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히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된 책이었어요. 저도 얼마전에 이별을 했는데요. 받아들이면 너무 슬플 것 같아서 아주 아주 천천히 받아들이려고. 그럴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영영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고있어요.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의 이별은 어떤 모습일까, 또 아픔을 이겨내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궁금해서 읽게 된 책이었습니다.



이 책에는 '이별카페'라는 소재가 나와요. 그 이별카페에서 사람들은 이별을 하게 됩니다. 근데 생각보다 슬프지는 않아요. 제 발로 이별하러 들어와 이별하고 나가거든요.

이 카페를 만든 사람을 먼저 소개할게요. 그리고 인상 깊었던 구절과 제 생각을 공유할게요.



 

동물을 사랑한다는 마음으로 했던 일들이 동물에게 상처를 주고 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더 이상 이 직업을 끌고 가기 어려웠다. 그리고 어느 날 생각했다. 이별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 이별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고 말이다. 이별은 늘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니까, 우리는 늘 그 이별에 서툴러서 당해 오기만 했으니까. 그래서 이별카페를 차리게 되었다.


이 카페의 사장은 카페를 차리기 전에 동물 돌보는 일을 했었어요. 그러다 이별을 하게 됐고요. 그 상실감으로 인해 차리게 된 카페죠. 이별카페는 이별을 앞두고 정중한 인사를 하는 곳입니다. 나 그리고 상대에게요.

사장에게 크게 할 일이랄 건 없어요. 손님을 맞고, 커피를 내려주고, 조용히 있는 일. 하지만 여느 카페와 조금 다른 점이라면요. 눈치가 빨라야 해요. 오늘 이별 할 것 같은 손님에게선 조금 떨어져 있어주고, 오늘 이별 할 것 같지 않은 손님에게는 달콤한 타르트를 내다주면 됩니다.

그 덕에 손님들은 자유롭게 카페를 구경할 수 있고, 이별할 수 있어요.

이런 카페... 어떠신가요?





저는 누군가와 들어가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저 혼자서는 가보고 싶어요. 왜 누구나 자기 자신의 어떤 면과는 이별하고 싶잖아요. 떼어내버리고 싶은 트라우마라든가 약점 혹은 단점이요. '영원히 안녕! 내게서 안녕!' 느낌으로다가 제 자신의 일부와 영원히 이별하러 방문하고 싶네요.

방문을 한다고 다 이별이 되는 건 아니겠지만 제 발로 카페에 발을 들였다는 건 이전에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는 거니까 카페에 들어오기 전, 99도까지 끓여놨다가 카페에 들어가 마지막 1도를 끓여 마무리 되는 느낌을 받아보고 싶어요.

5월을 가정의 달로 정한 사람은 누구일까. 어버이날, 스승의날, 성년의날을 앞두고 가판대에는 카네이션과 장미 등 다채로운 꽃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어떤 이들은 5월이 되면 돈 나갈 일이 많다고 하던데. 나의 월급과 가정의 달은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인다. 우습게도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는 더욱 그렇게 된다. 5월은 푸른가? 5월은 짠하다. 찡하다. 짠내 난다.


이 책에는 유독 가족 사이에서의 이별이 많았어요. 가족이 어떻게 헤어질 수 있느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존재하니까요. 존재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는 존재가 가족일 수 있죠. 이 사람이 없어야만 내가 살 수 있는 그런 형태가 얼마든지요.

조금 독특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아버지가 돌연 스님이 되어 절에 들어가신다고 하는거예요. 이미 준비를 마치고 통보를 하고 있는 아버지 앞에 딸은, 이미 어릴 적에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에게 의지해 살아왔던 딸은, 그저 받아들이는 수 밖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아버지는 딸의 심경을 헤아리지 못한 걸까요? 저는 헤아리고 또 이해도 하지만, 내가 살 길이므로 선택이 아닌 운명에 몸을 맡긴거라고 생각했어요. 아버지는 스님이 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을 거예요. 잘은 모르지만.. 신의 부름을 받았다고 스스로 믿는 사람에게 한낱 인간의 설득이 통하겠습니까.

괴로움은 왜 나의 몫인 거야.


딸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괴로워합니다. 아버지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시간이 천천히 흐르기만을 바라요.

하지만 정해진 날은 다가오고 아버지는 끝내 생각을 바꾸지 않았어요. 아버지를 놓아주어야 할 때가 왔어요. 딸은 이제 어머니도, 아버지도 없습니다.

앞으로 결혼식장에 아버지 없이 들어가야 하고요. 주변 사람들에게는 평생 딸이 아버지에 대해 설명을 하고 다녀야 해요.

아버지는 제 삶을 찾아 떠난 것 뿐이지만 남겨진 딸은 속이 무척 상해서 충분히 저런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괴로움은 왜 나의 몫인 거야.' 짠하더라고요.

커피 두 잔이 내 손에서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었고 난 주춤거리며 너에게로 다가갔어. 설마... 인수야... 내 곁에 네가 없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어. 난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어서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6개월은 은둔 생활을 한 것 같아. 꿈에도 네가 나타나질 않더라.

인수 너희 어머님에게 매일 전화가 왔었어. 잘 지내느냐, 밥은 먹고 다니느냐, 인수가 보고 싶어질 때에는 너에게 연락해도 되느냐. 난 어머니와 같이 울면서 그 전화를 받았어. 너 없이도 살아가기는 해야 하니까 나 얼마 전에 새로운 직장에 취업했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은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이해가요. 현실로 돌아가 제 몫을 하며 살다가 황망히 떠나버린 사람이 문득 떠오르는 순간이 오면, 이별을 겪었던 그 때 그 시간의 충격이 다시금 되살아나는 기분이거든요. 차라리 그럴바에야 그냥 계속 아프자, 하고 무의식이 택한 결과가 아닐까 싶어요.

몽롱한 안개가 걷히기까지의 기간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 정도면 됐잖아' 같은 위로를 가장한 헛소리를 듣는 분들이 없으시기를 바라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을 바라보는 입장이라면, 그저 기다려줘요. 인수 어머니처럼 밥은 먹었는지 요즘은 잘 지내는지 애정어린 관심을 보여주면서요.

맑게 갠 하늘에 하얀 물감 풀어 놓은 듯 구름이 연신 지나갔다. 잘 지냈니.


내가 지나가다가 하늘을. 민들레 꽃씨를 빤히 쳐다보면 그건 너를 생각하고 있는거야. 구름과 바람과 꽃과 나비는 네가 내게 인사를 건네는거지? 매년 찾아와주라. 소식 좀 전해주라.

엄마가 그리운 건 상처 받은 유년시절의 나이지, 지금의 내가 아니다.


엄마에게 두 번 버림 받은 딸의 사연이 나와요. 엄마는 그 때도 도망, 지금도 도망. 비겁한 사람이라서 이별카페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요. 딸 혼자 덤덤한 이별을 하는 모습이 불쌍하기도 하고 애처로워서 어깨를 토닥거려 주고 싶었어요.

위의 말은 지금도 물론 상처 받았지만 유년시절의 내가 받은 상처의 크기가 더 크다는 뜻일거예요. 그 때의 상처부터 위로를 받고 싶었을텐데. 오히려 또 상처를 받고 말았네요.

이별카페에서 스스로에게 주는 위로로 충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별노트를 읽고 있는 당신은 지금 어떤 사람입니까?


내일 당장이라도 이별카페에 달려가고 싶은 사람이요. 저는 하루만으로 끝날 수 없을 것 같아요. 단골 손님 될 것 같은데요. 저의 이것도 버려야 하고 저것도 버려야 해서. 사장님이랑 안면 틀 것 같아요.

딱히 이별하고 싶은 사람은 없네요. 다행이에요.

당신은 어때요?

오늘과 이별을 앞둔


이어지는 평범한 말 가운데 눈에 띈 말이었는데 붙잡아 두고 싶었어요. 그래서 박제.

말이 참 묵직하지 않나요? '나는 그 무엇과도 이별 할 게 없는 사람' 이라고 생각했던 분들, 여기 이별할 게 생겼습니다.

오늘과 이별해야 해요. 오늘과 잘 이별하시길 바라요.

갑자기 일기를 써야 할 것만 같네요. 일기를 쓰면 하루 중 잊어도 되는 것들은 걸러지고 기억해야 할 것들은 오래 남게 되니까. 하지만 저는 요즘 귀찮아서 일기를 쓰지 않아요. 그래서 오늘과 쿨하게 이별하는 느낌이 들지 않나 봅니다.

'어정쩡한 상태로 내일로 이동!' 하는 느낌...





얼마 전에 이별을 해서 도움을 좀 얻어보고자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제가 서두에 그랬잖아요. 솔직히 큰 수확은 없었어요. 제목처럼 이별에 서투른 사람들의 경험을 훔쳐본 것 같은 느낌이에요.

다만, 여러 사연이 나오는 가운데 그 안에 저를 대입해서, 제 소중한 사람들을 대입해서 읽다보니 가벼이 넘길 수 없는 무거운 감정들에 몇 번이고 발이 묶였었어요.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책이었습니다.

무덤덤하게 읽은 편이었지만 감수성이 풍부하고, 비슷한 상황에 놓여계신 분들이 읽으면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겠어요. 그 분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작가님도 그러한 마음으로 이 책을 만드셨을테니까요. 좋은 책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좋은 시간 보내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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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이 심하게 와서 이것저것 막 다 해보다가 결국엔 책을 집어들었어요. 목차도 안 보고, 지은이가 누구인지도 알아보지 않고 그저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된 책이었는데요. 따뜻하더라고요. 저자는 <여수언니 정혜영>이라는 이름의 유튜버이기도 해요. 책을 읽는 내내 '어떤 사람이지...' 찾아보지 않고서는 못 배길 정도로 궁금해져서 영상을 기웃거리기도 했답니다.


제목에서 느껴지다시피 이 책은 독자에게 위로와 휴식, 응원을 주고 있어요. 목차를 몇 개 소개 드려볼게요.

오늘 나는 행복으로 할래 / 오늘은 행복할 내일의 예고편 / 운 좋게 실수했다 / 시련의 꽃말은 터닝포인트 / 아낌없이 나를 키우는 양육자 / 언제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등등...
(물론, 많은 목차 중 제가 마음에 드는 것들로만 쏙쏙 뽑아온 거예요.)

사실 저는 내용보다 목차를 더 오래 볼 때가 많았어요. 특히 '운 좋게 실수했다'는 너무 좋더라고요. 단 한 줄 만으로도 여러 생각을 할 수가 있더군요.

에세이기 때문에 제가 꼭 전해야 할 메시지는 없어요. 인상 깊었던 구절을 공유하며 제 생각도 덧붙이는 형식으로 글을 써 내려가 볼까 합니다 :)

 


 

1층부터 10층까지 열 번 정도 달려서 왕복하면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심장은 터질 듯이 뛰었고 기분도 상쾌해졌다. 한 층 한 층 올라가며 목표를 달성하는 기쁨도 있었다.


'나는 뭐 하는 사람이에요.' 굳이 소개 하지 않아도 일상 루틴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대충 저자는 이러한 사람이구나, 라는 게 파악이 됐어요.

운동을 좋아하고 잘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궁금해서 유튜브를 들어가보니 방송을 켜놓고 운동하는 모습을 촬영해 업로드 한 영상이 있을 정도로요. 육아를 하는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새벽의 정해진 시간엔 무조건 일어나 운동을 하는 꾸준함과 성실함에 감탄했어요.

1층부터 10층까지 열 번 왕복? 저는 엄두가 안 나요.

어느 날은 <나는 의사다>라는 팟캐스트에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나와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상담하러 온 환자들이 빠짐없이 던지는 질문이 있다고 한다. "선생님은 행복하세요?"

늘 우울하고 슬픈 환자를 상담하는 선생님은 과연 행복할까? 환자들은 궁금했을 것이다. 그 질문에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1년 중 20일은 행복하고, 300일은 힘들고 나머지 45일은 그저 그렇다고. 365일 중 딱 20일만 행복하다는 말에 환자들은 다시 궁금해한다.

"그런 삶은 불행한 삶 아닌가요?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살아요?"

"저는 그 20일을 기다리는 재미로 삽니다. 한 달에 행복한 날이 딱 이틀만 있어도 그 이틀을 기대하고 기다리면서 오늘을 보낼 수 있지요. 오늘 조금 힘들어도 행복하게 보낼 내일의 예고편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누군가에게는 깊이 공감이 될 말 같아서 하이라이트 해두었었어요. 오늘 많이 상처받고 힘들었어도 너무 크게 좌절하지 말아라,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 는 취지의 말 저도 좋았었고요.

오늘 힘들었어도, 비록 내일도 힘들 예정이어도 화이팅이에요. '한 달에 행복한 날 딱 이틀!' 이 기다리고 있어요. 그 날이 미처 내게 못 오고 지나쳤다면 또 다음 달을 기약하면 되고요.

이제나 올까 저제나 올까 어떤 방식으로 올까 기대하며 사는 인생, 희망적이고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긍정적으로 살다보면 한 달에 딱 이틀! 있는 행복의 수도 자연스럽게 늘어나지 않을까요?

운 좋게 실수했다


위에서 잠깐 언급했는데 이 짧은 한 문장에 되게 오래 빠져 있었어요. 거창하게 말하자면, 인생을 되돌아보게 되던데요.

요즘들어 그런 생각을 해요. 이십대 때 많이 실수 해두길 잘했다고. 그 때 당시엔 그 날, 그 시간, 순간 하나 하나가 견딜 수 없이 아파서 괴로웠는데 지금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자산이 되어 있으니까요. 이래서 어른들이 이십대 때 경험을 많이 해보라고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 주변을 둘러보면 과거에 내가 한 실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느냐에 따라 현모습이 결정되어 있는 것 같다고도 생각한답니다.

물론 떠올리는 것만으로 아직도 가슴 찌릿한 실패도 있죠.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겪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이다 싶은... 최근에 어떤 영상을 봤어요.

이미 벌어진 사건은 제자리에 있어요. 사건은 움직이지 않아요. 그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만 의지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거예요. 내가 별 일 아니라고 하면 별 일 아닌거고, 이거 되게 큰일이다 하면 그렇게 되는거라고 하더라고요.

...음, 그래도요.

너무 큰 상처를 받아서 어떠한 말로도 위로도 회복도 안 되는 일이 있을 수 있어요. 그 일을 도약하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 자체가 또 다른 형태의 가해일 수 있는 일이 있죠. 이해해요. 그래서 모든 사람들에게 '시각을 달리해보세요.' 라고 감히 말 할 순 없어요.

하지만 저는 조금씩 시도 해보려고요. 그 기억이 나를 갉아먹고 있다면 방향을 틀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럴 용기가 조금은 생겨서요. 언젠가는 끔찍한 기억도 "그래, 운 좋게 실수했다!"고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날이 꼭 왔으면 좋겠어요.

화살은 활시위를 뒤로 최대한 당겨야 가장 멀리 날릴 수 있고, 공은 높은 곳에서 떨어뜨릴수록 더 높이 튀어 오를 수 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엄마가 된 입장에서 이 글은 씁쓸하고 먹먹합니다. 이십대 때의 저라면 이 글에 위로를 받고 원동력 삼아 오늘처럼 내일도 열심히 살았을 거예요. 내일 더 열심히 했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활시위를 뒤로 최대한 당길 수가 없네요? 내가 그러고 있으면 내 딸이, 애기 아빠가 방치 되니까.

온전히 나 자신 한 명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던 미혼의 제가 문득 그리워졌어요.

아이가 조금 더 크면 또 다시 한 번 이렇게 열정적으로 내 자신을 위해 활시위를 뒤로 당길 수 있는 날이 오리라고 믿어요. 염원해요.

삶은 실패와 성공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 해냄과 배움으로 나뉜다. 실패는 늘 나에게 배움을 준다. 실패의 끝에는 어제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나아진 내가 있다.


저 - 위에 했던 말과 일맥상통하는 글이네요. 말이 이어지니까 제 말도 더 이어보자면요. 아이유 노래 중에 '아이와 나의 바다'라는 곡이 있거든요. 거기 이런 가사가 나와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일들이 있지."

실패로 인해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상황과 시간과 마음 그리고 또 다른 여러가지가 동시에 도와줘야 겨우 회복이 가능하잖아요. 왜 그런 일이 있잖아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분이 계시다면 왜 나만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 하는지 실패 속에서 배우지 못 하는지 자책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힘들 때 저 가사를 떠올려보세요.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없는 일도 있고, 그 안에서 내가 뭘 배우지 못 하고 있어도 이상한 게 아니라 정상적인 거라고요. 해석은 제각각인 거니까 저는 이상하게도 위 글을 읽고 이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둘째, 스스로 기분을 잘 풀어줄 수 있을 때.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화도 나고 눈물도 나고, 주체할 수 없이 짜증이 나기도 한다. 어깨에 짊어진 짐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을 더 많이 느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른이라면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언제쯤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챕터에요.)

어릴 때는 화가 나면 주체할 수 없는 상태로 살았던 것 같아요. 울고, 화내고, 그러다 무덤덤해지고... 나 자신이랑 대화하는 법을 몰랐으니까요.

이제는 내가 내 눈치를 보고 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음식을 먹여주며, 장소들에 데려가줘요. 내 기분을 풀어주려 애써요.

넷째, 정신적 성장을 멈추지 않을 때. 신체는 20대가 되면 대부분의 성장이 멈추고, 그 이후부터는 점차 노화의 과정을 겪는다. 하지만 정신적인 성장은 나이와 상관이 없다.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생각하고 바라고 실행하고, 많은 경험과 실패를 거듭하며 한 단계씩 나아갈 때 성장할 수 있다. 특히 부끄럽거나 싫은 일, 힘든 일을 마주했을 때 도망치지 않고 묵묵히 받아들이며 책임감을 발휘한다면, 한층 더 성숙한 어른이 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첫째, 셋째가 빠져있어 혼란스러우실까봐 알려드려요. 첫째는 '단단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을 때', 셋째는 '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있을 때' 입니다.)

저는 유독 둘째, 넷째가 와닿았고 그래서 그 부분만 하이라이트를 해두었어요.

부끄럽거나 싫은 일, 힘든 일을 마주했을 때 도망치지 않고 묵묵히 받아들이며 책임감을 발휘한다는 말이 좋았어요. 어릴 때는 나이 핑계 대며 어느 정도 피해갈 수 있는 일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안 되네요? 만에하나 제가 지금 감당해야 할 무게를 짊어지지 않겠다고 내팽개치고 도망가버린다면, 삶에 큰 균열을 일으키는 매우 중대한 사건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돌이킬 수 없을 것도 같고.

그래서 무거운 부담감을 갖고 있지 않아도 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어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타임머신 개발은 대체 언제 되는거야...(뜬금)

어른이니 어른답게 책임감 있게 받아들이고 그때 그때 잘 처신하며 살아야죠. 이제는 부끄럽다고, 힘들다고 도망치지 않을거예요. 이젠 그게 더 부끄러워요.





책 속에 더 좋은 내용이 많았는데 제게 와닿았던 내용들만 다루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짧다고 느끼실 수도 있어요. 아쉽지만 이해가 잘 되지 않거나 공감이 되지 않았던 내용을 억지로 붙잡고 있긴 싫어서요.

저처럼 한 문장을 가지고 반나절 이상 골몰하는 분들에겐 딱 맞는 옷 같은 느낌이 아닐 수도 있지만요. 마음을 살랑살랑 훑고 지나가는 산뜻한 바람 같은 책을 기다리는 분들에겐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읽을 때, 잔잔하고 조용한 음악과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고요.

저자분이 워낙에 긍정 에너지 뿜뿜이시거든요 :) 위로와 더불어 자존감 향상에도 도움 되는 책을 찾고 계시다면 이 책 추천 드려요. 좋은 시간 되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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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어보니까 진정한 엄마 역할이 뭔지 알 수 있겠더라고요. 그 전에는 사회에서 강제로 씌운 엄마라는 가면, 내 엄마의 모습이 진짜고 전부인 줄만 알았어요.

잘못된 건 잘못된 거고요. 엄마도 미숙할 수 있어요.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모두 모성애가 있는 건 아닌 것 같고요.

이 책에서는 자기중심적이고 착취적이며 학대자인 엄마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사례가 담겨 있어요. 생각보다 극단적인 사례가 많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하니까요. 이보다 더 심한 엄마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대자인 엄마 밑에서 살고 있는 자녀들을 위한 대응법도 알려줘요. 실수로라도 입바른 소리 하지 않는 게 이 책의 특징이고요. 쉽사리 용서하란 말, 절대 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지독하게 자기중심적이며, 착취적인 학대자다. 자신의 자식조차 감정 쓰레기통이나 에너지 공급원으로 사용하며 끊임없이 남의 자존감을 도둑질해야만 살 수 있는 사람들이다.


책은 전체적으로 이렇게나 매운맛입니다. 돌려 말하지 않아요. 저자는 엄마가 나를 낳아준 사람이긴 하지만 내 정신에 지독한 피해를 입혔고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준 사람이란 것을 깨닫고 거리두기를 실천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그 거리두기가 '진정한 행복을 위한 첫걸음'이란 것을 알게 되어서 그 눈부신 발견을 독자들과 함께 하고 싶어 이 책을 펴낸 것 같아요. 

 

 

나르시시스트 엄마

 

 

 

나르시시즘 정신분석학적 용어로 자기애라고 번역하며 자기 자신에게 애착하는 일을 말해요. 그리스로마신화의 나르키소스 아시죠?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사랑에 빠져 시름시름 앓다가 죽은 그 청년이요. 나르키소스와 연관지어 독일의 정신과 의사 네케가 만든 말인데요. 엄마들 중에서도 이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람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가족은 꼭 나를 위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요. 내 말에 반기를 드는 사람은 불효자, 못된 남편이며 나는 비련의 여주인공이자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충실한 사람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죠.

그들의 내면은 사실 자기혐오와 불안, 자기 자신에 대한 의구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거예요.

 

어떤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몸이 아플 때마다 딸을 원망하기도 한다. "내가 너를 낳다가 병이 생겨서 지금까지 이 고생을 하는거야!" "어려서 네가 하도 밤에 잠을 안 자서 업어주다가 내 허리가 다 망가졌어!"라는 식이다. 이런 말을 들은 딸은 끔찍한 죄책감에 시달리기 쉽다.


일명 가스라이팅이라고도 하는데 이제는 너무 빈번한 일이라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분이 꽤 많을지도 모르겠어요. 엄마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들어보지 않은 분 계세요? 죄책감이 들게 하는 말을 들어보지 않은 분 계신가요? 그렇다면 그 분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금수저입니다.

저는 방임하는 부모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은 없으나 분위기로 읽을 수는 있었습니다. 저 집 딸은 그 회사에 들어갔구나, 부모에게 용돈을 그만큼이나 주는구나 싶어 스스로를 작아지게 만들곤 했죠. 다행히 저는 이제 그게 잘못된 방식이었음을 것을 압니다. 자녀에게 죄책감이나 무력감을 주어서는 안 돼요. 제 잘못이 아닌 그들의 잘못임을 알았기에 이제 저는 마음이 후련하기까지 합니다.

그런 말을 듣고 정말 내 탓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위해 저자는 그게 아니라고 강하게 손사래를 칩니다.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요.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요. 당신을 위해 당신은 그들과 거리두기를 할 필요가 있다고요.

 

여러분이 회사에서 부당한 요구를 받거나 인격 모독을 당한다고 해도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나약해 빠졌다" "이 악물고 버텨라" "다 네가 처신을 잘못해서지"라고 이야기 할 것이다. 부당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해도 엄마가 자신의 감정을 공감해준 적이 없기에, 딸은 사회적으로 굉장히 움츠러들어 있는 상태다. 그래서 누군가 자신을 학대하거나 이용해도, 내 목소리를 강하게 내야 할 때도 번번히 침묵하게 참게 된다. 자연히 이런 딸은 학교나 사회에서 '호구'가 되어버린다. 아무리 부당한 일을 당해도 누군가에게 이야기해서 도움을 얻기보다 그저 참고 인내하기만 한다. 누구도 나에게 공감해주거나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주 어려서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참는 것뿐이니까.


개인적인 이야기긴 하나 제가 어떤 집에 갔을 때의 에피소드 하나 들려드릴게요. 그 집의 아빠가 모르고 자녀의 물건을 버린거예요. 그런데 알고보니 모르고 버린 게 아니고 서랍을 열어서 자신의 판단 하에 쓸모 없는 물건인 줄 알고 버린 것이었죠. 하필이면 그게 딸에게 소중한 물건이었고요. 딸은 화를 냈어요. 내 물건에 함부로 손대지 말라고. 내 허락 없이 버리지 말라고.

저는 그게 건강하게 화내는 모습이라고 생각했어요. 더러는 '부모에게 화를 내는 게 바람직하다고?' 의문을 가지실지도 모르겠지만요. 물론 화가 올라오지 않았다면 좋았겠죠. 하지만 분명히 내 영역을 침범했고, 그게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하는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는 건, 저는 오히려 그게 더 건강하지 못한 대응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생각이긴 해요. 그 이후 그 집에 다시 놀러갔을 때, 다행히도 아빠와 딸은 이전처럼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어떠세요? 저희 집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에요. 감히 부모에게 화를 낸다고?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 말이 이해가 가지 않으신다고요?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의 부모님께서 당신의 화를 많이 인내해주셨다는 뜻이 되겠네요. 부럽습니다.

 

여러분이 지나간 일을 하나하나 들추며 이야기 하면 엄마는 "난 기억이 잘 안 난다. 너는 그런 사소한 것까지 다 기억하고 사니? 에휴, 얼마나 피곤하겠어"라고 발뺌하며 여러분을 예민하고 속 좁고 철없는 사람 취급할 것이다. 혹은 엎드려 절 받기 식으로 사과를 받을 수는 있다. "너 자신을 위해 부모를 용서해라"라는 말과 함께.


이런 부모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상처를 아이가 이야기 해주면 저는 고마울 것 같은데... 귀 기울여 줄거예요. 그리고 진심으로 사과할겁니다. '너는 그런 것까지 다 기억하고 사니? 이제 그만 잊어버려라' 라고 하는 게 아니라요.

자기 중심적인 부모 밑에서 힘들어 하는 자녀들의 말을 듣고 간혹 섣불리 단정 짓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무리 그래도 부모인데?', '부모 자식간은 그 어떤 것보다 끈끈하다!'는 식의 말을 하면서 말이죠.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보지 않았잖아요. 그런 말은 상처 받은 사람에게 또 상처가 되는 말입니다. 그 정도는 그 사람도 알고 있어요.

저는 뚱뚱한 자녀의 자존감을 깎아먹는 엄마 밑에서 괴로워 하는 동료에게 얼른 돈을 모아 독립을 하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는데요. 나름대로 열심히 운동하고 적게 먹는데 운동 좀 하라고, 그만 좀 먹으라고 잔소리를 하는 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했어요. 심성이 착한 아이였는데 엄마 얘기만 나오면 미간에 주름이 깊이 잡히는 게 참 안타까웠었지요. 지금은 독립해서 잘 살고 있나 모르겠네요.

 

당신은 지금까지 당신 가족에게 무엇이 가족간의 사랑이고 신뢰인지 수없이 이야기해왔을 것이다. 당신의 감정이 어떤지 수없이 애원하고 소리쳐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당신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당신이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가족은 자신들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다. 당신이 그토록 끊임없이 외쳤을 때는 아무도 당신 목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당신이 침묵하고 당신의 부재가 길어질수록 가족들은 오히려 당신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이건 여타 인간관계에도 그대로 적용이 가능한 말 같아요. 한 번 '호구'잡히면 그 사람이 하는 말엔 귀가 잘 기울여지지 않는 게 사람 본능인가 싶을 정도로, 한 번 화를 내거나 내지는 사라지는 정도라야 의문을 품지, 왠만해선 스스로 반성을 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뚱뚱했던 동료에게 얼른 독립을 하라고 한 것이었고요. 아무리 말해도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듣지 않을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들을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엄마의 얼토당토않은 시비와 떼쓰기에 지쳐버린 딸이 분노해서 소리를 지르거나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고 치자. 그러면 엄마는 "너는 철이 없구나" 혹은 "너는 예민하구나"라는 식으로 반응한다. 딸이 느끼는 감정을 철저하게 아마추어적인 반응으로 무시하는 것이다. 점차 딸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확신할 수 없다. 내가 점점 미쳐가고 있는 건 아닌 지 의심이 되고, 자신을 믿을 수 없어진다.


혹 이 말에 공감이 가신다면 B. A. 패리스의 비하인드도어, 브레이크다운 이라는 책을 추천해 드립니다. 여기서 남편을 엄마라고 상정해 놓고 보면 참 재미있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그래요.

 

 

[책] B. A. 패리스 - 비하인드도어 리뷰, 가스라이팅으로 버무려진 자극적인 심리스릴러 소설

제목은 생소할 수 있어도 이 표지는 익숙한 분들 많으실텐데요. 요즘 광고 많이 하잖아요, SNS에서. 저도 광고로 이 책을 처음 알았어요. 반은 속는 셈 치고 읽었는데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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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A. 패리스 - 브레이크다운, 누가 나를 고장내려 할 때

그녀의 작품을 또 읽고 말았습니다. 그녀 덕분에 '심리스릴러'라는 장르에 흥미가 생겼거든요. 제 글을 보아오신 분들은 저자의 이름이 낯설지 않으실거예요. [책] B. A. 패리스 - 비하인드도어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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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 그것에 반응하면 '예민하다', '철이 없다'는 식의 말로 상대를 할 말 없게 만드는 패턴, 아시죠? 그리고 그런 말을 계속적으로 함으로써 '내가 진짜 그런가?'싶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거 있잖아요. 사실 이건 가족 내에서만의 문제는 아니고 언제 어디서든 조심해야 하는거긴 하죠. 이렇게 세뇌하려는 사람들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조심해야 해요.

나르시시스트 엄마를 둔 많은 딸이 유년기-청소년기-초기 성인기에는 엄마를 돌보아준다. 누군가를 돌보고 보살필 때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 대체로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보다는 어딘가 부족하고 자신이 품어줘야 할 것만 같은 사람에게 끌리는 경우가 많다. 자신을 존중해주며 행복하고 건강한 연애를 할 수 있는 남자를 거부하고, 아무리 챙겨주고 보살펴주고 돌봐주어도 절대 만족하지 않는 엄마 같은 남자를 만난다. 그리고 평생 그 남자의 필요를 채워준다. 딸은 마치 자신이 평강공주라도 된 듯이 문제 상황에 처한 연인을 도와주려 애쓴다.


가정에서 결핍을 겪은 딸은 이상하게 자꾸 나쁜 남자를 만나려고 합니다. 어딘가 모자라고 삐딱한 남자만 만나려고 해요. 내가 저 남자를 정상적으로 살 수 있게 바꾸어 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봐요. 엄마를 바꾸고 싶었으나 성공하지 못한 그 노력을 남자친구를 통해 보상 받고 싶은 심리인걸까요? 이것도 한편으론 상대를 통제하고 싶은 욕망인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비난할 마음은 없고 안타까워요.

그 중에서도 마음 아픈 건, 평강공주를 자처하는 딸이 나쁜 남자와 결혼을 했을 경우. 또 딸을 낳으면요. 그 딸도 애를 쓰지 않는 이상 나쁜 남자를 만날 확률이 높다는거예요. 소중한 내 아이에게 이런 건... 물려주고 싶지 않잖아요? 그러기 위해선 일단 내 정신이 건강해야 하고, 정신이 건강한 사람을 만났을 때 알아챌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자신에게 결핍이 있다고 생각 된다면 더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고통스러운 치유 작업을 피하고자 많은 사람이 용서를 선택한다. 용서를 해야 내가 치유 되며, 결국 모두 행복해질 거라는 환상에 빠진다. 과거를 묻어둔 채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하지만 결국은 반복되는 희망 고문 속에서 실망감만 느낄 뿐이다. 이제는 아니다. 절대로 자신이 받았던 상처를 과소평가하고 외면해서는 안 된다.


저 심리상담 받을 때 심리상담가 선생님께서 여러가지 방법을 알려주셨는데요. 편지 쓰기, 입 밖으로 말 꺼내기, 내면아이 만나기 등 제 깊은 내면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도와주셨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단 한 가지 하지 않으신 게 있는데, 그게 뭐냐면요.

용서. 섣불리 엄마를 용서하란 말이요. 선생님은 용서를 하란 말 대신 '나는 그런 아픔을 겪었지만 내 아이에게만은 그런 아픔을 주지 않을거야' 다짐하게 도와주셨어요. 용서는 마음 안에 있는 어린 아이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도 함부로 '용서해'란 말은 해선 안 되는 것 같아요. 내 속의 어린 아이가 천천히 용서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도와주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아닐까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다는 건 당시 당신의 아이가 굉장한 상처를 받았다는건데 그 깊이를 무시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나의 엄마가 되어도 좋다. 우리에겐 스스로 돌보고, 사랑하고, 길러줄 수 있는 타고난 모성애가 있다. 마음속 엄마와 함께 나 자신에 대해 느끼고, 또한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마치 두살짜리 아이를 대하듯 따뜻하고 친절하게 가르쳐주자. "나는 사랑스러워" "나는 똑똑해" "나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야" "나는 재능이 있어" "내 내면과 외면은 모두 아름다워"라고 분명하게 이야기 해주자.


어느 순간부터 저는 제가 제 엄마가 되어주었어요. 맛있는 걸 먹여주고, 비난을 받으면 발끈하고, 저를 지키려고 애를 쓰죠. 엄마에게 사랑을 듬뿍 받았고, 받고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내가 내 엄마가 되는거예요.

때로는 비참하고 외롭고 공허할 때가 올 지도 몰라요. 그래도 어떡해요. 이 마음을 엄마가 아니면 채워줄 수가 없는데 엄마는 채울 생각이 없는 걸. 나라도 채워야죠.

심리상담가 선생님께 받은 팁 몇 개 공유 해드릴게요. 이제까지의 일생을 글로 한 번 쭉 써보는 게 도움이 돼요.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서요. 그리고 어릴 때의 내가 좋아할 법한 선물이나 음식을 먹여주거나 건네주는 것도 좋은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이건 제가 찾아낸 방법인데, 내 자존감이 올라갈 수 있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만남 후에 용기와 희망이 샘솟는 그런 사람들 있거든요? 그게 어린 아이든 랜선 친구든 상관없이요. 좋은 사람에게는 부드럽게 영혼을 달래는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저는 요즘 제 자신과 친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거울 속의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미소지어 주기도 하고 건강을 위해 건강식을 찾아 먹기도 하지요. 남들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기도 해요. 이런 방법을 알아서 다행이에요. 몰랐다면 저는 지금쯤 얼마나 피폐해져 있을지 상상만해도 슬픕니다. 

 

 


 

 

제목을 보고 '나는 왜 엄마 노릇이 힘든걸까?'로 오해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았는데, 이 책은 '나의 엄마'에 관한 것입니다. 나와 엄마 사이에 회의감이 들고 힘이 든다면 이 책을 한 번 보시기를 추천드려요. 백퍼센트 딸의 입장에서 쓴 책이라서 굉장한 위안을 받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반대로 내가 엄마 입장이라면 책장 넘기기가 어려울 것 같네요.)

오랜만에 매운맛 책을 읽으니 얼얼해요. 그래도 다시 한 번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어요. 제 자신에 대해 돌아보고 안아주고, 고생했다고 토닥여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상처받은 딸들에게 위로와 현실적인 대처방법을 알려주는 책. 자존감 도둑인 엄마로 인해 힘들어하는 수많은 딸들에게 이 책을 건네고 싶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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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현재 마흔 중반의 '아줌마(작가가 본인을 이르는 말)' 가 쓴 책입니다. 본인의 경험담과 생각을 진솔하게 들려주는데 술술 읽혀요. 읽으면서 든 생각인데, 작가님은 잘난 체를 하지 않는 분 같아요. 겸손이 몸에 밴 느낌이랄까. 그리고 사람을 무척 좋아하세요. 엄마들에게 몇 번 데이고 난 후부터는 조심을 하시는 듯 했지만요.

블로그나 유튜브에서 많은 선배맘들에게 육아 정보를 공유 받곤 합니다. 그런데 사람에 관한, 아줌마들의 기싸움에 관한 허심탄회한 이야기는 처음이라 신선했어요. '아이 엄마 친구' 관계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회의감이 들기 시작하는 분, 미리 마음을 단단히 잡숫고 싶으신 분. 이 책에 주목해주세요.

 

 


 

 

놀이터에서 모여있는 엄마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피곤할 것 같기도 하고, 끼고 싶기도, 끼고 싶지 않기도 해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놀이터나 아파트 광장 등에서 채아 엄마를 포함한 5명의 엄마들은 아이들을 함께 놀게 하곤 했다. 그렇게 단순히 5명이 모여있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그녀들은 매우 파워풀하게 보였다. 멀리서 봐도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어벤져스 캐릭터들처럼 그녀들은 특정 공간을 다수라는 뭉쳐진 힘으로 전세내어 지배하고 있었다. 그 기운에 눌려서일까, 나는 그녀들 근처에 접근할 수 없었다. 채아 엄마와 나 이렇게 단둘이 맞닥뜨린 상황이라면 나도 '거, 좀 해 볼 만 하겠는데' 싶었을지 모르겠으나, 그녀는 항상 다른 엄마들과 함께 있었고 나는 거의 혼자였다. 나는 나의 아이가 그녀의 아이와 놀다가 어떤 문제라도 생기면 무조건 내 아이의 잘못이 될 것만 같은 불안함을 느꼈다. 뒤돌아서면 그룹의 엄마들이 내 아이를 언짢게 여기거나, 내가 어떤 대처를 했다 하더라도 아이 엄마인 나를 오목조목 뜯어보게 될 상황이 그려지곤 했다. 그래서 웬만하면 그녀들의 아이들이 노는 곳을 피해 다른 장소에서 나의 아이를 놀게 했다.


잘만 지내면 참 좋을텐데 이 또한 관계라 균열이 일어날 때가 물론 있습니다. 위 글은 얼마나 껄쩍지근한 상황인지요. 나는 혼자, 저 쪽은 다수에요. 나는 조용하고, 저 쪽은 시끌벅적하죠. 게다가 우리는 한 때 알았던, 친했던 사이에요. 모두 알다시피 육아라는 게 상당한 에너지가 들어가는 일인데 이런 기싸움에 소중한 나의 힘을 써야 한다는 게... 보기만 해도 지치더라고요.

다른 엄마들은 어떤가요? 반대편에 있는, 채아 엄마의 줄에 서기로 마음 먹은 한 때 친했던 엄마들이요. 그냥 그거 아닐까요? 이게 맞든 틀리든 관계에서 튀고 싶지 않은 마음. 그러니까 한 마디로 용기가 없는거죠. 채아 엄마가 버럭! 하고 소리를 질렀던 그 날, 자신이 데려온 엄마와 채아 엄마가 서로 사이가 안 좋은지 저자는 몰랐어요. 그리고 기분이 나빴다고 해도 이렇게 편을 나눌 정도의 대단히 유치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차라리 잘 된 것 같아요. 그런 모임에는 나가지 않는 게 길게 봤을 때 더 좋죠. 개개인의 성품이 실은 어떤지엔 관계없이, 다수가 되었을 때 풍기는 그 냄새가 너무 별로잖아요?

 


 

신자유주의식 만남의 유연함인지 아니면 서로가 서로에게 온전히 진심이 아니어서 그런 것인지 이런저런 복잡다단한 이유들이 있겠지만 사실 다들 조금씩은 외롭고 어설프고 유치하기도 하다는 것, 그리고 매우 실리에 빠르다는 것(꼭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감정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정도는 나도 조금은 감을 잡은 것 같다.


저희 엄마가 그러셨어요. "너도 애 학교 들어가면 명품백 들고 다녀." 그래서 왜요? 하고 여쭤보니 아줌마들 알게 모르게 그런 거 다 보고 판단한다 하더라고요. '그건 그냥 엄마가 이상한 사람들을 만난 거 아닐까?' 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러진 못 했네요.

그런 말도 있어요. 명품백이고 뭐고 상관 없이 애가 공부 잘하면 비닐봉지를 들고 다녀도 엄마들이 친한 척 하면서 줄을 선다고.

아이에게 고급 교육 정보를 주고싶고, 내 아이가 흙수저보단 금수저와 친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이해해요. 하지만 인터넷에 검색하면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 세상인데... 학원에 전화 한 번 해서 물어보면 될 일인데. 아이 친구는 아이가 스스로 만드는 거고요.

엄마들끼리 자연스럽게 친해져 마음을 나누는 건 좋은 일이지만, 목적을 가지고, 내 이익을 위해 상대를 정보 ATM기 취급하는 관계는 옳지 못한 것 같아요. 옳지 못한 걸 떠나 자기 자신이 힘들잖아요.

제가 초보엄마라 생각이 짧은 걸까요? 언젠가는 저도 그 사람의 배경, 아이들의 성적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날이 올까요? 누구든 내 앞의 가장 좋은 선택지를 고르게 마련인데 제 앞에 그런 선택지 밖에 보이지 않는 날이 올까요?

 


 

나는 태우 엄마의 인맥이 부러우면서 동시에 두려웠다. 태우 엄마의 지인들은 그녀가 말하는대로 나라는 사람을 파악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주 태우 엄마 앞에서 '착해졌다'. 태우 엄마와 있으면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스스로 검열하며 나의 어설픈 말 한 마디가 우리 관계에 해가 되지는 않을까 늘 조심했다. 우리가 만나는 날, 시간, 대화 주제, 식사 메뉴 등 거의 모든 주도권을 그녀가 쥐고 있었다. 어느 날부턴가 나는 태우 엄마와 함께 있으면 상무님을 모시고 하는 회식 자리처럼 그 자리가 불편하기만 했다. 어떤 반박도 하지 못한 채 태우 엄마의 말을 듣는 역할만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 자신이 점점 더 바보가 되어가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나는 태우 엄마와의 관계마저 나빠진다면 다시 외톨이가 될 것 같아서, 스스로 눈 가리고 아웅 하며 그녀의 진짜 모습을 보지 않으려 한 것인지도 모른다. 무엇이 되었든, 그녀는 '난 다 좋아', '난 괜찮아', '아무거나 상관없어' 를 연발하는 나의 수용적인 태도에 분명 용기를 얻었으리라.


저는 위 글을 읽으며 엉뚱하게도 아이의 기관 담임 선생님과 제 사이가 머릿속에 떠올랐어요. 평판이 두려워서는 아니고, 내 말과 행동으로 인해 아이에게 영향이 갈까 걱정하는 제 모습이 아른거려서요. 아직 말도 완벽하게 하지 못 하는 내 아이와 낯선 어른, 엄마인 저는 조심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도 종종 '착해져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선생님을 포함하여 누구든 선을 넘으면 경고를 주고, 그래도 변함이 없다면 확실하게 대처합니다. 작가님의 마지막 문단 다시 보아주세요. 내 수용적인 태도에 상대는 용기를 얻거든요. 사람은 본능적으로 그래요.

그리고 비단 내 자신이 호구되지 않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요. 아이들은 말보다 분위기에 더 영향을 받는다는데 힘들어하는 엄마를 아이가 과연 모를까요?

 


 

그럼에도 김지영은 병이 났다. 영화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김지영이 아픈 이유는 고달픈 육아 때문이 아니다. 이기적인 남편 때문도 아니다. 시월드에 시달려서도 아니고, 친정 엄마가 딸을 원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눈 뜨자마자 아이가, 남편이, 시댁이, 친정이 나를 괴롭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모든 것이 한데 섞여서 결혼과 출산 이후 김지영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어 버렸다. 지영은 거기서 길을 잃었다.


저는 딸 가진 엄마라 벌써부터 걱정 돼요. 임신부터 출산, 육아까지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잖아요. 입덧부터 튼살까지, 출산은 말할 것도 없고, 육아는 보통 힘든가요 뭐. 눈 앞의 아이는 너무 예쁘지만 그 길을 언젠가 내 딸이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져요. 임신과 출산은 어쩔 수 없어도, 육아는 지금 세대의 우리들보다 훨씬 더 수월하게, 편하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으면 해요. '육아는 엄마가, 일은 아빠가' 의 공식이 아니라 '육아는 부모가, 일도 부모가' 로 제대로 바로잡히는 날이 오기를.

너무 큰 책임감과 부담감에 사로잡혀 우울증에 걸리지 않기를! 그리고 부모노릇이 힘들다는 걸, 엄살이 아니라는 걸 이 사회가 알아주기를 바라요.

 


 

누군가에게 '일'이란 나의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한 사람을 그 사람이게 하는 마지막 도구'인 것이다. 누구에게나 내가 나임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그런 나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시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전업주부라고 해서 예외이진 않다.


아줌마들을 만났을 때, 누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다고 하면 저는 그게 그렇게 멋져보이더라고요. 육아가 힘든 걸 아니까 '그와중에 그런 일을!' 싶은거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들은 것 같아서 그 사람이 막 반짝거려 보여요.

육아가 힘들 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보세요. 노래를 한다거나 책을 읽는다거나 퍼즐을 맞춘다거나? 그렇게 서서히 내 안에 잊고 살았던 나도 채워넣자고요.






선배맘들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진진하고 유익합니다. 특히 이 책은 인간적인 매력이 글에도 묻어나 읽기도 편했어요. 상황에 대한 예시는 옆집 서준이 엄마 이야기를 담은 것 마냥 생생하고 현실적이었고요. 그래서 편하게 보실 수 있으실거예요. ^^ 이만 줄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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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좋아하는 개그맨 김영철. 개그맨 중에 영어를 제일 잘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더 잘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어쨌든 다수가 그 말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나는 그를 스타특강쇼라는 프로그램에서 처음 보았다. 거기서 그는 영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자신의 공부법, 노하우들을 잘난 체 싹 빼고 담백하게 들려주었더랬다. 아직도 생각이 난다.


CNN 좀 그만 보라고. 그리고 새로 알게 된 표현이 있으면 학원이든 어디든 가서 좀 써먹으라고. 흔해빠진 이야기지만 하도 답답하단 표정으로 말을 해서 나도 모르게 경청하여 듣고 있었다.

영어학원을 무려 20년 넘게 다녔다고 한다. 10년도 놀라운데 20년? 이건 성실하단 말론 부족하다. 무언가 그의 마음을 강하게 잡아 끌었던 것 같다.

그의 꿈은 영어로 시트콤을 찍는 것이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꿈을 꾸고 있기에 유효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못 웃기는 개그맨이라며 그 자체를 과소평가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나는 똑똑하고 열정 가득한 이 개그맨의 앞날이 기대된다. 영어학원을 20년이나 다닌 그 집념으로 꿈을 꼭 이뤘으면 좋겠다.

아래는 내가 책을 읽다가 인상 깊어 책갈피를 해 둔 것이다. 내 생각도 함께 덧붙여 보겠다.

오래전에 읽은 칼럼이 생각난다.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면 행복해질 확률이 낮아진다는 내용이었다. 그 글은 '그렇지 않다!'라고 부정적으로 말하지 말고 '소소하고 작은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행복하게 살아라!'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행복하려면 연습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 소소하고 작은 것에 행복을 느껴야 한다는 말은 주변에서도 많이 듣는데 행복은 강도가 아닌 빈도란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행복은 어디서든 찾을 수 있다. 지금 심장이 뛰는 것, 사랑하는 아이를 언제든 볼 수 있다는 것, 전화를 들어 부모님에게 연락을 드릴 수 있다는 사실 모두가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 망각의 동물인 인간은 슬프게도 행복만 유독 빨리 잊어버리는 것 같다. 늘 행복해져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일까?

행복이란 뭘까. 라는 질문을 자주 던지는데 정답 비슷한 말을 우연히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이외수 선생님과 방송할 때였다. 내가 쉬는 시간에 글 잘 쓰는 법을 여쭤보니 꿀팁을 하나 주셨다. "영철이 얘기 가장 잘 들어주는 사람 있지? 모니터 앞에서 그 사람에게 얘기하듯 써. 쭉 쓰고 구어체를 문어체로 바꾸면 끝!"


☘ 이건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내게도 꿀팁이라 책갈피를 해뒀었다. 매일 일기도 쓰고 블로그에 글도 자주 올리는데 때때로 글쓰기가 막연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내 얘기를 가장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쓴다면 이전보다 술술 쓰여질테지. 앞으로는 이렇게 해야지.

결심은 문득 하는 것


☘ 새해나 기념일을 기준으로 우리는 새사람이 되고자 하는 버릇이 있다. 그리고 그 때 세운 계획을 지키지 못하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작심삼일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기까지 한다. 보너스로 괜한 자책까지. 결심은 거창하게 하는 게 아니라 생각이 번뜩 떠올랐을 때 문득 하는 거다. 나도 이런 생각을 갖고 살고 있어서 공감이 갔다.

하고 싶은 걸 하다 보면 잘하는 게 된다. 하고 싶으면 그냥 하면 된다. 인스타그램을 자주 사용하다 보면 인스타그램을 잘하게 되고, 라디오가 좋아 계속 듣다 보면 음악과 시사 상식이 풍부해지고, 그렇게 조금은 잘하는 게 생긴다. 나는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일단 배워본다. 배우다가 재밌으면 열심히 해본다. 그러다 보면 배우고 싶은 게 할 수 있는 게 되고 잘하는 게 된다.


☘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일단 시작하기. 그 시간이 쌓여서 잘하는 일이 된다. 누군 처음부터 잘했나! 매일 하다보니 잘하는 경지에 이르게 된 거지.

공부도 마찬가지다. 책도 마찬가지고. 하기 싫어도 이틀에 한 번, 일주일에 세 번, 하지 않는 것보단 하는 게 낫다. 그러다보면 고맙게도 내 몸에 습관이란 게 배니까.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좋아하는 일, 해야 하는 일이 잘 하는 일이 되어있다.

"기사님, 배가 고프시다는 말씀에 제가 마음이 좀 편치 않았어요. 집에 있는 게 과일하고 잡채랑 이런 것밖에 없네요. 이동하시기 전, 음식이 따뜻할 때 꼭 드시고 일하셔요. 젓가락과 반찬통은 돌려주시지 않아도 되고요. 되도록 식사는 거르지 마세요. 좋은 오후 되세요!"


☘ 택배를 시켰는데 택배 기사가 '내가 지금 배가 고파 올라갈 힘이 없으니 내려와서 물건을 가지고 가라.' 라고 했단다. 황당해서 10초 가량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는데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 아니면 서서히 언성이 높아졌거나?

김영철은 처음 주문 할 때 기사님이 물건을 집 앞에 놓아두고 가시기로 했었다고 일단 설명을 하고, 기사분이 집으로 올라오시는 동안 남들과 다른 행동을 했다.

냉장고를 열어 도시락을 싼 것이다. 배가 고파 올라갈 힘이 없다는 말에 마음이 움직여서. 그것도 냉장고에 있는 음식 하나를 건넨 게 아니라 도시락 통을 꺼내 밥, 반찬, 과일, 물까지 담아 그럴듯한 도시락을 만들었다. 거기다 위와 같은 편지도 썼다.

 

김영철이 비단 연예인이라 이미지 관리를 위해 이런 행동을 한 것인가? 김영철은 본인의 어머니가 이런 분이셨기에 자신도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연예인이라 그런 행동을 했다고 쳐도,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택배 기사님은 미안한 기색을 드러내셨다고 한다. 나였다면 절대 하지 못 했을 행동인데... 평소에 어떤 마음을 유지하고 있어야 이런 행동이 나오는가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 고마운 일화였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이따금 나오는데 하이라이트를 해두지 않아 공유할 수 없어서 아쉬울 따름이다. 가족을 무척 사랑한단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다른 이에게 조언을 할 때, 받아들이는 입장에 따라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어서 조심스럽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배려심이 깊어 보였다. 그저 안아주거나 흘리듯 건네는 따뜻한 말이 전부인 듯 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좋겠네.

또한 의외였던 점은 생각보다 글을 잘 쓴다는 것. 군대에서는 상도 받았단다. 때때로 멈칫하게 하는 문장들이 있어 놀랄 때가 있었다.

열심히 사는 착한 사람, 김영철. 언젠가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이러다 나중에 나 잘 되면 어쩌려고 그래?" 그 말에 다른 사람들은 제발 좀 그렇게 되라며 웃고 넘겼지만 나는 이상하게 그 말이 기억에 남았다. 나중에 그가 꿈을 이뤘을 때 그 말이 생각날 것 같다. 보란듯이 잘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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