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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길리언 플린 - 몸을 긋는 소녀 (스포주의)

유하우스 2020. 2. 16. 10:41

 

 

2014년 국내 개봉 된 데이빗 핀처 감독의 <나를 찾아줘>는 극장 상영 후 관람객들의 높은 평점과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나도 별 생각 없이 영화를 보러 들어갔다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멍한 상태로 조용히 극장을 나왔던 기억이 난다.

<몸을 긋는 소녀>로 데뷔한 길리언 플린은 전 작품 영화화 확정으로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또한 '피가 난무하지 않는 서스펜스를 쓸 수 있는 작가(월스트리트저널)'라는 극찬에 걸맞게 그녀의 이야기는 더없이 조용하고, 나긋나긋한 여성들만의 분위기가 짙게 깔려있다.

<나를 찾아줘>에서 주인공 역을 소화한 배우의 온화하지만 지독하게 차가운 표정이 아직도 눈 앞에 아른거리는 걸 보면 저자는 <몸을 긋는 소녀>에서의 아도라와 카밀에게도 '양날의 칼'을 쥐어준게 틀림없다.

그들은 3대에 걸쳐 모녀간의 애증이 비극으로 치닫는 과정을 그들도 모르는새 여과없이 보여주었는데, 킬링타임용 장르 문학을 선택함으로서 현실의 두려움을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앤과 내털리의 범인 찾기에 몰입 시켜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던 것 같다.

이야기는 시카고에서 일하고 있는 카밀이 사건 취재 차 자신이 살았던 윈드 갭으로 이동하면서 시작된다.

가족과 친구가 있는 윈드 갭에 카밀이 쉽게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그 곳에서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마을 주민들의 동경을 받는 돼지 농장 실소유자이며 상당한 재력가이자 최고 부유층이다. 그녀에게는 앨런이라는 새아빠와, 이붓동생 엠마가 곁에 있었는데 그 누구의 환영도 받지 못한 채 마치 하숙인처럼 방을 빌려 쓰게 된다.

아도라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사건 취재를 위해 현장과 피해자 가족 등을 만나고 다니면서 그녀는 캔자스시티에서 파견 나온 강력계 형사 리처드 윌리스와 피해자 내털리의 납치 목격자, 아도라의 상류 사회 친구들, '엠마 패거리'와 여러 번 부딪히게 된다.
이붓동생 엠마는 조숙한 여중생으로 예쁜 얼굴로 술과 약을 하고 다니는 불량 소녀지만 집에서만큼은 엄마 말씀을 잘 듣는 똘망똘망하고 여린 딸이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관심이 없는지, 엄마 아도라는 언제나 고급스러운 원피스를 입고 가정부를 호출해 기름진 음식을 먹는다. 새아빠에게는 한 번도 '아빠'라는 호칭을 써 본 적이 없지만 누구도 고치라고 지적하지 않았다.

그녀는 엠마에게 발뒤꿈치가 밟히고 그녀가 먹던 사탕에 머리가 뒤엉키면서, 리처드와 여러가지 정보를 주고 받았고 마침내는 죽임 당한 피해자들의 공통 분모를 발견해내고 만다.

두 소녀들은 조용한 성격이 아니었고 아도라에게 과외를 받거나 관심을 받고 있던 아이들이었다. 그와 동시에 엠마는 죽은 자신의 여동생을 질투 할만큼 사랑 받고 싶어 하는 아이였다.

카밀은 2주가 넘는 시간 동안 윈드 갭에 머물면서 자신을 죽이고 싶어라는 아도라의 광기와, 죽은 여동생이 사실은 건강했음에도 병원에서 죽어가야만 했던 이유를 뒤늦게 알게 된다.

앤과 내털리는 과연 누가 죽였으며 뽑은 이는 어디에 숨긴걸까?

아도라는 '좋은 엄마'가면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건강한 자기 아이를 병원에 입원 시켜 아픈 아이로 만든 후 땀을 뻘뻘 흘려가며 간호했고,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남들이 봐주기를 바랐다.

희생하고, 헌신하는, 이상적인 엄마 모습.

그것은 전부 죽은 엄마에게서 그녀가 기대한 모습이었다.
이미 바람이 통하게끔 구멍이 뚫려버린 풍선에 자기 만족이라는 기름을 콸콸 붓는다. 그 기름은 그 사람을 모조리 집어 삼키고 마침내는 종식시켜 버리고 만다.

엠마는 누가 봐도 엄지를 치켜 올릴 정도로 예쁘다.
그 미모로 친구들을 휘두르고, 남자들을 주무르고, 아! 자신의 친구를 남자에게 서적으로 팔아 넘겨도 여왕처럼 추대를 받는다. 과연 부족함 없어 보이는 예쁜 이 여자 아이를 통곡하게 만들 수 있는 이가 세상에 있을까?
엠마는 아도라에게 알약을 받았다. 하늘색의 우유도 받아 먹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아도라가 엠마의 상태를 확인하러 왔을 때, 그녀는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해주었다. 그래야 모두가 행복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도라는 그 약과 우유를 카밀에게도 주었다. 그것들은 말라리아 예방약, 산업용 관장약, 항발작 알약, 말에 쓰는 진정제 등이었다. 카밀은 자신의 몸을 그어야 편안함을 느꼈기 때문에 독약임을 알면서도 그것들을 삼켰고, 그녀보다 조금 영악하고 예민한 엠마는 약을 먹고 잠든 척을 했다. 착한 어머니 노릇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아이는 죽여버리는 아도라 때문에 그녀들은 서로 다른 길을 택한 듯 보이지만 결국은 두 사람 다 자신에게 깊은 상처를 낸다.
엄마에게 화는 커녕 투정 한 번 부리지 못한 카밀은 답답하고 화가 날 때면 자신의 몸 구석구석에 단어들을 각인 시킨다. (온 몸이 타듯이 따끔거려도 마음의 가시가 더 깊고 날카롭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엠마는 자신이 받아야 할 관심을 다른 사람이 받을 때 깊이 분노한다. 특히 자기보다 못생기고 나약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관심을 받으면 더욱 그랬다. 그래서- 엄마를 내버려둠으로 사랑받고자 했던 행동이 다른 사람을 죽이고 말았다.
카밀 또한 엠마의 등을 씻겨줄 때, 지나치게 과잉보호를 할까봐 스스로 절제 시켜야만 했다.

이 가족을 파멸로 이끈 저주의 근원은 어디라고 해야 옳을까. 가난과 학대의 대물림도 눈에 보이는 거라면 차라리 잡아서 돈으로 처리 해버리면 쉬운 일일텐데 말이다.

저자 길리언 플린은 <몸을 긋는 소녀>외 다른 작품에서도 이러한 가족의 소통 부재로 인한 안타까움을 잘 녹여내고 있다고 한다. 그녀와 우리는 범인을 잡았지만 풀어야 할 문제는 모두의 몫으로 남겨놓았다.

가정 폭력처럼 무서운 것이 서로를 향한 무관심이라는 것. 이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껴서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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