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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B. A. 패리스 - 테라피스트 리뷰, 죄책감은 무서운 감정이에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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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B. A. 패리스 - 테라피스트 리뷰, 죄책감은 무서운 감정이에요

유하우스 2022. 7. 12. 12:36


그녀의 <비하인드도어>를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다른 작품도 읽어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비하인드도어가 더 재밌었네요. 이 책의 묘미는 후반부에 모두 몰려있는 것 같아요. '누가 범인이지?' 의심하고 궁금해하느라 내내 기가 빨렸는데, 진상이 밝혀지고 그 사람이 실은 어떤 인간이었는지에 대해 서술하는 부분은 그야말로 짜릿 그 자체. 내용 소개해볼게요.

 

테라피스트 내용(스포주의)



앨리스와 레오는 짧은 기간, 그것도 주말 연애를 마치고 결혼에 골인합니다. 호화로운 주택에 함께 살게 돼요. 이 주택단지에는 다른 부부들도 살고 있는데요. 탐신네, 이브네, 마리아네, 로나 아주머니네... 이웃들의 눈길이 곱지만은 않네요? 텃세를 부리는걸까요?

앨리스는 알게 돼요. 이 집에서 누군가 죽었음을. 그것도 타의에 의해서. 죽은 사람은 니나라는 여자이고, 범인은 올리브라는 남자로 둘은 사이 좋은 부부였다는데요.

니나가 바람을 폈대요. 그리고 그 사실을 그녀는 이웃인 로나 아주머니에게 털어놓았다고 해요. 그 다음날 그녀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 돼요. 로나 아주머니는 진술했어요. 니나가 죽기 전, 올리브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 걸 봤다고. 하지만 올리브는 그 날 집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공원에 앉아 있었다고 경찰에 진술했어요.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걸까요?

사건은 올리브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종결이 되버리고 맙니다. 그가 정말 진범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이제 가릴수가 없어요. 이웃들은 찜찜하지만 한편으론 안심하며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합니다.

올리브가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고 호소할 때 이웃들은 불안했거든요. 니나가 바람을 폈다고 했죠? 올리브가 아니라면 바람을 피운 사람이 죽였을 가능성이 크겠죠. 그런데 그러려면 그 자가 누구인지 이웃들을 의심해봐야 하고, 그 중엔 내 남편도 속해있기 때문에 내 남편도 의심을 해봐야 해요. 그리고 만일 바람 피운 상대가 범인이 아니라면, 그 사람의 와이프가 니나를 죽일수도 있는거예요. 이러한 가능성들이 그들의 숨통을 조였던 모양입니다. 올리브가 사건을 끝내주자 이웃들은 더는 파헤치려 하지 않고 일상으로 돌아가요.

 

앨리스의 혼란


앨리스는 이웃들과 친하게 지내기 위해 집들이 파티를 엽니다. 그런데 그 날, 웬 남자가 나타나요. '누가 아직 안 온걸까?' 어림짐작 하던 앨리스는 그 자가 '팀'이라고 확정을 지어버려요. 그는 자신이 누구라고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파티가 끝나고야 알았어요. 팀이 파티에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럼 그 남자는 누구였을까요? 그는 앨리스가 집에 혼자 있을 때 자신이 죽은 니나 사건을 재조사하는 사립탐정이라고 소개하러 오는데요. 앨리스는 이 니나 사건을 그냥 흘려들을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죽은 자신의 언니 이름이 니나였거든요. 그리고 언니를 그렇게 만든 사람이 자기라는 죄책감을 평생 갖고 살고 있었고요. 판결에서마저 무죄를 받아 벌을 받을 기회마저 빼앗긴 앨리스에요. 앨리스는 옛날부터 '니나'라는 이름만 들으면 집착 수준으로 그 사람을 들여다보는 습관이 있었어요.

사립탐정 즉, 토머스는 자신이 올리브 누나의 부탁을 받아 움직이는거라고 얘기해요. 올리브의 누나는 현재 아파서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이며, 자신의 동생은 무죄이니 진실을 밝혀달라고 부탁했는가봐요.






앨리스는 당시 자신의 남편 레오를 의심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 집에 커다란 비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레오가 자신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신뢰가 불신으로 변한 상태에서, '그가 니나를 죽이고 범인이 범행현장에 다시 오듯 돌아온 건 아닐까.' 퍼즐을 맞춰보는 중이었죠.

남편에 대한 의심을 키우는 증거들은 속속들이 등장합니다. 일례를 얘기하자면 여권. 여권을 확인하니 그 안의 이름은 앨리스가 알고 있는 이름이 아니었어요. 여권 속 이름으로 인터넷에 검색을 하니 그가 실은 감옥 생활을 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요. 다른 집 다 놔두고 왜 꼭 이 집에 살려는 고집을 부렸는지, 왜 아내인 내게 이름을 거짓말 했는지... 레오를 향한 앨리스의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합니다.

비슷한 시간, 이웃사람들은 여전히 앨리스를 이해하지 못해요. 그나마 친한 사람이었던 이브는 앨리스를 이해하는 듯 보였지만 책의 후반부에 탐신이 "당신은 망상증 환자예요!" 라고 말할 때 평소와는 달리 이브가 탐신을 제지하지 않죠. 마치 어느정도는 그 말에 동조한다는 듯이요.

앨리스는 우리 집에 웬 남자가 왔었고, 그 남자는 사립탐정이며, 올리브 누나의 부탁을 받아 사건을 재조사 하고 있다는 얘기를 사람들에게 거듭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왜 끝난 일을 다시 화두에 올리느냐며 그녀를 못마땅해했죠. 특히 탐신이요. 그녀는 폭발해요. 당신은 우리 모두를 의심하고 있고, 우리는 당신이 말한 그 남자를 보지 못했다. 이제 좀 그만하라고 말이예요.

생각해보면요... 토머스는 일주일에 한 번씩 앨리스네 집에 왔거든요. 그런데 이웃들은 그를 본 적이 한 번도 없대요. 어떻게 된 일일까요?

 

반전


토머스는 로나 아주머니의 아들이었어요. 부모를 폭행하는 못된 아들, 실명은 존이었죠. 그리고 니나 사건의 범인도 그였습니다. 이웃들이 이제껏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이유는 로나 아주머니네서 앨리스 집이 매우 가깝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었어요.

 

"올리브는 누나가 없어요!"


토머스는 올리브 누나의 부탁을 받아 조사하고 있는거라고 했는데. 여느때처럼 그와 나란히 커피를 마시고 있다가 탐신에게 받은 문자가 촉발점이 되어 앨리스는 떨기 시작해요. 그리고 올리브에게 정말 누나가 없는지 확인을 해달라고 레오에게 보낸 문자의 답장을 토머스가 목격한 순간, 그의 본모습이 드러납니다.

그는 앨리스를 묶고 그녀의 머리를 잘라요. 그는 다른 사람의 심리를 조종하고 이용하는데 기쁨을 느끼는 성격장애자였어요. 로나 아주머니는 뒤에서 황망히 그를 바라만 보는데요. 폭주기관차인 아들을 말릴 힘이 없어서요. 그 순간 로나 아주머니의 남편인 에드워드 아저씨가 충격으로 돌아가세요. 앨리스와 로나 아주머니는 용기를 내서 토머스를 쓰러뜨리고, 무차별적으로 타격을 가해 그에게 벗어나요.

앰뷸런스 안에서 앨리스와 로나 아주머니가 나누는 대화가 인상적이에요.

 

"아주머니가 제 목숨을 구했어요. 그게 아주머니가 한 일이에요. 아주머니가 제 목숨을 살렸어요." 그리고 몸을 내밀어 아주머니에게 키스했다. "고마워요." 그것으로 충분하지는 않았으리라. 하지만 자신의 아들을 죽인 엄마에게, 잘 알지도 못하는 남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모자를 하나로 묶고 있던 탯줄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도록 그토록 잔인하게 잘라버린 엄마에게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때 아주머니가 갑자기 기운이 나는 듯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내가 댁의 목숨을 구했다면, 날 위해 한 가지만 해줄래요?" 아주머니가 물었다. "그리고 우리 바깥양반을 위해. 바깥양반도 그걸 원할 거예요." "물론이죠, 뭐든지요." "살아요."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당신 몫의 인생을 살아요. 지난 20년 동안 과거 속에서 살았잖아요. 이제 온전한 삶이 주어졌으니 죄책감 때문에 인생을 낭비하지 마요. 인간은 누구나 실수하는 법이니까."


'니나' 에서 이제 그만 벗어나라고요. 죄책감으로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고요. 물론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치러야합니다. 하지만 앨리스의 경우는 사고였어요.

이런 말도 나옵니다. '법원이 나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무죄를 선고하면서 나는 처벌받을 권리를 빼앗겼고 그때부터 스스로를 벌해왔다.' 고... 앨리스가 잡은 운전대의 차 안에 사랑하는 언니와 엄마가 있었고 모두에게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났던 것 뿐...

 

그래서 그런거였다. 그가 옥살이를 했다는 걸 알았을 때 용서하지 못한 건 그의 범죄 이력이 아니라 질투 때문이었다. 나는 과거에 발이 묶여 있는데, 그는 자신이 저지른 짓을 속죄하고 새인생을 살 수 있었다는 사실이 샘났다. 안 그래도 그가 니나에 대해 말해주지 않아서 당황하고 있던 차에 혼란이 더욱 심해졌고, 그래서 신뢰해도 될 것 같은 그 사람에게, 로나 아주머니의 은밀한 경고로 의도치 않게 생긴 불신과 의심이 주변 사람들과의 우정을 물들이기 시작하면서 한결같음을 상징하게 된 그 사람에게 의지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토머스 그레인저의 탓으로 돌릴 수 있는 건 오직 그가 밤중에 집 안을 어슬렁거리며 내게 두려움을 주입시켰다는 것 뿐이다. 나머지는 내가 그의 손에 놀아나서 자초한 일이다.


죄책감으로 시작된 상상이 결국은 앨리스를 집어삼켜 일어난 비극. 내 주변 사람들을 의심하고 끝내는 나조차도 믿을수가 없게 되는. 한마디로 주제에 딱 맞는 주인공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앨리스는 토머스에게 놀아났어요. 그가 만들어놓은 판 위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게임말 같았죠.

생각해보면 죄책감은 얼마나 무서운 감정인가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머리를 마비시키죠. 죄책감으로 인해 다른 사람을, 나를 슬프게 하는 일도 서슴지 않아요. 앨리스는 로나 아주머니에게 삶의 큰 지혜를 배웠어요. 작중의 앨리스처럼 죄책감으로 내 삶을 갉아먹고 있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제 글을 읽고, 괴로운 그 감정에서 벗어나면 좋겠어요. 토머스처럼 내 그 감정을 이용하는 사람이 나타나기 전에요.






토머스의 정체가 드러나기전까진 누가 누구를 해하지도, 그런 시도를 하지도 않는데 쫄깃한 긴장감이 인상적인 책이었어요. 근데 영화로 치자면 마지막 10분을 위해 모든 시간에 누군가를 의심하고 실망하고 의심하고 실망하고의 연속이라 저 개인적으로는 조금 지치고 힘들었던 책이었기도 합니다. 재미가 후반에 너무 몰빵되어 있어요.

 

다들 올리버가 니나를 죽였다고 그렇게 빠르게 인정한 데는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 어쩌면 그들이 누군가를, 니나와 바람을 피웠다고 의심되는 서클의 누군가를 보호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그게 누구일까?


이 긴장감을 너무 오래 가져가야 해요. 전에 읽었던 저자의 <비하인드도어> 같은 경우 주인공의 본모습이 빨리 드러났고, 그 후 각기 다른 씬들이 속도감 있게 진행됐기 때문에 읽는 재미가 있었는데...

그래도 다른 책을 또 읽어보려 합니다. 내용적으로는 조금 루즈한 편이었으나 가독성은 좋았거든요. (저자의 장점인 것 같아요.) 다음에 읽어볼 책은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작품이면 좋겠어요.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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