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궁금한 분들이 계실 것 같아요. 먼저 답을 할게요. 이 책은 3-7세를 '그 시기'로 놓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3-7세 아이는 부모가 말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대로 배우며 자란다고 해요. 그들에게 좋은 인성을 갖게 해주기 위해서는 부모가 좋은 인성으로 아이를 안아주어야 하며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아이가 궁금해 하는 것을 함께 알아가면 된다고 했어요.

제목이 좀 세서 긴장하신 분들 계실지 몰라 하는 얘긴데요. 부모자식 간에 중요하지 않은 시기가 어딨겠어요. '결정적' 이란 단어를 굳이 쓰신 이유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정서발달, 인성교육에 있어 결정적인 시기가 있다는 건 이제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죠. (0-3세, 만 3-6세) 그 시기에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걸 알려주고 있어요. 혹 놓쳤다고 해도 아이는 우리에게 많은 기회를 주니까 낙담 말아요. 이 책은 저같은 초보엄마에게 "오늘도 열심히 육아 해야겠다!"  와 같은 즐거운 동기부여를 주는 책입니다.

 

 

3-7세,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적 능력과 인성의 기초를 세우는 시기이다. 우리 아이가 바로 그 시간을 지나고 있다. 한순간 한순간이 정말 소중하다.

 

 

 

아이가 갓 4살이 되어 더 몰입하여 볼 수 있었는데요. 이 시기를 지나고 있는 다른 아이들의 사례를 보며, 우리 아이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과 평범한 부모의 저들 나름대로의 대처법을 보며 묘한 위로를 받기도 했습니다. ('당신이 이상한 게 아니다!' 란 말을 직접적으로 하진 않았지만,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뒤이어 따라오는 전문가의 조언과 철학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임숙 - 엄마가 놓쳐서는 안될 결정적 시기


내가 하는 말과 행동, 그리고 표정 및 분위기는 아이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 육아를 하는 부모님들 귀에 이제는 딱지가 앉을 정도로 수없이 들어왔던 그 사실을 이 책은 몇 번이고 인지시켜 줘요. 문제행동을 하는 아이들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아이가 아니라 그 행동을 먼저 한, 혹은 하도록 만든 부모가 먼저 있었음을 알게 되는데요.

<금쪽같은 내새끼>만 봐도 그래요. 문제행동을 한답시고 보여주는 아이들의 화면이 끝난 후 전문가는 부모가 그 부모에게 받았던 어린시절 양육방식을 돌아보게끔 하잖아요. (물론 모든 상황이 다 그런 건 아닙니다만 높은 확률적으로)

책 속에 이런 일례가 있었습니다. 아이가 자꾸만 동생을 때린다는 거예요. 부모가 하지 말라고 말리면 아이는 왜 말리느냐고 억울해 하고요. 이런 아이는 도대체 어떻게 키워야 할 지 모르겠다며 부모가 전문가에게 고민상담을 하러 온 겁니다.

알고보니 문제행동을 한 아이가 동생을 때리기 전, 잘못을 하면 그 부모는 아이를 때리고는 했더군요. '잘못을 하면 맞아야 한다' 는 잘못된 이념이 각인 되어 본능에 가까운 액션을 취했을 뿐인데, 나는 왜 동생이 내 블록을 무너뜨린 것을 보고도 때리면 안 되는 거냐고 생각한 거예요. 이 사례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건 과연 뭘까요?

 

 

인성을 가르치려면 우선 아이가 좋은 인성을 경험해야 한다.




먼저 우리 집을 돌아보았습니다. 제가 아이에게 주의를 주는 문제행동은 '물건을 던지는 것'이었어요. 여러 번 그러지 말라고 일러보고, 짐짓 단호한 투로 말을 해보기도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는데요.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가 어릴 때, 저희 부부는 멀리 떨어져 있으면 종종 물건을 던져 받고는 했어요. 빨리 빨리 효율적으로 처리를 하고 싶으니까, 별 생각없이 했던 행동인데 아이가 따라할 수도 있을 거라는 사실은 미처 신경을 쓰지 못 했던거죠.

그 모습을 기억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엄마 아빠가 물건 던지는 걸 보고 따라한거야?" 아이는 그렇다고 대답했어요. "그런 줄도 모르고 엄마는 하지 말라고만 했네. 앞으로는 엄마 아빠도 안 던질게. 위험하니까 우리 물건 던지지 말자"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일단 상황은 종결이 되었어요. 하지만 개선이 될 지는 더 지켜봐야겠죠?

아이 앞에서는 찬물도 함부로 못 마신다는 옛말이 떠올라요. 누가 누굴 나무라요.
아이에게 좋은 인성을 가르치려면 가장 가까운 부모가 그런 인성을 가지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가게에서 계산을 하고 나올 때 인사를 하는 부모의 모습, 어려운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부모의 모습,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지 않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아이는 자연스럽게 배울 거예요.

저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인데 이 사실을 배우고 난 이후 특히 더 행동을 조심하고 있어요. 낯설고 불편하지만... 좋은 점도 있긴 합니다. 그간 어른이라는 이유로 아무도 내게 지적하지 않았던 행동을 '아이가 보기에 어땠을까?' 싶어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거든요. 그럼으로써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고요.

 


조금 다른 이야기도 해 볼게요. 여러분은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자랐으면 하시나요? 인성이 바른 아이? 공부를 잘 하는 아이? 행복한 아이?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질문이란 거 알지만요.

혹시 제가 말한 보기 중에 유독 내 마음에 강하게 와닿는 게 있지는 않았나요? '이랬으면 좋겠다' 싶은거. 저는 있어요.

저는 아이가 '행복한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있죠, 얼마 전에 남편이 그러는 거예요. 아이가 남편이랑 있을 때는 규칙도 잘 지키고 해야 할 일도 완수를 잘 하는데, 저만 오면 땡깡을 부리는 아기로 변한다고, 너무 오냐오냐 하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괜찮지만 나중에도 괜찮겠느냐는 걱정 어린 말도 하나 더 얹어서요.

다른 게 부족해도 아이를 사랑만 해주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아닌 것 같아요. 균형이 중요한 것 같아요. 아이는 인형이 아니잖아요. 배우면 받아들이는 사람인데, 제가 너무 저 편한 육아를 했던 듯 해요.

남편이 제게 저 한 마디를 해주지 않았다면, 아래의 이 구절을 그냥 지나쳤더라면 아래와 같은 사단이 미래의 제게 일어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아찔해요. 미리 알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요.

 

가끔 상담실에는 아이를 키우며 성격만 중요시하는 파행적 모습에 회의를 느껴 공부보다 인성을 강조하면서 키운 아이와 부모가 찾아온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아이에게 공부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자유롭게 키웠는데 왜 상담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생겼을까? 어릴 적부터 친구와 함께 즐겁게 놀고 자유로운 시간을 갖도록 배려하며 키웠는데, 아이는 왜 점점 친구 관계에서도 문제가 생기고 알 수 없는 불안과 우울로 힘들어할까? 부모가 놓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과유불급.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뭐든 과하면 안 하느니만 못해요. 인성교육, 너무 좋은데, 필요한 거 아는데, 이 역시 '치우쳐지면' 이러한 문제가 충분히 생길 수 있어요. 아이가 다른 친구들을 만났는데 나만 못 한다는 소외감에 위축 되거나 자신감을 잃게 되는 모습... 상상만 해도 얼마나 마음 아파요.

그런데 동시에 저는 육아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해서요, 일부러 틀렸다고는 말하지 않았어요. 친구들 사이에서 제 목소리를 당당히 낼 수 없었던 경험을 통해 그 아이는 어떤 식으로든 한층 더 성숙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의 기질이 다 다르고, 각 집의 육아 방식이 비슷한 듯 해도 미세하게 다 다른데 어떻게 획일적인 결론이 날 수 있겠어요.

위 일례의 아이 이야기를 더 해 볼게요. 인성교육'만' 받은 이 친구가 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대요. 낯선 나라 친구들은 이방인을 바로 친구로 받아들여주지 않았다고 하고요. 하지만 아이는 이미 한국에서 소외감을 느낀 바 있기 때문에 크게 상처 받지 않고 오히려 친구들과 더 잘 지내기 위해 노력 했다고 해요.

저자는 한 쪽으로 치우쳐짐은 좋지 않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이미 그렇게 되었다면, 헤쳐나갈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주거나 아이를 믿어주어서 전화위복을 몸소 경험하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요.

 

아이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자라고 싶어 하는가이다. 아이가 자신이 다양한 능력을 키워 가며 잘 자라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인성만 강조하느라 아이가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을 소홀히 하다 보면 아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는 것도 별로 없다는 생각에 주눅 들고 위축된다. 나중에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지 걱정되고 불안해진다. 부모는 절대 비교하며 키우지 않았다 해도 아이 스스로 자기도 모르게 또래 아이들과 비교한다. 이런 시간이 쌓이면 서서히 정서 면에서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이에게 기본적인 것들은 꼭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건강한 자존감을 갖고 살 수 있도록 작은 성취부터 큰 성취까지 경험하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도 가능하면 해주는 게 좋다고 봐요. 아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더더욱이요.

(하지만 부모는 신이 아니니까 모든 판을 다 짜줄 순 없죠. 그럴 때는 없으면 없는대로, 주어진 환경에서 아이가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 해요. 겪지 않았으면 하지만, 겪을 수 밖에 없는 삶의 필연적인 숱한 장애물을 헤쳐나가는 연습, 그 안에서 문제해결능력과 회복탄력성을 기를 수 있을테니까요.)

저는 아직 아이가 어려서 새로운 세계와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나름대로 힘껏 길을 터주는 편이예요. 만일 아이가 힘들다거나 괴로워하면 이야기를 하고, 같이 손 잡고 나오고요.

길가에 핀 민들레 꽃에 관심을 보이는 아이의 관심이 더 깊어질 수 있게 놀이와 스킬로 잘 이끌어 주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 책의 제목을 한 번 더 떠올려 주시겠어요? 당연히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야합니다.

 

중요한 건 애착에 금이 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아이를 가르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배움이 노는 것 만큼이나 즐겁다는 사실을 깨닫게 도와야 한다. 즐겁게 배우는 아이는 힘든 공부도 해낼 수 있는 힘이 생기며 부모와의 좋은 관계를 평생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간다. 사춘기 아이가 문을 꽝 닫고 들어가 대답도 안 한다고 해서 아이 성격을 탓할 필요 없다. 아이가 성질이 못돼서 그런 게 아니다. 엄마가 자기 마음은 몰라주고 사랑을 핑계로 마음대로 휘두르니 괴로운 것이다.


아이가 네 살 밖에 안 되어 더 큰 아이들을 둔 부모들의 심정을 저는 잘 모르지만요. 네 살 아이는 아직까진 엄마가 뭘 하자고 하면 잘 따라와줘요. 그리고 어린 아이이기 때문에 놀이를 좋아하므로, 무언가를 놀이식으로 엮는 게 아직은 좀 쉽네요. 조금 더 큰 아이들의 경우 부모가 아이를 대하는 방식부터가 다르겠죠? 하지만 태도가 달라졌을 뿐 마음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무언가에 호기심을 보이는 아이의 말을 흘려 듣지 않고 그것에 더 빠져들 수 있도록 준비를 해주거나 사고를 확장시킬 수 있는 질문을 던지는 것. 좋은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소한 것이라도 아이의 마음이라면 존중하고 수용하고 진심으로 귀기울여주는 자세라고 생각해서 나름 열심히 실천하고 있고요.

저희 집 이야기를 해 볼게요. 아이가 영어를 친숙하게 느꼈으면 해서 이것저것 많이 보여주고 있어요. 제가 준비한 영어 놀이를 아이가 치우라고 하면 반응에 따라, "재밌는 건데 그럼 다음에 같이 해보자" 며 치우거나 "그럼 엄마 혼자 해 볼게. 엄마는 하고 싶어서" 얘기하고 잠시나마 혼자 하기도 해요. 그럼 운이 좋은 날은 다가와주기도 하더라고요?

핵심은 강요하면 안 된다는 것. 제 철칙이예요. 저는 아이가 좋아하는 춤과 노래 그리고 대화로 노출을 시켜 주고 있습니다. 덕분이라고 해야할지 아이의 최애곡은 ABC송이에요. 자기가 아는 단어, 질문이 들리면 큰 목소리로 대답 할 줄 알고요.

(본격적인 언어 공부는 측두엽이 발달하기 시작하는 만 6세 이후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그 활동이 욕구를 채워 주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친구 것을 빼앗기만 하던 아이가 친구에게 자기 장난감을 빌려 준 뒤 기분이 좋거나 칭찬을 받았다면, 아이 마음속에 새로운 사진이 저장되고 아이는 그 행동을 더 하고 싶어 한다. 힘들게 로봇을 만들었는데 완성하고 나니 아주 뿌듯했다면, 그 아이는 앞으로 더 멋지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우리 아이의 '좋은 세계'에 건설적이고 가치 있는 것들, 아이의 성장을 돕는 것들이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건 아이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적용 가능한 삶의 지혜예요. 어떤 경험을 하고 그것이 좋은 기분이었다면 우리는 그 행동을 또 하고 싶을테죠. 아이에게 배려를 가르치고 싶다면 배려를 하고나서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을 하게 해주세요. 그 후는 시키지 않아도 할 거예요.

사람은 머리보다 몸으로 부딪혀 알게 되는 일을 더 오래 기억하지 않나요? 뜨거운 걸 만져 몸이 놀란 기억은 평생 그가 뜨거운 불을 조심하도록 만들어요. 그리고 그건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왜?' 라는 의문이 끼어들 수가 없죠. 내가 겪은 것이기 때문에 그저 받아들일 수 밖에요.

그건 남과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경험이었다, 는 기억. 여러분은 어떤 게 떠오르세요? 봉사활동, 분리수거, 인사하기, 미소짓기... 생각해보니 꽤 여러가지가 있네요. 아이와 함께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끝나고 연관도서를 읽으면 더 오래 기억에 남겠어요!)

 

아이의 기질에 맞는 양육이 그리 어려운 건 아니다. 아이에 대한 호기심만 있으면 된다. '이래야 한다'가 아니라 '우리 아인 어떤 아이지?'라며 아이를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아이는 '전 이런 사람이에요'라며 온몸으로 자신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책을 읽고 가장 좋았던 점은 아이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에요. 저는 우리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대충 알아요.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하며 예술적인 활동을 좋아하죠. (아직까지는)

하지만 저는 저도 모르게 그 사실을 애써 지우려고 했음을 인정해요. 왜냐하면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아이는 키우기가 어렵거든요. 저, 그러니까 엄마가 힘들어요. 그래서 은근히 아이를 왜곡해 바라보기도 했어요.

이젠 인정해요. 아이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고 있는데 엄마라는 사람이 대체 뭘 바란건지... 참 웃기죠. 이젠 내 아이에 맞는 양육법을 택해 실행할 거예요. 너는 이런 아이여야 해, 가 아니라 너는 어떤 아이일까, 에서부터 다시 시작이에요.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현재의 생각도 아이가 보여주는 말과 행동으로 달라질 수 있어요. 앞으로는 아이가 보여주는 아이를 볼 거예요.






이 책에는 순한 아이, 까탈스러운 아이, 느린 아이에 대한 예시가 나와 있습니다. 읽어보시고 우리 아이는 어느 쪽인지 체크하며 읽어보시면 현명한 육아를 하시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좋은 내용이 너무 많은데 제 역량이 여기까지라 다 담을 수가 없네요. 이런 말 뭣하지만... 직접 읽어보시기를 추천 드립니다(?) 다 옮기지는 못 했지만 좋았던 이야기 조금 더 나누며 이번 포스트 마칠게요.






저자는 상상놀이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했는데요. 아이가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하거나 치료를 받으러 가야 하는데 무서워서 긴장하고 있는 경우 상상놀이를 제안해 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림책에서 봤던 용사가 내가 되어보는 거예요. 그래서 무서움과 두려움을 물리치고 멋지게 진료를 받는 거죠. 부모의 교묘한 연기력이 필요한 고도의 귀엽고도 치밀한 상상놀이인데, 잘만 먹힌다면 아이 마음이 단단해지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차마 내가 쓰러뜨리지는 못 했어도, 최소한 방어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만일 이기고 돌아온다면 아이 마음에 살포시 자리잡은 칭찬 스티커 같은 뿌듯함은 덤이고요.

그리고 아이의 그 어떤 말이라도 일단수용 해주라는 말도 인상깊었습니다. 순서를 기억하라는 거예요. 수용을 해 준 다음에 해결책을 제시하라고요. 수용은 그랬구나, 같은 건데요. 어른이니까 아이가 차마 표현하지 못한 감정에 적절한 이름을 붙여 대신 설명 해주면 돼요. 서러웠구나, 억울했구나, 불편했구나, 슬펐구나...

답답해서 울기만 했던 아이가 난생 처음 제 감정을 알게 되는 순간일지 몰라요. 커감에 따라 엄마가 알려준 그 감정을 정리하는 법도 배우게 될 테죠. 이런 과정이 없으면 속상한 것도 짜증, 슬픈 것도 짜증, 질투가 나는 것도 짜증, 서러운 것도 짜증, 혹은 화라는 이름 밖에 붙이지 못할 지도요. 이 역시 부모가 모든 걸 다 해줄 수는 없지만 때에 따라 도와줄 필요가 있는 일인 건 맞는 것 같아요.

끝까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이렇게 많다는 건... 실질적인 팁이 많다는 뜻일겁니다. 뻔한 위로의 말이 있는 건 아닌데 묘하게 위로가 되기도 하고요. 3-7세의 아이에게 중요한 게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신 분들, 아이를 이해하고 싶은 분들, 이 책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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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을 처음 알게 된 건 SNS에서였어요. 의대생 신분인 동시에 육아를 하고 있는 엄마라고 하더라고요. 게다가 큰 아이도 아니고 어린 아기요. 그당시 댓글 분위기는 이 분의 외모칭찬이 주를 이루고 있었지만, 저는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그게 가능한가?' 싶어 충격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었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저는 세바시라는 영상에서 이 분을 또 만나게 됩니다. 이제까지의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사람들의 마음에 닿을 만한, 귀감이 될 만한, 위로가 될 만한 이야기와 함께 해 주고 계셨어요. 가만 들으며 저는, 깊은 생각과 뜨거운 열정, 집념, 끈기와 더불어 조리있는 말솜씨가 빼어난 외모에 가히 비교가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랜만에 '내면이 더 아름다운'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어요.


이 책은 의대생, 육아맘, 크리에이터, 작가로 살고 있는 작가 본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더 구체적으로는 왜 의사를 꿈꾸게 되었는지 아이를 낳고 학업과 육아를 병행하는 삶은 어떠한지 등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사실 크리에이터, 작가에 대한 부분은 스쳐지나가는 정도긴 해요. 육아 또한 그리 많은 비중을 차지하진 않습니다. 아무래도 가장 많은 시간을 쏟은 의대생 신분에서의 경험과 느낀점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의대 공부와 육아를 병행하는 삶은 어떠한지가 궁금해 펼쳐 본 책이었어서 저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 책이었지만, '누구누구 엄마'를 떠나 그저 한 명의 개인으로써 자극이 되고 동기부여가 되는 책이었던 건 확실해요.

일 년 가까이 내 뱃 속으로 품었던 새끼를 세상 밖으로 내보내면, 이루 말할 수 없이 감격스러워요. 아이가 커감에 따라 사랑도 더 커져가고요. 작가님도 저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아이를 키우셨을거예요. 이 분의 게시글 아래 달린 댓글을 보면, 공부를 하든 육아를 하든 하나만 하라거나 아이가 불쌍하다거나 하는 조언을 가장한 악플이 꼭 한 개는 눈에 띄는데요. 클레어(작가님의 유튜브) 채널에 들어가 동영상을 보면, 육아하는 모습이 저와 별반 다를 게 없더라고요.

그러니까 아이를 사랑하면서 내 인생도 사랑하는거죠. 작가님은 노력하는 엄마의 모습, 포기하지 않는 엄마의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하셨거든요. 의대 공부가 끝나면 놀지도 쉬지도 않고 바로 육아전선에 투입되는, 새벽에 시작해 새벽에 끝나는 그 생활에 대고 감히 누가 손가락질을 할 수 있나 싶습니다.

 

나는 꿈꾸는 엄마로 살고 싶다. 아이에게 꿈꾸는 삶을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엄마로서 꿈을 이루어나가는 모습을 몸소 보여주려고 한다. 일과 육아, 나와 엄마라는 역할 사이에서 고민하고 어려움도 겪겠지만, 성장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살면서 힘든 날도 있겠지만 그럴 때마다 절망이 아닌 희망을 품고, 포기하기보다는 도전하는 사람이 되자고, 내 아이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


계획없이 찾아온 아이를 주어진 상황에서 책임지고 잘 키우고 계시는 클레어님. 책 중간에 악플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던 게 생각나 서두에 느닷없이 이런 글을 써버리고 말았네요. 이제 책 이야기 할게요.

 

 

의사가 되기로 한 이유

 



아버지가 시위를 하시다가 눈에 최루탄 파편이 튀어 한 쪽 눈으로는 보지 못 하시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어렸을 적 저자는 그런 아버지 눈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친구로부터 '도깨비 눈'이라는 말을 듣고 의식을 하기 시작했다고 해요. 어린 마음에 잘 모르니까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하고 행동을 했겠죠. 그러던 어느 날, 여덟 살 이도원에게 아버지가 묻습니다.

 

"딸, 아빠가 눈을 바꾸려고 하는데 우리 딸처럼 보석 같은 눈은 박을 수가 없대. 그래서 의안 있지? 가짜 눈. 그걸 박으려고 하는데 의안은 초점에 따라 눈동자가 움직이지 않는대. 인형 눈처럼 말이야. 지금 이 탁한 눈은 그래도 시선을 따라 움직이긴 하잖아. 의안을 박으면 그렇게 안 된대. 우리 딸은 아빠 눈이 어땠으면 좋겠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는 울고 계셨다고 합니다. 딸은 이렇게 말해요.

 

"난 아빠의 지금 눈이 제일 좋아. 그대로 살자. 그리고 잘 살자. 아빠가 어떤 눈이든 상관없어. 내가 아빠 눈이 되어줄게. 걱정 마."


아빠처럼 아픈 사람을 고치는 의사가 되겠다고. 여덟 살 소녀는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내가 강해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다가올 인생을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역사적인 순간이었죠.

 

 

돌아가는 길에서 발견한 것들

 



하지만 의대 입시의 문턱은 보통 높은 게 아니었어요.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했죠. 평균 3등급이라는 성적으로는 의대에 들어갈 수 없었어요. 저자는 이십대에 무려 세 개의 대학교를 다니는데요. 그 첫 번째 대학은 동국대학교였습니다. 그 곳에서 의욕 넘치는 동기들과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볼 여유와 기회를 주신 교수님 덕분에 나만의 자산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요.

강연에서 저자가 했던 말이 있습니다. 길 좀 돌아서 가도 된다고. 목표까지 돌아서 가도 된다고요. 원하던 대학, 원하던 그림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주어진 상황에 늘 최선을 다했습니다. 과제, 토론은 말할 것도 없고요. 제가 놀랐던 건, 취업을 한 후 제약회사에서의 3개월 그리고 월드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갔을 때 였습니다.

월드 미스코리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던 상태에서 워킹이며 표정, 의상까지 모두 화려한 다른 후보들을 보며 저자는 기가 죽어요. 하지만 '기존쎄', 그녀의 면모를 보세요. 한 번은 악세사리가 필요했는데 돈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했는 줄 아세요?

 

"사장님, 제가 곧 미인대회에 나가는데 제 드레스에 어울리는 보석을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꼭 우승해 올게요."


청담동 예물 거리의 한 주얼리숍 사장님에게 대뜸 자신의 포부를 선언합니다. 다행히 좋은 분을 만나 협찬이 가능했다고 하는데요. 용기 있는 모습과 자기 자신을 굳게 믿는 마음가짐이 너무 멋지고 부럽더라고요.

하지만 무슨 일이든 고비는 있게 마련입니다. 다른 후보들을 보며 기가 눌릴대로 눌린 어느 날... 더이상 못 하겠다 싶어 새벽에 자신이 있는 곳으로 가족들을 불러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해요. 다시는 카메라 앞에 서지 않겠다고.

 

"또 밤새 연습했니? 그런다고 다 되는 거 아냐. 네가 못하는 분야에서는 그냥 네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만 느끼고 와. 그건 돈 주고도 못 사는 경험이니까."


그런 그녀를 보며 언니가 차갑게 쏘아붙인 한 마디! 이건 소중한 경험 아니, 돈 주고도 못 사는 값지고 소중한 경험임을 알려주어요. 그 조언 덕에 저자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고, 그 결과... 대회에서 무려 2등이라는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처음 가보는 길 위에서 두려운 마음을 이겨내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거기다 결과까지 좋았으니 워킹은 또 얼마나 잘했을까 싶어 저는 언니도 아닌데 박수쳐주고 싶었었네요.

저자는 의사가 되는 게 꿈이었지만 언제나 꿈길만 걸은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돌아가는 모든 길 위에서 희망을 놓지 않으려 했고 그 안에서 또 각기 다른 가치들을 삶의 소중한 자양분으로 삼을 줄 알았어요. 역시 꿈이라는 건, 내가 놓지만 않으면 도망 안 가요. 좀 돌아가더라도 큰일 나는 거 아닌 것 같아요.

 

 

아이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나를 사랑하는 방법

 



꿈을 이루기 위해 중요한 것은 계획을 세우는 것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 계획이라는 것은 실현 가능성 있는 것이어야 했어요. 1년 계획을 세운 후 3개월 계획, 1달 계획 이런 식으로 쪼개고 쪼개 마지막으로는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계획해 실천하는 것이었지요.

계획을 짰다면 그날 그날 주어진 하루의 계획을 충실히 이행만 하면 돼요. 매일 매일 하는 게 어렵다면 미리 여유로운 계획을 짜면 되고요. 저자는 하루 계획을 짤 때 꼭 해야 할 시간의 두 배가 되는 시간 전에 일어나 시작을 했다고 해요. 그 날 할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마치기 위해서요.

그렇게 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뭘까요? 성취와 자기확신, 자기긍정, 자기효능감입니다. 저는 이것들을 아이에게 꼭 가르쳐줄거예요. 네가 공부를 하는 이유는 이것들을 느낄 수 있어서, 라고 알려줄겁니다.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니까요. 열심히 공부를 하는 행위는 내 삶을 존중하는 태도를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작은 성취를 통해서도 쾌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되면서 동기와 의욕, 활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취업에 실패하거나 시험을 망쳤을 때, 일상의 작고 단순한 일에서 분명한 성취를 느껴보는 게 좋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울적한 감정에서 빨리 벗어나 동기부여의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막막할 때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라네요. 세탁기를 돌린다든지 설거지를 한다든지 택배를 뜯는다든지, 다 좋아요. 몸을 움직여 내가 계획한 것을 이루어야 합니다.

저 요즘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내 자신에게 사랑 받기 위해서 나는, 가만히 있어도 되는 게 아니라 나도 노력을 해야 한다고요. 다른 사람도 아닌 나에게조차 나는 사랑 받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고요. 내가 나에게 자꾸 좋은 것을 주어야 나도 나를 사랑해주는 것 같습니다. 작은 성취를 맛볼 수 있게 해주어야 나는 살아갈 힘이 나요. 저는 아이에게 이걸 꼭 알려주고 싶어요.

 

 

그녀에게 배운 것

 



사람마다 건강상태도 다르고 정신적인 에너지 레벨도 다 다른데 기준을 내리기란 어려운 일이잖아요. 이 책을 읽고 저는 더 열심히 살지 않은 3년을 잠시 후회했다가 곰곰히 생각한 후 그러지 않아도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저는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살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거든요. 매일 힘들다는 신호를 보냈지만 무시하고 살다가 현재는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불쌍한 제 몸이, 전문가의 도움이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할 정도로 지쳐버린 정신적인 제 에너지가 그 증거예요. 그래서 저는 자책은 그만두고 부러워만 하기로 했습니다. 배울 건 배워야 되니까요.

저자의 열정은 함부로 만지면 손 데일 것 같은 빵처럼 매우 뜨거웠어요. 그 열정은 아무도 막을 수 없을 것 같아 보였네요. 저는 열심히는 하지만 목표를 향해 가는 길에 꽃이 보이면 꽃냄새를 맡고 구경하다 잠까지 들어버리는 사람이라서 항상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사는 저자에게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또, 제 약점도 돌아볼 수가 있었는데요. 중요한 선택을 할 때는 우유부단함이 튀어나오는 성격 탓에 우선순위 정하는 걸 어려워 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이더라도 우선순위를 잘 정하는 게 무척 중요함을 알았어요. 계획을 어떻게 짜느냐에서부터 지름길로 갈 수도 있고 더 험한 길로 갈 수도 있는 듯 해요.

브라질 산에서 팥빙수 파는 예를 들며 계획 짜는 법을 설명해 주셨어요. 5단계부터 4단계, 3단계, 2단계... 순서대로 계획을 세세히 잘 짜시더라고요. 계획 짜는 데 어려움을 겪으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학업과 육아를 병행하는 삶은 어떠한가 그게 궁금해서 읽은 책이라 빠져있는 내용에 아쉬웠지만, 그건 제가 개인적으로 유튜브로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

몇 년 후에 또 책 내주셨으면 좋겠어요. 글을 무척 잘 쓰셔서 눈물이 핑 돌 때가 종종 있었거든요. (다 가진 여자) 아이는 잘 자라고 있는지 현재는 바라던 멋진 의사가 되었는지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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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쇠약해진 게 느껴져서 정말 오랜만에 자기계발서를 읽었어요. 제목이 마음에 들었거든요. 저는 너무 많은 걸 짊어지고 사는데요. 내려놓을 필요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인생 선배의 황금 같은 조언을 기대하고 펼쳐든 책이었어요.
 


이 책을 한마디로 얘기하면 음... 제목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제목을 한 권의 책으로 풀어 쓴 것이라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저자는 지고 있는 짐을 내려놓으라고 얘기해요. 그 짐이라는 것은 욕심, 완벽주의, 죄책감, 남들로부터의 시선... 같은 것들이었죠.

저는 완벽주의 성향을 갖고 있어요. 열심히 하려는 마음을 단 하루도 놓은 적이 없어서 쉴 때도 맘 편히 쉬지 못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제게 '분수를 알아야 한다', '게으름뱅이가 되라'는 말을 하더군요.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어조로 얘기를 하는데, 이렇게 가끔 직설적인 말을 할 때가 있어서 더 기억에 남았어요.

사람이 한 번에 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변화를 바라는 사람은 이런 말을 일부러라도 찾아 들어서 마음이 조금씩 말랑해지길 기대해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이 책은 저같은 사람들에게 추천 해주고 싶습니다.

 

이상주의자, 완벽주의자, 주변의 눈을 의식하는 우등생들에게

 
 

그때는 이상주의자, 완벽주의자, 주변의 눈을 의식하는 우등생이 되고자 하는 제가 있었습니다. 그런 저를 내려놓고자 나에게 관대해지기로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할 일을 미루기도 하고 게으름뱅이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효과가 있었는지 요즘에는 동료들이나 고객들 사이에서 늘 '어쩔 수 없죠'라고 말하는 느긋한 사람으로 통합니다. 지금은 자연스러운 내 모습 그대로 살기, 내 마음 우선 돌보기, 도움이 필요할 때는 남에게 의지하기 등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는 한편으로 '할 때는 확실하게 한다'는 자세로 적절히 힘조절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잘 와닿지 않을거예요. 왜냐하면 이들은 이미 이렇게 해야함을 알고는 있거든요.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서 실행을 못 할 뿐이지. 이상주의자, 완벽주의자, 우등생들은 늘 무언가에 쫓기는 느낌이예요. 그래서 자연스러운 내 모습으로 살기, 내 마음 먼저 돌보기, 남에게 의지하기 같은 거 잘 못 해요. 꿈과 목표, 이상이 우선인 사람들이니까. 그것들을 우선순위에 두게 되면 자연스러움은 제일 먼저 포기할 위인들이에요. 그 생활이 길어지다보면 내 습관이 되고 믿음이 되고요. 고정 마인드셋이 됩니다.

남에게 의지하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에요. 누군가는 이 자체를 굉장히 편안한 상태라고 여기는데 누군가는 매우 불편한 상황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어요. 누군가 제게 고민을 털어놓을 때 저는 가끔 이렇게 조언해요. '내게 기대' 라고. 하지만 상대방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음을 저는 이해해요. 남에게 의지하는 게 마음이 더 불편한 사람도 있거든요. 이 자체를 훈련 해야 하는 사람도 있어요. (기본적으로 사람마다 성격이 다 다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저는 목표를 향해 달려갈 때 중간에 혹 누군가로 인해 이 계획이 흐트러지거나, 내가 물러지고 게을러지는 게 두려워 다른 사람에게 쉽사리 의지를 잘 안 해요.

'할 때는 확실하게 하기' 하나 잘하겠네요. 하지만 저자는 느긋한 마음으로 살다가 할 때는 확실하게 하기, 라고 했는데... 아, 어렵다.

 

내 안에 무서운 교관이 자리 잡고 늘 나를 감시합니다. 느슨해지려고 하면 따끔하게 혼을 냅니다. 약한 소리라도 내뱉으려 하면 가차 없이 야단을 칩니다. 응석 부리고 싶은 마음 따위는 곧바로 차단해버립니다. 어른들에게 혼나지 않는 대신 나 스스로에게 잔뜩 화를 냅니다. 사춘기를 맞이하면 우등생도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납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철저히 단속할수록 내면에 한층 더 강한 갈망이 자리 잡습니다.


엄격하고 무서운 부모에게 감시 당하고 짓눌려진 사춘기 학생 같지 않나요? 그렇게 경비가 삼엄한 마음 환경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일을 하고 결국 성과를 냈다고 쳐요. 그래도 마음은 혼돈 그자체입니다. 마음은 이제 '그건 오롯이 네 노력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다음 단계가 남아있음'을 알려주기도 하죠. 제 안에도 무서운 교관이 있어요. 내 집인데도 나가라고 할 수가 없어서 힘이 드네요.

 

'지금 내가 완벽을 추구하고 있는지가 아니라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에 의식을 집중하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집니다.' (중략)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를 바꿔 말하면 '못하는 것을 인정하는 용기'입니다. 이것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훨씬 가벼워집니다.


말처럼 쉽지 않지만 좋은 말인 것 같아서 공유해 봅니다. 최선을 다하고 마쳤을 때 저는 내 손이 닿지 않았던 무언가에 미련이 남아 때때로 저 자신을 책망할 때가 있기도 했거든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제가 좀 심한 편인가요? 생각해보면 저는 최선을 다하면서 동시에 모든 것이 완벽함을 원해 힘이 드는 것 같아요.

'완벽'이라는 단어를 지워버릴까요? '최선'만 남게. 그동안의 제 과정들은 행복했는가 라는 의문이 드네요. 과정 중에 느끼는 행복감은 느낄 새도 없이 오로지 결승선만을 향해 달리던 시간이 되려 제게 해가 되는 일이 많았어요. 이젠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네가 원하는 하나에만 최선을 다해도 족하다고 말이라도 해줘야겠어요.


 

나랑 친해지기



자기계발서에 안 나오면 섭섭한 내용 중 하나인데요. (대충 뻔한 말이라는 얘기)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등을 종이에 펜으로 적어보라는 거예요. 핸드폰으로 메모를 하는 것도 좋지만 저자는 직접 손으로 쓰기를 권장했어요.

해 본 적이 있는데요. 이런 장점이 있더라고요. 나라는 사람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돼요. 그리고 감정을 쏟아놓은 날이면 그 자체로 조금 후련한 마음이 들기도 하데요? 종이에 적어놓은 것 뿐이고 나만 볼 수 있는데, 꼭 누군가에게 털어놓은 느낌이 들기도 했고요. 그리고 무언가를 쓰는 과정에서 지나간 시간을 착착 정리할 수 있게 돼요. 유난히 어느 한 부분에 꽂혀서 마음이 팍 상해있던 내가 쓰여진 종이를 보고, 내가 쓴 큰그림을 보고, '아주 일부분이었네'하며 머쓱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내가 왜 이 부분에서 마음이 상했을까?' 이제는 전보다 조금 더 떨어져 객관적인 시각에서 내 마음을 관찰할 수도 있게 됩니다.

또한 저자는 손으로 직접 적어보는 일 외에 '바보'가 되어보라고 하기도 했어요. 하던 일이 손에 안 잡혀 도저히 진도가 안 나갈 때는 어차피 안 되는거 잡고만 있지 말고 그 시간에 재미있는 개그맨 영상이나 유튜브를 보라더군요.

그리고 업무 중이 아닐 때는 엄격한 나 자신을 느긋하게 풀어놔주라고 했어요. 남들에게 농담도 좀 하면서요.

 

여기서 말하는 장난기는 피식 웃음이 나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아주 살짝 기분 좋아지는 방법을 일상에 적용하는 일입니다.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장난기를 발휘하기 쉽다고 했지만 오히려 의식적으로 장난기를 발휘함으로써 마음에 여유가 피어나기도 합니다.


의식적으로 장난을 치는 게 필요하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하지만 여기에서야말로 여유가 필요한 것 같아요. 괜히 농담한답시고 했다가... 나도 모르게 선을 넘게 되거나 오히려 전보다 분위기가 더 무거워질 수도 있으니까요. 내가 원체 무뚝뚝한 사람이라면 장난이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연습이 필요하겠어요.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에게 먼저 해보세요. 그들이 웃으면 이제 그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는거죠.

즐거워지는 일은 또 있습니다. 이번엔 나 자신에게 하는 거예요. 평소에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가보거나 이제까지 먹어보지 않았던 음식을 먹어보는 겁니다. 그리고 '너는 ~를 해야해!', '너는 ~를 하면 안돼!' 라며 지시만 내리는 교관은 쉬라고 냅두고(가능하다면 내쫓으세요) 어린 아이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보세요.

저자는 일부러 웃긴 영상을 찾아본대요. 근데 저희 남편이 그런 사람이거든요? 제가 시간낭비 한다고 놀리면 내일을 위한 재충전 시간이라고 실제로 저에게 말하는(...) 저희 남편은 유머가 넘치고 여유 있는 사람이예요. '복세편살'이 좌우명이 아닐까 싶은 사람 있죠. 스트레스도 적고 예민하지도 않아요. 아, 그러고보니 이 책에서 추구하는 인간상이 저희 남편이네요... 갑자기 노력하고 싶지 않아지는...


 





이 책은 중간중간 물음표를 자주 던져주는데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는 듯해 좋았어요, 저는. 후기글도 몇 개 찾아보았어요. 대체로 다 평이 좋더라고요. 밀리의서재에도 혹평보다는 호평이 주를 이루고 있는 걸 확인했고요. 제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와닿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문장을 찾을 수는 없어서 아쉬웠지만 많은 사람들이 좋은 후기를 남긴 책이라는 덴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직접 경험해 보시기를 바랄게요.

(여담) 질문 중에 이런 게 있었어요.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게 뭐냐고. 저는 한치의 고민없이 퍼즐이라고 대답했어요. 퍼즐은 사실 내일 아침 아이를 등원 시키고 바로 할 수 있는 일이긴 하거든요. 근데 못 해요. 그 시간에 집안일과 일과 공부를 해야 하니까... 하지 않으면 죽는 일은 아니지만, 퍼즐이나 맞추며 놀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저는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죠? 그래도 때때로 짐을 내려놓으려는 시도는 해볼게요. 그리고 이제까지 남편을 못마땅하게만 생각했는데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서 보도록 노력하고, 배울 점이라면 배워볼게요.

리뷰를 다 쓰고나니 생각이 정리되는 느낌과 함께 아주 약간 개운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이래서 저자가 글을 쓰라고 한 듯!) 여러분에게도 좋은 변화를 가져다주는 책이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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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간단한 내용의 책이 어떻게 일본에서 드라마화 되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개인적으론 재미가 없었어요. 히가시노게이고의 팬이신가요? 그럼 아실거예요. 이 책엔 유가와 마나부 교수가 나옵니다. ('유가와 마나부 시리즈'는 '용의자 X의 헌신'을 포함함 추리 소설 모음집) 저는 유가와 마나부 이야기를 좋아해요. 그가 나오기만 하면 영영 풀리지 않을 것 같던 문제도 결국은 뚝딱 하고 풀려버리고 마는, 등장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런 경험을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이건 너무... 너무 심플한 내용이 아니었나 싶은데요.

 

 

줄거리

 



마시바 요시다카(이하 요시다카)는 자택에서 안타까운 모습으로 발견 됩니다. 그를 발견한 사람은 그와 내연 관계였던 와카야마 히로미(이하 히로미). 요시다카의 부인인 아야네는 삿포로에 있는 친정에 가 있는 상태였습니다. 참고로 아야네와 히로미는 스승과 제자 사이였어요.

어쩌다 스승의 남편과 부적절한 관계를 갖게 되었는지 시작부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요시다카는 여자를 '사랑'해서 만나는 게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아이를 낳아줄 '여자'를 원한 것 뿐이었죠. 결혼한 지 1년이 지났는데도 아야네에서 아이 소식이 없자 그는 그의 제자인 히로미에게 눈을 돌렸던 거예요.

아야네와 만나기 전, 그는 준코라는 여자와도 만났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 역시 버림을 받았죠.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요.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 슬픈 결말을 맺어요. 준코와 아야네는 친구 사이였는데요. 준코는 결단을 내리기 전, 아야네에게 독극물을 택배로 보냅니다. 왜, 무슨 이유에서?

한편, 수사팀은 요시다카의 사인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어 진척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때... 눈치 밥말아먹은 구사나기 형사가 아야네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껴요. 어쩔 수 없이 가오루는 천재라고 불리우는 유가와 마나부 교수를 찾아가 도움을 청합니다.

그는 요시다카가 죽기 전에 마신 커피에 집중해요. 그리고 그 안에 타졌을 독극물의 경로를 파고들지요. 여기서 조금 독특한 이야기 전개 방식이 펼쳐지는데요. 범인을 부인인 아야네로 상정해 놓고, 그녀가 어떻게 정수기를 이용하여 그의 목숨을 노릴 수 있었는가를 알아내기 위해 애를 씁니다. 이 과정을 두고 사람들은 모두 불가능한 일이라고 고개를 내젓는데,(저도 그랬었고요.) 하지만 결국 유가와 마나부는 그 트릭을 알아내는 데 성공합니다.

범행의 수법과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진범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부인 아야네? 내연관계였던 히로미? 그것도 아니면 요시다카가 전에 만났던 그 누군가?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세요. 그리고 책에서 그 결과를 확인해 보세요.

 

 

이 책에서 아쉬웠던 점

 



트릭의 불확실성이 너무 큽니다. 시간이 너무 길어요. 그래서 '이게 성공해서 요시다카가 죽은거예요.' 라는 말에 쉽게 납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도대체 요시다카에겐 무슨 매력이 있기에... 준코부터 아야네, 히로미까지. 궁금했는데 그의 매력이 설명된 바가 없고, 이미 죽은 자라 대사도 하나 없어 짐작을 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래도 명색이 주인공인데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안그래도 그의 사상에 반기를 오천만개는 들고 싶은데, 이해를 하는 데만도 무지막지한 상상력을 동원해야 해서 되게 피곤했어요.

형사 구사나기와 가오루. 구사나기는 위에 말했듯 피해자의 부인인 아야네에게 사랑에 빠져요. 말그대로 '이와중에'요. 그래서 유가와 마나부가 이렇다할 증거를 보여주어도 '그녀는 아니야. 어쨌든 아니야!'식의 거의 땡깡 비슷한 반론을 펼치기에 이르죠. 실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가오루 역시 아야네를 범인으로 정해 놓고 추리를 시작하긴 했지만, 왜 그녀가 제 1순위가 되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는 알려주지 않아 읽는 내내 의문이 들었습니다. 유가와 마나부가 아니었다면 이 책은... 저에게 나쁜 쪽으로 희대의 작품으로 남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 책이 좋았던 점

 



결말이 알고 싶어 빠져든다기보다는 아무래도 작가의 글솜씨, 문체(번역) 자체가 유려하게 흘러가는 편이라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는 뜻이지만, 잘 읽힙니다. 어딘가 이동하는 중에 추리소설 한 권 읽기 원하신다면 이 책을 추천 드려요.

 

 

제목의 의미

 



책을 다 읽은 후 성녀는 누구인가 싶었어요. 두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요. 첫째, 요시다카의 질긴 아기 타령이 마침내 끝이 나잖아요. 저는 그 어리숙한 생각을 끝내준 누군가가 성녀라고 생각했습니다. 여자를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아기 낳는 기계라고 보는 그 마음은 가히 몰상식하다 라고 표현을 해도 모자르죠. 그 마음을 강하게 비난한 자일거라고 생각했어요. 즉, 독극물을 택배로 보낸 준코 혹은 히로미를 그에게서 구해낸 아야네를 의미한 게 아니었을까요.

저자가 이토록 거창한 제목을 붙인 이유는 요시다카의 가치관 속에서 그녀들을 구해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함 아닌가 싶었습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표지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구제의 나날이 끝나는 순간 단죄는 시작 되리라'. 아야네는 언제든지 요시다카를 죽일 수 있었어요. 그녀가 그를 죽이지 않고 기회를 여러 번 주었던 나날이 구제로 표현이 되었고, 단죄는 마침내 실행을 했음을 뜻하는 말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전작에 비해서

 



별로예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원래 놀라운 흡인력이 특징적인 작가라 이제까지의 저는 그의 모든 페이지를 넘긴 후 놓여진 책을 보고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얼얼함을 감당하려 애써왔어요. 그런데 이 책은 그러고 말고 자시고 할 것이 없었네요. 추리소설인데 트릭이 허술 했다는 게 가장 실망스러웠어요.





흙탕물 다 튀겨놓고 이제와 딴소리냐고 하실 수도 있지만... 남에겐 최악이었어도 당신에겐 의미 있는 작품이 될 지도 모르니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한 번 읽어보세요. 저도 훗날 다시 읽었을 땐, 책을 읽는 장소와 감정 그리고 컨디션에 따라 다른 느낌을 받을 수도 있어요.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고 있기 때문인지 몰라도 다음은 그만의 휴머니즘이 돋보이는 작품을 읽고 싶네요. 유가와 마나부 선생의 뛰어난 추리가 돋보이는 소설은 시간 간격을 좀 두고 후에 읽을 생각이에요. 음, 이런 날씨엔 어떤 책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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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는 17살입니다. 어릴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조부모님 손에 길러졌어요. 하지만 조부모님마저 돌아가시게 되자 경주에게는 이제 함께 살았던 이 집만이 남았습니다.

 


집에 와서 하는 일이라곤 할머니 할아버지 속 긁어놓기, 돈 가져가기 밖에 없었던 삼촌이 찾아옵니다. 이 집 팔자고요. 그런데 왜 그걸 경주한테 말하느냐고요? 조부모님이 경주에게 유산으로 이 집을 남겨주고 가셨기 때문이에요. 비로소 경주가 서류에 도장을 찍어야만 집이 팔리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경주는 집을 팔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조부모님의 마지막 유언이었거든요. 삼촌은 고함을 지르거나 위협을 가하는 등의 방법으로 그녀에게 강요합니다.



"이 집은 절대 안 팝니다."

 

 

 

어디 어른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느냐고, 너는 애가 왜 이렇게 고집이 세냐고, 네가 뭐라 해도 결국 이 집을 팔게 될 거라는 삼촌의 말과 경주의 대답이 핑퐁처럼 최소 열 번 이상은 이어집니다. 경주도 참 대단해요.

 

애 vs. 어른


경주는 열 일곱살입니다. 삼촌은 서른이 넘었고요. 법적으로 한 명은 미성년자고 한 명은 어엿한 성인이지요. 그런데 이들의 태도를 한 번 보세요. '내가 가진 것은 노트북이나 비싼 패딩이 아니고 집이다. 자산이다.' 집을 소유했다는 것을 인지한 후 행동과 말투를 달리하는 이 고등학생. 꼭 필요한 말만 하고, 정확하게 행동하고, 분명한 태도를 보이려고 매사에 주의하는 경주는 어설프나마 어른스럽게 행동하려고 합니다.

대조적으로 삼촌은 상대방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적당히 구슬리면 될 거라고 생각해 철없는 행동을 하지요. 소리를 지르고, 발을 쾅쾅 구르고, 문을 세게 닫고 나가고, 으름장을 놓고, 제 딴에 무서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에요. 경주는 생각합니다.

 

나는 삼촌이 좀 더 지적이고 근사한 방법으로 나를 설득해 주기를 바랐다.

 

 

 

새삼 별스러울 것도 없어요. 세상엔 나잇값 못 하는 사람들 천지니까. 오히려 아이가 더 어른스러울 때가 있기도 하죠. 나이가 어른임을 증명하는 건 진짜 아닌 것 같아요. 어른은 어른답게 행동하고 자신과 남들이 인정해줄 때 붙일 수 있는 말 같습니다.

 

고모와 순지


고모와 그의 자녀 순지가 집에 찾아옵니다. 할머니가 물려주신 아파트를 말아먹고 갈 곳이 없었거든요. 고모도 처음엔 이 집을 팔고 세입자를 들이거나 이 자리에 새 집을 짓자고 설득 해요. 하지만 경주의 의지가 너무나 올곧았기 때문이겠죠. 고모는 적어도 삼촌처럼 끝까지 막무가내는 아니었습니다.

순지는 경주의 친구예요. 그도 처음엔 집을 파는 쪽에 생각이 기울어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삼촌이 저렇게 나오는데 결국은 팔게 되지 않을까, 하고요. 하지만 순지는 그렇게 생각을 했다 하더라도 아무런 힘이 없었어요. 미성년자였으니까요. 그는 종종 경주의 말동무가 되어줍니다.

고모부


경주 입장에서는 매일이 자연재해와 같은 하루 하루였겠지만 독자 입장에선 꽤 순탄한 전개였다고 생각합니다. 고모부가 등장하기 전까지는요.

고모부는 고모와 이혼한 사이예요. 이미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있죠. 그런데 왜 이 집에 찾아온 건지 모르겠어요. 게다가 길진 않지만 이 집에 잠시 잠깐 함께 살 거라네요? 이 집을 팔면 어마어마한 돈이 생기거든요. 정말이지 그 '돈'때문에 나잇값 못 하는 어른들이 하나 둘씩 생겨 나는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스포가 될 수 있겠습니다. 책을 읽으실 예정이신 분들은 이 부분 패스하시길 바라요. 거의 종반부에 고모부는 대단한 결심을 하나 하는데요. 아무리 설득을 하고 겁을 줘도 경주는 눈 하나 깜짝 안 하잖아요, 여기서 정말 못난 행동이 나옵니다. 삼촌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건 바로 경주를 지하 창고에 가두는 일이었어요. 집 서류를 넘겨주면 문을 열어준다네요. 삼촌은 옆에서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느냐'며 고모부를 말렸지만, 내심 이렇게 해서라도 일이 해결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을거예요. 결국 경주는 하루 반나절 정도를 창고에 갇혀 있게 됩니다.

경주를 꺼내준 사람은 근처에 사는 성이 할머니였어요. 사실 꺼내준 건 아닙니다. 성이 할머니는 경주 할머니가 돌아가신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분이 아니었거든요, 치매에 걸리셔서요. 자주 경주네 집에 와 정원을 손질하고 성이와 함께 돌아가시곤 했죠. 할머니가 창고로 다가가자 성이가 "할머니?"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것이었어요.



 

 

그 이후 고모와 고모부, 삼촌은 난리가 납니다. 경주가 듣고 있는지도 모르고 한바탕 말싸움을 해요. 고모는 삼촌에게 말합니다. 경주의 엄마 아빠가 죽은 건 너 때문이라고. 네가 경주의 엄마 아빠를 그 날 하필 불렀기 때문에 보러가다 사고가 난 거라고. 경주의 아빠가 할아버지 눈에 드는 게 네 입장에선 눈엣가시 아니었느냐고 말해요. 삼촌은 아빠가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다고 항변했지요.

이 집을 주축으로 경주의 부모님, 조부모님, 삼촌과 고모 등은 불편하게 얽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집도 나름의 비밀을 감추고 있었죠. 할아버지의 친구가 망하는 기회를 이용해 지어진 집이라는 게 삼촌의 단골멘트였어요. 그리고 그 친구가 찾아와 실수로 자신의 팔을 칼로 스쳤을 때 나온 피 때문에, 할아버지가 평생 삼촌의 요구를 들어주고 살아왔다는 사실도 경주는 어른들의 말싸움을 통해 알게 됩니다.

고모부는 지하 창고 사건 이후 집을 나가요. 그 날이 모두에게 전환점이 되어주긴 했나 봐요. 가장 큰 변화는, 삼촌이 달라졌거든요. 아무래도 조카를 창고에 가둔 건 아무리 인간 말종이라도 양심에 찔리는 일이었긴 했나봅니다.

삼촌과 나는 여름의 질서 속에 한참을 고요히 서 있었다. 삼촌이 어깨를 한 번 들썩이더니, 비밀이라도 말하듯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내가 잘못했다." 삼촌은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현관을 향해 돌아섰다.


다행이죠. 그런데 이제까지 경주가 마음 고생한 건 어디서 보상을 받을 수 있나요? 철이 없기로소니 고등학생 조카 앞에서 자신의 철부지 같은 행동을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나 싶습니다.

이 책을 덮고 씁쓸했던 이유는 이 책에 나오는 삼촌, 고모부, 고모 같은 어른들이 상당히 많다는 현실 때문이었어요.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건 저도 누군가에겐 이렇게 지긋지긋한 사람일 지 모른단 사실...)

진짜 어른은 어떤 사람을 일컫는 말일까요? 책에서 경주는 소중한 것을 자신의 소신을 걸고 지켜내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지 않으면서 자신의 뜻을 관철 시키는게 꽤 어른스러워 보이긴 했어요. 책에서 던지는 질문은 아니긴 하지만요. 생각해 볼만한 물음인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나는 물론이고 타인을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짙어집니다. 나와 타인에 대한 배려. 이 균형을 맞추는 삶을 살고 싶네요.



 

 

끝으로... 제목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왜 '나로 만든 집' 일까. 이 집은 말그대로 '경주'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목숨을 걸고라도 지키려고 했던 게 아닐까요? 나는 내 몸도 있지만, 생각도 있고 의지도 있고 신념도 있죠. 경주의 그 모든 것이 이 집을 이루고 있던 것이라고 생각해요. 결국은 아무도 이 집을 허물 수 없었습니다. 경주가 경주를 포기하지 않아서 아무도 허물 수 없었어요. 힘들었겠지만 끝까지 자신의 소리에 귀기울여 준 경주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이 책을 청소년들이 읽는다면, 많은 것을 가지고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자신의 옳다고 생각되는 소신을 어른들 중에도 나잇값 못 하는 덜 큰 어른들의 말을 듣고 꺾지 마세요. 그저 나이만 먹은 어른들에게 굴복하지 않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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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작품을 또 읽고 말았습니다. 그녀 덕분에 '심리스릴러'라는 장르에 흥미가 생겼거든요. 제 글을 보아오신 분들은 저자의 이름이 낯설지 않으실거예요.

 

 

[책] B. A. 패리스 - 비하인드도어 리뷰, 가스라이팅으로 버무려진 자극적인 심리스릴러 소설

제목은 생소할 수 있어도 이 표지는 익숙한 분들 많으실텐데요. 요즘 광고 많이 하잖아요, SNS에서. 저도 광고로 이 책을 처음 알았어요. 반은 속는 셈 치고 읽었는데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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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B. A. 패리스 - 테라피스트 리뷰, 죄책감은 무서운 감정이에요

그녀의 <비하인드도어>를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다른 작품도 읽어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비하인드도어가 더 재밌었네요. 이 책의 묘미는 후반부에 모두 몰려있는 것 같아요. '누가 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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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도 이미 유명한 작품들인데 제가 리뷰한 바 있거든요. 아직 못 보셨다면, 참고 해주시길 바라고요. 오늘은, 브레이크다운입니다. 역시나 이번에도 가스라이팅이 난무해요. 특히 이번에는 제가 범인을 맞추지 못 할 정도로 주인공인 캐시 만큼이나 맘고생을 많이 했는데요. 심리적으로 힘들더라고요. 과연... 어떤 내용이었을까요? 소개해볼게요. 참고로 <스포주의>입니다.

줄거리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날, 캐시는 숲속을 관통해야 하는 블랙워터라는 길을 선택해요. 남편 매튜가 절대 그 길로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요. 그 결과, 캐시는 그 곳에서 웬 여자와 눈이 마주치게 됩니다. 멈춘 차 안에서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던 여자... 누구였을까요?

비가 너무 많이 내려 당시에는 알지 못 했어요. 하지만 곧 뉴스 보도를 통해 알게 됩니다. 그 여자는 자신과 함께 점심을 먹은 적이 있는 제인이었다는 사실을요.

캐시는 죄책감에 휩싸입니다. 당시 무언가 이상했는데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고, 집에 돌아가 경찰에 신고해야지 해놓고도 잊어버렸어요, 경찰이 증인을 찾을 때도 뒤늦게 나섰고요. 그래서 그녀는 심리적 압박에 시달려요.

게다가 범인은 아직 잡히지 않은 상태인데, 타살이었대요. 그가 캐시의 차 번호를 외웠으면 어쩌죠? 그럼 자연히 집 전화번호도 알 수 있게 되는데요. 그 이후 캐시네 집에는 침묵의 전화가 매일 걸려옵니다.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면 상대는 아무 말을 하지 않는거예요.

캐시의 어머니는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셨어요. 어머니의 병수발을 해 온 캐시는 그 병의 무서움을 알기 때문에 자신에게도 그런 일이 생길까 몹시 걱정하는데요. 그런데 실제로 요즘, 자꾸만 의심스러운 일이 생깁니다. 사람들과의 약속을, 기계 사용법을 잊어버려요. 구매한 물건을 사고 또 사서 주위 사람을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하고요.

분명히 놓여있던 칼이 다시 돌아와보니 없고, 외출하고 와 보니 컵의 위치가 바뀌어 있고, 조용한 집 안에서 나는 기척을 기묘하게도 그녀만 겪어요. 그래서 그녀는 범인이 자신을 노리고 있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제가요, 캐시만큼이나 맘고생을 했다고 했었잖아요? 그런데 상황이 그래요. 캐시 입장에서는 약속을 하지 않았는데 성립이 되어 있고 느닷없이 기계가 말을 듣지 않고 뜬금없는 물건들이 도착해 있는거예요. 하지만 이렇다할 이유는 딱히 모르겠으니 내 잘못인 것만 같고...)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 레이철은 그녀가 이렇게 힘들어 할 때마다 위로를 해줍니다. 어느 날은 두 사람이 점심을 함께 먹으려 하는데 화장실에 다녀온 레이철이 급히 가 볼 데가 있다는거예요. 그리고 그녀가 나가자마자 웬 학생이 다가와 '제 친구가 당신의 친구 핸드폰을 훔쳤어요, 미안해요.' 라며 사과하죠.

핸드폰 속에는 캐시의 남편인 매튜와 레이철의 애정이 가득 담겨 있었는데요. 이제까지 캐시를 곤궁에 빠뜨렸던 모든 상황의 작전도 함께 적혀 있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예요.



 

 

캐시는 분노합니다. 창고에 칼이 하나 있었는데, 언론에 보도 된 실제 사건 현장에 사용된 칼이었어요. 그 칼은 왜 그 집 창고에 있는걸까요? 매튜가 범인이어서? 매튜와 연인인 레이철이 범인이어서? 캐시는 두 사람에게 복수를 하려고 레이철의 행주로 칼을 감싸고, 매튜가 범행 당시 집에 있었기는 하나 정말 그랬는지는 모르겠다는 말을 경찰에게 늘어놔요.

범인이요? 레이철이었습니다. 저만큼이나 캐시도 놀라요. 그저 복수하고 싶었을 뿐인데, 정말 그녀가 그랬을거라고는 생각지 못 했었거든요. 레이철은 캐시의 부모님이 제 2의 딸이라고 했을 정도로 그녀를 예뻐했는데, 자신에게는 유산을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에 화가나 캐시의 돈을 빼앗기로 매튜와 모의한 거예요. 그런데 매튜와 자신의 관계를 제인이 알게 되고, 그 사실을 캐시에게 말하겠다는 그녀를 죽이게 된... 그런 연유였던거죠.

참고로 매일 집에 전화를 걸어오던 사람은 매튜였습니다. 레이철 못지 않게 매튜도 어마어마해요. 그는 캐시와 한 집에 살았던 사람이에요. 캐시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동시에 가하는 가스라이팅이, 돌이켜보니 너무나 자연스럽고 소름끼쳐 혐오감이 들더라고요.


주인공, 캐시



 

그녀는 끝까지 불쌍하기만 한 건 아니었습니다. 문자를 보고 난 뒤 이제까지 자신의 생각과 어긋났던 사람을 모두 다시 찾아가요. 그리고 묻습니다. 내가 정말 그렇게 말 했었느냐고. '아니? 네 친구가 그러던데?', '남편이 그러던데요?' 사람들은 대답하죠. 나도 엄마처럼 치매에 걸린 건 아닐까 스스로를 의심하던 캐시. 그녀는 정상이었습니다. 망상증 환자도 아니었어요.

그리고 마침내 그들에게 복수를 하죠.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상황을 연출하고 제 3자가 그들을 이상한 사람인 것처럼 바라보게끔 만드는 수법. 그러다 운 좋게 제인 사건의 범인이 밝혀진거고요.

만일 내가 그 핸드폰을 받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두 사람이 어떻게 나를 배신했는지, 지금으로서는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슬픔에 빠져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못하게 될까봐 두렵다. 점박이 암소(가게 이름)에서 수화기를 통해 매튜의 목소리를 듣고 모든 속임수의 실타래가 풀리던 순간, 결심한 것이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편과 가장 친한 친구 두 사람을 동시에 잃어 속상한 마음이 컸을텐데 분노를 동력 삼아 진정한 복수란 이런것이다, 본때를 보여준 게 아주 멋져요.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으세요?

 

 

레이철



 

처음부터 제인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을 거예요. 이제까지의 일들이 모두 수포로 돌아갈까봐 그랬겠죠. 캐시의 돈을 뺏어야 하는데 매튜와의 관계가 들켜버리면 안 되니까 그녀의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엄연한 범죄를 두둔할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요.

아빠가 레이철에게 유산을 남기지 않아 얼마나 소외된 기분을 느꼈을지, 내가 이해했어야 했다. 어떻게 그렇게 무심할 수 있었을까?


부모님을 여의고 캐시의 부모님에게 사랑을 받고 자란 레이철. 제 2의 딸이라는 소리를 듣고 자란 그녀도 그들을 진짜 부모처럼 의지하고 따랐던걸까요? 진한 배신감으로 인해 일어난 비극이에요. 어떻게 나에게는 유산을 남기지 않을 수 있는지 레이철은 이해할 수가 없었대요.

사실 캐시는 레이철의 마흔 살 생일 선물로 집을 사 두었어요. 생일에 맞춰 주려고 했던 거지요. '선물을 조금 더 일찍 주어야 했던 걸까?' 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레이철은 착한 친구를 두었었답니다.



 

 

남편 매튜는 레이철에게 끌려다닌 인상을 남겼기 때문에 따로 언급을 하지는 않을래요. 저는 처음엔 매튜가 범인인 줄 알았어요. 캐시가 집에서 이상한 일들을 겪을 때마다 그녀를 위로할 뿐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는 않았거든요.

그러다 나중에는 캐시가 범인이 아닐까도 생각 했었습니다. 건망증이 너무 심해 제인을 죽인 이유를 무의식 중에 잊어버린 건 아닐까 싶었어요. 친구 존이 범인인 것 같기도, 범인은 따로 있는 것 같기도 했는데, 제 머릿 속 용의자 선상에 레이철은 없었기에 결과가 더욱 충격으로 다가왔었습니다.



 

 

저는 이번에 깜빡 속아 넘어갔어요. 여러분은 어떠셨어요? 초반에 눈치를 채버려서 책 자체가 재미 없었다는 분도 계셨는데, 저는 그 분이 눈치가 참 빠른 분인 것 같아요.

이전에 읽었던 저자의 책들과 비교하면 흡인력은 역시나 마지막 100장 정도에 몰빵이 되어있었던 것 같고요. 소재는 역시나 참신했습니다. B. A. 패리스는 일상 생활에서 벌어지는 막장 스토리를 너무나 잘 풀어 써요. 어딘가에서는 정말 일어날 것만 같은 일들이에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이은해 사건이 생각 났습니다. 내가 믿고 소중히 여기는 누군가가 나를 가스라이팅 하고 있다면. 언젠가부터는 그 사실을 내가 눈치를 채겠지만, 그 때 즈음엔 이미 내가 나보다 그 사람을 더 사랑하고 있어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가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임을 깨닫게 되지요. 심리를 조작해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것은 아니, 사람의 기능을 망가뜨려 놓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을 가지고 놀겠다는 말과 같은데 이건 개중에서도 아주 사악한 짓 같아요.



 

 

의사마저도 두 사람의 계략에 놀아나 그녀가 정신증 환자인 줄 알고 약을 처방해 주었습니다. 만약 내가 캐시의 입장이라면, 이 세상에 나 말고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고 있다면...

내가 나를 끝까지 믿어줄 수 있을까요? 세뇌가 얼마나 무서운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B. A. 패리스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껴요. 내가 내 말을 잘 들어줘야지. 나를 더 많이 사랑해줘야지, 하고요. 이번에도 역시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글을 참 맛깔나게 쓰는 이 작가. 피 한 방울 안 나오는데 어쩜 그렇게 사람을 피 말리게 하는지 몰라요. 리뷰는 이만 마칠게요. 제 글을 읽고 궁금한 점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댓글 남겨주세요. 읽고 내려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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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특이하죠. 저 사실 며칠 째 고민했거든요. 왜 '투명 카멜레온'인지. 책을 덮은 지는 오래됐는데 제목이 이해가 안 되서 리뷰를 쓰지 못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리뷰를 다 쓰고 나니 이건 그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용부터 감상에 이르기까지, 제 리뷰 한 번 읽어봐주실래요?


 

if




바 이름입니다. 라디오 디제이를 맡고 있는 기리하타, 예쁘장한 임산부 모모카, 무섭게 생긴 이시노자카, 반반하게 생긴 레이카, 바 사장 데루미, 늘 불상을 깎는 70세 노인 시게마쓰가 늘 이 곳에 모여요. 어느 날 비를 쫄딱 맞은 웬 여인이 이상한 말을 늘어놓고 가죠. 그 다음날 또 찾아와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뚝딱거리는 모습을 보이고요.

그 여인의 이름은 미카지 케이입니다. 그녀는 기리하타의 라디오를 듣는 팬이에요. 하지만 라디오는 얼굴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목소리만큼이나 그가 얼굴도 잘생겼을 줄 착각하고 있었어요. 기리하타는 그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반반하게 생긴 레이카를 앞세워 케이를 속여넘겨요.

하지만 그 계획은 얼마 못 가 들통나고 맙니다. 케이는 흥분하여 바에 모여있던 사람들을 파렴치한 사람들로 몰아가요. 그 중에서도 선두에 서 그녀를 속인 기리하타, 그는 그녀에게 거의 약점이 잡혀버리고 마는데요.

그녀는 그에게 시키는대로 하라고 해요. 그리고 어느 날 이시노자카씨를 데리고 묘지로 오라고 합니다. 충분한 설명을 해주지 않고 한 명에겐 쫓기는 역, 한 명에겐 쫓는 역할을 부여하는데,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추격전을 한바탕 벌이고... 그 후에도 설명은 해주지 않습니다!

+) 왜 부탁을 들어주느냐고요? 기리하타가 케이가 마음에 들었다네요. 일전에 케이 앞에선 디제이가 아닌 척, 전화로는 디제이인 척을 하며 그녀를 속여왔어요. 그 광경을 그녀가 목격했고요. 미안하고 민망한 마음에 사람들에게 협조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다닌거죠.


 

하숙? 동거?




어느 날 케이는 갈 곳이 없다며 기리하타 집으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들어와요. 아, 그런데 불행 중 다행이랄지 민폐를 부리는 타입은 아니네요.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지냅니다.

하지만 함께 살다보니 진지한 얘기를 하게 되는 순간이 있었어요. 케이는 자신의 아버지가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불법 폐기처리를 하는 사람 때문에 망하게 돼 길가에 나앉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고 털어놔요. 그래서 그 불법 폐기처리자 즉, 고토라고 하는 사람을 겁주기 위해 여러가지 꾀를 내기 시작한거라고 설명합니다. 그녀가 안쓰러웠던 기리하타는 앞으로도 그녀를 도와주기로 마음 먹어요.


 

콘크리트 벽돌 투하 작전 / 미행 작전 / 독이 든 소라 요리와 새총 작전




<콘크리트 벽돌 투하 작전>은 미카지 케이 혼자 벌인 일입니다. if 건물 위에서 아래에 있는 목표물을 향해 벽돌을 떨어뜨렸어요. 다행히 죽진 않았지만요.

그 다음은 <미행 작전>. 이 때부터는 기리하타가 함께 해요. 고토가 '저번부터 누가 내 목숨을 노리고 있어. 근데 그게 누굴까?' 싶은 시점에 벌인 작전. 쫓기는 역할을 맡게 된 기리하타는 고토가 망하게 만든 회사의 로고가 찍힌 점퍼를 입고 있었어요. (케이가 줌) 고토는 그래서 눈에 불을 켜고 쫓아왔던 거였고요.

마지막 <독이 든 소라 요리와 새총 작전>은 if의 식구들이 함께 합니다. 종업원인 척 고토의 방에 들어가 독이 든 소라 요리를 먹인다는 계획이었죠. 그 정도의 독은 먹어도 생명에 지장이 없을 정도였지만, 케이가 원한 건 '누군가 너를 노리고 있다. 인생 똑바로 살아라!' 였기 때문에 아쉬울 건 없었어요.


 

케이의 취직, 사라짐




케이는 if에 취직해요. 어느 날 데루미 사장이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홀로 밖에 나와있던 케이가 누군가에게 급히 끌려나갑니다. 소식을 들은 if 식구들은 케이가 있을만한 곳을 찾아가죠.

산 속에 들어간 if 식구들, 그들은 큰 구덩이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건 바로 불법 폐기물을 버릴 수 있는 공간. 정당한 방법으로 쓰레기를 버리려면 비용이 많이 드니까 얌체같은 사람들이 돈을 받은 뒤, 산의 적당한 곳에 커다란 구멍을 파 그 안에 폐기물들을 쏟아붓고 흙으로 덮고 있었어요. 그렇게 벌인 짓을 들키면 폐기업체와 그 쓰레기를 버린 회사는 처분을 받게 되는데 회사가 더 가혹한 처분을 받고, 폐기업체는 이름만 바꿔 또 똑같은 짓을 저지르곤 했죠. 그렇게 도산한 케이 아버지의 복수를 지금 케이가 하고 있는거고요.

if 식구들은 케이가 이 곳으로 끌려갔다고 생각했고 예상과 같이 그 곳에서 케이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옆에는 케이의 아버지도 함께 있었어요. 기리하타에게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말했었거든요. 기리하타는 그녀 말의 모순점을 하나하나 풀기 시작해요. 그리고 알아내요.

 

단지 고토와 관계된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믿음만 심어주면 되었다. 그리하여 아버지가 고토에게 복수하겠다는 결심을 포기하기를 바랐다.


케이는 자신의 아버지가 고토에게 복수할 것이 두려워, 고토가 두려워 그들을 말릴 생각으로 그간의 짓들을 저질렀던 것이었어요.
아버지는 고토에게 한 방 먹이려고 이 자리에 나와 있었고, 케이는 말리고 싶었어요.

결국 아버지는 고토를 때리고 말았죠. 그에게는 험상궂은 일행이 있었는데.


 

추격전, 아침




케이와 케이 아버지, 그리고 if의 식구들은 한 밤의 추격전을 벌입니다. 트럭으로 퇴로를 막아버린 고토의 일당과 맞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맘 졸이는 새벽을 보내요. 그 때 기리하타가 나섭니다. "네가 잘못했잖아! 어째서 그렇게 뻔뻔한거야!"

...라고 말하고 싶었겠죠? 소심한 그는 버벅거려요. 하지만 마침내 쏟아내죠. 너 때문에 한 회사가 망했다고! 한 가족이 길에 나앉았다고!

하지만 고토는 끝까지 철면피에요. if 식구들은 이제 저마다의 개인기로 고토를 공격합니다. 험상궂게 생긴 이시노자카의 협박, 새총 작전을 성공하기 위해 연습했던 실력을 뽐내는 시게마쓰, 아! 임산부 모모카는 몸을 조심해야 해서 길이 있을 거라며 먼저 돌려보냈는데요. 내려가는 길에 그녀가 경찰 사이렌을 울려요. "어? 이거 이런 소리도 나네?" 태연히 돌아오면서. 고토는 꼬리에 불이 붙은 뭐 마냥 줄행랑 쳤지요.


 

if 식구들이 기리하타를 따라온 이유




아침이 돼요. 기리하타가 고백합니다. 이제까지 내가 라디오에서 각색한 우리 if 식구들의 이야기는 모두 결말이 조금씩 다르다고.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거나 매일같이 떠오르는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이었죠. 기리하타는 그들에게 미래를 선물해주기 위해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은 선택 가능한 것 아니냐며 그들을 위로해왔습니다. 그래서 과거를 덜 무겁게 소재화 하여 라디오에 그들의 사연을 띄웠었어요. 그 때 이후로 if 식구들이 서서히 웃기 시작했다고 해요. 이게 바로 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기리하타를 따라 산까지 올라온 이유에요.

기리하타는 얼마 전 출산한 여동생과 엄마가 계시다고 했었는데,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려요. 그들은 교통사고로 모두 죽었어요. 그는 충격에 휩싸여서 몸이 굳었는데 눈물은 나오지 않는, 울고 싶은데 눈물이 나오지 않는 그런 상태에까지 이르러요. 그런 그가 사람들을 위로한거예요.


 

투명 카멜레온




기리하타가 어릴 때 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다른 친구들과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 살았었대요. 하루는 그가 자기 집에 카멜레온이 산다며 기리하타를 초대한거예요. 하지만 카멜레온은 보이지 않았죠. 하지만 친구는 정말 카멜레온이 있는 것처럼 행동 했어요.

그리고 집에 돌아온 기리하타도 자신의 집에 투명 카멜레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요. 무엇인가가 없어지면 '투명 카멜레온이 가져갔구나!', 물건의 위치가 달라져있으면 '투명 카멜레온의 짓이로구나!' 뭐 이런 식으로.

나이가 들수록 그 생각은 점점 희미해져 어느새 잊어버리게 되지만요. 그 때 그 기억을 다 커서 다시 한 번 회상하게 돼요. 왜 그 기억을 떠올린걸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 남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내 눈에는 보이는 내 상처와 비슷하단 생각이 들어서였을까요?





책을 다 읽고나서 한동안 멍했어요. 바로 머릿 속을 관통하는 하나의 생각이 없었어서요. 하지만 아래의 글을 읽고나니 서서히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 들더군요.

 

모두 아직 상처가 완전히 낫지 않았다. 때때로 옆얼굴에 다른 사람 같은 표정이 맺힐 때도 있다. 기억은 언제나 사람을 따라다닌다.


누구에게나 투명 카멜레온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 사람만이 볼 수 있는 그 사람만의, 혹은 나만의 투명 카멜레온. 그건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없는 것이어서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그 사실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건 분명히 존재하고, 내게 영향을 끼치는 것. 등장한 모든 인물에게 투명 카멜레온이 있었어요. 투명 카멜레온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건 '기억'이나 '상처'라고 다시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작가는 이 작품을 쓰기 전까지 자신을 위한 글을 썼다고 해요.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킬 글을 쓸 수는 없으니 그럼 내가 좋아하는 만족스러운 글을 쓰자 하면서요. 그런데 이 작품, <투명 카멜레온>은 독자들을 위해 썼다고 합니다. 즉,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히 있다는거죠.

기리하타가 전하는 메시지를 당신은 어떻게 받아보셨나요? 저는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책에서는 소중한 사람을 잃고 웃는 사람, 그럼에도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사람이 나와요.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겠죠. 내 카멜레온도 가엽지만, 다른 사람들도 가여워한 시간이었어요.

 

 

[책] 미치오슈스케 -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모든 진상의 키워드는 인간의 주관

인간은 외롭거나 슬퍼서 견딜 수 없을 때,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게 그 감정을 배출한다. 약자는 그 배출구로 희생된다. 또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괴로울 때 자신이 만든 세계로 도망쳐 들어간다.

hyunaver.tistory.com

미치오슈스케의 다른 책 리뷰입니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혹은, 흥미가 생기셨다면 저자의 다른 책도 한 번 구경해보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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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내향적입니다. 그래서 매우 공감하며 읽었어요. 내향적인 사람들은 에너지를 어디에서 얻을까요? 외부자극, 친구와의 만남, 수다? 아뇨, 오롯이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얻어요. 그 누구에게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서 에너지를 얻습니다. 그래서 내향적인 사람들은 혼자 있을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하지만 육아를 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은 극히 드물어지죠. 정신적으로 에너지를 많이 쓰는데, 혼자 재충전할 시간을 갖지 못해 매우 스트레스를 받아합니다.

만일 제가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제 성격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고 살아갔을거예요. 아이는 제가 꽁꽁 감춰둔, 십년 이십년 전의 제 모습을 자꾸만 들춰내 극복하라고 등을 떠미는데요.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키운다! 는 말을 뼛속 깊이 실감하는 요즘이에요.

 

많은 내향인이 그렇게 옷깃을 여미지 않던가. 내게 잘 맞는 사람이란 걸 깨닫는 어떤 계기가 없으면 섣불리 다가가지 않는다. 만인의 연인이 되려는 공산 없이, 딱 한 줌의 사람에게만 호기심과 애정을 쏟는다. 각자의 이유가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맞지 않는 이에게까지 에너지를 짜내고 싶지는 않아서였다. 나는 한 사람이 올 때면 그 사람의 과거와 미래, 품고 있는 모든 것이 함께 온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마치 해일처럼 느껴져 겁이 났다. 그 감정의 파동만으로도 장거리 달리기를 한 것처럼 기진맥진해져, 늘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팠다.


어쩜 이렇게도 내 맘 같을까. 공감하는 분들 많으시죠? 저도 누군가를 만날 때 그가 마치 해일처럼 느껴져 덜컥 겁이 날 때가 있어요. 사실 이게 저의 요즘 최대 난제인데요. 아이가 기관 생활을 시작하고 아이 친구 엄마들을 거의 매일 같이 만나고 있거든요. 따로 커피를 마시거나 밥을 함께 먹기도 하고... 싫지 않아요. 다행히 좋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런데 걱정이 되는 건...

나의 의지로, 그들의 의지로 선택하여 이루어진 만남이 아니기 때문에 맞춰야 한다는 거예요. 갈등이 없어야만 하는 관계. 앞으로 많은 친구 엄마들을 만날텐데, 그 때마다 이런 시간을 거쳐야 하는걸까 싶어 답답해요.

이런 제 고민을 들으면 선배맘들은 친구 엄마 신경쓰지 말라고들 하시더라고요. 나중에 돌아보면 다 부질없다고. 그 시간에 내새끼 한 번 더 신경써주는 게 옳은 거라고들. 저는 초보엄마라 어려워요. 여튼... 아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시작된 만남이긴 하지만 조심해야 하고, 경직되어 있는, 때로는 어떤 가면을 써야만 하는 지금 저는 에너지를 많이 빼앗기고 있어요. 원체 인간관계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 저와 같은 사람들이 아마 이 피로감을 공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모르는 이들과의 생활이 내향인에게 편할리 없다. 랜덤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환경도, 누군가에게 관찰되는 것도 그리 달갑지는 않다. 관계 개척과 친밀 유지에는 막대한 에너지가 드는 법이다. 조리원에서 모르는 이들에게 쓴 에너지를 막 태어난 아이에게 나눠줬으면 더 좋았을걸. 남의 시선보다 더 중요한 것을 의식했어야 했다. 나같은 누군가가 있다면 좋은 만남을 기대하되 연연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정말, 괜찮다. '엄마 친구'들은 계속 생기고, 참여할 모임 역시 계속 늘어난다.


선배맘의 '정말, 괜찮다' 라는 말이 얼마나 든든한지요? 물론 '엄마 친구'들과의 관계가 모두 불편한 것만은 아니지만요. 살다보면 친구처럼, 친언니처럼 맘 맞는 누군가를 만날지도 몰라요. 하지만 조리원 동기를 만들겠다고, 친구를 만들어주겠다고, 꼭 해야 하는 일처럼 관계를 맺으려는 시도는 확실히 피곤해요. 그래서 저도 너무 얽매이지 않으려고요. 남의 시선보다 더 중요한 걸 의식했어야 했다고 선배맘이 그러잖아요.

 

엄마가 되면 마법처럼 씩씩해질 줄 알았다. 여느 사람들처럼 마땅히 손을 내밀어도 되는 도움이라면 당당히 요청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가 되는 수고와 맞바꿨는데, 이 정도 능력쯤은 생겼겠지. 그러나 아기를 안고 돌아온 나는 여전했다. 오히려 아기가 생기니 절대 약자가 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작은 부탁 하나 하기가 전보다 훨씬 더 어렵게 느껴졌다.


저도 엄마가 되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단단해지는 건 줄 알았어요. 그런데 웬걸. 더 물러졌어요. 물론 아이에 관한 일이라면 예민함이 하늘을 찔러 없던 용기도 쥐어짜 결국은 극복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체로 평온한 날의 아기를 안은 저는 강하지 않아요. 내가 강하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노력하고자 하는 마음이 오히려 더 주눅을 들게 하는 것도 같습니다. 엄마는 강하다, 란 말의 엄마는 어떤 엄마들일까요? 아, 눈치를 채지는 못하고 있지만 저도 그런 엄마가 되어가고 있는걸까요.

 

혼자 있고 싶다고 하면 주변에선 큰일 난 것처럼 나를 밖으로 끌어내며 그게 마치 우울증의 전조인 양 경계했다. 사실은 그 반대였는데. 나는 소란하고 바빠서, 나는 답답하고 우울했다. 내 안을 깊숙이 들여다보지 못했고, 고여서 찰랑대는 감정을 비워내지 못해 괴로웠다. 아기 울음소리가 뾰족한 바늘이 되어 고인 감정을 찌르면 툭툭, 눈물이 되어 떨어졌다.


내향인들은 혼자만의 시간이 꼬옥 꼭 필요하죠. 그런데 전쟁같은 육아에서 혼자만의 시간? 아이가 눈을 감고 있을 때나 가능한 얘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시간을 포기해버리면 우리는 나중에 미칠지도 몰라요 정말. 그 시간에 에너지를 얻는데요. 어떻게든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어야 해요.

몇 달 전 제가 육아가 너무 힘들다고 블로그에 글을 올린 적이 있어요. 그것도 여러 번. 힘들 때마다 참고 참다가 못 참겠어서 올린거예요.

이제야 돌아볼 수 있게 되었네요. 내 육아가 유달리 힘든 이유. 같은 시간 육아를 해도 남편은 쌩쌩하고 별 일 없어 보이는데 나만 이렇게 괴로운 이유.

저는 제 감정을 제 스스로 추스르고 저와 단둘이 조용히 대화 나눌 시간이 필요해요. 그 시간이 없으면 저도 없어요. 빈 껍데기나 마찬가지죠. 이미 동이난 마음 바닥에 대고 아이는 사랑을 갈구하고, 저는 재충전을 하지 못해 절규하며 괴로워했어요. 이 책을 조금 더 일찍 만났더라면... 아기 울음소리가 뾰족한 바늘이 되어 내 감정을 찔렀다는 말에 나 혼자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니라는 안도, 나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라는 위안을 받았었을건데 참 아쉬워요.

지금도 저는 제 감정을 혼자 추스를 시간이 부족하면 힘들어요. 그런데 한편으론 다행이에요. 이젠 내가 왜 힘든지 그 이유를 알게 되어서요.

 

 

육아서 속 엄마들은 모두 에너지 넘치고 빠릿빠릿해 보였다. 그네들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소문난 육아계 인플루언서들 역시 대개 활동가 타입이라는 것을. 그제야 생각이 났다. 모든 아이가 다르듯 모든 엄마도 다르구나. 모두가 타고난 영역과 살아온 세월, 체력과 환경 등이 다르니 당연한 일이다. 아이의 다름은 인정받지만, 엄마의 다름은 쉽게 간과된다. 아이의 기질은 세심하게 분류되지만, 엄마의 기질은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는다. 어느 학자는 내향성과 외향성을 '기질의 남과 북'이라 칭했다. 이 스펙트럼의 어느 지점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성격, 선택과 행동, 삶의 양식이 완전히 달라진다. 하지만 엄마들은 줄곧 '엄마'로만 뭉뚱그려졌다.


우리는 이 사실을 간과하고, 사실 알려고 하지도 않아요. 아이들 케어하기 급급해서. 육아 인플루언서들 많이 계시는데요. 저는 보면서 따라해 볼 엄두도 안 나더라고요. 그 분들은 하루에도 글을 몇 개씩 올리며 사람들과 소통까지 하는 여유를 보이시던데... 저는 정신이며 신체적인 체력, 시간도 없을 것 같고, 볼 때마다 저와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못해요! 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은 아녜요. 저는 제가 잘하는 분야가 따로 있어요.) 괜히 어설프게 따라했다가 바짓가랑이 찢어질 것만 같아요.

책육아도요. 한때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모임을 가졌던 적이 있는데요. 제가 주도해서요.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더라고요. 매일 읽은 책을 찍고 내용을 기록하는 일이, 사람들과 피드백을 주고받는 일이, 제게 육퇴 후 편안한 힐링이 되어주지 못하고 어느덧 피로감을 얹어주기만 했어요. 지금은 그 일을 잠시 멈추고, 아이가 원할 때, 제가 원할 때, 마음이 동할 때 책을 읽어주고 있어요. 그러니까 한 권을 읽어도 진정으로 빠져서 읽어줄 수가 있게 되더군요. 나는 내 스타일이 있건만... 내가 가장 편한 것이 있건만.

물론 좋은 건, 배울만한 건 흉내를 내서라도 시도해 볼 가치가 있죠. 하지만 육아에 지장이 갈 정도로 나를 지치게 하는 일이라면 그만둬요. 그 에너지와 체력 아껴 내 새끼한테 애정표현이나 한 번 더 해줄래요.

 

문제는 그거였다. 아무것도 안 하면 불안하고, 무언가 했다 하면 자신을 밀어붙이다 나가떨어지는 악순환의 반복. 번아웃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소외감과 이질감은 또 다른 스트레스였다. 어디서든 나와 비슷한 사람은 찾기 힘들고, 주변인들은 내가 왜 힘든지 이해하지 못했다.


작가님에게 크게 공감을 느꼈던 이유가 저와 매우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데요. 작가님도 책육아를 하시는 분이세요. 그것도 조용히 열정적으로. 그러다 에너지가 소진되면 나가떨어지고, 번아웃이 오고, 스트레스를 받고... 저 정말 제 얘기 써논 줄 알았잖아요.

뒤처지고 싶지 않아 강박적으로 아기 책을 사모으고 읽어주고 기록하고. 가르치고 데려가고 경험 시켜주고. 그러다 번아웃이 와서 숨쉬는 것 빼곤 아무것도 못 하겠어서 바닥에 대자로 누워 아이에게 입으로 애걸복걸 했던 적이 있어요. 절대 그러면 안 되지만 힘들어 화를 냈던 적도 있고요.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하는 일인데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결말이라니 참 한심하죠. 사실 저는 지금도 많은 것을 내려놓진 못 하고 있어요. 주변 엄마들이 좋은 거라고 하면 기웃거리다 일단 시켜보죠. 그러다 나중에 현타가 올 가능성이 농후한데, 알면서도.

달리기에서 밀리지 않게, 뒤처지지 않게 하루도 쉬지 않고 미친듯 달리는 육아보다 내 마음, 아이 마음이 편한 정도의 적당한 육아가 최고인 듯 해요. 근데 그거 어떻게 하는거예요?

 

조금은 너그럽고 가뿐해져 볼 일이었다. 요컨대 아이가 흙을 만지면 아이 손을 잡아끌다 지치지 말고 흙냄새도 맡아보고 파헤쳐도 보게 두는 것이다. 그 후 '흙'에 관한 책을 찾아 읽어주면 하루가 알뜰했다. 거스르는 것이 없는 만큼 자연스러웠다. 아이도 즐겁고 그 김에 책도 한 권 읽힐 수 있어 내 마음도 편했다. 물렁하고 마음 약한 엄마와 단단하고 완고한 아이가 마침내 짝! 소리 나게 손뼉을 치게 된 것이다. 어쩌면 해볼 만할지도 모르겠다. 내향적인 엄마와 에너지 넘치는 아이의 합은 사실 썩 괜찮은 조합일지도 모른다. 두 뺨에 따스한 활기가 돌았다.


아이가 흙에 관심을 보이면 흙을 많이 만지는 유치원, 놀이 기관을 알아보는 나란 엄마... 정말 엄마 욕심이란 생각이 물씬 들고 부끄럽네요. 흙을 좋아하면 매일 만지면 되고, 관심이 깊어지면 그저 산이며 숲으로 놀러가면 되는 일인데, 그쵸. 욕심이 족제비라 안그래도 힘든 육아를 더 힘든 쪽으로 끌고가는 것 같아요. 반성하게 돼요. 저는 많이 내려놔야 해요.

 

아무리 바빠도 '책 읽어달라'는 부탁은 거절하지 않기로 했다. "아구, 우리 아기 책 가져왔어? 재미있겠다!" 그렇게 엉덩이 두드려주며 최대한 즐거운 태도로 읽어주었다. 설거지 하다가도, 냄비 속을 휘젓다가도 마찬가지였다. 책 읽어주기 가장 좋은 순간은 아이가 원할 때임을 알게 된 후론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랬다.


책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저는 아이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으니까 책을 많이 읽어줘요. 그런데 설거지를 할 때, 바쁠 때는 읽어달라고 해도 "잠시만 기다려줘." 라고 말할 수 밖에 없어요. 그리고 그게 당연한거라고 생각했고... 그런데 이런 분이 계시네요.

저희 아이는 요즘 책에 대한 애정이 시들한데, 다 저 때문인 것 같고 그래요. 앞으로는 적어도 아이가 가져오는 건 언제 어디서든 읽어줘야겠어요. 엄마가 설거지 하다가 책을 읽어주면 책에 대해 얼마나 좋은 기억을 갖겠어요. 엄마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책.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책. 읽다보니 재미있고 유익한 책. 의식적으로 노력해야겠어요.

 

활동적인 아이의 책육아, 중요한 건 스피드다. '보고 싶은 욕구'와 '알고 싶은 욕구'가 바로 해소될 때, 아이는 책을 가장 달게 읽는다.


아이가 책을 원할 때 바로 찾아 읽을 수 있도록 배치를 하셨다고 해요. 즐겨읽는 책은 표지가 보이도록 두고. 저희집은 슬라이딩 3단 책장인데 뒤에 있는 장은 아이가 여간해선 잘 꺼내보질 않더라고요. 한 눈에 보이는게 아니라 그런지.

그리고 거의 제가 꺼내주기 때문에 아이 눈높이에 맞는 취향 저격 맞춤 책장인 것도 아니에요. 조만간 작업에 들어가야겠다 싶네요. 저희 아이도 활발한 편이라 원할 때 빨리 손에 쥐어지지 않으면 금세 다른 것에 한눈 팔거든요. 책에 흥미를 가질 수 있을만한 환경을 적극적으로 조성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는 화난 엄마는 이해해도 무기력한 엄마는 이해하지 못한다.


이 사실을 늦게 깨달아 아이를 힘들게 했어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놀이학교에 보내게 됐고요. 지금 생각하면 30개월도 안 된 아기를 왜 일정 부분 어른 대하듯 했는가 몰라요. 하루가 다르게 크는 애가 제법 어른스러워 보였는지 저를 이해할지도 모르다는 생각이 들었던가봐요. 어리석죠?

무기력한 제 모습을 아이에게 그대로 보이고, 그것도 모자라 저를 이해해달라고 실제로 얘기까지 했던 그 때의 제가 부끄러워요. 이 한 줄을 읽고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예체능, 영어, 사교육... 아이가 자랄수록 신경 쓸 게 많아진다. 트렌드는 수시로 변한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책이었다. 둘러보면 부러울 정도로 야무지고 행동력 좋은 엄마가 많았다. 하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책을 읽어주는 엄마는 의외로 드물었다. 아이 서너살까지 열심히 읽어주던 엄마들도 다섯 살 이후로는 책에 대한 신뢰와 마음이 식는 걸 심심찮게 봤다. 오늘도 밥을 짓는 꾸준함으로 책을 펼친다. 아이에게 매끼 밥상을 차려주듯 마음의 양식인 책도 그렇게 읽어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부모의 꾸준함에 아이는 자란다.


작가님은 나들이를 가거나 기분이 좋은 날 그와 관련된 책을 읽어주어 그 기분과 책이 연결되게 하셨대요. 아이를 안고 손, 발 등을 부드럽게 만져주며 '책=좋은 기분'이 될 수 있게 도왔다고도 하셨고요. 좋았던 감정과 연결된 행동은 무의식에 좋은 것으로 새겨질 것이므로 책에 관해서는 잔소리를 하거나 부정적인 말을 일체 하지 않으셨다고 하네요. 심지어 책 정리를 시킨 적도 없다고. 읽고 난 책을 제자리에 꽂아야만 한다면, 책을 빼 드는 일이 부담으로 작용할 게 걱정이 되서 그러셨다고 합니다.

책에 대한 좋은 기억을 안겨주기 위해 어릴 적부터 책을 밟고 성을 쌓는 등 장난감처럼 활용들을 하죠. 그런데 말마따나 그걸 다섯 살 이후까지 매일 해줄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에요. 저도 한 때는 화르륵 불타올랐다가 요즘은 잠잠한데 타오르지 않아도 좋으니까, 꾸준히 읽어나줬으면 좋겠네요.

 

드라이버를 들고 다니던 시절에는 이것저것 분해하는 탓에 세간살이가 남아나질 않았다. 아이는 금속의 경도를 확인해봐야 한다며 냉장고 표면을 긁었고, 라디오 안테나를 뽑았다. 스탠드는 몇 번이나 다시 샀는지 헤아릴 수도 없다. 장난감, 시계, 볼펜 등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 인내심이 동나기 전에 아이를 자유롭게 두고 잔소리를 줄일 수 있도록 환경을 바꿔야 했다. 살림살이가 망가질 때마다 아이를 탓하기보다 비싼 소품을 줄였고, 전기제품을 분해하는 것이 위험하다며 말리는 대신 코드를 뽑고 깨끗하게 닦아 안전하게 갖고 놀도록 내주었다. 공구 역시 아이 손에 맞는 작은 공구로 대체해주었다. 아이의 세계를 다정하게 바라보고 진지하게 탐험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는.


작가님의 아들 윤하군은 과학 영재로 SBS '영재발굴단' 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온 적이 있어요. 별다른 사교육을 받지도 않았는데 전문가들이 놀랄 정도의 과학 지식을 뽐낸 바 있죠. 그 비결은 저는 어머니의 교육 방식에 있다고 생각해요.

길에서 선풍기를 보고 집에 가져오고 싶으면 가져오게 했대요. 냉장고가 궁금하면 원리부터 역사까지 차근차근 설명해줬고요. 물놀이는 2년 가까이 했다는데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으셨대요. 나중이 되어 그 때를 돌아보며, 아마 그 때 과학을 많이 깨우쳤을거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나요.

위의 하이라이트 글과 더불어 윤하 어머님, 이 책의 작가님이 어떤 스타일인지 아시겠죠. 아이가 하고싶어 하는 일이라면 내 판단을 내세우지 않고 조용히 주변의 위험물만 치워 자유로운 환경을 만들어주는. 아, 나도 이런 엄마 되고싶다!

 

아이와 요리책을 펼치고 재료의 양과 액체의 들이를 재어보며 질문했다. "이 계량컵은 250ml까지 밖에 안 나와 있네. 700ml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스포이드로 숟가락에 물을 한 방울씩 떨어뜨려봐. 그리고 숟가락이 몇 ml인지 엄마한테 말해줘.", "이번에는 그 숟가락으로 물을 몇 번 떠야 한 컵을 다 채울 수 있는지 재어보자." 이런 질문을 하며 채소를 다듬고 밥을 안쳤다. 집 안 물건 중 누가 가져온 물건이 더 무거운지 따져보는 '무게 재기 시합'도 재미있었다. 이때 나는 크기만 컸지 속이 텅 빈 상자나 풍선을 가져갔다. 그리곤 "하하하! 내 물건이 더 크니 당연히 더 무겁겠지" 악당처럼 웃으며 저울에 올린다. 그러나 아이가 가져온 작은 쇠구슬이 더 무겁다. 이 시합을 통해 아이는 저울 읽는 법은 물론 무게를 결정짓는 건 크기(부피)가 아닌 밀도와 질량임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작가님은 밥도 하고 반찬도 만들어야 하는 주방에서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셨대요. 엄마가 밥할 때 아이는 온갖 재료들을 사부작 댔겠죠. 채소를 다듬거나 칼질, 밥 안치기 등을 가르쳐주어 지금은 아이가 해주는 밥을 드시고 계시다고 합니다.

주방에선 여러가지 실험을 할 수가 있어요. 일상 생활, 일상 소품으로 엄마와 재미있게 여러 실험을 하면 아이가 과학을 얼마나 친근하게 느낄까요.

 

울고 싶은 순간도 영화 보듯 제삼자의 눈으로 관찰하다 보면 어느새 지나간다.


힘들 때 한 발짝 떨어져 미래의 제가 됐다고 생각하고 현재의 저를 보는거예요. '힘들지? 다 지나가. 다만 후회할 짓은 하지마.' 텔레파시를 막 쏘면서요.

 

우리는 서로를 정보 ATM이나 경쟁 상대 취급하지 않는다. 주파수가 맞는 사람들이기에 자주 보지 않아도 든든하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 듣지 않아도 느낀다. 소란하지 않을 때, 예컨대 함께 미술관 관람을 하거나 익숙한 골목길을 거닐 때 넘치도록 즐겁다. 육아가 유난히 버겁고 일상이 쳐진다면, 이 친구들을 만나야 할 때다. 잠깐을 만나도 아랫목에서 푹 쉬었다 온 듯 몸과 마음이 데워지는 다정한 사람들.


이제 거의 이야기가 끝나가요. '엄마 친구'들에 관한 얘기에요. 이런 사람들도 있네요. 저도 이런 '엄마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상념에 빠져들면 아이가 저를 현실로 소환합니다. 엄마 오늘을 살아요. 하루하루 자라나는 나를 보세요. 오늘은 오늘뿐이에요.


아이와 함께 있을 때 자꾸만 딴 생각에 빠지는 제게 하는 말 같았어요.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느라 눈 앞의 소중한 사람, 아이에게 소홀해지는 날이 더러 있어요. 다시금 다짐하게 됩니다. 제가 아이에게 둘도 없는 친구로 환영받는 날이 앞으로 얼마나 되겠어요. 갈수록 제 인생에 집중할텐데.

아이가 넘치도록 사랑해줄 때 마음껏 누리고, 저도 흘러넘치게 사랑해줘야겠단 생각이 들어요.

 




내향적이라고 했지만 상당히 적극적인 작가님이셨죠? 에너지를 안에서 얻을 뿐, 엄마들은 누구나 다 아기에게 가장 좋은 걸 주고 싶어 합니다. 비슷한 성향의 분들이 읽으면 좋을 책 같아요.

그 잔잔하고 개구쟁이 같은 에너지를 육아의 어디에,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친절하게 가르쳐주니까 '이 육아서는 나를 어떻게 혼낼까?' 겁먹지 말고 보세요. 책 전체가 폭신한 빈백 같은 느낌이거든요, 정말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예비 부모들에게도 추천합니다. 과거의 제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었어서 그래요. 그럼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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