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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우스
《아시자와 요 - 죄의 여백》 학교폭력이라는 죄의 여백 들여다보기 본문
발표하는 작품마다 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미스터리 작가 요시자와 요. 국내에서는 <아니 땐 굴뚝에 연기는>, <나의 신>, <더러운 손을 거기에 닦지 마>라는 작품으로 인지도가 있는 편입니다. 저는 '나의 신' 이라는 작품을 읽은 적이 있네요.
동일 작가라는 데 놀랐어요. 죄의 여백을 훨씬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녀는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 일본 추리 작가 협회상 후보,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5위 수상을 통해 스토리의 힘을 입증해 왔어요. <죄의 여백>에서는 인간의 마음에 내재된 악의, 인간 본성에 관한 질문을 뛰어난 묘사로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데요. 딸 가진 부모 입장에서 참 읽기 힘들었습니다.
줄거리 & 느낀점
아내와 사별 후 홀로 딸을 키우고 있는 안도는 강의가 끝나고 켜켜이 쌓인 부재중 연락을 확인합니다. 그 연락은 바로 딸이 죽었다는 것이었는데요. 딸의 일상적인 모습이 떠올라 그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사키와 마호. 연예인 수준의 뛰어난 외모의 사키와 그런 그녀를 쫓아다니며 친구이고 싶어하는 마호는 안도의 죽은 딸, 가나와 친구였습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어요. 처음엔 그저 '짜증난다'는 정도였죠. 하지만 그들은 점점 가나를 따돌리게 돼요. 찔러도 찔러도 가만 있으니 갈수록 괴롭힘의 강도를 높여갔고요. 그러다 결국 그녀를 죽게 만들고 맙니다.
이 책의 안타까운 부분 중 하나는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직접적인 가해자가 없다는 거예요. 가나는 교실 창문 난간에 스스로 올라갔고, 자기 실수로 떨어진 것이었으니 겉으로 봐서야 마땅한 명분이랄 게 없었죠. 마호와 사키는 손 하나 까딱 안 했어요. 그저 친구 잃은 가엾은 아이들로 보일 뿐이었어요.
하지만 안도는 후에 가나의 일기에서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게 됩니다. 내 딸 가나가 스스로 죽은 것이 아니라 실은 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거라는 것을요. 마호와 사키는 가나를 가지고 '장난'한 거였어요.
'한 번 해 볼래?', '할 수 있어?'.
혹시 그런 말장난에 죽은 가나가 답답하게 느껴지시나요? 그들은 가나가 소중히 여기는 엄마의 유품을 몰래 훔쳐서 버려놓고 슬퍼하는 모습을 방관했습니다. 도시락에 매미를 가루내 넣었고요. 네 엄마는 너 때문에 죽은거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가나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아이였습니다. 여리고 온순한 성격을 장난삼아 갖고 논 그들을 강하게 내치지 못한 가나가 바보같다고 생각하시나요?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는 누군가, 그 누군가를 바라보는 입장의 또 다른 누군가는 이해할 거예요. 학교는 회사처럼 그만두고 싶다고 그만둘 수 있는 곳이 아니거든요. 전학을 가고 싶어도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모에게 말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고요, 말을 해도 이해하지 못 하는 부모도 있어요. 전학을 시켜줄 형편이 되지 않는 집도 있습니다.
가나와 같은 아이들은 보호해 줄 사람이 있어도 손을 잡아달라는 말을 할 용기가 없어요. 아마 누군가는 이해할 겁니다.
"처음에는 사소하게 툭툭대는 정도라 주변에서 보기에는 그저 사이좋게 지내는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본인은 알아요. 자기가 따돌림 당하고 있다는 걸. 세 명 중에 자기만 겉돈다는 걸. 왜 그러는지도 모르는 채 쌀쌀맞은 태도에 불안해져서... 그걸 더는 견디지 못할 때쯤 타이밍을 노려서 화해할 기회를 주죠. 영문도 모른 채 안심하고, 다시 외톨이로 돌아가기는 싫다는 마음에 휘둘려 냉정한 판단력을 잃은 사이에 다른 안식처를 빼앗아요."
가나가 죽고 난 뒤에도 문제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가해자들이 반성을 하지 않았거든요. 특히 사키, 얘는 정말... 어마어마... 가나가 일기를 썼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그 안에 자기들의 이름이 있을까봐 증거를 은닉하러 피해자의 집에 향을 피운답시고 찾아가는데요.
가나의 아빠는 딸의 친구가 찾아온 줄 알고 다정히 맞아줘요. 그러다 둘은 가나의 일기를 함께 읽게 되고요.
사키는 반에서 존재감 없는 아이의 이름을 빌려 가명으로 제 소개를 했었습니다. 안도는 그 사실을 모르고 사키와 마호를 찾아 죽여버리겠다고 했고요. 사키는 머리를 굴려 저 혼자만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궁리 하는데요. 그 궁리에는 마호의 목숨이 들어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더 죽어도 내 인생에 흠집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살벌했어요.
안도가 그래요. 마호와 사키를 죽이고 자기도 죽겠다고. 그 말을 들은 사키는 마호를 가나의 집에 함께 가자고 꼬십니다. 일기를 찾아 빨리 없애버려야 우리가 안전하다는 핑계를 대며 말이에요.
안도는 옷장 안에 그들을 가둬 냄새만 맡아도 죽는 약으로 끝내버리겠다고 했었어요.
사키는 옷장 안에 마호가 제 발로 들어가게 합니다.
마호는 외톨이가 되는 걸 무엇보다도 겁낸다. 가나가 없는 지금, 내게 버려지면 걔는 외톨이다. 절대 나오지 마. 소리도 내지 말고. 실패하면 끝장이야. 그렇게 단단히 당부하면 적어도 몇 분은 참으려고 하지 않을까.
사키는 늘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는 인물이에요. 제 손에 피 묻히지 않고 자기 스스로 구렁텅이에 빠지게 만드는.
아, 안도가 왔네요. 그들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처음엔 이 인물은 왜 나온건지 의아했습니다. '사에다'. 큰 비중은 없는데요. 지금 생각하면 자식 잃은 부모의 깊은 슬픔에 저울을 달아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오게 도와주는 역할이었던 것 같아요.
그녀는 안도의 부모에게 부탁을 받았어요. 밥을 가져다주고, 아픈 곳은 없는지 확인하고, 상처가 아물었는지 들여다 봐달라는 부탁이요. 어릴 때부터 융통성이 없고 인간관계 맺기를 잘 못 했던 사에다. 하지만 그녀는 서툴러도 늘 진심으로 안도를 대합니다.
그녀로 인해 안도가 구원을 받은 건 아닌데요. 그럴만한 깊이의 상처가 아니라서요. 정말, 아주 조금이라도, 안도를 살 수 있게 도와준 인물임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공감 능력이 떨어지면서도 남을 위해 애쓰는 사나에와 반의 중심에 설 정도로 공감 능력과 배려심이 뛰어난 척하지만 인간성이 최하인 가해자 사키를 대비하면서 읽으면 더 재미있을 것이다.
작가는 사키와 사에다를 비교하기 위해 일부러 사에다란 인물을 만들어낸 게 아닐까 싶어요.
겉으로만 봐선 몰라요.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아도 실은 다른 사람들 어떻게 되도 나만 잘 살면 된다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있고, 뻣뻣하고 공감 능력은 좀 떨어지는 듯 보여도 진심으로 상대를 대하고 있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사람은 오래 들여다 봐야 합니다.
사나에의 인상 깊었던 한 마디 공유해요.
"저는 안 잊어버려요."
이야기가 끝나갈 때쯤 마호는 자신이 한 짓을 반성하고 안도에게 수십 차례 편지를 보냅니다. 하지만 왜인지 안도는 늘 우표까지 붙여 반송을 시키는데요. 싫으면 버려버리면 그만이잖아요?
마호는 '가나를 잊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마호의 편지를 읽게 돼요.
그리고 가나가 죽음의 순간에 어떤 마음이었을지 가여운 마음이 들어 실의에 빠집니다. 이제 반송을 시킬 수가 없는데 어떡하나, 누가 가나를 기억해주나... 슬퍼하는 안도 옆에서 사나에가 한 말이에요. "저는 안 잊어버려요".
다른 사람들 다 잊어도 나는 결코 잊지 않겠다는 말이 지금도, 앞으로도 곁을 내어주겠다는 말 같아서 참 가슴 찡했습니다.
저는 사실 안도가 이해 안 돼요. 그들이 손 안 쓰고 가나를 죽게 했으니 이번에는 손을 써서 자기를 죽게 만들면, 그들이 가나를 기억할거라고요? 퍽이나. 가나가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둥실 떠 있었다면 그런 아빠를 무슨 마음으로 바라봤을까 싶었어요.
사키는 반성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책에서도 끝까지 반성하는 모습이 안 나와요. 피해자는 가슴이 찢어지지만 가해자는 용서를 구할 마음 자체가 없어요. 뭘 잘못한 지도 모르고, 이해를 해보려는 생각 자체가 없다고요.
그렇게 같이 지내기 싫었으면 멀어지지 그랬나. 외톨이가 되기 싫으면 다른 그룹에 들어가도 되고, 이제 와서 다른 그룹에 들어가기 애매하다면 아빠에게 부탁해 전학 가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가나는 상황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전혀 안 했다. 오로지 비극의 여주인공이라는 입장에 취해 몸을 웅크린 채 폭풍이 알아서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사키는 어금니를 꽉 물었다. 나하고는 상관 없다.
이런 사람들에겐 감정적으로 호소해봤자입니다. 그들에겐 실질적인 지옥을 보여줘야 해요. 내 지옥을 이해하지 못 하겠다고? 그렇다면 내가 새로운 지옥문을 열어주지.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가 흥한 이유가 뭐겠어요.
'나 힘들어. 그러니까 죄책감이라도 느껴줘'가 아니라, 실제로 그들 삶에 피해를 끼쳐 못살게 구니 사람들이 속시원하다고 열광한 거잖아요.
가해자는, 사키 같은 가해자는, 남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뇌의 한 부분이 고장났거나 발달하지 못 했어요. 그런 사람에게 호소해봤자 내 입만 아프지 말해 뭐해요.
그런 의미에서 안도의 선택은 안타깝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 선택으로 얻은 이후의 시간도 제 기준에선 모조리 다 고구마였어요.
요즘은 사람을 괴롭히는 수법이 점점 더 교묘해지고, 잔인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자기 손에 피 묻히지 않고 피해자를 서서히 피 말라 죽게 만드는 수법을 자주 쓰는 것 같더라고요. 단체 카톡에 불러 괴롭힌다거나 세 명이 모이면 은근히 한 명을 따돌려 눈치를 보게 만든다거나.
몸에 난 상처는 치료해서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데, 마음에 상처가 나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치료해야 할 지 누가, 어떻게 해 줘야 하는지 몰라 더 절망적인 것 같아요. 어린 친구들일수록 더더욱이요. 그 사실을 가해 청소년들이 잘 알고 이용하는 것 같아 안타깝고요.
아이 엄마로써 참 착잡한 책이었습니다. 훗날 우리 아이가 가해자 혹은 피해자 또는 방관자가 되면 나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만들어줬어요. 학교폭력에 대해 생각 할 시간이 필요한 분들, 추천합니다.
다만, 읽으실 때 옆에 사이다 두고 보시길 권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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