, 이 세상에 나 말고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고 있다면...

내가 나를 끝까지 믿어줄 수 있을까요? 세뇌가 얼마나 무서운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B. A. 패리스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껴요. 내가 내 말을 잘 들어줘야지. 나를 더 많이 사랑해줘야지, 하고요. 이번에도 역시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글을 참 맛깔나게 쓰는 이 작가. 피 한 방울 안 나오는데 어쩜 그렇게 사람을 피 말리게 하는지 몰라요. 리뷰는 이만 마칠게요. 제 글을 읽고 궁금한 점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댓글 남겨주세요. 읽고 내려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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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하라는 미즈타니를 '신'이라고 부릅니다. 사토하라 뿐만이 아니에요. 반에 있는 모든 아이들이 미즈타니를 신라고 불렀는데요. 왜일까요?

미즈타니는 우리가 난관에 봉착했을 때 해결책을 주어 무사히 지나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들먹거리지는 않아요. 그런데요, 재미있는 사실 하나 알려드릴까요? 그 신이라는 미즈타니하고 사토하라는요... 초등학교 5학년이에요!


5학년이 추리소설의 주인공이라고?!





그래도 저자는 어거지를 부리지는 않습니다. 코난처럼 괴상한 약을 먹고 현탐정보다 사건을 더 잘 해결하는 그런 비현실적인 요소를 넣진 않았어요. 그들은 정말 초등학교 5학년 같습니다. 신이라고 불리우는 미즈타니만 또래보다 조금 더 지혜로운 느낌이랄까요? 그렇다면 과연 신은 어떤 사건들을 해결했을까... 궁금하지 않으세요?

1부 : 봄을 만드는 법



어느 날, 사토하라는 실수로 할아버지의 벚꽃절임 통을 깨뜨려요. 그건 돌아가신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할아버지가 무척 아끼는 것이었는데 말이예요. 사토하라는 미즈타니를 찾아갑니다.

그는 솔직하게 말하거나 다시 만드는 등의 방법이 있다며 보기를 알려주고 사토하라에게 선택권을 줘요. 그래서 사토하라는 할머니를 떠올리며 새로이 만들기로 결심하는데요. 하지만 반전은 없었어요, 결국 할아버지께 들키고 맙니다. 제법 비슷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그건 벚꽃이 아니라 아몬드꽃이었거든요. 꽃 모양이 닮아 신이 실수한거예요. 그래도 결과는 그닥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추억을 떠올리는 듯한 모습으로 '네가 기억하고 있구나'라고 말씀하셨어요. 자신은 할머니의 레시피를 잊어버렸다며 종종 속상해하곤 하셨거든요. 결국 들키긴 했지만, 다시 만들길 잘한 것 같죠?

벚꽃절임이라는 음식이 계속 나와 이미지와 향을 떠올릴 수 밖에 없는 향긋한 에피소드였어요. 읽는 내내 향이 떠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보셨다시피 신은 꽃을 잘못 알아보는 실수를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토하라는 그를 존경하고, 좋아하고, 함께 다니는데요. 흐물흐물, 단단하지 않은 그 마음이 저는 오히려 현실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우정은 계속됩니다.

2부 : 여름의 '자유' 연구



가와카미는 중독에 빠진 아빠를 게임 가게에서 퇴출 당하도록 도와달라는 요청을 해요. 미즈타니는 그녀의 부탁 뒤에 숨은 진짜 의도를 눈치채는데요. 그녀는 쓰레기장 같은 집에서 학대를 당하고 있는 아이였거든요.

그녀가 원하는대로 아빠가 그 가게에서 퇴출을 당하면요. 집 뒷 문을 이용해 갈 수 있는 게임 가게에 가게 될 것이었어요. 그래서 그가 지나는 길의 계단 하나를 일부러 미리 없애놓고, 남몰래 죽이려는 속셈이었던 거지요.

그녀는 그림을 몹시 잘 그렸어요. 그 자리에 자신이 그린 계단 그림을 하나 채워넣으려고 했던겁니다. 신은 말립니다. 네가 만일 그 일에 네 그림을 사용한다면, 너는 두 번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될 거라면서요.

하지만 신은 그녀의 생각 자체를 비난하진 않아요. 그런 사람은 죽어도 마땅하다고 말합니다. 반면, 사토하라는 정말로 평범한 초등학생인데요. 가만히 듣고만 있던 그가 그런 말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 보호소 같은 곳에 가 있으면 어떻겠냐는 현실적인 제안을 합니다. 하지만 가와카미는 보호소에 가지 않고, 학교에도 나오지 않고 종적을 감춰요. 그리고 학교에는 그녀가 죽었다는 소문이 돌지요.

이것으로 이 에피소드는 끝이 나는데요. 후에 그녀의 이름이 또 한 번 나옵니다. 이 2부에서 신의 공감능력이 두드러졌다고 생각해요. 만약 어른이었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5학년이잖아요?

3부 : 작전회의는 가을의 비밀



이 에피소드에서는 신의 지혜로움과 배려심이 드러납니다. 그는 가을 운동회 기마전에서 작전을 짜는 역할을 맡게 돼요. 머리에 땜빵이 있는 친구가 수비만을 하도록, 괜히 공격을 하러 갔다가 친구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지 않도록 그에게 유리한 작전을 짜주죠.

그가 속한 팀이 승리를 하게 되고, 작전을 짠 미즈타니에게 반 친구들은 또 한 번 '신'이라고 말하는데요. 독자들은 분명 그 친구들보다 더 놀랐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끝까지 따뜻한 마음을 감춰요. 그 모습이 참 인상적이더군요. 개인적으로 이 3부에서 저는 미즈타니를 '신'이라고 부르고 싶었습니다.

4부 : 겨울에 진실은 전하지 않는다



2부에서 사라진 가와카미 있죠? 그녀가 학교에 나오지 않자 아이들은 괴담을 하나 만들어 내요. 그녀의 이름이 나오는, 그저 이름만이 나오는 한 공포 책을 선정해 '그 책을 다 읽으면 저주를 받는다'라는 소문을 내고 다니기 시작한거예요.

한 거들먹거리는 친구가 신에게 찾아왔어요. 도서관에서 랜덤으로 책 세 권을 뽑았는데 한 권에는 내 이름이, 나머지 책들에는 조심하라는 둥의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고 네 지혜를 좀 빌려달라면서 말이죠.

누가 그런걸까요? 전말은 이래요. 사토하라는 친구인 가와카미가 사라졌는데 그런 괴담을 만들어 웃고 떠드는 친구들이 싫었어요. 그래서 그 친구에게 일명 본때를 보여준거예요.

이 4부에서는 사토하라가 범인이었던만큼 탐정 역할을 맡은 미즈타니에게 모든 것을 다 말하지는 않는데요. 그럼으로 인해 미즈타니가 문제를 다 풀고나서 서운하다, 배신감을 느꼈다는 감정을 토로하는 게 뭇 초등학생의 감정 싸움을 보는 것 같아 저는 마냥 귀엽고 흐뭇했습니다. 이 때쯤 되니 참으로 순수한 소설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에필로그 : 봄방학의 정답 공개



전학간 이다라는 이름의 친구가 찾아와요. 네 살 배기 동생이 없어졌다면서요. 동생은 평소에 '미아가 되면 집으로 돌아와라' 라는 말을 기억하고 호텔에 가 있었는데, 그 이유가 왜냐하면... 가족이 이사 중에 호텔에 잠시 머물렀었거든요. 네 살 배기 아기의 눈에는 호텔이 이사간 집인 줄 알았던거예요. 참으로 귀여운 이야기죠.






사실 책장을 덮고 조금 심난했어요. 신이 신같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들더군요. 내가 너무 찌들어서, 그들의 섬세하고 복잡다단한 감정선을 눈치채지 못했거나 알면서도 귀찮아서 지나친 건 아닐까... 하고요. 분명 초등학생의 하루하루에서 반짝거리는 무언가를 얻어갈 수 있었을텐데. 저는 실패한 것 같아요.

그런 생각도 듭니다. 이 책을 진지하게 읽고, 마음 깊이 느끼는 바가 있는 사람을 만나보고 싶어요. 그리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좀 들어보고 싶네요.

초등학생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냐, 는 질문에는 반반이에요. 추리소설다운 시원한 맛을 느끼지 못할 것 같고, 조금 밍숭맹숭해서요. 제 기준엔 너어무 순수하다고나 할까요? 잔인한 탐정소설을 읽기 어려워 하시는 분들, 입문용으로 맛보기 소설이 필요하시다면 이 책을 추천드려 볼게요. 상당히 순한 맛입니다. 그럼 오늘의 리뷰는 여기서 마칠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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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라기 게이치, 그는 사형수입니다. 한 아내와 남편 그리고 두 살배기 아기를 무참히 짓밟았단 이유로 현장에서 체포되었어요. 그리고 그 끔찍한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가 한 명 있었는데요. 이름은 이오 요시코, 아기의 할머니였습니다. 그녀는 조발성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었지요.

가부라기 게이치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게요. 그는... 탈옥을 합니다. 그래서 그의 목에 어마어마한 현상금이 걸려요. 잘못된 제보로 인해 수사가 오히려 진척되지 않을 정도로요. 그는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고 있는걸까요? 왜 잡히지 않는거죠?

그는 수염, 점 위치, 헤어스타일 등을 교묘하게 바꿔 원래의 인상을 탈피하고 왼손잡이라는 생활습관도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매사에 조심을 했습니다. 무려 직업을 갖기도 하고요. 연애감정을 품기도 했어요. 우습죠? 탈옥한 사형수가 지가 뭔데, 남의 인생은 짓밟아놓고?

개호사, 공사 현장 작업원, 여관 직원, 재택 기자 등 그는 다양한 직종에서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주인공 가부라기 게이치의 입장에서 설명이 되지 않아요. 그를 만난 사람들이 그에 대해 이야기 하는 걸로 엮여져 있습니다. 감히 그에게 발언권도 주지 않겠다는 저자의 의도였을까요? 객관적인 의도에서 바라봐달라는 뜻이었을까요?

조금 의아하게도요. 그를 만나 겪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바보 아니야? 아무리 소설이라도 그런 흉악한 범죄자가 사람들에게 평판이 좋아?' 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어요. 저도 그랬거든요.

개인적으로 저는 준지라는 사람을 만났을 때 제 마음에 진심으로 의문이 드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 혹시 진범 아닌 거 아니야?'




라고요. 사실 읽다보면 이러한 종류의 소설을 많이 읽은 사람은 금방 눈치 챕니다. 제목의 '정체'의 '정체'도 알게 되지요. 그래서 반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읽었어요. 그런데... 반전은 없더군요. 여기서부터 스포주의 입니다.

가부라기 게이치는 정말 범인이 아니었어요. 사건이 일어났던 날 당시로 함께 거슬러 올라가 볼게요.

그는, 18살이었던 그는, 길을 걷다가 웬 남자와 마주치게 되는데요. 낯선 사람을 보고 씨익 웃고 지나가던 그 사람, 스프링처럼 튀면서 앞으로 나아가던 그 사람, 가부라기 게이치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죗값을 치르지 않은 그 사람을 그는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어야 했어요. 곧이어 들리던 여자의 비명소리와 그를 연관지어 생각했어야 했고요.

소리가 난 곳으로 들어가보니 그 곳엔 한 아내와 남편 그리고 두 살배기 아기가 처참한 모습으로 피칠갑을 하고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놀랍게도 숨이 붙어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어요. 바로 아기의 할머니였죠. 그녀는 아들의 숨이 아직 붙어있다는 걸 확인하고 몸에 있는 칼을 빼내려고 했습니다. 그럼 더 출혈이 심해지기 때문에 그는 그녀를 말렸고요. 그리고, 그럼으로 인해 그의 얼굴과 몸에는 피해자들의 피가, 칼에는 지문이 묻게 된 점이 매우 애석하고도 안타까운 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상황을 보자마자 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를 당장 체포해요. 황당한가요? 할머니는 진범의 얼굴을 보았고, 진위여부를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그녀에게 증언을 부탁하면 되겠다고요?

그녀는요, 조발성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었는데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는거예요. 그녀가 경찰에게 남긴 말은 단 하나. '진범은 검은 옷을 입었고...' 그렇게 가부라기 게이치는 구치소에 수감이 됩니다.


너무 억울하잖아요. 그래서 탈옥한거예요. 내가 한 짓이 아닌데, 어마어마한 죗값을 내가 치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아무리 상황이 그렇다해도, 수사를 하다보면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지는 거 아닌가요?

몇 년 전 화성연쇄사건의 진범이 옛날에 자신이 한 짓을 토로하면서 억울하게 수감되어 있던 피해자가 몇 십년 만에 풀려나는 희대의 가슴 아픈 사건이 있었지요. 그는 왜 진범이 아니었는데도 죄를 뒤집어 쓰고 복역을 했던걸까요?


누가 뒤집어 씌운걸까요?




가부라기 게이치의 변호사는 죄를 인정해서 감형을 꾀하자는 제안을 하고, 여론은 미친듯이 뜨겁기만 합니다. 보호시설에서 생활을 하고 있던 그는 아무도 편이 되어주지 않았어요. 유일한 목격자인 할머니마저 경찰의 등쌀에 밀려 그를 진범으로 지목하게 됐고요.

그가 탈옥을 하고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고 했잖습니까? 그 중엔 개호사도 있었는데요. 개호시설에서 일을 하게 돼요. 그 시설에는... 이오 요시코가 있었습니다. 할머니요. 유일한 목격자. 가부라기 게이치가 일부러 노리고 들어간거죠.


왜? 복수 하려고?




아뇨. 제발 기억을 떠올려달라고, 매일밤 그녀의 손을 붙들고 간청과 더불어 도움을 주려는 노력을 합니다. 물론 자신의 정체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가면 뒤에 철저히 가린채로요. 그녀는 그 당시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너무 괴롭다며 그의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는 마지막 화자, (에피소드마다 화자가 달라집니다.) 마이라는 여자의 입을 통해 전해져요. 그녀는 그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그가 탈옥수와 비슷한 점이 너무 많다는 걸 눈치 채곤 관리자에게 이야기 한 후 경찰이 오게 만들죠. 가부라기 게이치는 패닉상태가 되어 마이를 인질로 잡고 자기 이야기를 좀 들어달라고 절규에 가까운 부탁을 합니다.

슬프게도 그는... 그 자리에서 죽어요. 경찰이 쏜 총에 맞아서요.





이 책의 리뷰를 보면 대다수가 '마음이 아프다' 라고 말씀들을 하세요. 저 또한 그랬습니다. 비단 소설일 뿐이지만, 몇 년 전에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일로 억울한 옥중생활을 하신 분의 이야기가 전파를 탔었잖아요. 그 분이 생각나 마음이 아프더군요.

언젠가 한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이춘재의 죄를 뒤집어쓰고 복역을 한 피해자가 그 당시를 떠올리면 어떻냐는 질문에 구토를 하러 갔다고요. 몇 십 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그 때를 떠올리기만 하는 것으로도 신체적으로 강한 거부 반응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그 당시에, 피해자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는 소설 속에서도 나오지 않습니다.





무고죄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인간의 인권을 법이라는 잣대로 마음대로 조이고 끊는 제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어요. 무거운 주제이므로 일단은 각성하는 상태에서 마무리를 지었지만요. 이 책, '정체'를 통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데 의의를 둡니다.

책이 상당히 두껍습니다. 하지만 흡인력 있는 저자의 글재주로 책장은 휘리릭 넘어가요. (가끔 번역에 오탈이 발견되어 멈칫하는 순간이 여러 번 있긴 했었습니다만) 저는 무고죄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분께 이 책을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재미로 읽기를 원하시는 분께는 '고구마 결말'이니 마음의 각오 단단히 하시라는 말씀 드리고 싶고요.

이 작가는 이 책으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인사를 건넸다고 합니다. 나중에 서점에서 그의 이름을 보았을 때, 외면하고 싶지는 않은 첫 만남이었어요. 여러분은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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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비하인드도어>를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다른 작품도 읽어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비하인드도어가 더 재밌었네요. 이 책의 묘미는 후반부에 모두 몰려있는 것 같아요. '누가 범인이지?' 의심하고 궁금해하느라 내내 기가 빨렸는데, 진상이 밝혀지고 그 사람이 실은 어떤 인간이었는지에 대해 서술하는 부분은 그야말로 짜릿 그 자체. 내용 소개해볼게요.

 

테라피스트 내용(스포주의)



앨리스와 레오는 짧은 기간, 그것도 주말 연애를 마치고 결혼에 골인합니다. 호화로운 주택에 함께 살게 돼요. 이 주택단지에는 다른 부부들도 살고 있는데요. 탐신네, 이브네, 마리아네, 로나 아주머니네... 이웃들의 눈길이 곱지만은 않네요? 텃세를 부리는걸까요?

앨리스는 알게 돼요. 이 집에서 누군가 죽었음을. 그것도 타의에 의해서. 죽은 사람은 니나라는 여자이고, 범인은 올리브라는 남자로 둘은 사이 좋은 부부였다는데요.

니나가 바람을 폈대요. 그리고 그 사실을 그녀는 이웃인 로나 아주머니에게 털어놓았다고 해요. 그 다음날 그녀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 돼요. 로나 아주머니는 진술했어요. 니나가 죽기 전, 올리브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 걸 봤다고. 하지만 올리브는 그 날 집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공원에 앉아 있었다고 경찰에 진술했어요.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걸까요?

사건은 올리브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종결이 되버리고 맙니다. 그가 정말 진범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이제 가릴수가 없어요. 이웃들은 찜찜하지만 한편으론 안심하며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합니다.

올리브가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고 호소할 때 이웃들은 불안했거든요. 니나가 바람을 폈다고 했죠? 올리브가 아니라면 바람을 피운 사람이 죽였을 가능성이 크겠죠. 그런데 그러려면 그 자가 누구인지 이웃들을 의심해봐야 하고, 그 중엔 내 남편도 속해있기 때문에 내 남편도 의심을 해봐야 해요. 그리고 만일 바람 피운 상대가 범인이 아니라면, 그 사람의 와이프가 니나를 죽일수도 있는거예요. 이러한 가능성들이 그들의 숨통을 조였던 모양입니다. 올리브가 사건을 끝내주자 이웃들은 더는 파헤치려 하지 않고 일상으로 돌아가요.

 

앨리스의 혼란


앨리스는 이웃들과 친하게 지내기 위해 집들이 파티를 엽니다. 그런데 그 날, 웬 남자가 나타나요. '누가 아직 안 온걸까?' 어림짐작 하던 앨리스는 그 자가 '팀'이라고 확정을 지어버려요. 그는 자신이 누구라고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파티가 끝나고야 알았어요. 팀이 파티에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럼 그 남자는 누구였을까요? 그는 앨리스가 집에 혼자 있을 때 자신이 죽은 니나 사건을 재조사하는 사립탐정이라고 소개하러 오는데요. 앨리스는 이 니나 사건을 그냥 흘려들을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죽은 자신의 언니 이름이 니나였거든요. 그리고 언니를 그렇게 만든 사람이 자기라는 죄책감을 평생 갖고 살고 있었고요. 판결에서마저 무죄를 받아 벌을 받을 기회마저 빼앗긴 앨리스에요. 앨리스는 옛날부터 '니나'라는 이름만 들으면 집착 수준으로 그 사람을 들여다보는 습관이 있었어요.

사립탐정 즉, 토머스는 자신이 올리브 누나의 부탁을 받아 움직이는거라고 얘기해요. 올리브의 누나는 현재 아파서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이며, 자신의 동생은 무죄이니 진실을 밝혀달라고 부탁했는가봐요.






앨리스는 당시 자신의 남편 레오를 의심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 집에 커다란 비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레오가 자신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신뢰가 불신으로 변한 상태에서, '그가 니나를 죽이고 범인이 범행현장에 다시 오듯 돌아온 건 아닐까.' 퍼즐을 맞춰보는 중이었죠.

남편에 대한 의심을 키우는 증거들은 속속들이 등장합니다. 일례를 얘기하자면 여권. 여권을 확인하니 그 안의 이름은 앨리스가 알고 있는 이름이 아니었어요. 여권 속 이름으로 인터넷에 검색을 하니 그가 실은 감옥 생활을 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요. 다른 집 다 놔두고 왜 꼭 이 집에 살려는 고집을 부렸는지, 왜 아내인 내게 이름을 거짓말 했는지... 레오를 향한 앨리스의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합니다.

비슷한 시간, 이웃사람들은 여전히 앨리스를 이해하지 못해요. 그나마 친한 사람이었던 이브는 앨리스를 이해하는 듯 보였지만 책의 후반부에 탐신이 "당신은 망상증 환자예요!" 라고 말할 때 평소와는 달리 이브가 탐신을 제지하지 않죠. 마치 어느정도는 그 말에 동조한다는 듯이요.

앨리스는 우리 집에 웬 남자가 왔었고, 그 남자는 사립탐정이며, 올리브 누나의 부탁을 받아 사건을 재조사 하고 있다는 얘기를 사람들에게 거듭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왜 끝난 일을 다시 화두에 올리느냐며 그녀를 못마땅해했죠. 특히 탐신이요. 그녀는 폭발해요. 당신은 우리 모두를 의심하고 있고, 우리는 당신이 말한 그 남자를 보지 못했다. 이제 좀 그만하라고 말이예요.

생각해보면요... 토머스는 일주일에 한 번씩 앨리스네 집에 왔거든요. 그런데 이웃들은 그를 본 적이 한 번도 없대요. 어떻게 된 일일까요?

 

반전


토머스는 로나 아주머니의 아들이었어요. 부모를 폭행하는 못된 아들, 실명은 존이었죠. 그리고 니나 사건의 범인도 그였습니다. 이웃들이 이제껏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이유는 로나 아주머니네서 앨리스 집이 매우 가깝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었어요.

 

"올리브는 누나가 없어요!"


토머스는 올리브 누나의 부탁을 받아 조사하고 있는거라고 했는데. 여느때처럼 그와 나란히 커피를 마시고 있다가 탐신에게 받은 문자가 촉발점이 되어 앨리스는 떨기 시작해요. 그리고 올리브에게 정말 누나가 없는지 확인을 해달라고 레오에게 보낸 문자의 답장을 토머스가 목격한 순간, 그의 본모습이 드러납니다.

그는 앨리스를 묶고 그녀의 머리를 잘라요. 그는 다른 사람의 심리를 조종하고 이용하는데 기쁨을 느끼는 성격장애자였어요. 로나 아주머니는 뒤에서 황망히 그를 바라만 보는데요. 폭주기관차인 아들을 말릴 힘이 없어서요. 그 순간 로나 아주머니의 남편인 에드워드 아저씨가 충격으로 돌아가세요. 앨리스와 로나 아주머니는 용기를 내서 토머스를 쓰러뜨리고, 무차별적으로 타격을 가해 그에게 벗어나요.

앰뷸런스 안에서 앨리스와 로나 아주머니가 나누는 대화가 인상적이에요.

 

"아주머니가 제 목숨을 구했어요. 그게 아주머니가 한 일이에요. 아주머니가 제 목숨을 살렸어요." 그리고 몸을 내밀어 아주머니에게 키스했다. "고마워요." 그것으로 충분하지는 않았으리라. 하지만 자신의 아들을 죽인 엄마에게, 잘 알지도 못하는 남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모자를 하나로 묶고 있던 탯줄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도록 그토록 잔인하게 잘라버린 엄마에게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때 아주머니가 갑자기 기운이 나는 듯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내가 댁의 목숨을 구했다면, 날 위해 한 가지만 해줄래요?" 아주머니가 물었다. "그리고 우리 바깥양반을 위해. 바깥양반도 그걸 원할 거예요." "물론이죠, 뭐든지요." "살아요."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당신 몫의 인생을 살아요. 지난 20년 동안 과거 속에서 살았잖아요. 이제 온전한 삶이 주어졌으니 죄책감 때문에 인생을 낭비하지 마요. 인간은 누구나 실수하는 법이니까."


'니나' 에서 이제 그만 벗어나라고요. 죄책감으로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고요. 물론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치러야합니다. 하지만 앨리스의 경우는 사고였어요.

이런 말도 나옵니다. '법원이 나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무죄를 선고하면서 나는 처벌받을 권리를 빼앗겼고 그때부터 스스로를 벌해왔다.' 고... 앨리스가 잡은 운전대의 차 안에 사랑하는 언니와 엄마가 있었고 모두에게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났던 것 뿐...

 

그래서 그런거였다. 그가 옥살이를 했다는 걸 알았을 때 용서하지 못한 건 그의 범죄 이력이 아니라 질투 때문이었다. 나는 과거에 발이 묶여 있는데, 그는 자신이 저지른 짓을 속죄하고 새인생을 살 수 있었다는 사실이 샘났다. 안 그래도 그가 니나에 대해 말해주지 않아서 당황하고 있던 차에 혼란이 더욱 심해졌고, 그래서 신뢰해도 될 것 같은 그 사람에게, 로나 아주머니의 은밀한 경고로 의도치 않게 생긴 불신과 의심이 주변 사람들과의 우정을 물들이기 시작하면서 한결같음을 상징하게 된 그 사람에게 의지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토머스 그레인저의 탓으로 돌릴 수 있는 건 오직 그가 밤중에 집 안을 어슬렁거리며 내게 두려움을 주입시켰다는 것 뿐이다. 나머지는 내가 그의 손에 놀아나서 자초한 일이다.


죄책감으로 시작된 상상이 결국은 앨리스를 집어삼켜 일어난 비극. 내 주변 사람들을 의심하고 끝내는 나조차도 믿을수가 없게 되는. 한마디로 주제에 딱 맞는 주인공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앨리스는 토머스에게 놀아났어요. 그가 만들어놓은 판 위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게임말 같았죠.

생각해보면 죄책감은 얼마나 무서운 감정인가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머리를 마비시키죠. 죄책감으로 인해 다른 사람을, 나를 슬프게 하는 일도 서슴지 않아요. 앨리스는 로나 아주머니에게 삶의 큰 지혜를 배웠어요. 작중의 앨리스처럼 죄책감으로 내 삶을 갉아먹고 있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제 글을 읽고, 괴로운 그 감정에서 벗어나면 좋겠어요. 토머스처럼 내 그 감정을 이용하는 사람이 나타나기 전에요.






토머스의 정체가 드러나기전까진 누가 누구를 해하지도, 그런 시도를 하지도 않는데 쫄깃한 긴장감이 인상적인 책이었어요. 근데 영화로 치자면 마지막 10분을 위해 모든 시간에 누군가를 의심하고 실망하고 의심하고 실망하고의 연속이라 저 개인적으로는 조금 지치고 힘들었던 책이었기도 합니다. 재미가 후반에 너무 몰빵되어 있어요.

 

다들 올리버가 니나를 죽였다고 그렇게 빠르게 인정한 데는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 어쩌면 그들이 누군가를, 니나와 바람을 피웠다고 의심되는 서클의 누군가를 보호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그게 누구일까?


이 긴장감을 너무 오래 가져가야 해요. 전에 읽었던 저자의 <비하인드도어> 같은 경우 주인공의 본모습이 빨리 드러났고, 그 후 각기 다른 씬들이 속도감 있게 진행됐기 때문에 읽는 재미가 있었는데...

그래도 다른 책을 또 읽어보려 합니다. 내용적으로는 조금 루즈한 편이었으나 가독성은 좋았거든요. (저자의 장점인 것 같아요.) 다음에 읽어볼 책은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작품이면 좋겠어요.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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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외롭거나 슬퍼서 견딜 수 없을 때,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게 그 감정을 배출한다. 약자는 그 배출구로 희생된다. 또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괴로울 때 자신이 만든 세계로 도망쳐 들어간다. 그리고 자신의 주관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보고 듣고 기억하는 일들을 제멋대로 비틀어버린다. 이 소설은 그처럼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이 책에서는 일단 사람을 죽이고, 그 몸을 운반하고, 다리를 꺾거나 입에 비누를 넣는 등 괴상망측한 행동을 일상처럼 일삼고 환생, 학대, 이상성욕, 트라우마 등 무거운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이 점 인지하고 읽는 편이 좋겠습니다. *오늘도 스포주의*





주인공 미치오는 집에 유인물을 가져다주라는 이와무라 선생님의 부탁에 S의 집으로 가요. 하지만 거기엔 목을 길게 빼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 S의 모습이 기다리고 있었죠. 미치오는 다시 학교로 가 선생님께 이 사실을 알립니다. 그리고 선생님, 형사 두 명과 함께 집에 가니 S의 몸은 감쪽같이 사라져 있는데요. 대체 누가 가지고 간 것일까요?

 

누군가 미치오에게 말을 걸어요. "미치오!" 말을 한 사람, 아니 곤충은 다름아닌 거미였어요. 거미는 자신이 S라고 소개를 해요. 거미로 환생을 했대요. 그리고 미치오에게 부탁해요. 자신의 몸을 찾아달라고.

 

 



S와 미치오 그리고 세살배기 미치오의 동생 미카는 꽤 열심히 범인색출에 몰두합니다. 그들이 주목한 범인은 이와무라 선생님이었는데요. S의 제안으로 그들은 이와무라 선생님의 집에 몰래 침입하는 것에까지 성공해요. S의 몸을 이와무라 선생님이 가져갔을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러나 거기서 본 것은 그들이 예상치 못한 것이었어요. 어린 남학생들의 사진, 싫다고는 하지만 진짜 싫어하는 것 같진 않은 비디오 속 알몸의 S모습. 미치오는 혼란스러워합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S가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지는 않음을 인식하고 의심을 하고 또 싸우기도 해요.

S의 집 가까이에 다이조 라는 할아버지가 살아요. 다이조는 우연히 만난 미치오에게 이와무라 선생님이 쓴 자신의 뒤틀린 욕망이 담긴 책의 존재를 알려줘요. 자신의 그릇된 욕망이 세상에 드러날까 두려워 S를 죽인 게 아닐까, 미치오는 이제 거의 확신해요. 그래서 형사에게 언제 밀고를 할지 기회만 엿봐요. 그런데 진짜 이와무라 선생님이 범인일까요?





1️⃣ S
죽은 뒤 거미로 환생한 아이. 심한 사시에, 어머니와 살고 있어요. 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당했어요. 아이들은 노골적으로 S에게 다가오기를 꺼려했죠. 지나가는 아이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칼처럼 날카롭게 느껴졌을까 안타까웠어요.

억울하고 억눌린 감정을 분출 할 방도가 없는 S는 결국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맙니다. 힘없는 개와 고양이를 노려 그들을 죽이는 거요. S가 살고 있는 N마을에서는 개와 고양이가 죽임을 당한 후 입엔 비누, 다리는 반대로 꺾여 있는 괴상한 사건이 9번이나 발생해요. 그런데 S는 죽이기만 했을 뿐 다리를 부러뜨리지는 않았다네요?

S가 죽인 동물의 다리를 부러뜨린 사람은 다리를 부러뜨리다 우연히 창문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S와 눈이 마주쳐요. 그 때 S는 동정과 안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고 합니다. '나와 똑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동질감을 느낀 것 같기도 해요. 그 후로 S는 먼저 몹쓸 짓을 하고 그 사람을 위해 지도에 자리 표시를 해 그 사람 집 앞에 놓아둡니다. 그게 그 사람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거예요.

S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데요. 이마저도 그 사람에게 알려줍니다. 마음이 얼마나 지옥같았으면 그런 행위를 하고, 끝까지 그런 걸 우정이랍시고 주다니. 하지만 따돌림을 당해 억울했던 S처럼 이유없이 죽은 동물들도 힘들고 슬펐겠죠. 그저 9개의 에피소드로 치부하고 넘어간 게 아쉬워요.

 

 



2️⃣ S의 어머니
아들의 죽음을 슬퍼합니다. 그런데 둘이 어떠한 시간을 보냈는지 장면이 하나도 나오지 않아서 'S의 엄마가 뭔가를 숨기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다행히 그런 건 아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S가 부모에게 받은 사랑이 턱없이 부족했음을 작가가 그렇게 전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나 싶어요.

3️⃣ 도코할머니
미치오가 고민상담을 하러 가는 따뜻한 할머니에요. 미치오가 뭔가를 부탁하면 도코할머니는 이상한 주문을 외운 후 실마리가 될 힌트를 꼭 알려주세요. 이번에도 '에이고(냄새)'라는 키워드를 알려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지요. 하지만 슬프게도 어느 날 도코할머니는 개와 고양이가 죽임을 당했던 것처럼 끔찍한 일을 당해요. 과연 누가 그런걸까요.

4️⃣ 다이조 할아버지
다이조 할아버지가 그랬어요. 근데 다이조 할아버지는 몰랐대요. 집에 찾아오는 삼색고양이가 도코할머니일 줄. 도코할머니가 환생하여 고양이가 된 거였더라고요. S가 죽고 더 이상 부러뜨릴 것이 없자 정이 들었던 고양이에게 몹쓸 짓을 해버린 다이조.

S가 지도를 준 사람은 다이조 할아버지였습니다. 그런데 왜 다이조는 다리를 부러뜨릴까요?

어릴 적, 엄마가 돌아가시자 이웃집 아줌마들은 엄마를 둘러싸고 엄마의 다리를 부러뜨렸어요. 그 중 한 아줌마와 눈이 마주치고 다이조는 패닉 상태로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마는데요. 그게 실은 장례절차 중 하나였거든요. 아줌마들이 악의가 있어서 그랬던 게 아니라. 다이조는 엄마가 아줌마의 남편들과 밤늦게 어울려서 아줌마들이 복수를 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어느 날, 다이조는 엄마의 관 안에 아무도 없는 것을 발견합니다. 다이조는 아줌마들에게 한을 품은 엄마가 관 안에서 스스로 나왔다고 생각했어요.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개가 끌고 갔나 그래요.) 그리고 하필이면 엄마의 다리를 부러뜨린 아줌마가 누군가에게 습격을 당해 해를 입는 일이 발생해, 다이조는 엄마에게 엄청난 공포를 느끼고 맙니다.

노인이 된 다이조 앞에 하루는 뺑소니를 당한 한 여학생이 눈에 띄었어요. "용서하지 않을거야." 다이조를 뺑소니범이라고 오해한 여학생이 말해요. 다이조는 순간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입니다. 그리고 엄마가 그랬듯 이 여학생이 나중에 관에서 나와 자신에게 복수를 하지 못하게 그 때 그 아줌마들처럼 다리를 부러뜨려요.

죄책감을 가지면서도 S에게 건네받은 지도의 장소에 가 매번 똑같은 짓을 저지릅니다. 다이조도 생각하면 안타까운 인물이죠. 극심한 트라우마에 일흔이 될 때까지 시달리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또한 소중한 동물들의 생명을 앗아간 데에 대한 면죄부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무고한 다른 생명을 해치면 안되죠.

 

 



5️⃣ 미치오
미치오는 초등학생임에도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가여운 아이예요. 어렸을 때 엄마를 깜짝 놀래켜주고 싶어 했던 장난이 엄마 뱃속에 있던 아기를 유산시키는 결과를 낳은 후 엄마에겐 투명인간보다 못 한 취급을 받아요. 엄마는 항상 미카만 찾아요. 미치오의 동생이요.

그 일이 있은 후 엄마는 다시는 임신을 못 하는 몸이 되었는데 어떻게 미카를 낳았을까요? 엄마는 인형을 보고 미카라고 부르고, 미치오는 도마뱀을 보고 미카라고 불러요. 둘 다 정신병에 걸린거예요.

미치오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텐데, 라며 미카를 부러워 합니다. 아빠는 늘 피곤한 눈을 한 그냥 함께 생활하는 사람이에요. 미치오의 엄마가 미치오에게 퍼붓는 악담은 상상을 초월하는데요. 미치오가 기분 나쁜 것을 보았다고 하자 '너보다 기분 나쁘니?', S사건의 목격자라는 걸 알게 됐을 땐, '이번에도 네가 죽였지?' 하지만 미치오는 순한 양처럼 그 자리를 뜨거나 담담히 받아들일 뿐이었어요.

미치오는 거미가 된 S, 도마뱀이 된 미카, 고양이가 된 도코할머니, 곱등이가 된 다이조 할아버지를 병에 넣고 돌봐주어요. 모두 외로움과 공허함이 만들어 낸 것들입니다.

이야기 후반부에 다이조 할아버지를 무섭게 몰아부치는 미치오의 분노가 인상적인데요. 그게 그 아이의 본모습이 아닐까 싶었어요. 그리고 사실 S는 미치오 때문에 죽었답니다. 학교에서 연극을 하기로 했는데 미치오는 연극이 하기 싫어서 S의 집에 가서 S에게 죽어주면 안 되겠냐고 했어요. 그 말을 듣고 S는 그렇게 된 것이고요. 미치오는 왜 이런 아이가 된걸까요.


"저뿐만이 아니에요.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 속에 있잖아요. 자신만의 이야기 속에요. 그리고 그 이야기는 항상 뭔가를 숨기려고 하고, 또 잊으려고 하잖아요."


저는 부모에게 원인이 있다고 생각해요. 한참 사랑을 받아도 모자랄 나이에 무시를 당하고 인정받지 못해서 얼마나 서글프고 화가나고 원망스러웠겠어요. 사람이 사람답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사랑이 필수인데 말이에요. 아이에게 부모는 신이라고 하잖아요. 신이 자신을 외면해버리면... 거기다 미치오의 신은 미치오에게 악담을 퍼부었어요.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힘이 들었겠죠. 그래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도피했던거고.

슈스케의 소설에는 인간의 생각과 착각, 잘못 듣는 것들이 진상을 가로막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등장한다. 우리 인간이 사소한 생각에 쉽게 좌우되고, 보지 않았는데 보았다고 생각하고, 하지 않은 행위를 했다고 생각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독자는 인정사정없이 철저히 깨닫게 된다.


늘 생각을 조심해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내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생각이라고 다 옳은 건 아니라고 누가 그랬는데, 내가 알고 있는 사실도 정말 참인지 객관적으로 따져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아요.

저도 제 생각만으로 일, 관계를 그르친 적이 몇 번 있어요. 내 생각이 내 주관에 의해 해석된 것인지 남들이 들어도 납득할 만한 일인지 이제 잘 가려야겠죠.

그나저나 다이조, 미치오의 트라우마가 만든 결과는 그야말로 참혹하네요. 트라우마 관리도 필요한 것 같아요.

끝으로... 이야기가 맥거핀으로 이용만 되고 스르르 사라져버린 것이 있어요. 이와무라 선생님의 악취미. 어린 아이들을 상대로 그런 짓을 하는 건 악질 중에 악질이죠. 그것도 선생님이. 근데 책에서는 이와무라 선생님이 범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그 내용도 자연스럽게 묻혀졌어요. 생각할거리나 교훈을 주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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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 히가시노게이고가 추리 소설을 낱낱이 파헤치고 나섰다.

밀실 X인, 다잉 메세지, 무대의 고립, 토막 X인, 동요 X인 등 책을 읽는 우리 모두는 그것을 이미 "뻔하다"거나, "진부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마치 금기사항이라도 된 듯 누구도 그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만화 '명탐정 코난'을 예로 들면, 제대로 된 추리와 범인을 잡은 적이 없는 형사와, 범인을 지목해야 할 때 바닥에 픽 하고 쓰러져 틀리지도 않고 언제나 정답 만을 얘기하는 명탐정, 그리고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또 모처럼 놀러간 휴가지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나는 X인 사건들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하지만 그렇게나 많은 추리소설에서 주요한 장면들이 반복 되었음에도 장소만 살짝, 트릭의 스케일이 살짝 달라질 뿐인 또 다른 책을 집어드는건 어째서일까.

히가시노게이고는 데뷔작 이후 20년이 넘는 작가 생활 동안 50여편의 작품을 써낸 일본 추리소설의 거장이다. 추리소설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수십여편 속 수백천명의 범인을 만나봤단 뜻이다. 그는 명백한 작가임에도, 이 책에서는 독자의 입장에 서 '이상하다고 느끼지만 깊게 생각하기 귀찮은 것'들을 우리를 대표하여 으름장 놓아준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무언가에 깊이 골몰한 시간이 남들보다 탁월한 누군가 그것을 신랄하게 비판하니 십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 전개는, 명탐정 덴카이치 다이고로와 지방 경찰 본부 수사 1과 경감 오가와라 반조가 여느 추리소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X인 사건을 처리해 나가면서 중간 중간 '도저히 못 참겠다!' 싶다고 느껴질 때 책에서 나와, '죽기 전에 다잉메세지는 왜 남기는거야? 그리고 의문스러운 메세지를 남길 바에는 차라리 범인 이름을 적는게 더 낫지 않아?' 라고 하소연을 하고, '그래, 이렇게나 추리소설의 규칙을 파헤쳤으면 이제 더 이상 나올 것도 없겠다.' 고 생각 할 찰나, 정말이지 예상치 못한 등장인물이 범인이 되어 반전을 선사하기도 한다.

탐정 추리 소설의 경우 주인공이 죽어서는 안 된다는 법칙이 있기 때문에 마지막 장에 나타난 '추리소설에서 방귀 깨나 뀌는 사람들'의 대거 출연은 소재거리에서부터 신선하다고 느꼈다.
자기 자신이 추리소설을 쓰는 사람이라서 작가와 독자가 적당히 서로를 속이고 책장을 넘기는 것을 더 이상은 참지 못하고 자기 성찰과 비판의 무대를 써내려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추리소설의 특징상 이전과 판이하게 다른 장치가 생긴다면 부자연스러울 것이 자명하다. 이렇듯 작가에게도 늘 숙제 같은 고충이 있을 걸로 생각되는 한편, 독자인 나는 추리소설의 한정적인 작법을 보면서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주는 작가를 남몰래 구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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