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이 작가의 청소년 소설을 또 읽어보았습니다. 원래 같은 작가의 책을 연달아 보는 편이 아니예요. 내용이나 전개방식이 틀에 갇힌 듯 답답해지는 느낌이 없잖아 있어서요. 그런데 이금이 작가의 작품은 읽을 때마다 다른 사람이 쓴 것 같이 새로워서 신기하네요. 청소년들을 살피고 애정하는 마음이 책 전반에 깔려있는 건 같은데, 그 외의 것들은 읽을 때마다 새 것 같아요.



표지에 그려진 뚱뚱한 여자아이가 이 책의 주인공입니다. 이름은 이봄. 지금부터 봄이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의문의 A4용지 묶음




고등학교 선생님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전개됩니다. 우리 반 아이들 중 한 학생이 무단결석을 한 것이 화근이 되었죠. 그 아이의 이름은 '이봄'.

부모님은 체코로 여행을 가셨고, 일주일에 두 번씩 집에 와 청소를 해 주시는 아주머니는 봄이의 행방을 몰라요. 그리고 또 의문인 것은, 반 아이들 중 단 한 명도 봄이가 현재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그러던 와중에 책상 위 의문의 A4용지 묶음을 발견하게 돼요. 잠시 자리를 떴을 때 누가 가져다 놓았나봐요.


1학년 3반 아이들




A4용지에는 10327, 10324, 10303... 이렇게 나름대로의 이름이 각각 붙여져 있었습니다. 10327은 1학년 3반 27번 이라는 뜻이예요. 그렇다면 반 아이들이 담임 선생님에게 하고싶은 말을 써서 가져다 놓은걸까요?

반 아이들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봄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결론 내리고 몰래 비웃고 있었습니다.

봄이는 반 아이들에게 자신의 남자친구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대학생 남자친구를 만나고 있단 말로 서두를 열었죠.

그 남자친구는 평범한 대학생이 아니고, 잘생기고 공부도 잘하는 사람이었어요. 영화같은 고백을 하고, 멋진 곳에 데려가주고, 봄이를 진심으로 아끼고 위하는 다정한 마음까지 지녔다네요. 학교에 꽃과 카드를 선물 보내는 로맨틱함도 보였어요.

아이들은 눈을 반짝거리며 봄이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속으로는 모두 '이 이야기는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요.

왜냐하면...

봄이는 예쁘지 않고 뚱뚱했거든요. 그런 남자는 봄이를 좋아할리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혜나, 경서, 미나... 반 아이들은 모두 자기 입장에서 본 봄이를, 봄이의 이야기를 평가하기 시작합니다.


봄이는 소중한 추억을 공유했을 뿐




체코에 있을 때 봄이는 한국 학교에 가는 것이 두려웠어요. 무한 경쟁 체제 때문이기도 했지만, 자기가 뚱뚱하다고 놀리는 친구들이 또 있을까봐 겁이 났기 때문이에요. 체코 생활 중 만난 지금의 남자친구는 그런 봄이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그와 체코에서 쌓은 추억은 더없이 소중한 것이었어요. 그래서 그 기억을 반 아이들과 공유하기 시작하는데요. 아이들이 제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이 좋기도 하고, 이야기를 하며 그 기억에 다시 한 번 빠지는 것이 봄이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웃는 얼굴 뒤 숨겨진 진짜 표정들은 모르고 있었어요.

혜나의 폭탄 발언으로 한 방울 눈물을 떨구고 말죠.







이 모든 이야기를 읽은 담임 선생님마저 처음에는 봄이의 이야기가 픽션일 것이라고 오해했다는 게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선생님마저 편견이 가득한 눈으로 학생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A4용지를 다 덮고나서야 그 사실을 깨닫고, 선생님도 깊은 상념에 빠지게 되죠.







이 책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외모지상주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주었습니다. 못생긴 사람이 잘생기거나 예쁜 사람을 만나면 그 커플은 한 쪽에 하자가 있거나 아니면 한 쪽이 특출나게 잘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해 왔던 것이 사실이고요.

그런데 겉모습보다도 그 사람의 성격이나 가치관이 마음에 들어 만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남편을 만났고요. 왜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는 그렇게 평가하는 눈으로 바라봤는지 모르겠습니다.

봄이의 남자친구는 봄이의 넓은 이해심, 무언가를 대할 때의 마음가짐, 같이 있으면 드는 편안한 기분, 그녀의 배경지식 그리고 그것을 설명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모습에 반했습니다. 그에게는 무엇보다 봄이의 그런 모습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었던 거예요.

겉모습을 보느라 상대의 진면목을 알아차리지 못 하고 스쳐지나가버리는 아쉬운 순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외모를 보고 설레거나 실망하는 건 무의식적인 것이기에 의식적으로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보이지 않는 데 더 반짝이는 게 많으니까요.


밑줄 그으며 본 하이라이트 모음

 

나는 진실이 어떤 사실 속에 감추어진 핵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실은 찾지 않거나 보는 눈이 없는 사람에게는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진실을 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을 가리는 것은 편견과 고정관념이다. 개인의 편견과 고정관념이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되어 사회적 통념으로 굳어졌을 때 희생당하는 것은 결국 우리들 자신인 것이다.



시대에 따른 미남미녀상이 다 다른데. 예전엔 뚱뚱한 사람이 각광받고 추앙받기도 했었잖아요? 어떤 나라 혹은 마을에서는 아직도 그러기도 하고요.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작은 머리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는데 외국에서는 사람의 작은 머리가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예요.

광대가 도드라진 얼굴이 멋져보인다고 생각하는 나라의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건 부끄러운 컴플렉스 중 하나기 때문에 성형수술을 권하는 나라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눈과 마음을 가리는 건 편견과 고정관념 때문이에요.

봄이를 둘러싼 이야기를 써 가는 동안 내 마음속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차츰 모호해져 갔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진실을 말하고 있는데도 외모 때문에 아이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봄이나, 고정관념과 편견에 빠져 봄이를 무시하고 따돌리는 반 아이들이나 모두 사회가 만들어 놓은 통념의 덫에 갇힌 피해자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특히 더 그런 것 같아요. 갈수록 더 그런 것 같아요. 외모지상주의가 너무 심하죠. 그러면 그럴수록 많은 이들이 피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되는데... 예쁘고 멋진 것보다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에 더 주목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차라리 그 가치들을 찾는 데 더 혈안인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사회의 문제점을 작품으로 소리내어 알려주신 작가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이 책이 많은 이들에게 읽혔으면 좋겠어요.

이금이 작가님의 다른 작품 후기들도 남기겠습니다. 특히 아이들을 둔, 사춘기 아이들을 둔 부모님들에게 권하고 싶네요. 아이들이 어떤 문제를 제 앞에 목도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실 거예요.

《이금이 - 너도 하늘말나리야》 어른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나누며 크는 아이들

청소년문학을 읽고 있어요. 어렸을 땐 청소년소설을 많이 읽었는데 나이가 드니 자연스레 읽지 않게 되더라고요. 그 때의 예민하고 섬세한 감수성을 다시 느껴보고자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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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 - 소희의 방》  빚에는 돈으로 갚을 것과 마음으로 갚아야 할 것이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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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 - 숨은 길 찾기》 무수히 많은 갈래 중 내 숨은 길 찾기, 시리즈 마지막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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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 - 주머니 속의 고래》 사춘기를 걷는 아이들의 민감한 속내를 살풋 들여다보는 시간

또 청소년문학을 읽었습니다. 이번에도 이금이 작가의 작품인데요. 이번엔 '너도 하늘말나리야'시리즈를 읽을 때와 조금 달랐어요. 청소년들이 등장인물로 나온다는 점은 동일하나 울컥하는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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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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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청소년문학을 읽었습니다. 이번에도 이금이 작가의 작품인데요. 이번엔 '너도 하늘말나리야'시리즈를 읽을 때와 조금 달랐어요. 청소년들이 등장인물로 나온다는 점은 동일하나 울컥하는 부분이 훨씬 많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주머니 속의 고래>는 꿈을 찾는, 찾게 되는 청소년들의 여정을 그린 이야기예요.

꿈이란 건 본디 가슴에서 우러나와 열렬히 희망하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은 모두 그런 것은 아니죠. 생각지 못 했던 길을 걷다가 발견되는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실패해서 낙담하고 있을 때 눈 앞에 있던 것이 우연히 발견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가지각색으로 바삐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꿈은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요? 꿈을 꾸는 아이들은 자체만으로 반짝반짝 빛이 났습니다. 보는 내내 부러울 정도로요.

평범한 일상 속에서 꿈을 찾게 되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아이들🌿



민기, 현중, 준희, 연호는 중학생입니다. 민기는 잘생긴 얼굴로 길거리 캐스팅을 당하고, 연예인을 꿈꾸는 현중은 민기를 부러워했죠.

준희는 목에 큰 점이 있는 일명 공개입양아 입니다. 하지만 소수의 걱정어린 시선을 뒤로하고 그는 집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요. 그러던 어느 날, 진짜 엄마를 만나게 되는데요. 그녀는 과연 누구일까요?

연호는 증조외할머니와 살고 있습니다. 아빠는 모르고, 엄마는 있는데 집에 잘 안 들어와요. 엄마라는 사람은 전세보증금을 빼 갔고, 새 집을 구해준다면서 현재 감감무소식입니다.

민기의 집에 세들어살던 집에서 반지하방으로 이사가는 날에도 엄마는 오지 않았어요. 연호가 스트레스와 영양실조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할 때에도, 엄마는 오지 않았습니다.

연호🍀



아직 열 여섯밖에 안 된 연호에게 세상은 너무 가혹해요. 어른 아니, 부모가 짊어져야 할 짐을 연호보고 다 지고, 거기에 또 늙은 증조외할머니의 짐까지 들라고 하고 있어요.

연호는 친구인 민기네 집에 세들어사는 세입자이기도 한데요. 민기 엄마는 가끔 반찬을 가져다주고, 민기는 자기에게 힘든 일이 있으면 연호에게 토로하러 오곤 합니다. 연호는 가져다 줄 반찬이 없고, 민기에게 힘든 것을 토로하지도 않는데 말이에요.

하지만 차라리 그 집에 살 때가 좋았던걸까요? 이사갈 때가 되었는데 온다던 엄마가 안 와요.

할머니와 연호에게 주어진 돈으로는 부엌과 욕실, 방 하나 딸린 어둡고 퀘퀘한 반지하방밖에 별다른 대안이 없었습니다.

이제 그 집에서... 90세 할머니를 돌보며 살아가야 해요. 열 여섯 연호의 마음은 얼마나 무거웠을까요?

이삿짐을 옮길 때 남자친구들인 현중, 민기, 준희는 힘을 보태줍니다. 연호는 그 사실을 더없이 수치스러워하지만요. 연호는 한때 민기를 보며 가슴 설렜던 적이 있고, 현중, 준희와는 서먹한 사이예요. 자존심 세고 강해보이는 이미지의 연호가 자신의 초라한 형편을 모두에게 드러내게 되었으니 얼마나 속이 상하고 비참했겠습니까.

이사하는 내내 입을 꾹 다물고, 아무것도 쳐다보지 않는 텅 빈 눈을 하고 있던 연호.

그런 연호가 좋아한 건 노래였습니다. 삶이 어깨를 무겁게 짓누를 때 코인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연호의 유일한 낙이었지요.

연호에게 볕들 날이🌻



민기, 현중은 드림박스라는 기획사에 연호, 준희와 함께 부른 노래를 몰래 녹음해 보내는데요. 기획사에서 연호에게만 러브콜을 보내요. 뜻하지 않았던 곳에서 기회가 찾아왔네요?

기획사 연습생이 된 연호.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며 가수가 되기를 기다리는 연호는 이제서야 조금 발을 뻗고 잘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감무소식이던 엄마는 뒷바라지를 해주겠다며 집에 찾아와 혼자 계시는 할머니를 도와드려요. 미운 엄마지만, 네, 만약 엄마가 없었다면 연호는 기획사에서 연습을 할 수 없었을겁니다. 할머니를 돌봐야 하니까요.

연호는 과연 데뷔를 할 수 있을까요? 이 책을 보는 독자분들도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아마 저처럼 연호를 응원하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혹시 저처럼 눈물을 글썽이진 않으셨는지 묻고싶네요.




 

밑줄 그으며 본 하이라이트

 

엄마와 함께 목욕하는 게 싫었다. 엄마가 제대로 돌봐 주지 않는데도 잘 자라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딸에 대해 마음을 놓는 게 싫었다.



오랜만에 찾아와 엄마 흉내내는 연호 엄마에게 연호가 품은 생각이에요. 어때요? 연호 짠하지 않나요? 관심 받고 싶은 거예요. 딸과 함께 찜질방을 찾은 엄마의 딸을 향한 관심을, 없는 줄 알았던 그 끈을 이젠 죽어도 놓고 싶지 않은겁니다. 속으로 울면서 발악하고 있는 거예요. '엄마, 나에 대한 마음을 놓지마.' 라면서. 아직 아이라 표현이 서툴 뿐입니다.

작가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대단하다고 느껴요. 어떻게 이렇게 청소년들의 예민하고 어설픈 마음을 잘 헤아리시는지요.

작은아들에게 사춘기가 왔다고 생각하는 엄마는 준희가 짜증을 내거나 신경질을 부려도 여유 있는 웃음으로 대처했다. 오히려 준희가 여느 아이들처럼 제때에 사춘기를 겪는 걸 흐뭇해했다. 준희는 그게 더 짜증났다. 모든 아이들이 겪는 통과의례를 거치고 있다고 편하게 생각하는 가족에게 거리감이 느껴졌다. 왜 그러냐고 다그치기라도 한다면 핑계 삼아 혜지와의 일과 그로 인한 충격, 상처 등을 털어놓을 수도 있을 텐데. 가족은 입양아란 사실이 준희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까맣게 몰랐다.



사춘기의 특징 중 하나는 사실을 곧이곧대로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준희를 보며 어릴 때의 저를 되돌아보고, 십 년 후 우리 아이를 떠올려봤어요.

아마 방 문을 닫고 오래도록 나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 닫힌 방문으로 저는 아이가 어떤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궁금해 하는 엄마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오래 생각할겁니다. 생각나는대로 말하지 않을거예요. 말을 다듬고 다듬어 선물처럼 건넬겁니다.

저는 아이가 겪고있는 그 사춘기를, 가슴이 산산조각 나는 그 경험을, 해봤으니까요. 대충 아니까요.

"저 살 집 구하는 건데 이래도 네, 저래도 네, 무슨 허깨비랑 다니는 것 같더라니까." 엄마가 간식거리를 내놓으며 말했다. "애가 감당할 만한 일이 아니니까 본능적으로 현실을 회피하는 거지. 잘해줘." 간식을 먹으러 나온 누나가 모처럼 옳은 소리를 했다.



집을 보러 다니는 일은 배가 부르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공부도 마찬가지. 마음에 여유가 없는 아이들은 공부도 못 해요. 부모가 고민해야 할 것들을 대신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죠.

게다가 연호는 돈이 없었습니다. 뭘 가릴 처지가 아니었어요. 한 마디 했다가 수치스러운 말이 돌아오면 안그래도 나약해져 있는 마음에 타격이 얼마나 심한데.

'이래도 네, 저래도 네' 하며 연호는 연호 나름대로 버티고 있었을 겁니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혀를 찼다. 무관심보다 동정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이건 진짜 가난을 겪어 본 사람만 할 수 있는 생각인데...

아무렇지 않게 슈퍼를 갔는데 동정에 혀를 끌끌 차던 할머니들이 생각나요. 그 눈빛들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 눈빛과 말이 눈 앞의 아이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지 아느냐고, 왜 나를 그렇게 동정하는지 따져묻고 싶었죠. 그럴 수 없는 현실에 저는 또 지칠 뿐이었지만요. 다른 사람의 에너지를 깎아먹는 행동이예요, 그거.

민감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아이들에게 나는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리라고 다시 한 번 다짐합니다.

곧 궁상이 땟물처럼 줄줄 흐르는 살림살이들이 들어와 놓이기 시작했다. 짐을 들고 내려와 집 내부를 본 현중은 더는 농담을 하지 않았다. 민기는 투덜거리지 않았고, 준희는 연호를 없는 사람 취급하며 눈길을 피했다.



침묵이 소음보다 시끄럽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침묵으로 많은 말을 하죠.

연호는 그동안 시내를 쏘다니는 아이들을 경멸하고, 옷 타령, 신발 타령하는 민기를 한심하게 여겨왔다. 하지만 연호가 진정으로 바란 건 그 애들처럼 사는 거였다. 부모를 졸라 옷과 신발을 사고, 참고서 값을 속여 피시방에 가고, 시험 점수를 놓고 휴대폰이나 용돈을 흥정하는 것. 어느 것도 할 수 없었던 연호는 아이들을 경멸하고 한심해하는 걸로 위안 삼았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소망일 수 있어요.






저에게 이 책은 연호입니다. (그래서 매우 치우쳐진 경향이 좀 있죠? 연호 이야기만 줄줄...)

하지만 이 책에는 민기, 현중, 준희의 이야기도 담겨 있어요. 사람마다 느끼는 건 다 다르니까요, 직접 읽어보시고 저처럼 가장 마음에 와닿는 아이의 이야기를 꼽아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작가님의 다른 작품 후기글도 올려드리겠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섬세히 캐치해내는 분이예요. 그래서 아이 가진 부모에게 육아를 하는 데 작가님 작품이 도움이 많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금이 - 너도 하늘말나리야》 어른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나누며 크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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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 - 숨은 길 찾기》 무수히 많은 갈래 중 내 숨은 길 찾기, 시리즈 마지막편

'너도 하늘말나리야'시리즈 중 마지막 3부작을 읽어보았어요. 는 달밭마을에 남은 바우와 미르의 삶을 조명한 편이었는데요. 실패와 시련과 슬픔을 딛고 제 길을 나아가려는 아이들의 도전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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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너도 하늘말나리야'도 '주머니 속의 고래'와 같이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이에요. 유명한 작품이니 꼭 읽어보세요.

오늘도 마음 편안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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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하늘말나리야'시리즈 중 마지막 3부작을 읽어보았어요. <숨은 길 찾기>는 달밭마을에 남은 바우와 미르의 삶을 조명한 편이었는데요. 실패와 시련과 슬픔을 딛고 제 길을 나아가려는 아이들의 도전이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

[너도 하늘말나리야 시리즈]

1부 : 너도 하늘말나리야
2부 : 소희의 방
3부 : 숨은 길 찾기



1부가 나오고 2부가 나오기까지, 1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3부는 또 4년이란 시간을 기다려야 했죠.

세월이 무색하게 모든 이야기는 정말 만 3년의 시간을 걷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문화도 인식도 달라진 게 많았을텐데 그 미묘한 다름들을 찾기가 어려웠어요.

이 시리즈를 읽기를 원하신다면 순서대로 읽으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자연스러운 전개 방향입니다.

《이금이 - 너도 하늘말나리야》 어른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나누며 크는 아이들

청소년문학을 읽고 있어요. 어렸을 땐 청소년소설을 많이 읽었는데 나이가 드니 자연스레 읽지 않게 되더라고요. 그 때의 예민하고 섬세한 감수성을 다시 느껴보고자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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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 - 소희의 방》  빚에는 돈으로 갚을 것과 마음으로 갚아야 할 것이 따로 있다.

이금이 작가의 '너도 하늘말나리야'시리즈 중 2부 을 읽어보았습니다. 초등학생이었던 소희가 중학생이 된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요. 그래서인지 책의 전체적인 이미지도 좀 달라요. 초등학생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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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의 숨은 길 찾기




서울로 올라간 소희에게 작지만 분명한 열등감을 느끼던 미르는 소희가 진로계획을 물어보자 덜컥 '뮤지컬'이라고 답해버려요. 그렇게 예고 입학을 위한 여정을 저도 모르게 걷게 되죠.

예고 진학을 희망하는 다른 학생들의 끼와 열정은 미르가 견줄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미르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경력사항에 한 줄이라도 더 적어내기 위해 학교에서 진행하는 공연에 열심히 참여하죠.

공연의 초반은 말그대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미르가 노래를 부르기 전까지는요.

어수선하던 객석에서 마침내 터져나온 박수갈채와 환호는 미르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이 정말 미르가 걷고 싶은 길인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애초에 환경이 만들어 낸 꿈이지 미르의 가슴이 시켜서 한 일이 아니잖아요.


바우의 숨은 길 찾기




소희가 서울로 올라간 뒤 덩그러니 놓인 소희의 집은 바우가 조용히 돌보아주고 있었습니다. 잡초 관리를 해주고 식물과 꽃들이 건강히 잘 자랄 수 있게 도와주고 있었어요.

바우는 원래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는 소년이었습니다. 미술로 심리 치료를 하는 사람이 되기를 꿈꾸었던 적도 있어요.

소희의 집을 돌보며 바우의 꿈은 자연스럽게 바뀌었습니다. 식물과 꽃이 살고 죽는 모습을 평생 지켜보고 싶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생명과학고에 가기로 결심합니다.

바우의 아빠는 농사일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런데 예상 외로 바우를 존중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 일이 얼마나 고되고, 고된만큼 인정받지 못힌다는 현실적인 문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일테죠. 바우가 대학 진학을 해서 이 달밭마을을 떠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겠고요.

바우는 자신의 꿈을 인정해주지 않는 아빠에게 화가 납니다.

학교에 새로이 전학 온 재이라는 친구가 있는데요. 친구들이 말하길 재이가 바우를 좋아한다네요? 그래서일까요. 바우는 자꾸만 재이가 신경쓰입니다.

그들은 순간이나마 잊지 못 할 추억을 하나 둘 만들고 연극을 함께 합니다. 서로의 영화 감상 느낀점도 나누며 애틋한 마음을 키워갑니다.

그리고 무심코 들어간 농고의 정원에서 바우는 재이에게 마음을 고백하는데요. 고백을 받아준 재이가 단 몇 분만에 갑자기 돌변하고 말았습니다. 바우가 뭘... 잘못한 걸까요?


소희의 숨은 길 찾기




서울로 올라온 소희는 외고 입시 준비에 몰두합니다. 그리고 넉넉한 집안형편 덕에 호주로 영어캠프까지 다녀오죠. 학생 신분엔 더할 나위 없이 준비된 환경입니다.

하지만 소희는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꿈을 찾아냅니다.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해요. 그렇게 외고 입시 준비를 포기해버리고 마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가는 소희가 용기 있다고 생각해요. 외고에 가든 일반 학교에 가서 작가가 되는 길을 찾아보든 열심히 잘만 살면 됩니다. 어른인 저도 정답은 모르지만요. 확실한 건, 어떤 길로 가도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과 후회는 남으니까요. 작가를 택한 소희는 예대 입시를 준비하면서 학생으로서의 본분인 학업도 소홀히 하면 안 될 것이기에 지게 될 부담이 어깨를 짓누르겠죠? 힘듦을 이겨내고 자신이 택한 길로 꼭 성공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숨은 길 찾기>에는 꼭 필요한 인물인 재이라는 아이가 등장합니다. 서울에서 달밭마을로 전학 왔으며 바우를 좋아하고 있죠. 재이 덕분에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의 내용도 자세히 알게 되었어요. 재이가 들려주는 영화 이야기도 <숨은 길 찾기>의 묘미 중 하나입니다.

중학생 시점의 '죽은 시인의 시회' 느낀점을 들어보세요. 당차고 솔직한 그들의 말은 굳은 어른의 머리에 생각할 거리들을 줍니다.

이 외에도 <숨은 길 찾기>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미르의 엄마와 바우 아빠 이야기, 미르에게 부모와 동생이 더 생긴 일, 바우와 재이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제게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들만 꺼내 글을 써보았는데요.

이게 끝이 아니니 깊은 이야기는 직접 읽어보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끝으로, 하이라이트 나누겠습니다.




 

어릴때는 어른이되면 삶을 꿰뚫어 볼 줄 아는 혜안은 물론 앞날에 대한 예지력도 생길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이 들수록 인간은 영원히 불완전하며 미성숙한 존재임을 더 확실히 느끼게 될 뿐이다. 한동안은 그런 사실에 자괴감과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조차도 오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이 작품 속 어른들은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실수하고 실패하고 좌절하며 새롭게 시작한다.



작가는 이 책을 보는 청소년 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심심한 위로를 건네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보는 어른은 완전한 모습일 지 몰라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걸 어른들은 매우 잘 알죠.

 

그런 사정을 처음부터 알았다면 이곳을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았을 거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좀 더 존중하고 믿을 필요가 있다. 자기에게 닥친 일인데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결정이나 판단에서 소외되고 제외되는 것, 진짜 기분 나쁘다.



어린 시절에 어른들을 보며 느꼈던 답답함을 이렇게라도 해소시켜 보세요. 제가 어린 시절에 어른들은 저에게 설명해 주지 않았거든요.

저는 제 아이에게 그런 기억을 주지 않을겁니다. 내 결정으로 인해 아이 인생에 타격이 갈 일은 아이와 이야기를 꼭 나누고 아이의 의견도 듣고, 부모의 생각도 입으로 꺼내 들려줄 거예요.

사랑의 신인 큐피드가 어떤 신의 시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큐피드는 들판에 있는 시녀를 향해 사랑의 화살을 쏘았다. 그런데 화살이 빗나가 시녀 대신 옆에 있던 오랑캐꽃에 맞았고 상처 입은 오랑캐꽃에서 팬지가 태어났나고 했다. 그 내용을 다 읽었을 때 재이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 팬지 꽃말이 나를 생각해 주세요래



식물과 꽃을 사랑하는 아이들의 마음이 책에 묻어나 향기롭기 그지없습니다. 꽃말의 어원이 인상 깊은 부분이라 여러분과도 나누고 싶었어요.

 






제가 부족한 사람이라 이 책을 이렇게까지밖에 소개하지 못 하는 게 안타깝습니다. 어른들이 읽어도 재미있는 책이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물론 청소년들에게도 권하고 싶고요.

이 책을 읽으며 바우, 미르, 소희와 같은 시간을 걷고 있는 친구들을 돌아보게 되었고, 청소년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어린 시절의 제가 하지 못했던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아이들을 보며 해소감과 위로를 받았기 때문에 작가님께 감사하단 말도 남기고 싶었습니다.

여러분도 좋은 시간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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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 작가의 '너도 하늘말나리야'시리즈 중 2부 <소희의 방>을 읽어보았습니다. 초등학생이었던 소희가 중학생이 된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요. 그래서인지 책의 전체적인 이미지도 좀 달라요. 초등학생 소희 이미지가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소희라는 한 아이의 성장을 옆에서 지켜보고 작가가 글로 옮긴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1부 <너는 하늘말나리야>에서의 소희는 엄마, 아빠 없이 할머니와 사는 조손가정의 아이로 나왔었습니다. 그리고 2부 <소희의 방>에서는 두 살때 저를 떼어놓고 서울로 올라간 재혼한 엄마와 함께 사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죠.

개인적으로 2부 참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1부에서는 미르, 바우, 소희. 세 친구의 이야기를 나눠 듣는 느낌이라 더 알고 싶은 마음에 아쉬움이 없잖았는데 2부에서는 맘편히 소희의 이야기에만 집중할 수 있어 좋았어요.

소개해 봅니다.




#엄마와의 재회




2살 때 헤어진 엄마와 다시 만난 소희는 이 장면이 몹시 어색했습니다. 끌어안고 눈물을 펑펑 흘리는 정돈 아니더라도 뜨거운 눈길로나마 지나간 시간 속에 홀로 서 있는 소희를 안아줄 줄 알았거든요.

부자 남자와 재혼한 엄마는 이런 질문이나 하고 앉아 있습니다.


"무슨 과목 좋아해?" 이 질문 역시 허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국어하고 사회요." 엄마는 나한테 궁금한 게 진짜 이런 것들인가. 소희는 그게 궁금했다. 엄마는 다시 헛기침을 했다. 잘 나오지 않는 말을 억지로 꺼내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개인적으로 비슷한 경험이 있어 소름 끼쳤습니다. 경험해 보지 못 한 사람은 이 장면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상당히 현실적인 장면입니다.

이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부모라 할지라도 말이죠. 저같으면 그 자리에 나온 소희의 2살, 3살, 4살...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매년의 소희를 떠올리려 애쓰며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미안해하고 그 마음을 표현하려 노력했을 거예요. 그런데 자기 먹고 살기 바빠서, 제 인생 챙기기 바빠서 정말로 새끼를 돌보지 못하는 부모들도 정말로 많습니다.


하지만 소희는 낯선 사람이 아니다. 딸을 12년만에 만났으면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에 대한 회한으로 감정이 요동쳐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엄마를 위로할 준비까지 돼 있는 소희에게 엄마는 이웃집 아줌마가 할 법한 질문들이나 하고 있었다. "그렇구나. 취미는 뭐야?" "...책 읽는 거요." "그렇구나."




엄마는 재혼한 아저씨와의 사이에 아들도 둘이나 있고 딸도 있었어요. 그들이 더 많으니까, 소희 한 명쯤은 미뤄두어도 되는걸까요? 소희는 그런 엄마를 이해해 주는 게 맞는걸까요?


#엄마의 집




소희는 새아빠 그리고 우진, 우혁이라는 남동생들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엄마 집에서의 생활은 예상대로 녹록지 않았어요. 붙임성 좋고 귀여운 우진은 늘 소희에게 잘해주었지만 우혁은 소희만 보면 가시를 드러내고 적대감을 보였거든요.

마치 엄마를 빼앗긴 것 같이 행동했어요. 감정에 솔직한 거라고 봐주어야 할지요.


엄마가 지금 걱정하고 신경 써야 할 사람은 우혁이 아니라 그동안 버려두었던 자신이다. 소희는 엄마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나는 갑자기 생긴 게 아니라 원래부터 있었다고요! 엄마를 뺏긴 건 우혁이가 아니라 내가 먼저라고요!' 하지만 소희는 그 말을 하지 못 했다. 엄마까지 자신을 귀찮아하게 될 까봐 무서웠다. 소희는 자기 방이 있고 반 아이들에게 엄친딸 소리를 듣게 해주는 이 집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제 이 집이 아니면 갈 곳이 없다.




엄마는 현재의 생활이 무너지지 않는 게 소희의 마음을 돌보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윤소희와 정소희




새아빠 이름에 맞춰 성을 바꾸게 된 소희. 다행히 전학간 중학교에서 채경이라는 성격 좋은 친구를 만나게 됩니다. 풋풋한 첫사랑도 하고요. 좋아하면 안 될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은 혼란스러운 기분에 빠지기도 하죠.

소희의 학교생활을 들여다보니 초등학생 소희가 어엿하게 잘 성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열 다섯 여자아이의 성장 드라마를 보는 듯해 '그 나이 땐 그럴 수 있어! 하지만 이건 조심해야해!' 훈수를 두고 싶기까지 했어요.


#'우리 애들'




자, 비싼 옷과 학용품을 주렁주렁 달고 학교에 다니게 된 소희는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이전에는 보지도 못 했던 물건을 갖게 되었으니 어깨에 힘이 들어갔을까요?

소희는 단순한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할머니가 그랬다. 빚에는 돈으로 갚을 것과 마음으로 갚아야 할 게 따로 있다고. 돈으로 갚아야 하는 빚을 마음으로 눙쳐도 안 되고 마음으로 갚아야 하는 빚을 돈으로 해결해서도 안 되는 법이라고. 소희는 엄마가 자기에게 진 빚이야말로 돈으로 갚을 수도 없고, 갚아서도 안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아이였어요. 그래서 엄마가 자꾸만 소희의 지난 날을 돈으로 해결하려 하는 모습이 못마땅했죠. 소희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건 비싼 메이커 옷이 아니라 그동안 보고싶어도 볼 수 없었던 엄마의 따뜻한 눈빛과 말과 행동이에요.


"카메라가 어떻게 됐다는거야?" 소희 방으로 온 엄마가 물었다.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없어졌어요." 소희는 울상을 했다. "발이 달린 것도 아니고 어디 있겠지. 잘 찾아보지도 않고 우진이부터 잡으면 어떻게 해? 우리 애들은 그런 짓 안 해." 순간 엄마의 '우리 애들'이라는 말이 파편처럼 튀어 가슴에 박혔다. '우리 애들이라니. 그럼 나는 엄마한테 뭐지? 지금, 우리 애들이 아닌 내가 거짓말을 한다는 건가?'




이 때쯤 되니 독자인 저도 엄마를 용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제가 이 글을 읽었더라면 가슴이 엄청 답답했을 거예요. 왜냐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단 걸 본능적으로 깨달아 버렸을테니까요. 여기서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란, '엄마에게 엄마의 잘못을 바로잡아주는' 거예요. 아이가 어른을 설득하는 일 자체도 쉽지 않은데, 이런 말을 생각 없이 툭 내뱉어버리는 어른 앞에 아이는 의지를 상실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희 엄마는 운이 좋은거죠. 이런 말을 들었는데도 소희가 그 다음에 기회를 몇 번이나 더 주었으니까.

저도 어릴 때 어른들의 생각없는 말에 깊은 상처를 받은 적이 많았어요. 그 때나 지금이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또 다짐합니다. 나는 어린 아이들에게 생각 없는 말로 상처를 주지 않겠다고. 반박할 힘이 부족한 아이들 앞에선 더더욱 조심하겠다고요.


#물품보관함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러 나가려는데 옷이 촌스러워요. 그래서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입고 온 옷(엄마가 사준 옷)은 물품보관함에 구겨 넣어버리죠.


문득 그동안 자청한 거라고 여겼던 모범생 역할이 실은 보이지 않는 강요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 없이 할머니와 사는 환경이, 할머니한테도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동정이나 손가락질이 죽기보다 싫었던 자존심이, 모범생 노릇을 할 때나 대견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는 어른들이... 보이지 않는 강요는 잠깐 동안 생각해도 줄줄이 떠오를 만큼 많았다. 소희는 스스로에 대한 연민이 울컥 솟구치는 걸 지그시 눌렀다. 이제 상관없다. 강요에 따라 억지로 입고 있었던 모범생 옷은 조금 전 벗어 버렸다. 소희는 그 옷을 쓰레기통에 처박고 싶은 걸 참고 물품 보관함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는 열지 않을 것처럼 잠가 버렸다.




속이 다 시원한 장면입니다.


#스무살 리나




내면이 성숙한 멋진 리나가 한국에 왔습니다. 새아빠의 딸이죠. 소희는 긴장했지만 곧 리나와 친해지게 됩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위로와 조언까지 듣게 돼요.


리나가 우는 소희를 꼭 안았다. "너 때문이라고 자책하지 마. 엄마의 불행이나 고통을 외면하라는 게 아니라 그걸 네 것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는 말이야. 엄마는 엄마고 너는 너야. 우리는 모두 각자 인생을 사는 거야. 이건 닥터가 내게 해 준 말이야. 대신 넌 너나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부당한 일을 당할 때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돼. 네 마음이 건강해야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 올바른 판단을 하고 당당하게 표현하거나 행동할 수 있어."




리나는 한국에서 외국으로 돌아가기 전, 아빠에게 일침을 놓아요. 엄마한테 잘해야 한다고 말예요. 그건 내내 소희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어요.

그리고 제가 소희에게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도 해주고 가네요. 소희에게 이런 멋진 언니가 있다는 게 참 기쁩니다.

저도 소희, 소희와 같은 친구들에게 얘기 해주고 싶어요.

엄마는 엄마고, 너는 너라고.

너는 엄마의 인생을 이해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고 사과를 받을 게 있으면 마땅히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이유없이 상처를 받아선 안 될 소중한 사람이라고. 그런다고 네 안의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지금 네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엄마를 이해하는 게 아니라, 그동안 방치되어 상처 입었던 너를 돌보아주는 것임을 알았으면 좋겠다고요.


다시 보고싶은 소희




'너는 하늘말나리야'시리즈 1부가 끝나고 2부 <소희의 방>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1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3부는 달밭마을에 남은 미르와 바우의 이야기라고 하는데요. 저는 스무살 소희, 스물다섯, 서른의 소희도 보고싶어요. (작가님 보고 계세요?)

모범생인 줄로만 알았던 소희의 다양한 면모를 들여다보는 게 재미있고 흥미로웠거든요. 어릴 적 제 자신을 들여다보는 여행도 재밌었고요.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겠죠. 그래도, 다신 못 볼 소희라도 어딘가에선 부디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자극적이지 않고 순수한 내용이었는데 울림이 매우 큰 책이었습니다. 결핍가정의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고 조금이라도 위로와 해소를 느꼈으면 좋겠어요.

✔️ 1, 3부 후기가 업로드 되었습니다.

《이금이 - 너도 하늘말나리야》 어른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나누며 크는 아이들

청소년문학을 읽고 있어요. 어렸을 땐 청소년소설을 많이 읽었는데 나이가 드니 자연스레 읽지 않게 되더라고요. 그 때의 예민하고 섬세한 감수성을 다시 느껴보고자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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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 - 숨은 길 찾기》 무수히 많은 갈래 중 내 숨은 길 찾기, 시리즈 마지막편

'너도 하늘말나리야'시리즈 중 마지막 3부작을 읽어보았어요. 는 달밭마을에 남은 바우와 미르의 삶을 조명한 편이었는데요. 실패와 시련과 슬픔을 딛고 제 길을 나아가려는 아이들의 도전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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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는 17살입니다. 어릴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조부모님 손에 길러졌어요. 하지만 조부모님마저 돌아가시게 되자 경주에게는 이제 함께 살았던 이 집만이 남았습니다.

 


집에 와서 하는 일이라곤 할머니 할아버지 속 긁어놓기, 돈 가져가기 밖에 없었던 삼촌이 찾아옵니다. 이 집 팔자고요. 그런데 왜 그걸 경주한테 말하느냐고요? 조부모님이 경주에게 유산으로 이 집을 남겨주고 가셨기 때문이에요. 비로소 경주가 서류에 도장을 찍어야만 집이 팔리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경주는 집을 팔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조부모님의 마지막 유언이었거든요. 삼촌은 고함을 지르거나 위협을 가하는 등의 방법으로 그녀에게 강요합니다.



"이 집은 절대 안 팝니다."

 

 

 

어디 어른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느냐고, 너는 애가 왜 이렇게 고집이 세냐고, 네가 뭐라 해도 결국 이 집을 팔게 될 거라는 삼촌의 말과 경주의 대답이 핑퐁처럼 최소 열 번 이상은 이어집니다. 경주도 참 대단해요.

 

애 vs. 어른


경주는 열 일곱살입니다. 삼촌은 서른이 넘었고요. 법적으로 한 명은 미성년자고 한 명은 어엿한 성인이지요. 그런데 이들의 태도를 한 번 보세요. '내가 가진 것은 노트북이나 비싼 패딩이 아니고 집이다. 자산이다.' 집을 소유했다는 것을 인지한 후 행동과 말투를 달리하는 이 고등학생. 꼭 필요한 말만 하고, 정확하게 행동하고, 분명한 태도를 보이려고 매사에 주의하는 경주는 어설프나마 어른스럽게 행동하려고 합니다.

대조적으로 삼촌은 상대방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적당히 구슬리면 될 거라고 생각해 철없는 행동을 하지요. 소리를 지르고, 발을 쾅쾅 구르고, 문을 세게 닫고 나가고, 으름장을 놓고, 제 딴에 무서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에요. 경주는 생각합니다.

 

나는 삼촌이 좀 더 지적이고 근사한 방법으로 나를 설득해 주기를 바랐다.

 

 

 

새삼 별스러울 것도 없어요. 세상엔 나잇값 못 하는 사람들 천지니까. 오히려 아이가 더 어른스러울 때가 있기도 하죠. 나이가 어른임을 증명하는 건 진짜 아닌 것 같아요. 어른은 어른답게 행동하고 자신과 남들이 인정해줄 때 붙일 수 있는 말 같습니다.

 

고모와 순지


고모와 그의 자녀 순지가 집에 찾아옵니다. 할머니가 물려주신 아파트를 말아먹고 갈 곳이 없었거든요. 고모도 처음엔 이 집을 팔고 세입자를 들이거나 이 자리에 새 집을 짓자고 설득 해요. 하지만 경주의 의지가 너무나 올곧았기 때문이겠죠. 고모는 적어도 삼촌처럼 끝까지 막무가내는 아니었습니다.

순지는 경주의 친구예요. 그도 처음엔 집을 파는 쪽에 생각이 기울어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삼촌이 저렇게 나오는데 결국은 팔게 되지 않을까, 하고요. 하지만 순지는 그렇게 생각을 했다 하더라도 아무런 힘이 없었어요. 미성년자였으니까요. 그는 종종 경주의 말동무가 되어줍니다.

고모부


경주 입장에서는 매일이 자연재해와 같은 하루 하루였겠지만 독자 입장에선 꽤 순탄한 전개였다고 생각합니다. 고모부가 등장하기 전까지는요.

고모부는 고모와 이혼한 사이예요. 이미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있죠. 그런데 왜 이 집에 찾아온 건지 모르겠어요. 게다가 길진 않지만 이 집에 잠시 잠깐 함께 살 거라네요? 이 집을 팔면 어마어마한 돈이 생기거든요. 정말이지 그 '돈'때문에 나잇값 못 하는 어른들이 하나 둘씩 생겨 나는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스포가 될 수 있겠습니다. 책을 읽으실 예정이신 분들은 이 부분 패스하시길 바라요. 거의 종반부에 고모부는 대단한 결심을 하나 하는데요. 아무리 설득을 하고 겁을 줘도 경주는 눈 하나 깜짝 안 하잖아요, 여기서 정말 못난 행동이 나옵니다. 삼촌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건 바로 경주를 지하 창고에 가두는 일이었어요. 집 서류를 넘겨주면 문을 열어준다네요. 삼촌은 옆에서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느냐'며 고모부를 말렸지만, 내심 이렇게 해서라도 일이 해결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을거예요. 결국 경주는 하루 반나절 정도를 창고에 갇혀 있게 됩니다.

경주를 꺼내준 사람은 근처에 사는 성이 할머니였어요. 사실 꺼내준 건 아닙니다. 성이 할머니는 경주 할머니가 돌아가신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분이 아니었거든요, 치매에 걸리셔서요. 자주 경주네 집에 와 정원을 손질하고 성이와 함께 돌아가시곤 했죠. 할머니가 창고로 다가가자 성이가 "할머니?"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것이었어요.



 

 

그 이후 고모와 고모부, 삼촌은 난리가 납니다. 경주가 듣고 있는지도 모르고 한바탕 말싸움을 해요. 고모는 삼촌에게 말합니다. 경주의 엄마 아빠가 죽은 건 너 때문이라고. 네가 경주의 엄마 아빠를 그 날 하필 불렀기 때문에 보러가다 사고가 난 거라고. 경주의 아빠가 할아버지 눈에 드는 게 네 입장에선 눈엣가시 아니었느냐고 말해요. 삼촌은 아빠가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다고 항변했지요.

이 집을 주축으로 경주의 부모님, 조부모님, 삼촌과 고모 등은 불편하게 얽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집도 나름의 비밀을 감추고 있었죠. 할아버지의 친구가 망하는 기회를 이용해 지어진 집이라는 게 삼촌의 단골멘트였어요. 그리고 그 친구가 찾아와 실수로 자신의 팔을 칼로 스쳤을 때 나온 피 때문에, 할아버지가 평생 삼촌의 요구를 들어주고 살아왔다는 사실도 경주는 어른들의 말싸움을 통해 알게 됩니다.

고모부는 지하 창고 사건 이후 집을 나가요. 그 날이 모두에게 전환점이 되어주긴 했나 봐요. 가장 큰 변화는, 삼촌이 달라졌거든요. 아무래도 조카를 창고에 가둔 건 아무리 인간 말종이라도 양심에 찔리는 일이었긴 했나봅니다.

삼촌과 나는 여름의 질서 속에 한참을 고요히 서 있었다. 삼촌이 어깨를 한 번 들썩이더니, 비밀이라도 말하듯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내가 잘못했다." 삼촌은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현관을 향해 돌아섰다.


다행이죠. 그런데 이제까지 경주가 마음 고생한 건 어디서 보상을 받을 수 있나요? 철이 없기로소니 고등학생 조카 앞에서 자신의 철부지 같은 행동을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나 싶습니다.

이 책을 덮고 씁쓸했던 이유는 이 책에 나오는 삼촌, 고모부, 고모 같은 어른들이 상당히 많다는 현실 때문이었어요.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건 저도 누군가에겐 이렇게 지긋지긋한 사람일 지 모른단 사실...)

진짜 어른은 어떤 사람을 일컫는 말일까요? 책에서 경주는 소중한 것을 자신의 소신을 걸고 지켜내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지 않으면서 자신의 뜻을 관철 시키는게 꽤 어른스러워 보이긴 했어요. 책에서 던지는 질문은 아니긴 하지만요. 생각해 볼만한 물음인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나는 물론이고 타인을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짙어집니다. 나와 타인에 대한 배려. 이 균형을 맞추는 삶을 살고 싶네요.



 

 

끝으로... 제목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왜 '나로 만든 집' 일까. 이 집은 말그대로 '경주'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목숨을 걸고라도 지키려고 했던 게 아닐까요? 나는 내 몸도 있지만, 생각도 있고 의지도 있고 신념도 있죠. 경주의 그 모든 것이 이 집을 이루고 있던 것이라고 생각해요. 결국은 아무도 이 집을 허물 수 없었습니다. 경주가 경주를 포기하지 않아서 아무도 허물 수 없었어요. 힘들었겠지만 끝까지 자신의 소리에 귀기울여 준 경주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이 책을 청소년들이 읽는다면, 많은 것을 가지고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자신의 옳다고 생각되는 소신을 어른들 중에도 나잇값 못 하는 덜 큰 어른들의 말을 듣고 꺾지 마세요. 그저 나이만 먹은 어른들에게 굴복하지 않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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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스포주의)



여기 교육열이 어마무시한 엄마가 계십니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들, 쌍둥이를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데요. 어느 날 갑자기 두 아들 중 한 명인 건휘가 스스로 세상과 작별을 고해요. 왜? 영재 소리 듣는, 엄마 말 잘 듣는 착한 아들이 대체 왜?

혼자 남은 아들 선휘는 엄마를 더 미워하게 돼요. 선휘는 형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 누구보다 이유를 잘 알았거든요. 그는 형처럼 고분고분하게 말을 듣다가 나중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건강하게 자신의 감정을 다 표출했죠.

다행히도 선휘의 절규 앞에 엄마는 정신을 차려요. 평생 자신의 신념이 옳은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녀이기에 내려놓기란 아마 쉽지 않았을겁니다. 그런 엄마를 선휘는 이제 용서할 수 있을까요? 그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혼란의 와중에 은빈이라는 친구를 만나 겪게되는 감정선 이야기는 꽤 흐뭇합니다. 건전하고 바람직한 이성관계란 이런 것이다 란 생각이 들더군요.

 

엄마와 아빠



 

집에 티비가 없음은 물론이고 거실의 벽은 책이 빼곡히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집에서 쌍둥이들은 오로지 1등을 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요. 엄마를 위해서.

아빠는 바쁘다는 핑계로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아요. 그러던 어느 날 선휘는 목격해요. 정처없이 광장을 배회하는 아빠의 모습을. 엄마의 아이들을 향한 도가 지나친 간섭에도 이렇다할 발언을 하지 못하는 아버지. 엄마로부터 아이들을 지켜줄 힘이 없는 무능력한 아버지. 쌍둥이는 세상에서 가장 편한 곳이어야 하는 집이 지옥 같았을겁니다. (대종이모라는 분이 아이들을 위로 해주었다고 하지만, 엄마와의 대립으로 결국 그녀 또한 집을 나가요.)

한 명이 애를 잡으면 한 명은 말리기라도 해야 하는데 이 집은 아무도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었어요.

그리고 엄마의 공부를 시키는 방법은 참으로 올바르지 못합니다. 1등을 하라고만 가르치기 때문이죠. 그리고 혹여나 성적이 떨어지면 가차없이 매를 들었습니다.


선휘 엄마와 스카이캐슬의 예서 엄마



 

책을 읽으며 문득 스카이캐슬의 예서 엄마가 생각났습니다. 그녀 또한 딸의 의대 진학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선휘 엄마와 예서 엄마, 이 둘에게는 차이점이 하나 있었어요.

예서 엄마는 그래도 아이의 감정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예서가 친구들과 팀을 짜서 공부를 해야 할 때 그 안에 혜나가 있는 걸 알고 엄마에게 짜증을 부리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엄마는 거기에 대고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말을 하지 않아요. 딸이 오죽하면 저럴까 싶어 그 팀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차라리 자신이 다른 학원들을 더 알아보기 시작하죠.

예서가 좋아하는 우주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있었을 때도, 딸이 혼란스러워 하자 엄마는 진실을 폭로하려면 이제까지 해온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데,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할 수 있겠느냐며 울면서도 딸의 의견을 물어요. 모녀는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열심히 살아왔던터라 그간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기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는데 말이에요.

 

밤새 고민해봤는데, 우리 딸 잘 먹고 잘 자고 마음 편한 게 제일일 것 같다.




그녀는 내가 코디만 쓰지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거라고, 엄마가 정말 미안하다고, 너를 너무 사랑한다고 딸을 꼭 끌어안으며 울어요. 생각해보면 예서 엄마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미움을 사는 인물이었지만, 자식에게만은 일관되게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에비해 선휘 엄마는 어떤가요? 건휘가 농구를 하다 한 아이의 목을 조르는 일이 있었어요. 그 아이는 곧바로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는데요. 소식을 들은 선휘 엄마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건휘가 선휘보다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선휘에게 가서 형이 한 걸 네가 한 짓이라고 말해줄 수 없겠느냐는 충격적인 말을 해요.

물론 한낱 이야기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로 진지해질 필요가 없다는 건 저도 압니다만, 선휘 엄마의 공감 능력이 결여된 모습에 주목할 필요는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말을 들으면 선휘 그리고 건휘가 어떤 감정을 느낄까요? 선휘 뿐 아니라 건휘도 혼란스러웠을겁니다. 엄마가, 어른이, 아니 애도 장난으로라도 이런 말은 안 해요. 절대 하면 안 되는 말이잖아요.

그렇게 아이들의 정서를 파괴하면서까지 엄마가 지키고 싶었던 건 '1등'이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1등'을 지키고 반드시 명문대에 진학을 시켜야만 했어요.

예서 엄마와 선휘 엄마의 공통점은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다는 것. '왜 저렇게 극성일까?' 하지만 둘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아이의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할 때, 내 생각을 존중했느냐 아이의 생각을 존중했느냐. 거기서 갈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평상시 아이의 자존감, 자신감에 관심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하는 것도요.

예서는 한바탕 소란을 겪고 다음해 수능을 준비하게 되는데요. 자신이 직접 짠 자기주도 학습 계획표를 엄마에게 보여주며 씨익 웃죠. 그에반해 선휘는 엄마가 잘못했다고 하는 뉘우침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잘못을 용서하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말을 남기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의 감정을 존중해야겠습니다. 성적은 다시 올리면 되는데, 애착손상은 다시 회복 시키기가 아주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내게 취미와 특기라는 게 있었나? 취미와 특기도 어쩌면 학교 수행평가를 잘 받기 위해 급조된 것이었다. "나에 관해서 아는 게 그렇게 없어? 생각 좀 하고 살아라, 짜식아!" 선생님들은 이렇게 다그쳤다. 나에 대해 생각하고 느낄 틈을 공부에 빼앗긴 아이들을 무뇌아 취급했다.


아침 일찍 학교 갔다가 학원까지 마치고 집에 오면 늦은 밤인데 취미 특기 만들 시간이 어딨어요. 공부가 취미라고 말해야 할 것 같은 환경을 만들어놓고 '너는 너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느니... 웃겨요.

저 학교 다닐 땐 방과 후 활동이 활발하지 않은 편이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어요. 다양한 흥밋거리를 접하고 배울 수 있게 학생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장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취미 특기 못 찾으면 어때 스트레스라도 풀고 가라는 의미에서라도요.

개들은 움직여야 했다. 이대로 살이 더 찐다면 아마 영원히 걷지 못할 수도 있다.


선휘와 은빈이 길을 걷다 목줄이 짧게 매인 개를 발견해요. 채소 과일을 파는 아저씨가 늘 곁에 묶어두는 개였죠. 그들은 개가 너무 불쌍했어요. 그래서 한 명이 망을 보는 사이 한 명이 줄을 끊어 개를 구해줍니다.

그리고 개의 목에 연고를 발라주어요. 그 개는 몹시 뚱뚱한 개였는데요.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아 배가 땅에 닿을 정도였어요. 개는 뛰어다녀야 하는데... 아저씨가 너무하단 생각에 그들이 벌인 꽤 과감한 일탈 행동이었죠.

하지만 곧 경찰에 붙잡혀요. 개 주인 아저씨에게 혼이 나고요. 물론 선휘의 엄마에게도 호되게 혼이 납니다. 선휘 엄마는 역시 개는 안중에도 없지만...

선휘는 그래도 설명했어요. 엄마가 이해할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목이 짧게 줄에 매여 갑갑해보였다,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 하는 개가 너무 가여웠다, 개는 뛰어다녀야 한다... 그래도 여전히 엄마는 '어떻게 내 아들이 이런 일을!' 에만 포커스가 맞춰져 있네요.

개는 달려야 해요. 이대로 살이 더 찌면 영영 달리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사람은 자유가 있어야 해요. 자유를 억압 받으면 세상으로 달려나가야 할 시기에 나가고 싶어도 발이 땅에 못박힌 것처럼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할 수도 있어요.

나쁜 엄마의 공통점이 뭔지 알아? 늘 불안하고 근심 걱정을 달고 살지. 언제나 망상이 먼저 발동하고 결국 아이 뜻을 꺾고 지배자가 되려고 해. 어쩌면 엄마는 감정이 마비되어 있는지도 몰라. 그러니까 내 감정을 읽지 못 하지. 누가 엄마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당사자인 아이의 기분이 어떠한가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아이가 지친다는 신호를 보내올 때 누구보다 빨리 알아채주는 엄마가 되고 싶어요. 남들이 다 가지 않는 길이라 할지라도 아이가 가고 싶어하면 기꺼이 아이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누가 엄마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러게. 누가 우리를 이렇게 조급하게 만들었을까?

엄마는 단 한 번도 내 말에 귀 기울여 준 적이 없는 사람이다. 내가 행복하길 바라기보다는 나 때문에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이다.


육아가 참 어려워요. 우리는 인생을 먼저 살아봐서 어떤 길이 덜 힘들고 더 빠른 길인지 대충 알잖아요. 사랑하는 아이에게 지름길을 알려주고, 나름의 비법을 전수해주고 싶은건데... 아이는 꼭 제 몸으로 부딪혀 생채기를 낸 다음 경험치를 얻고 싶어하죠. 내 의도와는 달리 나를 오해할 수도 있고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얘... 내가 낳았어도 내 소유물은 아니잖아요. 실패할 권리, 상처받을 권리 있잖아요. 내겐 아이를 따뜻하게 안아줄 권한만이 있을 뿐이고. 내 생각이 맞음이 틀림없어도 가끔은 뒤로 물러나 줄줄도 알아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 방황해라! 그러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눈을 떴을 때 현기증을 느끼며 보는 세상, 거기서부터 시작이라고 오소희 작가님이 그랬다.) 내 욕심을 앞세워 가로막지 말아야지.

아이에게 분칠을 시켜 예쁘게 포장한 다음 무대 위에 올려놓고 내가 박수갈채를 받는 세상에서 가장 못난 엄마만은 절대 되지 않으리라고 새삼 또 다짐해봅니다.





선휘의 엄마가 변한 결정적인 계기는 선휘가 베란다 밑으로 떨어지려 할 때였어요. 하마터면 큰일날 뻔 했지요.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두 아들을 모두 잃을 뻔 했어요. 그 일이 있은 이후 엄마는 병원에 입원해 심리치료를 받아요. 선휘는 학교를 그만두고 사막으로 여행을 떠나고요.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납니다.

아이가 꿈을 갖도록 환경을 조성해주고 꿈이 생겼다면 도와주고 지지해주는 게 부모의 역할인 것 같아요. 1등을 해야 한다고, 전교회장에 나가 스펙을 한 줄이라도 더 늘려야 한다고 잔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요.

이 책은 다소 과장된 면이 없지않아 있습니다. 모든 엄마들이 선휘 엄마같지는 않을거예요. (그녀는 정신증을 앓고있는 것처럼 보였...) 선휘 엄마보다는 그로인해 힘들어하는 쌍둥이에 초점을 맞춰 읽으시면 더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픽션이지만 안타까운 이야기였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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